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종에 대한 축복
순종에 대한 축복
학2:10~19
성전건축과 관련되어진 축복을 말할 때마다 저는 상당한 거부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특히 신앙이 무엇인가?하는 것을 가지고 고민할 무렵부터는 더욱그러했습니다. 그래서 부흥사들이 건축헌금을 하면 복을 받는다는 말을 할 때, 저는 한편으로 그 사람들을 비웃었던 적이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부흥사들은 단순히 누가 어떻게 헌금을 했는데 복을 받았더라는 식으로만 말을 했지 그 사실에 대한 성경적인 뒷받침을 말하지 않았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리고 또 다른 이유가 있다면 \'복\'을 말하는 것은 저급한 종교에서나 있을 법한 것이지 하나님을 믿고 그 분을 우리의 아버지로 모시고 예수그리스도를 우리의 구주로 고백하는 우리들이 이 세상에서의 \'복\'을 말한다는 것이 왠지 자존심이 상하는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아마 여러분 가운데서도 이런 부분에 대단히 거부감을 가지고 계시는 분도 있으리라 생각을 합니다. 요즘 젊은이들 사이에 자주 등장하는 단어가 하나있습니다. \'기복신앙\'이라는 단어입니다. 그리고 특히 기독교가 기복신앙화 되어 간다는 것에 대해 우려하는 목소리가 매우 높습니다.
며칠전 컴퓨터 통신을 통해서 이런 것이 매우 위험한 수준에 이르렀다는 사실을 실감하게 되었습니다. 컴퓨터 통신에 \'큰 마을\'이라는 방이 있습니다. 그곳에는 어떤 생각이든지 자신의 생각을 게시할 수 있는 일종의 게시판과 같은 곳입니다. 그런데 그 방에 통신가입자들이 띄운 글을 보고 저는 정말 놀랐습니다. 우리사회가 기독교에 대해 이렇게 비판적이고, 이렇게까지 나쁜 감정을 가지고 있는가?할 정도였습니다.
그리고 더욱 놀란 것은 기독교가 기복신앙에 사로잡혀있다는 사실을 가장많이 지적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기복신앙이라 함은 원래 미신에서 비롯된 것인데 그들의 주장을 그대로 받아들인다면 기독교도 상당히 많은 부분에 있어서 미신화 되어있다는 뜻이 되기도 합니다.
사실 제가 성경을 공부하기 전까지는 저도 이런 생각에 한때는 사로잡혀 있었습니다. 기독교에서 \'복\'을 말하면 그것이 곧 \'기복신앙\'과 연결되어지는 것이라고 생각을 했습니다. 그러나 성경을 좀더 깊게 공부하면서 부터 꼭 그런것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뿐만아니라 \'복\'에 대한 하나님의 분명한 약속이 성경에 너무도 많이 있다는 사실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그 약속이 바로 오늘 본문의 말씀에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학개선지자의 말에 자극을 받아 성전건축에 재시동을 걸었습니다. 그들은 한달동안 정말 열심히 그 일에 헌신을 했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일만 생각하면서 그들의 땀과 수고를 아끼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전이 건축되어진다면 더이상 바랄 것이 그들에게는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열심을 다해서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물질을 드렸고, 땀과 수고를 드렸는데 하나님의 전은 솔로몬의 성전만 못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전을 정말 아름답게 건축하고 싶었는데 그들이 바라던 바와같이 하나님의 전은 외형적으로 아름답지 못했습니다. 그러자 그들은 낙심하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열심히 모든 것을 바쳐 수고했는데 기껏 이정도 밖에 되지 않나?\"해서 그들은 스스로 실망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마음을 보셨습니다. 비록 솔로몬과 같이 아름다운 성전을 건축하지는 못했지만 그 속에 담긴 그들의 수고와 그들의 땀과 그들의 희생을 하나님은 보시고 오히려 솔로몬의 성전에 임하였던 영광보다 더 큰 영광으로 이곳에 머물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성전건축에 있어서 제일 먼저 고려되어야 할 사항이 바로 이것입니다. 그속에 우리들의 희생이 있어야 합니다. 그 곳에 우리들의 땀과 수고가 있어야 합니다. 희생이 없는 화려함을 하나님은 기뻐하지 않으십니다. 나의 희생이 싫어서 하나님의 전을 초라하게 만들고자 하는 것도 하나님은 기뻐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온갖노력과 희생을 다 했음에도 불구하고 성전이 초라하게 지을 수 밖에 없었던 사실에 실망하고 있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이렇게 위로의 말을 아끼지 않으셨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 말씀에 다시 힘을 얻고 성전건축에 박차를 가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이제 위로만으로 그치지 아니하시고 그들을 향해 직접\'복\'을 주시겠다고 약속을 하고 계십니다.
그래서 선지자 학개를 통해 오늘 세번째 말씀을 선포하고 계십니다. 이 말씀은 그들이 성전 건축을 시작한지 꼭 3달 뒤에 선포되어진 말씀입니다. 본문 10절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다리오왕 2년 9월 24일에 여호와의 말씀이 선지자 학개에게 임하니라\"
지금 이시기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밭갈이와 파종을 위해서 꼭 필요한 것이 \'이른비와 늦은비\'입니다. 이른비는 9월말에서 10월에 걸쳐서 내리는 비(雨)이며, 늦은비는 4월과 5월에 걸쳐서 내리는 비(雨)입니다. 이 이른비와 늦은비는 그들의 파종과 추수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그래서 이른비와 늦은비가 적당히 오면 그 해 농사는 대풍(大豊)을 거두게 됩니다.
그런데 그들이 성전 건축을 중단하고 15년간을 그대로 방치해두었을 때, 해마다 이른비와 늦은비가 적당히 내리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열심히 씨를 뿌리고 농사를 했지만 결실은 그들이 기대했던 것보다 훨씬 적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렇지만 그들은 그 원인을 알지 못했습니다. 왜 자신들이 열심히 일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결실을 절반밖에 거둘 수 없었는지 알지 못했습니다.
단지 그들은 이른비와 늦은비가 오지 않은 것을 원망했을 뿐입니다. 그리고 그 이른비와 늦은비가 적당하게 오기만 하면 농사는 다시 잘 되리라는 기대감만 가지고 있었습니다. 왜 이른비가 적당하게 내리지 않았는지, 그 원인이 어디에 있는지는 생각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고 보면 하나님의 명령에 불순종해서 니느웨로 가지 않고 다시스로 가는 배를 탔던 요나의 경우를 우리는 여기서 생각을 해 볼수 있습니다. 요나가 탄 배가 풍랑을 만나 그 배에 타고 있던 모든 사람들이 죽을 지경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뱃사공들은 그 즉시 제비뽑기를 통해 그 풍랑의 원인이 어디에 있는지를 파악하고자 했습니다. 그리고 그 원인이 요나에게 있었던 사실이 밝혀지고 요나는 바다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인생을 살아갈 때도 이러한 사실에 영적인 눈을 뜨고, 깨어있을 필요가 있습니다. 내 인생에 어려움이 닥치고, 먹장구름이 드리워질 때, 그 원인이 어디에 있는지를 한번 깊히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 위기만 탈출하면 다시 밝은 내일이 있을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감보다는 왜 자꾸 이런 어려움이 닥치는지 진지하게 그 원인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는 말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성전건축을 방치해둔 지난 15년의 세월동안 왜 이른비와 늦은비가 적당하게 오지 않아 그들이 열심히 노력했음에도 불구하고 결실이 없었던지를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이 사실을 이제 학개 선지자가 그들에게 깨우쳐 주고 있습니다.
첫번째로 학개 선지자가 지적하고 있는 것은 지난날 그들이 보여준 행위가 지극히 형식적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바벨론 포로 생활을 끝내고 고향으로 돌아온 후 하나님께 성물을 바치고 제사도 드렸습니다. 더구나 그들은 그토록 소원했던 하나님의 성전을 건축하기 위해 자신의 물질도 하나님께 바쳤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학개선지자를 통해서 말씀하고 계시는 것은 그들의 그런 행위가 형식적인 행위였다는 것입니다. 또 그들이 바친 것이 하나님앞에 순수하지 못하고, 부정한 것이었다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12절,13절 읽을 것-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때때로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착각을 하면서 살 때가 있습니다. 그것은 \'내가 신앙생활을 오래 했기 때문에 그래도 남들보다는 믿음이 좋다\'라고 생각하거나 아니면 \'주일 예배에 빠지지 않고 참석을 하니까 그래도 남들보다는 하나님께서 좋게 봐 주실 것\'이라는 생각입니다.
그런데 신앙생활이 오래면 오래 될 수록, 우리 마음가운데 더 깊은 감동과 더 깊은 은혜가 있어야 하는데도 어떨때는 초신자들보다 더 비판적이고, 더 은혜스럽지 못한 말을 할 때가 많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형식적으로 참여했던 지난날의 일들을 기뻐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래서 학개선지자를 통해 이 사실을 제일먼저 지적하고 계십니다. 어떤 분들은 이렇게 말씀하시기도 합니다. \"내가 교회에 십일조도 꼬박꼬박 바치고, 감사헌금도 하는데 왜 하나님은 우리 가정을 축복하시지 않나?\"라고 말입니다.
또 사업을 하시는 분들을 고민가운데 빠트리게 하는 문제가 있습니다. \"순수이익에서 십일조를 해야 하나 아니면 매출에서 십일조를 해야 하나?\"하는 문제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형식에 치우쳐 행하는 그 어떤 일도 기뻐하지 않으십니다. 그것이 물질에 관계된 것이든, 아니면 봉사와 관련된 것이든, 아뭏튼 요모조모 따지기 시작하면 그것은 이미 형식에 치우친 것입니다. 하나님은 형식에 치우쳐 행했던 지난 15년간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축복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열심히 일했지만 많은 소득을 기대할 수 없었습니다. 형식적으로 바친것에 하나님은 감동하지도 않으셨습니다.
성도 여러분!
오늘 여러분은 여러분의 삶, 여러분의 인생을 어떻게 하나님께 드리고 계십니까? 형식에 치우쳐 있지 않습니까? 감동도 없고, 은혜도 없고, 열정도 없이, 그저 그렇게 살아가고 있지 않습니까?오늘 이 자리에 오시면서 내가 하나님을 만난다는 기쁨과 감격을 가지고 오셨습니까? 아니면 주일이니까 단지 일상생활의 한 부분으로 생각해서 아무런 느낌도 없이 그냥 이곳에 와서 앉아 있지는 않습니까? 그러고도 세상에 나아가면 \"나는 여전히 그리스도인\"이라고 남들에게 말하지 않습니까?
우리의 삶에 하나님의 진정한 축복이 사라져 가고 있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우리들의 형식적인 믿음, 형식적인 예배, 형식적인 예물이 아닐런지요?
여기 14절에 우리가 주목해야할 단어가 하나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해 \'내 백성\'이라고 말하지 않고 \'이 백성\'이라고 하는 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꼭 \'내 백성\'이라는 단어를 쓰셨습니다. 그런데 그렇지 않았을 때가 있었습니다. 이스라엘백성들이 출애굽했을 때 그들이 광야에서 금송아지 우상을 만들어서 숭배했을 때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향해 \'내 백성\'이 아니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그런 표현을 여기서 또 다시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것이 무슨 뜻입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이 형식적으로 행했던 그 모든 일을 하나님은 가증스럽게 여기신다는 뜻입니다. 기뻐하지 않으실 뿐 아니라 그런 행위에 대해 얼마나 단호하신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성전 건축에 앞서 여러분의 신앙을 한번 점검해 보시기 바랍니다. 모든 것이 메말라서 지극히 형식적이지 않습니까? 또 제직회에서 성전건축을 가결하고 일이 진행되고 있으니까? 어쩔수 없이 그 일에 참여는 해야 되겠는데 내 마음은 그저 그냥 형식적으로만 동조할 뿐 아무런 기대도 없고, 아무런 생각도 없이 마음을 닫아버리고 계시지는 않습니까?
두번째로 학개 선지자는 그들이 그토록 노력을 했지만 많은 결실을 거둘 수 없었던 것을 이렇게 말했습니다. (15절 에서 19절 다시 읽을 것)
왜 그들이 열심히 농사를 지었는데 이른비와 늦은비도 오지 않고, 더구나 폭풍과 곰팡이와 우박이 떨어져서 그들의 소출을 엉망으로 만들어 버렸다고 합니까? 그들이 성전 건축을 미루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들이 성전건축을 위해서 헌신을 하지 않고 자신들의 지경을 넓히려고만 했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이 열심히 일을 해서 오십통의 포도주를 짤수 있는 포도를 수확했는데도 불구하고 정작 포도주 틀에서 나온 것은 절반에도 훨씬 못 미치는 이십통에 불과했습니다. 풍성한 수확을 기대하다가도 난데없이 우박이 떨어져서 수확을 거둘수 없게 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도 그들은 어떠했습니까? 17절에 보면 그들이 하나님께로 돌이키지 않았다고 합니다.
즉 그들은 그 원인이 어디에 있는지 생각해 보지 않고 여전히 자신들의 노력으로 더 많은 수확을 거두어볼까? 생각을 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들이 그렇게 보낸 15년의 세월은 그들이 기대한 것만큼 한번도 수확을 거둘 수가 없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들이 자신의 지경을 넓히는데만 관심을 두었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인생이 아무리 노력을 해도 하나님께서 그 일에 축복하지 않으시면 모든 것이 헛되다는 사실을 알고 계십니까? 물론 머리로는 모두다 동의를 하십니다. 여기에 이 말에 대해 부인할 사람은 한사람도 없다고 저는 믿습니다.
하지만 정말 그 일에 우리의 믿음이 요구될 때는, 주저하기도 하고 심지어는 하나님의 말씀과 우리의 행동은 다른 것으로 생각을 해버립니다. 그리고 그 일에 믿음을 보이지 못하는 우리 자신을 스스로 합리화할 때가 많이 있습니다.
지난 수요일날 새벽에 목사님들과 프리셉트 성경공부를 했습니다. 그 시간에 데살로니가 전서를 공부하고 있는데 마침 그날 공부내용이 \'믿음의 역사\'라는 것이었습니다. 즉 믿음은 행위와 무관하지 않다는 것을 공부하는 시간이었습니다. 그 말씀과 관련된 말씀으로 야고보서를 보았습니다. 야고보서는 믿음과 행위의 조화를 말씀한 책입니다. 그런데 믿음과 관련해서 야고보가 제일 많이 쓰고 있는 말이 \'보이라\'하는 것입니다. 다시말씀드려서 믿음을 말할 때 그것은 우리의 마음에 담겨진 추상적인 내면의 세계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그 사람이 믿음이 있는지 없는지 눈으로 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눈으로 볼 수 있다는 것은 행위로 표현되어진다는 뜻입니다.
여러분!
언제나 머리로 동의하는 것은 믿음이 아닙니다. 그것은 귀신도 가지고 있는 것이라고 야고보선생이 말했습니다. 믿음은 행동을 수반하는 것입니다. \'믿습니다\'하고 가만히 있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그 믿음에 대한 행위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어떻습니까? \'믿습니다\'했다가도 그것을 행위로 보여달라고 하면 핑계가 많습니다. 바쁩니다. 시간이 없습니다. 경제적인 여유가 생기면 그때 한번 생각해보겠습니다. 여러가지 핑계가 생깁니다. 이것은 성경이 말하는 믿음이 아닙니다.
왜 이스라엘 백성들이 수확을 제대로 거둘수가 없었습니까? 하나님께서 그 일에 함께 하지 않으셨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함께 하지 않으신 이유가 하나님의 전을 방치해두고 자신의 지경만 생각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에게 하나님의 축복이 선포되어집니다. 언제부터입니까? 18절에 \'오늘 부터\'라고 말합니다. 19절에도 \"곡식 종자가 오히려 창고에 있느냐 포도나무 무화과 나무 석류나무 감람나무에 열매가 맺지 못하였었었느니라 그러나 오늘부터는 내가 너희에게 복을 주리라\"고 말씀합니다.
그 오늘이 언제입니까? 그들이 모든 전열을 가다듬고 하나님의 전을 건축하기 위해 일어선 때입니다. 그들이 오랜 기간동안 자신의 지경을 넓히는데 관심을 두었던 것을 마감하고, 또 잠시 실망했던 그 순간을 정리해서 학개선지자를 통해 선포되어진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의 전을 건축하기 위해 일어선 시기였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성전건축을 위해 일어서는 그들에게 놀라운 하나님의 축복을 약속하고 계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성전 건축은 여러분에게 축복된 삶을 보장하는 계기가 될 것입니다. 이것은 기복신앙이 아닙니다. 이것은 어느 유명한 부흥사가 건축헌금을 유도하기 위해서 하는 말도 아닙니다. 또 성경에 없는 지어낸 말도 아닙니다. 이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해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말씀입니다.
말씀을 맺겠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성전건축을 재개했을 때 하나님의 놀라운 축복을 보장받았듯이, 이 말씀이 진리이신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사실을 굳게 믿는 우리들에게도 이런 축복과 은혜가 넘쳐날 것입니다. 이번 성전건축을 앞두고 이런 축복을 모두가 받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