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좋은 일꾼! 축복된 앞날! 요삼1:1-12 주님께서 믿음을 가장 기뻐하시는데요. 주의 말씀에 믿음으로 반응하는 것을 기뻐하시고, 믿음으로 사는 것을 기뻐하시고, 믿음으로 나아가는 것을 기뻐하십니다. 그래서 우리가 믿음의 사람 되는 것이 가장 큰 목표가 되야 합니다. 여러분에게 믿음 있습니까? 믿음에는 증거가 있어야 하는데 증거가 무엇입니까? 증거를 대라면 얼마든지 많지요. 믿음 있기에 기도하고, 믿음 있기에 찬양하고, 믿음 있기에 이 시간도 예배하는 자리에 나아온 거, 할 일 없어 소일 삼아 나오신 분 없을 거예요. 주님 사랑하는 믿음 있어서, 교회를 사랑하고 말씀을 사모하는 믿음 있어서, 모든 것 다 물리치고 나오신 줄로 믿습니다. 주님께 바치는 시간을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여러분을 주님께서도 가장 소중하게 여기실 줄로 믿습니다. 주님 사랑하실 줄로 믿습니다. 더 깊은 은혜의 자리에 들어가시기를 축원합니다. 이 땅위에 살면서 중요한 것은 내가 어떻게 생각하느냐가 아니라 주님이 어느 것을 기뻐하시느냐? 하는 것입니다. 주님 기뻐하실 만한 것을 깨닫고 그 길로 가기만 하면 주님이 앞날을 열어 주시고, 축복하시기 때문입니다. 누가 우리의 길을 가로막는 것 아닙니다. 환경이나 사람이 아니에요. 내 속에 있는 육의 생각이, 나를 가로막고, 나의 가는 길을 어렵게 하는 거예요. 잠언 19:20 “너는 권고를 들으며 훈계를 받으라 그리하면 네가 필경은 지혜롭게 되리라” 주님의 권고를 듣고, 훈계를 받고자 하는 믿음의 생각이 중요합니다 . 이것이 축복의 지름길이에요. 우리 마음밭을 기경하면 주께서 의를 비처럼 내리시리라고 하셨습니다. 마음 잘못 쓰면 본인도 망하고, 주변 사람도 함께 고생합니다. 똑같이 비가와도 어떤 땅은 비를 잘 흡수하여 부드러운 땅이 되고, 좋은 열매맺는 땅이 되는가 하면 어떤 땅은 비가 올수록 더 단단해 지더라는 것입니다. 우리의 심령이 하나님의 은혜에 준비된 옥토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오늘 본문에는 가이오와 디오드레베 데메드리오 세 사람의 이름이 나옵니다. 이들을 통해서 오늘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주의 음성을 들으시기를 축원합니다. 주님 기뻐하시는 복된 앞날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가이오는 어떤 사람입니까? 하나님 앞에서 바로 살기를 힘쓴 사람이었습니다. 항상 진리 안에 거했다고 했습니다. 3절 “네가 진리 안에서 행한다 하니 내가 심히 기뻐하노라” 진리 안에 살면 주님을 기쁘시게 하거니와, 주님의 사랑 받습니다. 목회자에게도 열매가 되고, 목회의 보람을 느끼게 하는 것입니다. 중심이 중요합니다. 사람이 완전할 수는 없어요. 그러나 바로 살기를 원하는 그 마음이 귀한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현재라는 생각을 잊어버리지 말아야합니다. 과거의 일들, 생각해 보면 잘한 일도 있고, 못한 일도 있고, 실수한 일도 있고, 얽힌 일도 있을 거예요. 그런데 과거는 과거로 끝나지 아니하고 현재를 만들어 내더라는 것이지요. 지나간 일을 되돌릴 수는 없습니다. 문제는 오늘 이 순간이 머지않아 또 과거가 될 것입니다. 오늘 어떻게 사느냐에 따라서 미래가 또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쥬라기 공원으로 유명한 할리우드의 황제 스티븐 스필버그는 잠에서 깰 때 너무 설레는 마음으로 아침을 맞이하기 때문에 아침을 먹지 못할 정도라고 합니다. 촬영장에서 스탭들과 하루종일 스탠바이 큐를 외치다 보면 하루가 너무 짧다는 거예요. 영화에 대한 열정이 강한 그에게는 하루밤의 시간이 너무 길게 느껴지더라는 거예요. 기다리다가 날이 새면 또 나가 세계가 기립 박수를 보낼 영화를 만들 것을 생각하면 가슴이 벅차 아침을 먹지 못할 정도였다고 합니다 . 하루 하루 행복하게 살았을 뿐 아니라 이런 열정으로 일하며 사니까 좋은 열매가 맺혀지게 되었는데, 쥬라기 공원이란 한 편의 영화로 우리나라가 자동차 150만대를 수출해야 벌 수 있는 돈을 벌어들인 거예요. 어떤 경우에도 미래는 저절로 하늘에서 떨어지는 것이 아니더라는 것이지요. 지금 내가 걸어가고 있는 길에, 내가 살고있는 현실에 의미를 찾지 못하면 그 사람에게는 미래가 없어요. 밝은 미래는 저절로 오지 아니하고 오늘 나의 생각과 오늘 나의 사는 것과 연결되어 있음을 깊이 생각하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이 때! 이 시간이 중요합니다. 오늘을 바로 살므로 복된 미래, 점점 더 나아지는 앞날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또한 그는 성도를 잘 대접하는 자였습니다 . 5,6절 “사랑하는 자여 네가 무엇이든지 형제 곧 나그네 된 자들에게 행하는 것이 신실한 일이니 저희가 교회 앞에서 너의 사랑을 증거하였느니라” 나 한사람 잘 사는 것보다 나 때문에 다른 사람이 행복해 지고, 나로 인하여 나와 함께 하는 사람이 복을 받는 자리로 나아간다면 이보다 더 큰 축복은 없습니다. 여기에 사는 의미나 보람이 있는 거예요. 위치가 문제가 아니에요. 직분이 문제가 아니에요. 요셉은 보디발의 집에서 노예였습니다. 노예 한 사람이 믿음에 바로 서서 하나님 기뻐하시는 삶을 살게 되니 요셉을 위하여, 요셉으로 말미암아 그 집에 복을 주셨다는 사실입니다. 야곱을 보면서 라반이 고백한 것을 보십시오. \"여호와께서 너로 인하여 내게 복 주신 줄을 내가 깨달았노니...\" 자신은 복 받을만한 사람이 안되지만 야곱 때문에 하나님이 복을 주심을 깨달았다는 거예요. 안 믿는 사람들의 눈을 통해서도 깨달을 만큼 열매를 주시고, 복을 주셨더라는 말입니다. 감당할 수 없는 광풍에도 함께 배에 탔던 276명이 목숨을 건진 것은 바울 한 사람 때문이에요. 내가 이런 한 사람이 되기를 바랍니다. 성공적인 삶 축복의 삶 살려면 헛된 것에 집착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러면 더 큰 것을 잃게 됩니다. 평소에 한 번도 지각이나 결석을 하지 않던 소년이 지각을 했습니다. 왜 늦었느냐고 묻는 선생님께 학교에 오는 길에 어떤 아저씨가 동전을 떨어뜨리는 바람에 늦었다고 대답합니다. 선생님은 말하기를 동전을 잃어버린 아저씨의 동전을 함께 찾아주는 것도 좋은 일이지만 학교에 오는 일이 더 중요한 일이기에 미안하다고 말하고 지각하지 말아야 한다고 가르쳤습니다. 그런데 사실은 소년이 그 동전을 발로 밟고 서 있었기 때문에 올 수 없었던 거예요. 아저씨가 찾기를 포기하고 갈 때까지 기다리다보니 지각할 수밖에 없었던 거예요. 내가 한 쪽 발로 무엇인가를 밟고 있는 이상 앞으로 나아갈 수가 없어요. 성공적인 삶을 살수가 없습니다. 그것이 물질이든지, 헛된 명예든지, 술이나 노름이든지, 허영심이든지 내가 미련을 갖고 밟고 있는 것이 있다면 과감하게 그것에서부터 발을 옮겨 놓아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 열심히 움직여 보아야 제자리를 맴돌 뿐입니다. 무엇이든지 우리를 축복의 자리에서 멀어지게 하는 것이라면 과감히 물리쳐 버리고 새로운 발걸음으로 출발하시기를 축원합니다. 또한 가이오는 교회 안에서 사랑으로 합당히 행하는 자였고, 덕을 세우며 칭찬받는 자였습니다. 사람의 비위를 맞추는 것과 사람들에게 덕이 되고, 칭찬 받는 삶을 사는 것과는 다릅니다. 먼저 하나님 앞에 인정받으면 사람에게도 인정받고 존귀히 여김을 받게 됩니다. 칭찬받는 사람, 이런 사람은 무슨 일을 하든지 덕을 세우면서 일을 합니다. 일하면서 자신도 기쁘고 남에게도 유익한 열매를 남기는 것입니다. 이것이 좋은 일꾼, 성숙한 일꾼의 특징 중에 하나입니다. 일하면서 자기에게 은혜가 되고 다른 사람이 나를 볼 때도 은혜를 받는다면 대단한 축복입니다. 어떤 사람은 일을 맡겨 놓으면 열매는 별로 없는데, 늘 시끄럽고 요란한 불평이 많이 나옵니다. 은혜 받지 못한 채, 다듬어지지 못한 채 봉사하고, 헌신하고, 기도하면 뭐가 보이느냐, 자기 공로가 보이게 됩니다. “내가 이 정도 하는데...” 다른 사람의 허물과 결점이 자꾸 보이게 됩니다. 그러다 보면 봉사하고 헌신하면서, 감사와 기쁨과 은혜보다는 불평이 나오고, 짜증이 나고, 다른 사람을 판단하는 심판자가 되 버리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 교회에도 유익하지 못하거니와 하나님 보시기에 아름답지 못합니다. 혹시라도 하나님 보시기에 “괜히 일을 맡겼다” “잘 못 세운 것 같다” 이런 생각이 드신다면 이것은 정말로 큰일입니다. 교회가 좋은 교회 되려고 하면, 내가 먼저 칭찬 받는 사람되어야 합니다. 다른 사람 볼 것 없습니다. 다른 사람 탓할 것 없습니다. 내가 먼저 제물 되어지고, 내가 먼저 믿음의 사람되어지고, 내가 먼저 주님 기뻐하시는 사람되어지면, 주님이 귀하게 사용하시거니와 사람 앞에도 칭찬 받고 유익을 끼치며 덕스럽게 살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 지금 비록 어려워도 앞날을 하나님이 축복하시고, 평탄케 하시고 열어주실 줄로 믿습니다. 주를 위한 헌신, 주의 몸된 교회를 위해 시간을 드리고 몸을 드리는 헌신은 결단코 헛되지 않습니다. 분명 손해인 것 같고 망할 것 같으나 오히려 사는 길이 열리고, 유익하게 역사하십니다. 믿음의 눈이 열려서 하나님의 섭리의 손길을 보는 여러분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 좋은 일꾼들 되시어서 주님께 인정받거니와 사람들에게도 덕을 끼치고 축복받는 복된 성도들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주님은 우리의 믿음을 보시고 우리의 중심을 보십니다. 진실한 사람이 당장에는 손해를 보는 것 같아도 결국에는 갑절로 보상하시고, 크게 보상하시고, 승리하게 되는 줄로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나에게 하나님의 간섭이 없어졌다는 것이 자유인 것 같지만 그렇지 않아요. 죄를 지어도 아무렇지도 않다면 이것은 이미 하나님께로부터 심판을 받고 있다는 거예요. 주일 한 번만 범해도 당장 손해가 오고, 조금만 잘못하면 징조가 보이는 사람은 은혜 안에 있는 사람입니다. 복 있는 사람이에요. 들소나 멧돼지는 자유로운 것 같지마는 주인의 보호는 없습니다. 하나님의 간섭이 없는 것은 더 이상 축복이 아니에요. 욥22:21 “너는 하나님과 화목하고 평안하라 그리하면 복이 네게 임하리라” 하나님의 자녀된 우리가 때로 하나님 원치 아니하는 길로 걸어갈 때에는 하나님께서 말씀을 통해서 지적해 주기도하고 책망하시기도 함으로 돌이키게 합니다. 그냥 버려 두시지 않는 것은 오히려 변함없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증거인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시34:10 “젊은 사자는 궁핍하여 주릴지라도 여호와를 찾는 자는 모든 좋은 것에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이 부족함 없는 축복을 누리시기를 축원합니다. 그런가 하면 디오드레베는 어떤 사람입니까? 9절에 보면 으뜸되기를 좋아했다고 했습니다. 항상 자기 주장대로 되고, 자기 고집대로 하기를 원했다는 거예요. 사람들이 자기를 높여주고, 자기 뜻대로 해야 일할 맛이 났다는 것입니다. 믿음과는 거리가 먼 것이지요. 10절에 보면 주의 사역자들을 헐뜯기를 좋아하며 악평했다는 거예요. 거기에서 끝나지 아니하고, 믿음으로 살려고 하는 선한 봉사자를 내쫓았다고 했습니다. 미련한 자일수록 자신이 가장 지혜롭다고 생각하고 지혜로운 사람일수록 자신의 부족과 허물과 약함을 압니다. 연구하면 할수록 알게 되는 것보다 모르게 되는 것이 많음을 깨닫게 됩니다. 무지한 사람일수록 자기가 다 안다고 착각하는 것입니다. 잠12:15에 “미련한 자는 자기 행위를 바른 줄로 여기나 지혜로운 자는 권고를 듣느니라”잠18:2“미련한자는 명철을 기뻐하지 아니하고 자기의 의사를 드러내기만 기뻐하느니라”말씀이 뭐라고 하는지, 관심이 없고 내 생각이 제일이라는 생각에 자기 주장만 하는 사람은 미련한자 중에서 제일 미련한 자입니다 . 이런 사람 직분자로 세워 놓으면 교회가 늘 평안치를 못하고 요란해 집니다. 지혜로운 자는 겸손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 모두가 겸손하고 지혜로운 사람되기를 바랍니다.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원하시는 뜻을 겸손하게 분별할 줄 알거니와 말씀 앞에 자신을 돌아볼 줄 아는 지혜로운 성도님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나를 내 자신보다도 더 잘 아시는 주님의 불꽃같은 눈앞에서 진실해 져야 합니다. 이 세상에서 왕의 노여움을 사도 그 길이 평탄치 못해요. 하물며 만물의 주인이신 하나님의 노여움을 사고서 평안하기를 바란다면 어리석은 생각입니다. 행여라도 내 속에 원망과 불평의 영이, 다툼의 영이, 자리하지 못하게 해야 합니다. 내 육신의 생각 때문에, 내 자존심 때문에, 문제를 일으키고, 불평을 하고, 다툼의 원인이 된다면 주님이 그 길을 축복하실 수가 없어요. 그 길이 열릴 수가 없어요. 목회자의 마음은 목양하는 양들에게는 부모와 같은 존재가 되는 것입니다. 어느 부모치고 자녀가 잘못되기를 바라는 부모 있습니까? 자녀가 잘되기를 바라고, 축복의 길 가기를 바라는 마음은 부모의 공통된 마음입니다. 모든 성도들을 향한 목사의 마음도 마찬가지예요. 복된 길 가기를 원하고, 주안에서 열매 맺기를 원하고 형통한 길 가기를 원하는 거예요. 그런데 스스로 안 되는 길가는 것을 볼 때에 제일 안타까워요. 제일 괴로워요. 목사가 또 나를 친다? 아니에요. 어떻게 하든지 바른 길, 주님이 기뻐하시는 길 가도록 말씀으로 권고하고, 때로는 지적하고, 책망해서라도 축복의 길 갈 수 있다면 그것이 양약이 되는 거예요. 나이가, 경력이 문제가 아니에요. 말씀 앞에서는 우리가 어린아이와 같이 겸손해져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의 사랑받고, 복을 받습니다. 그것이 지혜로운 길이에요. 저수지에 담긴 물은 필요할 때 마음대로 쓸 수 있듯이 인생의 모든 것이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습니다. 다른 것 좀 못해도 괜찮습니다. 큰 일 못 해도 괜찮아요. 주님께 사랑받는 자리로만 나아간다면 당대가 복을 받고, 자녀와 후손까지 좋은 영향을 끼치게 됩니다. 근본을 회복하면 우리의 인생 길도, 환경도, 자녀도 주님이 손을 대실 줄로 믿습니다. 열어 주실 줄로 믿습니다. 형통하게 될 줄로 믿습니다. 우리의 생각이 믿음의 생각으로 바꾸어지기를 축원합니다. 우리의 말이 믿음의 말로 바꾸어지기를 축원합니다. 우리의 길이 주님 기뻐하시는 길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근본을 회복하면 복된 삶을 살게 됩니다. 그 앞날이 열려집니다. 주님이 두손들어 축복하시고 열매를 거두게 하십니다. 우리 모두에게 이런 은혜가 임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요한은 제자들 가운데에서도 사랑이 많은 사도입니다. 그런데 얼마나 그 마음이 아팠던지 10절 초반에 보면 “내가 가면 그 행한 일을 잊지 아니하리라” 왜 이런 말을 합니까? 기분이 나쁘다는 것입니까? 사도지마는 사람인지라 마음에 감정이 남아있다는 말입니까? 이런 말을 하는 분명한 목적이 있습니다. 11절 “사랑하는 자여 악한 것을 본 받지 말고 선한 것을 본받으라” 이것 때문이지요. 사랑하는 성도들이 악한 것을 보고, 잘못된 것보고, 분별치 못하고 행여라도 본 받을까봐, 그래서 함께 망할 길 갈까봐, 주님의 축복과 거리가 멀어 질까봐, 염려하며 선한 것을 본받아 축복된 길 가도록 권고하고 있는 것입니다. 잘 분별하고 축복된 길 걸어가시기를 축원합니다. 마지막으로 데메드리오는 많은 사람들로부터 선한 자라고 인정을 받는 덕망있는 인물이었습니다. 외식이 없었다는 거예요. 앞과 뒤가 다르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사람들에게만이 아니라 사도들에게 인정받는 사람이 된 것입니다. 직업이나 위치가 문제가 아닙니다. 하나님 앞에 우직스러울 정도로 진실하게 살고, 믿음으로 살면 결국에는 복된 역사가 나타날 줄로 믿습니다. 하나님은 내편이십니다. 크신 하나님, 능력의 하나님, 나를 도우시고 나와 함께 하시는 엘 샤다이, 전능하신 하나님을 생활 속에서 많이 체험하며 사시기를 축원합니다. 이미 지나가 버린 과거는 되돌릴 수 없습니다. 지금 이 시간부터 나 때문에, 나를 보시고 자녀를 축복하시고, 가정을 회복케 하시고, 일터를 축복하실만한 믿음의 제물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귀로들은 복된 말씀이 현실로 체험되시기를 축원합니다. 믿음으로 사는 길에도 때로 감당 못할 어려움도 있습니다. 그럴 때 여론에 휩쓸리지 않는 신앙, 주변의 많은 사람들의 비웃음과 조롱에도 굴하지 않고 자기 신앙을 굳게 지키는 믿음이 중요합니다. 시인은 주변 사람들이 “네 하나님이 어디에 있느냐?” 조롱하는 소리가 그의 뼈를 찌른다고 하였습니다. 세상이 어떻게 변하고, 환경이 어떻게 달라지더라도 끝까지 주님 향한 믿음 변치 않으면, 주님을 붙잡고 인내하면 좋은 결말을 주십니다. 당대에 보지 못하면 자녀를 통해서도 보상하십니다. 축복하십니다. 어느 가정에 남편이 사업을 하려다가 사기를 당해서 집과 재산을 몽땅 날립니다. 오랫동안 이루었던 것, 하루아침에 날리고 보니까 충격을 받고 어쩔 줄을 모르다가 교회에 나가기 시작합니다. 할 수 있는 것은 오직 기도하는 것뿐이었어요. “하나님, 우리를 불쌍히 여기시고 돌봐 주시옵소서” 그렇게 20여 년이 지났습니다. 그런데 그 가정에 아들이 둘입니다. 맏아들이 군대를 갖다와서 30대 초반에 인터넷 사업을 시작했는데, 하나님이 얼마나 축복하셨느냐? 20년 전 사기 당한 금액의 100배 이상으로 번창케 하신 것입니다. 그 가정에는 사기 당한 것이 지나고 보니 오히려 더 큰 축복이 되었더라는 것입니다. 사기 당하고 망했기 때문에 교회에 나가게 되었고, 믿음 가지고 열심히 기도하며 살았더니, 아들을 통해 거부가 되게 하신 거예요. 믿음의 사람은 결코 망하지 않습니다. 기도하고 믿음으로 살면 하나님께서 축복하십니다. 인사합시다. “믿음의 사람은 망하지 않습니다. 절대로 망하지 않습니다. 갑절로 축복하십니다. 크게 축복하십니다. 100배로 축복하십니다” 아멘!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지금 어렵고 힘들다 할지라도, 지금 배고프고 가난하다 할지라도, 주님 주실 좋은 결말을 바라보세요. 그것만 생각하세요. 눈을 들어 주님 주실 회복의 모습을 바라보세요. 힘든 가운데라도 기도하고, 믿음으로 인내하고 나아가면, 주님 약속 붙들고 나아가면, 하나님께서 원수의 목전에서 상을 베풀어주십니다. 복의 근원이 되게 만들어 주십니다. 만사 형통하는 놀라운 역사를 보게 될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섭리는 그때는 잘 몰라요. 지나간 다음에 거꾸로 읽어보면 깨닫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한문과 마찬가지로 히브리어는 오른 쪽에서 왼쪽으로 써 나갑니다. 읽는 것도 거꾸로 읽어야 되요. 당장은 다 모릅니다. 사건이 일어나기 전에도 모르고 그 당시도 모릅니다. 다 지나가고 나서 거꾸로 보면 하나님의 섭리가 보입니다. 요셉도 그렇고 야곱, 모세, 다윗의 삶을 보세요. 요셉이 형들에게 미움을 받아 애굽에 노예로 팔렸을 그 당시에는 몰랐어요. 요셉이 모함을 받아 감옥에 갔을 때도 몰랐습니다. 거기에서 바로 왕의 두 신하를 만났지만 그들이 출옥 후 요셉을 잊어버렸을 때도 모릅니다. 13년 후에야 깨닫게 됩니다. 총리가 된 다음에야 하나님의 간섭과 섭리의 깊이를 깨닫게 됩니다. 야곱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는 아버지와 형을 속이고, 도망할 때도, 삼촌 라반의 집에서 일하면서도, 도망 나왔을 때도 몰랐어요. 야곱이 이스라엘이 된 뒤에야 모든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모세도 그랬어요. 나일강에 버려졌을 때도, 애굽의 왕자가 되어 애굽의 학문과 무술을 배울 때도, 애굽 사람을 때려죽일 때도, 도망하여 40년간 목자로 일했을 때도 몰랐습니다. 그러나 애굽의 바울 앞에 섰을 때,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고 광야로 나왔을 때 드디어 알았어요. 하나님의 손길, 섭리가 있었구나. 다윗도 마찬가지였어요. 형들은 다 놀고 있었을 때 혼자 밖에서 일하고 있었던 16, 17살 때는 몰랐습니다. 골리앗 장군을 죽였을 때도, 사울이 자기 딸과 결혼시키고 암살시키려고 했을 때도 몰랐습니다. 젊은 나이에 사울 왕에게 쫓겨다니며 죽을 고비를 몇 번씩 넘기면서도 몰랐어요. 후에 다윗이 이스라엘의 왕이 된 다음에 알았습니다. 하나님의 섭리는 앞을 보고도 알 수 없고 현재를 보고도 알 수 없어요. 지나간 다음에 알 수 있습니다. 우리의 인생 걸어가면서 때로 직장을 잃기도 하고, 사업에 부도가 나기도 하고, 원치 않는 사고를 당하기도 하고, 감당 못할 질병을 겪기도 합니다. 오해를 받기도 하고, 얽히고 꼬일 때는 다 이해 할 수가 없어요. 받아들여지지 않는 거예요. 그러나 내가 모를 때도 하나님은 아시고, 내가 잊어버렸을 때도 하나님은 기억하고 계십니다. \"의인의 길은 여호와께서 인정하시나 악인의 길은 망하리로다\" 검은 구름 뒤편에는 밝은 태양이 있습니다. 때로는 애써도 안 되는 일들이 얼마든지 있습니다. 사람이 아무리 애를 써도 안 되려면 안 되는 것이고, 주님이 지혜주시고, 축복하시면 일어서는 것은 시간 문제입니다. 물질의 축복뿐만이 아니에요. 자녀들의 앞날도 주님이 열어주시면 형통케 됩니다. 간증거리가 생기고, 하나님 영광 받으실 일들이 생겨나게 됩니다. 돈만 쫓아다니고, 세상 것만 따라가면 나중에는 모두 잃어버리고 헛수고하고 후회하는 인생삽니다. 주님 원하신 자리로만 나아가면 일상생활의 문제는 걱정하지 않도록 하나님 역사하십니다.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면 이 모든 것을 더하여 주신다고 약속하신 분이 전능하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주님을 갈망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 우선으로 살면 필요할 때는 돈도 힘도 명예도 다 허락하여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갈망하는 믿음을 가지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인생은 운명이나 팔자가 아니에요. 모든 방법이 다 실패할 때라도, 모든 문이 다 닫혔을 때라도. 여전히 주님은 나를 붙들고 계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만 바로 되면 우리의 미래는 앞날은 열립니다. 우리는 태어났으니 그저 사는 존재들이 아니에요. 곤충학자 파브르는 날벌레들을 유심히 관찰해보니 아무런 목적도 없이 무턱대고 앞에서 날고있는 놈만 따라서 날더라는 거예요. 방향도 목적지도 없이 그냥 돌더라는 거예요. 빙빙 돌고있는 바로 밑에다 먹을 것을 가져다 놓아도 먹지 않고 7일 동안을 계속해서 돌던 날벌레들이 결국에는 굶어서 죽더라는 거예요. 어느 한 통계에 따르면 분명하고 구체적인 목적없이 날벌레처럼 살다가 죽는 사람들이 87%나 되더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렇게 살수 없는 사람들입니다. 그렇게 살아서는 안 되는 사람들입니다. 구체적인 삶의 비전을 발견하시기를 축원합니다. 구체적인 기도의 제목을 발견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주님 결코 외면하시지 않습니다. 시편 34:15 “여호와의 눈은 의인을 향하시고 그 귀는 저희 부르짖음에 기울이시는도다” 하나님의 눈은 믿음의 사람을 향하십니다. 그 부르짖음에 귀를 기울이신다고 했어요. 들으실 뿐 아니라 응답하시고 축복하십니다. 하나님과 바른 관계만 회복하면 됩니다. 시편 112:1-2 “할렐루야,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 계명을 크게 즐거워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그 후손이 땅에서 강성함이여 정직자의 후대가 복이 있으리로다” 신명기 15:4 “네가 만일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만 듣고 내가 오늘날 네게 명하는 그 명령을 다 지켜 행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유업으로 주신 땅에서 네가 정녕 복을 받으리니 너희 중에 가난한 자가 없으리라” 믿을 뿐 아니라 말씀에 순종하셔서, 가난과 저주가 여러분의 가정과 일터에서 떠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믿음으로 사는 자가 결국은 승리하고 축복의 열매를 거두게 됨을 생활을 통해 간증하고 증거하는 은혜가 임하시기를 축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