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 축복 하는 공동체가 되려면?

서로 축복하는 공동체가 되려면(6)
민6:22-27





사람들은 누구나 축복 받기를 좋아합니다. 그래서 옛날 사람들은 복 받을 만한 곳이면 어
디든지 찾아갑니다. 산에도 찾아가고, 절에도 찾아갑니다. 달보고 빌기도 하고, 큰 나무
밑에 엎드려 절하며 복을 빌기도 합니다. 그래서 우상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미신이 생겨
났습니다. 그래서 세상에는 수많은 종교가 있습니다. 복을 받기 위해서입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복의 근원이 누구인지를 바로 아는 것입니다. 이것을 알지 못하기 때
문에 헛된 것을 찾아 복을 빌게 됩니다. 결론적으로 말씀드리면 하나님이 복의 근원이십니
다. 축복의 원천이 하나님께 있습니다. 하나님과의 관계를 통하여만 인간은 참으로 행복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참 행복은 하나님을 바로 알고 하나님을 모심으로 시작합니다.
죄인인 인간이 자신의 죄를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하고 주님의 거룩한 성
령을 통하여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는 순간부터 진정한 행복은 시작되는 것 입니다.

하나님은 축복의 근원이십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들이 이웃을 축복할 때 우리들을 통
하여(제사장을 통하여) 그들을 축복 하십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들이 축복의 통로가 되기
를 바라십니다. 특별히 주님의 피로 값주고 사신 교회가 세상의 축복의 공동체가 되어야
합니다.

오늘 본문을 읽으면 제사장들을 통해 세상을 축복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이 소개되고 있습니
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자기는 제사장이 아니므로 이 말씀은 자기와는 무관하다고 생
각 합니다. 물론 본문은 아론과 그의 아들들에게 주신 말씀입니다. 당시는 그들이 제사장
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전혀 다릅니다. 구약과는 달리 우리 모두가 제사장입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모두 제사장으로서 축복의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모
두 제사장들입니다. 만민이 제사장입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축복 공동체입니다.

어떤 경우에도 축복하는 사람이 되어야지 저주하는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성경은 축복의 중요성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시 109:17) 저가 저주하기를 좋아하더니 그것이 자기에게 임하고 축복하기를 기뻐 아니하
더니 복이 저를 멀리 떠났으며
하나님은 우리들에게 복주시기를 간절히 원하십니다. 24에 ‘원하며’, 25절에 ‘원하
며’, 26절에 ‘원하노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들도 적극적으로 능동적으로 기뻐하며 축복을 해야 합니다.
주님은 우리들이 만나는 사람마다 방문 하는 가정마다 축복을 빌라 하십니다.
오늘 본문에 봐도 축복의 말에는 힘이 있습니다.
27절의 말씀을 보십시오. \"그들은 이같이 내 이름으로 이스라엘 자손에게 축복할지니 내
가 그들에게 복을 주리라.\" 아멘. 우리가 축복할 때 하나님이 복을 주시겠다는 약속입니
다. 이처럼 축복의 말에는 힘이 있습니다.

구약성경은 축복의 말이 얼마나 능력 있는지를 잘 보여줍니다. 창세기 49장에는 야곱의 자
녀들에 대한 축복이 있습니다. 그 중에서 특별히 유다에게 한 축복의 말을 눈여겨보시기
바랍니다.
\"유다에 너는 네 형제의 찬송이 될지라 네 손이 네 원수의 목을 잡을 것이요 네 아버지의
아들들이 네 앞에 절하리로다 ... 홀이 유다를 떠나지 아니하기를 실로가 오시기까지 이르
리니 그에게 모든 백성이 복종하리로다.\"(창세기 49:8-10).

그런데 보십시오. 이 말은 사실이 되었습니다. 유다는 12지파 중에 으뜸이 되었습니다. 유
다 지파에서 다윗왕이 나왔습니다. 모든 지파가 유다지파에게 굴복하였습니다. 모든 지파
가 유다지파를 섬겼습니다. 그리고 유다지파에서 예수 그리스도가 오셨습니다. 야곱의 축
복의 말이 결실을 맺었습니다. 이처럼 축복의 말은 힘이 있습니다.

디즈니랜드를 창설한 사람은 월트 디즈니입니다. 그는 극심하게 가난했던 시절에 교회에
가서 눈물을 흘리며 기도했습니다. 목사님이 울고 있는 월트 디즈니에게 다가와서 축복의
말씀을 했습니다. “형제여 다른 사람은 자네를 버릴지 몰라도 하나님은 결코 형제를 버리
지 않으십니다. 그러므로 용기를 내십시오 하나님이 축복 하실 것 입니다.” 그 말씀에 용
기를 얻었고, 교회 창고에서 잠을 자도록 허락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창고에서 생쥐들이
돌아다닙니다. 그때 월트 디즈니는 생쥐의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습니다. 그것이 미키 마우
스가 되었습니다. 아마도 이것이 동물 캐릭터로는 역사상 가장 유명한 캐릭터일 것입니
다. 그래서 그는 55,000명의 종업원을 가진 어마어마한 디즈니랜드를 만들게 되었고 소유
주가 되었습니다. 축복의 말 한마디가 사람을 이렇게 변화시키고 사람을 새롭게 만들고 사
람을 승리자로 만들어준 것입니다.

예수님의 전 생애는 우리를 축복하시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의 전 생애는 우리를 축복하시
는 생애입니다. 예수님의 전 말씀도 산상수훈이 팔복으로 시작됩니다.
예수님의 사역도 우리를 축복하시기 위함입니다. 병든 자를 고치시고, 귀신들린 자를 해방
하시고, 슬픔이 있는 자에게 기쁨을 주셨습니다.

예수님의 모든 사역은 축복하시기 위한 사역이었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신 것
도 우리를 축복하시기 위함이요, 부활 승천하신 것도 우리를 축복하시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예수님을 닮기를 바랍니다. 마음에 축복으로 가득하고 입술의 언어에도
축복으로 가득하게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축복의 말을 많이 하시기 바랍니
다. 어디에서 어떻게 할까요?

1. 교회에서 축복합시다.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축복하고 이스라엘 자손에게 축복했다고 했습니다. 이스라엘 자손
은 바로 오늘날 교회의 모체가 된 하나님의 백성, 언약의 공동체를 말합니다. 이스라엘 자
손이 어린양의 피로 말미암아 출애굽 한 것 처럼, 교회 성도들은 예수의 피로 말미암아 구
원을 받은 것입니다.
엡 1:23, 교회는 예수그리스도의 몸입니다. 마 26:26 축복의 떡을 떼어주셨습니다.
행 20:28에 교회는 하나님의 피값으로 사셨습니다. 고전 10:16 축복의 잔을 부어주셨습니
다.
예수님의 축복의 떡을 먹고, 예수님의 축복의 잔을 마시면서 우리는 교회가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교회에서 성도끼리 축복해야 되는 것입니다.

(시 118:26) 여호와의 이름으로 오는 자가 복이 있음이여 우리가 여호와의 집에서 너희를
축복하였도다 (레 9:23) 모세와 아론이 회막에 들어갔다가 나와서 백성에게 축복하매 여호
와의 영광이 온 백성에게 나타났습니다.

우리는 찬송하는 입으로 형제를 축복해야지 저주하면 안됩니다.
(약 3:9) 이것으로 우리가 주 아버지를 찬송하고 또 이것으로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은 사람을 저주하나니 (약 3:10) 한 입으로 찬송과 저주가 나는도다 내 형제들아 이것
이 마땅치 아니하니라 (약 3:11) 샘이 한 구멍으로 어찌 단 물과 쓴 물을 내겠느뇨
서로를 귀하게 여기며 축복할때에 하나님의 복이 교회에 임하는 것입니다. 부흥이 임하는
것입니다. (시 16:3) 땅에 있는 성도는 존귀한 자니 나의 모든 즐거움이 저희에게 있도다

2. 사랑으로 축복합시다.

이스라엘 자손은 하나님의 가족 공동체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교회는 큰 가정입니다. 가정
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무엇보다도 사랑입니다. 사랑이 없는 축복은 빈 말입니다.
(벧전 3:9) 악을 악으로, 욕을 욕으로 갚지 말고 도리어 복을 빌라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
르심을 입었으니 이는 복을 유업으로 받게 하려 하심이라 도리어 복을 비는 마음은 용서
와 사랑하는 마음 없이는 불가능한 것입니다.
(롬 12:14)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축복하고 저주하지 말라

어떤 사람은 입을 열기만 하면 불평과 불만을 쏟아내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데 많은 분
들이 이 불평과 불만을 습관이라고 주장하는데, 저는 불평과 불만은 습관이 아니라, 질병
이라고 생각합니다. 불만과 불평은 병중에도 무서운 바이러스라고 생각합니다.

현대의학이 발달되어 머잖아 암 정복의 시대가 온다고 합니다. 그런데 감기를 가져오는 바
이러스만큼은 현대의학의 과제로 남아 있습니다. 왜냐하면 감기를 일으키는 바이러스만해
도 200여종이 넘기 때문입니다. 최근에 계속적으로 신종 바이러스가 생겨나고 있습니다.
그 무서운 ‘에이즈’도 바이러스입니다.

수년 전 세계를 공포에 떨게 한 ‘사스’도 바이러스입니다. 아직도 세계를 긴장하게 만들
고 있는 ‘조류 독감’도 바이러스입니다. 그런데 세상에 제일 무서운 바이러스가 무엇인
지 아십니까? 바로 ‘불평 바이러스’입니다. 왜냐하면 이 바이러스는 사람이 옮기는 것
이 아니라, 마귀가 옮기기 때문입니다. 이 불평 바이러스가 들어오기 시작하면 개인뿐이
아니라 가정이나 단체나 기업이나 나라가 망하게 됩니다. 주님의 몸 된 교회에 불평과 불
만 바이러스가 들어오기 시작하면 교회가 건강을 유지하지 못하고 어려움을 겪게 됩니다.

엡 4장에 “무릇 더러운 말은 너희 입 밖에도 내지 말라.\" 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또 에베소서 5장 3절에서 \"음행과 온갖 더러운 것과 탐욕은 너희 중에서 그 이름이라도 부
르지 말라. 이는 성도의 마땅한 바니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일관되게 ‘더러
운 말은 아예 입에도 담지 말라’‘더러운 것은 아예 그 이름이라도 부르지 말라’고 말씀
하고 있습니다. 왜 그런 줄 아십니까?

잠언 6장 2절에서 “네 입의 말로 네가 얽혔으며, 네 입의 말로 인하여 잡히게 되었느니
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처럼 우리가 입으로 쏟아놓는 불평과 불만과 원망이 우리의 인생
을 옭아맵니다. 우리가 하는 말로 내 인생이 얽혀지고, 내가 하는 말로 내 인생이 이끌려
갑니다. 또 우리가 잘 아는 대로 민수기 14장 28절은, “너희 말이 내 귀에 들린 대로 내
가 너희에게 행하리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내뱉는 말을 들으시고 그 말대로 우리를 인도하십니다. 우리의 말에
의해 우리의 미래가 인도되어 집니다.

갈 5:15 교회 안에서 서로 물고 먹으면 모두가 망하게 되어 있습니다. 상대방이 욕한다고
해서 함께 욕을 하면 똑같은 사람이 되고 맙니다.
(레 19:18) 원수를 갚지 말며 동포를 원망하지 말며 이웃 사랑하기를 네 몸과 같이 하라
나는 여호와니라

(눅 6:27) 그러나 너희 듣는 자에게 내가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미워하
는 자를 선대하며, 고전 4:12 후욕을 당한 즉 축복하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을 보세요. 예수님은 축복의 떡과 축복의 잔을 주실때에 사랑으로 주셨습니다. 자기
를 배반하고 팔며 저주하며 도망가는 제자들의 발을 씻어주시면서 축복의 떡과 잔을 주셨
습니다.

(요 13:1) 유월절 전에 예수께서 자기가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돌아가실 때가 이른 줄
아시고 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니라
(요 13:14) 내가 주와 또는 선생이 되어 너희 발을 씻겼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기는 것
이 옳으니라
(요 13:34)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우리는 축복의 말로써 은혜를 끼칠 수 있습니다. 우리의 혀는 다른 사람을 축복할 수도 있
고, 저주할 수도 있습니다. 축복의 말을 하시기 바랍니다.

빌리 그레이엄은 21세기가 낳은 세계적인 부흥사입니다. 그런데 그가 어렸을 때에는 동네
사람들을 걱정하게 하게 하는 골치 덩어리였습니다. 보는 사람들마다 “저 애가 커서 뭐
가 될런지..”하며 걱정했다고 합니다. 그런데도 그의 할머니만은 개구쟁이 손자의 머리
를 쓰다듬으며 “너는 말을 잘하고 사람을 끌어당기는 재주가 있기 때문에, 개성만 살리
면 큰 사람이 될 거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할머니의 그 말 한마디가 그의 인생을 바꾸
어 놓았습니다. 그래서 말썽꾸러기가 세계적인 복음전도자가 된 것입니다.

또 맥아더 장군은 2차 대전의 영웅을 일 뿐아니라, 6.25 전쟁 때 총사령관으로 인천 상륙
작전을 성공시킨 분입니다. 그도 어릴 때에 말할 수 없는 개구쟁이였습니다. 말썽을 피우
고 사고를 치고 아이들을 떼 지어 몰고 다니며 골목대장노릇을 했습니다. 보는 사람들마
다 그의 장래를 염려했습니다.

그러나 그의 할머니만은 “너는 군인의 기질을 타고 났어. 군인으로서 크게 성공할거야”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훗날 맥아더는 할머니의 그 말 한마디에 눈이 확 뜨였다고 고백한
적이 있습니다. 그는 할머니의 말 한마디 때문에 위대한 군인이 된 것입니다. 이렇게 아
무 힘도 없어 보이는 할머니의 말 한마디가 그 자녀의 일생을 좌우하는 현실이 됩니다.

이처럼 축복의 말에는 사람의 인생을 바꾸어 놓을 수 있는 엄청난 힘이 있습니다. 그래서
본문 27절을 보면 “그들은 이같이 내 이름으로 이스라엘 자손에게 축복할찌니 내가 그들
에게 복을 주리라.”고 말씀하시며 제사장 된 아론과 그 아들들에게 이스라엘 자손을 이렇
게 축복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비록 불순종과 불신앙을 보이며 못된 짓만 골라서 하는 백
성들로서 축복보다는 꾸중을 받아야 할 백성들이었지만, 그래도 하나님은 제사장들에게 백
성들을 축복하라고 명령하신 것입니다.

사도 바울도“후욕을 당한즉 축복하고, 핍박을 당한즉 참고, 비방을 당한즉 권면하니”라
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고전 4장 12절과 13절)

우리는 이 말씀에서 인생의 3대 기준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저주대신 축복하라는 것입니
다. 핍박에 대해서는 인내하라는 것입니다. 중상모략을 향해서는 친절한 말로 대하라는 것
입니다. 물론 우리 마음속에 축복하고 싶지 않은 대상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 사람이 이
웃에 사는 사람들일 수도 있고, 같은 교회 공동체에 소속된 교인일 수도 있고, 나를 향하
여 돌을 던진 원수 같은 사람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을 축복하면 축복할수록 그들
에게 베푼 축복이 우리에게 돌아오게 되는 것 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선포한 축복
의 말씀을 들으시고, 그에 따라 역사하시는 줄로 믿습니다.

\"말이 씨가 된다\"는 말이 있고 \"말이 사람 잡는다\"는 속담이 있듯이 말한 것이 환경이 되
어 버리고 말한 것이 현실을 빚어 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말대로 우리의 인생을 인
도하시기 때문입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줄을 우리가 안다고 했습니다.
(히 11:3) 창세기에도 보시면 \"하나님이 가라사대 빛이 있으라\" 하시니 빛이 있었고 궁창
이 있으라 하시니 궁창이 생겼습니다.

창세기 1장을 보면, ‘하나님이 가라사대‘라는 말이 9번 이상 반복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천지를 다른 것이 아닌 말씀으로 창조하신 줄로 믿습니다. 그리고 당신의 모
양과 형상대로 창조된 우리 인간에게도 말의 권세를 주신 줄로 믿습니다. 예수님은 무조
건 사랑하며 축복의 떡을 떼어 주셨고, 축복의 잔을 주셨기에 우리도 사랑하며 축복해야
합니다.

3. 기도하며 축복합시다.

이스라엘이라는 뜻은 야곱이 하나님과 겨루어 이김으로 얻은 이름입니다.
(창 32:28) 그 사람이 가로되 네 이름을 다시는 야곱이라 부를 것이 아니요 이스라엘이라
부를 것이니 이는 네가 하나님과 사람으로 더불어 겨루어 이기었음이니라
이 기도 속에 에서와 야곱이 화해하는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기도는 축복이요, 축복
은 기도입니다. 어떻게 나를 저주하고 욕하고 핍박하는 사람을 미워하지 않고 사랑하며 축
복 할 수 있습니까? 기도밖에 없습니다. 기도는 축복이요, 사랑의 결정적 증거요, 축복할
수 있는 능력을 가져다줍니다.

시 109:4 나는 사랑하나 저는 나를 대적하니 나는 기도할 뿐이라.
(눅 6:28) 너희를 저주하는 자를 위하여 축복하며 너희를 모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마 5:44)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위하여 기
도하라
히스기야 왕 때에, 절기를 지키고 기뻐하며 감사하며 백성들을 축복하였습니다.
그 축복은 기도가 되어 하나님앞에 상달이 되었습니다.
(대하 30:27) 그 때에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이 일어나서 백성을 위하여 축복하였으니
그 소리가 들으신 바 되고 그 기도가 여호와의 거룩한 처소 하늘에 상달하였더라

그동안 인생을 저주하며, 남을 축복하지 못해 저주가운데 있다고 스스로 생각하는 분이 계
십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오늘 저주의 삶이 남을 축복하는 삶으로 하나님이 은혜를 베풀
어 주십니다.
(슥 8:13) 유다 족속아, 이스라엘 족속아, 너희가 이방 가운데서 저주가 되었었으나 이제
는 내가 너희를 구원하여 너희로 축복이 되게 하리니 두려워 말지니라 손을 견고히 할지니
라

신명기에서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오늘 내가 네게 말하는 여호와의 규례와 명
령을 지키라 너와 네 후손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시는 땅에서 한없이 오래 살리
라.\"(신 4:40). 또 시편기자는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 계명을 크게
즐거워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그 후손이 땅에서 강성함이요 정직자의 후대가 복이 있으리
로다.\"(시 112:1-2).

그렇다면 우리들이 빌어야 할 축복의 내용은 무엇입니까?

첫 번째 축복은 보호의 축복(Blessing of protection)입니다.
“너를 지키시기를 원한다.”(24절) 여기서 지킨다고 하는 것은 목자가 양을 지키듯이 갖
가지 위험으로부터 보호해준다는 축복입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은 참으로 얼마나 위
험한 세상입니까? 육신적으로 위험한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 걸어 다녀도 위험하고,
차타고 다녀도 위험합니다. 언제 내 혈관이 막힐지 모릅니다. 언제 내 심장박동이 중지될
지 모르는 겁니다. 언제 내 몸의 세포가 변화되어 암세포로 변할지 모르는 겁니다.

영적으로도 위험한 세상인 것입니다. 이 세상은 마귀가 지배하는 세상이요, 공중 권세잡
은 자는 마귀요, 마귀는 악령들을 통해서 우리를 죽이고 멸망시키고자 얼마나 역사하고 있
습니까? 그러므로 우리는 육신적으로도 위험하고 영적으로도 위험한 세상에 우리가 살아가
고 있는 것입니다. 하루하루 살아가는 것이 참으로 기적입니다. 오늘도 살아서 눈뜨고 호
흡하고 예배하는 것이 기적입니다. 이런 위험 가운데서 하나님이 우리를 보호해 주신다고
하는 것은 얼마나 큰 축복입니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이 이처럼 여러분을 보호해 주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
니다.

두 번째 축복은 은혜의 축복(Blessing of grace)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입는 것이 가장 큰 복입니다. 왜냐하면 각양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이
다 하나님께로부터 오기 때문입니다.
25절을 같이 읽어봅니다. “여호와는 그 얼굴로 네게 비취사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며” 마
치 구름이 잔뜩 낀 날이 지나가고, 밤이 지난 후에 따뜻한 햇볕이 비추는 상쾌한 아침과
같습니다. 온 세상이 생명과 활기로 넘치게 되는 것과 같습니다. 햇빛만 비춰주어도 세상
이 이러한데 하물며 하나님이 영광의 얼굴빛을 비추어 주신다면 우리 피조물들은 얼마나
용기를 얻고 얼마나 생기를 얻고 얼마나 새 힘을 얻겠습니까?

죄가 있는 자는 죄사함을 받게 됩니다. 슬픔이 있는 자는 기쁨을 얻게 됩니다.
무능력한 자는 능력을 얻게 됩니다. 절망 가운데 있는 자는 소망을 얻게 됩니다. 망한 자
는 다시 살아날 수 있는 용기를 얻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오늘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얼굴빛을 비추어 주시고 큰 은혜를 베풀어 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
로 축원합니다.

세 번째 축복은 평강의 복(Blessing of peace)입니다.
26절입니다. “여호와는 그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사 평강주시기를 원하노라 할찌니
라.” 하나님은 우리가 평안하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부활하신 주님이 제자들을 찾아오
셔서 가장 먼저 하신 말씀이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였습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평강은 환경과 상관없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풍랑 속에서도 고물을 베개
하고 주무셨습니다. 주님에게는 그런 환경 속에서도 평안이 있었습니다. 평강은 성령 안에
서 주어지는 것입니다. 롬 14:17에 보면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
라 오직 성령 안에서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고 말합니다. 성령 안에서 평강이 주어집니
다. 그러므로 참된 평화를 원한다면 기도해야 합니다. 빌 4:6,7에 기도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겠다고 약속하고 있습니다.

사람이 아무리 부요를 누리고 아무리 존귀를 누리고 해도 심령의 평안이 없으면 그것은
큰 폐단입니다.
전도서 6장 2절에 “어떤 사람은 그 심령의 모든 소원에 부족함이 없이 재물과 부요와 존
귀를 하나님께 받았으나 능히 누리게 하심을 얻지 못하였으니 다른 사람이 누리나니 이것
도 헛되어 악한 병이로다”고 했습니다. 아무리 부요와 재물과 존귀를 얻어도 그것을 누
릴 만한 평강이 없다면 그것은 악한 병입니다.

전도서 6장 6절을 보겠습니다.
“저가 비록 천년의 갑절을 산다 할지라도 낙을 누리지 못하면 마침내 다 한 곳으로 돌아
갈 것뿐이 아니냐” 천년의 갑절, 2천년을 산다 할지라도 심령의 낙과 평강을 누리지 못하
면 결국 그의 가는 길은 사망길이라는 것입니다. 재벌의 딸도 평강이 없으니까 자기의 탄
생을 저주하며 목숨을 버립니다. 연예인도….

여러분 평강의 복은 참으로 귀한 것입니다.
저는 이 축도를 볼 때에 한 가지 이상한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대제사장이 축복 기도를
할 때에 이스라엘 백성 여러 명을 놓고 축복 합니다. 그런데 이 축복의 말씀은 언제나 단
수로 기록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여호와는 네게 복을 주시며 너를 지키시기를 원하며”
단수입니다. 너희들에게 복을 주시고 너희들을 지키시기를 원한다고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
다.

25절에도 “여호와는 그 얼굴로 네게 비취사”라고 말씀 하셨지 “너희들에게 비추사” 이
렇게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여호와는 그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사,” 단수입니다.
복수가 아닙니다. 대제사장은 이스라엘 백성 전체를 놓고 축복할 때에 단수를 사용합니
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 전체를 하나로 보셨다는 것을 의
미합니다.

우리는 주께서 하나가 되게 하신 것을 굳게 지켜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가 될 때에 하나님
은 우리에게 축복을 주시되 보호의 축복과 은혜의 축복과 평강의 복을 내려주시는 것입니
다. 여호와께서 여러분에게 복을 주시고 지키시기를 원합니다.
여호와께서 얼굴빛을 비추어 주사 여러분에게 은혜 주시기를 원합니다. 여호와께서 얼굴
을 향하여 드사 평강 주시기를 간절히 예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마음을 다해 축복해 보시기 바랍니다.

축복의 노래
당신은 사랑 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