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막 뜰과 예물의 합계 출38:9-31
오늘은 성막 뜰을 만드는 내용과 성막을 만드는데 드려진 예물에 관한 내용을 살펴보겠습니다. 먼저 9절로 20절을 보면 성막 뜰을 만드는 내용이 나오고 있습니다. 9절 이하를 보면 모세가 만든 성막의 뜰에 관한 내용이 잘 나와 있습니다. \"그가 또 뜰을 만들었으니 남으로 뜰의 남편에는 세마포 포장이 백규빗이라. 그 기둥이 스물이며, 그 받침이 스물이니 놋이요, 기둥의 갈고리와 가름대는 은이며, 그 북편에도 백 규빗이라. 그 기둥이 스물이며 그 받침이 스물이니 놋이요, 기둥의 갈고리와 가름대는 은이며”라고 되어 있습니다. 이렇게 해서 남쪽과 북쪽에 각각 백 규빗 곧 약 45M 정도의 세마포 포장을 치고 각기 스무 개의 기둥을 세운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서쪽과 동쪽은 각각 오십 규빗의 포장을 치도록 되 있습니다. 12절입니다. “서편 포장은 오십 규빗이라. 그 기둥이 열이요, 받침이 열이며, 기둥의 갈고리와 가름대는 은이며, 동으로 동편에도 오십 규빗이라. 문 이편의 포장이 십 오 규빗이요, 그 기둥이 셋이요, 받침이 셋이며, 문 저편도 그와 같으니 뜰 문 이편, 저편의 포장이 십오 규빗씩이요 그 기둥이 셋씩, 받침이 셋씩이라”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세로로는 약 22.5M 정도의 울타리를 쳤는데, 서쪽에는 오십 규빗의 세마포 천 전체를 쳤고, 동쪽에는 문이 있기 때문에 문을 사이에 두고 각각 십오 규빗의 세마포 천을 쳤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문이 차지하는 폭은 얼마가 되겠습니까? 이십 규빗이 되겠습니다. 특히 이 문은 네 개의 기둥을 세우고, 흰색 세마포 전이 아닌, 청색 자색 홍색실과 가늘게 꼰 베실로 수놓아 만든 천을 달도록 되어 있습니다. 이렇게 해서 세마포로 포장을 쳐서 울타리를 만들고 그 안에 뜰을 만든 것입니다.
그럼 이처럼 모세가 회막을 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어떤 장소를 구별하기 위함이지요? 우리가 울타리를 치는 이유가 그것 아닙니까? 자기 소유로서 어떤 구별된 영역을 가르기 위해서입니다. 마치 그런 것처럼, 지금 회막을 치는 것은 하나님께 속한 어떤 영역을 구별시키기 위함입니다. 회막 안은 하나님의 영광의 거처요, 그런 의미로 회막 밖은 어둠입니다. 회막 안은 거룩한 공간이요, 회막 밖은 거룩치 못한 공간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성막 가운데 자기 이름을 두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임재하시는 곳은 거룩한 곳이 되는 것이요, 그 안의 모든 것은 거룩해지는 것입니다. 여하튼 지금 모세는 하나님의 명을 좇아 회막을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결과적으로 그것은 하나님의 거처와 세상을 구별시키고 있습니다. 그러니 회막이 쳐진 그곳만 하나님의 뜰이요, 거룩한 공간입니다. 그 밖은 다 부정한 곳입니다. 그런 의미로 부정을 씻지 않고 하나님께 나아갈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곳은 열린 곳이어서 지성소처럼 제사장만이 들어가는 닫힌 곳이 아니었습니다. 그곳은 누구에게나 열려 있는 공간입니다. 누구나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있는 자리입니다. 누구나 그곳에 나아가므로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덧입는 것이요, 거룩하게 된 자로서 하나님의 열납하심을 받는 자리인 것입니다. 그럼에도 여전히 그 이상 나아갈 수는 없었습니다. 제한 된 몇몇 사람을 제외하고 그 이상의 나아옴을 허락지 않으신 것입니다. 그것이 옛 백성의 한계였습니다. 그 마음에 하나님을 사랑함이 매우 커도 허락하신 곳 이상 나갈 수는 없는 것입니다. 마치 옛날 임금이 구중궁궐에 있으면서 각 사람의 신분에 맞게 들어오도록 허락한 것과 같습니다. 그러니 아들이 아니면 임금의 내실에는 들어가지 못하는 것이요, 오직 허락된 자만 그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마치 그런 것과 비슷합니다. 지금 하나님께서는 삼중 궁궐에 계시고 그곳에 들어 올 수 있는 자를 제한하시며, 그 대표를 만나는 방식으로 그 백성과 함께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예수님 오시기 이전까지입니다. 이제 하나님께서는 아들 안에서 이전 자신을 그 백성으로부터 구별시키심으로 함께 하셨던 방식의 역사를 끝내셨습니다. 아들의 죽음에서 그 휘장을 찢으시므로 그 간격을 없애신 것입니다. 아버지께로부터 오신 우리의 대제사장 되는 주님께서는 우리를 이끌어 아버지 앞으로 인도하셨습니다. 우리로 아버지의 영광을 대면하여 살 수 있도록 우리를 이끄신 것입니다. 이제 교회는 하나님의 영광을 보며 그 상에서 먹고 마십니다. 그리스도의 얼굴에서 비치는 하나님을 아는 영광의 빛으로 살아갑니다. 하나님과의 교제에 있어 온전한 생명을 주신 것입니다. 이는 그가 우리의 대표가 되셔서 참 하늘에 들어가셨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영원한 대제사장이 하늘 성소에 들어가셨기 때문인 것입니다.
거기에서 이제 휘장은 열렸고 거룩하고 거룩치 못한 차이는 사라졌습니다. 영광스럽고 그렇지 못한 차이는 사라졌습니다. 누구에게는 허락되어지고 누구에게는 허락되지 않는 그러한 은혜의 차이는 사라진 것입니다. 이제는 성소의 뜰과 세상의 구별이 없습니다. 거룩한 공간과 그렇지 않은 공간의 구별도 사라졌습니다. 예배당은 거룩한 공간이고 세상은 세속적 공간이고 그런 것이 아닙니다. 이제 무엇은 정결하고 어떤 것은 부정하다는 차이도 없어졌습니다. 무엇은 정결해서 먹을 수 있고 무엇은 부정해서 먹지 못한다는 그런 구별도 사라졌습니다. 이제 모든 것은 주안에서 정결하며 믿음으로 취하는 모든 것은 깨끗합니다. 온 우주는 하나님의 영광의 거소로 거룩합니다. 거룩치 못한 공간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예전 같으면 그렇지 않습니다. 우상의 전각이 있는 공간은 부정하고 더러운 공간이요, 두려움의 공간입니다. 성전의 공간은 평화와 경건함과 거룩함의 공간입니다. 세상에 있으면 하나님 밖에 있는 것이고 성전에 있으면 하나님 안에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다윗도 “내가 영원토록 주의 전에 거하며 주의 이름다우심을 앙망하겠노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이제 모든 것은 달라졌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들 안에서 만유를 새롭게 하셨습니다. 모든 세계를 친히 영광의 거소로 거룩케 하신 것입니다. 그런 의미로 하나님께서는 이제 아니 계신 곳이 없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어디서든지 하나님께 나아가며 영광의 주를 대면하게 되었습니다. 그것이 우리가 하나님 앞에 사는 질서가 된 것입니다. 그런 만큼 우리가 어느 곳에 있든지 하나님 앞에 나아가기를 힘쓰며 또 어느 곳에 있든지 우리 행실을 조심함으로 살아야 하겠습니다.
이제 21절 이하 31절에는 그간 성막을 세우는데 소용되어진 예물이 과연 얼마나 되었는가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먼저는 성막을 짓는 일에 수고한 자들이 언급되고 있습니다. 21절을 보면, 성막 곧 증거막을 위하여 레위 사람의 쓴 재료의 물목은 제사장 아론의 아들 이다말이 전반적으로 관리하였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한 마디로 그는 물품의 출납을 맡아 수고한 것입니다. 그리고 유다 지파 훌의 손자요 우리의 아들인 브살렐은 총 감독을 맡아 제반 물품을 만드는 일에 수고하였습니다. 그는 특히 금형을 만들어 금과 은과 놋으로 온갖 물품을 만들고, 보석을 가공한 것으로 되 있습니다. 또한 그와 함께 수고한 자가 있는데, 단 지파 이히사막의 아들 오홀리압입니다. 그 또한 재능이 있어서 조각하는 일과 수놓는 일을 감당하였습니다. 이러한 재능 있는 자들의 수고와 헌신으로 성막은 만들어진 것입니다.
그리고 24절 이하에 성막에 소용되어진 금속에 대해 정리해 놓고 있습니다. 당시 성소 건축비용으로 드린 금은 모두 이 십 구 달란트 칠 백 삼 십 세겔이었습니다. 물론 이것은 성소에게 통용되는 세겔을 따라 환산한 것입니다. 이것을 오늘날 우리 기준으로 환산해 보면, 약 1,268Kg입니다. 1톤이 조금 넘는 무게지요. 오늘날 우리 개념으로 보면 그렇게 어마어마한 양은 아닙니다. 그러나 당시 인구와 채굴 기술로 보면 그들이 이 정도의 금을 모았다고 하는 것은 놀랄만한 것이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들은 매우 헌신적으로 이 일에 힘쓴 것입니다. 그리고 성소를 짓는데 소용된 은은 그보다 훨씬 더 많습니다. 모두 얼마가 소용되었습니까? 25절에 보니, 성소의 세겔대로 일백 달란트, 천 칠백 칠십 오 세겔이 드려졌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한 달란트는 삼천 세겔입니다. 그러니까 삼십만 천 칠백 칠십 오 세겔이 드려진 것입니다. 오늘날 무게로 하면 약 4톤이 조금 넘는 무게가 되겠습니다.
이는 이십 세 이상, 성인 육십만 삼천 오백 오십 명이 율법을 따라 반 세겔씩 드린 것입니다. 그들은 율례를 따라 반 세겔씩의 성전세를 내었고, 이것으로 모세는 성전에 소용되는 물건을 만들었습니다. 은 일백 달란트로는 무얼 만들었습니까? 성소 널판을 받히는 일백 개의 받침을 만들었습니다. 그러니까 받침 하나에 한 달란트 약 40Kg의 은이 들어간 셈입니다. 그 나머지 은 일천 칠백 칠십 오 세겔로는 기둥 갈고리와 기둥 머리싸개, 기둥 가름대 등을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29절에 그들이 드린 놋의 양이 나오고 있습니다. 놋은 모두 얼마가 드려졌습니까? 칠십 달란트와 이천 사백 세겔의 놋이 드려졌습니다. 이것으로는 회막 문기둥 받침과 문장 기둥 받침, 놋 단과 놋 그물, 그리고 단에 소용되는 모든 기구들을 만들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뜰 사면에 기둥들의 받침과 문장 기둥 받침, 그 외 성막을 세울 말뚝과 뜰 사면의 말뚝을 만드는데 소용되어졌습니다.
이렇게 해서 금이 약 1.2톤, 은 약 4톤, 놋 약 3톤 정도가 성소를 만드는데 소용되어졌습니다. 모세는 지금 이 기록을 통해서, 얼마나 많은 금과 은과 놋이 성막을 짓는데 들어갔는가를 말하고 있습니다. 곧 백성들의 수고와 헌신, 그들의 봉사가 얼마만큼 컸는가를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봉사에 육십만의 백성 모두가 함께 참여하였음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한 사람도 빠짐 없이, 이십 세 이상, 성인 모두가 다 이 일에 참여한 것입니다. 여하튼 이 성소는 백성들의 헌신에 의해 이루어졌습니다. 그들은 자원하는 마음으로 즐거이 자신의 것들을 헌납하였고, 그들의 이러한 자원하는 헌신을 통해 성소 건축은 순조롭게 이루어졌습니다. 이 일에는 모두가 다 함께 참여하였습니다. 재능이 있는 이들은 자신들이 가진 재능으로, 재물이 있는 이들은 자신들의 재물로, 그렇지 못한 이들은 반 세겔의 은전을 내는 것으로 이 일에 함께 했던 것입니다. 이 일에는 누구도 예외일 수 없습니다. 영광된 하나님의 전을 짓는 일에는 그 누구도 예외일 수 없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이제 땅의 성전은 무너졌습니다. 금과 은과 놋으로 지어진 성소는 무너진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하나님의 전을 짓는 역사가 멈춘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의 영광된 전을 짓는 일은 지금도 우리의 수고와 헌신을 통해 계속되고 있습니다. 우리의 봉사를 통해 이 하나님의 전은 지어져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전은 이전처럼 땅에 속한 전이 아닙니다. 땅의 영광으로 치장된 그런 전이 아닌 것입니다. 이 전은 그리스도 안에서 믿는 이들을 통해 지어지는 전입니다. 우주적인 전입니다. 그리스도의 백성 한 사람 한 사람을 통해 지어지는 그런 전인 것입니다. 그러하기에 우리가 혹 쉬 낙심할 수 있습니다. 이 전이 눈에 보이는 전이 아니요, 땅에 속한 영광으로 지어지는 전이 아니기에 우리가 쉬 지칠 수 있는 것입니다.
성전의 벽돌 한 장을 쌓는 일도 헌신과 수고가 필요합니다. 하물며 우리가 우주적인 하나님의 전을 짓기 위해 그리스도의 백성 한 사람을 세우는 일에는, 얼마나 많은 헌신과 수고가 필요한지 모릅니다. 그 일은 다윗 성전의 오천 달란트의 금과는 비교할 수 없는 많은 물질이 소용되어집니다. 수만 달란트의 은과도 비교할 수 없는, 수많은 땀과 노력과 수고와 헌신이 필요한 일인 것입니다. 그야말로 그 일은 눈물이 아니면 이루기 힘든 너무도 힘겹고 수고스런 일인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믿음으로 이 일을 감당해 가야 하겠습니다. 이 일에 우리가 인내해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이 일을 감당키 위해 더욱 헌신해야 하겠습니다. 보이지 않는 것을 보는 것처럼 하며 믿음으로 감당해 가야+ 하겠습니다.
무엇을 위함입니까? 우주적인 하나님의 전을 짓기 위함입니다. 머리되신 그리스도로 하여 하나님의 거하실 영광의 처소로서 주의 전을 짓기 위함인 것입니다. 바로 이 일을 위해 우리는 생을 드려 헌신하고, 우리의 물질과 시간, 우리의 정열과 재능을 드려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만유 가운데 만유가 되시는 날까지, 우리는 이 일을 위해 헌신하는 삶을 살아내야 하는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믿음의 새시대를 사는 주의 백성의 합당한 삶의 자세일 것입니다. 아무쪼록 우리 모두가 주 앞에 즐거이 헌신하는 가운데 주의 모든 뜻을 이루는 그리스도의 좋은 일군들이 되실 수 있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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