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제단은 예수그리스도의피

번제단은 예수 그리스도의 피/출27:1-8

번제단은 예수 그리스도의 피
출27:1-8





저는 모두가 그렇습니다만 개인적으로 동역자 목사님들, 전도사님들에게 더 잘 해드리고 싶은 마음이 항상 있습니다. 저에게 오는 전도사님들에게도 함께 동역의 일을 하고 싶어요. 메일로도 오고, 전화로도 오고 전도사님들이 저에게 문의도 해 옵니다. 한번은 총회에서 목사안수를 받고 목회를 이었어요. 저는 개인적으로 잘 몰랐는데 이 분은 어떻게 저를 알더라구요. 그러면서 여러 가지를 대화하면서 그 분이 이렇게 물어요. \\\"목사님, 어떻게 하면 개척교회가 부흥됩니까?\\\" 저도 잘 모르는 것을 물어봅니다. 그것을 알면 제가 하는데요

그러면서도 그 밤에 찾아왔는데 대답을 해 주어야 할 것 아니에요. 제가 그랬어요. \\\"전도사님, 내일이면 목사님이 되시는데 우리 목회의 지름길을 찾지 말고 정도를 걸어갑시다\\\" 그리고 함께 여러 가지 일들을 함께 나누었습니다. 그래요. 저의 마음은 다른 것이 아닙니다. 그 목사님에게 정도를 걸어가자는 거예요. 원리대로 살자는 것입니다. 제가 알고 있는 부흥의 방법을 굳이 이야기한다고 한다면 저는 그렇습니다. 살아있는 하나님의 말씀을 증거하고 뜨겁게 기도하고 뜨겁게 찬양하면 되는 것 아닙니까? 하나님의 임재를 구하면 되는 것 아닙니까? 그러면 전도사님들은 누가 그것을 모르냐고! 맞습니다. 모두가 다 아는 얘기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렇게 할 능력이 없다는 데 있습니다.

우리가 능력 있게 살아가고 싶어합니다. 하나님의 임재를 구하면 되는 것 아닙니까? 그것 누가 몰라서 그러는가요? 다 알아요. 그러나 문제는 그렇게 할 능력이 없다는데 있어요. 이사야 37장 3절의 말씀대로 \\\'아이를 낳으려하나 해산할 힘이 없음 같도다\\\" 애는 낳아야 하는데 힘이 없어요. 도대체 힘이 어디서 나오는거에요? 여러분 생각해 보십시오. 저는 믿는 것이 있습니다. 아버님의 43년의 목회를 저는 옆에서 보았어요. 그리고 수많은 목사님들의 모습을 보았어요. 그러면서 깨달은 결론은 예배를 통해서 말씀의 능력을 구해야 한다는 거예요. 기도의 능력을 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찬양의 능력을 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능력이 임하지 않으면 도저히 할 수 없습니다.

저와 여러분의 삶속에, 우리 교회 안에 무엇이 넘쳐흘러야 합니까? 예배의 능력이 넘쳐야 합니다. 기도의 능력이 넘쳐야 합니다. 찬양의 능력이 넘쳐야 합니다. 교회만 그렇습니까? 오늘도 이 자리에 나와서 예배드리는 성도 가운데 삶이 자신의 삶을 돌이켜 보십시오. 언제 무너집니까? 우리 주위를 보세요. 무너진 사람들이 있어요. 그런 사람들의 특징이 무엇입니까? 주님을 떠나서 엉뚱하게 내 힘 믿고, 조직의 힘을 믿고, 돈을 믿고 살았던 사람들 아닙니까? 그런데 믿던 것이 다 와르르 무너져요. 우리가 어디로 돌아와야 합니까? 여러분, 우리의 머리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보혈의 피, 보혈의 능력을 붙드는 데로 돌아와야 합니다. 그때부터 역사는 바뀌기 시작합니다. 무능했던 사람이 다시 유능해지고 무력한 사람이 다시 하나님께서 부어주시는 능력으로 무장하게 됩니다. 우리 삶의 무너지는 문제는 어떻게 풀어야 합니까? 예배로부터 풀어야 합니다. 마치 어떤 전기기구의 플러그를 전기에 꽂을 때 능력을 받는 것과 마찬가지로 예배는 머리되신 예수님이 능력의 원천과 나를 연결하는 일입니다. 능력의 원천 되시는 예수님을 붙들 때 능력이 생깁니다.

사람은 자신이 길을 찾으려고 하지만 그 어디에도 길이 없습니다. 살아 계신 하나님을 떠나서 어디에도 길이 없습니다. 하나님을 만나는 길만이, 하나님 앞에 가까이 가는 길만이 사는 길이요, 축복의 길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떠나서는 아무리 가져도 늘 부족하게 되어 있습니다. 아무리 사람이 세상의 많은 인기를 받고 온 세계 사람에게 사랑을 받는다 하더라도 인간의 가슴은 그 크신 하나님의 사랑이 없는 한 항상 공허하고 항상 허전할 수밖에 없다라는 것입니다. 우리의 가슴에 무엇을 채울 것입니까? 돈을 채우면 만족합니까? 무엇인가 좀 위치가 올라가면 채워집니까? 아니에요. 돈도 명예도 정욕도 학위도 우리를 채울 수가 없어요. 여러분, 인간의 마음이 다 그렇습니다. 내 집에다가 아무리 좋은 가구로 채워놓는다고 하더라도, 내 지갑에 아무리 빳빳한 돈을 넣어 놓는다 하더라도 우리의 가슴이 채워지지 않아요. 우리의 마음이 채워지지 않아요. 여러분, 우리의 가슴과 마음을 채우고 주머니를 채우고 내 정신적인 내 모든 삶에 채워야 하는 것이 있습니다. 바로 그 크신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그 크신 사랑만이 우리를 가득 채울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구속의 피만이, 하나님의 은혜만이 우리를 부족함이 없게 하시며 우리를 풍성케 하십니다. \\\"그 크신 하나님의 사랑, 말로다 형용 못하네, 저 높고 높은 별을 넘어 이 낮고 낮은 땅위에, 죄 범한 영혼 구하려 그 아들 보내사 화목제로 삼으시고 죄 용서하셨네. 하나님 크신 사랑은 측량다 못하며 영원히 변치 않는 사랑 성도여 찬양하네\\\"

저와 여러분들 하나님의 그 크신 사랑,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피를 의지하며, 주앞에 나와 예배로 능력을 받는 귀한 저와 여러분이 되길 간절히 원합니다.

일찍이 하나님은 성막을 통해서 그 크신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보여 주셨습니다. 지난주부터 우리는 성막에 대해서 공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기도합니다. \\\"주여, 교회가 이번 새로운 성전을 향하여 나가면서 하나님, 하나님의 크신 은혜가 저희 교회에 임하길 원합니다. 저희 교회의 문으로 하나님의 양들을 보내주세요.\\\" 기도하면서 준비하는 것입니다. 지난주 첫시간 성막 문에 대해서 3가지를 말씀했어요. 성막문의 특징이 세 가지가 있다고 그랬습니다.

전체성막 도표
성막문(도표)

1. 문은 하나밖에 없다. 따라서 합시다. \\\"예수님만이 오직 우리의 생명의 문이 되신다.\\\"
2. 문은 동쪽에만 나 있다. 동쪽에서 태양을 떠오르듯이 우리의 빛되신 예수님을 믿는 것입니다. 따라서 합시다. \\\"예수님만이 우리 삶에 밝은 빛을 비춰 주신다\\\"
3. 문은 아주 넓다. 누구든지 들어올 수 있다. 넘어질 염려가 없는 것입니다. 폐쇄형이 아니란 완전히 오픈 개방형이에요. 따라서 합시다. \\\"예수님의 문으로 누구든지 전도해야 한다.\\\"

지난주에 성경은 모두가 예수님에게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고 했어요. 성막도 모든 것이 예수님에게 초점이 맞추어져 있습니다. 성막의 형태를 지니면서 만든 것이 솔로몬의 성전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솔로몬의 성전과 같은 형태로 교회의 성전들이 지어지고 있다고 했어요. 그러나 중요한 성전은 우리의 몸이 살아있는 성전이 되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저와 여러분이 성전입니다.

저희는 지금 교회 건물을 하나님께 기도하고 있습니다. 교회 건물만이 아닙니다. 저희 교회가 찾고 싶은 것은 교회란 무엇인가를 찾고 싶은 것입니다. 과연 성전이란 무엇인가? 하나님이 성막을 통하여 보여주신 하나님의 설계도가 있는데 그것이 무엇인가? 내가 그 설계도대로 살아가고 있는가를 확인하고 싶어요. 하나님의 설계가 아닌 내 설계도대로 살아가면 안되잖아요. 성막을 통하여 하나님은 성전이란 무엇인가를 보여 주셨어요. 교회란 무엇인가를 보여 주셨어요. 우리가 어떻게 예배해야 하는가를 보여 주셨어요. 다시 한번 따라서 합시다. \\\"성막은 예수님이다.\\\"

자 눈을 크게 뜨고 잘 보십시오. 오늘은 두 번째 시간으로 성막 문을 통과하면서 성막 안으로 들어갑니다. 자 들어갑니다. 문으로 들어가자 마자 보이는 것이 있지요. (도표) 그림을 보십시오. 첫째가 번제단이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배우고 은혜를 받을 말씀입니다. 따라서 합시다. \\\"번제단\\\" 그 다음에 물두멍이 나옵니다. 그 다음에는 성소가 나오는데 성소는 두 가지의 장소로 나뉘어요. 성소와 지성소로 나누어요. 성소는 지붕이 있는 천막입니다. 앞에는 휘장이 있어요. 휘장을 열고 들어가면 성소는 두 장소로 Separate 나뉘는데, 성소와 지성소입니다. 성소에는 세가지의 중요한 기구 세 가지가 있습니다. 금촛대와 진설병상, 그리고 향단이 있어요. 또 휘장을 열고 지성소로 들어가면 그 안에 법궤가 놓여 있습니다. 영화 중에 인디아나 존스에서 \\\"잃어버린 법궤를 찾아서\\\"라는 영화도 있잖아요. 법궤는 세 가지가 들어있어요. 모세가 받은 십계명을 새긴 돌판을 넣어 두었어요. 또 만나를 두었던 항아리가 있습니다. 나중에 민수기 17장에 보시면 한가지를 더 첨가하는데 무엇입니까? \\\"아론의 싹난 지팡이\\\"입니다. 이 법궤 뚜껑을 가리켜 속죄소(贖罪所), 혹은 시은소, 또는 시은좌(施恩座)라고 합니다.

1. 오늘은 한가지 번제단에 대해서 살펴보고 은혜를 받기 원합니다. 이 번제단은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는 제단을 말합니다. 교회에서는 잘 쓰는 말이 있는데 이런 말이에요. \\\"제단을 쌓는다\\\" 이런 말을 씁니다. 자 이 말도 다 이 성막에서 나온 말입니다. 자 제단을 쌓는다는 것이 무엇입니까? \\\"주여 감사의 제단을 쌓게 하소서\\\" \\\"주여 기도의 제단을 쌓게 하소서\\\" \\\"회개의 제단, 기도의 제단, 말씀의 제단, 감사의 제단, 찬양의 제단\\\" 바로 예배입니다. 예배하는 것은 다른 것이 아니에요. 제단 쌓기입니다. 성도들이 평생 추구해야 하는 것은 무엇인지 아십니까? 제단쌓기에요. 예배드리는 것입니다. 태어날 때도 감사의 제단을 쌓고요, 살면서도 계속적으로 기도의 제단, 감사의 제단, 찬양의 제단, 말씀의 제단을 쌓고요, 그리고 임종직전에도 제단을 쌓습니다. 한번 쌓고 끝내는 것이 아닙니다. 어제 예배드렸다고 오늘 예배 안 하는 것 아닙니다. 누구는 그러더라구요. 자신은 부활절 때와 크리스마스 때만 나간다고! 그게 무슨 제단을 쌓는 것입니까?

하나님이 마지막 때에 보는 것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제단을 보십니다. 우리의 제단을 보고 있어요. 우리의 예배를 보고 있습니다. 신령과 진정으로 드리는 예배를 보고 있어요. 예언서라고 하는 에스겔서와 요한계시록에 보면 버림받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가를 나타내요. \\\"그 사람 속에 제단이 깨어지는 것입니다\\\". 예배가 깨어지는 것입니다. (출 29:42) 『이는 너희가 대대로 여호와 앞 회막문에서 늘 드릴 번제라 내가 거기서 너희와 만나고 네게 말하리라』 하나님이 어떻게 우리를 흠향하십니까? 우리가 드리는 이 제단을 통하여, 이 예배를 통하여 하나님은 영광 받으시길 원하고 있습니다. 성도의 삶이 살아 움직이는 삶을 살기 위해서, 교회가 살아 운동력이 넘치기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합니까? 제단을 살려야 우리가 삽니다. 성도가 사는 길은 예배가 사는 길입니다. 교회가 사는 길은 예배가 사는 길입니다. 저와 여러분들의 삶에 아름다운 예배, 향기로운 제단 쌓기가 끊임없이 일어나길 축원합니다.

구약에서 보면 제단을 쌓을 때에는 5가지의 제사를 드리면서 쌓았어요. \\\"번제, 소제, 화목제, 속죄제, 속건제\\\" 현대의 의미로 찬양의 제단, 감사의 제단, 회개의 제단, 기도의 제단 이런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드리는 주일예배만이 아닙니다. 수요예배, 남성기도회, 여성기도회, 주일학교, 새벽예배, 금요예배, 개업감사, 생일감사, 돌감사, 다 다양하지만 제사를 드리는 것입니다.

2. 하지만 다른 것이 잘 기억하지 못한다 할지라도 여러분 이 번제단에서 제일 중요한 것을 여러분들 아셔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받은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의 문을 통과합니다. 문으로 들어와요. 자 그러면 문을 들어왔다고 다 끝나는가? 구원받았다고 다 끝난 것이 아니라 구원받은 사람으로서 제일 먼저 해야 할 일이 있다는 것입니다. 성막문으로 들어와요. 그리고 제일 첫 번째 보이는 것이 무엇이에요. 번제단이에요. 자기가 가지고 온 것을 드려요. 흠없는 양을 잡아요, 흠없는 염소를 잡아요. 흠없는 비둘기도 잡아요. 그리고 피가 흘러내립니다. 왜 흠없는 양을 잡는지 아세요? 왜 염소를 잡는지 아세요. 왜 피를 흘립니까? 딱 한가지예요. 하나님 앞에 지은 죄를 용서받기 위해서예요. 염소의 피를 드리는 거예요. 양의 피를 드리는 거예요. 왜요? 죄 용소를 위해서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의 삶에 그대로 연결됩니다. 예수를 믿으면 먼저 우리가 돈 문제를 해결하여 주세요? 주여, 제게 좋은 처자를 주세요. 남편을 주세요. 좋은 직장을 주세요. 돈 문제, 이성문제, 직장문제가 아니라 바로 죄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예수의 문으로 들어오고 난 후에 반드시 그 다음에 거쳐야 하는 것이 무엇인가면 자신이 지은 죄를 회개하는 것입니다. 교회에 들어와서 예배가 시작이 됩니다. 찬양도 합니다. 그러면서 제일 처음에 해야 하는 것이 있어요. 죄의 고백이 있어요. 내가 한 주간 알고 짓고, 모르고 짓고 죄의 회개를 합니다. 왜 그렇게 합니까? 그래야 새사람이 되고, 그래야 거듭나고, 중생하게 되는 것입니다.

(시 66:18) 『내가 내 마음에 죄악을 품으면 주께서 듣지 아니하시리라』
여러분! 회개하지 않고 드리는 예배는 하나님이 받지 아니하십니다.
여러분! 회개하지 않고 드리는 기도는 하나님이 응답 아니하십니다.
여러분! 회개하지 않고 드리는 헌금은 하나님이 기뻐하시지 아니하십니다.

예수님 이 땅에서 공생애를 시작하시면서 처음으로 당신의 입술에서 연 말씀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 회개하라는 것입니다.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고 하셨어요\\\" 회개를 통하여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문에 들어왔어요. 예수의 문으로 들어왔어요. 무엇이 있어야 합니까? 회개가 동반되어야 합니다.

여러분, 아름다운 예배, 영광스러운 예배에 무엇이 일어납니까? 여러분, 하나님 안으로 들어오면 무엇이 생각나는지 아세요? 자신의 죄가 생각이 납니다. 생각지도 않았던 그것이 생각이 나요. 마음이 너무 너무 갑갑한 것입니다. 죄를 지을 때는 갑갑하지 않았어요. 부담이 없었어요. 하나님의 말씀을 멀리하면서 살았어요. 부담이 없이 살았습니다. 갑갑함이 없었어요. 그런데 주님 앞에 나와 예배를 드리면서 갑갑해요. 부담스러워요. 무엇이요? 죄가 부담스러운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도 마찬가지 에요. 아무리 성막 안으로 들어왔다고 하더라도 그냥 하나님을 만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자신의 죄를 동물에다가 뒤집어 씌어요. 양을 잡아요. 염소를 잡아요. 비둘기를 잡아요. 그리고 피를 흘리게 합니다. 희생의 제사를 드림으로 자신의 죄를 용서를 해 달라는 것입니다. 과거에는 그렇게 했었습니다. 구약 때에는 그렇게 했어요. 그것이 지금까지 그대로 이어진다면 어떻게 되겠어요? 양이 없고, 염소가 없고, 비둘기가 없는 사람은 죄용서를 받지 못합니까?

그래서 과거에 신학교때 \\\"이거 이렇게 죄사함을 받으려고 하면 그래도 목장주인은 되어야 하겠구만!\\\"

하나님은 죄 용서를 받을 때 피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성막이 그래요. 구약이 그래요. 하지만 신약에 와서 하나님은 새로운 길을 제시하셨습니다. (히 10:20) 『그 길은 우리를 위하여 휘장 가운데로 열어 놓으신 새롭고 산 길이요 휘장은 곧 저의 육체니라』 그 길은 우리를 위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열어 놓으신 새롭고 산 길입니다. 십자가에서 강도둘이 있었어요. \\\"너가 무슨 힘이 있다고! 너나 구원해라\\\" 지옥에 가버린 자입니다. 버림받는 자에요. 하지만 \\\"주여, 나를 기억하소서\\\"라고 주님을 의지한 강도는 주님이 말씀하셨습니다. \\\"네가 오늘밤 나와 낙원에 있으리라\\\" 주님을 의지해야 합니다. 십자가를 의지해야 합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시던 그 시각에 성소에서 무슨 일일 일어났습니까? 하나님의 성소에 휘장이 있는데, 아무나 못 들어가는데 그 휘장이 위에서 아래로 쫙 찢어져 버렸어요. 우리는 죄인입니다. 하나님 앞에 갈 수 없어요. 부담스러워요. 갑갑해요. 어떻게 갈 수 있습니까? 바로 십자가의 보혈의 피로 말미암아 담대히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것입니다.

죄악 속에 어두운 우리가 어떻게 밝은 하나님을 만날 수 있습니까? 이런 것과 같습니다. 어느 사람이 긴급한 문제로 왕을 만나고 싶어서 궁궐 앞에서 들어가려고 애를 썼지만 들어갈 수 없었습니다. 관리가 못 들어가게 하는 것입니다. 병사들이 못 들어가게 하는 거예요. 이때 한 어린아이가 다가옵니다. \\\"저기 왕을 만나고 싶으세요\\\" 그래서 그 사람이 아이한테 \\\"네가 왕을 만나게 할 수 있니\\\" 비웃으며 물었습니다. 그러니까 어린아이가 하는 말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따라오세요\\\" 알고 보니 그 아이는 왕의 아들이었습니다. 관리들도 못 막아요. 병사들도 못 막아요.

여러분, 아들 때문에 왕을 만나듯 번제단의 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피 때문에 우리가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만나기 위하여 성소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반듯이 번제단을 지나가야 하는데, 피로 죄를 씻을 받아야 하는데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보혈의 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가까이 갈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찬송가 184장 1절을 불러 봅시다. Nothing but the Blood of Jesus
\\\"나의 죄를 씻기는 예수의 피밖에 없네
다시 성케 하기도 예수의 피밖에 없네
예수의 흘린 피 날 희게 하오니
귀하고 귀하다 예수의 피 밖에 없네

Nothing but the Blood of Jesus 하나님을 만나려면 반듯이 번제단, 피가 있어야 합니다. 저와 여러분 안에 예수의 피가 있어야만 하나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성소로 들어갈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무엇을 의지합니까? 예수의 피를 의지하는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이 교회에 나올 수 있는 것, 성소로 나올 수 있게 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다른 것이 아닙니다. 예수의 피 공로를 의지하는 것입니다. 이 시대에도 희생의 제물을 가지고 와서 제사 드립니까? 양을 잡을 필요도 없고 염소를 잡을 필요도 없고 그렇게 할 필요가 없어요. 오직 예수그리스도의 피 공로 의지하여 하나님 앞에 나와 우리의 죄를 회개하기만 하면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사 1:18)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오라 너희 죄가 주홍 같을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진홍 같이 붉을지라도 양털 같이 되리라』

교회도 성도도 우리의 신앙의 삶은 다 똑같습니다. 예수의 피가 담겨져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이 중요한 것입니다. 설교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 없는 설교 죽은 것입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 없는 교회는 교회가 아닙니다. 사설 단체에요. 친목단체에요. 기도도 마찬가지에요. 예수없는 기도는 허공에만 메아리 치는 것뿐이에요. 그런 기도 해 보았자 아무 소용없어요. 모든 중심에서 예수 있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따라서 합시다. \\\"예수 있는 삶을 삽시다\\\" \\\"예수 보혈의 피를 의지하는 삶을 삽시다\\\"

3. 성경에 나오는 피의 사건 중에 가장 중요한 사건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보혈의 피와 그리고 구약에 나오는 유월절 사건을 두 개 들 수 있습니다. 아마 여러분들도 다 아시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나오기 전날밤 유월절을 지킬 때 그 때 문설주에 무엇을 발랐는지 아십니까? 모두가 어린양의 피를 자신의 집 문설주에 발랐어요. 왜 발랐을까요? 그 피를 발라야만 하나님의 10번째 재앙으로부터 구원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요. 그래서 유월절을 무엇이라고 하는지 아세요? 하나님의 재앙이 지나갔다라고 해서 Passover라는 말을 씁니다. 죄인이 죄에서 구속함을 얻는 것은 돈의 능력, 권세의 능력이 아니라 예수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의 능력으로 말미암아 구속함을 얻는다는 것을 보여준 상징적인 사건입니다.

원래 과거 유월절 이전까지만 해도 유대인의 달력은 태양력이었습니다. 지금과 같은 달력을 썼어요. 그런데 유월절 (passover)를 계기로 그들의 달력이 바뀝니다. 우리로 치면 3월 4월 봄철을 1월로 하는 새 달력을 작성한 것입니다. 그리고 이 달을 \\\'아빕월\\\' 또는 \\\'니산월\\\'이라 불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의 달력이, 하나님을 믿는 백성의 달력이 피를 바른 그 날로 인하여 달력이 바뀌었습니다. 왜요? 삶의 기반과 출발점을 어디로 삼느냐가 중요한 것입니다. 그들의 기준이 바뀐 것입니다. 가치가 바뀐 것입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우리 안에 유월절이 무엇입니까? 우리 안에 Passover 죽어야 되는 것인데 지나쳐 버렸어요. 우리 안에 번제단에 드리는 피의 제사가 무엇입니까? 하나님 앞에 응답 받고 축복으로 나아가는 새로운 출발의 역사가 일어나야 되는 데 그것이 무엇입니다. 우리 안에 새 역사 창조는 언제 일어납니까? 유월절부터 성막에서부터 이스라엘의 역사가 시작된 것처럼, 피의 제사가 있었던 것처럼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피가 우리를 새롭게 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부터, 보혈의 십자가로부터 우리의 새역사가 시작되었어요. 예수 그리스도를 만난 이후부터 내 인생의 달력이 달라지는 것입니다. 새 생명이 언제 시작되는가요? 예수 그리스도를 만난 후에 새생명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고후 5:17)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으리라”(고전 15:22)

저도 낚시를 좋아합니다만 여러분, 죽은 물고기는 물결을 따라 둥실 둥실 떠내려갑니다. 그냥 물 따라 흘러가요. 죄악 속에서 죽은 영혼들, 죽은 사람들은 세상에 따라서 그냥 이리 가고 저리고 둥실둥실 떠내려가는 것입니다. 죄악 속에서 죄가 이끄는 대로 끌리는 것이 인생입니다. 항상 물어야 하는 것이 있습니다. 내가 그리스도안에서 살아있는가? 아니면 죽어 있는가? 그리스도안에서 사는 사람은 마치 살아있는 고기들이 연어가 물을 차고 땜도 차고 올라가듯이 시대에 둥실둥실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시대를 차고 올라갑니다. 삶을 변화시킵니다. 차고 올라갑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원하시는 삶이 그냥 둥실둥실 떠내려가는 것이 아니에요. 죽은 것이 아닙니다. 예수 안에서 살아 운동력이 있길 원하고 있습니다. 차고 올라가는 것입니다.

예수 십자가 이전에는 죄악 속에 사는 종이 되었어요. 내가 끊고 싶어도 안돼요? 마귀의 종이에요. 우리는 다시 한번 주의 앞에서 내가 십자가를 통과했는가?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피를 통과했는가를 물어야 합니다. 내가 언제 예수님을 만났는가? 내가 언제 어린양의 피가 심장에 뿌려졌는가? 여러분, 그 날부터 우리의 삶과 사명이 달라지는 것입니다. 인생의 달력이 달라지는 거예요.

\\\"내가 피를 볼 때에 너희를 넘어가리니\\\"

하나님이 마지막 심판 날에 저와 여러분을 심판할 때에 무엇을 보는지 아십니까? 네가 남들을 많이 도와주었구나? 선행이나 공로를 따집니까? 아니에요. 아무리 우리가 선행을 쌓았다고 해도 우리 안에 그리스도의 피가 없으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Nothing But the Blood of Jesus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는 살길이 없습니다. (행 4:12)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 하였더라』

그리스도 이외에 구원의 가능성이 있다고 여타의 종교들은 말해요. 아니에요. 거짓말입니다. 속지 말아야 합니다.

여러분 어린양의 피를 뿌리는 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하나님께 회개하고 예수님이 나의 죄를 씻어 주시고, 나를 구원해 주신다는 것을 마음으로 믿고 입으로 시인하고 예수님을 증거할 때 어린양의 피가 우리 가슴에 뿌려집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입니다.

십자가 없는 기독교는 윤리에 불과해요. 십자가가 없는 기도는 무당이 하는 것과 다를 것이 없어요. 십자가 없는 기독교는 가짜예요. 유명한 목사님 스펄젼 목사님이 이렇게 외쳤어요.
\\\"여러분, 당신의 성전에는 피가 있습니까? 당신의 강단에는 피가 있습니까? 당신의 예배당에는 보혈이 있습니까?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우리가 진정으로 능력 있는 종들이 되기 위해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피를 붙드는 운동을 벌여야 합니다. 머리되신 예수님을 붙들면 두 가지 역사가 나타나는데 첫째는 능력이 나타납니다. 예수님 붙들면 능력이 생깁니다. 여러분, 교회의 역사를 보면 주기마다 교회가 약화되는 일들이 벌어지곤 합니다. 인간 지도자를 따르고 프로그램을 따르다 보면 교회가 약화됩니다. 그러다가 다시금 교회 안에서 부흥이 일어납니다. 부흥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보혈을 붙드는 운동입니다.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이 말씀을 붙들고 주를 찾는 일들이 벌어집니다.

오늘도 예배를 통해서 머리되신 예수님을 붙드는 강력한 능력이 우리 가운데 임하는 믿음의 종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러므로 예배시간은 경건의 모양이 아니라 경건의 능력을 회복하는 시간입니다. 오늘도 살아계신 예수님을 붙듭시다. “나에게 능력을 주십시오! 예수님, 나의 가정의 문제를 알고 있지 않습니까? 직장의 문제를 다 알고 있지 않습니까? 나의 인간적인, 육체의 연약한 문제를 주님이 알고 있지 않습니까? 제가 알기는 다 압니다. 내가 어떻게 걸어가야 될지 알기는 다 아는데…… 능력이 없습니다.”

여러분! 혹시 한탄만 하지 마십시오. 십자가의 보혈의 피를 의지하세요. 머리되신 예수님을 붙들면 주님께서 능력을 부어주십니다. 그것이 교회의 능력입니다. 오늘도 머리되신 예수님 붙듦으로 말미암아 저희 내쉬빌 연합 교회와 성도들 강력한 교회와 성도가 되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