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와의 영광이 성막에 충만하매 출40:33
침몰하고 있는 타이타닉호 위에 다섯 명이 구조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구명보트는 이제 마지막 한 대밖에 남아있지 않았고 그 마지막 한 대에는 한 사람의 자리밖에 없었습니다. 구조를 기다리고 있던 다섯 명 모두 살아남아야 할 특별한 이유가 있었기 때문에 어떤 일이 있어도 자기만은 구명보트에 타야한다고 생각하고 있는 그 때였습니다. \\\'당신은 신사다\\\' 라는 말에 한 사람이 구조를 포기하고 바다에 뛰어들었습니다. 영국사람이었습니다. \\\'당신은 영웅이 될 것이오\\\' 라는 말에 는 미국인이, \\\'이것은 법이요\\\' 라는 말에는 독일 남자가 바다에 뛰어들었습니다. 이제 남은 일본인은 \\\'남들도 다 뛰어내려\\\' 라는 말에 뛰어내렸습니다. 일본인들이 스스로 자성하는 의미에서 자주 말하는 타이타닉 조크입니다.
여러분은 어떤 말에 뛰어내릴 것 같습니까? 아울러 오늘의 신자들은 어떤 말을 들으면 뛰어내릴까? 생각해봅니다. 아 마 모두가 \\\'하나님의 뜻이라면 뛰어내려야 한다\\\' 라고 말할 것입니다. 모두가 잘 알고 있는 정답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 정답을 알고 난 뒤 무엇이 하나님의 뜻인가? 어떤 것을 하나님의 뜻으로 듣고 물 속에 뛰어내려야 하는가? 하는 것입니 다.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있어서 이 문제는 너무나 쉬운 것이었습니다. 출애굽기 마지막 40장은 이스라엘 백성들 이 에집트를 떠나온 지 2년쯤 되었을 때 하나님께서 시키신 성막을 모두 완성하고 난 뒤의 일입니다. 지금까지 그들은 하 나님께서 세우신 하나님의 종 모세의 지시대로 움직이면 되었기 때문에 너무나 쉬운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성막이 완성되 고 난 후에는 성막 위에 구름이 가득 덮였기 때문에 이때부터는 하나님께서 친히 인도하셨습니다. 성막 위에 구름이 떠오 르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짐을 싸서 출발하면 되었습니다. 구름이 보이지 않는 밤에는 구름 속에 불이 있었기 때문에 불기 둥이 만들어져 그 불기둥으로 가까이 그리고 멀리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께서 어떻게 인도하시는지 볼 수 있도록 해주셨습니다. 낮에는 구름기둥이, 밤에는 불기둥이 출발하면 같이 출발하였고 머물러 있으면 함께 머물러 서있으면 되었 습니다(34-38절).
송아지 우상을 만들고 난 뒤 이를 회개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세가 시내산 위에서 하나님으로부터 지시 받은 성막이 나 성막에 쓰일 기구 그리고 제사장이 입는 옷 등 하나님의 명령대로 모든 일들을 완료하였습니다. 그리고 나서 준공식을 하였는데 그 일들이 본문의 이야기입니다. 교회로 한다면 봉헌식이 되겠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지금까지 아주 구체적으로 하나하나 가르쳐주시고 말씀하셨던 것처럼 마지막 봉헌식에 있어서도 날짜는 출애굽한 지 2년 된 정월 초하루 날로 잡고 그 모든 절차에 대해서 아주 구체적으로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지시하신 대로 봉헌식을 마치자 구름이 성막 위에 가득 덮이게 되었는데 이때부터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 구름이 인도하는 대로 가기만 하면 되었습니다.
본문에서는 성막에 관해서 많은 기록을 하였는데 우리는 여기서 몇 가지의 궁금점을 가지게 됩니다. 그 중에서 먼저 우리가 발견할 수 있는 조금 특별한 점으로 성막에 관해서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조금 과하게 지면을 할애하신다는 것 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출애굽기25장에서부터 40장까지 거의 대부분 성막에 관해서 지면을 할애하셨습니다. 여러분, 하나 님은 은혜에 대해서는 넉넉하지만 지면을 할애하시는데 있어서는 웬만큼 위대한 하나님의 사람이라도 잠깐 한마디로 슬쩍 짚고 넘어갈 정도로 인색하십니다. 그런데 출애굽기뿐만 아니라 다른 책에 나와 있는 성막의 기록들을 다 합치면 성경전 체의 약 5% 즉 1/20에 해당되는 지면을 할애하실 정도로 대단한 분량입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기독교 인들은 성막에 대해서 많이 알지 못하고 있습니다. 참으로 의아한 일입니다. 평소 자기의 일에 돈을 쓰는데는 아주 인색 하지만 자선사업이나 다른 사람을 위하여 돈을 쓸 때에는 아주 넉넉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런 것을 보면 그 분의 성품 과 인격을 알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 지면을 쉽게 할애하시는 분이 아닌데 성막에 관해서 왜 이렇게 많은 지면을 할애하시는가? 하는 의문입니다.
두 번째는 하나님께서는 성막에 관한 일들, 즉 성막을 건축하는 일이나 성막 안에서 쓰는 기구, 제사장의 옷 등에 대해 서 너무 구체적으로 말씀하신다는 사실입니다. 구상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하여 설계나 공사 책임자의 이름까지 거론하셨고 배열이나 봉헌하는 날짜까지 아주 구체적으로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는 윤곽만 정해주시고 나머지는 사람들 이 알아서 하도록 맡겨주시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오늘날 우리에게도 그리 크게 쓸모 있는 것도 아닌 그런 말 씀을 하나님께서는 왜 그렇게 자세하게 말씀하시는가? 하는 의문을 가질 수 있습니다.
세 번째는 모세는 하나님께서 성전건축 즉 성막건축에 대해서 아주 자세하게 가르쳐 주신대로 성전을 건축하고 난 후 하나님께 보고하였습니다. 이 보고 내용이 39장과 40장에 기록되어있는데 그 말씀 중에는 하나님이 명하신 대로 라는 표 현이 39장에 열 번, 40장에 여덟 번으로 두 장에서 열여덟 번 반복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이것을 기록한 모세가 자신들 이 하나님께서 지시하신 대로 철저하게 순종했다는 것을 하나님 앞에 강조하고 있고 후세의 사람들에게 이야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오늘은 이 궁금점을 가지고 성경을 보고자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성막을 통해서 상당히 많은 말씀을 하셨는데 먼저 성막의 의미에 대해서 성경의 증언을 통해서 보고자 합니다. 성경은 성막을 지으라고 하신 목적에 대해서 내가 그들 중에 거할 성소라고 분명하게 말씀하시고 계십니다(출 25:8).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 가운데 거하시기 위해서 성막을 지으라고 말씀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어서 이 스라엘 백성들을 만나는 곳이고 그들에게 말하고 그들의 말을 듣는 곳이 성막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출29:42-43). 그리 고 오늘 본문에서는 여호와의 영광이 성막에 충만했다(34절).. 하나님께서 충만한 영광으로 함께 하시기 위해서라고 말 씀하셨고 35절에서도 같은 말씀을 하셨습니다.
이 말씀을 종합해보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 가운데 함께 계시기 위하여 성막을 지으라고 말씀하셨다는 뜻이 됩 니다. 여러분, 하나님 마음을 읽을 수 있으시기 바랍니다. 부모님들은 결혼한 아들과 딸을 보고 싶어하면서 그 자녀들과 함께 지내고 싶어할 때가 많습니다. 그런데 분가한 자녀들이 함께 살고 있지는 않지만 부모님들을 위하여 항상 방 하나를 비워둔다면 얼마나 좋아하실까요? 부모님들은 언제나 자녀들과 함께 지내고 싶어하십니다. 이것의 신학적 의미는 참으로 심각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백성들 누구든지 하나님과 함께 하기를 원하는 마음으로 어디든지 성소를 마련해 드리 기만 하면 언제든지 오셔서 여러분의 가슴속에, 가정 속에 그리고 인생 속에, 기업 속에 계실 것임을 말씀하시고 계시는 것입니다.
이것을 시대적으로 구분해보면 구약시대에 하나님께서 친히 이스라엘 백성들 속에 함께 계신 곳이 바로 성막이었습니 다. 예수님 시대에는 육신을 가지신 예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 가운데 그 육신을 가지고 활동하셨습니다. 예수께서 승천 하시고 난 오늘날에는 하나님께서 성령으로 여러분들과 함께 하실 것을 말씀하시고 계십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여러분 들 가슴을 열기만 하면 하나님께서는 여러분 주변에 성령 하나님으로 계십니다. 여러분들 가슴속에 계시기도 하고 여러분 들 마음을 감동시키기도 하고 여러분들 사이사이 계시면서 여러분들을 끊임없이 하나님 말씀 앞으로 집중시키기 위해서 안간힘을 쓰고 계시는 분이 성령하나님이라는 말씀입니다. 따라서 하나님께서 늘 여러분들과 함께 하시기를 원하신다는 것과 여러분들이 가슴만 열기만 하면 늘 여러분들과 함께 하시기를 원하신다는 것이 성막의 참된 의미입니다.
하나님께서 이 모든 일들을 통해서 구체적으로 말씀하시는 것은 먼저 사람들을 이해하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는 인간의 한계까지도 이해하시고 계십니다.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눈에 보이지 않으면 마음에서 멀어지는 것처럼 하나님 을 자주 보지 못하면 믿음도 흔들리고 마음도 약해지며 때로는 죄에 약한 것이 인간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 께서는 될 수 있는 한 인간에게 자유의지를 부여해주시려고 합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약한 존재인지라 구체적으로 무엇을 지시해주지 아니하면 곧바로 자행자지 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어떤 부분에 있어서는 구체적으로 말씀해주셔야 하는 것 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혹 하나님께서 여러분들에게 구체적으로 말씀하실 때에는 아니라는 생각이 들지라 도 순종하시는 것이 좋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특별한 이유를 가지고 계시고 ㈆?筠湧?너무너무 잘 아시기 때문에 그 길 로 지도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말씀을 통해서 성전과 교회에 대해서 아주 중요한 가르침을 하시고 계십니다. 무엇보다도 사람들이 먼저 무 엇을 시작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먼저 주도하셨다는 말씀을 하시고 계십니다. 교회는 그리고 성전은 아주 특별한 곳 이고 세상 사람들의 모임과 같지 않으며 세상의 건물과 같지 않습니다. 특별히 하나님과 만나는 일에 있어서 성전은 세상 의 그 어느 곳과 다르다는 말씀을 아주 구체적으로 하시고 계십니다.
어느 곳에 간들 하나님과 만나지 못할 곳은 없습니다. 만일 오늘 여러분들이 배낭을 메고 산에 올라갔을지라도 하나님 께서는 그 곳에 계십니다. 그 어느 곳에서든 하나님께서는 계십니다. 그러나 성전은 그 곳과 다릅니다. 특별히 하나님을 만나는 일에 있어서 다른 곳에서 하나님을 만나는 것과는 달리 성전에서 하나님을 만나는 것은 하나님께서 성전에서 특별 하게 역사하시고 은혜를 주시며 때로는 특별하게 선물도 주십니다. 이것이 오늘 성전과 교회에 대해서 말씀하시는 바입니 다. 세상 사람들과 만나는 그 곳에서도 즐거움이 있고 하나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교회에서 사람들을 만날 때에도 세상 사람들과 똑같이 부딪히고 상처받기도 합니다. 그러나 교회는 다르다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받던 그런 상처가 아니라 교 회에서 받는 상처는 구원을 이루고 축복을 이루는 상처라고 말씀하십니다. 성전은 구별되어진 곳이고 교회는 세상의 다른 곳과는 크게 다른 곳이라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아울러 하나님께서 성전이나 교회에 대한 여러분의 시각에 대해서 성전은, 교회는 세상 사람들이 대충 짐작하여 할 수 있는 곳이 아니라고 강하게 말씀하십니다. 세상에서 성공한 일들이 상식적인 선으로 그대로 통용되는 곳이 교회가 아니며 세상 지식이나 세상 경험이 모든 것을 만들 수 있는 곳이 교회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구체적으로 가르쳐 주시고 지시하시 는 곳이 교회이고 성전이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교회에 대해서, 성전에 대해서 참으로 관심이 많으십니다. 교 회에 어떤 사람이 있어야 하며 어떠한 것이 없어져야 할 부분인가? 심지어 교회에서 어떤 연약한 사람이 차별대우 받고 있는가? 이 부분까지 아주 잘 아시고 계십니다. 반대로 어느 교회에서 비록 세상에서는 환영받지 못하는 사람일지라도 하 나님을 섬기듯이 섬기는가? 하나님께서 잘 보시고 계신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 더는 교회란 그리고 신자들이란 철저히 하나님의 지도하심을 따라야 한다고 가르쳐 주시고 계십니다. 세상에서 어 떻게 한다는 것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성경에서 어떻게 말씀하시는가에 철저히 따라야 하는 것이 신자들이라고 말씀 하시는 것입니다. 신자들은 돈을 쓸 때에도 세상 사람들이 어떻게 쓰는가에 관심을 둘 것이 아니라 내 마음 속에 내재하 시는 성령께서 말씀하시는 대로 행하는 것입니다. 살아 계신 부모님을 혹 부모님이 살아 계시지 아니한다면 이웃의 어른 들을 어떻게 섬겨야 한다고 말씀하시는 바에 순종하는 사람이 예수 믿는 사람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오늘은 우리 교회의 장로님들을 허락하신 장로 장립식이 있는 우리 교회로서는 아주 특별한 날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장 로의 직분에 대해서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바와 성경에서 가르쳐 주시는 바에 따라서 수행해야 하는 직분이라고 말씀하 시고 계십니다. 설사 자신이 다른 것을 소원할지라도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바에 귀를 기울여서 철저하게 이행해 나가야 하는 것이 바로 장로의 직분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세상의 직분과 달리 하나님께서 지정하셔서 세우신 하나님의 종이라는 말씀입니다. 저희 교회는 우리 교회의 모든 교우들이 믿음의 어버이로 믿고 따를 수 있는 어른들을 모시기 위해서 장로 장립식을 어버이 주일로 결정했습니다. 따라서 당사자들은 이 직분을 제대로 감당할 수 있는가에 대하여 애씀과 고뇌함이 있어야 하겠다는 것이 오늘 장로 장립식의 중요한 의의가 되겠습니다.
오늘 임직하실 임직자들이나 여러분 모두에게 바라는 바는 하나님 앞에서 세상의 모든 똑똑함을 다 내려놓는 일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세상에서 얼마나 가졌으며 얼마나 배웠으며 무슨 일을 한다는 것이 무슨 소용 있습니까? 아무 쓸데없는 일입니다. 다만 하나님께서 어떻게 말씀하셨는가? 하나님께서 어떻게 나를 지도하셨는가? 여기에 끊임없이 예민한 임직 자들 그리고 여러분이 되어주시기 바랍니다. 구름이 떴는가? 아니면 아직 성막 위에 덮여 있는가? 구름기둥이, 불기둥이 떴는가에 예민한 여러분들이 되어주시고 여러분이 하는 모든 일에 대하여 하나님께 예민한 사람이 되시기 소망합니다. 하 나님께서 나에게 소원하시는 바가 무엇인가를 생각하면서 하나님께서 앞장서서 가시면 뒤따라가고 하나님께서 가시지 아 니하면 가지 않고 주저앉는 여러분이 되시고 임직자들이 되신다면 여러분들 한 분 한 분과 임직자들과 이 교회에 구름 기 둥과 불기둥이 인도하는 참된 평강이 늘 함께 하실 것입니다. ♥
━━━━━━━━━━━━━━━━━2000년 5월17일
하나님의 일
느헤미야 3장━━━━━━━━━━━━━━━━━━
본문 느헤미야 3장은 바벨론의 포로로 끌려갔다가 세 번째 마지막 포로 귀환자들이 귀환하여 예루살렘 성벽을 건축하 게 되었을 때 그 일을 감당한 사람들의 이름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아직 성벽재건이 끝나지 않았음 에도 불구하고 누가 어떤 부분을 감당하였는가에 대해서 아주 상세하게 기록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느헤미야서는 삶의 실제적인 원리들 그리고 사역의 실제적인 원리들 혹은 봉사의 실제적인 원리들에 대해서 우리들에 게 중요한 가르침을 주고 있습니다. 1장은 하나님의 사람들은 하나님의 일을 하기 위하여 어떻게 기도해야 하는가에 대해 서 많은 말씀을 하셨고 2장은 일을 하기 위해서는 구체적으로 어떻게 도모해나가야 하는가? 오늘날로 말한다면 기획과 계획에 대한 여러 가지 원리들에 대해서 많이 말씀하셨습니다. 세 번째 오늘 3장에서는 하나님의 나라 그리고 교회는 어 떤 사람들의 어떤 일들에 의해서 거룩한 일들이 이루어지는가? 여기에 대해서 말씀하시고 계십니다. 성벽건축이지만 성전 건축 그리고 교회가 이루어지는 것과 아주 유사하다는 것을 다시 말씀드립니다.
3장에서 예루살렘 성벽은 아직 완성되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하려고 하는 사람들의 이름부터 거론한 후 4장부터 6장에 걸쳐서 공사내용과 과정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습니다. 객관적으로 보면 공사과정이라든지 공사내용이 먼 저 기록되어야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이 거룩한 기록자를 통해서 3장에서 먼저 사람이름에 대해서 기록하고 있습니다. 여 기서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일에 동참한 사람들을 얼마나 귀히 여기시는가? 이 부분에 대해서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완공 되지도 않은 상태에서 더 중요한 내용을 재치고 사람들의 이름부터 기록하셨다는 것은 아무런 결과나 공로가 없음에도 불 구하고 하나님께서는 하겠다고 작정하는 사람 자체를 귀히 여긴다는 말씀을 하시고 계십니다. 아주 중요한 부분입니다. 어떠한 일을 감당하였든지 간에 하나님께서 얼마나 좋아하시며 얼마나 귀히 여기시면 사람들의 이름부터 말씀하시겠습니 까? 사람들의 이름만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들이 감당한 일까지 아주 구체적으로 말씀하시고 계십니다. 이 것은 비록 사람들은 누가 어떤 수고를 했는지 잘 알지 못한다 할지라도 하나님께서는 귀히 여기시면서 기억하신다는 것입 니다. 하나님께서 기억하셨다함은 그 자체가 축복입니다.
출애굽기 처음 부분에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권념하셨더라고 말씀하신 후 곧바로 일을 시작하셨습니다. 그 리고 노아가 방주 속에 있을 때 하나님께서 노아와 그 가족들을 권념하셨더라고 말씀하셨는데 이 때 하나님께서는 이미 일을 하시고 계셨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에게 그 이름이 기억된다는 것이 얼마나 복된 일인가를 말씀하시 고 계시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잘 알지 못합니다. 우리 교회도 짧은 기간동안 성전을 완성하였는데 사실 이 자리에 계신 분들은 누가 어떤 일에 참여하였는지 알고 계신 분은 별로 없을 것입니다. 제법 소상히 알고 있다고 하는 저 역시 아는 것에 한계가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모두 아시고 기억하시고 계십니다. 바로 이것이 오늘날 우리의 복입니다. 예 수 믿는 사람들이 아무도 보지 않고 아무도 알지 못하는 가운데 숨어서 일할 맛이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사실 조금 이기 적인 생각이지만 인간인지라 어찌할 수 없이 하나님마저도 알아주시지 않는다면 우리는 일할 의미를 잃을 것입니다. 설사 몸으로나 재물로 동참하지 못한다고 할지라도 적어도 이 교회를 위해서 무릎을 꿇어 기도했다는 것을 기억하신다는 것을 우리는 충분히 느낄 수 있습니다.
한가지 더 하나님께서는 일을 귀히 여기시는 것보다 무엇보다도 사람을 더 귀히 여기신다는 것을 오늘 본문에서 볼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이어지는 4장부터 공사내용과 그 과정을 보실 텐데 하나님께서는 그 이전에 사람에 대해서 먼저 이야 기하셨습니다. 이것의 의미는 하나님의 제 일차목적은 일이 아니라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자신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이 재물이 없어서 일하지 못했다고 조금도 걱정할 필요 없습니다. 마음으로 충분합니다. 여러분들이 그 자리에서 마음으로 기도하시고 애쓰면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단지 그 사람이 하나님을 위해서, 그 일을 위해서 얼마나 애 쓰며 기도함이 있었는가? 이것을 기억하실 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일의 결과나 밖으로 나타나는 결과를 좋아하시는 것이 아니라 그 일을 위해서 수고하고 힘쓰지 못했을지라도 그 마음이 어느 쪽으로 향하고 있는가를 보십니다. 그래서 이스라 엘 백성들은 몸이 가지 못할지라도 마음은 언제나 예루살렘 성전을 향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집의 창문까지도 예루살렘 성전을 향하여 짓고 있습니다. 형식적으로 보일 수도 있지만 그 마음이 하나님을 향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사람을 제 일차 목적으로 하신다는 것은 구체적으로 어떤 것일까요? 먼저 궁극적인 말씀을 드 리면 하나님의 사람으로 하여금 평안을 누릴 수 있도록 일을 만들어 가신다는 것입니다. 삶의 의미를 가지고 기뻐하면서 살아가도록 하기 위해서 성장하고 성숙하는 것이 하나님의 목적입니다. 어떤 경우에도 하나님은 일이나 결과자체를 제 일 차 목적으로 하시지 않으시고 항상 사람이 우선입니다. 여러분들이 주님의 전에서 웃으시고 다른 분들과 만나서 즐거워하 고 행복해하는 것이 하나님의 제 일차 목적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일을 하는 사람이 꼭 알아야 하는 것은 사 역은 자신의 희생이 아니라 그 자체가 축복이라는 것입니다. 우선은 자기가 희생하고 헌신하겠다는 마음으로 하지만 그 자체가 축복이라는 것이 전체를 통해서 말씀하시는 첫 번째 부분입니다. 하나님께서 공사과정이나 내용보다 사람들 이름 부터 말씀하신 것은 하나님의 일을 사랑하는 사람들을 귀히 여긴다는 것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본문의 내용을 보면 1절에서 5절까지의 말씀은 예루살렘 성벽의 북쪽의 일들입니다. 북쪽은 적들의 공격으로부터 노출 이 심한 곳이므로 가장 위험한 곳입니다. 이 북쪽의 일들을 대제사장 엘리아십이 그 형제 제사장들과 함께 일어나 건축 하였다고 말씀하셨습니다(1절). 영적인 지도자들인 대제사장들이 가장 위험한 일을 앞장서서 감당했다고 말씀하시는 것입 니다. 하나님의 일을 함에 있어서는 특별한 자가 없다는 아주 중요한 원리를 말씀하시고 계십니다. 도리어 소위 특별한 자라고 여김 받고 있는 대제사장들이 더 앞장서서 위험한 일을 감당했다는 것을 보여주셨습니다. 지도자들은 어떤 일을 감당해야 할 것이며 더 많이 맡은 자들은 어떤 부분을 감당해야 할 것인가에 대해서 아주 중요한 가르침을 주시고 계십니 다.
그 다음은 두고아 사람들이 중수하였으나 그 귀족들은 그 주의 역사에 담부치 아니하였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5절). 모든 귀족들이 담부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두고아 사람들 중에서 그 부분을 담부하지 않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이 아실 것은 함께 일하는 공동체의 모든 사람들이 한 마음이 되었으면 좋겠지만 그렇지 아니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입니 다. 그러므로 이것을 알고 신앙생활과 하나님의 일을 해야 할 것입니다. 어떤 의미에서 보면 반드시 빠지는 사람이 있도 록 되어있다고 오늘 본문을 통해서 말씀하십니다. 그렇습니다. 일하지 않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럴 때 그 사람에게 시선 을 맞추지 말고 열심히 하는 사람에게 시선을 맞추면 됩니다. 여기저기에 시선을 맞추다 보면 시험 들고 마음에 상처만 받게 됩니다. 당연하게 빠지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그러나 여러분이 아실 것은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거룩한 일에 있어서 구석구석 작은 일까지 동참하는 사람들을 기억하시는 것처럼 불참한 사람들도 기억하신다는 사실입니 다. 이것에 대해서 그러나 그 귀족들은 그 주의 역사에 담부치 아니하였다고 기록하셨습니다(5절). 하나님은 아신다는 말 씀입니다.
두 번째 부분으로 6절에서 13절까지의 말씀은 예루살렘 성의 서쪽 부분으로 성벽의 파괴가 가장 심한 지역이었습니다. 따라서 이 부분을 중수하는데는 많은 돈이 듭니다. 돈이 가장 많이 드는 부분을 감당한 사람들은 여러 사람 가운데 금장 색과 향품 장사 등이 중수하였다고 말씀하셨습니다(8절). 이들은 당시로서는 재산이 많은 상업재벌로 상류층입니다. 당시 예루살렘의 재력가들이 가장 많이 훼손된 부분을 감당하여 가장 많은 재물을 부담하였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여기서 하나님께서는 많이 받은 자는 많이 담당한다는 원리를 가르쳐 주시고 계십니다. 따라서 당연하게 적게 받은 자가 적게 담 당한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조금도 부끄럽게 여기지 말고 당당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과부의 엽전 두 푼을 얼마나 귀하 게 여기셨는지 잘 아시지 않습니까? 혹 시간상 여건이 허락하지 않아서 봉사하지 못할 때에 기도로 동참하면서 당당함이 있어야 합니다. 여건이 되지 아니하는 사람은 그것을 부끄럽게 생각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러나 반대로 여건이 허락하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그만큼 담부하셨기 때문에 그만큼 많이 담부한다는 것이 하나님의 가르침이며 그것이 공정입니다. 민 주라고 해서 똑같이 세금을 내는 것이 아닌 것처럼 능력 있는 사람이 더 많이 담당하는 것이 하나님의 방법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세상은 오히려 이와 반대로 오히려 적은 사람들이 다른 사람의 아픔에 더 많이 동참하는 것 을 볼 수 있습니다. 이것을 보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모두 보시고 계십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은 혹 하나님께서 건강을 더 주셨고 더 많은 재물을 주셨다고 할지라도 이것이 나의 것이라고 생각하지 아니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원리에 충실하게 따라가는 사람들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법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오늘 이것을 모 본적으로 보여주시면서 재력 있는 사람들이 가장 힘들고 돈이 많이 드는 부분을 담당했다고 증언하시고 계십니다.
그리고 그 다음은 예루살렘 지방 절반을 다스리는 자 할로헤스의 아들 살룸과 그 딸들이 중수하였다고 증언하시면서 여자들이 처음으로 거론되었습니다(12절). 다른 곳에서는 아들들이 담당하고 있는 반면 여기서는 딸들이 중수하였습니다. 여기서 재미있는 것은 살룸에게는 딸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면 왜 하나님께서는 이 부분에서 구태여 딸들에 대해서 꼬집어 말씀하시는 것일까요? 여기에 뜻이 있습니다. 세상은 될 수 있으면 이 핑계 저 핑계로 빠지려고 하지만 이들은 딸밖에 없 다는 이유로 얼마든지 빠질 수 있는 상황인데도 불구하고 자기들도 나가겠다고 나섰다는 것을 말씀하시고 계십니다. 오늘 날로 적용해보면 어떤 이유를 들어서든지 간에 돈으로 하는 것이나 시간이나 몸으로 하는 것에서 빠지려고 하는데 어떻게 하든 간에 빠지지 않으려고 하는 사람들이 있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이런 사람들에 의해서 확장되고 교회는 이런 사람들에 의해서 든든하게 서간다고 아주 분명하게 말씀하시고 계십니다. 이것은 3장의 주제로 참으로 귀한 말씀입니다.
다음 세 번째 구역은 14절부터 19적까지 남동쪽 구역입니다. 일곱 구역으로 나뉘어지는 이 구역을 면면히 살펴보면 그 중 한 구역만 예루살렘 지역에 사는 사람이 감당하고 다른 여섯 구역은 다른 지방의 사람들이 감당하였습니다. 여기서 하나님께서 오늘날 교회에게 중요한 것을 가르쳐주시고 계십니다. 성벽건축은 예루살렘 성벽건축으로 지방에 사는 사람들 에게는 아무런 혜택이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사람들이 나서서 일곱 구역 중 여섯 구역을 담당하였습니다. 여 기서 현대인들의 특색을 한 번 짚어보면 현대인들은 이해관계에 너무 빠릅니다. 계산기가 없어도 얼마나 계산을 잘하는지 모릅니다. 교회에서 재물을 쓰는 것에서도 작은 돈으로 드러나는 일을 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아무것도 생각하지 아니 하고 쓰는 사람이 있습니다. 일할 때에도 전시가 되는 일을 찾아서 하는 사람이 있는가하면 남들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일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어떤 사람이 귀한 사람이고 필요한 사람인가? 하고 말씀하십니다. 자기에 게 아무런 도움이 아니된다 할지라도 하나님을 위한 것에는 차이가 없다는 것입니다. 바로 남동쪽 일곱 구역 중 여섯 구 역의 사람들이 이러했다는 말씀을 하시면서 하나님의 사람들은 어떠해야 하는가를 말씀하십니다.
저는 이 부분에 대해서 우리 교회의 교인들의 대체로 드러나지 않고 조용조용 일하시는 모습이 얼마나 감사한지 모릅 니다. 이 일에 대해서 주님의 이름으로 감사드리며 이 일들이 계속되기를 소원합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의 주머니는 언제 어디로 열렸는지 알지 못하는 것이 바른 모습입니다. 어디 가서 무슨 일을 하였는지 알지 못하게 일하시는 분들이 바로 예수 믿는 사람들의 모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교회에 여러 가지 은혜와 은사를 주시고 세상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복도 많 이 주셨습니다. 저는 그 모든 것이 보이지 아니하는 곳에서 이 교회를 위해서 끊임없이 기도하시는 분들 때문이라고 확신 합니다. 교회 안에서 그리고 밖에서 끊임없이 기도하시는 분들의 기도를 하나님께서 들어 응답하셨다는 것을 믿습니다. 물론 그 안에는 여러분들의 동역함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예수 믿는 것이 바로 이런 것입니다. 왜냐하면 예수가 이렇게 살았기 때문입니다. 예수는 자기와 전혀 이해 관계가 없는 일, 아무것도 가지지 아니하시는 예수님께서 도리어 주실 수밖 에 없는 사람들을 위하여 사셨습니다. 바로 이 분이 예수이고 예수 믿는 사람들은 이 분을 믿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당연히 신자들의 삶은 이러해야 한다는 말씀을 하시고 계십니다.
네 번째 마지막 구역은 20절부터 32절 말씀으로 동쪽 지역입니다. 그런데 동쪽 지역의 특색은 여기에 나오는 사람들의 이름이 다른 지역을 맡은 사람들의 이름과 중복되었다는 사실입니다. 다른 지역의 일이 끝났기 때문인지 아니면 두 쪽을 함께 감당했는지 몰라도 그 이름들이 이중적으로 나와있습니다. 아주 대조적입니다. 느헤미야가 술맡은 관원의 부귀영화 를 보류하고 폐허가 된 조국에 돌아와서 동족들에게 호소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이런저런 핑계로 빠져나가는 사람들과 많은 재물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담부치 아니한 사람들이 있었던가 하면 딸밖에 없었기 때문에 당시로서는 감당하지 않아도 되지만 나서는 사람들이나 자기 할 일을 다하고 이중적으로 감당한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이러한 사람들 덕분에 예루살렘 성벽은 아주 짧은 시간에 완성되었습니다. 이 일들은 이 교회 성전건축과 너무 흡사합니다. 이 교회는 시작한 지 다섯 달 만에 완공되었습니다. 우리 교인들 가운데 아무런 대가 없이 너무나 충성스럽게 일한 사람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예루살 렘 성벽이 단시일 내에 완공 된 것처럼 이 교회 역시 그렇게 완성되었습니다.
다시 결론을 보면 하나님 나라, 교회는 사역자에 따라서 크게 달라집니다. 탱자처럼 쪼그라들어 가는 교회가 있는가 하 면 겨우 현상을 유지하는 교회도 있습니다. 한편으로는 점점 더 아름다운 모습으로 가는 하나님의 교회와 하나님의 나라 도 있습니다. 어떻게 하면 이 일이 있을 수 있을까요? 여러분이 잘 아실 것은 모든 일에 하나님께서 개입하시고 역사하시 지만 하나님의 사역자들에 의해서 상당히 많이 좌우된다는 것입니다. 참석하지 아니하는 사람들, 이해관계를 따지는 사람 들, 자기 자신은 특별한 사람이라고 여기면서 이 핑계 저 핑계로 빠지는 사람들, 이런 사람들에 의해서 하나님의 나라와 교회가 위축되는가 하면 하나님의 일에 동참하되 자기 할 일만 하고 몸을 챙기는 사람들에 의해서 겨우 겨우 유지되기도 하고 자기 분량보다 더 많이 감당하는 사람들, 핑계거리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핑계대지 아니하고, 특별한 사람일 수 있음 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어렵고 힘들고 고통스러운 부분들을 더 감당하는 사람들에 의해서 하나님의 나라는 확장되어 나가 고 더 아름다워지고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마음에 합한 하나님의 나라와 교회가 되어질 것입니다. ♥
참회의 기도
늘 따뜻함으로 감사주시는 사랑의 하나님, 오늘도 하나님의 그 크신 은혜와 그 사랑에 감사드립니다. 하나님 앞에 우리가 받은 은 혜와 사랑을 생각하면 감사할 것밖에 없지만 거룩하신 하나님을 뵈올 때마다, 생각할 때마다 괴로운 일이 많이 있습니다. 잘못한 일 이 많이 있고 죄된 일이 많기 있기 때문입니다. 스스로 보아 불신앙의 삶을 살았기 때문에 그러합니다. 하나님, 이제 모든 죄와 허 물과 불신앙을 하나님 앞에 자복하오니 우리를 용서하시고 다시 용납하여 주시옵소서.
하나님의 자녀라 스스로 자처했지만 하나님의 자녀답게 살지 못했습니다. 하늘의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면서 그 아버지의 뜻이 이 땅에 이루어지기를 노력하지 못했습니다. 기도하지 못했고 이 세상을 즐거워하고 기쁘게 살라고 말씀하셨지만 즐거워하며 살지도 기쁘게 살지 못했습니다.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모든 선물들, 사랑하는 아내와 남편을 기뻐하지 못했으며 자녀들을 기뻐하지 못하고 늘 아쉬움과 원망 그리고 불평이 많았습니다.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하나님께서는 이 땅에 육신의 부모님을 허락해주시면서 복 받을 길을 열어주셨지만 우리는 그 길로 가지 못했습니다. 효도하라 하신 것이 우리 부모님만을 위한 것이 아니고 우리를 깊이 사랑하신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은혜와 은사와 선물을 주시기 위한 것 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렇게 하지 못했습니다. 부모님의 마음을 아프게 한 적이 참으로 많았습니다. 부모님의 마음을 조금 더 깊 이 헤아려볼 수 있었습니다만 그렇게 하지 못했습니다. 정말로 아버님 어머님이 기뻐하시는 일이 무엇인지 생각하지 때로는 알고 있 으면서도 그것을 실행하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부모님의 마음을 섭섭하게 한 일이 많았고 슬프게 한 일들이 많았습니다. 화목하지 못하여 부모님의 마음을 아프게 한 일도 있었음을 고백합니다.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부모와 같은 이웃 어른들이 많이 계십니다. 소외된 어른들도 계시고 아무런 도움을 받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우리를 잘 가 르쳐주신 선생님들도 계십니다. 오늘의 우리가 있기까지 힘쓰고 애쓰며 가르친 세상의 선생님들도 계시고 신앙의 선생님들도 계시지 만 우리는 받을 그 때뿐이었고 돌아서고 나면 그 분들을 기억하지 못했습니다. 하나님, 우리가 이런 사람들입니다. 용서하여 주시옵 소서.
이제 하나님, 간절히 소원하옵나니 하늘의 하나님의 은혜를 아는 사람들이 되게 하시고 은혜를 아는 사람으로 살게 하시며 부모 님의 은덕을 깊이 헤아리는 사람들이 되어서 부모님들과 형제들과 친척들과 이웃들에게 사랑을 나누어주는 사람들이 되게 하시며 가 까운데 먼데 있는 어른들을 어른으로서 여길 수 있는 참으로 복된 사람들이 다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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