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벧전2:21-25

벧전2:21-25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


이성철

들어가는 말

구세군의 창설자인 윌리암 부츠 목사님께서 깊은 기도 중에 놀라운 환상을 하나 보게 되었습니다. 기도 중에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보게 된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누군가가 사다리를 가지고 오더니 십자가에 올라가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크나큰 대못을 꺼내서 예수님의 양손과 발에 망치로 그 못들을 때려 박는 것이었습니다. 화가 난 윌리암 부츠 목사님께서 그 사람을 향해서 소리를 냅다 질렀습니다. <야! 이 나쁜 녀석아 네가 누군데 우리 예수님을 못박는 것이야! 썩 내려오지 못해> 대못을 예수님의 손에 박고 있던 사나이가 그의 외침을 듣고 고개를 돌려 윌리암 부츠 목사님을 바라보았습니다. 그 순간 윌리암 부츠 목사님께서 소스라쳐 놀라 소리를 악하고 지르고 말았습니다. 십자가에서 예수님의 손에 못을 박던 사나이의 얼굴이 바로 자기의 얼굴이었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은 사람은 누구입니까? 빌라도 입니까? 유대인입니까? 로마 병정입니까? 누가 예수님을 못박아 죽였습니까? 바로 나입니다. 바로 내가 예수님을 죽인 것입니다. 성숙한 신앙인들은 이 사실을 항상 잊지 말아야 합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십자가를 귀하게 여깁니다. 예수님의 고난의 자리인 십자가를 마음속에 새기고 있다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입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십자가의 깊은 의미를 온전히 깨닫고 있는 사람들은 그렇게 많지 않습니다. 십자가를 목에 걸고, 차에 걸고 집의 벽에 걸어 놓기는 잘하지만, 그 십자가의 의미가 무엇이지는 깨닫고 있는 사람들은 매우 적습니다. 십자가를 달고 다닌다고 그 십자가가 우리들을 지켜 주는 것은 절대로 아닙니다. 십자가를 집에 걸어 놓았다고 집안이 평안해 지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십자가의 깊은 의미를 깨닫고 그 의미들을 믿고 그 십자가를 본받아 살아갈 때라야 비로소 주님의 십자가의 능력이 우리의 삶 속에 나타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 아무 의미도 모른 체 그저 십자가를 달고 다니고 걸어 놓는 것은 아닙니까? 아니면 십자가의 의미를 알고 믿고 그 십자가를 본받아 살려고 십자가를 달고 다니는 것입니까?

1. 죄인을 사랑하시는 하나님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 그리스도를 생각할 때마다 강조되고 강조되어도 항상 지나치지 않는 것은 죄인을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서 수치스럽고 고통스러운 죽음을 당하시면서 죄인들을 사랑하신 하나님의 뜨거운 사랑을 몸소 보여 주셨습니다. 즉 하나님께서는 죄인들을 사랑하셔서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달려 죽도록 하셨습니다. 십자가는 죄인들을 향한 하나님의 뜨거운 사랑의 증거인 것입니다. 이 진리를 사도 바울은 롬5:6-8에서 \" 우리가 아직 연약할 때에 기약대로 그리스도께서 경건치 않은 자를 위하여 죽으셨도다 의인을 위하여 죽는 자가 쉽지 않고 선인을 위하여 용감히 죽은 자가 혹 있거니와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고 아름답게 묘사하였습니다. 그렇습니다. 십자가는 본래 저주의 물건이었습니다. 저주받은 자들만이 삽자가에 달려 죽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독생자 아들의 피로 그 저주를 지우시고 하나님의 사랑의 자리로 바꾸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랑 받을 자격이 없는 죄인 된 우리들을 사랑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을 배반하고 하나님의 원수가 된 우리들을 사랑하셨습니다. 우리들을 사랑하셔도 아무런 유익이 없고, 오히려 우리 때문에 마음쓰실 일만 많으실 것인데도 하나님께서는 어리석기 짝이 없는 우리들을 사랑하셨습니다. 그 뜨거운 사랑의 증거가 예수 그리스도께서 피 흘려 죽으신 십자가인 것입니다.

2. 죄를 미워하시는 하나님

십자가는 하나님의 사랑의 증거일 뿐만 아니라 죄에 대한 하나님의 미움의 표시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죄를 미워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죄를 심판하십니다. 십자가는 하나님께서 죄를 얼마나 미워하시는 가를 적나나하게 보여 줍니다. 베드로는 오늘 본문에서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죄를 대신 지시고 죽으셨습니다. 수치스럽고 고통스러운 죽음을 우리의 죄 때문에 당하셨습니다. 만약 죄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면 누구든지 고통스러운 죽음을 당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은 죄를 미워하시기에 죄인들은 언제인가 하나님 앞에서 무서운 심판을 받게 될 것입니다. 이 두려운 경고장이 곧 십자가인 것입니다.

3. 죄인을 위하여 일하시는 하나님

죄인들에게 있어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달리신 십자가는 그 무엇보다도 두려운 경고장임에 틀림없습니다. 하지만 이 십자가는 죄인들을 위한 소망의 터전이기도 합니다. 왜냐면 십자가는 하나님께서 죄인들을 위해서 사랑의 마음으로 행하신 가장 위대한 일이요, 또한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죄인들을 위해서 위대한 일하시겠다는 약속의 표시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십자가의 사건을 통해서 인간 스스로 해결할 수 없는 죄의 문제를 해결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그 죄의 문제로 병들었던 죄인들을 건강한 모습으로 치유해 주셨습니다. 베드로는 이 진리를 \"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 이는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라 저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는 나음을 얻었나니\"라고 본문에서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이 되었습니다. 이웃과의 막힌 담고 무너졌습니다. 우리 자신 안에 없었던 기쁨과 평안이 넘치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하나님 안에서의 영생이 길이 열리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십자가를 통해서 인간을 위한 가장 위대한 일을 행하신 것입니다. 인간에게 에덴의 동산을 주신 것보다도, 인간에게 서로 돕는 베필을 주신 것보다도, 인간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신 것 보다고, 인간들을 위하여 기적을 행하신 것보다도, 더 위대한 일은 십자가에 독생자 아들을 죽이신 일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죄인들을 사랑하시는 것으로만 만족하시지 않으셨습니다. 죄인들을 살리기 위한 위대한 일을 계획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그 계획대로 죄인들을 위하여 일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약속대로 죄인들을 위하여 일하셨습니다. 십자가는 하나님께서 죄인들을 위하여 일하셨고 앞으로도 일하실 것이라는 가장 분명한 증거판입니다. 이 진리를 믿는 하나님의 사람들에게는 십자가는 이제 더 이상 저주의 경고판이 아니요, 새로운 삶을 위한 소망의 터전인 것입니다.

4. 십자가의 도를 따라 살아야한다

오늘 본문에서 결코 망각해서는 안 되는 구절이 있습니다.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입었으니 그리스도도 너희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사 너희에게 본을 끼쳐 그 자취를 따라 오게 하려 하셨느니라\"라는 구절입니다. 옳습니다. 우리 모두는 십자가의 의미를 알아야 합니다. 그러나 알고 믿는 것만으로 만족해서는 안됩니다. 그 십자가가 주는 교훈을 따라 사는데 까지 나아가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이러한 삶을 위하여 친히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기 때문입니다.
이제는 우리도 십자가에서 보여 주신 하나님의 그 뜨거운 사랑으로 사랑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달면 삼키고 쓰면 뱉어 버리는 그런 세상사람과 같은 사랑이 아니라, 원수까지도 사랑할 수 있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우리도 그런 사랑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 저는 죄를 범치 아니하시고 그 입에 궤사도 없으시며 욕을 받으시되 대신 욕하지 아니하시고 고난을 받으시되 대신 욕하지 아니 하시고 오직 공의로 심판하시는 자에게 부탁하시며\"라고 묘사된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의 모습으로 우리도 무장되어 있어야 합니다. 사랑이 날로 소멸되어 가는 이 어두운 세상 속에 우리들이 하나님의 사랑을 전염시키는 위대한 사랑의 전달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이제는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사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 이는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심이라\"하셨습니다. 이제 우리도 죄를 미워하여야 합니다. 죄의 세력을 성령의 능력으로 다스릴 수 있어야 합니다. 죄가 주는 잠시의 쾌락을 과감히 떨쳐 버릴 수 있어야 합니다. 죄가 주는 잠시의 쾌락을 즐기기보다는 차라리 억울한 감옥을 택한 요셉과 같은 삶을 살아야 합니다. 때로 죄의 세력에게 패배 당하였다면 다윗처럼 진실하게 회개하고 자신의 잘못을 눈물로 통화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하지 말라는 것은 범하는 죄를 짖지 말아야 합니다. 행하라는 것을 행하지 못하는 죄도 범하지 말아야 합니다. 죄는 우리와 아무런 관계가 없습니다. \"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갈5:24)\"는 진리의 말씀을 굳게 붙잡고 살아가야 합니다.

이제는 두려워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십자가에서 우리들을 위하여 일하셨고, 또 앞으로도 변함없이 일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십자가 위에서 우리의 무거운 짐을 해결하신 하나님께서 앞으로도 우리들의 무거운 짐들을 해결해 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마11:28)\"고 말씀하신 주님의 말씀은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유효할 것입니다. 뿐만 아닙니다. 죄인이었던 우리들을 위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주신 하나님께서 다른 모든 것들도 은사로 주실 것을 믿기에 우리 모두는 담대할 수 있어야 합니다.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 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것을 우리에게 은사로 주시지 아니하시겠느뇨(롬8:32)\", \"나의 하나님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 가운데 그 풍성한 대로 너희 모든 쓸 것을 채우시리라(빌4:19)\"와 같은 말씀들을 붙잡고 담대하게 살아가야 합니다. 이러한 말씀들이 우리의 삶 속에서 구체적으로 체험되어야 합니다.

이제는 우리의 미래에 분명한 확신이 있어야 합니다. 내일 일은 분명하게 모릅니다. 그러나 그 결과만은 분명하게 확신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배반하고 하나님의 원수와 짝이 되었던 죄인들의 삶을 십자가를 통하여 새롭게 하신 하나님이시기에, 반드시 우리의 삶도 바꾸실 것입니다. 지금은 우리의 삶이 어찌하든지 우리의 미래는 승리요 행복일 것입니다. 십자가에서 그렇게 일하신 하나님께서 지금도 우리들을 위하여 그렇게 일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이 진리를 분명하게 증거하였습니다. \"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롬8:28)\"

맺는 말

십자가를 바라보십시다. 십자가의 의미를 굳건히 붙잡읍시다, 십자가의 교훈대로 살아갑시다. 십자가에 독생자를 못 박게 하신 하나님께서 이러한 우리들을 기뻐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고 십자가의 도를 따라 살아가는 우리들을 십자가에서 죽으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도 기뻐하실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