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니엘 의 축복을 받자

브니엘의 축복을 받자
요삼1:2-





요즈음 우리는 이산가족들이 다시 만나 끊겼던 혈육의 관계를 다시 회복하는 장면을 수없이 보았습니다. 그 흐르는 눈물을 통하여 단절과 회한의 세월을 씻어 내리고 혈육의 관계를 다시 잇고 회복하는 모습은 보는 이들의 가슴을 뭉클하게 하였습니다.성경에도 이산가족이 과거의 아픔과 불신의 벽을 허물고 다시 관계를 회복하는 말씀이 있습니다. 바로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야곱과 에서의 이야기입니다.

야곱과 에서는 쌍둥이였습니다. 이들은 형제였지만 항상 경쟁하는 사이였습니다. 심지어 어머니 뱃속에서조차 서로 싸웠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태어날 때에도 서로 먼저 태어나려고 경쟁하다가 붉은 에서가 먼저 나오고, 야곱은 그 발을 붙잡고 나오기까지 하였습니다. 에서가 형이 되었고, 야곱이 동생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결국 이 경쟁에서 승리한 사람은 야곱이었습니다. 이 두 형제의 차이는 단순이 외모가 붉거나 희거나, 또는 털이 많은 남성다움이나 꾀가 많다는 차이가 아니었습니다. 보이지 않지만 영원한 것에 대한 참 가치를 아니냐 모르느냐의 차이였습니다. 에서는 참 인물로서는 출중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눈에 보이는 것에 만족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야곱은 보이지 않으나 영원한 것에 대한 믿음과 가치를 알고 있었습니다. 이점이 야곱의 위대한 점입니다. 그리고 이 점 때문에 야곱이 결국은 믿음의 계보를 잇는 사람이 된 것입니다.

그러나 야곱이 하나님의 계보를 잇는 장자의 명분을 얻었으나 그 행동은 세상적인 것을 버리지 못하였습니다. 버리지 못한 것뿐 아니라 오히려 다른 사람보다 더 세상적으로만 살았습니다. 하나님의 뜻이면 가만히 있어도 받을 수 있는 축복을 아버지와 형을 속이면서 빼앗았기에 그 후유증은 너무도 컸습니다. 평생을 이산가족으로 살아야 하는 아픔을 감당하게 된 것입니다.

야곱은 세상에 나가서도 그러한 생활태도로 살았습니다. 그래서 많은 재산과 가속을 거느리게 되었지만 자신의 믿음의 계보를 잇는 사명을 잊은 채 20년을 살아온 세월이었습니다. 어째든 많은 재산을 가지고 성공한 모습으로 고향으로 향하였지만 거대한 문제가 그 앞을 가로막고 있었습니다. 20년전 자신의 축복을 빼앗아 달아난 동생을 하루도 못잊고 이를 갈며 때를 기다리던 형 에서의 칼이 기다리고 있는 것입니다.

야곱이 돌아온다는 소식을 듣고 에서가 400명의 군사를 대동하고 길을 가로막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 어찌 두려운 일이 아니겠습니까? 두려움에 휩싸인 야곱은 역시 그가 살아왔던 방식대로 자신의 인간적인 방법을 동원하기로 하였습니다. 첫째는 엄청난 선물을 보내어 형의 마음을 누그러뜨리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자신의 재산을 여러 떼로 나누어 보내어서 맨 앞의 무리가 당하는 동안에 뒤의 무리들이 피신하는 전술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불안한 마음은 감당할 길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야곱은 혼자 남아 최후의 방법을 찾게 됩니다. 그것은 그동안 잊고 살았던 하나님께 무릎을 꿇는 방법이었습니다. 야곱은 사생결단으로 무릎을 꿇고 하나님께 엎드립니다. 그것은 마치 죽음을 각오하는 듯한 기도였습니다. 어느 듯 그는 누군가와 씨름을 하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이 보내신 천사였습니다. 야곱은 이 때를 놓치지 않았습니다. 야곱은 매달립니다.

주님, 저를 축복하지 아니하고는 이 잡은 손을 놓지 않겠습니다.

주님, 저의 문제를 해결해 주시지 않고는 결코 보내드릴 수 없습니다.

주님, 저에게 응답해 주시지 않고는 결코 가실 수 없습니다.

주님, 저를 축복해 주시지 않고는 가실 수 없습니다.

이것은 야곱의 하나님께 매달려 부르짖은 기도의 내용입니다. 절박한 기도였습니다. 드디어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네 이름이 무엇이냐?\'
\'내 이름은 야곱입니다.\'

\'그래 네 이름처럼 너는 지금껏 남의 발걸어 넘어뜨리며 살아왔구나. 그러나 이제부터는 그렇게 살지 말거라. 오히려 오늘처럼 하나님을 붙잡고 매달리는 삶을 살거라. 그러면 네가 승리하리라. 이제부터는 너는 발굼치 야곱이라는 이름을 버리거라. 내가 네게 새 이름을 주노니 네 이름을 이스라엘이라고 하여라. 이는 네가 나와 겨루어 이기었음이니라.\'

참으로 성도가 받아야 할 축복--이스라엘의 축복인줄 믿습니다. 너 하나님의 백성아! 사람들과 경쟁하지 말고, 하나님과 겨루어라. 하나님께 무릎을 꿇고, 하나님께 네 사정을 아뢰어라. 하나님께 부르짖어 이스라엘의 축복을 받으라. 이것이 하나님의 말씀인 줄 믿습니다. 성도는 이스라엘입니다. 하나님과 겨루어 이지는 자입니다.

바로 야곱에게 이 축복을 주신 것입니다. 지금까지 속이는 자, 교활한 자라는 뜻이 들어있는 야곱이라는 이름을 버리게 하시고, 이스라엘이라는 새 이름을 주셨습니다. 이것은 야곱이 하나님의 믿음의 계보를 잇는 자라는 뜻이요, 하나님 구속역사의 큰 모퉁이를 담당하는 자로서 살라는 뜻인 것입니다.

그리고 그 응답의 표시로서 야곱의 환도뼈를 치시니 야곱이 다리를 절게 되었다고 하였습니다. 환도뼈는 사람의 골반 아래쪽 넓적다리 뻐를 말합니다. 이 뼈는 몸을 바쳐주는 뼈로서 사람의 힘이 나오는 곳으로 여겨졌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뼈를 치신 것은 육체적 수단을 의지하며 살았던 야곱을 꺽으시고, 하나님만 의지하며 살라는 뜻일 것입니다. 세상적으로 살려고 할 때마다 하나님의 약속이 생각나게 하려고 육체에 응답의 흔적을 주신 것입니다.

이렇게 야곱이 이스라엘의 축복을 받고 일어서니 동편에 밝은 해가 솟아오르고 있었습니다. 이 때에 야곱은 이 사건에 스스로 이름을 붙였습니다. 자신도 새 이름을 받았듯이 이 뜻있는 사건을 자신의 생애의 전환점으로 여기면서 이름을 붙였습니다. \'브니엘\' -- 하나님의 얼굴이라는 뜻입니다. 야곱은 이 사건을 하나님의 얼굴을 본 사건이라고 명명한 것입니다.

믿음의 생활은 참으로 날마다 순간마다 하나님의 얼굴을 보는 생활이라 할 것입니다. 예배에서 하나님의 얼굴을 봅니다. 찬송 속에서 하나님의 얼굴을 봅니다. 기도 속에서 하나님의 얼굴을 봅니다. 말씀 속에서 하나님의 얼굴을 보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얼굴을 본 \'브니엘\'의 사건 이후 야곱에게는 엄청난 변화가 나타났습니다. 그 무섭고 두려웠던 형의 얼굴이 하나님의 얼굴처럼 보이는 것입니다. 그 감당할 수 없는 문제 앞에서도 하나님의 얼굴을 보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얼굴이 무엇입니까? 소망의 얼굴, 사랑의 얼굴, 용서의 얼굴, 축복의 얼굴이 아니겠습니까? 이것은 놀라운 기도의 역사였습니다. 하나님과 겨루어 이기는 \'이스라엘\'의 축복을 받았더니 세상이 다 하나님의 은총의 얼굴처럼 보이는 것이었습니다. 고통 속에서도, 문제 속에서도, 하나님의 은총이 그곳에 계신 것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400명의 군사를 데리고 나타난 형 에서 앞에서 야곱은 이렇게 고백하게 된 것입니다.

\'형님, 형님의 얼굴을 뵈니 마치 하나님의 얼굴을 뵙는 것 같습니다.\'
이 고백은 20년의 한을 품고 이를 갈며 달려온 에서의 마음을 한 순간에 녹여 버렸습니다. 이 고백이 그렇게 했다기 보다는 하나님의 기도의 응답이라고 할 것입니다. 형제는 서로 목을 어긋맞기며 껴안고 눈물을 흘리며 기쁨의 상봉을 하게 됩니다. 마치 요즈음 이산가족의 만남과 똑같은 모습이었을 것입니다. 자칫하면 큰 비극으로 끝났을 이 형제의 만남이 이렇게 행복한 만남이 된 것은 이스라엘의 축복에서 시작해서 브니엘의 은혜를 받은 때문이 아니겠습니까! 두려웠던 형님의 얼굴이 하나님의 얼굴을 보는 듯이 거룩하여 보이고, 원수같이 여기던 동생을 보는 순간 사랑이 넘치게 되는 것은 하나님의 축복이 아니고는 일어날 수 없는 사건이었습니다.

이것은 결코 우연한 일이 아닌 것을 깨닫습니다. 하나님과의 믿음의 관게를 회복하고 나니 사람과의 신뢰의 관계도 회복되었다고 하는 사실입니다. 밤새도록 두려움에 떨며 하나님과 씨름하던 야곱이 하나님의 얼굴을 뵌 후, 그 무섭고 두려웠던 형의 얼굴에서 하나님의 얼굴을 보게 되었다는 사실은 하나님의 놀라운 축복이었습니다.

이 사건에서 우리가 깨닫는 것 또 한가지 있습니다. 영혼이 잘 될 때 범사가 잘 된다는 사실입니다.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 됨같이 네가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
요한삼서1:2

야곱은 하나님과의 관계가 잘 회복되었을 때에 다른 모든 관계들이 잘 회복되었습니다. 우리의 영혼이 잘 될 때, 범사가 잘되고, 강건해 지는 것을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영혼이 잘 되는 은혜가 있을 때, 육체와 세상의 일들도 잘 되는 은혜가 있음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모두가 이스라엘의 축복을 받기를 축원합니다. 여러분 모두 브니엘의 축복을 받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얼굴을 뵙는 사람은 모든 사람들과 문제 속에서도 하나님의 얼굴을 뵙게 될 줄 믿습니다. 브니엘의 축복으로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가 잘되고 강건해지는 은혜가 넘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브니엘의 축복을 받자
창세기 33:1-11, 요한삼서 1:2

요즈음 우리는 이산가족들이 다시 만나 끊겼던 혈육의 관계를 다시 회복하는 장면을 수없이 보았습니다. 그 흐르는 눈물을 통하여 단절과 회한의 세월을 씻어 내리고 혈육의 관계를 다시 잇고 회복하는 모습은 보는 이들의 가슴을 뭉클하게 하였습니다.성경에도 이산가족이 과거의 아픔과 불신의 벽을 허물고 다시 관계를 회복하는 말씀이 있습니다. 바로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야곱과 에서의 이야기입니다.

야곱과 에서는 쌍둥이였습니다. 이들은 형제였지만 항상 경쟁하는 사이였습니다. 심지어 어머니 뱃속에서조차 서로 싸웠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태어날 때에도 서로 먼저 태어나려고 경쟁하다가 붉은 에서가 먼저 나오고, 야곱은 그 발을 붙잡고 나오기까지 하였습니다. 에서가 형이 되었고, 야곱이 동생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결국 이 경쟁에서 승리한 사람은 야곱이었습니다. 이 두 형제의 차이는 단순이 외모가 붉거나 희거나, 또는 털이 많은 남성다움이나 꾀가 많다는 차이가 아니었습니다. 보이지 않지만 영원한 것에 대한 참 가치를 아니냐 모르느냐의 차이였습니다. 에서는 참 인물로서는 출중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눈에 보이는 것에 만족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야곱은 보이지 않으나 영원한 것에 대한 믿음과 가치를 알고 있었습니다. 이점이 야곱의 위대한 점입니다. 그리고 이 점 때문에 야곱이 결국은 믿음의 계보를 잇는 사람이 된 것입니다.

그러나 야곱이 하나님의 계보를 잇는 장자의 명분을 얻었으나 그 행동은 세상적인 것을 버리지 못하였습니다. 버리지 못한 것뿐 아니라 오히려 다른 사람보다 더 세상적으로만 살았습니다. 하나님의 뜻이면 가만히 있어도 받을 수 있는 축복을 아버지와 형을 속이면서 빼앗았기에 그 후유증은 너무도 컸습니다. 평생을 이산가족으로 살아야 하는 아픔을 감당하게 된 것입니다.

야곱은 세상에 나가서도 그러한 생활태도로 살았습니다. 그래서 많은 재산과 가속을 거느리게 되었지만 자신의 믿음의 계보를 잇는 사명을 잊은 채 20년을 살아온 세월이었습니다. 어째든 많은 재산을 가지고 성공한 모습으로 고향으로 향하였지만 거대한 문제가 그 앞을 가로막고 있었습니다. 20년전 자신의 축복을 빼앗아 달아난 동생을 하루도 못잊고 이를 갈며 때를 기다리던 형 에서의 칼이 기다리고 있는 것입니다.

야곱이 돌아온다는 소식을 듣고 에서가 400명의 군사를 대동하고 길을 가로막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 어찌 두려운 일이 아니겠습니까? 두려움에 휩싸인 야곱은 역시 그가 살아왔던 방식대로 자신의 인간적인 방법을 동원하기로 하였습니다. 첫째는 엄청난 선물을 보내어 형의 마음을 누그러뜨리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자신의 재산을 여러 떼로 나누어 보내어서 맨 앞의 무리가 당하는 동안에 뒤의 무리들이 피신하는 전술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불안한 마음은 감당할 길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야곱은 혼자 남아 최후의 방법을 찾게 됩니다. 그것은 그동안 잊고 살았던 하나님께 무릎을 꿇는 방법이었습니다. 야곱은 사생결단으로 무릎을 꿇고 하나님께 엎드립니다. 그것은 마치 죽음을 각오하는 듯한 기도였습니다. 어느 듯 그는 누군가와 씨름을 하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이 보내신 천사였습니다. 야곱은 이 때를 놓치지 않았습니다. 야곱은 매달립니다.

주님, 저를 축복하지 아니하고는 이 잡은 손을 놓지 않겠습니다.

주님, 저의 문제를 해결해 주시지 않고는 결코 보내드릴 수 없습니다.

주님, 저에게 응답해 주시지 않고는 결코 가실 수 없습니다.

주님, 저를 축복해 주시지 않고는 가실 수 없습니다.

이것은 야곱의 하나님께 매달려 부르짖은 기도의 내용입니다. 절박한 기도였습니다. 드디어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네 이름이 무엇이냐?\'
\'내 이름은 야곱입니다.\'

\'그래 네 이름처럼 너는 지금껏 남의 발걸어 넘어뜨리며 살아왔구나. 그러나 이제부터는 그렇게 살지 말거라. 오히려 오늘처럼 하나님을 붙잡고 매달리는 삶을 살거라. 그러면 네가 승리하리라. 이제부터는 너는 발굼치 야곱이라는 이름을 버리거라. 내가 네게 새 이름을 주노니 네 이름을 이스라엘이라고 하여라. 이는 네가 나와 겨루어 이기었음이니라.\'

참으로 성도가 받아야 할 축복--이스라엘의 축복인줄 믿습니다. 너 하나님의 백성아! 사람들과 경쟁하지 말고, 하나님과 겨루어라. 하나님께 무릎을 꿇고, 하나님께 네 사정을 아뢰어라. 하나님께 부르짖어 이스라엘의 축복을 받으라. 이것이 하나님의 말씀인 줄 믿습니다. 성도는 이스라엘입니다. 하나님과 겨루어 이지는 자입니다.

바로 야곱에게 이 축복을 주신 것입니다. 지금까지 속이는 자, 교활한 자라는 뜻이 들어있는 야곱이라는 이름을 버리게 하시고, 이스라엘이라는 새 이름을 주셨습니다. 이것은 야곱이 하나님의 믿음의 계보를 잇는 자라는 뜻이요, 하나님 구속역사의 큰 모퉁이를 담당하는 자로서 살라는 뜻인 것입니다.

그리고 그 응답의 표시로서 야곱의 환도뼈를 치시니 야곱이 다리를 절게 되었다고 하였습니다. 환도뼈는 사람의 골반 아래쪽 넓적다리 뻐를 말합니다. 이 뼈는 몸을 바쳐주는 뼈로서 사람의 힘이 나오는 곳으로 여겨졌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뼈를 치신 것은 육체적 수단을 의지하며 살았던 야곱을 꺽으시고, 하나님만 의지하며 살라는 뜻일 것입니다. 세상적으로 살려고 할 때마다 하나님의 약속이 생각나게 하려고 육체에 응답의 흔적을 주신 것입니다.

이렇게 야곱이 이스라엘의 축복을 받고 일어서니 동편에 밝은 해가 솟아오르고 있었습니다. 이 때에 야곱은 이 사건에 스스로 이름을 붙였습니다. 자신도 새 이름을 받았듯이 이 뜻있는 사건을 자신의 생애의 전환점으로 여기면서 이름을 붙였습니다. \'브니엘\' -- 하나님의 얼굴이라는 뜻입니다. 야곱은 이 사건을 하나님의 얼굴을 본 사건이라고 명명한 것입니다.

믿음의 생활은 참으로 날마다 순간마다 하나님의 얼굴을 보는 생활이라 할 것입니다. 예배에서 하나님의 얼굴을 봅니다. 찬송 속에서 하나님의 얼굴을 봅니다. 기도 속에서 하나님의 얼굴을 봅니다. 말씀 속에서 하나님의 얼굴을 보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얼굴을 본 \'브니엘\'의 사건 이후 야곱에게는 엄청난 변화가 나타났습니다. 그 무섭고 두려웠던 형의 얼굴이 하나님의 얼굴처럼 보이는 것입니다. 그 감당할 수 없는 문제 앞에서도 하나님의 얼굴을 보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얼굴이 무엇입니까? 소망의 얼굴, 사랑의 얼굴, 용서의 얼굴, 축복의 얼굴이 아니겠습니까? 이것은 놀라운 기도의 역사였습니다. 하나님과 겨루어 이기는 \'이스라엘\'의 축복을 받았더니 세상이 다 하나님의 은총의 얼굴처럼 보이는 것이었습니다. 고통 속에서도, 문제 속에서도, 하나님의 은총이 그곳에 계신 것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400명의 군사를 데리고 나타난 형 에서 앞에서 야곱은 이렇게 고백하게 된 것입니다.

\'형님, 형님의 얼굴을 뵈니 마치 하나님의 얼굴을 뵙는 것 같습니다.\'
이 고백은 20년의 한을 품고 이를 갈며 달려온 에서의 마음을 한 순간에 녹여 버렸습니다. 이 고백이 그렇게 했다기 보다는 하나님의 기도의 응답이라고 할 것입니다. 형제는 서로 목을 어긋맞기며 껴안고 눈물을 흘리며 기쁨의 상봉을 하게 됩니다. 마치 요즈음 이산가족의 만남과 똑같은 모습이었을 것입니다. 자칫하면 큰 비극으로 끝났을 이 형제의 만남이 이렇게 행복한 만남이 된 것은 이스라엘의 축복에서 시작해서 브니엘의 은혜를 받은 때문이 아니겠습니까! 두려웠던 형님의 얼굴이 하나님의 얼굴을 보는 듯이 거룩하여 보이고, 원수같이 여기던 동생을 보는 순간 사랑이 넘치게 되는 것은 하나님의 축복이 아니고는 일어날 수 없는 사건이었습니다.

이것은 결코 우연한 일이 아닌 것을 깨닫습니다. 하나님과의 믿음의 관게를 회복하고 나니 사람과의 신뢰의 관계도 회복되었다고 하는 사실입니다. 밤새도록 두려움에 떨며 하나님과 씨름하던 야곱이 하나님의 얼굴을 뵌 후, 그 무섭고 두려웠던 형의 얼굴에서 하나님의 얼굴을 보게 되었다는 사실은 하나님의 놀라운 축복이었습니다.

이 사건에서 우리가 깨닫는 것 또 한가지 있습니다. 영혼이 잘 될 때 범사가 잘 된다는 사실입니다.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 됨같이 네가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
요한삼서1:2

야곱은 하나님과의 관계가 잘 회복되었을 때에 다른 모든 관계들이 잘 회복되었습니다. 우리의 영혼이 잘 될 때, 범사가 잘되고, 강건해 지는 것을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영혼이 잘 되는 은혜가 있을 때, 육체와 세상의 일들도 잘 되는 은혜가 있음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모두가 이스라엘의 축복을 받기를 축원합니다. 여러분 모두 브니엘의 축복을 받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얼굴을 뵙는 사람은 모든 사람들과 문제 속에서도 하나님의 얼굴을 뵙게 될 줄 믿습니다. 브니엘의 축복으로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가 잘되고 강건해지는 은혜가 넘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