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가를 통한 메세지

십자가를 통한 메시지/벧전2:19-25

십자가를 통한 메시지/벧전2:19-25
2001-11-23 21:09:43 read : 121

기독교는 십자가의 종교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시는 장면이 마태, 마가, 누가복음에 기록되어져 있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뉘어졌습니다. 한 병사가 망치를 오른 손에 들고 왼손에 한 뼘이나 되는 못을 들고 다가옵니다. 그리고 아주 익숙한 솜씨로 못 하나를 예수님의 오른 손목에 대고 거침없이 오른손을 들어 내리쳤습니다. 탕. 탕. 탕... 예수님의 손목뼈가 부러지듯 하면서 선지피가 주르르 흘렀습니다. 가운데 손가락 두 개가 파득거리며 떨렸습니다. 병사는 그렇게 또 한쪽 손목과 발목에 못질을 하였습니다. 그때 골고다 언덕에서 예수님의 손목에 못박던 그 망치 소리를 여러분들은 들을 수 있는 귀가 있습니까?

십자가는 본래 노예들을 처형하는 형틀이었습니다. 정치적 선동자나 극악한 범죄자들을 처형하는 틀을 주님께 사용하였습니다. 주님이 달려 죽으심으로 말할 수 없는 큰 은혜와 영생의 축복이 임하게 되었습니다. 주님은 십자가를 통해 귀한 멧세지를 전달합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히실 때 그를 못박은 것은 로마병정들이었습니다. 그리고 빌라도가 제판을 했습니다. 그리고 유대인들 그 당신의 재사장들과 서기관들은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으라고 소리를 질렀습니다. 그 옛날 유대의 관원들 제사장들 서기관들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았습니다. 그러나 지금 여러분과 나의 죄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은 근본 원인은 저와 여러분의 죄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은 것은 궁극적으로 파고 들어가보면 나의 죄와 여러분의 죄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은 것입니다. 파고들어가보면 나의 죄와 여러분의 죄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은 것입니다.

십자가를 통해서 하나님은 우리들에게 끊임없이 저와 여러분 사이에 귀한 멧시지를 증거를 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말씀을 중심으로해서 십자가를 통한 멧시지에 대해서 상고해 보겠습니다.



Ⅰ. 십자가는 우리의 죄가 얼마나 무서운가를 말해주고 있습니다.(21절)

사실 예수님은 죄가 없으신 분이셨습니다. 히브리서 4장 15절에는 “예수님이 모든 일에 우리와 같이 시험을 받은 자로되 죄는 없으시니라”고 말씀합니다. 그런데 그가 가장 죄악무도한 무리들이 못박혀 죽는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습니다. 그는 우리 인류의 죄를 대신 지고 십자가에 죽으셨습니다.

베드로전서 2:21절 “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입었으니 그리스도도 너희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사 너희에게 본을 끼쳐 그 자취를 따라 오게 하려하셨느니라” 또 본문 24절에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 이는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라 저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는 나음을 얻었나니”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의 죄를 담당하셨다고 베드로 전서는 말해주고 있습니다. 끔찍한 십자가는 우리의 죄가 얼마나 무서운 것인가를 눈으로 볼 수 있도록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셔 돌아가시는 그 장면! 거기에 여러분들은 서 계신 적이 있습니까? 제가 20년 전에 한미연합 전도대회를 하면서 미국인 목사님들이 오셔서 8명 정도의 전도팀이 구성되어 저녁에는 부흥회를 하고 낮에는 가가호호 방문을 하면서 전도를 하는 시간을 갖었습니다. 첫날밤에 제가 통역을 하는데 소개를하면서 특송을 하시겠다고 하는데, 그분은 탐 월스라는 음악 목사님이시라고 하는데 레스링 선수처럼 생겼는데 대머리가 벗겨졌습니다. 그분이 찬송을 하시는데 “거기 너 있었는가 그때에” 찬송을 하는데 얼마나 그 찬송이 마음속에 파고들어오며 마음속이 뜨거워지는지... 그때 마음속에 큰 은혜를 받았습니다.



Ⅱ. 십자가는 하나님의 공의를 말해주고 있습니다.(23절)

본문 23절에 “오직 공의로 심판하시는 자에게 부탁하시며” 하나님은 죄에 대하여 단호하십니다. 결코 죄를 용납하시지 않으십니다. 죄에 대하여는 철저히 벌하시는 분이시다.

감옥에 들어간 사람들은 재수 없어서 걸려들어왔다고 함니다. 교도소에 들어간 사람들이 자기 죄를 인정하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어떤 사람은 나는 깃털이 불과하다고 이야기합니다. 그래서 몸통은 뭐냐 하면서 말이 많았습니다. 또 다른 사람들은 잔챙이들만 걸려들어오지 큰 것은 걸려들어오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 사실 우리 모두가 다 죄인이 아닙니까? 우리의 인간의 역사를 보면 죄를 지으면 발각되어야만 그 죄에 대한 형벌을 받습니다. 요행히 발견되지 않으면 죄의 심판을 받지 않습니다. 도망 다니고 잡히지만 않으면 죄의 심판을 받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손은 빠져나갈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공의의 손에 붙잡힌 죄인들은 빠져나갈 수 없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공의의 손에 붙잡혀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자기 아들을 십자가에 죽이는 극단적인 사건을 통해서라도 죄에 대한 심판은 반드시 내리신다는 결의가 나타날 만큼 공의로우신 분이십니다.



Ⅲ. 십자가는 하나님의 사랑을 말해주고 있습니다.(요3:16)

죄 값으로 영원한 형벌을 받아야 할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하여, - 우리를 죽이셔야 하는데 우리를 벌하셔야 하는데 그렇게 되면 우리를 다 죽여서 지옥으로 쓸려 버려야 하는데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셔서 그렇게 할 수 없었습니다.- 독생자를 보내셔서 대속의 죽음을 당하게 하신 것은 한마디로 그의 크신 사명입니다.

우리 학생들이 오늘 1부 예배 때 요한복음 3장 16절을 다 같이 암송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매 주일마다 한 구절씩 암송을 하자는 취지에서 그렇게 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하려 하심이니라”(요3:16)고 성경은 말합니다

. 하나님이 우리의 지은 죄를 그분에게 담당시키셨습니다. 십자가는 공의와 사랑 십자가는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이 만나는 장소라는 것입니다. 죄는 반드시 벌한다. 그러나 인간은 사랑하신다. 그러므로 대신 아들을 보내셔서 십자가에 돌아가시도록 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복음성가에 이런 가사가 있습니다. “어린양 예수 내죄를 담당하사 원수들의 채칙에 온몸 찢기셨내” 내죄를 당당하셔서 예수님께서 온 몸을 찢기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전혀 죄가 없으셨지만 사형판결을 받았습니다.

사실 빌라도도 예수님이 죄 없으심을 알았습니다. 무죄선언을 했습니다. 그러나 대제사장들 장로들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으라고 요구했습니다. 그들도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을 만한 뚜렷한 혐의가 없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예수님을 죽게 만들고 그 대신 “바라바를 놓아주소서. 바라바를 놓아주소서” 빌라도가 손을 씻으면서 “이 피 값을 누가 받겠느냐?” 대재사장과 유대인들이 “우리와 우리 자손에게 돌리소서. 우리와 우리 자손에게 돌리소서” 그 말에 대한 무서운 형벌이 2000년 동안 나라 없는 민족으로 떠돌아다니면서 히틀러에게 600만명이 학살을 당하고 소련에서도 수백만명이 죽임을 당합니다.

제가 히틀러가 600만명을 죽였다는 아이슈비츠를 갔을 때 학살당한 박물관을 갔는데 그 사진을 보면서 끔찍했습니다. 가스실에서 죽여서 기름으로는 비누를 만들고 가죽으로는 구두를 만들고 끔찍했습니다. 600만명이 그렇게 죽었습니다. 그 형벌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으면서 “이 피 값을 누가 받겠느냐?” “우리와 우리 자손에게 돌리소서”라고 했던 유대인들...

로마 군인들이 예수님을 채찍질하고 옷을 벗기고 홍포를 입히고 가시관을 씨우고 갈대를 오른손에 들리고 히롱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께 침을 벧었습니다. 또 그들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기 위해 끌고 갔습니다. 로마 군인들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은 후 옷을 찢어 나누어 갖었습니다. 예수님에게 ‘유대인의 왕’이라는 죄폐가 붇었습니다. 지나가던 사람들이 조롱합니다. “성전을 헐고 사흘만에 다시 짖는 자여 평안하뇨?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면 거기서 뛰어내리라” 심지어 함께 못박혔던 강도들도 그렇게 이야기 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내려오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도 예수님을 구하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시자 하늘이 어두워 졌습니다. 예수님이 숨을 거두자 성소의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까지 쫙 갈라졌습니다. 찢어졌습니다. 땅이 진동하고 바위가 터지고 무덤이 쫙 열리면서 죽은 사람들이 뻘떡 뻘떡 일어나기를 시작했습니다. 그를 사형시켰던 사형집행관이었던 백부장이 고백합니다. “그는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었도다” 불신자의 고백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예수님을 구하시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은 예수님을 구하는 대신 우리들을 구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들은 귀한 사람들입니다. 여러분 한사람 한사람들은 여러분의 생명을 구원하기 위해서 하나뿐인 아들의 목숨을 대가로 지불하실 만큼 저와 여러분을 사랑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귀한 사람들입니다. 여러분 한사람 한사람은 예수의 생명을 바쳐가면서 구원할 가치가 있는 그런 사람들입니다. 아무렇게나 살아서는 안됩니다. 생명을 맞바꾸면서 나를 구원하신 그 하나님 그렇게 귀하게 나를 받으시는 하나님 그 하나님 앞에서 귀하고 아름다운 생애를 보내야만 합니다.

롬5:8에는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라고 말씀하십니다. 십자가는 바로 하나님의 사랑이 나타나는 장소입니다.



Ⅳ. 십자가는 우리의 자유를 선언합니다.(24절)

본문 24절에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 이는 우리로 죄에 대하여는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니라 저가 채찍에 맞음으로 나음을 입었느니라”고 했습니다. 롬3:10의 말씀을 보니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롬3:23절에서는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라고 말씀하십니다.

세상 모든 사람들은 죄를 짓고(롬3:10,23) 죄의 종이 되어있습니다. 그 영은 죄의 사슬에 묶여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선하고 진실하게 살기를 원하면서도 실상은 점점 약해지고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타락한 인성을 가지고 죄의 노예가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것은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아나는 것을 말합니다.

갈라디아서 2:20절에서는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혔나니 그런즉 이제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갈5장 24절의 말씀을 보니까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박았느니라”

우리는 십자가를 바라보면서 예수님이 나를위해서 돌아가신 것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그러나 또 하나 내 정과 욕심, 내 옛 사람 나의 과거의 사람이 못 박힌 것을 바라볼 수 있어야 합니다. 십자가는 우리에게 자유를 선언합니다. 주님의 십자가는 죄와 마귀의 세력을 깨뜨리고 영원한 자유를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난 것은 마귀의 일을 멸하려 하심이니라”(요일3:8)

Ⅴ. 십자가로 우리는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습니다.(25절)

죄 때문에 하나님과 불화 되어 있었으나 십자가에서 죄가 처리됨으로 하나님과 화목의 길이 열렸습니다(롬5:1).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실 성소의 휘장이 찢어졌습니다. 성전에는 휘장이 두 개가 있었습니다. 하나는 성소와 지성소를 막고 있던 휘장이었습니다. 또 하나는 성소와 바깥뜰을 막고 있는 휘장이었습니다. 이 모든 것들이 위에서 갈라졌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우리와의 담이 없어졌다는 것입니다. 유대인과 이방인의 담이 없어진 것입니다. 평신도와 제사장의 담이 헐린 것입니다.

이제는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의지해서 예수님의 십자가를 의지해서 하나님 앞에 담대히 나아갈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되었습니다. 십자가를 통해서 주님은 한손으로는 하나님을 잡으시고 한손으로는 죄악에 물든 우리의 손을 붙잡으시고 “다 이루었다”라고 말씀하시고 돌아가셨습니다. 그래서 로마서 5장 1절에 보니까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었은즉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평을 누리자”. 욥기 22:10절에 보니까 “너는 하나님과 화목하고 화평하라 그리하면 네게 복이 임하리라” 하나님과 화목하고 평안한 그 순간부터 하나님의 복이 임하기를 시작합니다.

“원수 된 것을 십자가로 소멸하시고 둘이 하나가 되게 하셨느니라”(엡2:15-16) 하나님과의 화목은 최대의 축복이자 행복입니다.

부산의 용호동이라고 거기서 부흥회를 하는데 그 교회의 목사님이 신성종 목사님인데 준비찬송을 인도하시면서 그렇게 우셨습니다. 사모님도 피아노를 치시면서 울고 계셨습니다. 나중에 식사시간에 말씀하셨다고 합니다.

자기는 공무원을 하시다가 늦게 목사가 되었는데 자기가 어릴 때부터 어머니가 자기를 키울 때 사내자식은 울어서는 안된다 하셔서 눈물을 흘리지 않았는데, 그런데 자기가 예수님을 발견하고, 예수님이 나의 죄 때문에 십자가를 지셨다는 것을 완전히 믿고난 그 때부터 예수님의 십자가 이야기가 나오면 그렇게 눈물이 나오더랍니다. 그때부터 예수님의 십자가 이야기만 나오면 울보가 된다고 합니다.

주님에 대한 십자가의 감격이 있는 사람은 주님을 위해서 일하기 시작합니다. 주님을 전하고 주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하려고 노력합니다. 그러나 그 뜨거움이 상실된 사람은 구역장 하던 것도 놓아버립니다. 교사하던 것도 놓아버립니다. 성가대도 들쑥날쑥합니다. 정말 주님의 마음 주님을 다시 십자가에 못박는 행위를 하게 됩니다. 신앙생활을 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날 위해 십자가에 피흘려 돌아가신 그 사랑에 감격해서 주님을 섬겨 나가는 것입니다. 일평생 십자가의 감격을 가지고 신앙생활을 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누가 주님을 십자가에 못박았습니까? 바로 우리의 죄 나의 죄 때문에 주님은 십자가를 지셔야 했습니다. 그 옛날 로마 군인들이 녹슨 3개의 못으로 주님을 십자가에 못박은 것이 아니라 나의 죄가 그 분을 못 박히게 하신 것입니다. 그 망치 소리가 들리십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