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복으로 들어갈 사람

축복의 땅으로 들어갈 사람들
신14:1-10





1.시작하는 이야기
1867년 3월 29일 미국과 러시아 사이에 대단히 중요한 회의가 진행되고 있었다. 미국은 앤드루 존슨 대통령 내각에서 국무장관을 맡고 있던 윌리암 헨리 슈어드를 대표로 했고, 러시아에서는 주미 러시아 공사로 있던 에두아르트 데 슈퇴클 이 대표로 나왔다. 이들은 미국 대륙의 북서 첨단에 있는 알라스카를 매입하는 회의를 하고 있었다. 러시아가 제시한 720만 불을 미국 측이 수락함으로 153만 700㎢(남한 땅 넓이의 15배) 땅을 소유하게 되었다.

땅값으로 계산하면 1에이커당 약 2센트였다. 그런데 알래스카는 오늘날 미국이 보유한 또 하나의 보고가 되었다. 천연 석유 생산은 텍사스에 이어 두 번째 많은 생산을 계속하고 있으며 석탄, 금, 아연, 은, 구리, 모래, 자갈 등도 중요한 광산물이다.

중요한 사실은 이 어마어마한 축복의 땅을 러시아는 아무 쓸데 없는 하찮은 것으로 보았으나 미국은 놀라운 자원의 보고로 보았다는데 있다. 무엇이 똑 같은 땅을 두고 이처럼 다르게 보고 다르게 판단하게 했을까? 그것은 현실을 보는 관점의 차이라고 말 할 수 있다. 러시아는 보이는 현상적인 것에 따라 가치를 부여 했다. 그러나 미국은 보이지 않는 이면적인 것에 있는 또 다른 가치를 보았다. 다시 말하면 숨겨진 가치를 볼 줄 아는 안목을 가졌다는 말이다. 이것이 우리 인생에서 깨달아야 하는 소중한 가르침이다.

2. 성서적인 가르침
이스라엘의 430년 애굽의 생활은 신앙생활을 하는 우리들에게는 대단히 소중한 가르침을 주고 있다. 하나님께서 모세를 애굽에 보내셔서 이스라엘을 해방시키실 때의 이스라엘은 애굽의 노예로서 최악의 상태에 있었다. 그들의 출애굽은 막연한 해방을 위한 해방이 아니었다. 가나안 땅, 곧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축복의 땅으로 인도하시기 위한 해방이었다. 하나님의 선민으로서의 새 역사를 이루시려는 하나님의 뜻 안에서 이루어 내신 하나님의 작품이었다.

출애굽 후에 그들은 홍해를 건너는 시점에서 한차례 위기가 있기는 하였으나 순조롭게 가나안 땅의 문턱까지 이르렀다. 가데스 바네아에 이르러서 장막을 치고 모세는 12지파들 가운데서 12명의 대표들을 선택하고 가나안 땅으로 보냈다. 60만 민족이 들어가서 살아야 할 땅을 미리 답사를 하도록 한 것이었다. 그들은 40일 동안 가나안 땅을 두루 탐지하고 돌아와서 백성들 앞에 보고 대회를 가졌다. 백성들은 설레이는 기대감을 가지고 귀를 기울였다.
먼저 10명의 보고자들이 나서서 보고했다. \"당신이 우리를 보낸 땅에 간즉 과연 젖과 꿀이 그 땅에 흐르고 이것은 그 땅의 실과니이다. 그러나 그 땅 거민은 강하고 성읍은 견고하고 심히 클 뿐 아니라 거기서 아낙 자손을 보았으며, .......우리는 능히 올라가서 그 백성을 치지 못하리라 그들은 우리 보다 강하니라.\"하고 이스라엘 자손 앞에서 그 탐지한 땅을 악평하여 가로되 \"우리가 두루 다니며 탐지한 땅은 그 거민을 삼키는 땅이요 거기서 본 모든 백성은 신장이 장대한 자들이며 거기서 또 네피림 후손 아낙 자손 대장부들을 보았으니 우리는 스스로 보기에도 메뚜기 같으니 그들의 보기에도 그와 같았을 것이니라.\"(민수기 13;25-33)

이 보고는 큰 기대를 가지고 듣던 백성들의 마음을 크나큰 좌절감에 빠뜨리고 말았다. 백성들은 소리 높여 부르짖으며 밤새도록 통곡 하였다. 그리고 그들을 인도하여 낸 모세와 아론을 원망했다.

\"우리가 애굽 땅에서 죽었거나 이 광야에서 죽었더면 좋았을 것을! 어찌하여 여호와가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칼에 망하게 하려 하는고. 우리 처자가 사로잡히리니 애굽으로 돌아가는 것이 낫지 아니하랴\" 이에 서로 말하되 \"우리가 한 장관을 세워 애굽으로 돌아가자.\"(민수기 14;2-4)

희망이 무너지는 순간 그들의 모든 것은 사실상 끝장이 나고 있는 순간 이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거짓일지라도 사람들에게는 희망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Richard Kim으로 불리우는 작가 김은국 씨는 \"순교자\"라는 그의 작품에서 이 사실을 말한다. 6.25 참변을 당하여 처참한 고통을 겪고 있는 사람들에게 천국이 없음을 알면서도 천국이 있다. 하나님이 계시다고 말하는 사람이 참 순교자라고 말한다.

그러나 거짓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믿음 안에서 참말을 할 때 사람들에게 용기를 줄 뿐만 아니라 생명을 줄 수가 있다. 이것이 성서의 가르침이다. 오늘의 성서 본문에서는 그 땅을 탐지한자 중 눈의 아들 여호수아와 여분네의 아들 갈렙이 이 역할을 감당하고 있다. 이들은 자신들의 진실을 증명하기 위하여 자신들의 옷을 찢으며 이스라엘 온 회중에게 말했다.

\"우리가 두루 다니며 탐지한 땅은 심히 아름다운 땅이라. 여호와께서 우리를 기뻐하시면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시고 그 땅을 우리에게 주시리라. 이는 과연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니라. 오직 여호와를 거역하지 말라. 또 그 백성을 두려워 하지 말라. 그들은 우리의 밥이라. 그들의 보호자는 그들에게서 떠났고 여호와는 우리와 함께 하시느니라 그들을 두려워 말라\" (민수기 14;7-9)

성서는 우리들에게 명확한 사실을 전해 주고 있다.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 대하여 악평하고 하나님과 사람을 원망하며 애굽으로 돌아가자고 한 사람들은 한 사람도 그 땅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광야에서 태어난 새로운 세대와 믿음의 사람들 여호수아와 갈렙만이 들어갔다는 것이다. 오늘 우리들은 이 역사적인 사실을 통하여 소중한 신앙의 교훈을 얻을 수 있다. 그것은 약속의 땅에 들어가는 신앙이 어떠해야 하는가 하는 것이다.

첫째는, 부정적인 분위기에 굴복 하지 말라는 것이다.
하나님이 약속하신 땅 가나안을 탐지한 사람들 가운데 열명은 한결 같이 부정적이었다. 그리고 그들의 보고는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 잡기에 충분한 몇 가지 근거가 있었다. 가장 중요한 것은 그들이 절대 다수였다는 것이다. 12명 가운데 10명이나 동조하였으니 이 보다 더 확실한 설득력이 있을 수 없는 것이다. 생각해 보라.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다수가 진리이다. 다수를 꺾을 어떠한 힘도 존재하지 않는다. 하기야 그 시대가 민주주의는 아니었다 할지라도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다수를 신뢰하기 마련이다.

10명의 보고자들이 지금도 우리 주변에 둘러서 있다. 그들은\" 하나님은 없다. 하나님의 약속은 거짓이다. 진리의 말씀대로 사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다.\"고 우리를 향하여 설득시키려고 노력한다. 하나님이란 거추장스러운 존재일 뿐이니 과감하게 하나님을 버리고 내 스스로 하나님이 되라고 말한다. 그러나 우리는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다. 나는 결코 하나님처럼 살수 없는 한없이 나약하고 부족한 사람일 뿐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쉽게 부정적인 분위기에 굴복하기가 쉽다. 내가 부족하다는 사실은 우리를 열등감을 갖게 하기 쉽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430년 동안 애굽 땅에서 살다가 가나안 땅을 정탐하였다. 군사적인 훈련은 고사하고 적과 싸울 수 있는 어떠한 준비도 되어 있지 않았다. 그런 상황에서 가나안 땅을 보았을 때 그 백성들에 비하여 이스라엘은 비교가 되지 않을 만큼 형편 없었다. 이런 형편에서 열등감 속에 빠지는 것은 자연스러운 것이다. 열등감은 우리 스스로 자신감을 상실하게 만들 뿐 아니라, 이 상황에 이르게 한 사람에게 책임을 전가 시키며 불평하며 원망하게 만든다. 그리고 돌아갈 수 없는 과거를 동경하며 현실 도피의 한 방편으로 과거가 좋았다. 할 수만 있으면 지도자를 앞세워 \"애굽\"-비록 고난은 있었어도 아무 책임 없이도 적당한 수고만 하면 그런데로 편히 살수 있었던 때로 돌아 가고자 한다.

그러나 이 시간 한가지 분명한 결단을 하고 우리의 현실을 바로 보아야 한다. 과거는 결코 돌아 갈수 없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심리학에서는 \"퇴행\"이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어린 아이들이 동생을 보게 되었을 때 지금까지 자기가 받아 왔던 사랑이 동생에게로 옮겨간 사실을 보며, 다시 갓난 어린 시절로 돌아간 것처럼 행동하는 것을 말한다. 오줌을 스스로 가리던 아이들이 어느날 동생처럼 오줌을 싸는가 하면 젖을 뗀 아이들이 동생의 젖병을 뺏어 먹기도 한다. 이런 경우 \"퇴행\"의 심리적 현상을 이해하는 엄마들은 큰 아이에 대한 배려를 하기도 하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에는 매를 맞는다. 그런데 어른이 되어서도 심리적으로 영적으로 \"퇴행\"의 현상을 보이는 경우가 있다. 이스라엘의 경우에는 민족적인 \"퇴행\"을 보인 것이다. 이해는 할 수 있으나 한심한 모습이다. 지금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절실히 필요한 것이 있다면 빨리 광야를 벗어나는 것 뿐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이 부정적인 상황을 벗어나서 가나안으로 들어 갈 수 있는가?

그것이 둘째 교훈이다. 믿음의 세계로 들어 가야 한다는 것이다.
믿음의 사람 모세와 아론에게서 배워야 할 삶의 태도이다. 민수기 14장 5절 말씀을 한목소리로 읽어 보자.
\"모세와 아론이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 앞에서 엎드린지라.\"
백성의 지도자들의 절대 다수의 부정적인 보고에 의해 세뇌 당한 사람들이 통곡하며 원망하는 소리가 온통 주변을 뒤죽박죽으로 만들고 있었을 때에 그들과 논쟁을 벌이거나 그들을 설득 하려고 하지 아니하고 하나님 앞에 엎드렸다. 엎드렸다는 말은 기도했다는 뜻이다. 이것이 믿음의 사람이 사는 방법이다. 그 상황을 이겨내는 지혜로운 신앙의 행동이다. 다시 말하면 불신앙의 상황에서 신앙의 자리로 들어간다는 말이다. 인간들의 복잡한 세계를 벗어나서 하나님의 보좌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이것은 현실 도피가 아니다. 패배의 선언은 더욱 아니다. 오히려 현실에 대한 바른 분별력을 위한 방법이다. 현실에 대한 하나님의 관점을 알기 위한 수단이다. 마태복음 17장을 보면 예수님은 베드로와 요한과 야고보와 함께 높은 산으로 가셔서 기도하시면서 영적은 신비한 체험을 하신 사실을 볼 수 있다. 이때는 십자가의 길을 이해 하지 못하는 베드로를 호되게 책망하신 직후였다. 예수님은 베드로를 붙들고 설득하려고 하지 아니하시고 영적인 깊은 세계로 함께 가신 것이다. 기도하러 함께 산으로 가신 것이다. 더 놀라운 것은 기도하러 산으로 가신 후 산 아래 남아 있던 제자들의 낭패스러운 형편이다. 기도하지 않는 제자들에게는 아무런 능력이 나타나지 않았다. 제자들은 방법론은 모두 꿰뚫고 있었다는 사실이 우리를 더욱 놀라게 한다. 그들은 간질병 걸린 아이를 앞에 놓고 평소 예수님이 하시던 모든 방법을 다 동원해 보았으나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도리어 그 방법론들은 그들을 더욱 난처하게 만들었다. 후에 예수님은 정확한 영적인 가르침을 남겨 주셨다.
\"너희 믿음이 적은 연고니라\"(마태복음 17;20)
\"기도 외에 다른 것으로는 이런 유가 나갈 수 없느니라.\"(마가복음 9;23)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
여러분들의 상황이 어렵고 복잡해져 갈 때 그 상황을 인간적으로 풀어보려고 지나치게 스트레스를 받지 않도록 하라. 그때에는 기도의 골방으로 들어가라.
사람들의 소리를 듣지 말고 하나님의 얼굴을 대면하도록 하라. 잠언 8장 17절 말씀을 기억하라.
\"나를 사랑하는 자가 나의 사랑을 입으며 나를 간절히 찾는 자가 나를 만날 것이니라.\"

히브리서 4장 16절의 말씀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
해답은 하나님께 있다. 이 사실을 있지 말라.

세번째 교훈이 중요하다. 하나님께 엎드릴 뿐만 아니라 생명의 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이 소리를 들어야 우리의 영혼이 살고 어떠한 형편에서든지 이겨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