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사장 아론의 축복
제사장 아론의 축복
민6:22-27
본문은 제사장의 축복으로 유명하다. 이것은 오늘날 우리 예배의 마지막 부분에서 축도를 하는 내용에 해당된다. 일반적으로는 목사가 축도를 할 때에 고린도후서 13장 13절을 사용하지만 이것의 첫 모습은 아론의 축복이라 볼 수 있다.
(고후 13:13)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의 교통하심이 너희 무리와 함께 있을지어다
본문의 축복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축복하실 때에 제사장들이 축복하는 축복의 선언문에 해당된다.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에게 선포하신 이 축복을 통하여 얼마나 우리 성도들을 축복하고 계심을 알 수 있다.
신년을 맞이하는 성도들에게 하나님께서 베푸시기를 원하시는 복을 받아 누리시기를 원하다.
1. 제사장의 축복
본문은 아론과 그 아들들이 이스라엘을 축복하는 제사장의 축복으로 성경 전체에서 나타나는 가장 아름다운 축복 중의 하나이다.
(민 6:22,23)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아론과 그 아들들에게 고하여 이르기를 너희는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이렇게 축복하여 이르되
제사장이 이스라엘 백성에게 내릴 축복은 당시 이스라엘의 왕이자 선지자인 모세를 통해 제사장들에게 전달되었다. 모세는 모든 백성을 통치하면서 그들에게 일일이 다 축복을 하는 일은 사실상 어려운 것이었다. 그래서 그는 이스라엘의 제사장인 아론과 그 아들들에 축복을 할 수 있는 권한을 위임시켰던 것이다.
그러나 신약 시대에 이르러 구약 시대의 모세와 아론의 역할을 홀로 온전히 감당할 거룩한 자가 나타났으니, 그는 곧 우리의 영원한 왕이자 선지지요 대제사장이신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그러므로 신약 시대에 영적 이스라엘 백성된 우리 성도들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의 축복 선언을 받아 누릴 수가 있는 것이다.
구약 시대에는 모세가 하나님을 대신하여 축복을 하다가 아론과 그 아들들에게 축복권을 주었다. 그리고 신약에 와서는 안수 받은 목사님들에게 그 권한을 주었다. 한편 여기에서 ‘축복하다’(바라크)는 말은 ‘하나님을 송축하다’, ‘무릎을 꿇다’, ‘은혜로 복주다’, ‘풍성하게 하다’란 의미 등을 내포하고 있다.
그런데 여기에서 우리가 유의해야 할 사항은 복을 주시는 자는 그 제사장이나 목사가 아니다. 즉 그 제사장이나 목사를 통하여 말씀하시는 거룩하신 하나님께서 그들의 축복 선언을 따라서 하나님께서 복을 주시는 것이다. 복을 주시는 주체는 하나님이심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제사장의 축복에는 복을 주시는 것이다.
(민 6:27) 그들은 이같이 내 이름으로 이스라엘 자손에게 축복할지니 내가 그들에게 복을 주리라
본문은 제사장의 축복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복을 주시는 이유에 대하여 설명해 주고 있다. 그것은 추도를 행하는 자가 자기 이름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으로’ 축복을 베풀기 때문이다. ‘이름으로’라는 말은 그 사람의 인격과 성품을 대변하는 것으로 자신의 전 의지와 인격을 내걸고 명하는 것이라 볼 수 있다.
하나님은 이렇게 절대 거룩한 당신의 이름을 전제로 제사장들로 하여금 축복을 선언하게 하심으로써 당신의 전 인격과 명예를 걸고 그 축복 내용을 그 백성에게 반드시 이루실 것을 표명하셨다. 또한 이것은 오직 당신의 이름에 의해서 그 축복이 선포될 때만이 그 속에 담겨진 내용이 유효하게 작용할 것임을 암시하는 것이기도 하다.
‘내가 그들에게.복을 주리라’ 한 것은 여호와 하나님은 유일한 복의 주체자가 되심을 분명히 선언하는 구절이다. 즉 비록 제사장에 의해 축복이 선포되지만, 진정한 선포자요 수여자(授與者)는 바로 하나님이라는 의미이다. 그렇기에 이 축복은 가장 완전하며 또한 모든 이들에게 진정으로 유익이 되는 것이다.
본 축도문(24-26절)에 ‘여호와는’이라고 세 번 언급된다. 물론 이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복을 주시는 주체자는 바로 ‘여호와’라는 사실을 분명히 나타내기 위한 목적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구속사적으로 볼 때 본 축도문에 ‘여호와’란 신(神)의 명칭이 세 번 언급된 것은 분명 ‘삼위일체’(三位一體) 하나님과 연관되어 있음에 틀림없다(Keil & Delitzsch Commentary, Pulpit Commentary). 본문 제사장 아론의 축복에는 하나님께서 지시하신 3가지의 축복이 있다. 그것은 곧 보호의 축복, 은혜의 축복, 평강의 축복이다.
2. 보호의 축복
(민 6:24) 여호와는 네게 복을 주시고 너를 지키시기를 원하며
‘복을 주시고’라고 한 것은 하나님은 이스라엘과 언약을 맺으신 계약자로서 그들에게 ‘복’(베라카), 곧 현세적이고 내세적인 모든 복을 주시기 원하셨다. 그러므로 이 ‘복’은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살아가는데 필요한 힘과 지혜로 볼 수 있을 것이다(시 16 편). 그리고 물질적인 번영과 많은 자녀 및 건강과 장수 등으로 이해할 수도 있을 것이다.
(창 24:1) 아브라함이 나이 많아 늙었고 여호와께서 그의 범사에 복을 주셨더라
이처럼 하나님은 선택하시고 부르신 당신의 백성의 필요를 따라 아낌없이 풍성한 영육간의 복을 베푸시기를 원하시는, 진정 복의 근원자이시다.
‘지키시기를 원하며’ 여기서 ‘지키다’(솨마르)는 말은 원래 ‘둘레에 가시로 울타리를 치다’란 뜻이다. 따라서 이 의미가 발전하여 ‘세심하고도 철저한 보호와 보존’, ‘주의 깊게 일거수일투족에 관심을 가짐’등의 의미로 사용되었다. 이는 모든 악한 세력으로부터의 보호(시 37:28)뿐 아니라 가난과 재앙과 각종 질병 및 전쟁으로 부터의 보존(시 33:19; 76:3)까지를 의미한다.
(시 121:4) 이스라엘을 지키시는 자는 졸지도 아니하고 주무시지도 아니하시리로다
사실 향후 죽음의 땅 광야를 행진해야 하며 사나운 이방 세력과 맞부딪쳐야 하는 이스라엘에게 있어서는 실제적으로 이러한 하나님의 보호와 돌보심이 절실히 요구되었다. 이는 오늘날 하나님 나라를 목적하고 광야 같은 세상을 행진해가야 하는 우리에게도 간절히 요청되는 바이다. 왜냐하면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와 보호 없이는 이 세상에서 한시라도 편히 쉴 수 없는 연약한 자들이기 때문이다.
(시 91:7) 천인이 네 곁에서, 만인이 네 우편에서 엎드러지나 이 재앙이 네게 가까이 못하리로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보호하시면 실로 우리는 아무것도 부러워 할 필요가 없다.
3. 은혜의 축복
(민 6:25) 여호와는 그 얼굴로 네게 비취사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며
‘그 얼굴로 네게 비취사’에서 여호와의 ‘얼굴’이란 표현은 그분의 ‘성품’과 전인격을 상징하는 ‘신인동형동성론’(Anthropormophism)적 표현이다. 여기에서 하나님의 ‘얼굴’이 한 개인 또는 어떤 공동체를 향하여 돌려진다는 것은 바로 생명과 구원을 그 위에 찬란히 비췬다는 것을 의미한다(Keil, Baumgarten, Pulpit Commentary; 시 27:1; 44:3; 잠 16:15).
그러므로 하나님의 얼굴 방향은 곧 인간 생존의 열쇠라 할 수 있다. 바로 이러한 의미를 간직한 채 지금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언약 백성들에게 당신의 그 사랑과 은혜와 보호와 평강의 얼굴을 항상 돌리시겠다고 축복하고 계시는 것이다.
본문의 ‘그 얼굴로 네게 비취사’에서 ‘비취다’(오르)는 ‘영광스러운’(glorious)이란 뜻을 포함하고 있는 말로써, 곧 당신의 영광스러운 광채가 연약하고 보잘 것 없는 인간에게로 향하여 짐을 의미한다. 실로 캄캄한 곳에서는 미미한 촛불하나가 매우 값진 역할을 감당하는데, 하물며 의와 영광의 태양이신 하나님께서 어둡고 지친 우리 영혼에 찬란한 빛을 비추시는데 어찌 벅찬 감격과 생의 희열이 솟아나지 않겠는가?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며’는 하나님이 타락한 인간에게 관심을 가지시는 궁극적인 이유는 바로 그에게 당신의 ‘은혜’를 베푸시기 위함이다. 여기서 ‘은혜’(하난)란 본래 ‘구부리다’, ‘아랫사람에게 몸을 굽히다’는 의미였으나 이것이 발전하여 ‘은혜를 베풀다’, ‘긍휼히 여기다’는 의미가 되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은혜’란 죄로 말미암아 죽을 수밖에 없는 인간에게 조건 없이 베푸시는 하나님의 한량없는 사랑과 긍휼과 자비라 할 수 있다. 그런고로 오늘날 우리는 바로 이 ‘은혜’로 말미암아 살아왔고, 또한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엡 2:8)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하나님께서는 그 사랑하는 백성들에게 찾아오셔서 은혜와 사랑을 베푸시기를 원하신다. 하나님의 은혜는 우리를 구원하시는 능력이 된다.
4. 평강의 축복
(민 6:26) 여호와는 그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사 평강 주시기를 원하노라 할지니라 하라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사’ 여기서 ‘향하여 든다’는 말은 ‘받아 들이다’, ‘열망하다’, ‘공급하다’는 뜻을 지닌 말로써 곧 ‘열정적으로 바라보다’, ‘계속해서 주시하다’는 의미이다. 결국 이 말은 하나님께서 ‘지속적인 관심과 사랑을 베푸심\'을 가리킨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특별히 귀중한 대상에 대하여 특별한 관심을 가지고 주의 깊게 계속 주시함을 뜻한다.
이처럼 하나님의 관심의 대상이 된 자는 하나님의 그러한 돌보심으로 말미암아 세상의 그 어떤 위협과 도전도 능히 극복할 수 있으며 아울러 참 기쁨과 평안을 누릴 수 있다.
(롬 8:31) 그런즉 이 일에 대하여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
‘여호와의 얼굴’을 누구에게로 향하여 든다는 것은 곧 하나님께서 생명과 평안을 공급하신다는 뜻을 지닌다고 할 수 있다. 하나님께서는 오늘도 당신을 의지하는 우리들에게 당신의 얼굴을 비추셔서 행복과 안정을 공급하신다.
‘평강 주시기를 원하노라.’ 여기서 ‘평강’(솰롬)은 ‘안전’, ‘행복’, ‘건강’, ‘번창’, ‘평안’, ‘우정’ 등의 다양한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이것은 단순히 ‘전쟁(불화)이 없는 상태’, 곧 적막한 평화를 의미하지 않고, 기쁨과 생(生)의 환희가 샘솟듯 솟아오르는 역동적인 평화를 가리킨다(사 55:12).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는 이 ‘평강’은 모든 기쁨과 복의 근원이신 하나님께로부터 나오는 것으로서 곧 하나님의 축복의 최고 절정을 이루는 열매이기 때문이다.
실로 하나님께서는 평화를 선포한 것으로 그치지 않으시고 ‘평화의 실체’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사 죄와 불의를 멸하시고, 그를 믿는 모든 이들에게 억제할 수 없는 참 평강을 맛보게 하셨다.
(요 20:19) ... 예수께서 오사 가운데 서서 가라사대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예) 영어 작별인사인 good bye “하나님이 그대와 함께 계시기를 빈다”(God be with ye)의 준말이다. 서반아어의 아디오스(adios) 도 “하나님께 향하라”는 뜻이다. 축복이란 말을 자주 쓰지만 평화의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신다는 것 이상의 축복은 없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샬롬’(평강)이라고 한다. 한국말에서도 ‘안녕하세요’라고 하는 것은 그만큼 사람들에게 있어서 평강이 얼마나 중요한 가를 보여 주는 말이다.
예) 샌프란시스코에 ‘금문교’(Golden Gate Bridge)를 건설할 때, 처음 1년 동안에 23명이 추락사하였다. 그래서 건설회사는 안전을 위하여 거대한 망을 만들어 깔았다. 그 후에는 추락해도 죽지 않았다. 그런데 이 안전망은 뜻하지 않은 효과를 가져 왔다. 공사 진행이 20%나 빨리 진척된 것이다. 그 이유는 떨어져도 죽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게 된 인부들의 동작이 빨라졌기 때문이다. 또한 그로 인해 작업 능률도 상당히 오르게 되었다. 그 동안은 두려움이 그들을 압박하고 작업 효율을 감소시키고 있었던 것이다.
결 론
제사장들이 선포한 축복의 특징은 축복의 근원이 오직 하나님임을 강조하였다. 제사장들이 선포했던 축복은 하나님의 이름으로 이스라엘 백성에게 선포되어야 했다. 이것은 비록 축복을 선포하는 자가 제사장이지만 축복을 주시는 자는 오직 하나님임을 보여 준다.
이러한 축복이 가져오는 축복은 무엇인가? 첫째로, 모든 믿는 자들은 하나님의 권능으로 악에서부터 보호함을 받게 된다. 둘째로, 죄인들이 그리스도의 피 흘리심으로 죄의 용서를 얻는다. 셋째로, 모든 성도들은 완전한 복락, 즉 평강을 허락받았다.
(시 4:7,8) 주께서 내 마음에 두신 기쁨은 저희의 곡식과 새 포도주의 풍성할 때보다 더하니이다 내가 평안히 눕고 자기도 하리니 이는 오직 여호와시니이다.”
결국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에게 선포하도록 하신 이 축도의 내용은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을 통하여 우리에게 전달되는 하나님의 은혜를 나타내 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