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인 이 누릴축복

그리스도인이 누릴 축복
요삼1-4





어제 결혼식 주례를 하였습니다. 권면의 말씀을 무슨 말로 시작할까 하다가 이런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학교 가는 학생에게는 “공부 열심히 하고 오너라” 하는 인사가 적당할 것 같고,직장에 출근하는 아빠에게는 “잘 다녀오세요” 하면 될 것 같고,먼 길을 떠나거나 군대에 입대하는 자녀들에게는 “몸조심 하라” 하고 인사하면 될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결혼식에서 신랑 신부를 향해 무슨 말을 하면 어울리겠습니까? 주례자가 세상적으로 유명 인사라 할지라도 웬지 초라해 보이고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을 해보지 않았습니까? 그래서 저는 만복의 근원 되시는 하나님의 이름으로 축복하기로 했습니다. 잘 어울리는 것 같습니다. 한 인간이 아니라 하나님의 이름으로 새 가정을 축복할 수 있다니 굉장한 것 아닙니까?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실 축복을 한 구절로 잘 표현한 말씀을 소개합니다.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됨 같이 네가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2절).” 여기에는 세가지 축복이 기록되었습니다. 영혼이 잘되는 축복과 범사가 잘되는 것,그리고 강건한 축복입니다. 하나님이 당신의 자녀에게 주시는 이 귀한 축복이 우리에게 임하기를 주님의 축원합니다.





1.영혼이 잘되는 복(첫째 복)

1)영혼이 무엇입니까?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됨 같이.” 사도 요한은 복 중에 복으로 영혼이 잘되는 복을 간구합니다. 하나님이 인간을 만들 때 육체와 함께 영혼을 만드셨습니다. 육체의 재료는 흙이고,영혼의 재료는 생기입니다. 육체에 생명이 있으면 심장이 뜁니다. 이와같이 영혼이 생명이 있으면 하나님을 찬양하고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육체가 배고프면 영혼도 배고픕니다. 육체가 목마르면 영혼도 목마릅니다. 육체가 피곤하면 영혼도 피곤합니다. 육체가 좋아하는 것이 있으면 영혼도 좋아하는 것이 있습니다. 죽음이 무엇입니까? 심장이 왜 멈춥니까?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서 영혼을 거두시면 멈춥니다. 왜 도 호흡을 하지 않고 눈을 감습니까? 하나님이 그 영혼을 부르시면 호흡을 멈춥니다. 우리에게는 육체의 생명만 아니라 영혼이 있습니다. 육체가 중요하듯이 영혼이 중요합니다.



2)영혼이 잘되는 것이 무엇입니까? 오늘 본문의 주인공은 가이오라는 분입니다. 가이오는 영혼이 잘되는 분입니다. 영적인 축복을 누리는 분입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가이오는 당시 순회 전도자를 잘 대접한 분입니다. 순회전도자가 누구입니까? 당시에는 한 곳에 상주하는 목회자가 많지 않아서 순회하는 전도자들이 많았습니다. 교회는 그들을 대접하고 다음 순회자까지 갈 수 있도록 후원합니다. 이것은 고아와 과부를 도우라는 하나님의 사랑의 계명에 합당한 생활입니다. 내가 보낸 이를 영접하는 것은 나를 영접하는 것이라고 하신 주님의 말씀을 실천하는 아름다운 생활입니다. 가이오는 선한 일을 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교회를 사랑하고,나그네를 대접하고 이런 것이 영혼이 잘되는 증거입니다.

그러나 모든 이들이 가이오와 같지 않았습니다. 디오드레베 같은 자는 반대였습니다. 가이오 같은 분을 멸시하고 교회에서 쫓아내기까지 했습니다. 악한 자들입니다.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들입니다. 교회를 파괴하는 자들입니다. 으뜸되기를 좋아하는 자들입니다. 우리의 영혼은 어떠합니까?



3)영혼이 잘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하나님을 모르는 분들은 하나님을 영접해야 합니다. 모든 사람은 하나님을 불순종하고 불신하는 죄인입니다. 영적으로 볼 때 죄와 허물로 죽은 자들입니다. 영혼이 살아야 합니다. 어떻게 죽은 영혼이 살 수 있습니까?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흘린 피 값으로 죄를 용서받아야 합니다. 그리하면 하나님이 우리에게 성령을 주십니다. 성령을 받으면 죽은 영혼이 살아 납니다. 영혼이 살면 하나님이 계신 것을 믿게 됩니다. 하나님께 예배드립니다. 하나님께 기도드립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습니다. 하나님을 위해 일합니다. 해바라기가 왜 해바라기입니까? 해를 바라보고 살기 때문입니다. 영혼이 살면 주바라기가 됩니다. 하나님을 바라보고 삽니다.

예수님이 없는 자는 영혼이 죽었습니다. 하나님 대신 우상을 섬깁니다. 얼마나 불쌍합니까? 하나님 대신 물질을 섬깁니다. 물질의 노예가 됩니다. 영혼이 죽으면 하나님 대신 쾌락을 사랑합니다. 자기만 사랑합니다. 그 영혼은 악마의 소굴입니다. 악마가 말하는대로 합니다. 악마의 종입니다. 교회를 반대합니다. 예수님을 미워합니다. 이런 자리에서 도망치기를 바랍니다. 어둠의 나라에서 빛의 나라로 속히 옮기시기 바랍니다.

이미 예수님을 영접한 분들을 영혼이 잘되도록 계속적인 노력을 해야 합니다. 목양실에 있는 난이 잘 죽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제가 잘 가꾸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아름다운 화초도 가꾸지 않으면 시듭니다. 마찬가지로 영혼도 잘 가꾸어야 합니다. 죄는 독초입니다. 죄를 짓지 말아야 합니다. 영혼이 싫어하는 것을 하지 말아야 합니다. 적극적으로는 기도와 묵상과 전도와 성도의 교제와 봉사에 힘을 써야 합니다. 그리하면 우리의 영혼이 천국생활을 할 것입니다.


2.범사가 잘되는 복(두번째 복)

사도 요한은 가이오를 위해 두 번째 복을 간구합니다. “네가 범사에 잘되고.” 범사가 무엇입니까? 모든 일입니다. 잘되는 것은 무엇입니까? 번영하고 성공한다 좋은 길이 열린다는 것입니다. 가이오는 먼저 영혼이 잘되는 복을 받았습니다. 이제는 범사가 잘되는 복이 임합니다. 당연한 것입니다. 하늘에서 비가 내리면 땅은 윤기가 있고 곡식은 잘 될 수밖에 없습니다. 영혼이 잘되어서 하늘의 신령한 축복이 임하면 땅은 기름질 수밖에 없습니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더하시리라”고 하셨습니다. 영혼이 잘되면 무엇을 먹고 무엇을 마시고 무엇을 입을 것인지 염려하지 않아도됩니다. 하나님이 다 공급하십니다. 믿습니까?

솔로몬은 기브온 산당에서 일천번제를 드렸습니다. 하나님이 지혜를 주십시오! 왕으로 책임을 다하도록 능력을 구한 것입니다. 먼저 영혼이 잘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솔로몬에게 선악을 분별하는 지혜를 주셨을 뿐 아니라,구하지 아니한 부귀와 명예와 영화와 장수와 권세까지도 주셨습니다. 범사가 잘되는 축복을 주셨습니다. 영혼이 잘되면 범사가 잘되는 복을 주십니다. 믿으시기 바랍니다. 욥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욥은 고난 가운데 “우스 땅에 욥이라 이름하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 사람은 순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더라. 그 소생은 남자가 일곱이고 여자가 셋이며 그 소유물은 양이 칠천이요 약대가 섬천이요 소가 오백 겨리요 암나귀가 오백이며 종도 많이 있었으니 이 사람은 동방 사람 중에 가장 큰 자라(욥1:1-3).” 욥은 먼저 하나님과 관계가 올바르게 되었습니다. 순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였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범사에 복을 주셨습니다. 자녀의 복을 주셨고,물질의 복을 주셨습니다. 욥이 고난을 받아 일시적으로는 자녀들을 잃었고 물질과 건강까지도 잃었지만,끝까지 욥이 믿음을 지킬 때 하나님은 갑절의 복을 더 하셨습니다. 영혼이 잘되면 범사에 복을 주시는 하나님입니다.



범사가 잘된다는 것은 세속적인 만사형통주의는 아닙니다. 무한정 물질주의자의 탐욕을 채우는 것이 아닙니다. 성경에 발람이라는 거짓 선지자가 있습니다. 그는 돈을 받고 이스라엘 백성을 저주하기 위해 갔습니다. 생각지도 않은 돈이 생기고 발락이라는 모압왕이 찾아와서 절을 한다고 범사가 잘되는 것은 아닙니다

. 그는 범사가 잘 된 것이 아니라 범사가 잘못되었습니다. 돈을 받고 하나님의 백성을 저주한다는 것은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짐승과 같고 지옥 밑바닥에 떨어지는 것과 같습니다. 바울은 죄수의 몸으로 로마에 가서 황제에게 재판을 받았습니다. 죄수가 된다는 것은 기분 좋은 일이 아닙니다. 고생도 많았습니다. 가는 길에 지중해에서 풍랑을 만나서 배가 파선해서 죽을 뻔 했습니다. 모든 것이 잘못되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아닙니다. 황제 앞에 서서 기독교와 복음을 변증하는 것은 범사가 잘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생각은 우리의 생각과 다릅니다. 훨씬 더 높고 깊습니다. 신뢰할만 합니다. 하나님은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을 이룹니다.



3.강건한 복(세번째 복)

사도 요한은 가이오를 위해 축복을 간구하는 가운데 건강을 위해 간구합니다.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 여기서 강건은 육체의 건강을 의미합니다. 아마도 가이오는 몸이 약했던가 봅니다. 그래서 요한은 가이오가 강건하기를 간구합니다. 돈을 잃으면 조금 잃고,명예를 잃으면 많이 잃고,건강을 잃으면 모든 것을 잃는다고 했습니다. 건강은 건강할 때에는 가치를 모르지만 건강을 잃으면 건강이 제일 중요한 것을 알게 됩니다. 우리의 육체가 무엇입니까? 육체는 하나의 그릇입니다. 영혼을 담고 있는 그릇이고,범사의 모든 생활을 담고 있는 그릇입니다. 아무리 좋은 것이 있어도 그릇이 없으면 담을 수 없습니다. 귀하고 보배로운 것은 보배로운 그릇에 담아야 합니다. 연혼의 축복도 육체의 그릇에 담고,범사의 축복도 육체의 그릇에 담습니다.

우리가 강건할 수 있는 근거가 무엇입니까?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서 피 흘려 죽으셨습니다. 이 피는 우리의 영혼의 죄를 씻기 위한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병든 육체도 고치기 위한 피흘림입니다.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나음을 입었습니다. 십자가에서 흘린 피는 몸을 다시 살리고 부활시키는 피입니다. 병든 몸을 능히 고칠 피입니다. 믿습니까? “예수께서 모든 성과 촌에 두루 다니사 저희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 모든 병과 약한 것을 고치시니라(마9:35).” 예수님이 얼마나 많은 사람을 고치셨습니까? 하물며 영혼이 잘되는 복을 맏은 믿음의 저녀들의 간절한 간구를 외면하지 않을 것입니다. “저가 네 모든 죄악을 사하시며 네 모든 병을 고치시며 네 생명을 파멸에서 구속하시고 인자와 긍휼로 관을 씌우시며 좋은 것으로 네 소원을 만족케 하사 네 청춘으로 독수리 같이 새롭게 하시는도다(시103:3-5).” 우리에게 시편 기자의 고백이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성경에 영혼이 잘되고 건강하게 산 분들이 많습니다. 모세는 120살에 죽었는데 그가 죽을 때까지 건강했습니다. “모세의 죽을 때 나이 일백 이십세나 그 눈이 흐리지 아니하였고 기력이 쇠하지 아니하였더라(신34:7).” 여호수아와 함께 정탐꾼으로 유명한 갈렙도 강건했습니다. “오늘날 내가 팔십 오세로되 모세가 나를 보내던 날과 같이 오늘날 오히려 강건하니 나의 힘이 그 때나 이제나 일반이라 싸움에나 출입에 감당할 수 있사온즉 그날에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이 산지를 내게 주소서 당신도 그날에 들으셨거니와 그곳에는 아낙 사람이 있고 그 성읍들은 크고 견고할찌라도 여호와께서 혹시 나와 함께 하시면 내가 필경 여호와의 말씀하신대로 그들을 쫓아내리이다(수14:10-12).” 갈렙은 85세에도 가장 험한 전쟁에 나갈 만큼 강건했습니다. 에바브로디도는 병들어 죽게 되었으나 하나님이 고쳐 주셨습니다. “저가 병들어 죽게 되었으나 하나님이 저를 긍휼히 여기셨고 저 뿐 아니라 또 나를 긍휼이 여기사 내 근심 위에 근심을 면하게 하셨느니라(빌2:27).”



그런데 문제가 있습니다. 영혼이 잘되는 복을 누리고,범사가 잘되는 복을 누립니다. 아쉬울 것이 없습니다. 그런데 몸이 병약합니다. 아무리 기도해도 도무지 응답이 없습니다. 이런 경우는 어떻게 이해해야 합니까? 때로 몸이 약하고 병을 지니고 있어도 복입니다. 강건한 복은 영혼이 잘되는것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아무리 건강해도 영혼이 잘되지 않는 건강은 진정한 축복이 아닙니다. 도살장으로 끌려 가는 짐승과 같습니다. 바울은 몸이 병약했으나 복을 받은 사람입니다. 하나님께 교만하지 아니하고 끝까지 겸손하게 일했기 때문입니다. 성 프란스시는 죽을 뻔한 질병을 통해 하나님께 헌신했습니다. 개혁자 요한 칼빈은 몸에 여러 가지 질병을 지니도 다녀서 “걸어 다니는 병원‘이라는 별명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뜻 안에 있는 연약함은 강건함 중에 강건함입니다. 믿으시기 바랍니다.





결론

사도 요한은 왜 가이오에게 이런 과분한 축복을 간구합니까? 그 해답은 가이오를 사랑하는 자라고 부르는데서 찾을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가이오 곧 나의 참으로 사랑하는 자에게(1절)”라고 합니다. 가이오를 생각할 때 축복하고 싶은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고,하나님이 기뻐할 만한 삶을 살면 하나님은 우리를 귀하게 보시고 복을 주실 것입니다.만복의 근원이 되시는 하나님입니다. 누가 복을 줄 수 있습니까? 허탄한데 속지 맙시다. 하나님이 주시는 축복의 깊이와 넓이를 생각해 보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