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막문 안에서의 정결의식 레14:10-20
제 팔일에(10절, 23절) 진 밖에서 정결의식을 7일간 계속한 뒤 다음날인 제8일에 회막 안으로 들어와 정결의식을 행하고 번제와 소제, 속건제와 속죄제를 드림으로 결례의식은 끝난다. 제8일은 창조의 7일간이 지난후 새 날을 상징하기도 하며 병나은 자를 위해서는 새 생활의 첫날이 된다. 남자가 태어나면 8일째 할례를 받아 하나님과 계약의 자손이 되듯이 나병환자가 그의 부정으로 인해 회중과 분리되었던 비참함에서 제8일에 다시 선민으로서의 모든 관계가 회복되는 날이다. 제8일은 새로 태어나는 날이며 부활의 날이다.
피와 기름을 바름(16-17절) 제사장은 먼저 희생 제물의 피를 나병환자가였던 사람의 오른 귓부리와 엄지손가락과 발가락에 발랐고 기름도 같은 방법으로 발랐다. 피는 그의 속죄를 상징하고 기름은 헌신을 가리킨다. 귓부리에 바른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순종할 것을 뜻하며 손과 발에 바른 것은 그의 행동이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할 것을 상징한다. 모두 우편인 것은 들음과 행함의 완전함을 가리키며 손과 발의 엄지가락은 그의 행함의 으뜸을 가리키는 것이다. 이 결례는 제사장의 위임식때 드리는 속건제 예식과 같은데(8:22-24) 이는 완전히 하나님의 사람으로 인침받음을 뜻한다.
번제와 소제를 드림(20절) 번제와 소제는 하나님의 용서와 사랑과 은혜에 대한 예배와 감사의 제사이다. 죄로 인한 부정함에서 정결케 되었고 사람들과 하나님으로부터 격리되었던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와 거룩한 백성으로 회복시키신 사랑에 끊임없는 감사가 있어야 한다. 감사는 입술의 감사만 아니라 언제나 희생이 따랐다. 그런데 그 희생은 힘이 미치는대로 하라고 하셨다. 가난한 자는 집비둘기나 산비둘기로 하면 된다.(14:30) 형편에 맞게 하되 억지로나 인색함으로 할 것이 아니라 즐겨내는 자를 사랑하시는 주님(고후 9:7)을 기억하여야 한다.나병으로부터 깨끗함을 받았는지의 진찰과 판단을 제사장이 한 후 진 밖에서 7일간 정결의식을 행했습니다. 지난 주일 말씀드린대로 제사장이 살아있는 새 두 마리와 백향목, 홍색실, 우슬초를 준비하고 새 한마리는 흐르는 물 위에서 잡아 그 피를 그 사람에게 7번 뿌려 정결케 하고 살아있는 새 한 마리는 들에서 날려보내 죽음과 삶을 보여 줌으로, 죽었다가 살아난 자신임을 확인케 했습니다. 그리고 옷을 빨고 몸을 씻고 몸의 털을 다 밀어 온갖 부정함에서 깨끗케 되는 결례의식을 행하게 하였습니다. 이제 완치된 사람이 회막문에 들어와 정결의식을 행함으로 격리되었던 모든 관계가 회복되고 특히 하나님과의 온전한 교제를 하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은 회막문 안에서의 정결의식에 대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진 밖에서 7일간 지난 뒤 8일째 되는 날에 여호와의 번제단 앞에서 정결의식을 행하였습니다. 먼저 회막문에 세우고 제물을 가져오게 하였는데 이것은 헌신을 뜻합니다. 기름 한 록과 양 세 마리는 바치라고 하셨습니다.
기름 한 록은 1/4리터입니다. 그리고 번제, 속건제, 속죄제를 위하여 세 마리의 양이 필요한 것입니다. 제사장은 양의 피를 정결케 된 사람의 오른쪽 귓부리와 오른쪽 엄지손가락과 오른쪽 엄지 발가락에 바릅니다. 그리고 기름 한 록을 취하여 7번 찍어 여호와 앞에 7번 뿌리고 남은 것은 그 사람의 오른쪽 귓부리와 오른쪽 엄지손가락과 오른쪽 엄지발가락에 바르고 또 남은 것은 머리에 발라주는 것입니다. 그런 후에 번제와 소제를 드림으로써 정결의식이 끝나는 것입니다. 이 정결의식이 우리에게 주는 의미가 무엇이겠습니까? 회막문 안에서 행한 의식이 구속받은 우리 성도들에게 주는 의미를 세가지로 생각해 보겠습니다.
첫째는 제8일입니다.
8일만에 회막문 앞에 나와야 합니다. 제8일은 하나님께서 행하신 창조의 7일간이 지나고 새로운 하루를 맞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병나은 사람을 위해서는 새 생활의 첫 날이 되는 것입니다. 이레 동안이 중요합니다. 그러나 제8일은 새롭게 시작하는 첫 날입니다.
예컨대 열흘간 입원했던 분이 완치되어 퇴원을 하는 날이 제8일입니다. 열흘간 입원한 것도 중요한 하루 하루입니다. 의사의 처방과 지시대로 치료를 받아서 나아 퇴원을 했으면 매우 기쁜 날입니다. 그런데 퇴원하는 날은 마음을 단단히 가져야 합니다. 이제는 건강을 위해서 노력해야 하며, 건강을 얻게 도와준 의사와 가족들에게 고마운 마음을 가져야 하며, 더욱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하나님께 삶을 맡기고 믿음으로 살아야 합니다. 제8일은 새로운 각오와 확실한 믿음으로 출발해야 하는 날입니다. 우리 모든 사람에게는 제8일이 있습니다. 제8일은 은혜의 날이요 새 출발의 날입니다.
구약에서는 사람이 태어나면 8일만에 할례를 받았습니다. 할례를 받음으로 하나님과 계약의 자손이 되어 선민의 특권을 누렸듯이, 나병으로 모든 권리를 박탈당하고 가족과 이웃으로부터 격리당하여 있었고, 하나님 앞에 나올 수 없었던 사람이 제8일에 속죄제를 드림으로 하나님의 선민으로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어, 그동안 출입할 수 없었던 회막에 나오게 되는 것입니다.
나병환자는 살아 있으나 모든 면에서 죽은 것과 다름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제8일은 모든 권리와 관계가 살아나는 부활을 상징하는 날입니다. 나사로가 죽은지 4일만에 무덤에서 살아 나왔습니다. 이 4일째가 나사로에게는 부활을 상징하는 날이었고 나병환자는 제8일째가 부활의 날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새롭게 태어나고 새롭게 시작하는 날입니다. 나음받은 사람이 8일째 회막에 나왔습니다. 여기에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구속받은 성도에게는 제8일이 있어야 합니다. 회막인 이 예배당에 나온 성도는 제8일이 있어야 합니다. 죄와 죽음에서 살림받은 부활신앙이 충만해야 합니다. 부활신앙이 없으면 제8일이 없는 사람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죽음과 부활이 없었다면 아직도 우리는 죄와 사망의 권세 아래 있었을 것입니다. 주님의 은혜로 죄에서 해방받고 멸망할 사람이 영생을 얻게 되었으니, 이제는 부활신앙으로 제8일을 살아야 합니다. 주님의 능력 안에서 살게 되었음을 믿고, 오늘도 부활의 능력으로 새로운 삶을 살아가는 것이 제8일을 사는 것입니다.
에스겔서 37:3에서 하나님이 에스겔에게 물으셨습니다. 인자야 이 뼈들이 능히 살겠느냐 하셨습니다. 만약 이 물음에 오늘날 사람들은 어떻게 대답하겠습니까? 과학자들은 불가능합니다 라고 대답할 것입니다. 철학자들은 알 수 없습니다 라고 대답할 것입니다. 그러나 성도들은 능히 살 수 있습니다 라고 대답해야 합니다. 부활의 신앙을 믿는 성도는 뼈들이 살아 큰 군대를 이룰줄 믿는 것입니다.
우리는 매주일 사도신경을 통해서 몸이 다시 사는 것과 영원히 사는 것을 믿사옵나이다 라고 고백합니다. 우리 기독교 신앙은 다시 사는 신앙이요, 영원히 사는 믿음을 갖고 있습니다. 고린도전서 15:16이하에 만일 죽은 자가 다시 사는 것이 없으면 그리스도도 다시 사신 것이 없었을 터이요, 그리스도께서 다시 사신 것이 없으면 너희의 믿음도 헛되고 너희가 여전히 죄가운데 있을 것이요 라고 하셨습니다. 부활신앙이 없는 믿음은 헛된 것입니다. 나환자의 정결의식은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다시 산다는 것을 보여 줍니다. 절망에서 한숨만 쉬고 낙담하는 것이 기독교 신앙이 아닙니다. 절망을 딛고 다시 사는 것입니다. 희망이 있습니다. 새로운 삶이 있습니다. 죽음과 멸망이 아니라 부활과 영생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절망적인 일을 만났습니까? 부활신앙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우리를 우겨싸는 환난과 고통이 있어도 우리 주님은 제8일을 주십니다. 제8일을 사는 사람은 진리의 말씀과 하나님의 능력 안에 있어 의의 병기로 좌우한다고 했습니다.(고후 6:7) 고린도후서 6:8 이하에 제8일을 사는 사람은 속이는 자 같으나 참되고, 무명한 자 같으나 유명한 자요, 죽는 자 같으나 보라 우리가 살고, 징계를 받는자 같으나 죽임을 당하지 아니하고, 근심하는 자 같으나 항상 기뻐하고, 가난한 자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하고, 아무 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 라고 하셨습니다.
부활을 믿는 신앙은 막연한 이론이 아닙니다. 어떤 사상이 아닙니다. 삶이요 행동입니다. 자신이 처한 환경 속에서 끊임없이 하나님 나라를 이루어가는 제8일의 삶을 사는 것입니다. 썩어질 육체의 방법이 아니라 살게 하시는 하나님의 방법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제8일이 있습니까? 있다면 제8일을 어떻게 사십니까? 하나님이 주신 은총의 새 날을 믿음으로 담대하게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둘째로, 제물의 피와 기름을 정결케 되는 사람에게 발랐습니다.
제사장은 먼저 피를 나병에서 깨끗함 받은 사람의 오른쪽 귓부리와 오른쪽 엄지손가락과 오른쪽 발가락에 발랐습니다. 피를 바른 것은 그의 속죄를 상징하는 것입니다. 귀와 손가락과 발가락은 몸 전체를 대표하는 끝부분입니다. 귓부리에 바른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순종하는 것을 뜻하며, 손과 발에 바른 것은 그의 행동이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할 것을 상징합니다. 모두 우편인 것은 듣는 것과 행하는 것의 완전함을 상징하며 손과 발의 엄지가락은 그의 행함의 으뜸을 가리킵니다. 기름도 같은 방법으로 발랐는데 기름은 헌신을 뜻합니다.
귀는 헛된 말과 거짓말과 부정한 것을 듣는 통로이기 때문에 귓부리에 피를 발라 이런 추하고 더러움에서 정결함을 받아야 합니다. 우리의 귀를 십자가의 보혈로 정하게 씻어야 합니다. 또한 귓부리에 기름을 바른 것은 하나님의 말씀듣는 것을 기쁘게 여기고 옳은 말, 선한 말을 듣는데 헌신하는 지체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죄를 범하는 오른손입니다. 부정한 길, 악한 길에 들어섰던 발입니다. 우리의 지체에 의한 모든 범죄가 그리스도의 피에 의해 사함받고 새로워져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의 이전에 지었던 모든 죄를 대제사장이신 주님이 자신의 보혈로 우리를 사하여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한번 회개한 죄에 대하여 고민하거나 죄책감에 사로잡히지 말아야 합니다. 이제 우리는 씻김받은 성도로서 성결한 삶을 살고 정결한 귀, 정결한 손과 발이 되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마귀는 우리의 지난 죄를 송사하지만 의롭다고 하신 이는 하나님이시니 정죄할 자가 없습니다. 우리는 그 은혜에 감사하면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헌신하며 충성을 다해야 합니다.
또한 기름을 바른 것은 기름은 성령을 상징합니다. 먼저 속건 희생의 피를 바르고 기름을 바른 것에 주의해 보아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피는 성령의 역사의 기초입니다. 성령의 역사와 은총은 그리스도의 피를 믿는 사람에게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죽음을 믿지 못하는 자에게는 성령의 체험이 없습니다. 에베소서 1:13에 보면 주 안에서 먼저 믿고 그 후에 약속의 성령의 인치심을 받으라 고 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죽었던 우리를 살리셔서 하나님의 자녀 삼으셨습니다. 이제는 온전히 우리 자신을 하나님께 맡기고 바쳐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우리를 그리스도의 피로 사신 바 되었다고 했습니다. 이제 우리의 온 몸을 주님 위해 귀하게 쓰임받아야 합니다. 베드로전서 4:11에 보면 누가 봉사하려거든 하나님의 공급하시는 힘으로 하라 고 하셨습니다. 주님을 위해 헌신하는 것은 세상 일과 다릅니다. 주님의 이름으로 봉사하려면 자신의 지식과 경험이 아니라 하나님의 공급하시는 힘으로 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공급하시는 힘은 성령의 능력을 말합니다.
그리고 이 정결의식은 제사장의 위임식 예식과 꼭 같습니다.(레 8:22-24) 이렇게 씻김받고 정결케 되었으면 하나님의 일을 온전히 맡아서 하는 제사장과 같다는 뜻입니다. 쓸모없는 인간인 우리들을 주의 자녀로 삼으시고 왕같은 제사장으로 불러 주셨으니 그 은혜에 감사하여 참된 헌신과 충성을 다하시기 바랍니다.
셋째로, 번제와 소제를 드렸습니다.
정결함 받은 사람은 번제와 소제를 하나님께 드리라고 하십니다. 번제와 소제는 하나님의 용서와 사랑과 은혜에 대한 예배와 감사의 제사입니다. 번제는 예배이고, 소제는 감사입니다. 나의 죄로 인한 부정함에서 정결함을 받았고 하나님의 자녀로 인쳐 주신데 대하여 끊임없는 감사를 드려야 합니다. 예배와 감사, 이것이 성도의 삶입니다. 하나님께 예배 중심으로 살며 범사에 감사하는 삶이 되어야 합니다. 감사는 마음의 감사와 입술의 감사로만 그쳐서는 안됩니다. 희생이 따라야 합니다.
일년 내내 단 한번의 감사헌금도 드리지 않는다면 희생이 없는 섬김입니다. 그런 사람이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할 수 있겠으며, 하나님이 그를 사랑한다고 믿어도 되겠습니까? 양을 잡아 제사를 드리라고 합니다. 그런데 누구나 다 양을 잡아 드리라고 하시지는 않습니다. 가난한 자를 위하여는 그 힘에 미치는대로 드리라 고 하나님이 말씀하십니다. 양으로 번제를 드릴 수 있는 형편이 안되는 가난한 사람은 집비둘기나 산비둘기로 하라고 하셨습니다.(14:30)
하나님께 드릴 때 부자는 부자대로, 가난한 자는 가난한 자대로, 정성을 다하고 최선을 다하여 감사한 마음으로 드리면 됩니다. 하나님은 우리 개인 개인의 형편을 너무나 잘 알고 계십니다. 모든 것이 주께로부터 왔고, 주님의 것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이 성도들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베푸신 은혜를 감사하는 마음이 넘쳐야 합니다.교회 안에서 헌금에 대하여 시비하고 시험에 드는 사람은 가난한 사람이 아니고 부유한 사람일 때가 많고, 초신자가 아니라 직분을 가진 자일 수가 있습니다. 14장에서 그 힘이 미치는대로 하라고 몇번이나 강조하고 있습니다. 물질은 있으나 은혜를 깨닫지 못하는 사람이 있고, 물질은 없으나 은혜에 감격하여 사는 사람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보실 때 어느 사람을 기뻐하시겠습니까?
고린도후서 9장에 사도 바울은 헌금에 대하여 말씀하고 있습니다. 각각 그 마음에 정한대로 할 것이요, 인색함으로나 억지로 하지 말라 고 하시면서 하나님은 즐겨내는 자를 사랑하시느니라 고 하셨습니다. 그러면서 계속 말씀하기를 하나님이 능히 모든 은혜를 너희에게 넘치게 하시나니, 이는 너희로 모든 일에 항상 모든 것이 넉넉하여 모든 착한 일을 넘치게 하려 하심이라 고 하셨습니다. 기쁨과 감사와 최선을 다하여 감사하라고 하십니다. 우리가 날마다 크신 은혜 속에 살면서 그 은혜를 깨닫지 못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지 못한다면, 우리를 깨끗케 하신 하나님이 매우 섭섭해 하실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제 8일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죽었다가 살아난 우리들입니다. 부활의 확신을 갖고 현실이 어둡고 답답해도 생명있는 믿음으로 제8일을 살아야 합니다. 우리를 깨끗케 하시고 새롭게 하신 주님 은혜에 날마다 감사, 감격하며 예배 중심의 삶, 바른 예배의 믿음, 감사가 넘치는 믿음과 생활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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