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려놓음의 십자가 눅6:27-38
2006년 3월에 출판되어 40만부이상 팔린 베스트셀러가 된 이용규 선교사님의 『내려놓음』이라는 제목의 책이 있습니다. 하버드대학을 졸업하고 몽골선교사로 헌신한 목사님은 자기가 내려놓을 때 하나님이 어떻게 역사하셨는가를 경험한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그 책속에 첫 번째로 등장하는 실제 경험한 내용의 사건을 하나 소개하겠습니다.
2005년 봄, 몽골 이레교회에서 개척한 베르흐 지역의 예배처소를 방문해서 예배드리던 중에 있었던 일입니다. 벌러르라는 자매가 예배시간에 땀으로 뒤범벅되어 교회에 들어왔습니다. 그녀는 몇 달 전 이용규 선교사님이 이끈 선교팀의 기도를 통해 귀가 열린 자매였습니다. 예배 몇 시간 전에 소를 잃어버려서 소를 찾으러 뛰어다니다가 예배 시간이 임박한 것을 알고, 소를 버려두고 말씀을 들으려고 들판을 가로질러 달려왔다는 것입니다.
그때 선교사님은 그 자매가 소가 아닌 예배를 택한 그 믿음의 결단을 부끄럽게 하지 말아달라고 그 자매가 소를 다시 찾을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를 드렸다고 합니다. 그런데 예배를 마치자마자 밖에서 소 울음소리가 들렸습니다. 잃었던 소가 집이 아닌 예배 처소를 먼저 찾아온 것입니다. 소가 아닌 예배의 기쁨을 선택한 소녀는 예배와 소, 두 가지를 함께 얻었습니다. 먼저 믿은 우리들이 이런 경우에 과연 소 보다 예배를 선택할 사람이 얼마나 될런지요. 예수님은 분명히 우리에게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과 물질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다고 말입니다. 우리가 둘 다 섬기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우리가 하나님과 세상 둘 다 누리고 싶다면 우리는 하나님을 잡은 것 같지만 실은 세상을 잡은 것입니다. 이 소녀는 예배를 위하여 소, 즉 재산을 내려놓았던 것입니다. 그러나 결국 예배와 소를 다 얻을 수 있도록 하나님은 응답하신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것이 많이 있습니다. 주님이 주신 것이 무엇입니까? 현재 내가 가지고 있는 모든 것입니다. 그 모든 것 중에는 나의 생명까지 포함됩니다. 그런데 주님은 우리에게 당신을 따라오라고 하시면서 당신의 것을 다 내어주셨습니다. 마지막 당신의 생명까지 말입니다. 내려놓음의 길은 십자가의 길입니다. 십자가는 자기를 비우는 것입니다.
빌립보서2:7절 말씀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자기를 ‘비웠다’고 한 이 단어는 헬라어로 ‘케노시스’입니다. 뜻은 ‘아무것도 아닌 사람’ ‘아무 명성을 구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세상에는 자기를 높이려고 자기를 드러내려고 하는 사람들이 가득차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믿는 성도들은 자기를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주님을 드러내기 위한 삶을 사는 자들입니다. 우리는 주님이 지신 십자가를 지고 가야 합니다.
자기를 비우는 자세가 없이는 결단코 십자가를 질 수 없습니다. 자기를 비운다는 것은 자기가 소유하고 싶은 모든 것을 내려놓는 것을 말합니다. 이용규 선교사님은 내려놓아야 할 것이 어떤 것인가를 자세하게 쓰고 있습니다. 내려놓아야 할 것은 앞날의 방향과 미래계획, 매일의 필요를 채우는 물질, 생명과 안전, 결과를 예상하는 경험과 지식, 죄와 판단의 짐, 명예와 인정받기의 욕구, 사역의 열매 등이라고 했습니다.
『내려놓음』의 책이 이렇게 베스트셀러가 된 후에 지난해 연말에 『더 내려놓음』이란 책이 나왔습니다. 그 책에 보면 무엇을 더 내려놓았는가 하면, 세 가지입니다. 첫째는 자기애, 즉 자기사랑이고, 둘째는 자기 의였습니다. 그리고 세 번째는 지금까지 내려놓은 것 보다 더 더내려놓기를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자기 것을 내려놓음 없이는 주님으로부터 받을 수도 없고 받은 것을 제대로 누릴 수도 없다는 것입니다. 현제 자신의 것이라고 생각되는 그 어떤 것도 내려놓음이 없이 십자가를 진다고 고백하는 것은 위선입니다.
지금 우리는 사순절 절기를 보내고 있습니다. 나름대로 경건한 삶을 위한 경건생활의 목표를 가지고 하루하루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궁극적으로 우리가 묵상하는 것은 십자가입니다. 그러면 주님의 십자가는 우리에게 무엇을 가져다주고 있는지 살펴보아야 합니다. 십자가를 지신 예수님은 무엇을 내려놓았습니까? 물론 다 내려놓았습니다. 그러나 구체적으로 십자가를 묵상하면서 예수님이 내려놓은 것을 찾아보고 우리도 무엇을 내려놓아야 하는지, 아직도 내려놓지 못하고 있는 것은 무엇인지 묵상해 봅시다.
첫째, 예수님은 자신의 마음을 내려놓았습니다. 즉 자신의 마음을 주셨습니다.
인간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마음입니다. 부부가 몸을 섞고 산다고 하더라도 마음을 주지 않으면 온전한 부부라 할 수 없습니다. 더군다나 마음을 다른 사람에게 주면 우리는 그런 경우를 ‘허수아비와 산다’고 표현합니다. 그토록 마음의 내어놓음이 중요합니다. 몸 따로 마음 따로 하면 사랑의 관계가 아닙니다. 온전한 관계가 아닙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죄인인 우리들에게 당신의 마음을 다 주셨습니다. 당신은 아파하면서도 그 마음을 우리를 위해 다 내려놓았습니다.
예수님의 마음 중에 내려놓은 마음은 긍휼히 여기는 마음, 혹은 불쌍히 여기는 마음입니다. 마태복음14장 14절 말씀 “예수께서 나오사 큰 무리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사 그 중에 있는 병자를 고쳐 주시니라” 예수님은 광야에서 사흘이나 따라다니면서 먹을 것을 먹지 않고 있는 무리들을 향하여 불쌍히 여기는 마음을 가지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불러 말씀하시기를 “내가 무리를 불쌍히 여기노라 그들이 나와 함께 있은 지 이미 사흘이매 먹을 것이 없도다 길에서 기진할까 하여 굶겨 보내지 못하겠노라”
그래서 떡 일곱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4천명을 먹이고 일곱 광주리를 담았습니다. 누가복음 7장13절 이하에 보면 아들을 잃고 슬픔에 잠겨 있는 과부가 아들 장례행렬을 따라가며 통곡하는 여인을 보시고 불쌍히 여기셨습니다. 그래서 여인에게 ‘울지 말라’고 하시면서 행상 가까이 가서 그 관에 손을 대시니 관을 멘 자들이 섰습니다. 그때 예수님이 “청년아 내가 네게 말하노니 일어나라”고 하셨을 때, 죽었던 자가 다시 일어나 앉고 말도 하였습니다.
울 때 함께 울어주셨습니다. 나사로가 죽었을 때 그랬습니다. 백성들의 죄로 말미암아 예루살렘 성이 망하기 직전에 예루살렘 성의 미래를 내다보시고 자신의 마음을 표현했습니다. 그 마음의 표현이 눈물이었습니다. 안타까운 마음이었습니다. 누가복음6장27-28절 말씀, “그러나 너희 듣는 자에게 내가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미워하는 자를 선대하며 / 너희를 저주하는 자를 위하여 축복하며 너희를 모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마태복음 5장 7절 말씀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임이요” 예수님의 긍휼이 여기는 마음,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없었더라면 우리는 구속의 은혜를 받을 수 없었습니다. 그분이 원수처럼 다가오는 우리의 삶을 보고도 원수로 여기지 않고 오히려 불쌍히 여기는 마음을 가졌기에 우리가 구원을 받은 것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둘째, 자신의 능력을 내려놓았습니다.
예수님이 살아계실 때, 특히 공생애 시절에 당시 제자들과 백성들에게 나타내 보여주셨던 능력은 이루 말할 수 없이 많습니다. 예를 들면, 치료의 능력을 나타내주셨습니다. 그래서 수많은 병을 고치셨습니다. 나병, 간질병, 장님, 혈루병, 그 외에도 여러 가지 질병을 고쳐 주셨습니다. 심지어 죽은 자도 살리셨습니다. 죽은 나사로를 살려주셨습니다. 과부의 아들이 죽었을 때 불쌍히 여기면서 다시 일으켜 주셨습니다. 만약에 예수님이 돈을 받고 치유하셨다면 많은 사람들이 치유 받지 못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 치유의 능력을 다 내려놓았기 때문에 수많은 사람들이 치유 받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자연을 다스리는 능력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잔칫집에 가서는 물로 포도주를 만들어 주셨습니다. 파도를 잔잔케 하셨습니다. 물위로 걸어가셨습니다. 이런 엄청난 능력을 자신을 위해 사용하신 것이 아니라 우리를 위해 다 내려놓았습니다. 인기를 얻는데 사용하지 않았고 돈버는 데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오직 복음을 위하여 다 내려놓았습니다. 우리가 무슨 능력을 가졌든지 그것은 내 것이 아닙니다. 내게 능력을 주신 것은 그 능력을 가지고 이웃을 사랑하는데 사용하시기 위함입니다. 내게 능력을 주신 것은 하나님의 사랑을 나타내시기 위함입니다.
지식의 능력을 갖추었습니까? 그 지식을 가지고 지식이 없는 자들을 위해 사용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지식의 능력을 가졌습니다. 그 능력을 가지고 하나님의 뜻을 나타내는 말씀을 기록하여 주님오실 때까지 전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흔히 이런 말을 합니다. “배워서 남 주나” 그렇습니다. 배우면 자기 것이 됩니다. 배운 것을 가지고 잘 선용하면 자기의 인생에 유익이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구주로 믿는 성도들은 남에게 주기 위해서 부지런히 배워야 합니다.
권세의 능력을 받았습니까? 권세를 가지고 재물을 늘리고 자신의 입신양면을 위해 사용하기 보다는 나라와 민족을 위해, 하나님의 나라, 즉 의의 나라를 세우는데 사용할 수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당신이 가진 모든 능력을 오직 하나님 나라를 위해 사용하셨습니다. 즉 내려놓았습니다.
여러분 가운데 물질의 능력을 받았습니까? 30-31절 이하에 보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네게 구하는 자에게 주며 네 것을 가져가는 자에게 다시 달라 하지 말며 /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33-35절 말씀에 보면 “너희가 만일 선대하는 자만을 선대하면 칭찬 받을 것이 무엇이냐 죄인들도 이렇게 하느니라 / 너희가 받기를 바라고 사람들에게 꾸어 주면 칭찬 받을 것이 무엇이냐 죄인들도 그만큼 받고자 하여 죄인에게 꾸어 주느니라 / 오직 너희는 원수를 사랑하고 선대하며 아무 것도 바라지 말고 꾸어 주라”
이사야58장7절 말씀에 보면 “또 주린 자에게 네 양식을 나누어 주며 유리하는 빈민을 집에 들이며 헐벗은 자를 보면 입히며 또 네 골육을 피하여 스스로 숨지 아니하는 것이 아니겠느냐”
한 마디로 말하면 ‘주라’는 말씀입니다. 누가복음12장33-34절 말씀, “너희 소유를 팔아 구제하여 낡아지지 아니하는 배낭을 만들라 곧 하늘에 둔 바 다함이 없는 보물이니 거기는 도둑도 가까이 하는 일이 없고 좀도 먹는 일이 없느니라 / 너희 보물 있는 곳에는 너희 마음도 있으리라”
물질은 나누는데 가치가 있습니다. 저장하는 것으로 가치가 매겨지는 것이 아니라 남을 위해 사용할 때 가치가 매겨집니다. 부자가 친구에게 불평을 늘어놓았습니다. “사람들은 이기적이고 인색하다고 날 좋아하지 않는다네. 그러나 난 내가 가진 모든 재산을 자선단체에 기증하기로 유언장을 작성해 두었다네” 그러자 친구가 말했습니다.
“그렇다면 암소와 돼지 이야기가 자네한테 교훈이 될 수도 있겠군 그래. 돼지가 암소를 찾아가 불평을 늘어놓았다네. ‘사람들은 입만 열면 자네를 정이 많은 친구라고 떠들어대지. 물론 그 말이 틀렸다는 게 아니야. 자넨 사람들에게 우유를 제공하니까. 하지만 사람들이 나에게서 얻어가는 건 그에 비하면 많아도 한참 더 많다네. 훈제한 허벅지, 뱃살고기, 정제한 돼지기름은 물론 심지어 족발까지 한두 가지인가. 그런데 날 좋아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 그들에게 나는 한 낱 돼지요 욕심꾸러기일 뿐이야. 왜들 그러는지 모르겠어.’ 암소는 곰곰이 생각해 보더니 이렇게 말했다네. ‘그건 내가 살아 있는 동안에 나를 내어주기 때문이야’”
우리 주님은 두벌 옷도 없었습니다. 머리 둘 집도 없었습니다. 이제 나도 내가 가진 모든 것은 주님의 것으로 고백한다면 언제든지 주님이 원하실 때, 이웃을 위해 기꺼이 내려놓을 수 있어야 합니다. 십자가는 예수님의 내어줌의 증거입니다.
셋째, 자신의 생명을 내려놓았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생명을 인간을 구원하시기 위해 내려놓았습니다. 십자가를 지시기 전에 베드로, 야고보, 요한, 이 세 사람을 데리고 겟세마네동산에 올라가셔서 기도할 때 한 기도의 내용을 보면 “내 아버지여 만일 할 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마26:39). 아버지의 원하심이 무엇입니까? 온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해 예수님 자신의 생명을 내려놓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은 당신의 생명을 기꺼이 내려놓았습니다. 십자가에 기꺼이 맡겼습니다. 선교사란 때로는 자신의 생명을 내려놓아야 합니다. 목사도 마찬가지입니다. 여기에 앉아 예배드리는 우리 모두도 복음을 위해 생명을 내려놓아야 할 때가 찾아올 수 있습니다. 그럴 때에 우리는 내려놓아야 합니다. 십자가는 예수님 자신의 생명을 내어주신 것입니다. 그 결과 우리가 구원을 받았습니다. 나음을 입었습니다.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습니다. 반면에 밀이 썩으면 많은 열매를 맺습니다. 밀이 썩었다는 것은 자기 생명을 내려놓음입니다.
중국 CCTV에서는 지난해 2007년도에 중국을 감동시킨 인물 11명을 선정해서 발표했습니다. 그중에 전투기 조종사 리젠잉(42)대령이 뽑혔는데 사연은 이렇습니다. 2006년11월 훈련을 마치고 귀환하던 중 기체가 비둘기떼에 부딪쳐 추락하게 되자 비상탈출하지 않고 끝까지 조종간을 붙잡았습니다. 마을로 떨어지는 것을 막으려 목숨을 희생한 것입니다. 이렇듯 자신의 생명을 내려놓을 때 마을의 많은 주민들의 생명을 구할 수 있었습니다.
주님 것을 내것이라고 고집하며 살아 왔네 금은보화 자녀들까지 주님 것을 내 것이라 아버지여 철없는 종을 용서하여 주옵소서 맡긴 사명 맡긴 재물을 주를 위해 쓰렵니다.
천한 이 몸 내것이라고 주의 일을 멀리 했네 주신이도 주님이시오 쓰신 이도 주님이라 아버지여 불충한 종을 용서하여 주옵소서 세상 유혹 다 멀리 하고 주의 일만 하렵니다.
예수님의 내려놓음을 가장 닮은꼴로 살았던 사람은 사도 바울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그 외에도 교회사를 보면 내려놓은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내려놓은 사람들 때문에 복음은 증거 되고 있습니다. 생명력이 있습니다.
이렇게 내려놓으면 하나님은 반드시 갚아주십니다.
이사야58:7절에 보면 “또 주린 자에게 네 양식을 나누어 주며 유리하는 빈민을 집에 들이며 헐벗은 자를 보면 입히며 또 네 골육을 피하여 스스로 숨지 아니하는 것이 아니겠느냐”
이렇게 귀한 삶을 산 자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복을 봅시다. 이사야 58장 8-9절 말씀, “그리하면 네 빛이 새벽 같이 비칠 것이며 네 치유가 급속할 것이며 네 공의가 네 앞에 행하고 여호와의 영광이 네 뒤에 호위하리니 / 네가 부를 때에는 나 여호와가 응답하겠고 네가 부르짖을 때에는 내가 여기 있다 하리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무슨 능력을 받았든지 항상 가지지 못한 자들을 사용하십시오. 그럴 때 그 능력은 가치 있는 능력이 됩니다. 신14:29절 말씀 “너희 중에 분깃이나 기업이 없는 레위인과 네 성중에 거류하는 객과 및 고아와 과부들이 와서 먹고 배부르게 하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손으로 하는 범사에 네게 복을 주시리라”
오늘 본문 38절 말씀에도 보면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에게 안겨 주리라 ”고 하셨습니다. 35절 하반절에도 보면 “그리하면 너희 상이 클 것이요 또 지극히 높으신 이의 아들이 되리니 그는 은혜를 모르는 자와 악한 자에게도 인자하시니라”
언제 이런 복을 받습니까? “오직 너희는 원수를 사랑하고 선대하며 아무 것도 바라지 말고 꾸어 주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면 후히 주시고 흔들어 넘치게 주십니다. 오늘은 사회봉사주일입니다. 봉사는 내 것을 내려놓지 않고는 제대로 감당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대 사회봉사를 해야 합니다. 교회 안에서도 봉사해야 합니다.
36절 말씀 “너희 아버지의 자비로우심 같이 너희도 자비로운 자가 되라” 주님의 자비로움의 열매는 십자가입니다. 십자가상에서의 내려놓음입니다. 이렇게 많은 성도들이 있습니다. 대사회봉사는 고사하고 경로대학에 주방봉사 할 성도가 없다면 우리교회가 과연 주님을 잘 섬기는 교회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뉴질랜드에는 ‘키위’라는 새가 있습니다. 부리가 긴 이 새는 앞을 보지 못하고 날지도 못합니다. 키위는 살고 있는 곳이 화산지대여서 뱀이나 파충류 따위의 천적이 없고 먹이가 풍부해 굳이 날아다닐 필요가 없습니다. 그러다 보니 날개와 눈의 기능이 퇴화되어 버린 것입니다. 육체의 근육도 사용하지 않으면 퇴화되고 재능도 사용하지 않으면 사라지고 맙니다. 그래서 30세가 넘으면 밥먹는 근육과 수다 떨고 잔소리하는 근육만 남는다는 말도 있습니다.
성령의 은사도 사용하지 않으면 소멸됩니다. 고여있는 물은 썩듯이 사람도 편안하면 타락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푯대를 향하여 달리는 인생을 살았습니다. 달라지 않는 자전거는 넘어지듯이 달려가지 않는 인생은 넘어지고 맙니다.
조지 휘필드의 말처럼 “하나님의 사람은 녹이 슬어 없어지는 인생이 아니라 하나님의 손에 닳아 없어지는 인생이 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손에 닳아진다는 것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을 하다가 하나님의 부름을 받는 삶입니다. 그 삶은 바로 십자가를 지는 삶입니다. 십자가는 내려놓음의 삶의 극치입니다. 내려놓으십시오. 그러면 도로 돌려받습니다. 없는 것까지도 채워주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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