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복의 말을 하라

축복하는 말을 하라
민6:22-27





오늘 우리는 <민 6:22-27>의 본문 말씀을 같이 보았습니다. 이 시간 본문 말씀에 의지해서 \"축복하는 말을 하라\"는 제목으로 오늘 말씀을 증거해 드리겠습니다.



*첫째: 우리 하나님은 복 주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인생들에게 복 주시기를 원하십니다.

*둘째: 축복(祝福)은 우리 성도들이 해야 합니다. 성도에게는 축복권이 있습니다.

*셋째: 내가 어떤 사람을 축복했을 때, 그가 복을 받기에 합당하면 복이 그에게 임하게 됩니다. 그러나 합당치 않으면 그 복이 내게로 돌아오게 됩니다.



복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이 언제나 나와 함께 하는 것입니다. 이 땅에 있을 때에도 하나님이 나와 함께 계셔서 나를 지켜 주시고 내가 천국에 가서도 하나님과 더불어 영생 복락을 누리는 것, 이것이 복입니다. 이것이 성경에서 말씀하는 복입니다. <시 73:28>에 “하나님께 가까이 함이 내게 복이라”고 말씀했습니다.

복에 대해서 좀 더 구체적으로 말씀 드리겠습니다. <창 24:1-2>에 “번창도 복이라”고 말씀했습니다(신 28:4-6, 33:24). 하나님이 내게 주셔서 내가 정당한 방법으로 취득한 것은 복입니다. <잠 3:16>에 “건강과 장수도 복”이라고 했습니다. <욥 42:12>에 “성공도 복”이라고 말씀했습니다. 이것은「육신적인 복」에 해당됩니다.

그런가 하면「영적인 복」이 있습니다.「영적인 복」은 예수 믿고 천국 가는 것입니다(요 5:24). 마음에 평강과 즐거움을 누리는 것입니다(사 55:2). 신령한 은혜가 넘치는 것입니다(벧전 2:2). 따라서 성경은 이와 같이「영적인 복과 육적인 복」, 이 두 가지 복을 합쳐서 복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한사코 육신적인 복만 추구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또 어떤 사람은 육신적인 복은 죄악시 하면서 영적인 복만 강조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둘 다 잘못입니다. 성경은「육신적인 복과 영적인 복」을 동시에 말씀하고 있습니다.







<첫째> 우리 하나님은 복 주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인생들에게 복 주시기를 원하십니다.



<본문 24절>에 “여호와는 네게 복을 주시고 너를 지키시기를 원하며”라고 하였고, <본문 27절>에 “내가 그들에게 복을 주리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우리 인생들에게 복 주시는 분이십니다. <창 1:27-28>에 “천지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께서 자기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이르시기를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아담과 하와를 위해 에덴 동산을 만드신 이가 우리 하나님이십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우리 인생들에게 복 주시는 분이십니다. 우리가 전쟁 없이 지내는 것,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우리가 배불리 먹고 사는 것,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우리가 예수 믿고 구원 받게 된 것,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복은 사람이 주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십니다. <창 12:3>에 보면,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라고 말씀합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 여기 <민 6:27>에도 보면, “그들은 이같이 내 이름으로 축복할지니 내가 그들에게 복을 주리라”고 하였습니다. 성경이 이와 같이 복이라고 하는 단어와 축복이라고 하는 단어를 분명하면서도 엄격하게 구별해서 사용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성경의 원어를 살펴보면 “복”은 구약성경을 기록한 히브리어로「아쉬레」이고, 신약성경을 기록한 헬라어로는「마카리오스」로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둘 다 “복이 있을지어다”하고 복을 선포할 때 또는 하나님으로부터 직접 복을 받게 되는 것을 의미하고 있습니다(창 39:5, 신 12:15, 시 1:1, 마 13:16, 엡 1:3, 계 14:13). 반면에「축복」또는 「축복하다」의 히브리어「바라크」나, 헬라어「율로게오」는 “좋은 것을 받도록 구하다”는 의미로 쓰여지고 있습니다. 국어 사전에도 보면「축복」은 명사로 “행복을 빎, 신의 은혜를 구하여 빎”으로 되어 있습니다. 한자의「축(祝)」자를 보더라도 빈다는 뜻의「빌 축(祝)」를 쓰고 있습니다.

무슨 말씀입니까? 복을 비는 일, 곧 축복하는 일은 사람이 하고, 복은 하나님이 주신다고 하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복의 근원으로서 우리에게 복을 직접 주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이 또 어디 가서 복을 빌어야 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축복해 주옵소서!”라고 말하지 말아야 합니다. 대신에 “하나님 복 주옵소서”라고 말해야 합니다. 절대로 이 사실을 간과하면 안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 축복해 주옵소서!”하게 되면 그것은 하나님을 사람과 동등한 위치로 끌어 내리는 것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는 것입니다. 사람도 축복하고 하나님도 축복하고 그렇게 할 수는 없는 일입니다. 하나님은 복을 비는 분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복을 직접 내려 주실 분입니다.

하나님을 사람과 동등한 위치로 끌어 내리는 언사는 곧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십계명 가운데 제3계명에서 “내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지 말라 내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는 자를 죄없다 하지 아니하리라(출 20:7)”고 말씀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내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지 말라”고 하신 말씀의 핵심이 어디에 있느냐 하면, “하나님의 이름을 피조물의 이름과 동일 선상에 놓지 말라!”고 하는데 있습니다(시 2:11). 이것을 우리가 알아야 합니다. 여러분, 점쟁이나 귀신이 우리에게 복을 주지 않습니다. 요술쟁이나 마술사가 우리에게 복을 주지 않습니다.

이건 얘기입니다. 어떤 총각이 예쁘고, 돈 많고, 명 짧은 여자와 결혼을 하고 싶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마침 마술 램프에 소원을 말 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기게 되었습니다. 문제는 딱 한가지 소원만 들어주겠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이 총각이 고민을 하다가 한가지 꾀를 냈습니다. 세가지 소원을 묶어서 한마디로 말해버렸습니다.「돈」,「여자」,「결혼」하고 말했습니다. 그 결과 “돈 여자”하고 결혼하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우리 다 아는 예기입니다.

여러분! 우리에게 복 주실 이는 우리 하나님 한 분 밖에는 없습니다.







<둘째> 축복(祝福)은 우리 성도들이 해야 합니다. 성도에게는 축복권이 있습니다.



<본문 23절>에 “아론과 그 아들들(제사장들)은 이렇게 축복하라”고 하였고, <27절>에 “그들은 이같이 축복할지니”라고 하였습니다. 여기 보면, 제사장인 아론과 그 아들들이 백성들을 향하여 축복하는 말을 하고, 축복을 선포하면 내가 그들에게 복을 내리겠다고 하나님께서 말씀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이 축복은 사람이 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제사장이 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감사하게도 저와 여러분에게 이「축복권」이 주어져 있습니다. 그 이유는 오늘 본문에 나오는 아론과 그 아들들은 구약 시대의 제사장들이고, 신약 시대의 제사장은 성도들이기 때문입니다. 저와 여러분이 바로 제사장입니다. 그것도「왕 같은 제사장」입니다. <벧전 2:9> 말씀을 시간 절약을 위해서 화면을 보고 한번 같이 읽겠습니다. “오직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내어 그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자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저와 여러분은「왕 같은 제사장들」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저와 여러분이 사람들을 축복해야 합니다.

미생물 세계를 연구하는 학자들에 의하면 세 종류의 균이 있다고 합니다. 나쁜 균이 있고, 좋은 균이 있고, 좋지도 나쁘지도 않은 기회주의적 균이 있다고 합니다.「좋은 균도, 나쁜 균」도 극소수라고 합니다. 대신「기회주의적 균」은 아주 많다고 합니다. 이 균은 좋은 균과 나쁜 균 틈에서 세력을 살피고 있다가 강한 쪽으로 붙는다고 합니다.

이 세상에는「의」가 있고「불의」가 있습니다. 사는 길이 있고, 죽는 길이 있습니다. 흥하는 쪽이 있고 망하는 쪽이 있습니다. 구원 받는 길이 있고, 지옥 가는 길이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예수가 있고 마귀가 있습니다. “어느 쪽으로 가느냐? 어느 편에 붙느냐?”에 따라 살거나, 죽거나, 흥하거나, 망하거나, 구원 받거나, 멸망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저와 여러분이 해야 할 일이 무엇입니까? 사람을 살리는 일입니다. 그리고 사람들을 행복하게 해 주는 일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가 부지런히 축복해야 합니다.

새해가 되면 사람들이 모두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라고 인사하게 됩니다. 정말 좋은 축복의 인사입니다. “복 많이 받으세요!”하게 되면 명령문 같기도 하지만, 그러나 명령문이 아니고 하나의 축원입니다. 내가 복을 주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그에게 복이 임하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 성도들이 이런 축원을 많이 하는 것이 좋습니다. 우리가 축원하고 축복하면 사람들이 복을 받게 됩니다.

저희들이 어렸을 때에는 무슨 영영소가 부족해서 그랬는지, 코에서 콧물이 참 많이 나왔습니다. 비타민C가 부족해서 그랬는지, 비타민D가 부족해서 그랬는지 잘 모르겠는데요, 어쨌든 그 때는 코에서 잼이 많이 나왔습니다. 그래서 그것을 닦아 내다 보니 옷이 번쩍번쩍 했습니다. 코가 묻어서 팔이 번쩍번쩍 했습니다. 그 때는, 휴지가 있을 리 없었고요, 신문지라도 있으면 감지덕지해야 했습니다. 그런데 부모님들이 그런 자식의 코에다가 시커먼 종이를 갖다 대고는 “흥해라! 흥해라!” 그랬습니다. 어떤 분이 그것을 놓고 참 재미있는 해석을 했습니다. 그래도 그 때 우리 조상들이 자꾸 “흥해라! 흥해라!”해서 오늘날 우리가 이만큼 살게 된 것이라고 했습니다.

웃자고 하는 얘기이기는 하지만, 어쨌든 “망할 자식”이라고 한 것 보다는 낫지 않습니까? 자식을 “망할 자식! 망할 자식”하면서 가르치면 그 자식이 망할 자식 밖에 더 되겠습니까? 오늘 본문에 우리 인생들에게 복 주시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이 잘 나타나 있습니다.

<24-26절>을 한 번 같이 읽겠습니다. “여호와는 네게 복을 주시고 너를 지키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 얼굴로 네게 비취사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사 평강 주시기를 원하노라 할찌니라 하라” 하나님은 우리를 지켜주시는 분이십니다(24절). 하나님께서 각 사람의 범사를 살펴 보시고, 악의 세력으로부터 지켜주십니다(시 37:28). 질병과 환난에서 지켜 주십니다(시 76:3). 그러므로 이 하나님이 항상 지켜주시도록 먼저 우리가 중보 기도를 해야 합니다. 제사장인 우리가 사람들을 축복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그 얼굴을 우리에게 비취사 은혜를 베풀어 주십니다(25절). 하나님의 얼굴은 하나님의 인격을 의미합니다. “하나님께서 그 얼굴을 누구에게 비취신다.”고 하는 것은 “생명과 구원을 베푸신다.”고 하는 뜻입니다. 얼굴을 감추거나, 돌리거나, 외면하는 것은 그 사람의 파멸과 죽음을 의미합니다(신 31:17-18). 신혼 초에는 신랑과 신부가 자꾸만 서로의 얼굴을 보게 됩니다. 그래서 “보고, 또 보고, 자꾸만 보고 싶네.”하는 노래도 있지 않습니까? 그러다가 몇 년의 세월이 훌렁 지나가고 부부싸움이라도 하는 날에는 서로 등을 돌리고 돌아 눕게 됩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이 그 얼굴을 우리를 향해 드시게 되면, 그 때는 우리에게 평강이 임하게 됩니다(26절).

하나님께서 이와 같이 우리 인생들을 지키시고, 은혜 베푸시고, 평강 주시기 원하십니다. 그래서 우리 보고 축복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저와 여러분이 축복하는 말을 통해 하나님의 「복의 통로」가 되어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셋째> 내가 어떤 사람을 축복했을 때 그가 복을 받기에 합당하면 복이 그 사람에게 임하게 됩니다. 그러나 합당치 않으면 그 복이 내게로 돌아옵니다.

<마 10:12-13>에 “또 그 집에 들어가면서 평안하기를 빌라 그 집이 이에 합당하면 너희의 평안이 거기 임할 것이요 만일 합당치 않으면 그 평안이 너희에게 돌아올 것이니라”고 말씀했습니다. 성도가「중보 기도」를 하거나,「축복하는 말」을 하게 되면 그 빌어준 복이 상대방에게 임하게 됩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놀라운 권세입니다.

「부메랑 효과」라는 것이 있습니다.「부메랑」이란 호주 원주민들이 사냥 무기인 부메랑을 목표물에 던져 그것을 맞추지 못하면 되돌아 왔던 것을 가리킵니다. 따라서「부메랑 효과」란 선진국이 개발도상국에 경제 원조나 기술 투자를 해서 생산된 제품이 수요를 충족하고 남아서 다시 역수출까지 하게 되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다른 사람을 축복하다 보면, 그 열매를 내가 거두게 될 때가 많습니다. 이것이 다른 사람을 축복하는 자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누구를 축복해야 합니까? 믿음의 형제를 축복해야 합니다. 우리의 이웃을 축복해야 합니다. 한걸음 더 나아가서 나에게 원수 노릇 하는 사람을 축복해야 합니다.

<벧전 3:8-9>을 한 번 보겠습니다. “마지막으로 말하노니 너희가 다 마음을 같이 하여 체휼하며 형제를 사랑하며 불쌍히 여기며 겸손하며 악을 악으로, 욕을 욕으로 갚지 말고 도리어 복을 빌라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입었으니 이는 복을 유업으로 받게 하려 하심이라” 여기 보면, 이를 위하여 우리가 부르심을 받았다고 했습니다. 마음을 같이 하여 체휼하기 위해서, 그러니까 서로 한마음이 되어서 기쁨과 슬픔을 함께 나누기 위해서 우리가 부름을 받았습니다. 그 다음에 형제를 사랑하며, 불쌍히 여기며, 겸손히 섬기는 자 되기 위해서 우리가 부름을 받았습니다. 또 한가지, 악을 악으로 갚지 않고 도리어 복을 빌기 위해서 우리가 부름을 받았습니다.

우리가 그렇게 하면 우리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복을 유업으로 주십니다. 나의 원수나 다름없는 사람이나 나와 아무 상관이 없는 사람을 우리가 축복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축복은 커녕 오히려 저주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제사장으로 부름 받은 우리에게는 저주의 권리가 없습니다. 다만「축복의 의무」만 있을 뿐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어디를 가든지, 누구를 만나든지「축복하는 말」을 해야 합니다.







◈이제 오늘 말씀의 끝을 맺겠습니다◈



참된 평강은 이 세상 어디에도 없습니다. 그러나 단 한 곳, 우리가 주 안에서만큼은「참 평강」을 누릴 수가 있습니다. 주 안에 영원한 생명과 참 평강과 모든 문제의 해결의 열쇠가 있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인생들이 삶에 찌들고 고통 받으면서 살기를 원치 않으십니다. 잘 되기를 원하십니다. 복 받고 살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우리 보고 저들을 축복하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축복하면 하나님께서 저들에게 복을 주십니다. 다른 사람 잘 되라고 축복하다 보면, 결국 나도 잘 되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