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막의 휘장

성소의 휘장/출26:31-37

성소의 휘장
출26:31-37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휘장에 관하여 지시하셨습니다. 이 휘장은 지성소와 성소 사이에 설치해서 지성소에 아무나 들어가지 못하게 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임재해 계신 지성소의 법궤를 만지는 자는 죽게 되기 때문입니다.

히브리서 12장 19절부터 보면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 그 길은 우리를 위하여 휘장 가운데로 열어놓으신 새롭고 산 길이요 휘장은 곧 저의 육체니라”고 했습니다. 이휘장 뒤에 있는 지성소에는 아무도 들어갈 수가 없습니다.

다만 대 제사장이 1년에 한번씩 희생의 피를 뿌림으로 들어갔습니다. 바로 이 희생의 피가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흘리신 피를 상징합니다. 그래서 오늘날 하나님의 자녀들은 대제사장처럼 예수 그리스도의 피 공로로 하나님 앞으로 나아올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이 시간에는 이 휘장이 우리에게 주는 의미와 교훈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겠습니다.

첫째는 이 휘장은 하나님과의 단절을 의미합니다.
휘장은 성소와 지성소로 구분하는 막입니다. 지성소는 거룩하신 하나님이 계신 곳이기 때문에 그 곳에 죄인인 인간이 들어갈 수가 없습니다. 오직 대제사만이 일년에 딱 한번 들어가서 백성들의 죄악을 용서해 달라고 기도할 수 있었습니다.

모세의 형 아론의 두 아들이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다가 죽었습니다. 아론의 두 아들 나답과 아비후가 하나님이 명하지 않은 다른 불을 향로에 담아다가 하나님 앞에 분향을 했습니다. 그러자 하나님 앞에서 불이 나와서 두 아들을 삼켜 죽게 하셨습니다.

아론의 두 아들은 아무렇게나 제사를 드리다가 죽임을 당한 것입니다. 아론의 두 아들이 죽은 후에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레위기 16장 2절에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네 형 아론에게 이르라. 성소의 장 안 법궤 위 속제소 앞에 무시로 들어오지 말아서 사망을 면하라 내가 구름 가운데서 속죄소 위에 나타남이니라” 인간은 죄 때문에 절대로 하나님이 임재하시는 지성소에 접근할 수가 없습니다. 성막을 옮길 대는 레위인만이 법궤를 금 막대기에 꿰어서 운반하도록 하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블레셋과 싸울 때에 법궤를 빼앗겼습니다. 법궤를 빼앗은 블레셋 사람들은 환호하며 승리했다고,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포로로 했다고 기뻐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법궤가 얼마나 능력있는 하나님의 궤인지를 몰랐기 때문이었습니다. 블레셋 사람들은 법궤를 자기들이 섬기는 우상 다곤신당에다 두었습니다.

다곤신에게 바친 것입니다. 그 다음날 아침에 일어나 보니까 다곤신이 법궤 앞에 엎어져 있었습니다. 우연한 일인 줄 알고 다곤 우상을 제자리에 세워 놓았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날 보니까 다곤신상이 법궤 앞에 엎드려져 있을 뿐 아니라 팔이 부러지고 목이 부러져 처참하게 흩어져 있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다곤신전이 있는 아스돗 성읍 사람들에게 독종의 재앙이 내려서 수 많은 사람들이 죽고 고통을 당했습니다. 그래서 블레셋 백성들이 모여서 의논을 했습니다.
“우리가 이스라엘 신의 궤를 어찌 할꼬?” 그래서 가드라는 곳으로 옮겼습니다. 그러자 가드에 사는 사람들에게 독종의 재앙이 내렸습니다. 그래서 다시 하나님의 궤를 에그론으로 보냈습니다. 그러자 에그론 사람들이 부르짖어 아우성을 쳤습니다. “우리를 죽이려고 하나냐? 왜 이스라엘 신을 우리에게로 보내느냐?” 하면서 결사반대를 외쳤습니다.

그래서 할 수 없이 법궤를 이스라엘로 돌려 보내고 말았던 것입니다. 이스라엘로 돌아온 후에 아비나답이라는 사람의 집에 모셔 있었습니다. 그 후 다윗이 왕이 된 후에 제일 먼저 이 법궤를 예루살렘으로 모셔오려고 삼만명을 동원해서 운송작전을 펼쳤습니다. 법궤는 레위인들이 금막대기에 꿰어서 운반해야 하는데, 다윗은 마차에다 법귀를 실어 가지고 여러마리의 소들이 끌게 하였습니다.

운반 방법이 잘못된 것입니다. 법궤를 실은 마차가 나곤의 타작 마당에 이르렀을 때 소들이 갑자기 뛰는 바람에 마차 위에 실은 법궤가 요동을 치면서 굴러 떨어질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소를 몰던 웃사가 손으로 법궤를 떨어질까 하여 붙들었습니다. 그러자 웃사는 그 자리에서 즉사하고 말았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하나님의 궤는 그 어느 누구도 만져서는 안되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아담이 범죄한 이후 모든 인간은 원죄를 갖고 태어납니다. 태어날 때 이미 죄인으로 태어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의인은 이 세상에 한 사람도 없습니다. 모두가 부패하여 하나님 앞으로 나아갈 수 없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휘장 대문에 하나님께 나아갈 수 없었던 것처럼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는 죄악의 휘장이 가로막혀 있어서 하나님께 나아갈 수 없게 된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 앞으로 나아갈 수 없는 사람은 결국 죽음 뿐입니다.

이 성소의 휘장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범죄하면 하나님과 단절될 수 밖에 없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과의 교제가 막히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교제가 끊어지면 인간은 불안합니다. 마음에 평안이 없습니다. 행복이 무엇입니까? 마음에 평안을 누리며 사는 것입니다.

행복은 소유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존재에 있는 것입니다. 내가 지금 하나님과 교제하며 사는 존재일 때 나는 행복한 인생을 살고 있는 것입니다. 아무리 재산이 많고 사회적 지위가 높아도 하나님과 단절된 인생은 불행한 인생입니다. 이처럼 하나님과의 교제가 단절된 사람은 인간과의 단절을 가져옵니다. 부모와 자식간의 단절, 남편과 아내와의 단절, 성도간의 단절을 가져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과 나 사이의 단절이 없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돌아가심으로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단절을 바꾸어 화목하게 하시고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를 수 있도록 하셨습니다. 하나님과의 교제를 회복시켜 주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제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을 통해서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도 회복해야 합니다. 형제와 형제 사이의 관계가 회복되어야 합니다. 남편과 아내 사이의 관계가 회복되어야 합니다. 마태복음 5장 24절에 보면 예수님께서 “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하고 그 후에 와서 예물을 드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화해를 하기 위해서 용서해 주는 것입니다.

둘째로 찢어진 휘장을 생각해 보겠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 위에서 돌아가시는 순간 예루살렘 성전 안에 있던 성소 휘장이 위에서부터 아래로 찢어져서 지성소 안이 환히 드러나게 되었습니다. 이 사실은 공관복음서인 마태, 마가, 누가복음서에 다 기록되어 있습니다. 휘장은 그 두께가 4cm로 매우 두꺼운 휘장입니다. 이 휘장이 얼마나 튼튼하게 꿰매어져 있었는지 황소가 양쪽에서 그 휘장을 잡아 당겨도 찢어지지 않을 정도라고 합니다.

그런 휘장이 위에서부터 아래까지 쫙 찢어졌습니다. 이것은 사람의 힘으로 도저히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전적으로 하나님께서 역사하신 것입니다. 전해 내려오는 말에 의하면 제사장들이 갑자기 휘장이 찢어지니까 당황해서 급히 꿰매려고 했지만 도저히 꿰맬 수가 없었다고 합니다.

우리 주님께서 십자가 위에서 “다 이루었다”고 선언하시는 순간 지성소와 성소 사이를 가로 막았던 휘장이 찢어진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몸이 십자가 위에서 찢어지는 순간 휘장이 찢어진 것입니다. 이런 놀라운 일이 있은 이후부터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우리의 죄악이 아무리 크고 많다고 하여도 주님께서 대신 치르신 속죄의 공로로 우리는 이렇게 하나님 앞에 나와서 예배를 드릴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 휘장 안에 있는 성소와 지성소에 들어와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빛 안에 들어와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의 빛 아래 내 자신을 비춰보아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더럽고 추한 죄악의 누더기 옷을 벗어 버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세탁한 속죄의 세마포 새 옷을 입어야 하겠습니다.

셋째는 휘장이 찢어짐으로 은혜의 보좌가 우리 앞에 있게 되었습니다.
“형제들아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 그 길은 우리를 위하여 휘장 가운데로 열어 놓으신 새롭고 산 길이요 휘장은 곧 저의 육체니라”고 히브리서 기자는 말했습니다. 휘장 안에 들어가는 길은 새로운 길이요 산 길이라고 했습니다. 즉 영생의 길이라는 말씀입니다. 지성소 안에는 법궤가 있고, 법궤 위에 속제소가 있었습니다. 이 속죄소는 법궤를 덮는 뚜껑인데 그 위에 두 천사가 서로 마주보고 앉아 있습니다. 이 속죄소를 은혜의 보좌라고 합니다.

히브리서 4장 16절에 “우리가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여기서 “긍휼하심을 받았다”는 말은 “휘장이 열려져 있다”는 말씀입니다. “때를 따라 돕는 은혜”란 “꼭 맞추어 주시는 은혜, 늦기 전에 받는 은혜, 필요에 따라 주시는 은혜”라는 말씀입니다. 적재적소에 은혜를 내려 주시고, 때에 맞게 은혜를 주시는 그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가자는 말씀입니다.

이 은혜의 보좌가 곧 교회 입니다. 여러분이 교회를 향해 올 때 하나님의 은혜의 보좌에 나온다는 사실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교회에 나오실 때 하나님을 만나 뵙기 위해서 온다고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성전을 향해서 나올 때 이런 찬송을 부르며 올라왔습니다.

시편 134편 2절 이하에 “성소를 향하여 너희 손을 들고 여호와를 송축하라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께서 시온에서 네게 복을 주실 찌어다” 시편 121편에서는 “내가 산을 향하여 눈을 들리라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꼬 나의 도움이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에게서로다 여호와께서 너를 지켜 모든 환난을 면케 하시며 또 네 영혼을 지키시리로다 여호와께서 너의 출입을 지금부터 영원까지 지키시리로다”

그렇습니다.
은혜의 보좌로 나아가는 성도를 하나님께서 도와주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성소는 피난처로 들어가는 곳입니다. 광야 생활이 아무리 거칠고 험난하여도, 폭풍우가 몰아쳐도 지성소는 언제나 고요하고 평안한 곳입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께 나아갈 때 우리 주님께서는 우리를 보호해 주시고 평안을 주실 것입니다.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손에서 빼앗을 수가 있겠습니까? 시편 27편 5절에서 “여호와께서 환난 날에 나를 그 초막 속에 비밀히 지키시고 그 장막 은밀한 곳에 나를 숨기시며 바위 위에 높이 두시리로다” 고 했습니다. 구약성경에서는 성도들이 하나님의 성전이 있는 시온을 향하는 마음만 가져도 하나님께서 축복하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은혜의 보좌를 향하여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하늘에서 들으시고 응답하여 주시겠다고 약속하셨는데, 하물며 성전에 찾아와서 간구하는 자에게 주실 축복이 얼마나 크겠습니까?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피 공로로 하나님의 은혜의 보좌에 담대히 나아갈 수 있게 되었으니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예수님 덕분에 우리 앞에 새롭고 산 길이 열렸습니다. 예수님 때문에 영생의 길이 열렸습니다.

이 진리를 깨닫게 되면 우리는 예수님을 전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생명이십니다. 은혜의 보좌 앞에 나아가서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전하시기 바랍니다. 그리할 때 우리는 참 기쁨과 참 행복을 누리며 살 수 있게 됩니다. 이런 은혜가 충만히 임하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