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십자가를 위한 헌신과 그 은혜 막15:21-23 1985년 11월 늦은 밤으로 기억하는데 LA 한 구석의 기도원에서의 밤은 제게 잊을 수 없는 밤이되어버렸습니다. 왜냐하면 제가 목사로서, 주의 종으로서 100% 헌신해야하는 시간이었기 때문입니다. 얼마나 울었는지요. 저의 아버님이 1978년도, 50세에 일찍 돌아가셨는데 그때도 그렇게 운것같지 않은데 그날 밤은 정말 많이 울었습니다. 그것은 기뻐서, 감격해서, 감사해서 운 것이 아니라 실은 너무나 억울해서 울었습니다. 가난한 목사의 아들로, 아버님이 살아계실 때에는 누릴 수 있는 것을 누리지 못했고, 돌아가실 때에는 숟가락 젖가락 두개 남기고 가셨습니다. 그렇게 가난하게 산 것도 너무나 억울한데 이 넓은 미국 땅에서 좋은 차 한번 못 타보고 100% 주님을 위해서 헌신해야한다는 것이 너무나 억울했습니다. 희생양이 된다는 것에 대해서 굉장히 힘들었습니다. 처음에는 그런 힘든 과정이 있었습니다. 아버님이 돌아가시고 집안이 기울어져 잘 사는 친구 집의 garage에서 살면서 조그만 주먹이지만 불끈 쥐며 American dream을 꾸었습니다. 그렇게 세상 속으로 질주하던 나를 하나님께서 1983년 인격적으로 만나주셨습니다. 변화의 영으로 만나주셔서 2년 동안 많이 변화시켜주셨고, 1985년 11월 밤에 결단해야하는 순간이었던 것입니다. 그때까지만해도 저는 UCLA에 입학해서 economic으로 MBA까지 하고 교회에서는 좋은 장로가 되는 것이 꿈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분명히 원하시는 것은 목사가 되는 것임을 제가 알고있었습니다. 그래서 BIOLA대학으로 가고 전도사를 해야하는 것을 결단해야하는 막다른 골목에 서있음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는 가운데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포기하고 헌신하게 해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밀려오는 평안함을 주셨고 저를 안아주시고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너를 사랑한다. 내가 너와 항상 함께 있을 것이다.” 주님이 기뻐하시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러면서 하나님께서 보여주셨던 것은 가장 가난했지만 가장 멋있게 살아가셨던 저의 아버님의 뒷 모습이었습니다. 그래서 아버지와 같이 목회자의 길을 걷게 해주심에 감사의 찬송을 드렸던 그날밤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구레네 사람 시몬도 저와 같지 않았나 생각을 해봅니다. 구레네는 아프리카에 있는 상업도시입니다. 예수님 당시 흩어져 있는 유대인 디아스포라들이 구레네라는 도시에 가서 business를 아주 잘 했다고 합니다. 시몬도 그러한 사람이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 당시는 유월절이어서 유대인들이 예루살렘에 모여들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도시가 웅성웅성합니다. 유월절에 범죄자들을 십자가에 매어다는 것이 항상 있던 일인데 무슨 까닭일까 보니 나사렛 예수라는 자가 십자가를 지고 아주 고통스럽게 지나가고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사람들이 웅성웅성하는 것을 듣습니다. “ 저 사람이 스스로 하나님이라고 하고 다녔다며?”하며 침을 뱉고 때리고 로마병정들은 창으로 찌르는데 그는 어떻게 해서라도 십자가를 지려 애를 쓰는 그 광경을 시몬이 사람들 대열에 서서 보게된 것입니다. 그런데 <하필> 자기 앞에서 십자가가 서게 되고 더 이상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질 수 없을 때 로마 병정이 시몬에게 억지로 십자가를 지게합니다. 수많은 사람 가운데서 <하필> 구레네 시몬에게 십자가가 지워지게 된 것입니다. 시몬이 십자가를 질 때 그 마음이 어땠을까요? 아마 억울하다. 내가 왜 희생양이 되어야하는가! “Why, me?” 왜 하필이면 나인가, 근처에도 가기 싫은데, 많은 사람들이 경멸하고 싫어하는 십자가를 하필이면 왜 내가 지어야하는가? 말 그대로 억지로 골고다 언덕까지 갔었을 것입니다. 솔직한 심정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그런데 여러분, 우리가 주목해야할 사실은 무엇입니까? 예수님이 가장 아끼고 따랐던 제자들도 다 도망하고 힘 없는 여인들만 따를 때, 예수님이 가장 힘들고 견디기 힘들지만 지어야만하는 십자가를 지고 계신 그 순간 시몬이 그 옆에서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를 지었다는 사실입니다. 예수님이 시몬의 뒤를 쫒아가시면서 그냥 아무 생각없이 따라갔을까요? 아마 이 시몬의 헌신을 기억하셨을 것이고 감사한 마음으로 시몬을 축복했을 것이라고 저는 확신합니다. 죽기까지 복종하시는 그 십자가에 곧 죽으십니다. 이러므로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나게 해주신 그 십자가를 묵묵히 지는 자에게 반드시 뛰어난 이름 주시는 하나님의 신실하신 약속을 예수님이 구레네 시몬에게도 허락했을 거라고 저는 확신합니다. 구레네 시몬에 대해서는 성경에 많은 곳에 나오지는 않지만 로마서 16장에 나온 내용을 살펴보기를 원합니다. 로마서 16장은 바울이 자기 사역과 삶에 있어서 마음에 감사함으로 기억할만한 사람들에 대해 쓴 것입니다. 3절과 4절은 브리스가와 아굴라 부부에 대해 얼마나 감사하는지 나옵니다.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나의 동역자들인 브리스가와 아굴라에게 문안하라 저희는 내 목숨을 위하여 자기의 목이라도 내어 놓았나니 나뿐 아니라 이방인의 모든 교회도 저희에게 감사하느니라] 13절을 봅니다. [주 안에서 택하심을 입은 루포와 그 어머니에게 문안하라 그 어머니는 곧 내 어머니라] 바울이 쓴 목회서신 가운데 비밀스러운 것이 저는 이 말씀이라고 생각합니다. 사도 바울이 그 어머니는 곧 내 어머니다라고 하는 말씀은 상당히 무게가 있는 말씀입니다. 이 말은 곧 당신의 사역을 위해서 항상 무릎을 꿇고 어미의 심정으로 위해서 기도해주시는 분, 힘들 때마다 위로받을 수 있는 분이라는 것입니다. 루포는 많은 신학자들이 시몬의 아들이라고 하며 어머니는 시몬의 아내라고 이야기 합니다. 하나님께서 많은 은혜를 시몬의 가정에 베풀어 주신 것입니다. 주 안에서 택하심을 입었다고 표현된 시몬의 가정, 시몬은 십자가를 메고 골고다까지 갔을 것입니다. 그리고 죽으시는 모습을 가까이서 목격하였을 것입니다. 십자가에서 던지시는 한 말씀 한 말씀 인상깊었을 것입니다. 주님이 죽으신 다음에 해도 빛을 잃고 지진이 나고 그 사악했던 로마 병정도 ‘어, 이 사람이 하나님의 아들인가보다.’ 라고 인정할 정도로 그날 밤의 분위기는 무언가 달랐습니다. 아마 구레네 시몬은 집에 돌아 와서 그날 밤을 잊지 못했을 것이고, 복음을 받아들였을 것입니다. 복음을 받아들이고 나서 십자가를 지었던 것을 재해석해 보니 십자가를 지며 가졌던 처음의 생각, 왜 하필 내가 택하여져서 십자가를 져야하나 했던 것이 이제는 은혜임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꼭 져야만하는 하나님의 십자가를 많은 사람들 가운데 나를 택하셔서 나와 함께 지신 것이 은혜임을 깨달았습니다. 제자들 가운데 한 사람도 아니고 부족하고 부족한 나를 십자가를 지는 그 큰 사역에 동참하게 하신 것이 왠 은혜인지요. 그리고 예수님의 십자가를 자기가 지었다고 생각했지만 복음의 은혜를 깨달은 다음에 해석해보니 그 십자가는 본래 자기가 졌어야하는 십자가였습니다. 누구를 위한 십자가입니까? 누구의 죄를 대신 짊어진 십자가입니까? 구레네 시몬의 죄를 위해서 예수님께서 대신 지신 십자가였습니다. 여러분에게 도전하고 싶습니다. 우리는 내가 예수님을 위해서 희생한다. 손해본다. 헌신한다 하는 말이 존재할까요? 저는 1985년 처음 하나님을 위해 헌신의 결단을 했을때는 그것이 존재한다고 생각했어요. 주님 내가 희생합니다. 내가 좀 억울하지만 헌신하겠습니다. 이랬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복음을 알면 알수록, 십자가를 깨달을수록 희생이나 억울이나 헌신이나는 예수 믿는 자에게 속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속한 것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내 머릿속의 단어 가운데 희생이나 억울이나 헌신이라는 단어는 없어진지 오래되었습니다. 진정한 억울함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죄가 없으신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를 지시는 것입니다. 진정한 희생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죄 없으신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서 우리를 위해 죽으신 것입니다. 진정한 헌신은 무엇입니까? 그러실 필요도 없는데 높으신 영광의 보좌에서 저와 여러분을 위해 낮고 낮은 이 땅에 오신 것입니다. 왜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셔야했는가? 신학자 외인그르담은 “ He didn’t have to” 그가 십자가에서 죽으실 필요가 없었다라는 것이지요. 그 답이 먼저 와야되는 것입니다. 베드로전서 2장4절에는 [하나님이 범죄한 천사들을 용서치 아니하시고 지옥에 던져 어두운 구덩이에 두어 심판 때까지 지키게 하셨으며] 사람보다 천사가 잘났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천사들은 한번도 용서치 아니하시고 하나님의 공의로 다 지옥에 던졌다고 했습니다. 사람이 무엇이 잘나서 하나님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이땅에 오셔서 죽으셔야되시냐는 것입니다. He didn’t have to.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께서 나를 대신해서 십자가를 지셨다는 것입니다. 존 와이슨의 헌신의 기쁨이라는 책에서 헌신이란 그리스도인인 우리가 본래 해야만하는 것을 하는 것뿐이다 라고 했습니다. 헌신은 나의 의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본래 우리의 진정한 모습으로 변해가는 것이고, 본래 우리가 당연히 우리가 해야하는 것을 하는 것뿐이라는 것입니다. 거기에는 나의 자랑이 있을 수 없습니다. 나의 희생이 있을 수 없습니다. 억울함이 있을 수 없습니다. 이것은 택하심을 입은 자들이 갖는 특권이요, 영광인줄로 믿습니다. 십자가에는 수치와 경멸의 십자가가 있고, 죄와 용서의 십자가가 있습니다. 십자가를 믿는 자에게 주시는 복음의 능력이 있습니다. 부활과 변화의 능력이 있습니다. 결국 우리의 자랑이요, 기쁨이요 면류관이 되는 것이 십자가 안에 다 있습니다. 그런데 수치와 경멸의 십자가는 주님이 다 지셨고 주님이 우리에게 지라고 하시는 십자가는 죄와 용서,믿음과 구원, 부활과 변화의 능력, 자랑이 되는 축복이 되는 그 십자가이십니다. 주님께서는 날마다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오라하십니다. 그것이 축복이기 때문에 그렇다는 것입니다. 시편 37편 23절 에서26절에는 [여호와께서 사람의 걸음을 정하시고 그 길을 기뻐하시나니 저는 넘어지나 아주 엎드러지지 아니함은 여호와께서 손으로 붙드심이로다 내가 어려서부터 늙기까지 의인이 버림을 당하거나 그 자손이 걸식함을 보지 못하였도다 저는 종일토록 은혜를 베풀고 꾸어 주니 그 자손이 복을 받는도다] 할렐루야! 십자가를 지는 자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약속이십니다. 그러니 십자가를 지는 것이 영광과 특권임을 알고 감사함으로 알고 지는 자들에게는 하나님께서 놀라운 일들을 베푸십니다. 하나님 아버지, 수많은 사람 가운데에서 내가 억울하게 십자가를 져야하는 아픈 마음이 있었지만 그것은 결국 복음 안에서 수 많은 사람 가운데에서 나를 택하시고 주님의 귀한 사역에 동참케 되는 특권이요 영광인줄을 알았습니다. 우리에게 주신 모든 십자가, 개인과 가정 교회에게 주신 귀한 십자가가 있습니다. 우리 모두가 함께 기쁘고 감사한 마음으로 영광과 특권으로 알고 잘 지고 나아갈 때에 우리의 귀한 가정과 교회와 사역을 통해서 은혜와 축복을 누릴 수 있도록 역사하여 주시옵소서. 그러한 감격과 감사가 우리의 삶 가운데 가득 넘쳐나기를 소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