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되게 성장하라

복되게 성장하라/벧전2:1-10

복되게 성장하라/벧전2:1-10



농사를 짓는 사람은 풍성한 결실을 소원합니다. 공부하는 학생은 높은 성적을 기대합니다. 사업을 하는 사람은 많은 수입을 바랍니다. 누구든지 자신이 하는 일에 좋은 결과를 원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러나 누구나 기대하는 바를 얻는 것은 아닙니다. 소원을 이루는 사람이 많지 않은 것이 현실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에는 3종류의 사람이 존재합니다. 첫째는 아무런 기대감이나 목적이 없이 되는대로 살아가는 사람이 있으며 두 번째는 기대감과 소원은 많으나 그러한 소원을 이루기 위한 노력이 없는 사람이 있습니다. 목적을 이루기 위한 희생을 감당하기를 두려워합니다. 세 번째 사람은 분명한 목적을 가지고 있으며 그 목적을 이루기 위하여 최선을 다하는 사람입니다.

신앙생활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는 부흥되어야하며 가정은 축복을 받아야하고 성도들은 신앙이 성장하고 많은 은혜를 누려야 합니다. 이러한 부흥과 가정의 축복과 신앙의 성장을 많은 사람들이 사모합니다. 그러나 그러한 소망을 이루기 위한 수고와 희생을 감당하는 사람이 적습니다.

우리의 눈 앞에 놓인 가을의 풍성한 결실은 농부들의 수고가 담겨있음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아름다운 진주가 조개의 오랜 고통의 결실임을 잊지를 말아야 합니다. 노후에 편안하게 사는 사람들의 삶이 젊어서의 고생이 있었음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삶의 모든 분야에서 풍성한 결실을 거두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풍성한 결실을 거두기 위해서는 반드시 과정이 필요합니다.

오늘 본문은 사도 베드로가 흩어진 성도들에게 보낸 편지의 일부입니다. 베드로 사도가 편지를 쓴 이유는 분명합니다. 어떠한 환란과 역경을 격을지라도 반드시 믿음의 결국인 구원을 받아야 하겠다는 것입니다. 믿음의 열매인 구원을 받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벧전 1:7 너희 믿음의 시련이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하려 함이라 8 예수를 너희가 보지 못하였으나 사랑하는도다 이제 도 보지 못하나 믿고 말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즐거움으로 기뻐하니 9 믿음의 결국 곧 영혼의 구원 을 받음이라

베드로는 모든 성도들이 구원을 받는 자가 되기를 원하였습니다. 그러한 하나님의 언약인 구원을 얻기 위하여 하나님의 부르심을 알고 부르심에 합당한 자로서 최선을 다하여 살아야 함을 가르친 것입니다. 구원의 열매를 얻기까지 모든 삶에 있어서 하나님께 합당한 자가 되어야 한다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벧전 1:13 그러므로 너희 마음의 허리를 동이고 근신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실 때에 너희에게 가져올 은혜를 온전히 바랄지어다 14 너희가 순종하는 자식처럼 이전 알지 못할 때에 좇던 너희 사 욕을 본 삼지 말고 15 오직 너희를 부르신 거룩한 자처럼 너희도 모든 행실에 거룩한 자가 되라

기독교의 박해가 시작되기 얼마 전 베드로는 환란 가운데서도 믿음을 지키고 승리하는 성도가 되기를 간절히 바랐습니다. 모든 성도들이 영원한 구원을 얻는 성도가 되어야 하며 영원한 하나님의 상급을 받는 성도가 되기를 바랐습니다. 마지막의 승리자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기록한 베드로의 가르침을 통하여 거룩한 삶을 살다가 영원한 구원을 얻는 방법을 찾기를 원합니다.

풍성한 열매를 맺으려면 어떤 과정이 필요합니까?

첫째로, 시작이 중요합니다.

우리의 말에 \"시작이 반이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떡잎부터 알아본다는 말도 있습니다. 시작이 매우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에 있어서 어떠한 시작이 중요합니까? 어떠한 시작이 있어야 합니까? 생명이 결실을 이루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출생이 있어야 합니다. 어떤 것도 생명으로 나지 않으면 자라지 못합니다. 우리가 열매를 맺기 위해서는 우리 안에 생명이 들어와야 합니다.

우리 안에 들어와야 할 생명은 예수 생명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다시 태어나야 합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로 다시 태어나야 합니다. 자신의 생명이 어떠한 생명으로 태어났는가를 확실하게 알아야 합니다. 어떠한 존재로 태어났는가를 알아야 합니다. 어떠한 존재로 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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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났느냐의 문제는 어떻게 성장해야 하는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심으로 우리가 다시 태어난 것은 전혀 새로운 존재가 되었음을 의미합니다. 성경은 우리의 허물과 죄에도 불구하고 우리를 고귀한 이름으로 불러 주고 있음을 보게 됩니다. 우리가 엄청난 신분을 지닌 자들임을 알려 주고 있습니다.

벧전 2:9 오직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 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자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10 너희가 전에는 백성이 아니더니 이제는 하나님의 백성이요 전에는 긍휼을 얻지 못 하였더니 이제는 긍휼을 얻은 자니라

이제는 하나님의 백성답게 살아야 합니다. 부르심에 합당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전에는 백성이 아니더니 이제는 백성이며 긍휼을 얻은 자가 되었습니다. 이제는 우리 자신이 누구인가를 알고 신분에 알맞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믿는 자답게 살아야 합니다. 우리는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서 다시 태어나야 하며 어떠한 존재인가를 확실하게 알고 살아야 합니다.



둘째로. 과정이 중요합니다. 시작도 중요하지만 과정이 더욱 중요합니다.

태어난 생명은 순간 순간 성장의 목표를 다 이룰 때까지 잘 자라야 합니다. 건강한 성장의 과정을 위하여 필수적인 것은 병들지 말아야 합니다. 아무리 건강하게 태어난 아이도 중간에 병들면 성장하지 못합니다. 성장 중에 상처를 받으면 성장에 장애가 옵니다. 목회를 하면서 때로 특별히 성장에 치명적인 상처를 받아서 성장에 커다란 장애를 가져 온 사람들을 보게 됩니다. 믿음의 길에서 올바르게 성장하려면 바른 길로 걸으며 빗나가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 부모들도 우리의 자녀들이 잘 자라나기 위해서 여러 가지 면으로 가리고 금해야 할 것을 자녀들에게 권면합니다.

나쁜 습관을 버리게 합니다. 좋지 못한 만남을 못 갖게 만듭니다. 좋지 못한 음식을 먹지 못하게 합니다. 자녀들이 아무리 좋아해도 좋지 못한 것은 금하게 합니다. 멀리하게 만듭니다.

오늘 본문에서 베드로는 먼저 버릴 것을 버리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구원을 받는 일에 도움이 되지 않고 거룩의 삶에 장애가 되는 \"모든 악독과 궤휼과 외식과 시기와 비방을 버리라\"고 권면합니다. 신앙의 길에서 바른 성장을 하려면 무엇보다도 금지할 것을 금지하고 멀리 할 것을 멀리 할 줄 알아야 합니다. 베드로는 1장에서 마음의 허리를 동이고 근신하여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에 가져올 은혜를 온전히 바라라고 하셨습니다. 시편의 기자는 의인의 삶, 복된 자의 삶에 대하여 분명하게 말합니다.

시 1:1 복 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좇지 아니하며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축복된 삶과 구원에 방해가 되는 것을 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그런데 사람은 하지 말라는 것을 더 좋아합니다. 부모는 자식에게 재미없는 것을 열심히 하라고 합니다. 재미있는 것은 하지 말라고 합니다. 왜냐하면 인생을 지난 뒤에 좋은 열매를 맺게 하기 위함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자신을 위하여 우리가 우상을 버리고 오직 하나님만을 섬기기를 원하십니다. 교만을 버리고 겸손하기를 원하십니다. 의심을 버리고 전적으로 신뢰하며 살기를 원하십니다. 미움을 버리고 사랑하기를 원하십니다. 우리가 나쁜 것으로부터 멀리하면 자연스럽게 성장하게 됩니다.

식물이 잘 자라나기 위해서는 잡초를 제거해주고 벌레가 끼지 않게 만들어야 하듯이 우리들 주변에 잡초와 벌레를 잡아야 합니다.

더 나아가 건강한 성장을 위하여 병에 들지 말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기도를 가르쳐 주시면서 시험에 들지 않도록 기도하라고 하셨습니다. 깨어 있으라고 하셨습니다. 잠들거나 병들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하셨습니다. 사람은 병들지 말아야 합니다. 어떠한 생명도 병들면 성장하지 못합니다. 신앙생활의 병은 무엇입니까? 성장에 장애가 되는 것을 버려야 합니다. 때때로 사람이 신앙적으로 병들면 그 병으로 인하여 신앙이 침체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우리는 항상 나의 신앙에 장애가 되고 나의 신앙생활에 방해가 되는 것이 무엇인가를 알고 경계하여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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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한 성장을 위해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열심히 좋은 것을 섭취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베드로는 오늘 본문에서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고 하였습니다.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려면 열심히 젖을 먹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함께 태어난 쌍둥이도 먹는 것이 다르면 성장의 속도가 다릅니다. 우리는 열심히 먹어야 합니다 무엇을 어떻게 먹어야 합니까?

*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먹어야 합니다.

젖은 가장 순수하고 순전하고 완전한 식품입니다. 몸에서 몸으로 직접 전해지는 최고의 식품입니다. 영양이나 온도까지 그대로 전해지는 완벽한 식품입니다. 우리가 먹어야 할 젖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말씀입니다.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말씀으로 살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나쁜 것으로부터 멀리하는 것만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좋은 것을 가까히 하여야 합니다. 우리의 아이들이 나쁜 것을 안 먹는 것도 중요하지만 좋은 것을 먹는 것이 중요합니다. 나쁜 친구를 멀리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좋은 친구를 사귀는 것도 중요합니다.

시편의 기자는 복있는 사람은 악의 길에서 떠나는 것만을 말하지 않습니다.

시 1:2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로다

지금 시대는 양식이 주린 시대가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이 주린 시대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진정 먹어야 할 것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구원에 이르기까지 우리를 인도하며 우리에게 힘을 주는 좋은 양식을 날마다 먹어야 합니다. 교회의 감나무에게 비료를 주고 주변에 퇴비를 주니 열매가 많아집니다. 심은대로 거둔다는 말을 심은 종자대로 거둔다는 말만이 아니라 정성대도 거둔다는 것입니다. 식물에게 열심히 양분을 제공하면 많은 결실을 거두게 됩니다.

* 오늘 본문은 단순히 먹으라고 하지 않고 사모하여야 한다고 말합니다. 간절함으로 원하여야 합니다. 울며 보채듯이 구하여야 합니다. 때로 아이들이 좋은 것을 먹으라고 하면 억지로 먹는 것을 봅니다. 때로는 혼을 내야 먹습니다. 주님은 우리가 그것을 즐기기를 원하십니다. 사모하기를 원합니다. 사슴이 시냇물을 찾아 헤메이듯이 우리가 주님을 찾기를 원하십니다. 복있는 사람은 율법을 억지로 지키는 것이 아니라 즐거워한다고 하였습니다. 돈 버는 사람은 손님이 넘치면 신이 납니다 땀을 뻘뻘 흘리면서도 신이 납니다. 일이 즐겁습니다. 돈이 벌어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신이 나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는 것이 믿지 않는 사람들이 보기에는 어리석게 보여도 신이 나야 합니다. 순교하는 사람들의 마음이 어떠하였겠습니까? 주님의 반열에 동참하는 기쁨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여야 합니다. 성전에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러 가는 것이 친정집에 가는 것 같은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 특히 갓난 아이들같이 사모라라고 합니다. 간난 아이들은 젖을 먹자마자 먹으려고 합니다. 하루가 다르게 커가는 이유는 열심히 먹기 때문입니다. 의인은 율법을 주야로 묵상한다고 하였습니다.

아침에도 먹고 저녁에도 먹고 때만 되면 먹는 것을 말합니다. 때로 어떤 신앙인은 사무실 책상위에 성경책을 놓고 시간만 나면 읽는 것을 보게 됩니다. 어떤 분은 리어커에서 과일을 팔면서도 열심히 읽는 것을 봅니다. 애기가 젖을 먹듯이 먹는 것을 봅니다. 그러면 신앙도 빨리 성장합니다. 어떤 이는 일주일에 한 번 교회에 와서 성경봉독할 때 한번 읽습니다. 그것도 때로는 찾지 못하고 다 읽고 나 뒤에 성경을 뒤적거리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러면 자라나지 못합니다. 젖꼭지를 물다가 놓지는 격입니다. 베드로은 교훈처럼 우리는 신령한 젖을 사모하여야 합니다. 신령한 것을 사모하여야 합니다. 날마다 하나님의 말씀을 먹어야 합니다. 날마다 기도하여야 합니다. 좋은 것을 먹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먹어야 합니다.

유익한 것을 다양하게 공급을 받아야 합니다. 지정의의 균형 잡힌 성장이 필요합니다. 말씀 기도 헌신 교제가 필요합니다. 열심히 운동도 하여야 합니다. 헌신과 봉사를 통하여 성장을 합니다.

셋째로, 마무리가 중요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한국 제품의 문제점을 지적할 때 \"마무리가 약하다\"고 합니다. 마지막까지 잘 자라야 합니다. 농사에서 제일 안타까운 것은 다 지은 농사를 망칠 때입니다. 강원도에서 목회할 때 가을 추수를 위하여 벼를 베어 놓은 후 비가 계속온 경우가 있었습니다. 마를만하면 비가 오더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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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바닥에서 누어있는 볏단에서 싹이 나기 시작했습니다. 농부들이 애를 태우는 것이었습니다. 볏단을 집에 들일수도 없고 젖은 벼를 탈곡을 할 수도 없었습니다. 나중에서 추위가 다가오면서 바닥에 얼어붙는 볏단을 보는 농부들의 괴로운 표정은 지금도 선합니다. 마지막 농사를 실패하는 괴로움은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다 익은 배가 마지막 태풍에 떨어지는 것처럼 괴로운 것이 없습니다. 어떠한 일이든지 목표가 성취되어야 합니다. 달리기는 마지막 도착지까지 달려야 합니다.

오늘 본문에서 사도 베드로가 안타까워 하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다름이 아닌 건축에 쓰려고 다듬던 돌 중에서 버림바 되어 부딪히는 돌과 거치는 반석이 되는 돌이 있다는 것입니다. 어떤 돌이 귀한 머릿돌이 될 때 길에 굴러 다니는 버리는 돌이 된 것입니다. 그 이유는 8절에서 말씀을 순종치 않아서 넘어진 것이라고 분명히 말하고 있습니다. 듣기는 들어도 행하지 못한 자는 실족하여 넘어지고 만다는 것입니다. 씨가 떨어져도 새에게 쪼여 먹이고 가시에 찔려 죽고 햇빛에 타 죽는 불행을 겪은 것입니다.

한 번은 도자기를 굽는 도요를 방문한 일이 있었습니다. 아름다운 도자기가 구워지는 곳이었습니다. 비싼 도자기들이 구워지는 곳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주변의 바닥에는 깨어진 도자기 조각들이 넘쳐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실패작이었습니다. 주인은 아낌없이 깨트려 길에 버리는 것이었습니다. 과정에서 제대로 구워지지 못한 것들이었습니다. 알곡을 곳간에 가라지는 불에 넣어버리시겠다는 주님의 경고가 생생하게 들리는 순간이었습니다. 저는 우리 영생교회 모든 성도들이 시작과 과정과 마지막이 모두 아름답게 채워지기를 바랍니다. 농부가 처음에 심으며 바랐던 열매로 맺혀지기를 원합니다. 부모가 자식을 낳고 기르면서 원했던 자식이 되듯이 하나님이 기뻐하는 삶을 사는 결과를 얻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성장의 목표를 분명히 정하여야 합니다.

어디까지 이르도록 변함없이 성장하여야 합니까? 베드로는 분명한 목적을 구체적으로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모든 행실에 거룩한 자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1:15)

2절에서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야 한다고 합니다. 지속적인 성장이 있어야 합니다. 마지막 승리의 순간까지 달려가야 합니다. 더러운 자로서는 구원을 받을 수 없습니다. 나의 모든 죄를 씻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피로 씻어야 합니다. 더 나아가 신령한 집으로 세워지는 인생이 되어야 합니다. 내 안에 주님이 계시기까지 거룩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바울은 우리가 하나님이 거하시는 성전이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이 거하시기에 합당하게 살아야 한다고 말합니다.

고전 3:16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뇨

17 누구든지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면 하나님이 그 사람을 멸하시리라 하나님의 성전은 거룩하니 너희도 그러하니라

베드로는 그 상태에서 머물기를 원치 않았습니다. 한 단계 더 나은 삶을 살기를 원했습니다. 베드로는 성도들이 하나님이 기쁘시게 받으실 신령한 제사를 드릴 거룩한 제사장이 되어야 한다고 합니다. 자신의 믿음을 유지하는 정도가 아니라 다른 사람을 위하여 기도까지 할 수 있는 다른 사람을 하나님께로 인도할 수 있는 수준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복을 받아도 나 하나 충분히 먹고사는 복이 아니라 남에게 베풀고 나누어 줄 수 있는 복을 받아야 합니다. 나누고 돕고 선교하고 헌신할 수 있는 복을 받아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깨끗한 그릇이 되어 넘치는 은혜를 받아 다른 사람에게까지 복을 나누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이 한 사람의 복이 아니라 복의 시작이 되는 복의 근원의 삶을 살기를 원하셨습니다. 저는 저희 교회가 교회를 유지하는 교회가 아니라 나누고 베푸는 교회가 되기를 원하심을 믿습니다. 우리 모든 성도들의 가정들이 평생을 나누고 베풀며 사는 가정이 되기를 바랍니다.

넷째로, 온전히 성장해야 할 이유는 분명합니다.

성장하여야 할 이유는 분명합니다. 교회가 성장하여야 하고 성도가 복을 받아야 할 이유는 분명합니다. 왜 그러한 삶을 살아야 합니까? 베드로는 그 이유를 명확하게 말하고 있습니다.

9절에서 베드로는 하나님께서 우리가 성장하기를 원하시는 것은 \"어두운 데서 기이한 빛으로 인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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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신 자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려고\"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함입니다. 우리를 건지신 하나님의 이름이 드러나게 하기 위함입니다. 시편 92편에서 의인의 삶에 복을 주시는 이유는 하나님의 정직하심을 나타내기 위함이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이 거짓이 없으신 분이심을 드러내는 것이 믿음의 사람의 사명입니다. 즉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면 하나님께서 복을 주신다는 말이 거짓이 아님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이사야 43장에 보면 하나님은 우리를 당신의 영광을 위하여 창조하셨다고 하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