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순종과 축복 레26:3-13 (북한 선교 보고: 경운기 100대/ 베리 15만 주/ 기도응답 미국 한국 지원 100만명 한달 살 리기…) 성경 말씀은 생각보다 매우 단순하고 성경의 구조도 매우 간단합니다. 특별히 구약 성경 이 그렇습니다. 한마디로 순종하면 축복이요, 불순종하면 형벌입니다. 순종이 사는 길이고, 불순종이 죽은 길이라는 것 입니다. 레위기보다 앞서 나온 출애굽기(23장 22-33절)에도 똑같은 내용을 담고 있고 레위기 뒤에 나오는 신명기(28장)도 내용은 동일합니다. 시내산 언약에서 하나님이 하나님의 백성들에 게 요구하시는 내용은 26장 1-2절의 내용입니다. “너희는 자기를 위하여 우상을 만들지 말지니 목상이나 주상을 세우지 말며 너희 땅에 조각한 석상을 세우고 그에게 경배하지 말 라 나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임이니라 너희는 나의 안식일을 지키며 나의 성소를 공경하라 나는 여호와니라” 이 말씀에 보면 “하지 말라”하는 부정적인 내용도 있고 “하라”하는 긍정적인 내용도 있습니다. 하지 말라는 부정적인 내용은 우상이나 목상이나 주상을 만들지도 말고 세우지 도 말고 경배하지도 말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우리 삶의 저주와 형벌의 원인이 된다는 것 입니다. 또 하라고 하는 긍정적인 내용은 안식일을 지키고 나의 성소를 공경하라는 것입니 다. 레위기 26장은 “이 법에 순종하고 지키면 축복이요, 불순종하면 형벌이다.”하는 간 단한 구조입니다. 그런데 이 말씀은 쉽게 이해가 되는 것 같지만 어려운 면이 있습니다. 먼저 시내산 언약을 살펴보겠습니다.(레 26장) 이것을 바로 이해하기 위해서 레위기 26장의 구조를 먼저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1-2절은 시내산 언약의 내용을 말하고 있습니다. 3-13절은 모세의 언약에 순종하는 자의 받을 축복을 말하고 있습니다. 3절입니다. “너희가 나의 규례와 계명을 준행하면” 하나 님의 규례와 계명을 준행하면 하나님이 세 가지 축복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첫째로는 물질적인 번영(prosperity)입니다. 4절에 보면 “내가 너희 비를 그 시후에 주리니 땅은 그 산물을 내고 밭의 수목은 열매를 맺을지라.” ‘시후’란 시간과 때에 맞추어서 비를 주겠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늘의 복 을 내려 주시겠다는 말씀입니다. 5절에 “너희의 타작은 포도 딸 때까지 미치며 너희의 포 도 따는 것은 파종할 때까지 미치리니” 이것은 풍년을 말하는 것입니다. 타작이란 보리 와 밀의 타작입니다. 원래 이스라엘 백성들은 3월에 타작을 합니다. 그런데 포도는 7월에 땁니다. 보리와 밀의 추수가 3월에 시작해서 7월까지 이어질 것이라는 것입니다. 네 달 동 안이나 타작을 하니 얼마나 풍년이겠습니까? “포도 따는 것은 파종할 때까지 미친다”는 말도 마찬가지입니다. 밭에 씨를 뿌리는 파종은 10월입니다. 그러면 세 달 동안이나 포도를 딴다니 얼마나 풍년이면 세 달 동안이나 따겠습니까? 결국 이 말씀은 하나님의 말씀 율법에 순종하면 물질적인 현세적인 축복이 오고 번영이 온 다는 것입니다. 9-10절에도 “내가 너희를 권고하여 나의 너희와 세운 언약을 이행하여 너 희로 번성케 하고 너희로 창대케 할 것이며 너희는 오래 두었던 묵은 곡식을 먹다가 새 곡 식을 인하여 묵은 곡식을 치우게 될 것이며” 번성과 창대 얼마나 좋은 단어입니까? 묵은 곡식으로 밥을 먹다가 햅쌀밥을 먹게 되면 얼마나 맛있습니까? 묵은 곡식을 내어 버리고 햇곡식을 먹게 된다는 것은 축복인 것입니다. 둘째로는 육체적인 안전과 평안입니다. (Peace and Security) 5절 후반부터 보니까 “너희가 음식을 배불리 먹고 너희 땅에 안전히 거하리라”라고 나 와 있습니다. 음식을 아무리 배불리 먹어도 편안히 잠을 잘 수 없다면 소화가 되지 않을 것입니다. 안전하지 않으면 배불리 먹는 것이 소용없다는 것입니다. 6절에 “내가 그 땅 에 평화를 줄 것인즉 너희가 누우나 너희를 두렵게 할 자가 없을 것이며 내가 사나운 짐승 을 그 땅에서 제할 것이요 칼이 너희 땅에 두루 행하지 아니할 것이라 또 너희가 대적을 쫓으리니 그들이 너희 앞에서 칼에 엎드러질 것이라 너희 다섯이 백을 쫓고 너희 백이 만 을 쫓으리니 너희 대적들이 너희 앞에서 칼에 엎드러질 것이며.” 전쟁이 일어나긴 하겠지 만 모두 승리할 것이라는 것입니다. 외부적인 적이 와도 승리하고, 내부적인 적이 와도 승 리하고, 들짐승도 그들을 해하지 못할 것입니다. 얼마나 안전하고 평안합니까? 율법에 순 종하게 되면 신체적인 평화와 안전이 있을 것입니다. 얼마나 큰 복입니까? 요즘 형편으로 말하면 너희 땅에는 지진도 없을 것이며, 쓰나미도 없을 것이고, 홍수도, 기근도, 전염병 도 없을 것이라는 약속입니다. 셋째로는 영적으로 하나님의 임재(Presence of God)축복입니다. 11-12절에 “내가 내 장막을 너희 중에 세우리니 내 마음이 너희를 싫어하지 아니할 것이 며 나는 너희 중에 행하여 너희 하나님이 되고 너희는 나의 백성이 될 것이니라” 이것은 하나님의 임재의 축복입니다. 14-39절은 불순종하는 자가 받을 형벌을 기록하고 있는 것입니다. 14-15절을 보겠습니다. 형벌의 조건입니다. “그러나 너희가 내게 청종치 아니하여 이 모든 명령을 준행치 아니하 며 마음에 나의 규례를 멸시하며 마음에 나의 법도를 싫어하여 나의 모든 계명을 준행치 아니하며 나의 언약을 배반할진대” 십계명을 지키지 아니하고 언약을 배반하면 어떻게 됩 니까? 형벌을 받게 됩니다. 형벌의 내용은 축복의 내용과 정 반대입니다. 형벌의 첫 번째는 물질적인 가난(Poverty)입니다. 앞의 축복은 물질적인 번영이었습니다. 그런데 형벌은 반대로 물질적인 가난입니다. 심지 어는 얼마나 가난한지 29절에 보니까 “너희가 아들의 고기를 먹을 것이요 딸의 고기를 먹 을 것이며” 아들과 딸을 잡아먹게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역사를 보면 예레미야 애가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자기 자녀를 서로 잡아 먹었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 니까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면 그 정도의 가난이 온다는 것입니다. 지금도 이런 흉흉 한 소식이 들려옵니다. 두 번째는 평화와 안전이 변하여 육체적인 위험(Peril)이 온다는 것입니다. 육체도 병들 고 생명도 쇠약하고 들짐승도 자녀와 육축을 해치며 대적을 당할 힘이 없게 되니 얼마나 손해입니까? 세 번째로는 하나님의 임재가 변하여 영적으로 하나님이 부재함(Absence of God)을 경험하 게 됩니다. 24절을 보겠습니다. “나 곧 나도 너희에게 대항하여 너희 죄를 인하여 너희 를 칠 배나 더 칠지라” 19절을 보겠습니다. “내가 너희의 세력을 인한 교만을 꺾고 너 희 하늘로 철과 같게 하며 너희 땅으로 놋과 같게 하리니” 사람이 세력을 좀 가지면 교만 해집니다. 정치적, 물질적 세력을 갖게 되면 교만해지지 않습니까? 그래서 하나님을 대적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그런 교만을 꺾어 버리겠다는 것입니다. 저는 오늘 여러분에 게 이런 형벌이 하나도 임하게 되지 않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 말씀의 구조는 너무나 간단합니다. 순종하면 축복이요 불순종하면 형벌이라는 것입니 다. 그런데 이 말씀은 이해하기가 어렵습니다.“과연 이 말씀이 오늘날 우리 현실에 어떻 게 적용이 될 수 있는가?”하는 점은 어려운 문제입니다. 그래서 이 말씀에 대해서 많은 사람들이 오해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시내산 언약에 대한 오해를 극복해야 합니다. 첫째로는 율법주의자들(Legalist)의 오해가 있습니다. 그들은 모세의 율법에 순종하면 천 국이요 불순종하면 지옥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들은 모세의 율법을 구원의 조건으로 생각 한 것입니다. 그러나 모세의 율법은 구원의 전체조건도 아니요 구원의 일부조건도 아닙니 다. 오늘 레위기 26장은 기본구원에 관한 내용이 아닌 것입니다. 천국 지옥을 결정해주는 말씀이 아닌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을 향한 현세적인 축복과 현세적인 형벌에 관한 말씀입니다. 기본 구원인 천 국과 지옥은 무엇으로 결정됩니까? 한가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느냐 그렇지 않느냐에 따라 결정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율법주의자들의 오류는 치명적인 오류요, 이 단적인 오류인 것입니다. 두 번째로는 적극적인 사고방식 학파의 오류입니다. 노만 빈센트 필(Norman Vincent Peale)이라는 사람이 미국에서 “적극적 사고방식”이라는 책을 써서 유명해졌습니다. 그 리고 로버트 슐러(Robert H. Schuller)라는 목사가 소위 “possibility thinking(가능적 사고)”를 강조했습니다. 요즘은 조지 오웰의 긍정적 사고가 유행입니다. 이 사고는 사람 들이 적극적인 사고, 가능적 사고, 긍정적인 사고를 하게 되면 그것이 행동으로 이어지게 되기 때문에 적극적으로 사고하게 되면 성공과 번영이 오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심리학적으로 볼 때 그런 측면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이 그것을 보장해 주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나의 사고의 여부에 따라 하나님의 축복이 보장되는 것은 아니 라는 말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보장해주시는 것은 무엇입니까? 내가 하나님의 법에 순종 하느냐 불순종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세 번째로 건강과 부요의 복음의 오류입니다. 이것은 소위 ‘Health and Wealth Gospel’ 이라고 합니다. 누구든지 예수를 믿으면 건강하고 부요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번영신학이 라고도 합니다. 그러므로 병들고 가난한 것은 모두 죄의 결과요 허물의 결과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욥의 세 친구들의 신학입니다. 그런데 물론 그런 면도 있습니다. 오늘 본문도 그런 사상을 약간은 지지해 주는 듯 합니다. 그러나 히브리서 11장을 볼 때에 믿음의 위대한 영웅들 가운데는 고통을 당한 사람이 많습 니다. 그들은 희롱과 채찍질, 결박, 옥에 갇히는 시험과, 돌로 치는 것과, 톱으로 켜는 것 과, 칼에 죽는 것을 당하고, 양과 염소의 가죽을 입고 유리하며 궁핍과 환란과 학대를 받 았습니다. 위대한 믿음의 조상들 가운데 죽고 맞고 망하고 가난하고 고생을 겪은 사람들 이 많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가나안 땅에 이스라엘 백성을 향한 원리가 오늘날 성도 들에게 100퍼센트 무조건 적으로 다 적용된다고 볼 수는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건강과 부요복음, 예수 믿으면 무조건 건강하고 부요하게 되어야 한다는 것도 대 단한 오류입니다 치명적이라고는 말할 수 없어도 상당한 오류요 사람들을 진리로 이끌지 않는 오류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시내산 율법의 목적이 무엇이겠습니까? 그러면 오늘 레위기 26장을 기록한 목적은 무엇입니까? 이것은 결국 시내산 율법의 목적 이 무엇이냐 하는 것과 일맥상통한 질문입니다. 레위기 26장의 목적을 깨닫기 위해서는 이 스라엘의 역사를 생각하고 그 속에서 그 목적을 발견할 수 밖에없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이 역사를 보게 되면 세 가지 명백한 진리를 발견하게 됩니다. 첫째는 하나님은 모세의 언약을 성실하게 이행하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 들이 모세 언약에 순종하면 약속하신 대로 축복해 주셨습니다. 그런데 불순종 하면 약속하 신 대로 형벌을 내리셨습니다. 여호수아서를 보게 되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여호수아의 인 도를 따라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가나안 땅을 정복하고, 아모리왕 시혼을 정복하고 바 산 왕 옥을 정복하고 요단 동편의 원수들을 다 정복하고 여리고성, 아이성을 무너뜨리고 가나안 땅 남부의 적을 정복하고 가나안 땅 북부의 적도 정복하고 그 땅을 제비뽑아 나누 어 기업을 차지하게 되는 그런 스토리를 볼 수 있지 않습니까? 여호수아서의 내용은 순종 할 때 받는 축복의 모형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다시 사사기로 넘어가게 되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우상을 숭배하고 하나님의 거역합 니다. 그러므로 불순종에 대한 형벌이 사사기의 핵심내용입니다. 이방나라를 들어서 이스 라엘 백성을 치게 하고 이스라엘 백성은 고통을 받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레위기 26 장 신명기 28장의 말씀을 이스라엘 역사 가운데 신실하게 수행하셨습니다. 두 번째는 이스라엘 백성들은 순종하여 살기를 거절했다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대로 하면 모세의 율법에 순종해서 복 받으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참으로 이상하리만치 반대방향으로 나가는 것입니다. 자꾸 불순종합니다. 불순종 하면 형벌을 받는다는 것을 뻔히 잘 알면서도 그쪽으로 자꾸 나가는 것입니다. 불순종해 서 벌 받는 쪽으로 자꾸 나가는 것이 이스라엘의 역사라는 것입니다. 오죽하면 이사야 선 지자는 이렇게 탄식했습니다. 이사야서 1장 4-6절에 “슬프다 범죄한 나라요 허물 진 백성 이요 행악의 종자요 행위가 부패한 자식이로다 그들이 여호와를 버리며 이스라엘이 거룩 한 자를 만홀히 여겨 멀리하고 물러갔도다 너희가 어찌하여 매를 더 맞으려고 더욱 더욱 패역하느냐 온 머리는 병들었고 온 마음은 피곤하였으며 발바닥에서 머리까지 성한 곳이 없이 상한 것과 터진 것과 새로 맞은 흔적뿐이어늘 그것을 짜며 싸매며 기름으로 유하게 함을 받지 못하였도다” 참 이상하지 않습니까? 얻어터지고 또 터지고 머리 터지고 가슴 터지고 다리 절고 그런데도 불순종과 형벌의 길을 가느냐 하는 것입니다. 얼마나 이상합니까? 오늘날도 하나님께서 사람들에게 너희는 죄인이다. 죄를 회개하고 죄사함 받고 구원 받아 라 얼마나 쉽고도 간단한 복음을 주셨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의 반항은 끝이 없 습니다. 그것은 인간은 아담 하와로부터 원죄로 인한 하나님을 거역하는 죄성을 가지고 있 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이것이 인간의 내성입니다. 그렇다면 율법의 목적은 무엇인 지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로마서 3장 20절에 바울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 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 그러므로 레위기 26장의 첫 번째 목적은‘인간은 복 받는 길을 주어도 못 가는 존재다.’ ‘인간은 형벌의 길을 분명히 경고해도 그 길을 가는 존재다.’라는 것, 즉 우리의 죄성 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역사 속에서 또 레위기 26장에서 우리의 죄성을 드러내서 하나님은 결국 아브 라함의 언약으로 이끌어 가십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두 가지 언약을 주셨습니다. 하나는 시내산 언약입니다. 시내 산 언약은 모세의 언약입니다. 모세의 언약은 특징이 쌍방언약이라는 것입니다. 조건적인 언약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조건적 언약에는 언제나 실패합니다. 그런데 이 시내산 언약보다 430년 먼저 하나님이 맺은 언약이 아브라함의 언약입니다. 아 브라함의 언약은 하나님이 일방적으로 내리신 언약입니다. 아브라함의 언약의 특징은 아브 라함의 순종에 달려 있지 않습니다. 무조건적인 언약입니다. “내가 너를 택하고 내가 너의 씨로 말미암아 만민이 복을 얻게 할 것이라.”‘아브라함 의 씨’(The seed of Abraham)는 복수로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다. 단수로 기록되어 있습니 다. 그러므로 사도바울은 아브라함의 씨, 그로 인해 만민이 복을 얻을 것이라고 했던 그 씨는 바로 예수 그리스도라고 증거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레위기 26장은 현세적인 축복만을 말하는 것 같아도 결국은 그것이 아닙니다. 현 세적인 축복의 길을 주어도 불순종하는 인간은 결국은 죄를 깨닫게 되고 허물을 짓게 되 고 결국 ‘아하 내가 하나님이 조건하신 이 시내산 율법으로는 복을 받을 수 없는 존재로 구나 그러면 나는 어떻게 할꼬, 나는 430년 전에 하나님이 맺어주신 아브라함의 언약, 아 브라함의 씨,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복을 얻게 될 것이라 하는 그 언약을 의지할 수 밖에 없구나.’ 하는 결론을 내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브라함의 언약의 특징은 사람은 율법에 순종해서 그 행위로 복을 받는 것이 아 니라 믿음으로 복을 받게 된다는 이신득의의 원리를 확립시켜 주는 것입니다. 로마서 4장 2-3절을 읽어보겠습니다. “만일 아브라함이 행위로써 의롭다하심을 얻었으면 자랑할 것 이 있으려니와 하나님 앞에서는 없느니라 성경이 무엇을 말하느뇨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 으매 이것이 저에게 의로 여기신 바 되었느니라” 갈라디아서 3장 24절도 이렇게 말씀합니다. “이같이 율법이 우리를 그리스도에게로 인도 하는 몽학선생이 되어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얻게 하여 함이니 라” 율법은 첫째로 우리의 죄성을 드러내는 기능이요, 둘째로는 결국 그리스도 예수께로 인도하는 몽학선생의 기능이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레위기 26장과 신명기 28장의 축복은 오늘날 예수 믿고 구원받은 성도에게는 적 용되지 않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예수 믿고 구원 받아서 이제는 영원한 축복 구원의 축 복, 영생의 축복을 받은 우리는 우리에게도 율법은 아직도 기능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을 위대한 칼빈은 율법의 제 3기능(The third function of the law)이라고 말했습니 다. 사도 바울도 로마서 3장 31절에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말미암아 율법을 폐하느뇨 그 럴 수 없느니라 도리어 율법을 굳게 세우느니라” 율법의 제 3기능은 구원받고 영생 얻은 사람들이 현세에서 복을 받고 사는 원리를 말해주 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 원리는 하나님의 법에 순종하면 번영과 평화와 하나님의 임재 가 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법에 불순종하면 가난과 위험과 하나님의 진노를 경험하게 될 것이라는 말입니다. 십계명을 어기고, 간음하고 싸움하고 도적질하고 탐심을 부리고 욕 심을 부리고 안식일을 어기고 주일도 안 지키고 우상을 섬기는 사람이 현세에서 잘 되겠습 니까? 잘되는 것처럼 보일지라도 그것은 잘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법에 순종하면 현세의 축복이요 불순종하면 현세에도 고통과 형벌이 초래된다는 법칙은 율법의 제 3기능으로서 오늘날 우리 성도들에게도 적용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율법의 시대와 오늘날의 차이가 있다면 무엇입니까? 내가 불순종해서 하나님의 형 벌이 초래되었다고 할지라도 회개하고 돌이키면 우리를 구원해주실 구원자가 우리와 언제 나 함께 있다는 것입니다. 그분은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러므로 결론은 이것 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그 분이 순종의 모델입니다. 순종도 즐겨 순종하고, 온전히 순종하고, 완 전히 순종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예수님의 모습이 그렇습니다. 어려서부터 순종을 배우셨 고 나중에는 죽기까지 순종하셨습니다. 주님의 순종을 결론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1. 순종은 어릴 적부터 익혀야 할 습관입니다. 모든 아름다운 습관들은 어릴 적에 익히지 아니하면, 성인이 되어 익히기 위해서는 훨씬 더 값비싼 대가를 지불해야 합니다. 그래서 만들어진 우리 속담이 “세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 아닙니까? 서구 속담에도 “요람에서 배운 것이 무덤까지 간다”는 말이 있습니 다. “습관을 제2의 천성”이라고 말합니다. 우리가 우리의 자녀들의 부당한 반항을 어려서 부터 용납하면 우리의 자녀들은 평생을 반 항의 자녀로 살아갈 가능성이 아주 큽니다. 반면에 우리의 자녀들을 어려서부터 순종의 자 녀로 키우면 평생을 순종의 자녀로 살아갈 가능성이 아주 큽니다. 예레미야 22:21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네가 평안할 때에 내가 네게 말하였으나 네 말이 나는 듣지 아니하리 라 하였나니 네가 어려서부터 내 목소리를 청종하지 아니함이 네 습관이라” 이제 우리에 게도 동일하게 존재하는 이 불순종의 습관대신 아름다운 순종의 습관을 가지시기를 갈망하 십니까? 예수님의 어려서의 습관을 주목해 보십시오. 누가복음 2:51에 보시면 그는 나사렛에서 그 분의 육신의 부모를 향하여“순종하여 받드심”의 삶을 사셨습니다. 주석가 윌리엄 헨드릭 슨은 이 대목을 이렇게 번역하고 있습니다. “(he)rendered constant obedience to them\" \"지속적 순종을 드리셨다”는 말입니다. 어쩌다 한번 순종하신 것이 아니라 순종이 그의 삶의 방식 곧 삶의 습관이셨음을 나타내는 대목입니다. 다시한번 봉독하겠습니다. 눅 2: 51절에 보시면 “예수께서 함께 내려가사 나사렛에 이르러 순종하여 받드시더라” 하셨습니다. 그리고 요8:29절에도 보시면“ 나를 보내신 이가 나와 함께 하시도다. 내가 항상 그의 기뻐하시는 일을 행하므로 나를 혼자 두지 아니하셨느니라” 하셨습니다. 순종 은 어려서부터 익혀야 할 습관입니다. 2. 순종은 고난을 통해 학습되어야 할 습관입니다. 우리 중에 어떤 분들은 나는 이미 나이 많아 순종의 습관을 터득하기에 너무 때가 늦었다 고 생각하실지 모릅니다. 물론 성인이 되어 습관을 고치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닙니다. 그러 나 불순종이나 반항이 학습된 것이라면 순종도 어렵지만 다시 학습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가 우리를 순종의 사람이 되도록 훈련하시는 가장 보편적인 방법의 하나가 고난 인 것입니다. 시편 119:67의 말씀을 기억하십니까? “고난당하기 전에는 내가 그릇 행하였 더니 이제는 주의 말씀을 지키나이다” 그렇습니다. 고난이 우리의 불순종과 반항을 교정 하고 우리를 순종의 자리에 반듯하게 세우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우리가 예수를 믿고 구원을 받았다고 해서 고난이 면제되지 않는 이유인 것입 니다. 그래서 고난은 의미가 있는 것 입니다. 그래서 앤드류 머레이는 “우리가 예수를 믿는 순 간 우리는 모두 순종의 학교에 입학한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이 학교에서 우리는 여러 유형의 고난을 통해 마침내 순종하는 것을 배워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고난이 오거든 원망하지 마십시오. 억지로라도 기뻐하십시오. 더 반항하는 자가 되지 마시고, 내가 이 고난속에 배워야 할 순종의 레슨이 무엇인가를 묻고 기도하십시오. 히브리서 기자는 히5:8-9에서 심지어 예수님도 이 고난을 통해 순종을 배우셨다고 말합니 다. “그가 아들이면서도 받으신 고난으로 순종을 배워서 온전하게 되셨은즉” 그렇습니 다. 메시아이신 주님 예수께서도 순종을 배워 온전하게 되실 필요가 있었다면 여러분과 저 는 얼마나 더 순종을 배워가야 할까요? 그러면 성도 여러분, 고난이 올 때 우리가 결심할 것은 오직 하나입니다. 순종의 사람이 될 것을 결심하십시오. 순종이 축복입니다. 3. 순종은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습관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순종이 이렇게도 중요한 이유가 무엇입니까? 물론 순종은 우리를 온전하 게 하는 유익이 있습니다. 그러나 순종의 궁극적인 이유는 하나님의 뜻을 따르기 위해서 인 것입니다. 겟세마네 동산의 기도의 결론이 무엇이었습니까? “내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옵소서” 그래서 그분은 마침내 하나님 아버지의 인류 구속의 뜻을 이루시고자 기꺼이 십자가의 고난을 감당하지 않으셨습니까? 그렇게 해서 그 분은 아버지의 뜻을 이루시는 순 종의 삶을 완성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이제 어떻게 되셨습니까? 히브리서 5:9 에 의하면 “온전하게 되셨은즉 자기에게 순종하는 모든 자에게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시고” 10절에 의하면 우리를 위하여 끝없 이 기도하시는 우리의 영원한 대 제사장이 되신 것입니다. 예수님의 생애를 보면 순종하 는 자들에게는 이런 하늘의 음성이 들려옵니다. “보라 내 사랑하는 아들(딸)이요, 내 기 뻐하는 자로다!” 오늘 우리 시대의 문화는 문자 그대로 반항의 문화라고 해도 지나친 것이 아니게 되었습니 다. 이런 반항의 모습은 우리의 가정에서도, 직장에서도, 학원에서도, 거리에서도, 관공서 에서도, 심지어 교회에서도 낯선 것이 아니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정당한 반항이 가지는 의미 있는 가치에도 불구하고 성경은 일관성 있게 순종의 문화를 가르치고 있다는 것을 아 십니까? 오늘 우리의 시대에서 순종은 가장 인기 없는 레슨이고 학교도 가르치기를 포기한 구시대 의 가치로 취급되지만, 그것은 우리의 주되신 예수님이 스스로의 삶으로 보여주셨고 그의 제자들이 오늘도 여전히 붙잡고 살아야 한다고 가르치신 가치인 것을 아십니까? 세상의 여론과 상관없이 성경은 이 세상을 본받지 말고 왕 되신 주님을 따르는 왕따가 되 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이것이 진정한 축복의 길 입니다. 하늘의 축복을 받고 구원의 선물을 받으신 여러분! 이 땅에서도 순종하심으로 넘치는 축복 을 누리며 사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