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막과 교회 출25:1-22
여러분이 오늘 교회에 나와 예배하는 일이 어떤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우리가 매 주일 예배를 드리고 이 교회를 위하여 헌금하고 헌신하고 봉사하는 일이 의미가 있고, 여러분의 생활을 복되게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아니면 교회생활을 무거운 짐이나 부담으로 생각하고 있습니까?
이 문제는 우리가 섬기는 교회가 무엇이며,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를 이해하는 문제와도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습니다. 만약에 교회에 하나님이 임재하시며 여러분들과 만나고 교제하는 가운데 그 힘과 능력과 위로를 경험하는 것으로 인식하고, 실재로 그 은혜를 경험하고 있다면 교회를 중요하게 생각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여러분의 일상적인 생활 가운데 우선순위를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교회에서 성도들이 함께 모여 예배드리는 일이 여러분의 생활에 의미를 주지 못한다고 생각하거나, 여러분의 삶에서 본질적인 것이 아니라 부차적이며 선택적인 요소라고 생각한다면 교회생활은 항상 뒤로 밀쳐지게 될 것입니다.
우리 신자에게 있어서 교회생활은 우리의 생명선입니다. 왜냐하면 교회는 온 세상을 창조하시고 그 뜻대로 통치하시는 하나님을 만나고 경험하는 장소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신약시대의 교회의 의미를 그대로 함축하고 또한 예표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성막을 통하여 이 사실을 다시 한번 확인하기를 바랍니다. 또한 이 본문을 선택한 것은 지금 우리 교회 QT교재인 「복 있는 사람」의 본문이 출애굽기의 두 번째 주제인 성막과 제사를 이해하기 위함입니다. 이를 제대로 파악할 때 우리와 교회가 얼마나 하나님 앞에서 소중한 존재인지를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의 주제는 교회는 하나님이 임재하시며 자기 백성과 교제하는 장소이기 때문에 교회생활을 우리 삶의 중심에 두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1. 성막의 의미
성막을 짓는 일과 관련된 중요한 기사는 출애굽기 25-40장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성막(The Tabernacle or Sanctuary)을 짓도록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은 출애굽기의 문맥구조에서 볼 때 성막을 짓게 한 일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를 시사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성막을 짓게 한 일이 출애굽기 19-24장에서 시내산 언약을 맺은 이후에 그 언약에 약속된 대로 보석같이 귀한 존재(ࠄठࡱ॔)와 제사장 나라와 거룩한 백성으로 하나님과의 특별한 관계를 경험하며, 하나님과 교제할 수 있는 방법으로 제시되었다는 것입니다. 새벽기도회 시간에 여러 차례 반복하여 말씀드린 바가 있는데, 성막의 가장 중요한 의미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하나님이 임재하시며 자기 백성을 만나시고 교제하신다는 것이고, 또 하나는 하나님이 통치하신다는 사상입니다.
(1) 하나님의 임재와 교제
하나님은 성막 건축에 대하여 출애굽기 25-31장에 자세하게 가르쳐 주셨습니다. 이것은 어떻게 하나님과 언약관계 속에 있는 백성들이 어떻게 하나님을 만나고 교제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것이었습니다. 이 성막의 가장 중요한 사상은 하나님 편에서 볼 때는 하나님의 임재(the presence of God)의 장소이지만, 언약백성의 편에서 볼 때는 하나님의 임재를 체험하고 교제하는 장소라는 것입니다. 출애굽기 25:8에 보면 \\\\\\\"내가 그들 중에 거할 성소를 그들을 시켜 나를 위하여 짓되\\\\\\\"라고 하였습니다. 이 본문에 보면 성소를 가리켜 \\\\\\\'내가 그들 가운데 거할 성소\\\\\\\'라고 하였습니다. 이 말씀의 히브리어 원문은 \\\\\\\"그들로 하여금 나를 위하여 성소를 만들게 하라. 그러면 내가 그들 가운데 거할 것이다\\\\\\\"라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성막의 핵심적인 사상 가운데 첫 번째는 하나님이 임재하시는 장소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성소에 임재하셔서 어떻게 자기 백성과 만나시고 교제하실까요? 하나님이 법궤를 만드시게 하시고, 제사장을 세우시고, 제자제도를 통하여 나오게 하셨습니다. 그 중에 출애굽기 25:22에 보면 \\\\\\\"거기서 내가 너와 만나고 속죄소 위 곧 증거궤 위에 있는 두 그룹 사이에서 내가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네게 명할 모든 일을 네게 이르리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만나시는 장소는 법궤 뚜껑 위에 있는 속죄소 사이에서 만나시고 말씀하실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성막의 가장 중요한 의미는 하나님이 자기 백성 가운데 임재하시고 교제하시는 장소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성막에 임재하신다는 것은 성막이 완성되었을 때에 분명하게 보여주셨습니다. 여러분! 출애굽기 40:33-35을 보십시오. \\\\\\\"그가 또 성막과 단 사면 뜰에 포장을 치고 뜰문의 장을 다니라. 모세가 이같이 역사를 필하였더라. 그 후에 구름이 회막에 덮이고 여호와의 영광이 성막에 충만하매, 모세가 회막에 들어갈 수 없었으니 이는 구름이 회막 위에 덮이고 여호와의 영광이 성막에 충만함이었으며.\\\\\\\" 이것은 성막에 하나님이 임재하시고, 거기에서 언약백성들이 하나님을 만나고 교제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 사상은 성막을 가리켜 다른 이름으로 회막이라고 부른 데서도 잘 나타나고 있습니다. \\\\\\\'회막\\\\\\\'(ࠃॡࢫࠍ ࠌࡓ, the tent of meeting)이라는 이름은 문자 그래서 옮기면 \\\\\\\'만남의 장막\\\\\\\'이라는 뜻이기 때문에 하나님과 자기 백성이 만나 교제한다고 하는 사상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성막과 관련된 하나님의 임재는 타락 이전에 에덴동산에서 하나님과 남자와 여자가 함께 경험하며 즐겼던 친밀한 교제가 부분적으로 회복된 것입니다(창3:3).
(2) 하나님의 통치
성막의 또 한 가지 중요한 의미는 하나님이 통치하시는 사상을 보여주고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성막을 만들라고 하시고, 그 가운데 속죄소를 만들라고 하시면서 구체적인 모양을 설명해 주셨습니다. 출애굽기 25:17-21을 보십시오. \\\\\\\"정금으로 속죄소를 만들되 장이 이 규빗 반, 광이 일 규빗 반이 되게 하고 금으로 그룹 둘을 속죄소 두 끝에 쳐서 만들되 한 그룹은 이 끝에, 한 그룹은 저 끝에 곧 속죄소 두 끝에 속죄소와 한 덩이로 연하게 할지며 그룹들은 그 날개를 높이 펴서 그 날개로 속죄소를 덮으며 그 얼굴을 서로 대하여 속죄소를 향하게 하고 속죄소를 궤 위에 얹고 내가 네게 줄 증거판을 궤 속에 넣으라.\\\\\\\" 속죄소 위에 두 그룹, 곧 천사가 날개를 펴고 있습니다. 여러분! 이 모양을 볼 때 성경에서 생각나는 장면이 없습니까? 구약성경이나 신약성경에 보면 하나님이 온 세상을 통치하시는 하늘보좌의 모습을 보여주신 바가 있습니다. 이사야 선지자가 성전에서 기도할 때 하늘보좌의 환상을 보았습니다. 그 환상이 이사야 6장에 나타나고 있는데, 하늘보좌에 천사들이 두 날개로는 얼굴을 가리고, 또 두 날개는 날며, 또 두 날개는 발을 가리고 하나님의 영광을 찬미하였습니다. 요한계시록 4장에 하늘보좌 주위에 천사들이 찬양하고 있습니다. 법궤 위에 있는 속죄소 위에 있는 그룹은 하늘에 있는 하나님의 보좌 주위에서 수종들며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지키는 천사들을 나타냅니다. 이러한 이유에서 반게메렌은 성막을 가리켜 \\\\\\\"성막은 하나님의 지상 \\\\\\\'궁전\\\\\\\'의 심볼로서, 그 분의 하늘 궁전의 축도모델이다\\\\\\\"(The Tabernacle was a symbol of his earthly \\\\\\\'palace,\\\\\\\' a miniature model of his heavenly \\\\\\\'palace\\\\\\\')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성막이 보여주는 두 번째 의미가 잘 나타나 있는데, 성막은 하나님의 통치사상을 표현하는 구체적인 장소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성막의 이러한 점을 고려해 볼 때 구약시대에 성막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너무나 중요한 위치를 차지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나님이 임재하시며 자기 백성과 만나시고 교제하시며, 동시에 그의 무한한 능력으로 통치하시는 장소였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언제든지 성막에 나와서 하나님을 만나 그의 은혜를 구할 수 있게 하셨습니다. 여기에 성막의 중요성이 있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있어서 진을 칠 때나 이동할 때 항상 백성들 가운데 두게 하였습니다.
2. 성막과 그리스도
그러면 하나님이 임재하시며 자기 백성과 교제하시며 그 능력으로 통치하시는 성막이 오늘날에도 중요할까요? 우리가 다 알고 있다시피 성막은 솔로몬 시대까지 있었고, 솔로몬 시대에 성전을 지었습니다만 이 성전도 바벨론에게 멸망할 때 완전히 무너졌고, 그 후에 스룹바벨이 지었지만 또 무너졌고, 또한 그 후에 헤롯에 의해 지어져 예수님 당시에 있었지만 이 역시 로마의 침공으로 완전히 없어졌습니다. 그렇다면 이 성막이나 성전은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일까요? 구약시대에 성막에 하나님이 임재하시고 교제하시던 하나님은 어떤 방식으로 우리와 만나시며 교제하실까요?
구약시대의 성막과 성전이 오늘날 그리스도 안에서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 성경에서 많이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 중에서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계실 때 성전에 들어가셔서 당시에 부패한 성전을 책망하시면서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요2:19)고 하셨습니다. 사도 요한은 이 의미에 대하여 설명하기를 \\\\\\\"그러나 예수는 성전된 자기 육체를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신 후에야 제자들이 이 말씀하신 것을 기억하고 성경과 및 예수의 하신 말씀을 믿었더라.\\\\\\\"(요2:21-22)고 하였습니다. 구약시대의 성막과 하나님이 임재하시는 장소요 자기 백성과 만나시며 교제하시는 장소였습니다. 그리고 온 세상을 통치하시는 장소였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이 모든 의미가 성취가 되었을까요? 그것은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죽으실 때의 사건이 기록된 마가복음 15:37-38에 분명하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예수께서 큰 소리를 지르시고 운명하시다. 이에 성소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까지 찢어져 둘이 되니라.\\\\\\\" 이 사건을 기록한 마가가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는 의미를 성소의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로 찢어지는 사건으로 설명하였습니다. 이것은 더 이상 성막에서 드리는 제사나 제사장의 중보를 통하여 하나님께 나가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자유롭게 어떤 시공간의 제약도 받지 않고 나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신 사건은 바로 구약의 성전이 의미하는 바대로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계시고 교제하신다는 것을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누구든지 예수님을 믿는 자들은 구원을 받아 하나님을 만나 교제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구약시대에 성막이 아니라 구원받은 성도들 가운데 임재하시며 그의 통치를 나타내십니다. 이러한 이유에서 구약의 성막이나 성전은 오실 그리스도에 대한 예표요 그림자입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가 오심으로 더 이상 성막이나 성전은 존재할 필요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이 오셔서 구약에서 예표요 그림자로 보여주시던 것에 대한 실체를 이루셨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이유에서 신약시대에는 구원받은 모든 성도들을 가리켜 하나님이 거하시는 성전이 되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신약의 고린도전서 3:16에서는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뇨?\\\\\\\"고 하였고, 고린도후서 6:16에서는 \\\\\\\"우리는 살아계신 하나님의 성전이라.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 가라사대 내가 저희 가운데 거하며 두루 행하여 나는 저희 하나님이 되고 저희는 나의 백성이 되리라\\\\\\\"고 하셨습니다. 구약시대에는 한 지역에 제한하여 말씀하시고 교제하시던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구속받은 모든 성도들에게 언제, 어디서든지 임재하시며 교제하시며 그 영광을 나타내신다는 것입니다. 구약시대에는 한 장소와 시간에 제한을 받았지만 이제는 시공간에 제약이 없이 그리스도를 통하여 살아계신 하나님을 만나 교제하며 그 능력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우리 성도가 받은 은혜입니다.
3. 성막과 교회
그러면 구약시대의 성막과 교회는 어떤 연관성을 가지고 있을까요?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셔서 구약의 성전의 의미를 성취하고 난 후에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이 모여 교회를 이루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신약의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의 모임을 가리키는 것이었습니다. 특히 하나님의 백성들이 모여 함께 예배하며 교제하고, 주의 거룩하신 뜻을 이루시기 위하여 교회공동체들이 형성되어 조직 교회들이 세워졌습니다. 이 조직 교회들이 오늘날의 지역 교회입니다.
그러면 이 지역교회, 여러분이 섬기는 한샘교회에도 구약시대에 성막에서와 같이 하나님이 임재하시며 교제하시고 그의 무한한 능력으로 통치권을 행사하실까요? 이 점은 예수님께서 지역교회에도 구약시대에 성막에서와 동일하게 하나님이 임재하시며 교제하시고 그의 통치권을 나타내실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마태복음 18장에 보면 교회 가운데 하나님이 구약시대와 동일하게 임재하신다는 사실을 설명하기 위하여 한 가지 예를 들어 설명해 주셨습니다. 교회에 출석하는 사람 가운데 어떤 사람이 죄를 범하였습니다. 그 죄는 신자로서 신분과 품위에 어울리지 않는 행동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죄를 범하는 것을 본 한 성도가 그렇게 하지 말도록 권하였습니다. 만약에 그 말을 듣지 않을 경우에 한 두 사람을 더 데리고 가서 권하여도 듣지 않을 경우에 교회에 말하라고 하였습니다. 그래도 듣지 않으면 그를 치리하여 교회에서 내어쫓으라고 하였습니다. 만약에 오늘날 이러한 방식으로 치리하면 \\\\\\\"이 교회가 없으면 다닐 교회가 없나 주변에 크고 화려한 교회가 얼마나 많은데\\\\\\\" 하면서 갈 사람들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생각은 큰 오산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때에 아주 중요한 말씀을 하셨습니다. 마태복음 18:19-20을 보십시오. \\\\\\\"진실로 다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중에 두 사람이 땅에서 합심하여 무엇이든지 구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저희를 위하여 이루게 하시리라. 두 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 이 말씀의 뜻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이 교회 가운데 계시며 여전히 그 통치권을 행사하신다는 뜻입니다. 바로 이러한 점에서 구약의 성전과 신약의 교회는 동일선상에 있습니다. 신약의 교회도 하나님이 임재하시며 자기 백성과 교제하시며 그의 통치를 시행하십니다.
그렇다면 여러분! 하나님께서 오늘날에도 구약시대에 임재하시고 교제하셨던 것처럼 동일하게 임재하신다면 오늘날 교회에 와서 예배드리는 것은 하나님이 임재하시는 곳으로 들어가 하나님을 만나고 교제하면서 그의 사랑과 은혜와 능력을 공급받는 일이 아닐까요? 교회의 모임이 세상의 모임과는 구별되는 독특한 요소는 무엇일까요? 어떤 요소가 세상의 모임과 다르게 만들까요? 교회는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의 임재 앞에 모여서 하나님과 만나 그의 은혜와 능력을 경험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교회의 모임은 일반 세상사람들의 모임과 비슷해 보일는지 모르지만 하나님의 임재 앞에 있다는 믿음으로 참여할 때 온 세상의 창조자요 전능하시며 무한히 초월해 계시는 하나님을 만나는 독특하고 초자연적인 것입니다. 그래서 믿음으로 참여하는 자에게 하나님의 위로를 경험하기도하고, 때로는 오랜 질병으로 고통받았던 자들이 치료를 경험하기도 합니다. 경제적으로 고통스럽게 힘들어하던 사람들이 용기를 얻고 회복시켜 주시는 것을 경험하기도 합니다. 하나님께서 구약의 성막이나 신약에서 교회에서 주님의 이름으로 모이는 일에 대하여 아주 의미있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여러분! 출애굽기 20:24을 함께 봅시다. \\\\\\\"내게 토단을 쌓고 그 위에 너의 양과 소로 너의 번제와 화목제를 드리라 내가 무릇 내 이름을 기념하게 하는 곳에서 네게 강림하여 복을 주리라.\\\\\\\" 하나님의 이름을 기념하는 곳, 곧 교회에서 하나님 앞에 예배드리는 곳마다 하나님이 임재하여 복을 주시리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면 아무나 하나님이 임재하시는 성막에 들어가 하나님을 만나 교제하는 은혜를 누릴 수가 있을까요? 구약시대나 신약시대에 죄를 지은 사람은 들어갈 수 없습니다. 그러나 구약시대에는 자신의 죄를 회개하고 하나님이 정해주신 방법인 제물을 드리고 제사장의 중보적인 사역을 통하여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신약시대에는 예수님이 친히 대제사장이 되시고, 또한 친히 자신이 우리의 죄를 대신하여 속죄제물이 되셨습니다. 그래서 이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하나님이 통치하시는 은혜의 보좌로 들어갈 수 있습니다. 이것이 우리가 받은 은혜입니다.
그러면 믿음으로 나간다는 것은 구체적으로 무엇을 말할까요? 이것은 우리가 너무 잘 알고 있는 것인데 정한 시간에 예배를 드리고, 규칙적으로 성경을 읽으며 기도하고, 은사에 따라 봉사하는 것입니다. 우리 믿음의 선진들은 때로는 금식하고 때로는 밤을 새면서 기도하기도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교회가 필요하다면 시간을 드리거나 몸을 드리거나 물질을 드리기도 하였습니다. 주변에 도움이 필요한 자들이 있을 때 기꺼이 헌금하기도 하였습니다. 이것이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간다는 실제적인 의미입니다. 이러한 방법으로 은혜의 보좌에서 하나님을 만나본 경험이 있는 사람들은 이 일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법입니다.
그랜트 시걸이 지은 「세계 최고의 부자 록펠러」라는 책에 이 부분에 대하여 실제적으로 적용한 부분이 있습니다. 워싱턴 포스트와 타임지의 프리랜서 기자로 활동한 저자가 \\\\\\\"록펠러 회장님, 지금까지 회장님은 오랫동안 세계 최고의 부자로 살고 계시는데, 그렇게 성공하게 된 비결이 무엇입니까?\\\\\\\"라고 질문하였습니다. 그 때에 록펠러는 \\\\\\\"나는 부모님, 특히 어머니로부터 세 가지 신앙유산을 받은 것이 비결이라고 생각합니다.\\\\\\\"고 하면서 그 세 가지 신앙유산을 설명하였습니다. 첫 번째의 신앙유산은 십일조 생활이고, 두 번째로는 교회에 가면 맨 앞자리에 가서 예배를 드리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맨 앞자리에 앉아야 목사님의 설교말씀에 은혜를 받을 수 있다는 것이 그 이유였습니다. 세 번째 신앙유산은 교회를 다닐 때 교회의 일에 순종하고, 목사님의 마음을 아프게 하지 말라는 어머니의 가르침 때문이라고 대답하였습니다.
사랑하는 믿음의 가족 여러분! 제발 자기 생각과 계산대로 하나님을 섬기지 마십시오. 아이들처럼 단순하게 받아들이고 우리 믿음의 조상들이 성경의 교훈을 실천하여 경험적으로 배운 것들을 순종해 보십시오. 우리가 잘 알고 있듯이 어린아이들은 무엇이든 듣는 대로 믿는 특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터무니없는 것이라고 할지라도 쉽게 믿기 때문에 어떤 사람은 잘 속는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아이들이 잘 속는 것이 아니라 의심하지 않는 것입니다. 이러한 이유에서 예수님은 너희가 어린아이와 같이 진리를 의심하지 말고 단순하게 받아들이지 않으면 하나님 나라의 풍요를 경험할 수 없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눅18:17). 이 방법이 남들이 생각할 때 어리석은 일이라고 생각할는지 모릅니다. 어떤 사람은 문제가 발생할 때 지성으로 자신을 추스르고, 논리로 문제를 풀어갈 수 있다고 생각할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그 일은 언제든지 한계가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 신자는 어린아이와 같이 단순하게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기적과 같은 신비한 일이 일어나게 하십니다.
사랑하는 믿음의 가족 여러분! 구약의 성막이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를 아셨습니까? 하나님이 임재하시며 교제하시고, 그의 통치를 시행하시는 장소였습니다. 그러나 신약시대에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장소와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게되었습니다. 이 뿐만 아니라 우리 자신이 주님이 거하시는 성전이 되어 교제하는 자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섬기는 지역교회 역시 하나님이 임재하시며 교제하시며 그의 통치를 시행하시는 장소였습니다. 이러한 이유에서 교회의 예배를 소홀히 할 수 없고, 교회의 봉사에 참여하는 일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교회 가운데 임재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오늘날 우리가 교회의 예배에 참여하며 교회에 활동에 참여하고 봉사하는 것은 의미있는 일입니다. 하나님이 내 이름을 기념하는 곳에 내가 강림하여 복을 주리라고 약속하신 것처럼 전능하신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우리 믿음의 가족들이 이 놀라운 은혜의 세계를 꼭 보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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