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와의 손을 의지하라 삼상5:1-12
성령강림주일을 맞이하여 강단에 준비된 꽃꽂이의 불타는 형상처럼, 오늘 성령의 충만함과 역사하심이 성도 여러분의 삶 속에도 함께 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우리 인생의 삶의 여정은 마치 전쟁의 연속이라고 말할 만큼 수없이 많은 전쟁으로 점철되어 있습니다. 경제분야에서도 수출경쟁이나 첨단산업의 기술적 선점을 위한 노력, 다국적 기업을 통한 국제경쟁력 확보 등은 가히 전쟁을 방불케 하고 있습니다. 정치 외교분야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얼마나 정확한 정보를 먼저 선점하는가가 관건입니다. 이를 위하여 국가간의 정보전은 날이 갈수록 치열해 지고 있습니다. 국익에 도움이 된다면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시대가 오늘날 국제정치의 현실입니다.
그러나 우리 믿음의 사람들에게 있어서는 무엇보다도 중요한 부분이 영적 전쟁입니다. 주님은 시험에 들지않도록 깨어 기도하라고 하셨고, 사탄은 우는 사자처럼 삼킬자는 찾아 다닌다고 베드로 사도는 경고하고 있습니다. 성령의 도우심을 받는 성도들과 사탄의 후원을 받는 세력간에 치열한 다툼이 21세기를 사는 우리에게 도전을 주고 있습니다.
21세기를 영적 전쟁의 시대라고 말하는 것은 바로 그러한 이유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블레셋과의 전쟁에서 두 번의 큰 실패를 맛 본 이후, 그들은 이제 많은 낙심과 절망 가운데 빠졌습니다. 더구나 두 번째 전투에서는 법궤를 전투의 현장에 옮겨 놓고도 전쟁에서 실패했을 뿐만 아니라 목숨같이 소중히 여겼던 법궤를 블레셋 할례 받지 못한 이방인들에게 빼앗겼다고 하는 사실은 그들에게 견딜 수 없는 고통이었습니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또 이렇게 생각을 합니다. 전쟁에 능한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블레셋 다곤 신보다 약한 것인가? 할례받은 선민이 할례받지 못한 이방인에게 어떻게 패배할 수 있는가? 라며 그들은 하나님을 원망하며 있었습니다. 반면에 블레셋 사람들은 이스라엘과의 전쟁에서 승리한 기쁨도 컸지만, 무엇보다도 이스라엘 신의 상징이라고 생각한 법궤를 전리품으로 빼앗은 감격에 블레셋 온 도시가 축제 분위기였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신전에 법궤를 가져다가 놓았습니다. 마치 자랑스럽게 블레셋의 신 다곤이 이스라엘의 신 여호와를 이겼노라는 메세지를 신전을 찾는 모든 사람들에게 전해주기 위함이었을 것입니다. 고대의 전쟁 관습은 상대방 국가의 최고의 전리품을 자기들의 신전에 가져다 놓는 풍습이 있었습니다.
영국 런던의 웨스터민스터 사원에 가면, 과거 잉글랜드가 스코트랜드와의 전쟁에서 승리한뒤 스코틀랜드의 수도였던 에딘버러성의 왕권을 상징하던 돌을 옮겨다 놓은 것을 볼 수 있는데, 오랬기간 이 돌은 잉글랜드 승리의 상징인 반면에 스코트랜드사람들에게는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어서 갈등이 그치지 않았습니다만 결국 그 돌은 영국민의 통합적 관계개선을 위한 조치로 다시금 제자리로 돌아갔습니다.
근대사에서도 승리에 대한 민족적 우월감을 나타내고자 하는 생각은 변하지 않은듯 싶습니다. 하물며 당시에는 오죽했겠습니까? 지금 블레셋 사람들은 자신들의 승리감을 온 땅에 전하고 싶었을 것입니다. 그러기에 다곤신전에 최고의 전리품이라고 여긴 이스라엘의 법궤를 가져다 놓았겠지요. 신전을 찾는 사람들에게 \"다곤신이 여호와를 이겼다\"는 메세지를 전하고 싶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3절과 4절에 보니까 이상한 일이 생겼습니다. 아침에 일찍이 나가보니 다곤이 여호와의 궤 앞에 엎드러져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단순한 사고일 것이라고 여기고 다시 일으켜 세워 놓았습니다. 그런데 그 다음 날 아침에도 다곤신상이 자빠져 있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팔, 다리, 목이 다 부러져 가지고 법궤 앞에 제단에 제물처럼 엎드러져 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우리는 이 장면을 보면서 매우 중요한 한 가지 사실을 발견하게 됩니다. 3절에 보면 다곤신상이 쓰러졌을 때 그것을 다시 세운 사람들은 블레셋 사람들입니다. 다시말하면 사람들이 신을 일으켜 세웠다는 말입니다. 이것이 우상의 모습입니다. 성경은 사람의 손으로 만든 것, 곧 돌이나 나무 등으로 사람에 의해 공교히 만들어진 것을 우상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인간을 돕는 존재가 아니라 인간의 도움에 의해서 존재하는 이 우상의 모습, 이 우상의 실상을 깨달아야 할 줄로 믿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법궤를 빼앗긴 것이 고통입니다. 그들은 심령에 큰 상처를 입었습니다. 도대체 우리 하나님은 우리 편인가? 우리 하나님은 전쟁에 능한 신이라고 하시더니 저 블레셋 다곤을 믿는 사람들에게 지고, 그리고 법궤를 빼앗겨서 다곤 신전의 전리품으로 그렇게 전락하다니, 그들은 여호와 하나님이 다곤에 패배했다고 생각했습니다.
사실 우리가 신앙생활 하면서 이렇게 자신의 삶의 내면을 들여다보지 못하면서 왜곡된 사고로 판단하며 고통받는 일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여호와의 손이 짧아서 너희를 구원하지 못하느냐? 여호와의 능력이 부족하여 너희를 구원하지 못하느냐? \" 무엇이 문제입니까? 지금 이스라엘의 패배의 근본적인 원인은 법궤를 전쟁터로 가지고 갔느냐? 아니냐? 하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그들 자신에 신실한 신앙의 삶의 문제인 것입니다.
3장과 4장에서 우리는 이미 당시 지도자들의 잘못된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에 대하여 조금도 두려워 하거나 진정한 모습이 없었습니다. 오히려 제사를 통하여, 종교적 행위를 통하여 자신들의 이익과 안일, 그리고 육체적 욕심을 채우는 일에 급급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보실 때 절대로 용납할 수 없는 일들이 자행되고 있었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특별히 예수를 오래 믿으신 분들께 권면합니다. 절대로 하나님의 이름을 이용하거나 종교적인 이유로 여러분들의 욕심을 채우려고 하는 어리석음을 행치 않기를 부탁 드립니다. 자신의 안일을 위하여 교회를 이용하거나 성도를 이용하지 마세요. 신앙생활을 오래 하다 보면 긴장이 풀리고 열정이 식을 수 있습니다.
전도세미나를 준비하고 강사를 초빙하려고 했더니 그 강사님이 하는 이야기가 이번 세미나에 참석하는 구성원이 어떻게 되느냐고 묻길래, 집사, 권사님들이 대부분이라고 했더니 그러면 갈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미안한 이야기지만 그 분들은 전도할 의지가 별로 없어서 자신이 강의를 해도 별 효과가 없다는 거예요.
그 분의 논리는 목사님 미안하지만 교회 등록한지 3년 미만이 되는 순수한 성도들을 모아주셔야 그분들에게 전도의 뜨거운 열정과 비젼을 심어주어서 전도의 현장으로 나아가게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꼭 그 분의 이야기에 전적으로 동의하는 것은 아니지만, 부분적으로 일리가 있다고 생각 했어요. 그것은 무엇을 말하는 것입니까? 역설적으로 좀 오래된 사람들은 주의 일에 대한 열정이 식거나 영혼 구원에도 관심이 적다는 이야기지요.
지금 이스라엘은 내면적으로 예배가 썩었습니다. 제사라고 하는 예배행위를 통하여 하나님께 영광이라는 거룩한 목적을 어떻게 이룰 것인가 하는 고민은 보이지 않고, 오직 자신의 이익을 챙기기에 급급했던 지도자들만이 판을 치고 있는 상황입니다. 그런 썩어가는 자신들의 모습은 바라보지 못한 채, 전쟁에서 이기기 위하여 법궤를 가져다 놓으면 될거 아니냐는 어처구니 없는 아이디어를 만드는 사람들이 바로 지도자들의 수준이었습니다.
그래서 어느 공동체나 지도자가 중요합니다. 저는 한국교회의 문제는 사실 성도들의 문제가 아니라고 봐요. 성도들의 생활이 경건치 못하여 세상에서 빛과 소금이 되지 못한 부분도 있지만, 그러나 궁극적인 책임은 목사에게 있다고 믿습니다. 조금 더 범위를 넓게 잡아보아도 장로까지입니다. 지도자가 경건치 않은데 그 지도력을 성도들이 따르겠습니까? 지도자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데, 성도들이 하나님을 두려워 하겠습니까? 결국 우리들의 문제입니다. 우리가 회개하고 우리가 먼저 정신을 차려야 할줄로 믿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할례받지 못한 블레셋 진영에서는 다르셨습니다. 법궤를 전리품으로 가져다가 자신들이 섬기는 신전에 가져다 놓았는데 하루밤 사이에 신상이 자빠져버렸습니다. 신상을 일으켜 세워놓았지만 다음 날 아침에는 박살이 나 버렸어요. 뿐만아니라 신전이 있는 아스돗은 온통 독종 재앙으로 사람들이 다 죽어가고 있었습니다. 사람들이 모여서 회의를 거듭한 끝에 다른 도시로 법궤를 옮겨야 되겠다고 결정합니다.
가드라고 하는 도시로 옮겼습니다. 그러나 그곳에서도 독종 재앙은 맹위를 떨칩니다. 죽어가는 사람들로 인해 온 도시가 아우성입니다. 에그론으로 옮기자. 하지만 에그론 지역 사람들은 이미 그 소문을 들어 알고 있었습니다. 10절에 보면, \"에그론 사람들이 부르짖어 가로되, 그들이 이스라엘 신의 궤를 우리에게로 가져다가 우리와 우리 백성을 죽이려 한다\"며 울부짖었습니다.
결국 블레셋 방백들이 모여 회의한 결과 이스라엘의 신의 상징인 법궤는 본처로 돌려보내야 하는 것으로 결론을 내렸습니다. 이스라엘로 돌려보내자는 거예요. 자기들의 손으로 법궤가 있었던 이스라엘의 도시 실로로 법궤를 돌려보내겠다는 거예요. 이스라엘에게는 침묵하셨던 하나님께서는 그러나 이방 백성들에게는 재앙으로 심판하신 것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 중에 특별히 6절, 7절, 9절, 11절 네 곳을 주목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여호와의 손, 곧 하나님의 손이라는 표현이 반복하여 나와 있기 때문입니다. 사무엘상 저자는 전쟁을 포함한 모든 일들이 여호와께서 주관하시고 계심을 증거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담고 있는 것입니다. 전쟁은 여호와께 속한 것인 줄 믿습니다. 다윗의 고백처럼 오늘 이 시대에 우리의 모든 삶의 영역, 곧 경제적 전쟁, 정치적 전쟁, 군사적 전쟁, 더 나아가 영적 전쟁까지도 모두 주관하시는 분은 오직 여호와 하나님이신 줄 믿습니다.
그 전능하신 손길이 오늘도 주장하십니다. 하나님의 손길이 계속적으로 언급되면서 놀랍게도 이상적인 대조를 성경은 보여주고 있습니다. 4절에 보면, 블레셋의 신 다곤의 손이 잘려져 나갔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능력의 손 여호와와 손이 잘려나가 버린 다곤의 모습이 극명하게 조명 되고 있는 것입니다. 사람의 손으로 만든 우상은 아무런 능력도, 의미도 없음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우상은 우리의 인생에 아무런 유익이 없음을 사무엘상 기자는 강조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의 삶 속에 언제나 여호와의 손이 함께 하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하나님의 손이 내 인생에 함께 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으며, 결단코 승리할 수 없음을 믿음으로 고백하시기를 축원합니다. 법궤만 우리의 전쟁터에 가져다놓으면 된다고 생각하는 어리석음을 버리고 신령과 진정으로 준비된 참 예배자의 모습으로 나아가기를 축원합니다.
기도하시겠습니다. 자비하신 하나님, 경건의 모양만 있었던 우리의 모습을 말씀을 통해서 되돌아 보시게 하셔서, 법궤만 가지고 전쟁터에 나아가면 승리할 수 있다는 어리석음의 이스라엘을 깨닫게 하셨던 주님을 바로 바라보게 하심을 감사드립니다. 주님 앞에 철저히 회개하며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하는 예배자의 모습을 회복하여 여호와의 손, 능력의 손에 인도함을 받는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의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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