촛불시위자들 체포되다.

[현장] 촛불시위하다 47시간 30분 체포되다 난생 처음 유치장 신세 경험한 신학생의 고백...\"꺼지지 않는 촛불이었으면\" ▲5월 28일 저녁 9시 제21차 미 쇠고기 수입 반대 촛불문화제가 열렸다. 이 날 시민들은 28일 새벽에 경찰이 연행한 사람들을 석방할 것과 29일로 예정된 고시 강행을 반대하는 데 목소리를 높였다. ⓒ뉴스앤조이 이종연 “미국 쇠고기 수입을 반대하는 촛불문화제. 아무래도 분위기가 심상치 않습니다. 십여 차례의 평화적인 촛불문화제에도 전혀 아랑곳 않는 정부의 태도에 시민들이 분노하기 시작했습니다. 국민들은 거리 시위를 하고 목소리를 높이기 시작했습니다. 광화문에서 제가 있는 신촌까지 시위가 확장되었습니다. 강도 높은 진압작전이 개시되고, 시위 참석자들을 연행까지 했습니다. 2주 전에 몇 차례 촛불을 들고 나갔는데 이제는 그때와 분위기가 사뭇 다릅니다. 저는 다시 초를 들고 나가야겠습니다. 사라진 검역 주권과 국민들의 생명을 담보로 한 위험한 협상을 저지할 방법은 이것밖에 없어 보입니다. 신앙적 고민도 제 안에서 결론을 지었습니다. 생명윤리를 져버린 정부의 방침과 민주사회에서 시민의 의사를 무시하는 것은 정의롭지 못하다 믿기 때문입니다. 스스로 온건하고 중도적인 보수라고 생각했는데 이런 행동을 하리라 마음먹고 나니 그 자체가 가슴이 아팠습니다. 다녀오겠습니다.“ 윗글은 5월 26일 미니홈피에 올린 일기문입니다. 다음날인 27일 다시 촛불을 들고 광화문에 나갔습니다. 생명윤리를 져버린 정부의 방침과 민주사회에서 시민의 의사를 무시하는 것은 정의롭지 못하다는 생각이 절실히 느꼈기 때문입니다. 1. 격렬해진 시위에 참석하는 것이 저에겐 쉽지 않은 일이었습니다. 솔직히 겁도 났습니다. 불법적인 시위를 하는 것이 바른 일인지에 대한 신앙적 양심의 물음도 끊임없었습니다. 하지만, 정부의 불의한 판결과 인권을 무너뜨리는 강제 연행은 정의롭지 못한 일이라 판단했고 27일 저녁시간에 광화문으로 발길을 옮겼습니다. 2. 광화문역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대규모 시위대가 명동을 향해 가두행진을 하고 있었습니다. 뒤늦게 도착한 몇몇 사람들이 시청방향으로 걸어가고 있었습니다. 그 행렬에 참여했지요. 3. 잔디 광장을 건너 국가 인권위원회로 가자마자 사방에서 수백 명의 전경들이 나타났습니다. 검은 옷을 입고 척! 척! 척! 겹겹이 에워싸는 실력이 대단했습니다. 지휘자로 보이는 전경이 구호를 외치자 모두가 복창을 하더군요. 무서운 기세였습니다. 간담을 서늘케 하는 구호 중에 제가 알아들은 것은 ‘전방주시’라는 구호였습니다. 저는 그들의 눈을 봤습니다. 20대 초반의 앳된 그들의 눈망울은 우리 내 교회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청년들의 그것이었습니다. 4. “전경 여러분, 이건 아닌 거 알잖아요? 우린 인도에 있었어요.” 금방이라도 저를 집어 삼킬 듯 에워 싼 그들을 향해 물었습니다. 애써 제 시선을 외면하더군요. 아마 그렇게 훈련 받았으리라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항할 의사가 없다는 표시를 하기 위해 두 손을 들었습니다. 그러자 분대장으로 보이는 전경이 외쳤습니다. “연행!” 전경들이 외칩니다. “연행, 연행, 연행” 하며 제 주변의 전경들이 벌떼처럼 달려들었습니다. 저의 양팔·어깨·다리·목과 머리를 제압했습니다. 저는 10여 분을 끌려 다닌 끝에 도봉경찰서 버스에 올랐고, 생전 처음으로 경찰 조사와 유치장 입감을 명받았습니다. ▲ 5월 28일 새벽 12시 20분경, 서울시청앞 광장에서 수백명의 전경이 광장에 촛불을 들고 시위를 하던 시민들을 삽시간에 에워싼 후 연행하고 있다. ⓒ뉴스앤조이 이종연 5. 기본조사가 끝나고 전경 대표가 연행과정에 대해 조사를 했습니다. “주민번호!” “87XXXX.” 너무 놀랐습니다. 험한 욕을 뱉으며 무섭게 저를 제압한 그 전경이 한참 동생뻘이라니요. 조사를 마치고 잠깐 그 친구와 이야기할 시간이 있었습니다. 제게 묻더군요. “시위는 왜 해요? 이렇게 시위하시면 사람들도 불편하고 그러잖아요.” 피곤이 역력해보였습니다. 벌써 며칠째 밤을 새웠는지 기억도 안 난다고 했습니다. 제가 답했습니다. “시위로 며칠간 사람들이 불편하기도 하고, 때론 우리를 욕도 하겠죠. 십 수 년 뒤에 원인도 모른 채 죽어갈지 모르는 제 친구들과 동생들의 미래가 더 두렵고 화가 나기 때문에 나간 거예요.” 더 이상 그 친구와 이야기할 수 없었습니다. 다만, 긴급 상황 지역으로 다시 투입명령을 받고 괴로워하던 그 친구의 뒷모습만 기억에 남습니다. 6. 유치장에서의 첫날밤은 거의 뜬 눈으로 지새웠습니다. 분명히 불의한 일이지만 바로 잡을 수 없다는 무기력감도 몰려왔습니다. 스스로에게 후회하느냐고도 물어봤습니다. 쉽게 답을 못 내리겠더군요. 공교롭게 성서의 한 장면이 떠올랐습니다. 누가복음서의 한 장면입니다. 예수께서 재판을 당하시는 모습이죠. 예수는 산헤드린과 빌라도, 그리고 헤롯에게 심문을 당합니다. 모두 불의한 재판이자, 예수를 죽이려는 음모를 담고 있습니다. 살기가 등등한 그 재판정에서 예수는 대답을 회피합니다. 침묵을 선택하죠. 무기력한 예수의 모습은 실망스럽습니다. 그들을 멋지게 훈계하시며 평소처럼 기적의 모습으로 이기셨으면 그림이 보기 좋았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예수는 침묵합니다. 빌라도에게 십자가형을 언도받습니다. 누가는 여기에서 재판의 이야기를 종결짓습니다. 그러나 한번 상상해보십시오. 변명의 기회에서 침묵을, 죽음에 목전에서 침묵을 하는 예수의 모습을! 어쩌면 적대자들에게 이런 침묵은 어떠한 저항보다 무서운 모습이었을 것입니다. 평소에 그들이 알던 예수라면 자신의 추종세력을 이용해 반란을 꾀하던지, 죽은 자도 살린다는 그 기적의 능력으로 위기를 모면했을 그가 처절한 죽음을 침묵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것입니다. 7. 유치장 입감 3일째, 두 번째 조사를 받았습니다. 그 전날 이미 4시간이 넘는 추궁과 조사를 한 터라 그리 길지 않더군요. 모니터 앞의 형사가 마지막으로 물었습니다. “또 다시 집회에 참여할 생각이 있습니까?” 제가 말했습니다. “그 질문에 대해선 답하지 않겠습니다.” 형사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답합니다. “그 말은 다시 집회에 참여할 수도 있단 뜻이며 불리하게 작용될 수 있습니다.” 저도 답했습니다. “상관없습니다. 답하지 않겠습니다.” 감히 예수를 흉내 냈다고 생각지는 않습니다. 다만 저의 침묵이 그들에게 꺼지지 않을 촛불로 기억되길 바랄 뿐입니다. 김형욱/ 연세대학교 신학대학원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