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의 마지막 가르침
예수의 마지막 가르침/자기 십자가
막8:31-막9:10
“인자가 반드시 많은 고난을 받고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율법학자들에게 배척을 받아, 죽임을 당하고 나서, 사흘 후에 살아나야 한다.”(막8:31)는 이 말씀은 상당히 의지적인 표현임과 동시에 예수님의 말씀을 절대화하고 있음에 틀림없습니다. 제자들을 설득하고 가르쳐야할 말씀으로 “드러내 놓고”(8:32) 공식화하여 가르치기 시작하였다고 합니다. 시실 베드로의 항의도 이런 예수님의 의도와 결심에 대한 항의일 것입니다. 왜 예수님이 이런 결심과 의도를 공개적으로 보이는 이유가 무엇일까? 예수님이 많은 가난한 대중들에게 호감을 얻고 지지를 받아가는 반면에, 바리새파 사람들과 권력자들의 반감과 배척의 기운은 점점 높아가고 있는 것을 베드로도 직감하였을 것입니다. 그런 상황에서 좀 더 신중하고 조심하면서 예수님의 지금 할 일은 대중의 지지와 힘을 모으는 것이 더 급선무라고 베드로는 나름대로 충언을 드렸다고 봅니다. “예수를 바싹 잡아당기고”(8:32) 항의하는 베드로의 충직한 간언도 사실 틀린 간언은 아니라고 보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제자들 앞에서 공개적으로 꾸짖어 말하였습니다. “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너는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만 생각하는 구나!”(8:33) 그리고 예수님의 생각과 가르침을 좀 더 상세하게 말씀해 주시고 계십니다. “나를 따라오려고 하는 사람은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오너라.--누구든지 나와 복음을 위하여 제 목숨을 잃는 사람은 구할 것이다.”(8:34-35) 예수님의 이 말씀에는 엄청난 단호함이 엿보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에 무조건 순종할 것을 명령하는 말씀으로도 들릴 수 있고 “나”인 예수님 자신의 결단에 대한 온전함을 믿게 하고 또한 이 결단은 오직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이라는 믿음을 제자들에게 심어주기 위한 가르침 같습니다. “자기를 부인하고”라는 말씀은 예수님의 뜻과 말에 온전히 따르기를 바라는 의도가 숨어있는 것은 아닌지 의문을 가져볼 수도 있습니다. 아무튼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십자가의 길은 철저히 하나님의 눈으로 하나님이 바라시는 일과 그 섭리에 철저히 따르며 하나님과 하나된 삶의 시작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이 결단과 십자가의 길은 세상에서 바라보는 이해관계로 또는 성공과 실패의 관계로 설명할 수 없는 하나님의 의도와 뜻이 예수님에게 임한 것(깨달음)이 됩니다. 그렇다고 베드로의 항의가 잘못된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을 사랑하고 존중하고 더구나 누구보다도 “예수님은 그리스도이시다”고 고백한 베드로는 주님이 더 우리 곁에 계셔서 가르치고 더 일깨우고 그 다음에 그런 결단을 해도 되지 않겠느냐 하는 바램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우리의 시간적 개념이며 우리의 인간적 소망은 될지 모르나, 하나님의 시간 속에는 지금이 가장 예수님께서 십자가의 길로 걸어갈 절호의 순간으로 정하셨는지도 모릅니다. 지금이 “하나님의 나라가 권능을 떨치며 와 있는 것을 볼”(9:1) 수 있게 하는 절호의 시간임을 예수님은 느끼고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기 위해 공개적으로 십자가의 길을 가르쳤던 것입니다. 그래서 베드로의 의도를 단번에 간파하고 이를 단번에 제거하기 위해 “사탄아!”라는 말로 다른 제안과 간언을 차단하고 있습니다. 현실 세계에서 볼 때, 너무 예수님의 말씀이 지나치다고 느껴질 정도입니다. 예수님이 사셨던 역사적 상황은 예수님이 전파하는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온전히 받아드릴 정신적 성숙이 미약한 한계가 있음을 예수님도 느꼈을 지도 모릅니다. 대중들에게는 ‘비유’로 말씀하시고 제자들에게 ‘하나님 나라’에 대한 이해를 가르치고 몸으로 이를 실천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그러나 제자들조차 예수님의 기적과 놀라운 치유의 능력에 의존만 하고 여기에 머물러 있는 정신적 영적 한계를 절감하고 바라보고 있었을 것입니다. 더구나 ‘하나님 나라’는 개개인의 치유로 만족하다든가, 유대 민족의 독립으로만 이루어질 수 있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어떻게 보면 ‘하나님 나라’는 개개인에게 임하면서 끊임없이 자라고 성숙해지면서 ‘하나님과의 하나’되는 역사의 ‘과정’ 자체일지도 모릅니다. 이 과정에 예수님은 근본적으로 변화된 새로운 하나님의 모습, 하나님이 사랑하는 새로운 인간의 모습을 창조하시기 위한 십자가의 길을 선택한 것은 아닐까요? 율법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함과 영원을 소유한 사랑의 화신으로 편견과 욕망과 권세에 사로잡혀 있는 ‘음란하고 죄가 많은 이 세대’에 자신을 던짐으로써, 십자가를 통해 죽임 가운데 영원한 부활을 의도하였고 이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확고하게 믿었던 것이라 여겨집니다. 이는 미움과 복수의 죽임이 십자가로 인해 엄청난 사랑과 용서로 변화됨을 믿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그 말씀을 깨닫지 못하였고 예수께 묻기조차 두려워하였다.”(9:32)고 합니다. 오늘 우리 시대의 기독인이 예수님의 십자가를 짊어진다고 할 때, 다시한번 엄청난 사랑과 용서의 물결이 일어날 것이라 믿습니다. 십자가는 끊임없이 인간의 한계상황을 뛰어넘어 우주적 하나님과 하나 되게 하고 온 인류를 감싸않는 사랑의 화신으로 우리를 변화시켜줄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 십자가를 통해 ‘그리스도’가 되었습니다. 새 인간 새 아담이 되었습니다. 십자가로 모든 절망과 죽음을 영원한 희망과 생명과 사랑으로 변화시켰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십자가는 우리의 구원이요, 참 생명이요, 참 자유이신 것입니다. 그리고 이 십자가는 우리 모두가 동시에 져야할 ‘자기십자가’입니다. 예수님만의 십자가가 아닙니다. 오늘이 세 번째 수난주일(2/27)입니다. 우리도 이 수난절을 보내며 예수님의 십자가의 가르침을 온전히 따르며 믿어 영원한 부활의 삶에 동참하고 기쁨과 찬양 가운데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