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나그네

행복한 나그네/벧전1:17-25

행복한 나그네/벧전1:17-25


나그네라는 말로 삼행시를 지어드리겠습니다.
나. 나 멋지지 않습니까?
그 그렇게 멋집니까?
네 네~~~~~

한번 더 해볼까요?
나: 나는... 여러분을 사랑합니다...
그: 그대도, 여러분도 저를 사랑합니까...?
네 네 ㅡㅡㅡㅡㅡㅡㅡ

사실 우리는 나그네입니다.
여기에 계신 사람 중에서 고래부터 여기에 살고 있었던 분도 없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얼마 있으면 다 떠나게 됩니다.
우리는 모두 나그네입니다.
다만 세상의 나그네보다는 좀 길게 머물다 가는 것뿐, 뭣이 다르겠습니까?
어찌 생각하면 인생은 참 무상합니다.

성경에서 나그네란 두 가지 의미로 사용되었습니다.
첫 번째는 아무런 재산이나 권리가 없는 사람들을 말하였습니다.
이 사람들은 대개 히브리 사람들 중에 섞여 사는 외국인들을 말하였습니다.
그들은 약자였습니다.
그들은 병든 사람들, 가난한 사람들과 함께 보호를 받아야 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주님은 나그네를 영접하는 것이 나를 영접하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마25장)

두 번째는 나그네를 인생의 유한 존재인 것을 알려주는 말로 사용하였습니다.
야곱은 자기의 살아온 길을 나그네라고 표현하였습니다(창47장).
\'내 나그네 길의 세월이 일백 삼십년이니이다\'

성도들은 이 땅의 삶을 나그네로 알고 살았습니다.
어떻게 살아가는 가는 것이 나그네의 삶이 었습니까?
구약에서는 예레미야 35장에 레갑자손들을 통하여 그 교훈을 얻을 수 있습니다.
선지자 예레미야는 레갑자손들을 예루살렘 성전에 불러서
포도주를 마시게 하였습니다.
선지자가 먹어도 괜찮다고 허락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포도주에 손을 대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그 레갑이라는 조상이 있었는데 그 후손들에게 유언하기를
\'포주주를 마시지 말고 집을 갖지 말고 장막에서 살고
농장을 갖고 파종하지도 말라 그리하면 너희 생명이 길리라\'고 하였는데
그들은 그 말을 그대로 순종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정말 인생을 나그네로 살았습니다.

히브리서 11장에는 믿음의 선진들이 나옵니다.
그들의 삶이 바로 이 땅의 삶을 나그네로 생각하고 살았습니다.
\'땅에서는 외국인과 나그네로라\'
그들은 저 천국이 가야할 본향으로 알고
이 땅의 삶을 나그네로 여긴 것입니다.

오늘 베드로 전서 1 : 17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은 이 땅의 삶을 나그네라고
표현하였습니다.
\'너희의 나그네로 있을 때에(너희가 나그네 생활을 하고 있는 동안에는)
하나님을 두려움으로 지내라\'고 권면합니다.
하나님을 두려움으로 지내라는 것은 겁먹고 무서워하라는 말은 결코 아닙니다.
하나님을 조심성 있게 섬기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가볍게 생각하지말고 장엄하고 존귀하신 하나님으로
경외하라는 말씀입니다.
오늘의 말씀은 어떻게 이 나그네의 두려워하는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먼저 오늘의 말씀은 성도가 어떻게 구원받은 것을 알려줍니다.

여러분, 기억하십시오. 인간의 구원은 금이나 은의 힘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개입하심으로 이루어졌습니다.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가 유일한 해답입니다. 메시야의 피, 구원자의 피 이외에 그 어떤 것도 우리의 구원을 대신할 수 없습니다.

주님의 구원은 마치 낙하산 같습니다.
비행기가 1만 피트 이상의 고공에서 낙하산을 타는 것을 생각하여 보세요.
낙하산은 하늘에서 땅으로 내려오는 것입니다.
구원은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입니다.
내 공로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리고 낙하산을 타는 사람은 낙하산을 전적으로 믿어야 합니다.
이 낙하산을 타면 땅을 내려갈 수 있다는 믿음이 있을 때 낙하산을 탈수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은 믿음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주님을 믿음으로 주님의 보배로운 피가 우리의 죄를 가리워주시고
덮어주셨습니다.

우리는 주님의 보배로운 피로 구원을 받았습니다.
주님은 찢기셨고 우리는 나음을 입었습니다.
주님은 버림받으시고 우리는 구원을 받았습니다.
주님은 머리에 가시관을 쓰시고 손에 대못을 받으시고
우리는 영생을 얻었습니다,
우리는 주님의 감당할 수 없는 사랑으로, 은총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예수그리스도의 보혈의 권능을 체험한 자는 어떻게 살아가게 됩니까?
이것이 자신을 나그네로 알고 하나님을 두려움으로 섬기는 자세가 무엇입니까?

첫째, 주님을 닮아 거룩하게 살아갑니다(15절)
거룩하게 살아가는 것은 하나님을 경외하기에 구별된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거룩이 무엇입니까?
거룩이란 거룩한 복장을 하고 거룩한 걸음걸이를 하고
거룩한 목소리를 내는 것이 거룩입니까?
바리새인들은 거룩이란 외형적인 것으로 착각을 하였습니다.
그들은 외식으로 길게 기도하고
옷술을 넓게 하고 다니며 거룩의 흉내를 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그들을 평가하실 때
회칠한 무덤이라고 책망하였습니다.
사람들이 보지 않을 때는 약한 자들을 학대하고
부정과 부정직하게 살아가는 것을 하나님은 보셨습니다.
거룩이 무엇입니까?
오늘 주님의 말씀은
15절에 오직 너희를 부르신 거룩한 자처럼 너희도 모든 행실에 거룩한 자가 되라
하십니다.

레위기의 주제는 거룩입니다.
구약 레위기는 성도들의 제사제도와 규범을 다루고 있습니다.
예배자가 가장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이 무엇인가?
제물도 아닙니다.
절기나 제사제도도 아닙니다.
먼저 거룩하여야 합니다.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자가 구별된 행위가 없다면
하나님은 그 제사를 받으실 수 없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기막힌 제물을 가져왔다 하여도
아무리 웅장하고 화려한 성전에서 예배를 드린다하여도
예배드리는 예배자가 거룩하여야 하나님이 받으십니다

하나님은 행위의 변화 없이 속으로는 악독을 행하고
음란과 퇴폐 속에서 살면서
그리고 하나님이 그렇게 싫어하시는 다른 신을 섬기면서
입을 싹 닦고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날 성전에서 예배한다고
하나님이 그 예배를 받으실 수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런 예배를 받으시기에 너무 괴롭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차라리 누군가가 성전의 문을 걸어 잠그는 것이 좋겠다고 하였습니다.
신약에서도 산 제사는 시간만 구별하여 예배드리는 것이 아니라

(롬 12:1)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
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

거룩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세상과 구별된 삶을 말합니다.
우리의 모습은 어떻습니까?
사실 누가 하나님 앞에서 완전한 사람으로 설 수야 있겠습니까?
그러나 오늘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혹시 하나님의 자녀로서
버려야 할 것이나 끊어야 할 것이 있으면 버리고 끊는 결단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을 두려움으로 섬기는 사람들은 거룩하게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두려움으로 섬기고 거룩하게 사는 사람들의 특징이 무엇입니까?
소망을 하나님께 두고 사는 것입니다.
21절 하반 절에 너희 믿음과 소망을 하나님께 있게 하려함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이 말씀의 의미는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은 소망을
하나님께 두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을 모를 때는 목적이 불분명하였습니다.
어느 학생에게 \'네 꿈이 무엇이냐?\' 질문하니
\'전 이상하게 계속 바뀌었어요\'라고 하였습니다.
대개는 계속 바뀌는 것이 정상입니다.
물론 개중에는 분명한 꿈을 갖고 공부하는 학생들이 있어요.
그러나 그것이 인생의 목적은 아닙니다.
하나님을 알 기전에는 분명한 목표가 세상에 있었습니다.
돈이 되었다가, 때로 자녀들이 되었다가, 때로 명예에 두었다가
결국은 인생의 노년을 맞습니다.
그래서 하나님 없이 노년을 맞는 분들은 삶이 허무합니다.
그래서 쉽게 서운하고 쉽게 절망하고 쉽게 절망합니다.

사무엘 바켓은 1940년대에 지금은 고전이 된 「고도를 기다리며」라는 희곡을 썼습니다. 텅 빈 무대에서 두 사람이 주머니에 손을 넣은 채 상대방을 응시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아무 것도 하지 않고 그저 서서 서로를 쳐다볼 뿐입니다. 연기나 이야기의 줄거리가 있는 것도 아니고 단지 고도가 오는 것을 기다리며 서 있을 뿐입니다.
그러면 고도는 누구일까요? 사람일까요? 하나님을 뜻할까요?
공연 50주년 기념식에서 어떤 사람이 작가 베켓에게 물었습니다. \"자 이제는 고도가 누구인지 말해 주시지 않겠습니까? 그는 대답했습니다. \"낸들 어찌 알겠습니까?\"
「고도를 기다리며」는 많은 사람들의 삶, 곧 공허하고 의미도 없고 무엇을 기다리고 있는지 자신도 모르는 채 살아가는 사람들에 대한 비유입니다.
이것이 인생의 소망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경외하고 하나님 앞에서 거룩하게 사는 사람들은
목표가 분명합니다. 소망이 하늘나라에 있습니다.
이 소망이 있기에 거룩하게 살수 있고
이 소망이 있기에 환란과 핍박가운데서도 의연할 수 있습니다.
스데반 집사를 보세요.
자기 동족들, 이웃들, 심지어 친구들이 스데반에게 이를 갈면서 돌을 던져도
조금도 얼굴이 흩어지지 않고 천사를 얼굴을 하였습니다.
스데반은 오히려 그를 행하여 돌을 던지는 사람들의 죄를 용서해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하면서 순교하였습니다?
어떻게 그렇게 죽음 앞에서도 의연할 수 있었습니까?
하늘이 열리고 하늘에서 자기를 응원하는 주님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의 눈이 열려 하늘의 하나님 보좌를 볼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우리의 소망은 이 땅에 있지 않고 하늘나라에 있습니다.

하늘나라를 바라보고 사는 사람들은 이 세상을 설렁설렁 살아가는 것입니까?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저 나라가 있기에 이 세상을 더 아름답게 살아가야 합니다.
오늘 베드로전서는 하늘의 소망을 두고 사는 사람들은
옆에 있는 형제를 열렬히 사랑하면서 살아야 할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벧전 1:22) 너희가 진리를 순종함으로 너희 영혼을 깨끗하게 하여 거짓이
없이 형제를 사랑하기에 이르렀으니 마음으로 뜨겁게 피차 사랑하라

사랑의 세 가지를 권면합니다.
거짓이 없는 사랑, 진실한 사랑을 하라고 합니다
마음으로 사랑하라고 합니다
뜨겁게 사랑하라고 합니다.
뜨겁게 사랑하라는 말씀을 공동번역에는 열렬히 사랑하라고 번역하였습니다.

영어성경에는 이 말씀은 깊게 사랑하라, 타오르는. 강렬하게 사랑하라는 것으로
번역도 하였습니다.

이왕 사랑하는 것 뜨겁게 열렬하게 사랑하십시오.
사랑의 기준은 우리 주님이십니다.
우리 주님은 사랑의 기준을 보여주실 때
먼저 사랑하였습니다.
상대방의 아픔과 하나되는 사랑을 하였습니다.
원수까지 사랑하였습니다
끝까지 사랑하였습니다.

너무 높습니까?
우리 주변에 있는 한 사람의 사랑의 본을 소개하고 싶습니다.
이 분은 40대 목회자인데 아내를 사랑하기를 이렇게 사랑한다고 합니다.
그 분이 밖에 나가면서 항상 하는 말입니다
\'당신처럼 이쁜 사람을 하나님이 내게 주셨는데
내가 어찌 충성하지 않으리요?\'
이 목회자는 이것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하루에 세 번 이상씩 부인을 업어준다고 합니다.
그 사모는 행복에 겨워 하루종일 힘들어도 어려워도
기쁨으로 내조를 하고 있다고 합니다.
저도 이 분의 사랑이야기를 듣고 많
은 도전을 받았습니다.

우리는 잠시 있다 가는 나그네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구원받았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아버지요
우리의 본향은 하늘나라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따라가는 하나님의 자녀들입니다.
우리는 정말 행복한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잠시 살다 떠나는 나그네지만 행복한 나그네들입니다
홀로 가는 나그네가 아니라 우리 주님이 나와 늘 함께 동행하시며
하늘나라까지 인도를 받는 행복한 나그네들입니다.

이제 오늘 주신 말씀대로 \'너희 나그네로 있을 때에 두려움으로 지내라\'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날마다 하나님 앞에서 성령 님의 도우심으로 거룩하게 살도록 힘씁시다.
우리의 소망이 하늘나라에서 흔들리지 맙시다
그 나라가 있기에, 우리 곁에 있는 사람들, 진심으로, 마음으로, 뜨겁게 열렬하게 살아갑시다.

이것이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