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복된 거래의 3대 원리 창25:29-34
거래란 각인의 필요에 따라 서로 간에 주고받는 경제적 행위를 가리킵니다. 여기서 사람들은 거래를 통해 이익을 보기도 하고 손해를 볼 때도 있습니다. 그래서 자본주의를 살아가는 우리들은 무엇보다 거래를 잘할 줄 알아야 합니다. 역사적으로 가장 큰 이익과 큰 손해를 본 거래가 있었습니다. 1867년 3월 30일 러시아가 미국에게 알레스카를 720만 달러에 매각한 것입니다. 1에이커(1,224평) 당 2.5센트에 판셈이 됩니다. 우리 돈으로 치면 100평에 불과 2원에 해당하는 금액입니다. 당시 미국 국무장관 스워드가 매입할 때 미국 의회에서는 쓸모없는 얼음 덮인 땅이라고 비난했지만 구입한 후 30년이 지난 알레스카에서 금광이 발견 되고 대규모 유전이 발견되고 지금은 군사적 요충지요 산업과 교통의 요지 등 보석 같은 땅이 되었습니다. 나중에 러시아가 땅을 치고 후회했지만 이미 끝난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성경에 보면 이보다 더 억울하고 어리석은 치명적인 거래가 나옵니다. 바로 에서와 야곱의 거래입니다. 에서가 아우 야곱에게 장자권을 넘겨주고 팥죽 한 그릇과 바꾸었습니다. 이 거래로 인해서 에서와 그의 자손들은 장자권의 축복을 영구히 빼앗기고 비참해졌고 반면 야곱은 이스라엘의 12지파의 조상이 되어 영원한 하나님의 복을 자신과 대대로 누리게 되었습니다. 결과는 가치관의 차이였습니다. 가치를 모르면 돼지처럼 진주보다는 꾸정물을 더 좋아하게 되는 것입니다. 마귀는 예수님에게도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면 돌로 떡을 만들어라. 하나님의 아들이면 뛰어내리라. 만일 네가 나에게 엎드려 경배하면 천하만국과 그 영광을 네게 주겠다고 얼마나 미혹했습니까? 그러나 예수님은 사단과의 거래를 단호히 거절하셨습니다. 이런 시험은 지금도 우리에게 계속 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 시험에서 승리하려면 가치의 기준을 명확히 해야 합니다.
***** 올바른 가치관은?
1. 육적인 것을 버리고 영적인 것을 취하는 것입니다. 32절에 “에서가 가로되 내가 죽게 되었으니 이 장자의 명분이 내게 무엇이 유익하리요” 에서는 자신의 장래보다는 현실적인 빵을 선택했습니다. 장자의 명분이란 상속권도 되지만 부족의 제사장이 되는 영적인 축복입니다.
축복된 거래는 육적인 것을 버리고 영적인 것을 취하는 것입니다. 육신을 위해 영혼을 팔아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오늘날 사람들이 영적 가치를 소홀히 여깁니다. 그래서 하나님보다 자기를 더 중시하고, 예배보다 일을 더 중시하고, 주일성수보다 다른 행사를 더 중시합니다. 기도보다 TV 시청을 더 좋아합니다. 그렇게 되면 하나님의 복은 멀리 떠납니다. 그래서 시편 1편에 복 있는 사람은 여호와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라고 했습니다.
2. 일시적인 것을 버리고 영원한 것을 취하는 것입니다.
팥죽은 일시적인 당장의 만족을 줄 뿐입니다. 먹고 나면 또 배고프고 또 다시 먹어야합니다. 그러나 장자의 명분이란 당장 보이는 가치는 없고 실제적이지도 않습니다. 그러나 평생에 권리가 있고 명예가 있고 축복이 따르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팥죽에 비할 수 없는 귀한 것입니다. 지금 사람들이 크고 영원한 것보다 돈이나 쾌락이나 명예 권세 등 일시적인 것을 추구하며 사는데 그 길은 음부에 간 부자의 길을 따르는 어리석은 것일 뿐입니다.
모세도 왕궁의 일시적인 영화보다 하나님 앞에서 받을 영원한 상급을 위해서 자기 백성들과 고락을 같이했습니다. 아브라함도 지상의 도성보다 영원한 도성을 위해서 나그네로 살았습니다. 그것은 일시적인 지상의 복보다 영원한 하늘의 복이 더 귀했기 때문입니다.
3. 보이는 것을 버리고 보이지 않는 것을 취하는 것입니다.
팥죽은 보이지만 장자권은 보이지 않는 가치입니다. 그래서 어리석은 에서는 배가 고파 죽겠는데 장자의 명분이 무엇이 중요한가? 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은 다 없어질 것들입니다. 그래서 고후4:18에 바울은 이런 말했습니다. “우리의 돌아보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 보이는 것은 잠깐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니라.”
에서의 잘못된 가치관을 분석해보면 약 세 가지입니다.
①편의주의입니다. 편의주의는 편하게 쉽게 살자는 주의입니다. 진리에 따라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편리한 쪽으로 사는 것입니다. 배가 고프니 배를 채울 것만 생각합니다. 이처럼 신앙생활도 편의주의로 나가면 하나님이 주신 귀한 복을 받을 수 없습니다. 내 영이 죽습니다.
②현실주의입니다. 코앞에 현실만 본 것입니다. 미국에 어느 큰 저택을 가진 부자가 잔치를 열었습니다. 그 집의 호수에는 악어들이 우글거리고 있었습니다. 잔치 도중 주인은 누구든지 이 호수를 헤엄쳐서 무사히 건너온다면 백만 달러의 상금이나 원한다면 내 아름다운 딸을 아내로 주겠다고 제안했습니다. 바로 그 때 한 청년이 호수에 뛰어들었습니다. 그리고 악어에게 상처를 입는 등 아슬아슬한 순간을 넘기고 무사히 건넜습니다. 주인이 말했습니다. 당신은 100만 달러와 내 딸 중 어느 편을 택하시렵니까? 그 때 이 청년이 무엇이라고 말한 줄 아세요? “내가 구경하고 있는데 누가 나를 호수로 확 밀어 넣었는데 그 사람을 찾기만 하면 가만 두지 않겠습니다.” 이 이야기는 실화인지는 알 수 없지만 가치 있는 것을 버리고 즉흥적이고 지극히 감정적인 흥분 속에서 살아가는 현대인들의 어리석은 모습을 꼬집는 이야기입니다.
③합리주의입니다. 에서의 생각은 극히 계산적이었습니다. 지금 배가 고파 죽겠는데 어느 것이 더 유익할 것인가 저울질했습니다. 이 합리주의가 들어오면 그 신앙은 버립니다. 하나님을 내 생각에 가두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시면 계산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순종하시기 바랍니다.
이렇게 믿음 없는 에서에 대해서 성경은 “음행하는 자와 혹 한 그릇 식물을 위하여 장자의 명분을 판 에서와 같이 망령된 자가 있을까 두려워하라 너희의 아는 바와 같이 저가 그 후에 축복을 기업으로 받으려고 눈물을 흘리며 구하되 버린 바가 되어 회개할 기회를 얻지 못하였느니라”(히12:16-17)고 경고합니다. 그 때는 이미 기회가 지난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마귀는 예수를 버리고 세상을 택하라고 우리에게 거래를 요구합니다. 마귀의 유혹에 넘어가지 마시고 승리하시기 바랍니다. 가장 축복된 거래는 육적인 것을 버리고 영적인 것을 취하시기 바랍니다. 일시적인 것을 버리고 영원한 것을 취하시기 바랍니다. 보이는 것을 버리고 보이지 않는 것을 취하시기 바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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