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가 사랑의 증표

십자가는 사랑의 증표
고후4:8-10





(고후 4:8-10) 『 [8] 우리가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 [9] 핍박을 받아도 버린 바 되지 아니하며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하고 [10] 우리가 항상 예수 죽인 것을 몸에 짊어짐은 예수의 생명도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


어떤 목사님이 이웃 교회에 시무하는 후배 전도사님으로부터 자기 교회의 주일 밤 예배에 설교를 해달라는 요청을 받았습니다. 그러기로 약속을 하고 날짜가 거의 되갈 무렵이었습니다. 이웃 교회의 전도사님에게서 전화가 왔습니다.


주보에 실기 위해 설교제목과 성경본문을 알려달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목사님은 말했습니다. ”본문은 시편 23편 1절부터 6절까지.”


그러자 전도사님은 ”그러면 제목은요?” 하고 물었습니다.

목사님은, ”제목은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하고 대답하였습니다.

전도사님이 이를 받아 적으면서 ”그 다음에는요?”

하고 물었습니다. 아마 그 뒤에 뭐가 더 있다고 생각한 모양입니다.

그래서 목사님은

”그거면 됐지, 뭐가 더 필요해?” 라고 대답해 주었습니다.


약속한 주일 밤 저녁 예배에 그 이웃교회를 찾아갔습니다.

안내를 받아 강단으로 올라가 자리에 앉아 주보를 펼쳐 보았습니다.


목사님은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밤 예배 설교제목이 다음과 같이 적혀 있었습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그거면 됐지 뭐가 더 필요해?” 가슴이 철렁 내려앉고 기가 콱 막혔습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란 제목에 핀잔처럼 전도사에게 한 말이 제목으로 붙었기 때문입니다. 목사님은 찬송을 하면서도, 눈을 감고 기도를 하면서도 제목을 바로 잡아야 할 것인가, 아니면 그냥 무시하고 설교를 해야 할 것인가 고민이 되었습니다.


고민 끝에 목사님은 ”그래, 제목대로 설교를 하자!” 하고 결심을 했습니다.

준비한 설교의 원고를 덮고 전혀 새로운 각도로 설교를 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제목을 바꾸니 성경이 새롭게 보였습니다.


목사님은 설교를 했습니다. 여러분은 푸른 풀밭의 싱싱한 풀을 원하십니까?

맑은 시냇가에서 시원한 물을 마시고 싶으십니까?

그러나, 여러분! 시편 23편에 나오는 양은 그 풍성한 풀밭에서

풀을 뜯지 않고 물도 마시지 않고 누워 있습니다.

너무 배가 불러서이겠습니까, 아니면 욕심이 없어서이겠습니까?

양은 배가 불러도 몇 시간씩 계속 풀을 뜯고 우물거리며 되새김질을 한다고 합니다.

그 이유는 아주 단순하고도 분명합니다.

목자에게서 오는 참 만족이 있기 때문입니다. 다윗은 고백합니다.

”여호와께서 나의 목자가 되시니 나에게 부족함이 없습니다.”

그렇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나의 목자가 되시고 내가 그 분의 양이 되니

참으로 만족할 수밖에 없습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그거면 됐지 뭐가 더 필요하겠습니까...?


이렇게 외치자 온 교회 성도들이 ”아멘, 아멘~”하며 큰 은혜를 받았다고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야 너를 위한 너를 구원하기 위한, 너의 죄를 용서하기 위한 너의 허물을 태우기 위한 나의 아들, 예수의 십자가 외에 그러면 됐지 뭐가 필요하니...,


사실 주님이 우리 각자에게 주신 많은 은혜는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이 있습니다. 나를 사랑하시는 증표 십자가의 사랑입니다. 우리가 죄인되었을 때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십자가에 죽으신 예수님 그리고 그 아들을 나를 위해 십자가에 죽도록 보내신 하나님의 사랑이 있습니다. 그래서 십자가는 주님이 나를 사랑하시는 사랑의 증표입니다.


주기철 목사의 5중기도


일제의 신사참배 요구에 대하여 결연히 항쟁했던 주기철 목사는 세 차례의 검속, 투옥끝에 승리했으나 기어이 마지막 검속이 다가와 순교의 영광을 맞을 날도 머지 않았음을 깨닫고 있었습니다. 대구 경찰서에서 풀려나와 시무하던 평양 산정현 교회에 되돌아온 주목사는 곧 강단에서 마태복음 5장 18절을 봉독하고 ‘5중의 나의 기도’라는 설교를 했습니다.


이 설교에 나타난 기도의 다섯 대지는 이러했습니다.


1. 죽음의 권세를 이기게 하옵소서.

2. 장기간 고난을 견디게 하여 주소서.

3. 노모와 처자를 주님께 부탁합니다.

4. 의에 살고 의에 죽게 하소서.

5. 내 영혼을 주님께 부탁합니다.


이 가운데 네번째 대지는 이렇게 전개되고 있습니다.

“못합니다. 못합니다. 그리스도의 신부(新婦)는 다른 신에게 정절을 깨뜨리지 못합니다. 그리스도의 신부는 신사에 절하지 못합니다. 이 몸이 어려서부터 예수 안에서 자랐고 예수께 헌신하기로 열번 백번 맹세했습니다. 예수의 이름으로 밥 얻어먹고 영광을 받다가 하나님의 계명이 깨어지고 예수의 이름이 땅에 떨어지게 된 오늘, 이 몸의 구구도생이 어찌 말이 됩니까? 아, 내 주 예수의 이름이 땅에 떨어지는구나! 평양아, 평양아! 예의동방 내 예루살렘아! 대동강아, 천백세에 흘러가며 나와 함께 울자! 드리리다, 드리리다. 이 목숨이나마 주님께 드리리다.”


영문밖의길 / 서쪽하늘붉은노을 악보


1.

서쪽 하늘 붉은 노을

영문 밖에 비취누나

연약하온 두 어깨의

십자가를 생각하니

머리에는 가시관

몸에는 붉은 옷

힘없이 걸어가신

영문 밖의 길이라네


2.

한 발자국 두 발자국

걸어가신 자욱마다

뜨거운 눈물 붉은 피

가득하게 고였구나

간악한 유대 병정

포악한 로마 병정

걸음마다 자욱마다

가진 포악 지셨구나


3.

눈물없이 못 가는 길

피없이 못 가는 길

영문 밖의 좁은 길이

골고다의 길이라네

영생복락 얻으려면

이 길만은 걸어야 해

배고파도 올라가고 죽더라도 올라가세.


4.

아픈 다리 싸매주고 저는 다리 고쳐주사

보지 못한 눈을 열어 영생길을 보여주니

칠전팔기 할지라도 제 십자가 바로 지고

골고다의 높은 고개 나도 가게 하옵소서


5.

십자가에 고개 턱이 제 아무리 어려워도

주님 가신 길이오니 내가 어찌 못가오리

주님 제자 베드로는 거꾸로도 갔사오니

고생이라 못가오며 죽임이라 못가오리



십자가는 사랑의 증표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우리의 자랑입니다.


십자가형은 로마에서 사용한 사형 도구였습니다. 죄수는 십자가의 형벌을 받기 전에 먼저 채찍질을 당하였습니다. 매질을 한 후에는 십자가에 죽을 때까지 매달아 놓는 사형 도구가 바로 십자가였습니다.


예수님이 지신 십자가는 무시당함의 십자가였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에는 [유대인의 왕]이라는 죄 패가 붙여 있었는데, 자칭 유대인의 왕이라는 며 말도 안되는 소리를 하며 예수님을 십자가에서 철저히 무시하고 철저히 멸시 당하셨습니다.


그러나 나를 위해 나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무시당한 십자가라 자랑스럽습니다. 나를 사랑하시는 증표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철저하게 수치 당함의 십자가였습니다. 사람은 누구 나가 발가벗기울 때 수치를 느낍니다. 그런데 만왕의 왕이신 그리스도는 많은 사람이 보는 앞에서 발가벗김을 당하였고 여인들 앞에서 옷을 벗김을 당하실 때 얼마나 수치를 느꼈겠습니까? 벗김 당한 예수님은 매질을 당하셨고 온갖 조롱과 수치 속에서 예수님은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조소와 모욕의 대상이며 고통의 십자가였습니다. 십자가형은 결코 급소에는 손을 대지 않고, 십자가에 대못을 박아서 매달아 놓고 죽을 때까지 기다리는 잔인하고도 고통스런 십자가였습니다. 낮과 밤, 더위와 추위, 해충의 공격, 하늘에는 독수리가 맴도는데 죽음은 공포와 함께 서서히 다가왔습니다. 건강한 사람은 1주일 정도, 보통 사람은 2-3일 정도 매달려 있는데 우리 예수님은 여섯 시간 매달리셔서 고통을 당하셨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이 나를 위한 사랑입니다. 사랑의 증표입니다. 나를 사랑하시어 무시당하시고 나를 사랑하시오 수치를 당하시고 나를 사랑하시고 말할 수 없는 고통의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십자가의 길은 참으로 힘든 길이었습니다. 무거운 십자가를 홀로 지고 가시다가 힘에 부쳐 그만 쓰러지고 말았습니다. 쓰러진 십자가 위로 로마 병정의 채찍은 사정없이 날아들었습니다. 쓰러지다가 다시 걸으시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또 쓰러지는 십자가의 길은 걸음마다 자국마다 땀과 피로 적시며, 그렇게 걸어가셨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나를 위한 사랑의 증표입니다.

이 모든 것이 나를 위한 하나님의 사랑의 증표이기 때문에 나는 자랑스럽습니다. 나의 사랑을 고백합니다. 사도바울 목사님이 고백하셨듯이 갈 2:2절에서는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그는 작정>하고 있습니다. 또한 갈6:14절에서는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 가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노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사랑을 깨닫지 못한 사람들은 미련한 것이지만 예수님의 사랑하는 우리는 구원얻은 우리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그 십자가의 사랑, 감히 하나님의 위대한 사랑을 받을 자격이 없는 죄인 중에 죄인인 나를 위해 죽으신 끝까지 고통과 수치과 모멸과 아픔과 죽음의 공포를 참으신 예수님의 십자가의 사랑을 깨닫는 사람은 십자가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고린도전서 1장 18절에서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얻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또한 23-24절에서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전하니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요 이방인에게는 미련한 것이로되 오직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부르심을 입은 우리들은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입니다. 오늘 예배에 부름받은 우리는 십자가의 사랑의 위대함을 압니다.

십자가를 사모하면 기적이 일어나고 병 고침이 일어나고 원수도 사랑하고 가정이 화목되고 나라가 평화롭습니다.


십자가에 못박히심으로 우리는 더 이상 약한 자가 아니라 강한 자가 되었습니다.


또한 고후13:4절에서는 <그리스도께서 약하심으로 십자가에 못 박히셨으나 오직 하나님의 능력으로 살으셨으니 우리도 저의 안에서 약하나 너희를 향하여 하나님의 능력으로 저와 함께 살리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보혈은 무시와 수치와 고통의 십자가에서 처참하고 흘리셨지만 그 보혈의 피는 능력의 피인 것입니다. 죄에서 자유를 얻게 하는 능력을 우리는 예수의 십자가 외에서 결코 발견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오직 죄 사함의 능력과 구원함의 능력이 십자가에 달린 그리스도에게 있음을 분명히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우리를 죄에서 자유케하고

우리를 질병에서 자유케하고

우리를 지옥에서 자유케할 힘은 예수님의 십자가외에는 없습니다.


그 십자가를 사모합니다.

그 십자가를 사랑합니다.

그 십자가를 가슴에 품습니다.

그 십자가를 외칩니다.

그 십자가를 바라보며 고난을 아픔을 슬픔을 이별을 그리움을 외로움을 고달픔을 힘겨움을 멸시를 참아냅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멸시과 천대와 모멸감의 십자가가 나에게 힘이요 내가 세상을 살아가는 버팀목입니다. 그 십자가를 사모합니다. 그 십자가를 자랑합니다. 그 십자가를 붙잡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이 나를 위한 사랑입니다. 사랑의 증표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승리의 십자가입니다. 골2:15절에서도 <정사와 권세를 벗어버려 밝히 드러내시고 십자가로 승리하셨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십자가를 통해 죄와 죽음과 어두움의 권세를 이기셨습니다. 죄악을 이기셨고 죽음을 이기셨고 공중에 권세 잡은 자들을 이기셨습니다.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는 승리의 그리스도이신 것입니다.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요16:33)고 말씀하여 주셨습니다. 사도 바울은 환난을 당할 때에 오히려 기뻐하고 감사하였습니다.


고후12:10절 말씀에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핍박과 곤란을 기뻐하노니 이는 내가 약할 그 때에 곧 강함이니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는 오히려 약한 것들을 자랑하고 있습니다. 본문의 27절 이하에 보면은 우리의 하나님은 세상의 미련한 것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시는 하나님이시며,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시는 하나님이시며,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사 있는 것들을 부끄럽게 하실 뿐만이 아니라 폐하시는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이 하나님께서 무시당함과 수치 당함, 고통의 십자가를 능력의 십자가, 승리의 십자가, 영광의 십자가가 되게 하셨습니다.


이 하나님께서 세상에서 아무것도 아닌 우리들, 천하고 약하고, 없는 우리들을 들어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시고 하나님의 나라를 기업으로 우리에게 주심으로 우리를 귀하게 하셨으며, 우리를 부하게 하셨고, 우리를 강하게 하셨습니다.


따라서 우리가 사방으로 우겨 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 핍박을 받아도 버린바 되지 아니하며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할 것입니다.


분명 십자가의 도가 멸망 받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입니다. 대단히 미련한 것입니다. 그러나 구원을 얻는 우리들에게는 분명히 하나님의 능력이 되는 것입니다. 고난 주간을 보내시면서 십자가에 달린 그리스도를 힘입어 승리하는 삶을 살아가시기를 기원합니다.


십자가 붙잡고 살아가면 어떤 고난도 이깁니다. 질병도 이길 수 있습니다. 외로움도 슬픔도 이별도 분노도 배신도 이겨낼 수 있습니다. 그 십자가를 바라보시길 바랍니다.


십자가를 사모하십시오. 십자가를 사랑하십시오. 주님 주님의 십자가를 사랑합니다.

예수님께서 수난-부활후 승천하시자 하늘의 천사들이 열열히 환호하였답니다. 예수님을 에워싼 천사들은 ”예수님, 지상에서 행했던 기적을 저희에게도 보여주십시오.


저희도 예수님의 기적을 직접 보고 싶습니다. 그중에서도 물 위를 걸으셨던 기적 좀 보여주세요!!” 천사들의 엄청난 성화에 예수님께서 어쩔 수 없이

기적을 보여주시기로 했다.


그런데 물 위로 발을 내딛자 마자 예수님은 꼬르륵 꼬르륵 물 속으로 잠겨버리는 것이다. 너무나 창피해지신 예수님!! 그러나 다시 시도해도 계속 물 속으로 빠지고 말았다.


왜그랬을까요???

글쎄 예수님 발에 못구멍이 생겨서 물이 새잖아요!!!!

*고난 주간에 가슴 찡한 유머네요...


첫째, 변화의 능력입니다.


십자가의 도를 믿고 따를 때 우선 우리에게 변화가 나타납니다. 십자가는 사람을 살립니다. 십자가의 신비입니다. 어떤 사람도 십자가 아래 오면 새롭게 변화됩니다.


사람을 변화 시키는 힘은 사랑입니다. 사랑만이 사람을 변화시킵니다. 사랑이 사람을 위대하게 만들고 사랑만이 사람을 변화시킵니다. 가장 위대한 사랑은 예수님의 사랑을 만나시길 축원합니다.


한국 교회를 대표하는 위대한 부흥사 가운데 한 분으로 김익두 목사님을 손꼽습니다. 이 분은 원래 황해도 안악시장을 주름 잡던 아주 못된 깡패였습니다. 그러던 그가 미국 선교사 스왈런 목사님의 사경회에 참석했다가 예수를 믿게 되었습니다.


그날부터 성경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세례 받기까지 전력을 다해서 성경을 읽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친구들이 찾아와 술을 마시러 가자고 하더랍니다. 이 때 김익두가 이렇게 말했답니다. “아니야 나 지금 약 먹기 때문에 술 못 마셔” 친구가 물었습니다. “무슨 약을 먹는데?” “응 신약과 구약이야”


하루는 성경을 읽다가 갈 2:20을 읽고 큰 은혜를 받았습니다.

(갈 2:20)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 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아! 내가 죽어야 내 안에 예수가 살고 내가 믿음 안에서 살 수 있구나”라고 깨닫게 됐습니다. 그 후 김익두는 엉뚱하게도 김익두가 죽었다고 부고장을 발송했습니다. 깡패였지만 그래도 그의 죽음을 안타까워하는 사람들이 문상을 왔습니다. 김익두는 멀쩡히 살아서 문상객을 맞는 것이었습니다. 사람들이 모이자 그가 이렇게 말했답니다. “깡패 김익두는 죽었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부고장을 돌린 것입니다. 이제 내 안에는 예수가 주인입니다. 예수의 이름으로 살아갈 것입니다.” 이런 선언에 많은 사람들이 감동을 받고 함께 예수를 믿기로 했답니다.

그렇습니다. 십자가의 도는 사람을 변화시킵니다. 내 중심으로 살던 사람을 주님 중심으로 살도록 변화시킵니다. 바로 여기에 십자가의 도의 능력이 있는 것입니다.


우리도 고백하는 시간이 되길 바랍니다. “인간 황목사는 죽었습니다. 이제 내 안에는 예수가 주인입니다. 예수의 이름으로 살아갈 것입니다.”


둘째, 승리의 능력입니다.


십자가의 도를 믿고 따를 때 우리는 승리할 수 있습니다.


롬 6:6을 보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옛 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죄의 몸이 죽어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노릇 하지 아니하려 함이니...,” 십자가의 도는 우리로 하여금 죄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죄의 유혹을 뿌리칠 수 있는 능력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오랜 세월 방탕한 생활을 하시던 중에 나이 40에 회심하고 돌아와서 후에 신학을 공부하고 늦게 목사가 된 분이 있었습니다. 워낙 술고래였었기 때문에 짓궂게 물었습니다. “목사가 되신 뒤에도 술 마시고 싶은 유혹이 있었습니까?” “이제 전혀 술 마시고 싶은 생각이 사라 졌습니다”라는 대답을 기대했습니다. 그러나 이 분의 대답은 뜻밖이었습니다. “여전히 술 마시고 싶은 생각이 간절합니다. 술 집 50미터 전방에만 가도 술 생각이 간절합니다.”


계속 물었습니다. 그러면 그럴 때는 어떻게 하십니까? “우선 그 자리에서 십자가를 묵상합니다. 그리고 가까운 가게에 들어가서 우유를 사서 마십니다. 그러면 술 생각을 이길 수 있습니다.” 십자가를 묵상하면 술의 유혹을 이길 수 있고 우유를 사서 마시면 배가 불러오면서 술 마시고 싶은 생각이 사라진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예수 믿어도 계속 죄의 유혹은 따라다닙니다. 술에 대한 유혹, 음란에 대한 유혹, 방탕에 대한 유혹, 거짓과 술수에 대한 유혹... 우리 힘으로 이런 유혹을 이길 수 없습니다. 바라 십자가의 도를 묵상하면 이길 수 있습니다. 십자가의 도가 우리에게 능력이 되기 때문입니다.


셋, 충성의 능력입니다.


십자가의 도를 믿고 따를 때 우리는 끝까지 충성할 수 있습니다.


고후 4:8-10에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사방으로 우겨 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 박해를 받아도 버린바 되지 아니하며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하고 우리가 항상 예수의 죽음을 몸에 짊어짐은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 우리 살아 있는 자가 항상 예수를 위하여 죽음에 넘겨짐은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죽을 육체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 십자가의 도는 어떤 어려움 속에서도 불굴의 용기로 주를 위해 충성할 수 있게 해 준다는 것입니다. 우리로 환란과 박해를 이길 수 있는 능력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전주시 화산동 외국인 묘지에 가보면 군산 영명고등학교 학생들이 성금을 모아 세우 기념비가 있습니다. 바로 데이비스 선교사의 기념비입니다. 이분은 한국에 파송되어 최초로 순교한 여자 선교사입니다. 1896년 군산에서 주로 어린 아이들과 부녀자들을 대상으로 선교를 했습니다. 후에 결혼하여 전주에서 선교하고 있을 때 서문 밖에서 약방을 개설하고 환자를 치료하면서 선교를 하고 있었습니다. 후에 선교부가 이곳에 병원을 짓고 본격적인 의료선교를 하게 됐는데 그곳이 바로 전주 예수병원입니다.


이 데이비스 선교사는 누구보다도 전도의 열정이 강해서 전북지역을 가가호호 방문하면서 전도해서 한해에 1885명을 전도했다는 기록도 있습니다. 이분은 몸을 돌보지 않고 전도하는 일에 목숨을 바쳤습니다. 또한 이분은 어린이를 사랑해서 혼신을 다해 어린이 환자를 돌보았습니다. 전주 예수 병원에 입원해 있는 어린이들을 정성을 다해 돌보다가 약해진 몸이 열병에 전염이 되어 41세의 나이로 1903년 6월 20일 이 땅에서 순교했습니다. 그의 기념비에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생명을 바쳐 선교한 여장부”


이분이 이렇게 충성할 수 있었던 것은 어려서 어머니에게 배운 십자가의 사랑 때문이었습니다. 어머니가 십자가 사랑에 감격하여 전도하고 가나한 사람들을 돌보던 본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주를 위해 충성을 해도 끝까지 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죽기까지 주를 따르고 헌신하고 충성할 만한 능력이 우리에게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십자가의 도를 묵상하고 마음에 새기면 할 수 있습니다. 십자가의 도가 우리에게 능력이 되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고난 주간을 시작합니다. 십자가의 도 깊이 묵상하시기 바랍니다. 십자가의 도의 능력을 덧입으시기를 바랍니다.


오랜 기간 교회를 떠난 중년의 딸이 있었습니다. 어머니의 간절한 호소에 몇십년 만에 교회로 가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딸이 예배 참석한 첫날, 남 욕하는 소리, 싸우는 욕설 등을 듣고 보았습니다. 이 딸은 화가 치밀어 올라서 어머니에게 말했습니다.


“교회가 이게 뭡니까? 나 다시는 교회에 안 나갈래요.”


자초지종을 들은 어머니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얘야, 나는 평생 교회 다니면서 예수님만 봤는데, 너는 딱 하루 교회 나와서 다른 것을 많이도 봤구나.”


사랑은 하는 것이 중요하지 않고 사랑은 받는 것이 중요합니다.

십자가는 수치요 모욕이요 챙피요 죽음이요 어두움이지만 그 십작가가 나를 위한 사랑의 증표라 내게 특별합니다.


예수님의 그 사랑 받아드리는 여러분 되시길 축원합니다.

오늘 예수님의 사랑으로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오늘 예수님의 십자가의 사랑으로 초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