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가 정신으로 살자/벧전4:7-8 2004-05-28 10:40:55 read : 223
한 성도 부부가 있었습니다. 목사님께 전화를 해서 함께 점심식사를 하자는 것입니다. 함께 식사를 하러 가면서 목사님이 물었습니다. \"오늘 무슨 날이냐?\"
연말이라 남편이 아내에게 말하기를,,, \"당신 올 일년동안 고마운 사람이나 신세진 사람 있어면 이야기하라, 그분에게 식사대접이라도 하게.\" 하였습니다. 아내 - \"나는 다른 사람에게 잘해준 것도 없고, 또 누구에게 잘못한 것도 없어요, 단지 한사람,,,\" 남편 - \"그 사람이 누군데,\" 아내 - \"나는 오직 목사님께 미얀할 뿐입니다. 교회도 충실하지 못하고,,,늘 죄송하게 생각합니다. \" 남편 - \"그럼 목사님께 전화해 식사 대접하게,\" 그래서 그날 목사님은 풀 코스로 대접을 받았습니다.
2002년 승리하는 해로 정하고 우리는 주님앞에 살았습니다. 주님, 항상 승리하는 삶을 살게 해주세요! 우리는 그렇게 기도하였습니다.
이제 한해를 보내면서 오늘은 우리 마음을 청소하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동안 묵었던 찌꺼기를 말끔히 청소하는 아름다운 예배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벧전 4:7)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웠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 기도하라』 (벧전 4:7) 『But the end of all things is at hand: be ye therefore sober, and watch unto prayer.』
정신을 차리고,,, 나는 어떤 정신으로 삽니까? 정결한 신앙의 삶을 살려면,,, 우리 성도들은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거리낌이 없는 깨끗한 삶을 살려면 어떤 정신으로 살아야 합니까? 바로 십자가의 정신입니다. 그러면, 십자가의 정신은 무엇입니까? 4가지로 생각하여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1, Faithful 한 정신입니다.
이것은 Gentleman 정신, 선비 정신, 운동 선수들에게 페어플레이 정신이라고 합니다. 우리 성도들에게는 곧 신앙의 정신입니다. 나폴레옹이 유럽을 침공했을 때 휘하 군대가 오스트리아의 국경 도시인 펠드리히를 포위했다. 펠드리히 시는 비상의회를 소집하고 사태를 논의했다. 미리 항복하자는 의견이 나오자 한 사제가 일어나 말했다. “우리의 힘을 의지한다면 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니 부활절인 오늘의 예정대로 교회 종을 치고 예배를 드립시다. 그리고 나머지 문제는 모두 하나님께 맡겨버립시다”
그 사제의 말에 시의회 의원들은 모두 찬성하였고 펠드리히 시에는 우렁찬 종소리가 울리고 기쁨에 찬 찬송소리가 퍼져나갔다. 이 소리를 들은 프랑스군 진영에서는 오스트리아의 구원병이 온 것이 틀림없다고 판단하여 군대를 돌려 다른 곳으로 퇴각하였다. 펠드리히 시민들은 하나님만을 전적으로 신뢰함으로 막강한 나폴레옹의 군대를 맞아 승리할 수 있었다.
하나님만을 의지하고 그분께 모든 것을 맡기는 믿음은 이런 위대한 역사를 이루어낸 것입니다.
“너희가 전심으로 나를 찾고 찾으면 나를 만나리라” (렘 29:13)
서양은 젠틀멘 정신, 우리 한국은 예로부터 선비 정신으로 살았습니다. 운동경기에서는 페어 플레이 정신입니다. 이것은 깨끗하고 청렴하고 순수한 그 정신입니다. 이것은 구차히 면하려고 하지 않는 정신입니다. 내가 가는 길은 내가 지키겠다는 정신입니다.
1) 주님 십자가를 놓고 기도를 드렸습니다. 이마에서 흐르는 땀방울이 핏방울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 십자가를 쓴잔이라고 하였습니다. 그 쓴잔을 구차히 면하려고 하지 않으셨습니다.
당신이 져야하는 것이라면 그 어떤 댓가를 지불하더라고 지겠다고 하셨습니다.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내 뜻대로 하지 마옵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옵소서,,,\"
2) 다니엘은 바벨론 포로중에 그를 시기하고 반대하는 적들이 있었습니다. 그가 하나님의 은혜로 높은 자리에 올라가니 사람들이 시기하여 죽이려 하였습니다. 한달 동안 어떤 신에게도 기도하면 그를 사자굴에 넣으려고 법으로 정하였습니다. 이것은 오직 다니엘을 두고 정한 법이 였습니다. 그러나 다니엘은 이 사실을 알고도 두렵거나 피하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늘 하던 대로 창문을 예루살렘으로 향하여 열어놓고 하루에 세 번씩 기도를 드렸습니다. 숨어서 살피는 신하들은 당장 다니엘을 잡아서 사자굴에 넣었습니다.
한 달만 참으면 되는데,,, 문을 닫고 아무도 모르게 기도하면 되는데,,, 그러나 다니엘은 그렇게 구차히 살지 않았습니다. 그것이 바로 십자가 정신이였습니다. 믿음의 정신입니다.
(합 2:4) 『보라 그의 마음은 교만하며 그의 속에서 정직하지 못하니라 그러나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오늘날 이러한 정신이 점점 사라져 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참으로 안타가운 일입니다. 그러나 오늘 우리들은 우리 산상교회 성도들은 이 신앙으 ㅣ정신으로 삽시다. 주님이 기뻐하시고 축복하실 줄 믿습니다.
2, Cleanse 정신입니다.
(고후 7:1) 『그런즉 사랑하는 자들아 이 약속을 가진 우리가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가운데서 거룩함을 온전히 이루어 육과 영의 온갖 더러운 것에서 자신을 깨끗케 하자』
부끄러운 나라 꼴. 독일 베를린에 본부를 둔 국제투명성기구(TI)가 98년 9월22일 발표한 부패지수에서 한국은 10점 만점에 4,2를 받아 세계 43위의 불명예를 차지하게 됐는데, 그것도 96년 26위였던 것이 97년엔 34위로, 그리고 98년엔 43위로 떨어져, 갈수록 점점 더 나빠진 것이다.
세계에서 가장 부패가 없는 나라는 10점 만점의 덴마크이며 필란드가2위, 스웨덴이 3위, 뉴질랜드가 4위이며, 말레이시아와 타이완 같은 나라도 공동 29위로 우리보다는 났다.
여기에다 같은 날, 영국의 유력경제지 \'유로머니\'가 발표한 \'국가위험도\'또한 지난해 22위에서 34위로, 1년 반 사이에 무려 12단계나 밀려난 것으로 평가 되었다.
국가 위험도 평가는 100점 만점으로 하고 있는데 한국은 지난해 78,79점에서 64, 47점으로 떨어져 34위가 됐는데 새 정부 들어서 오히려 이렇게 모든 신용 등급이 내려만 가고 있으니 참으로 답답한 노릇이 아닐 수 없다.
우리나라가 잘못된다는 것은 어느 정치인에 국한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국민 모두의 것입니다. 나 개개인이 더욱 문제인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 그리스도인 개인의 문제인 것입니다.
(요일 3:3) 『주를 향하여 이 소망을 가진 자마다 그의 깨끗하심과 같이 자기를 깨끗하게 하느니라』 (요일 3:3) 『And every man that hath this hope in him purifieth himself, even as he is pure.』
(행 24:16) 『이것을 인하여 나도 하나님과 사람을 대하여 항상 양심에 거리낌이 없기를 힘쓰노라』
우리 주님도 비판하지 말라고 하셨다. 탈무드는 “남을 비방하는 것은 살인보다도 위험한 일이다. 살인은 한 사람밖에 죽이지 않지만 비방은 세 사람을 죽인다. 비방하는 사람 자신,그것을 듣고 있는 사람,그리고 화제가 되는 사람이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 외모 보다는 마음을 깨끗하게 합시다. 마음보다는 내 영혼을 더욱 깨끗하게 합시다.
우리는 순결한 십자가의 정신으로 사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3, Service 정신 - 섬기는 정신을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길을 가다가 할머니가 다리가 아파지자 할아버지에게 업어달라고 했습니다. 할아버지는 할머니를 업었습니다. 할머니가 미안하여 “무겁지?”라고 말하자 할아버지가 대답했습니다. “그럼 무겁지. 돌대가리지, 철면피지, 강심장이지, 당신은 무거울 수밖에 없어”
조금 가다가 내려놓고 다시 걸었습니다. 조금 후 할아버지가 다리가 아파지자 할머니에게 말했습니다.
“여보, 좀 전에 내가 업어주었으니 나도 조금만 업어줘” 할머니가 할아버지를 업었습니다.
할아버지가 조금 미안해하면서 “생각보다 가볍지?”라고 물었습니다. 할머니가 말했습니다. “가벼울 수 밖에요. 머리에 든 것이 없지, 허파에 바람이 들었지, 속비었지, 양심도 없지 가벼울 수 밖에요”
어떤분이 장관에 있다가 그만두니 처량하더랍니다. 장관일 때는 비서들이 다 해주던데, 그만두고 혼자서 챙기려니 얼마나 불편한자 모르겠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섬기기 보다는 모두로 부터 섬김을 받으려고 합니다. 섬김을 받기 위하여는 출세를 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높은 자리에 앉아야 밑에 있는 사람들이 그를 섬기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어떠하던지 출세하려고 야단입니다.
무디 선생님은 이렇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사람을 평가할 때, 그 사람이 얼마나 많은 종을 거느리고 살았느냐? 하는 것은 중요하지 않고, 얼마나 많은 사람을 바르게 섬겼느냐 하는 것이 그 사람의 성숙도를 말해주는 것이다\"라고 말합니다.
십자가의 정신은 서비스 정신, 섬김의 정신입니다.
(마 20:28)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내가 무언가 섬길 수 있다는 것은 큰 축복입니다. 이 놀라운 축복을 빼앗기지 않는 여러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4, Hungry 정신 - (배고픈) 정신을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아프리카 나이지리아에 가서 의료선교를 하고 있었던 어느 의사 선생님이 아침에 하도 바깥이 시끄러워서 창문을 열고 내다보고 많이 생각했다고 합니다. 밖에 보니까 아프리카의 가난한 아이들이 그 선교사님 집 마당에 와서 노는데 얼마나 재미있고 얼마나 행복하게 노는지 아이들이 이렇게 천진난만하게 행복하게 노는 것을 내가 미국에서 본 일이 없다 이겁니다. 너무 행복하게 뛰노는데 자세히 자세히 보았더니 그 아이들이 그 선교사들이 내버린 깡통, 쓰레기통에서 주워 가지고 그걸 엮어 가지고 장난감을 만들어 가지고 그렇게 행복해 하더랍니다. 내버린 깡통가지고 이렇게 아이들이 행복해 하는데 우리 미국에 있는 아이들은 좋은 장난감 가지고도 저런 행복을 누리는 것을 못 보았다고 그랬습니다.
가난한 것은 죄가 아닙니다. 조금 불편할 뿐입니다.
세상이 불공평하다고 심하게 불평하는 가난한 사람 하나가 있었다. “부유한 자들이 가진 재산은 대부분 손 하나 까딱하지 않고 얻은 것들이야.” 그는 자기 말을 들어주는 사람을 만나면 누구에게든 소리치곤 했다. “모두가 부모한테서 돈을 물려받은 거라구.” 어느 날 그는 광장에 모인 사람들에게 자신의 비통한 기분을 토로한 뒤에 집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그때 ‘행운’이 그를 가로막고 말했다.
“난 자네한테 재물을 선사하기로 마음먹었네. 돈 주머니를 꺼네게. 금화로 가득 채워줌세. 단 하나 조건이 있네. 만약 돈주머니에서 금화를 한 닢이라도 땅바닥에 흘리면 자네가 받은 금화는 모두 먼지로 돌아가는 걸세. 그러니 조심하게.보니 자네 돈주머니는 낡았으니, 너무 욕심부리지 말게나.”
가난한 사람은 좋아서 펄쩍 뛰었다. 그러면서 돈주머니의 끈을 풀어 내밀고 ‘행운’이 쏟아붓는 금화를 쳐다보고 있었다. 돈주머니는 금방 묵직해졌다. “어때, 됐는가?” ‘행운’이 물었다. “아직요.” 사내는 소리쳤다. ‘행운’은 금화 몇 개를 더 부었다. 그러자 돈주머니는 가득찼다. “어때 그만할까?” “아니, 몇 개만 더 넣어요.”
그러자 다음 순간 돈주머니가 터졌고 금화들은 모두 땅바닥으로 쏟아지면서 먼지로 변해 버렸다. 곧이어 ‘행운’은 자취를 감추었고, 사내는 빈 돈주머니를 들고 터덜터덜 집으로 향했다. 주님께서 ,,, (약 4:2) 『너희가 욕심을 내어도 얻지 못하고 살인하고 시기하여도 능히 취하지 못하나니 너희가 다투고 싸우는도다 너희가 얻지 못함은 구하지 아니함이요』
어느 새벽, 채 동이 뜨기 전에 한 가난한 어부가 거기를 잡기 위해 강으로 나왔습니다. 강변을 천천히 걸어가던 그는 발 끝에 무언가 채이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어둠 속에서 손을 더듬거려 살펴보니 작은 돌맹이가 들어 있는 자루였습니다. 어부는 그 자리에 앉아 날이 밝기를 기다리기로 했습니다. 그물을 옆에 밀어 놓고 있던 그는 심심함을 달래기 위하여 자루에서 돌을 꺼내 물 속에 던지기 시작했습니다. 풍덩하고 강물 속으로 빠져들어가는 돌맹이 소리가 어둠을 가르며 들려왔습니다. 어부는 느긋한 기분이 들어 돌을 계속 던졌습니다. 그밖에 아무런 할 일이 없다고 생각한 그는 계속 돌을 꺼내어 하나씩 하나씩 물 속에 던져 버렸습니다. 그 무렵 해가 서서히 떠오르기 시작하여 주위가 서서히 밝아졌습니다. 그 동안 어부는 단 한 개의 돌만 남기고 전부 강물 속에 던져버렸습니다. 마지막 돌이 그의 손에 쥐어져 있었습니다. 어부는 그 돌마저 던져 넣기 위해 힘껏 손을 뒤로 젖혔습니다. 그 순간 무언가 반짝이는 빛이 눈앞을 지나쳤습니다. 놀랑 어부가 손동작을 멈추고 손바닥을 서서히 펼쳤습니다. 손바닥 위에 돌은 햇빛을 받아 빛나고 있었습니다. 어부가 자세히 살펴보니 그것은 돌이 아니라 귀한 보석이었던 것입니다. 여태 돌인 줄만 알고 물 속에 던져 놓은 것들이 모두 보석이었던 것입니다. 어둠 속에서 그는 그것이 보석인지 전혀 몰랐습니다. 어부는 가슴을 치며 후회하였지만 이미 소용없는 짓이었습니다. 그는 생활을 풍부하게 해 줄 귀한 보석을 가지고 있었으나 미처 깨닫지 못하는 사이에 그것을 모두 잃어버린 것입니다. 주의는 온통 어둠으로 가려져 있고 시간은 덧없이 흘러가는데 어부는 삶의 귀중한 보석을 낭비해버리고 말았습니다.
(딤전 6:9) 『부하려 하는 자들은 시험과 올무와 여러 가지 어리석고 해로운 정욕에 떨어지나니 곧 사람으로 침륜과 멸망에 빠지게 하는 것이라』
우리 모든 성도들이 왜 십자가의 길을 가지 못하는 것입니까? 왜 십자가의 정신을 갖지 못하는 것입니까? 헝거리 정신이 없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머리 둘 곳도 없으셨습니다. 공중의 새고 깃들 곳이 있지만,,, 주님은 항상 배고파 했습니다. 40일 금식하시고 주리셨습니 다. 그래서 사단의 유혹을 받았지만 물리쳤습니다.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다,,,\" 하시면서,
길 가시다가 배고파 무화과나무를 처다 보셨습니다. 열매가 있는가? 하고,,, 우리 주님은 항상 배고파 하시면서 사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헝거리 정신입니다.
부하려 하면,,,시험과 올무에 빠집니다. 우리는 십자가의 길, 십자가의 정신으로 사는 자들입니다. 그 정신은 곧 헝거리 정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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