기쁘게 얻는 축복이

기쁘게 웃는 축복이/히13:2

기쁘게 웃는 축복이/히13:2
2001-09-19 16:24:58 read : 63

우리가 웃으면 참 좋다고 합니다. 한번 웃을때마다 몸에 좋은 엔돌핀이 생성되어서 몸에 좋고 건강에 좋다고 합니다. 스텐포드대 윌리엄 프라이 박사는 웃음은 체내에 엔돌핀을 생산케 해 스트레스를 없애고 골치아픈 병을 깨끗이 가시게 하는 화학작용을 한다고 설명합니다. 웃음의 극단론자인 라로쉐는 건강한 삶을 위해서는 하루에 1백번 이상 웃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실제로 그는 건강한 사람의 웃음을 조사해 본결과 하루에 1백번내지 400번까지 웃고 있었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하루에 1백번 웃는 경우 이효과는 가장 강렬한 운동의 하나인 노젓기를 10분 하는 것에 해당하는 신체적 운동효과가 있다는 것을 밝혀 냈습니다. 노젓기를 하는 경우 옷을 갈아입고 운동이 끝난후 샤워까지 해야하기 때문에 웃음은 결국 시간과 경비를 줄이고 극히 편안하고 비용이 적게 드는 운동입니다. 여러분도 자주웃고 또 웃을 일들을 만들어서 몸도 마음도 다 건강하시기를 축원합니다. 그런데 오늘 말씀은 웃기는 웃었는데 잘못 웃다가 하나님께 꾸중을 들은 사라의 이야기 입니다.

하루는 아브라함이 나그네 셋을 극진히 대접하게 되었는데 그 나그네중 한분이 곧 하나님이셨습니다. 이 일을 히브서는 증언합니다. 히브리서 13장 2절 말씀에 보면 \"손님 대접하기를 잊지 말라 이로써 부지중에 천사들을 대저반 이들도 있었느니라\" 아브라함은 손님을 대접하다가 부지중에 하나님을 만난 것입니다.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말씀하기를 \"내년 봄에 새싹이 돋아날 무렵에 내 아내 사라는 이미 아들을 낳았을 것이다\"하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한 하나님의 말씀을 문 밖에서 듣고 있던 사라가 속으로 웃으며 중얼거렸습니다. \"내가 이렇게 늙었고 내 남편도 다 늙었는데 이제 무슨 낙을 다시 보랴?\"
순전히 자기 혼자 한말인데, 하나님께서 그 말씀을 들으셨습니다.

\"사라가 다 늙은 몸으로 어떻게 아기를 낳으랴 하며 웃으니 될 말이냐?
여호와께서 능치 못할 일이 있겠느냐?\"
그러자 사라는 내가 웃지 않았다고 잡아 땠습니다. 자신의 속생각을 아시는 하나님을 대할때, 너무 당황스러웠겠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아니다 너는 분명히 웃었다고 하시면서 꾸짖으셨습니다. 사라는 그다음에 아무 말도 하지 못하였습니다.

사라의 웃음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생명은 하나님께 있다는 믿음의 부족입니다.
하나님은 이루지 못할 것이 없다는 사실에 대한 불신앙의 비웃음입니다.

오늘날의 세계는 생명은 오직 하나님께 있다는 이 분명한 사실을 여러부분에서
마치 사라와 같이 비웃고 있습니다.

먼저 우리주위에서 볼수 있는 생명경시 현상은 생명을 만드시고 보존하시는 하나님에 대한 분명한 도전이며 불신앙입니다.
지번주에 우리가 다시 한 번 경악하지 않았습니까? 꼭 이런일들이 가정의 달에 많이 일어나는 이유를 모르겠습니다. 아들이 술을먹고 만취상태에서 자신을 공부못한다고 구박했던 아버지 어머니를 죽여서 토막내서 서울 시내의 여기저기에다 버렸다는 소식입니다.
그런데 그 아들은 공부를 못하는 학생도 아니고 명문대에 다니는 학생이었습니다. 제가 심리학을 공부하기 위해서 학교에 있을 때, 제 지도교수님이 똑같은 이야기를 해준적이 있습니다. 고대법대에 입학한 학생인데. 이학생이 상담실에 왔더랍니다. 와서 하는 말이 나는 너무 머리가 나쁘다고 하면서 의욕상실에 걸려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학생이 결코 머리가 나쁜 학생이 아닙니다. 사정을 들어보니까 자기집에 형이 둘이 있는데 그 형들이 다 서울대학법대를 들어갔는데 자기는 고대법대에 들어왔으니 머리가 나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주 너는 못난놈이라는 소리를 들어왔다는 것입니다.
아마도 이번에 불행한 일을 경험한 가정이 이와 비슷한 경우였던 것 같습니다.
그래도 그렇지 어떻게 부모를 죽일 수 있습니까?
어떻게 부모를 토막낼 수 있습니까?
오늘의 생명경시 현상을 극명하게 보여준 사건입니다.

학교는 어떠합니까? 우리나라에서는 선생님이 때린다고 112에 신고하는 일이 그렇게 많다고 하는데 우리보다 앞서간다는 미국에서는 요즘 학교에서 총을 쏘는 일이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습니다. 이번주에도 외에는 아니어서 교실에서 물폭탄을 가지고 노는 아이를 집으로 돌려 보냈더니 학교에 총을 가지고 와서 선생님을 쏘아죽였다고 합니다.

오늘날 많은 병원들이 정말 사람의 생명을 존중하고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요즘에 허준이라는 사람의 일대기를 그린 방송이 인기를 끌고 있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다만 재미가 있어서요. 아닙니다. 끈질기게 생명을 소중하게 여기는 한사람의 의사가 귀하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요즘 학교에 가보면 남녀의 성비가 분명하게 깨어져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왜그렇습니까? 이미 낳기도 전에 성감별을 해서, 병아리 감별하듯이 남자아이면 낳고 여자 아이면 낙태하지 않습니까? 남자아이가 모그렇게 중요합니까?
잘못 기르면 토막이 되는데요.,
저와 함께 성경공부를 하던 산부인과 의사 선생님이 하루는 와서 심각하게 상담을 요청하였습니다. 목사님 어떻게 해야 할까요? 요즘 조그만 산부인과 들은 먹고 살수가 없을 정도로 장사가 안됩니다. 그나마 낙태수술을 하지 않으면 병원이 유지 될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병원에는 낙태수술을 하러 오는 사람들은 많은데 목사님 어떻게 해야 할까요? 성경말씀을 공부하니까 내가 하는 일이 너무나 괴롭습니다.
그래서 저는 정말 양심적으로 분명하게 대답하지 못했습니다.
집사님. 꼭 필요한 분에게만 시술해 주세요. 이 말씀이 얼마나 도움이 되었는지 아직까지도 모르겠습니다.
보세요 여러분.
우리가 그렇게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가정. 학교. 병원 이 모든 것들이 심각하게
병들어 있습니다. 보통 문제가 아닙니다.

또 하나가 있습니다. 그것은 과학의 발전입니다.
과학의 발전은 모든 생명은 하나님께 있다는 이 믿음에 분명하게 도전하고 있습니다. 생명을 복제하는 것은 벌써 오래전의 일이고, 인간의 유전자 연구는
인간탄생의 비밀스러운 부분까지를 밝혀내고 있습니다.
이제 인간의 생명도 상업화 될 것임에 분명합니다.
앞으로 아이를 나을 때, 낳기도 전에 우리 아이는 황신혜 코에다가 아인스타인의 머리에다가 조수미의 목소리를 닮은 아이를 낳자고 계획할 때가 올것입니다.
영국의 찰스왕태자가 지난 17일 영국의 BBC라디오 강좌에 출연해서
\"지금 세계는 유전공학의 딜레머에 직면해 있다고 지적하고 또 오늘날 우리가 사는 세계는 기나긴 재앙을 가져 올 수도 있는 거대한 생명 실험실로 변했다고 비판하였습니다. 이같은 문제들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성스러운 것에 대한 감각을 회복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아주 정확한 현실 인식입니다.
이런 때일수록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더욱 하나님에 대한 믿음으로 살아가야 될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오늘 하나님께서 사라를 꾸짖으신 것은 사라의 이성적,합리적 믿음을 꾸짖으신 것입니다. 사라는 자신의 몸상태와 아브라함의 나이를 생각해 보았을 때, 아이를 갖고 낳는다는 것은 생각할 수 도 없었습니다. 그것은 불가능한 것이며 합리적이지 못한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인간의 생각을 초월하신 하나님이시며 인간의 생각과 판단 범위내에서만 활동하시는 하나님이 아니라 사람의 생각과 판단을 넘어서 계신 하나님이십니다. 우리가 가능한 것만 믿는다면 그것은 굳이 믿음이라고 명명할 필요도 없습니다.
어찌보면 성경말씀은 이성적, 합리적 믿음과 끈임없이 싸워온 기록입니다.
1)예수님의 동정녀 탄생을 믿느냐? 과학과 이성으로는 생각할 수 없는 일이 예수님의 탄생으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합리적으로는 전혀 믿을 수 없지만 우리는 믿습니다.
2)예수님의 기적들을 믿느냐? 죽은 나사로를 살리시고 중풍병자를 고치시고 각종 병들을 고치시고 귀신을 쫒아내신 예수님의 능력을 우리는 믿습니다.
3)가장 믿을 수 없는 일은 그분이 우리를 위해 대신 죽으시고 사흘만에 부활하셨다는 사실입니다. 이성적, 합리적인 생각으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일인 것입니다. 오직 성령께서 함께 하시지 않고는 믿을 수 없는 사실입니다.
결국 하나님께서 사라가 웃었다고 꾸중하신 것은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 자신들에 대한 꾸짖음입니다. 우리들 모두에게 있는 합리적. 이성적 믿음에 대한 하나님의 꾸중인 것입니다.
창세기 21장 6절의 말씀에 보면 \"하나님이 나로 웃게 하시니 듣는자가 다 나와 함께 웃으시리로다\" 아브라함이 왜 웃게 되었습니까? 하나님께서 약속대로 아브라함과 사라에게 아들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연약함과 가능성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능력의 하나님께서는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하나님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전적인 수용과 순종을 요구하시지 이성적, 합리적인 불신앙을 요구하시지 않습니다.
할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의지하여 나는 능력이 없으되, 하나님이 하셨다고 기쁘게 웃으며 살 수 있는 저와 여러분이 되어지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