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막의 완성과 임한 여호와의 영광

성막의 완성과 임한 여호와의 영광
출39:32-출40:38





오늘은 성막이 완성되고 그 위에 여호와의 영광이 임하는 내용입니다. 먼저 1절로 43절은 백성들이 그 모든 성막의 기구들을 완성하여 가져왔을 때, 모세가 그들을 축복하는 내용입니다. 40장 1절로 16절은 여호와께서 명하시는 말씀이 나오는데, 그 모든 기구에 기름을 발라 거룩케 하라시는 말씀이 나오고 있습니다. 그리고 17절로 33절은 모세가 여호와의 명하심을 따라 정월 초하루에 성막을 세우는 내용이 나오고 있고, 끝으로 34절 이하에 그 성막 위에 여호와께서 영광으로 임하시는 내용이 나오고 있습니다.

이제 이스라엘 자손들은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하신 대로 성막의 모든 기구들을 만들었습니다. 성막을 덮는 막으로 해서 아론의 거룩한 옷에 이르기까지 그 모든 것을 다 만든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모세에게 가져왔습니다. 모세가 본즉 어땠습니까? 그 모든 것이 여호와께서 자신에게 명하신대로 다 되어 있었습니다. 보기에 매우 흡족하리만큼 잘 만들어진 것입니다. 이에 모세는 크게 기뻐하는 가운데 그들을 축복하였습니다. 여호와의 대리자로서 여호와의 이름으로 그들을 축복한 것입니다. 그러니 어떻겠습니까? 분명 그들은 자신의 수고한 바를 따라 여호와께로부터 은혜를 얻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40장 1절로 16절은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하시는 말씀이 나오고 있습니다. 무엇을 명하고 계십니까? 정월 초하루에 성막을 세우고 기름을 발라 거룩케 하라고 명하십니다. 특별히 정월 초하루를 언급하는 것은 그 날이 갖는 의미 때문일 것입니다. 정월 초하루는 어떤 날입니까? 여호와께서 그 백성 이스라엘을 자기 백성 삼으시기 위해 구원하신 날입니다. 친히 그들의 하나님이 되시고 그들 가운데 거하시기 위해 구원하신 날인 것입니다. 그러니 이 날에 성소를 세우는 것이 의미상으로 맞습니다. 왜냐하면 유월절 어린양으로 말미암는 구원의 뜻이 여기 성소를 짓고 그들 가운데 거하시는 일에서 완성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곧 하나님께서 그들을 구원하심의 목적이 여기에서 성취되고 있는 것입니다.

여하튼 하나님께서는 정월 초하루에 성소를 세우도록 하셨고, 그 모든 것에 기름을 발라 거룩케 하도록 말씀하셨습니다. 기름을 바르는 것은 여호와께 속한 것으로 구별하시기 위함일 것입니다. 그리고 여기 ‘기름’은 하나님의 넘치는 복을 상징하는 것이 될 것입니다. 곧 넘치는 생명의 풍성함으로 그들을 복 주실 것을 보이고 있는 것입니다. 이 기름을 발라 거룩케 하는 예식은 아론과 그 아들들에게 기름을 붓는 의식에서 절정을 이루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명하시기를 아론과 그 아들들을 데려다가 물로 씻기고 거룩한 옷을 입히고 기름을 부어 거룩케 하여 제사장 직분을 행하게 하라고 말씀하십니다. 또 그 아들들에게도 기름을 부어 제사장으로서 성소를 봉사하도록 명하십니다.

무엇을 위함입니까? 그 백성에게 복을 주시기 위함입니다. 제사장들이 백성과 하나님 앞을 오가며 그 봉사의 일을 행할 때, 백성들은 그 가운데 하나님의 복과 은혜를 누리게 될 것입니다. 제사장들이 정당히 그 직무를 이행하는 한 그 교제는 끊어지지 아니할 것입니다. 제사장 안에서 그 백성을 만나시고 그들과 함께 하사는 것입니다. 바로 이 일을 위해 아론과 그 아들들에게 기름을 붓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15절 끝에 어떻게 되 있습니까? “그들이 기름 부음을 받았은즉 대대로 영영히 제사장이 되리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대대로 있는 제사장을 세우시고, 대대로 그들로 성막을 봉사하게 하시므로, 그들에게 그치지 않는 은혜를 약속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여하튼 이 명하심을 따라 모세가 정월 초하루에 성막을 세우게 됩니다. 성막을 세우되 그 받침들을 놓고, 그 널판들을 세우고 그 띠를 세우고, 그 기둥들을 세우고, 그 위에 성막을 펴서 덮개를 덮었습니다. 그리고 19절 끝에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하신 대로 되니라”라고 기록해 놓고 있습니다. 어디서 많이 본 듯한 표현이지요? 어디서 봤습니까? 예, 창세기 첫 장에서 본 표현들입니다. 거기서도 이런 표현이 반복되어 나타나고 있는데, 여기서 그 동일한 표현이 반복되어 나오고 있는 것입니다. 마치 천지 만물이 그 명하심을 따라 된 것처럼, 지금 명하신 모든 것이 모세와 그 백성들을 통해 이루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창세기나 출애굽기의 주제적인 내용들은 서로 일치된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왜냐하면 창세기는 원래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을 위해 쓰여 졌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런 표현이 몇 번이나 반복되고 있습니까? 모두 일곱 번 반복되고 있습니다. 모세는 성막의 완전함을 표현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일곱번의 표현을 반복해 사용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하튼 순서를 따라 성막은 세워지게 되었는데, 어떻게 세워지고 있습니까? 먼저는 성막이 세워지고, 그 다음에는 궤와 휘장이 쳐지고, 성소 안에 떡상이 놓여지고, 등대를 들여 놓는 내용이 나오고, 그 다음에는 향단을 두고 향을 사르는 내용이 나오고, 여섯 번째로는 성막 문과 번제단을 들여놓고 그 위에 번제와 소제를 드리는 내용이 나오고 있습니다. 그리고 물두멍을 회막과 단 사이에 두어 아론과 그 아들들이 수족을 씻도록 한 내용과, 끝으로 성막과 단 사면 뜰에 포장을 치고 뜰 문의 장을 달므로 성막을 완성하게 되는 내용이 나오고 있습니다. 물론 이 모든 것에는 그 명하신대로 기름을 발라 거룩케 하였을 것입니다.

이렇게 성막이 완성되자 어떤 일이 일어나게 됩니까? 그 위에 여호와의 영광이 임하게 됩니다. 34절에 보니, “구름이 회막에 덮이고 여호와의 영광이 성막에 충만하였다”고 되 있습니다. 이것은 물론 하나님께서 그 모든 것을 가납하셨다는 표현이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명하신 대로 이루어진 땅의 성소를 가납하시고 그 위에 자기 영광을 나타내신 것입니다. 그러나 그 영광은 너무도 두려운 영광이었고 그래서 모세도 감히 그 회막 안에 들어갈 수가 없었습니다. 그 영광은 어떤 영광입니까? 시내산에 임하신 영광입니다. 구름과 불로 임하신 크고 두려운 영광인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부르시기 전까지는 모세도 그 앞에 나아갈 수 없었습니다. 불로 임하신 영광을 거두시기까지는 그 앞에 나아갈 수 없었던 것입니다.

여하튼 하나님께서는 여호와의 영광으로 회막 위에 임하셨고, 그 영광의 빛으로 그 백성을 비추고 인도하셨습니다. 그 인도하심이 어떻게 기록되어 있습니까? “구름이 성막 위에서 떠오를 때에는 이스라엘 자손이 그 모든 행하는 길에 앞으로 발행하였고, 구름이 떠오르지 않을 때에는 떠오르는 날까지 발행하지 아니 하였으며, 낮에는 여호와의 구름이 성막 위에 있고, 밤에는 불이 그 구름 가운데 있음을 이스라엘의 온 족속이 그 모든 행하는 길에서 친히 보았더라”라고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구름과 불기둥으로 그들의 걸음을 인도하셨다는 것입니다. 곧 모든 은혜 가운데 그들과 동거하며 그 걸음을 인도하신 것입니다.

이것이 옛 백성 이스라엘이 누린 복과 은혜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나라를 동거와 동행의 나라로 세우셨고, 그 가운데 복과 은혜를 내려주셨습니다. 자기 백성을 그 앞에 부르시고 친히 말씀하셨습니다. 그들의 죄를 사유하시고 생명의 떡을 나눠주셨습니다. 구름과 불로 그 길을 인도하셨습니다. 이에 이스라엘 온 족속이 그 모든 행하는 길에서 하나님의 인도를 보았고, 그 은혜를 누렸습니다. 세상에 이처럼 하나님의 은혜를 누린 백성이 없습니다. 이처럼 복을 누린 백성이 없는 것입니다. 그것은 일찍이 세상에 주시지 않았던 은혜입니다. 오직 자기 백성에게만 주시는 지극한 은혜의 풍성함이었습니다. 세상에 하나님과 함께 산 백성은 없습니다. 하나님의 임재를 보고 산 백성이 없습니다. 그런데 바로 이스라엘이 그 은혜를 누리고 있는 것입니다. 그 은혜의 동거를 맛보며 살고 있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바로 이 은혜의 동거를 하나님께서 우리 가운데 온전케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가운데 아들을 보내심으로 자기 영광을 나타내셨습니다. 아들 안에서 자기 영광을 볼 수 있도록 하셨습니다. 성막 가운데 나타내신 영광이 아니라 친히 육체로 임하신 영광, 은혜와 진리로 임하신 영광을 보게 하신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부활하신 아들에게서 하나님의 영광을 봅니다.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본체의 형상이시며 영광의 광채이십니다. 하나님의 임마누엘이십니다. 그의 육체 가운데 하나님의 영광은 빛났습니다. 그의 부활에서 세상을 비추는 영광의 빛은 비추었습니다. 이 빛은 가까이 가면 죽는 빛이 아니요, 도리어 가까이 가는 자를 빛으로 변화시키는 빛입니다. 땅의 어둠이 아닌, 영혼의 어두움을 비추는 빛입니다. 하나님을 알고 진리 가운데 살게 하는 빛입니다. 이 빛은 온 세상을 비추는 참 빛인 것입니다.

그러니 그에게만 생명이 있고 은혜의 복이 있습니다. 그에게만 영원한 생명의 길이 있습니다. 그에게만 하나님의 참 진리가 있는 것입니다. 그가 우리와 함께 하시기 위해 오셨습니다. 예전에 성막으로 함께 하셨던 하나님께서 이제 아들로 함께 하시기 위해 이 땅에 그의 아들을 보내셨습니다. 함께 하심의 은혜의 동거를 이루시기 위해 임마누엘로 그 아들을 보내신 것입니다. 그러니 이제 이 아들은 우리와 영원히 함께 하시는 하나님의 성전이십니다. 우리 안에 임마누엘의 구원을 이루시는 참 구원자이십니다. 그의 오심에서 이제 은혜의 동거의 역사는 하늘의 질서로 완성되었고 또 완성될 것입니다. 장차 우리는 하나님의 빛 가운데 거닐 것이고, 하나님께서는 영원히 우리의 장막이 되셔서 우리를 그 아래 두실 것입니다. 우리는 만유 안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보게 될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교회가 받은 은혜요 복인 것입니다.

이제 성막 위에 충만한 영광으로 임재하시고 자기 백성을 신실히 인도하셨던 하나님께서 우리를 인도하실 것입니다. 성막의 구름과 불로가 아니라 진리의 영이신 성령으로 우리의 길을 인도하실 것입니다. 우리의 영혼을 비추는 진리의 빛으로 우리의 걸음을 인도하실 것입니다. 광야에서 자기 백성을 인도하셨던 것처럼 우리를 인도하실 것입니다. 우리의 목자가 되셔서 영원한 생명의 초장으로 우리를 이끄실 것입니다. 비록 우리가 지금잠시 힘들고 어려울 수 있습니다. 낙심되리만큼 어려운 일을 격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가 약속하시고 예비하신 나라는 멀리 있지 않습니다. 약속하신 영광은 멀리 있지 않습니다. 그 나라의 영광은 손에 잡힐 만큼 우리 바로 앞에 가까이 이르러 있는 것입니다.

다만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입니까? 인내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믿는 것입니다. 눈을 들어 하나님의 영광을 보는 것입니다. 그의 인도의 때를 잠잠히 기다리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가 보이신 진리의 길을 매일 매일 충실히 가는 것입니다. 그럴 때 우리는 하나님의 함께 하심을 보게 될 것입니다. 그 모든 행하는 길에서 하나님의 인도를 친히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가 좀 더 인내함으로 주의 길을 가야 하겠습니다. 좀 더 하나님의 약속을 믿어야 하겠습니다. 믿음 가운데 보이신 의와 진리의 길을 가야 하겠습니다. 그럴 때 우리는 결국 주의 영광을 보게 될 것입니다. 아무쪼록 우리 모두가 우리 안에 은혜의 동거를 성취하시고 또 장차 그 동거를 온전케 하실 주님을 따라, 그와 함께 동행하는 삶이 되실 수 있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