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로 받은 세가지 축복/벧전1:3-5
부활을 설명한다면
터어키에 선교하던 선교사 한 분에 사람들에게 예수님의 부활을 설명하려 했습니다. 선교사는 말하기를 \"나는 여행하고 있습니다. 길을 가는데 두 갈래의 길을 만났습니다.
어느 길이 내가 목적하는 곳으로 갈 수 있는 길인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누군가에게 길을 물으려고 하다가 두 사람을 만났습니다. 한 사람은 살아있는 사람이요 또 한 사람은 죽어있는 사람입니다. 내가 누구에게 길을 물어야 하겠습니까? 이 말을 들은 사람들에게 물었습니다. “산 사람입니까 ? 죽은 사람입니까 ?\"
그러자 그들은 말하기를 \"그야 물론 산 사람에게 물어야 하지 않겠습니까?\"라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어찌 내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신 살아 계신 예수님께 찾아가지 않고 죽어 무덤에 갇혀버린 마호멧을 찾아 가겠습니까 ?\"
그렇습니다. 인생을 살아가는데 수많은 크고 작은 미로들이 많습니다. 어떤 길로 가야할지를 묻는다면 산 사람에게 묻듯이 주님에게 물어야 할 것입니다.
기독교는 부활의 종교입니다. 이 땅에는 많은 종교가 있습니다. 불교도 있고, 유교도 있고, 무속종교도 있습니다. 그런데 기독교가 다른 여러 종교들과 다른 점은 부활이 있다는 것입니다. 기독교의 부활의 사건은 인류의 역사뿐 아니라, 우리 개인의 삶 또한 바꾸어 놓았습니다. 소크라테스는 철학을 남기고 아리스토텔레스는 과학을 남겼다면, 예수 그리스도는 부활을 통해서 영원한 생명, 영생을 남기셨습니다.
영국 옥스퍼드대학의 역사학 교수였던 토머스 아널드 박사는
평생 과거의 역사를 구하고 사실을 조사하고 이에 대하여 기록한 문헌과 유물을 고증하여 사실 여부를 조사하였습니다. 이렇게 역사에 대한 많은 연구를 했던 그는 다음과 같은 말을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인간에게 베푸신 역사 중에서 가장 분명한 역사는 예수 그리스도가 죽으셨다가 다시 살아나신 사건이다. 인류역사 가운데 이것만큼 분명하고 완전한 사실은 보지 못했다. 모든 역사 가운데서 가장 확실한 표적은 바로 예수께서 죽음에서 부활하신 사건이다.”
만약 부활의 사건이 없었다면 인간은 계속해서 절망과 흑암과 죄악과 저주 가운데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부활하심으로 인해서, 우리는 용서와 더불어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축복을 받고 새로운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본문 배경]
본문 말씀 베드로전서 1장 3∼5절은, A.D. 64년경 로마의 네로 황제가 기독교 대 박해를 시작할 무렵에 사도 베드로가 고난에 처한 소아시아 지역의 교회들에게 보낸 위로의 편지입니다.
바울은 편지를 통해, 비록 핍박과 박해로 어려운 시련을 당하고 있지만 너무 낙심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왜냐하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의 죽음을 이기시고 삼 일 만에 부활하심으로써 우리에게 산 소망을 주시고 영원한 기업을 주시며 하나님의 능력으로 보호해 주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오히려 크게 기뻐하라고 격려하였습니다.
이처럼,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신 사건은 우리에게 산 소망을 주는 축복의 사건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을 믿는 자들은 고난 중에서도 산 소망을 가지고 승리하는 삶을 살게 됩니다. 그러면 본문 말씀을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통해서 받는 ‘부활의 세 가지 축복’이 무엇인지 알아보고, 함께 은혜를 받고자 합니다.
첫째,‘산 소망이 있게 하신다.’고 하였습니다.
둘째,‘하늘의 기업을 잇게 하신다’고 하였습니다.
셋째,‘하나님의 능력으로 보호하심을 입는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면 부활의 세 가지 축복에 대해서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Ⅰ. 산 소망이 있습니다.
“찬송(讚頌)하리로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이 그 많으신 긍휼(矜恤)대로 예수 그리스도의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復活)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산 소망(所望)이 있게 하시며”(벧전 1:3)
우리는 하나님 앞에 찬송해야 합니다. 감사하면서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신 은총과 능력과 권능을 찬송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많은 긍휼을 베풀어 주셨습니다. 그 가운데서 가장 큰 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신 사건입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심을 통해서 우리가 거듭나게 되고, 그 거듭남을 통해 살아 있는 소망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소망에는 죽은 소망도 있습니다. 한때 소망을 가졌지만 낙심하고 절망에 처해서 더 이상 소망을 가질 수 없는 소망의 등불이 꺼진 사람이 얼마나 많습니까? 이러한 사람들은 절망과 고통과 슬픔 속에서 삽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사건은 우리에게 소망이 되는데 그 소망은 소망 중의 소망이요 산 소망이 됩니다. 생명력이 넘칩니다. 우리는 이 소망 때문에 활동을 하고 능력을 받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도 성취됩니다. 고난 중에도 흔들리지 않고 항상 마음이 기쁘고 감사가 넘쳐나게 됩니다.
시편 146편 5절에는 “야곱의 하나님으로 자기 도움을 삼으며 여호와 자기 하나님에게 그 소망을 두는 자는 복이 있도다”라고 하였습니다. 이 세상에서 누가 가장 복된 사람입니까?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으로부터 소망을 얻은 사람입니다. 절망하는 사람보다 소망을 가진 사람이 더 복된 삶을 사는 것입니다.
또한 예레미야 29장 11절에는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은 내가 아나니 재앙이 아니라 곧 평안이요 너희 장래에 소망을 주려 하는 생각이라”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소망을 주십니다. 말씀을 통해서 소망을 주시고, 성령을 통해서 소망을 허락하여 주십니다. 그래서 구원도 소망을 통해서 허락하여 주시는 것입니다.
절망하는 사람과 소망하는 사람은 인생의 근본적인 태도부터가 다릅니다. 소망하는 사람은 행동이 다릅니다(욥 4:6). 낙심하지 않습니다(시 42:11). 하나님을 바라보고 소망을 얻습니다(시 62:5). 찬송을 부릅니다(시 71:14). 하나님 앞에 기도합니다(딤전 5:5). 어떠한 어려움이 있어도 인내하고 참고 견딥니다(약 5:7∼8). 그래서 결국에는 승리의 삶을 사는 것입니다.
로마제국도 한때는 소망이 있었으나 결국에는 멸망하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왜 그 막강했던 로마제국이 멸망했는지 아십니까? 소망이 있긴 있었으나 땅에 대한 소망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이 땅에 소망을 두는 자는 멸망하고 사라져 버리고 맙니다.
한편 기독교도 박해와 핍박 속에서 소망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기독교는 하늘나라에 소망을 두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께 소망을 가졌기 때문에 여러 가지 핍박과 박해를 당해도 굳세게 싸워 이길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결국 로마제국이 기독교 국가가 되었고, 오늘날에 와서는 오대양 육대주 전세계에 교회가 흥왕하게 되었습니다.
로마제국은 사라졌지만 기독교는 세계 도처에 퍼져서 오늘날은 많은 교인들이 여기저기서 찬송하고 기도할 뿐만 아니라, 부활절과 성탄절 행사도 성대하게 갖게 되었습니다. 소망을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서 이렇게 결과가 달라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소망을 이 땅에 두지 마시고 하늘나라에 두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함께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축복하십니다. 은총을 베풀어 주십니다.
영국의 위대한 작가, 윌리엄 셰익스피어(William Shakespeare ; 1564∼1616)
그는“불행을 고치는 약이 있다면, 그것은 소망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인생을 불행하고 외롭고 슬프게 사는 사람에게 처방할 수 있는 약은 바로 소망입니다.
왜 삶에 보람이 없습니까? 왜 기쁨이 없습니까? 왜 행복하지 않습니까? 소망이 없기 때문입니다. 혹 소망이 있다 하더라도 이 땅에 소망을 두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하늘나라에 소망을 두면 반드시 하나님의 도움을 받습니다. 하나님의 축복과 기적을 체험하게 될 것입니다.
미국의 제16대 대통령, 링컨(Abraham Lincoln ; 1809∼1865)
그가 젊었을 때의 이야기입니다. 그는 변호사 시절에 주 의회 의원에 출마했다가 낙방하고, 하원의원에 출마했다가 낙방했습니다. 이러기를 몇 차례 거듭하자, 그는 철저하게 좌절과 절망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주변 친구들은 그를 염려했습니다.
“저러다 링컨이 자살하는 건 아니야?”친구들은 링컨이 목숨이라도 끊을까봐 자기들이라도 관심을 가지고 보살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링컨은 친구들의 염려대로 “나는 지금 이 세상에서 가장 비참한 인생을 살고 있다. 어떠한 개선이나 향상을 기대할 수 없다. 나는 인생의 막다른 골목에 있다.”라고 자신의 심정을 토로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실의에 빠졌던 링컨이 어떻게 재기하여 미국의 대통령까지 될 수 있었습니까? 그는 말하기를“나는 성경을 읽고 그 속에서 죽음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다.”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의 사건이 그에게 용기가 되고 희망이 되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다시 공화당에 입당하였고 대통령 후보 지명을 받아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절망이 절망으로 끝나면 더 이상 발전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절망 가운데 있을 때 기도하고 하나님을 만나면 하나님께서 용기를 주십니다. 반드시 전화위복이 되어 복 있는 사람이 되게 하십니다. 형통하게 역사하여 주시는 것입니다.
부활에 대한 소망
슈바이처-프랑스의 신학자는 말하기를 “성공의 비결은 전 생애를 통하여 희망을 잃지 않는데 있다.”
Ⅱ. 하늘의 기업을 잇게 하십니다.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衰)하지 아니하는 기업(基業)을 잇게 하시나니 곧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 간직(看直)하신 것이라”(벧전 1:4)
‘기업’이란 법률적으로는 부모나 조상으로부터 상속받은 재산을 말합니다. 신학적으로는 하나님께서 그의 약속을 따라 순종하는 백성에게 주시는 선물이나 재산을 말합니다.
이 세상의 많은 사람들이 기업을 가지기는 했지만, 그 기업은 시간이 지나면 멸망하고 사라집니다. 그러나 성경에서 말하는 기업은 어떤 것입니까? 구약에서의‘기업’은 이스라엘 백성이 받았던 가나안 땅이었습니다. 그리고 신약에서는 하늘나라가 곧 기업입니다. 즉 구원과 영생과 약속, 축복이 기업입니다.
이 세상의 기업은 시간이 지나면 썩습니다. 더럽혀집니다. 쇠합니다. 우리 한국에도 한때 흥왕했던 많은 재벌들, 기업들이 있었지만, 지금은 망해서 건물도 없어지고 회사 이름마저도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불과 10년, 20년, 30년이면 이렇게 사라지고 없어집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주시는 기업은 이 세상의 기업과 다릅니다. 이 땅에서 시작되고 저 하늘나라까지 계속되는 영원한 기업이요, 하나님께서 보장하시는 기업입니다. 그래서 완전하고 온전한 기업, 영생하는 기업인 것입니다.
역대상 28:8절“이제 너희는 온 이스라엘 곧 여호와의 회중의 보는 데와 우리 하나님의 들으시는 데서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모든 계명을 구하여 지키기로 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이 아름다운 땅을 누리고 너희 후손에게 끼쳐 영원한 기업이 되게 하리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는 사람,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사람에게는, 하나님께서 영원한 기업을 주신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저버리면 축복도 기업도 사라지지만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면 하나님께서 영원한 기업을 허락하여 주시는 것입니다.
약2:5절“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들을지어다 하나님이 세상에 대하여는 가난한 자를 택하사 믿음에 부요하게 하시고 또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나라를 유업으로 받게 아니하셨느냐”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가난한 사람을 택하십니다. 가난한 사람일지라도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부요의 축복을 주시고 더 나아가서 하늘나라까지도 상속하여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지금 아무것도 없다고 낙심하지 마십시오. 하나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십니다. 믿음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충성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 앞에 영광 돌리시기 바랍니다.
세상 사람들은 자기의 기업이 이 땅 위에서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애쓰고 수고하여 돈을 벌어서 아름답고 큰 집을 장만합니다. 최고급 자재를 사용해서 아주 좋은 건물을 짓고 명성 있는 정원사를 불러다가 값비싼 수십 종의 정원수와 이름 모를 갖가지 색깔의 꽃들 그리고 파란 잔디로 정원을 아름답게 꾸밉니다. 여러 가지 가구와 장식품으로 조금도 흠 없이 꾸며진 응접실 거실 침실 등도 갖추어 놓습니다. 그리고 할 수 있다면 자그마한 인공호수도 있는 그런 낙원과 같은 저택에서 살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돈을 벌어서 이렇게 훌륭한 저택을 만들었다고 해도, 그 집은 진정한 자기 집이 아닙니다. 그렇게 애써 지은 집도 세월이 지나고 나면 두고 가야 합니다. 이 세상 집은 영원한 내 집이 아닙니다. 나이를 먹고 언젠가 세상을 떠나게 되면 다 두고 가야 합니다. 돈도, 재물도, 보석도, 집도, 땅도, 문서도 다 놓고 가야 합니다. 소유는 한순간이고, 오래 가지 못합니다.
그러나 이 세상에 놓고 간 것도 하나님께서 하늘나라에서 보상하시고 은총을 베풀어 주십니다. 재물을 이 땅에 쌓지 말고 하늘나라에 쌓으면, 하늘에서 보화가 넘치게 하십니다.
미국에 라이만 비처라는 목사님이 있었습니다.
그는 신학교에서 교장까지 지낸 훌륭한 교수였으며, 자녀들 또한 대단한 열정으로 키워서 일곱 아들을 모두 목사로 만들었습니다.
그 열정적이신 목사님이 목소리조차 잘 들리지 않을 정도로 노쇠하게 되었을 때 아들의 교회에서 간증을 하여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었다고 한다.
“여러분 ! 나는 지난 수년 동안 지상에서 천상으로 이사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시력도 하늘로 올라가고, 청력도, 체력도 목소리도 지금 하늘로 올라가고 있습니다. 이제 나는 사람의 손으로 짖지 아니한 천국에 저택을 장만하고 이사할 겁니다. 이 지상에는 아무것도 남은 것이 없습니다. 얼마 있지 않아 나도 곧 하늘로 올라갈 겁니다. 나는 이 땅의 집보다 하늘나라의 집을 더 동경하고 있습니다.”
이 세상에서 산다 해도 수십 년 수백 년 사는 것이 아닙니다. 세상에 세월이 끝나면 반드시 저 세상으로 올라가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소망을 하늘나라 저 천국에 두어야 합니다. 우리의 재산도 재능도 하나님께서 주신 축복도 이 세상에서만 누릴 것이 아니라 하늘나라에 옮겨 놓아야 합니다. 이사 갈 준비를 다 하고 이사를 해야 영원한 집 영원한 아름다운 세상이 우리를 기다리는 것입니다.
이제 노 목사님이 연세가 많이 드셔서 세상을 떠날 때가 되었다. 목사님은 준비한 테이프를 내놓으시며 그 테이프를 자신의 장례식장에 참석한 사람들에게 들려주라고 했다.
마침내 그 목사님이 세상을 떠나셔서 장례식을 거행하게 되었습니다. 목사님을 생각하며 모인 많은 성도들은 그 테이프에서 무슨 말이 나올까 기대하며 귀를 기울였습니다.
“김 장로님, 그동안 참 고마웠습니다. 내가 목회를 잘 하도록 항상 옆에서 도와주셔서 얼마나 고마웠는지 모릅니다. 김 장로님, 천국에서 만납시다.”
그래서 김 장로님은 감동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뒤이어 이런 말이 나왔습니다.
“그런데 김 장로님, 설교시간에 하품 좀 하지 마세요.”“최 권사님, 그동안 고맙습니다. 나를 위해서 불철주야 기도하신 그 기도에 내가 얼마나 희망과 용기를 얻었는지 모릅니다. 권사님, 내가 먼저 가서 기다리겠으니, 권사님도 천국에서 만납시다. 그런데 권사님 졸지 좀 마십시오.”
일찍 가고 늦게 가는 것뿐이지, 우리는 다 천국에 갑니다. 이 세상이 종점이 아닙니다. 이 세상이 있으면, 저 세상도 있습니다. 언젠가는 떠나야 할 이 세상에 미련을 가지고 욕심과 탐욕을 부리지 마시기 바랍니다. 우리의 영원한 기업은 하늘나라 천국에 있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의 사역은 부활로 끝난 것이 아닙니다. 먼저 하늘나라에 올라 가셔서 자리를 잡고 다시 우리를 데리러 오신다고, 재림하신다고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죽으셨다가 부활하신 사건을 믿으면, 예수님께서 재림하실 것도 믿으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Ⅲ. 하나님의 능력으로 보호 하십니다
“너희가 말세(末世)에 나타내기로 예비하신 구원(救援)을 얻기 위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능력(能力)으로 보호(保護)하심을 입었나니”(벧전 1:5)
이 마지막 시대에 사는 우리는 구원을 받고 하나님의 도움을 받아야 합니다. 믿음을 가진 자에게 하나님께서 능력을 베풀어 주시고 또한 그 믿음을 통해서 보호하시고 도와주십니다. 이 말세에 구원을 어떻게 구원을 받습니까? 믿음으로 구원을 받습니다. 그 믿음은 주님의 부활 사건을 믿어야 합니다. 그 믿음대로 역사하시고 보호해 주시는 것입니다.
신32:10절“여호와께서 그를 황무지에서, 짐승의 부르짖는 광야에서 만나시고 호위하시며 보호하시며 자기 눈동자같이 지키셨도다”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반드시 우리를 보호하십니다. 사고와 위험에서 보호하시고, 죄악으로부터 보호하시며, 마귀의 조롱과 공격에서 우리를 지키고 보호해 주십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보호하시되 마치 방패(창 15:1)처럼 우리를 보호하십니다. 산성(시 9:9)처럼 보호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요새(시 18:2)요, 피난처(사 25:4)가 되십니다. 또한 하나님은 목자(사 40:11)처럼 우리를 보호하십니다. 암탉이 병아리를 품는 것처럼 우리를 품어 주시고 보호하여 주시는 것입니다.
기독교는 철학이 아닙니다. 기독교는 사상도 아닙니다. 기독교는 명상도 아니고, 종교도 아닙니다. 기독교는 하나님의 보호를 받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도움을 받는 것입니다. 교회에 출석하면서도 하나님의 도움에 체험이 없다면 뭔가 잘못된 것입니다.
최 씨라는 여자가 있었습니다.
교회에 다니기는 했지만 그냥 왔다갔다만 할 뿐 믿음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자기 스스로도 말하기를 “나는 뜨락 신자였다.”고 했습니다. ‘뜨락 신자’란 믿음 없이 교회에 가서 뜰만 밟고 오는 사람을 말합니다. 그런데 아이를 가진지 40일쯤 되었을 때 몸에 통증이 있어서 병원에 갔는데 ‘말초 신경 염’이라는 진단을 받았습니다. ‘말초 신경 염’이라는 병은 근육이 곯아 살이 마르면서 전신 마비를 일으키는 병입니다.
임신 상태라 약도 제대로 처방할 수 없고 그대로 가다가는 아이도 낳을 수 없기 때문에 산모도 남편도 의사도 모두 걱정이었습니다. 할 수 있는 방법은 딱 한 가지 기도하는 방법밖에는 없었습니다. 그래서 스스로를 ‘뜨락 신자’라고 했던 그 여자도 하나님께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 하나님은 고치실 수 있지 않습니까? 나를 고쳐 주옵소서.’
지금까지 불순종하고 교만했던 것을 다 회개했습니다. 십일조도 드리지 않던 사람이 십일조도 드리고 교회에 제대로 출석하지 않던 사람이 교회에도 열심히 나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기도도 하지 않던 사람이 어떻게 기도할까 하고 궁리하게 되었습니다. 그랬더니 한 권사님이“기도할 줄 모르면 사도신경을 자꾸 외워요.”라고 말씀해 주었습니다.
‘전능하사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 아버지를 내가 믿사오며 … 죄를 사하여 주시는 것과 몸이 다시 사는 것과 영원히 사는 것을 믿사옵 나이다.’
이 여자는 사도신경 중에서도 ‘몸이 다시 사는 것’이란 대목을 고백할 때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하나님 뱃속에 있는 아이가 살게 만들어 주시옵소서. 저도 병으로 죽지 않게 하시고 뱃속의 아이도 낳게 해 주시옵소서.’
그렇게 기도한 지 한 달 두 달 석 달이 지났습니다. 예전과는 달리 그동안 아주 열심히 교회에 나갔습니다. 3개월 후에 병원에 가서 다시 진찰을 받았더니, 의사가 “아이를 중절하지 않아도 되겠습니다. 기적입니다. 아이를 낳을 수 있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눈물로 기도하고 회개하자 하나님께서 산송장이 되어 비참한 최후를 맞이할 뻔 한 이 여자를 살려 주셨습니다. 아들을 낳아서 성도들 앞에서 간증할 수 있게 해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살아 계십니다. 우리에게 아들을 주셨습니다. 내 병도 고쳐주셨습니다. 하나님밖에 없습니다.”울먹이며 간증하였답니다.
맺는 말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의 축복을 받는 성도가 되자
예수님의 부활을 단순히 부활절 예배 때만 생각하는 것으로 끝내지 마시기 바랍니다. 부활의 역사는 순간순간 우리에게 나타납니다. 매일 마다 부활의 사건이 나타납니다.
매일 아침 캄캄한 흑암 중에서 태양이 비추는 것도 부활의 사건입니다. 추운 겨울이 지나고 따뜻한 봄날이 되어 가지에서 잎이 나고 싹이 돋는 것도 부활의 사건입니다. 오늘날에도, 하나님 앞에 나와서 말씀을 듣고 은혜 받고 마음이 새로워져서 하나님 앞에 충성하는 사람, 하나님의 사랑을 깨달은 사람을 통해서 부활의 사건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부활의 말씀을 듣고 깨달아 하나님의 축복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1) 새로운 소망, 산 소망이 넘쳐나며
2) 하늘나라의 기업이 여러분에게 나타나고
3) 더 나아가서 하나님의 능력으로 도움을 받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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