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막을 만들다

성막을 만들다/출36:8-38

성막을 만들다
출36:8-38





오늘은 성막이 만들어지는 과정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본문은 대충 여섯 부분으로 나누어 볼 수 있겠는데, 8절로 13절은 성막을 덮는 가장 안 쪽의 앙장 곧 가장 안 쪽의 천막에 대하여 기록하고 있고, 14절로 18절은 그 위를 덮는 염소털로 만든 앙장에 대해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위를 수양의 가죽과 해달의 가죽으로 각각 다시 덮도록 19절에 이르고 있습니다. 그리고 20절로 30절은 성막을 둘러 벽을 형성하게 될 널판에 대해 기록하고 있고, 31절로 34절은 그 각 널판을 둘러 버팀목 역할을 하게 될 띠에 대하여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성소와 지성소를 나누게 될 휘장과 기둥들에 대해 35절 이하에서 기록하고 있습니다.

먼저 성막에 대해 살펴보면 성막은 두 겹의 앙장과 그 위를 덮는 두 겹의 덮개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가장 안쪽은 열 폭의 앙장으로 만들도록 되 있는데, 가늘게 꼰 흰색 베실과 양털을 물들여 만든 청색, 자색, 홍색실로 천을 짜고, 그 위에 그룹 곧 천사의 모양의 수를 정교하게 수놓게 됩니다. 그러니까 천으로 치자면 최고급이요 그 정교함으로 하자면 최고의 바느질 솜씨가 될 것입니다. 여기 천사 모양을 수놓는 것은 하나님께서 천사의 수종을 받는 분이시기 때문일 것입니다. 구약 경륜에서 그는 천사를 그 사역자로 부르시는 것입니다. 그 양장의 크기는 매 폭의 길이가 스물 여덟 자 곧 약 12.6m 정도가 되겠습니다. 그리고 폭은 넉 자로 약 1.8m 정도입니다. 이렇게 해서 모두 열 폭의 천을 만들도록 되 있습니다. 그리고 각각 다섯 폭씩의 천을 서로 이어 두 벌의 큰 천을 만들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 천의 긴 면 끝에 청색 실로 각각 오십 개씩의 고를 만들어 오십 개의 금 갈고리로 서로 이어야 합니다. 그렇게 해서 성소를 덮는 성막 하나를 완성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위에 다른 성막 하나를 더 덮는데, 이것은 염소털로 짜 만든 앙장입니다. 이 막은 모두 열 한 폭으로 만들도록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길이도 처음 앙장보다 조금 더 길게 만듭니다. 아까는 이십 팔 규빗이었는데, 이것은 삼십 규빗입니다. 그리고 하나는 다섯 폭을 한 벌로 만들고 다른 하나는 여섯 폭을 한 벌로 만듭니다. 그리고 그 여섯 번 째 폭의 절반을 성막 전면에 접어 드리우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당연히 나머지 반폭은 후면에 드리우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각각 오십 개의 고를 만들어 서로 연결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여기에 쓰여지는 갈고리는 금이 아닌 놋으로 만들도록 되 있습니다. 그리고 가장 안 쪽 천보다 두 규빗이 더 기니까 양쪽으로 한 규빗씩 더 나오도록 되 있습니다.

그리고 그 위에 두 개의 덮개를 만드는데, 19절에 보니 한 개는 수양의 가죽으로 덮개를 만들고 다른 하나는 해달의 가죽으로 그 웃 덮개를 만들도록 되 있습니다. 수양의 가죽을 쓴 것은 내구성 때문에, 해달의 가죽을 쓴 것은 방수를 위함일 것입니다. 그리고 20절 이하로 성막의 벽을 위한 널판자에 대한 규례가 나와 있습니다. 이것을 보면 성막의 사이즈를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을 것입니다. 20절에 보니 널판은 조각목으로 만들되 각 판은 장이 십규빗, 광은 일규빗 반이 되게 만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길이가 약 4.5m, 폭이 약 68Cm 정도가 되겠습니다. 이를 볼 때, 성막의 높이는 어느 정도 되겠습니까? 4.5M가 살짝 넘겠지요? 받침대가 있으니까. 그리고 각 판에는 한 쪽 끝에 두 개의 촉을 만들도록 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해서 스무 개의 판을 만들어 남쪽 편에, 스무 개의 판을 만들어 북편에 각각 세우게 됩니다. 남편과 북편에 세우는 것은 지금 성막이 동쪽을 향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효과적으로 세우기 위해 각각 받침대 마흔 개씩을 만들게 되는데 모두 은으로 부어만들게 됩니다. 그래서 각 촉에 한 개 씩, 판 자 한 장당 두 개씩의 받침대를 놓게 됩니다. 이로 볼 때 성막의 길이는 판 자 스무 개가 연결되게 되니까 모두 삼십 규빗, 약 13.5m 정도가 되겠습니다. 그리고 서쪽으로는 모두 널판 여덟 개를 세우게 되는데, 양끝에 있는 널판은 특히 두 겹의 두께로 두껍게 만들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모서리 부분은 특히 더 견고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여덟 개의 판을 위해 열 여섯 개의 은받침을 두어야 합니다. 그러니까 성막의 폭은 모두 십 이 규빗으로 약 5.4m 정도가 되겠습니다.

이렇게 각각의 널판으로 이어진 벽이 세워져 있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아마 견고하지 못할 것입니다. 받침대가 있고 촉이 거기에 끼워져 있다고는 하지만 흔들거리게 되는 것입니다. 이에 각 널판을 견고히 연결시키기 위해 띠를 두르게 되는데, 그 규례가 31절 이하에 나와 있습니다. 각 면에는 띠를 두르게 되는데, 그 띠는 장대 같이 긴 조각목으로 만들고, 각각 다섯 줄로 띠를 두르게 됩니다. 그리고 그 띠를 끼우게 될 고리들을 만들어 널판에 부착시켜 놓습니다. 그리고는 그 고리에 조각목으로 만든 장대를 길게 끼우게 되는 것이지요. 여기 널판이나, 고리, 띠는 모두 다 금으로 싸야 합니다. 그러니까 성막은 부식에 굉장히 강하고 또 빛이 나면 눈부실 정도로 영광스러운 모습이 될 것입니다. 번쩍이는 금집인 것이지요.

끝으로 35절 이하에 성소와 지성소를 구분시킬 휘장과 그것을 지탱할 기둥, 그리고 성소 입구에 세우게 될 기둥과 휘장에 대한 규례가 나와 있습니다. 여기 성소 휘장도 청색 자색 홍색실과 가늘게 꼰 베실로 짜서 장을 만들고 그 위에 그룹들을 정교히 수놓아 만들게 됩니다. 그러니까 성소 특히 지성소는 온통 천사들이 호위하는 곳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성소와 지성소 사이에는 네 기둥을 세우게 되는데, 네 기둥을 조각목으로 만들고 금으로 싸서 네 은받침 위에 두게 됩니다. 그리고는 위에 네 갈고리를 만들어 그 휘장을 아래로 드리우게 됩니다. 그리고 그 안에 증거궤를 넣어 놓는 것이지요. 그리고 장 바깥 북편에는 상을 놓고 남편에 등대를 놓아 상과 마주 대하게 합니다. 그러니까 입구 쪽에서 보자면 오른쪽에 떡상을 놓고 왼편에 등대를 놓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성막문 입구에 대해 말하고 있는데, 이것도 청색과 자색 홍색실과 가늘게 꼰 베실로 짜서 만들게 되는데, 여기에는 그룹형상의 수를 놓지는 않습니다. 성막 입구는 기둥 다섯을 세우게 되는데, 이것도 조각목으로 만들고 금으로 싸며 그 위에 금 갈고리를 두고 휘장을 내리게 됩니다. 다만 그 받침대는 은이 아닌 놋으로 만들도록 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해서 성막은 완성되게 되어집니다. 지금 하나님께서는 이 성막을 왜 만들도록 하시는 것입니까? 여호와께서 집을 짓고 그들과 함께 하시기 위해서이지요? 그 집에서 자기 백성을 만나시기 위함입니다. 왕으로서 그들을 다스리시기 위함입니다. 마치 옛날 궁전과 같은 곳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왕으로서 이스라엘을 다스리시는데, 성막은 마치 그 집무실과 같은 곳입니다. 그러니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서는 이곳을 찾아야 하는 것이지요. 그런 의미로 성막은 광야에 있는 이스라엘과 함께 거하시는 여호와의 거처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곳에 들어가 계신다는 것이 아니라, 자기 백성을 만나시기 위한 창구와 같은 것이지요. 여하튼 하나님께서는 이곳에서 그들을 다스리실 것입니다. 때로는 그 백성의 대표를 불러 말씀하시고, 자신을 뜻을 알리실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가는 곳에 함께 가실 것이며, 이스라엘이 머무는 곳에 함께 머무실 것입니다. 그것을 위해 지금 이동식 조립주택을 만들도록 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이 가나안에 들어가 거하게 될 것 같으면 이렇게 짓지 않으실 것입니다. 그 때는 백향목과 잣나무와 돌로 지은 집에 거하실 것입니다. 위엄 가득한 금 집을 짓고 그곳에 거하실 것입니다. 그리고 그 영광을 만천하에 증거하실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하나님께서는 그들과 함께 하시기 위해 천막으로 된 집을 짓도록 하십니다. 그곳에서 그 대표를 통해 그 백성을 불러 만나시고 그들에게 말씀하시기 위해서입니다. 그들에게 은혜를 주시기 위해서입니다. 그들을 그 말씀으로 다스리시기 위함입니다. 백성들은 그의 말씀을 들을 것이고, 또 향기 나는 제물을 가지고 하나님을 찾아뵐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런 그들을 기뻐하시고 용납하실 것입니다. 그리고 화목의 제물을 나누어주시며 그 가납하심과 사유하심의 은혜를 표현하실 것입니다. 그런 가운데 백성들을 축복과 안식의 땅 가나안으로 인도하실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하나님께서 그 백성 이스라엘과 함께 하는 방식이었고 그 백성 이스라엘이 하나님 앞에 사는 방식이었습니다. 그들이 하나님과 함께 이루는 언약의 삶이었던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그들과 함께 사시기 위해 집을 짓도록 하셨어도, 거기에는 휘장의 가리움이 있어서 많은 한계가 있었습니다. 여전히 하나님께서는 휘장으로 자신을 가리신 채 말씀하셨고, 대표가 아니면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대표가 나아와도 결코 그 휘장을 거두신 적이 없었습니다. 마치 옛날 사극에서 보면 발을 치고 명령을 내리는 격입니다. 그러니, 비록 하나님의 집이 그들 중에 있어도 그 백성에게 있어 하나님은 멀리 계신 분이셨고, 결코 가까이 갈 수 없는 두려움의 대상이었습니다. 가까이 다가갈 수 없는 그런 분이셨던 것입니다. 그분은 그 백성을 용서하시고 용납하시나, 동시에 범죄한 자를 가혹하게 죽이시는 하나님이셨습니다. 언약궤에 손만 대도 죽이시고, 다른 불을 가지고 분향하여도 죽이셨습니다. 하나님의 명을 거역하는 자를 가차없이 죽이시므로 칼의 권세로 다스리시는 하나님이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처럼 두려운 하나님으로 자신을 계시한 것은 아마도 그 백성으로 하나님을 경외하도록 하시기 위함이었을 것입니다. 완악함이 그 백성의 마음을 지배하고 있었기에 어쩌면 하나님께서는 무서운 아버지의 상으로 자신을 나타내셔야 했을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그 백성들의 죄를 조절하고 그 완악한 마음을 다스리시고자 하셨던 것입니다. 어찌 됐건 하나님께서는 그 백성 이스라엘 가운데 궁전을 짓고 그들을 다스리시기 위해 그 백성 가운데 자기 집을 짓도록 하셨습니다. 언제라도 그 집이 손쉽게 백성과 함께 이동할 수 있도록 조립식으로 짓도록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왕 되시기를 원하셨고 언제라도 그들을 만나시고 그들을 불러 말씀하시기를 원하셨습니다.

바로 이 은혜의 일을 이제 아들 안에서 온전케 하셨습니다. 우리와 함께 사시며 왕으로서 우리를 다스리시고자 하시는 뜻을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늘의 질서로 온전케 하신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우리와 함께 하시고자 하늘에서 오신 임마누엘이십니다. 그 백성을 다스리시는 하나님 나라의 왕이십니다. 이전에 성막으로 함께 하시며 통치하셨던 하나님께서 이제 아들을 보내셨습니다. 아들 안에서 우리를 부르시고, 아들 안에서 우리를 다스리시며, 그 안에서 은혜와 복을 주시기 위해 그 아들을 보내신 것입니다. 그런 의미로 예수 그리스도는 육체로 임하신 성전 그 자체이십니다. 예수께서는 우리에게 아버지를 보이셨습니다. 이전에 모세는 증거하였으나 보일 수 없었으나, 아들께서는 친히 아버지를 우리에게 보이신 분이십니다. 그래서 요한 은 말하기를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본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아버지 품속에 있는 독생하신 하나님이 나타내셨느니라\"라고 하였습니다.

이제 교회는 친히 성전이 되시는 부활하신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 안에서 영광의 하나님을 대면하여 살게 되었습니다. 아들의 죽음에서 휘장은 찢어졌고 생명의 길은 열리게 되었습니다. 땅의 성소가 무너지므로 하늘 성소가 열리게 되었습니다. 이제 두루 도는 화염검으로 막아섰던 그룹들은 그 길에서 물러서야만 합니다. 그 검을 내려놓고 그 길에서 물러서야 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아들께서 하나님께 나아가는 생명의 길을 여셨기 때문입니다. 하늘 생명의 길, 영생의 길을 여신 것입니다. 그러니 이제 하나님께서는 땅의 성막으로서가 아니라, 성전 되시는 아들 안에서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두려우신 하나님으로서가 아니라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 사랑하셔서 아들을 보내신 하나님, 우리로 \'아빠\'라 부르도록 하신 하나님으로 우리와 함께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가 이제 어떻게 하나님 앞에 살아야 하겠습니까? 그 다스리심의 역사를 완성하신 영광의 하나님 앞에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겠습니까? 당연히 우리는 순종과 복종, 흠향할 만한 생명의 헌신을 가지고 나아가야 할 것입니다. 그의 기뻐 받으실 만한 순종의 열매를 가지고 나아가야 할 것입니다. 우리를 구속하셔서 그 앞에 두신 은혜를 인하여 큰 감사로 그 앞에 나아가야 할 것입니다. 그럴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기뻐하시며 용납하여 주실 것입니다. 우리의 모든 허물진 것들을 사하시며 부족한 우리를 그 품에 품어주실 것입니다. 우리에게 아들의 피와 살을 나누어주시므로 그 사유하심의 은혜를 보여 주실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가 매주 그 은혜의 상 앞에 나아가는 것처럼 날마다 그 은혜를 의지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나아가고 그 베푸시는 은혜를 의지하여 살아야 하겠습니다. 그의 다스리심을 따라 믿음으로 날마다 주와 연합한 삶을 살아야 하겠습니다. 바로 그것이 아들로 함께 하시는 역사를 사는 우리의 삶이 될 것입니다. 아무쪼록 우리 모두가 성전 되시는 주님 안에서 날마다 영광의 하나님을 대면하고 그를 순종하여 사는 주의 백성들이 다 되실 수 있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