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적 성장을 위하여

영적 성장을 위하여/시107:4-9,벧전2:1-5

영적 성장을 위하여/시107:4-9,벧전2:1-5
2001-11-08 09:56:52 read : 106

오늘 우리에게 주신 말씀은 우리의 신앙자세와 영적
성장의 비결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신앙생활에는 분명한 자세가 있어야 합니다. 자세가
분명치 못하면, 신앙생활을 제대로 할 수가 없습니다. 운동선수가 되고자 하는 사람은
제일 먼저 기본자세부터 잘 익혀야 빨리 성장할 수 있습니다. 집을 짓고자 하는 사람은
기초공사를 튼튼히 해야 견고한 집을 지을 수 있습니다. 신앙도 근본 자세가 분명해야
견고하며 흔들리지 않는 신앙이 되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신앙생활의 바른
자세를 가지고 영적 성장을 이루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첫번째 나타나는 말씀은 \'버리라\'는 말씀입니다.




신앙을 위한 첫번째 자세는 버리는 것입니다. \"모든
악독과 모든 궤휼과 외식과 시기와 모든 비방하는 말을 버리라\"고 말씀 하였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버려야 할것을 버리는 자세, 그것이 믿음의 자세 입니다. 비우지 않고
담으려는 사람은 미련한 사람입니다. 놀러 다니면서 훌륭한 학자가 되려는 사람은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사람이 어떤 일을 이루기 위해서는 그 일 밖의 것은 버릴 줄
아는 결단이 필요합니다.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좇는 옛 사람을 벗어 버리고



오직 심령으로 새롭게 되어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



에베소서 4:22-24




레위기 11장에는 이스라엘 백성이 먹을 짐승과 못먹을
짐승을 구별하는 말씀이 나옵니다. 거기에는 굽이 갈라지고 되색임질 하는 짐승의
고기를 먹으라 하였습니다. 왜 그러셨을까요?



굽이 갈라짐은 성별됨을 뜻하는 것입니다. 취할 것과
버릴 것, 해야 할일과 말아야 할일, 가야 할 길과 가지 말아야 할 길이 서로 다른
것을 뜻하는 것입니다. 거룩한 백성과 세상이 구별됨을 뜻하는 것입니다. 성도의
삶은 두리뭉수리의 삶이 아니라 구별된 삶, 성별된 삶이어야 하는 것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특별히 새김질 하는 짐승을 구별하여 먹으라는 말씀은 깊은 뜻이 담겨
있습니다. 새김질하는 짐승의 대표는 소입니다. 소는 단순히 새김질만이 아니라 되새김질을
하는 짐승입니다. 소는 맹수들의 표적이 되는 순한 짐승입니다. 그래서 맹수를 피해서
초원에서 급히 풀을 뜯어야 합니다. 이것 저것 골라 먹을 새가 없습니다. 일일이
다 씹어서 소화시키면서 먹을 새가 없습니다. 무조건 먹어 삼킵니다. 그리고는 조용하고
안전한 곳에 돌아와서는 다시 꺼내 되씹으며 소화시켜 위로 내려보내는 것입니다.
그것이 되새김질입니다.



이것이 신앙생활과 무슨 관계가 있을까요? 믿음도
되새김질이 있어야 합니다. 성도들이 세상을 살다보면 이것 저것 가릴새가 없이 휩쓸려
살게 되는 것이 사실입니다. 불신자들과도 어울리고, 오만한 자리에 앉을 때도 있고,
죄인의 길을 갈때도 있습니다. 나태하여 주의 말씀을 잊고 살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반드시 돌아와 하나님과 마주 앉은 시간, 되새김질의 시간이 있어야 합니다.



\"주님, 허둥지둥 살아 왔습니다.



허물많은 저를 용서하옵소서.



돌이켜 보니 이것이 잘못되었습니다.



저의 삶의 초장에서 못먹을 것, 먹어서는 안되는
것



이런 것들, 저런 것들을 먹었군요.



주님, 이제 이것은 버립니다.



주님, 저것은 더 깊이 생각하겠습니다.



주님, 이 일은 꼭 이루겠습니다. \"



이것이 영혼의 되새김질입니다. 믿음은 이러한 되새김질을
통하여 자신을 돌아보며 새롭게 하고, 버릴 것을 버리고, 취할 것을 취하는 굽 갈라진
믿음이 되는 것입니다.




두번째, 갓난 아이 같이 되라고 하십니다.



\"갓난 아이들 같이 ...\"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모두 갓난 아이 같은 존재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지식을 자랑할 때, 이미 신앙이 아닙니다. 하나님 앞에서 권세를 내세울
때, 이미 하나님의 뜻을 떠난 것입니다. 신앙 생활의 근본 자세는 갓난 아이 같은
겸손과 순종입니다.



신앙생활은 강요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스스로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는 생활이 신앙 생활 입니다. 그러므로 겸손이 없이는 신앙생활이
되지 않습니다.



사울은 키가 구척이면서도 소년 같은 수줍음과 겸손을
가졌을 때, 가장 높이셔서 왕이 되게 하셨습니다. 솔로몬은 그가 왕이 되었을 때,
일천번제를 드리면서 기도하기를 \"종은 작은 아이라 출입을 알지 못합니다.\"(왕상3:7)
하였을 때, 그를 크게 축복 하셨습니다.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하실만큼 쓴 잔--십자가였지만 \"내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순종하셨을때 하나님은 주님을 높이셔서 부활의 주가 되게 하셨습니다.



믿음에는 자존심이 없습니다. 믿음에는 체면이 없습니다.
믿음에는 오직 겸손과 순종이 있을 뿐 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갓난아이 같은 겸손과
순종을 가질 때 우리는 그때야 참 믿음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갓난아이 같이 겸손하기 바랍니다. 갓낫아이 같은
순종의 믿음이 되시기 바랍니다. 이것이 여러분의 영혼은 충만하게 하고, 성장하게
할 것입니다.



세번째는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 이는 이로
말미암아 너희로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게 함이라.\"



신앙의 근본 자세는 사모하는 자세 입니다. 한 없이
기다리고 간구하는 자세로 주님을 바라보는 것이 사모하는 자세입니다. 사모하는
것은 목마른 사람이 물을 찾는 마음입니다. 배고픈 사람이 먹을 것을 기다리는 마음입니다.





하늘에 계신 주여,



내가 눈을 들어 주께 향하나이다.



종의 눈이 그 상전의 손을, 여종의 눈이 그 주모의
손을 바람같이



우리 눈이 여호와 우리 하나님을 바라며



우리를 긍훌히 여기시기를 기다리나이다.



시편123:1-2




저희가 광야 사막 길에서 방황하며 거할 성을 찾지
못하고



주리고 목마름으로 그 영혼이 속에서 피곤하였도다.




이에 저희가 그 근심 중에 여호와께 부르짖으매



그 고통에서 건지시고 또 마른 길로 인도하사



거할 성에 이르게 하셨도다.



여호와의 인자하심과 인생에게 행하신 기이한 일을
인하여



그를 찬송할지로다.



저가 사모하는 영혼을 만족케 하시며



주린 영혼에게 좋은 것으로 채워주심이로다.



시편 107:4-9




어떻게 내 영혼의 만족을 얻을까? 어?게 하면 하나님의
말씀을 깨달을까? 어떻게 하면 온전한 믿음의 사람이 될까? 어떻게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까? 어떻게 내 인생을 값진 삶으로 하나님께 드릴까? 이것이 사모하는 영혼의 모습입니다.





루빈스타인이라는 유명한 피아니스트가 이런 말을
하였다고 합니다.



하루를 연습 안하면 내가 알고,



일주일을 연습 안하면 음악평론가가 알고,



한달을 연습 안하면 청중이 안다.



성도가 사모하는 마음으로 기도하는 일에 하루를
쉬면 하나님께서 나의 영혼의 갈증을 아십니다. 나태함으로 기도하기를 일주일을
쉬면 내 빈 영혼의 허함을 나 스스로가 알게 됩니다. 한달을 무관심 속에 보내면
나의 영혼의 갈증을 사람들이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도 계속해서 사모하는 믿음을
잃어버리면 믿음의 샘물이 막혀져서 결국은 무감각속에 빠지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사모하는 영혼이 되어 날마다 여러분의
영혼속에 맑은 샘물이 넘치게 하시기 바랍니다.



우리의 인생은 단 한번의 인생입니다. 그리고 쏜살
같이 지나가는 인생입니다. 이런 우리의 삶 속에서 여러분은 무엇을 이루기 원하십니까?
남들이 하는 것 모두를 다 따라 하다가는 아무것도 이루지 못할 것입니다. 무언가
이루고자 하는 사람은 그만큼 버릴 것을 버리고 찾을 것을 찾는 것입니다. 되면 좋고
안되도 할수 없다는 식의 태도로서는 아무것도 얻지 못할 것입니다. 구하고 찾고,
두드리며(마7:7) 사모하는 삶 만이 성공할 수 있습니다.



믿음의 사람인 성도 여러분, 믿음을 위하여 우리가
버릴 것을 용감하게 버립시다. 그리고 갓난 아이 같이 겸손하게 하나님의 말씀을
간절히 사모하는 믿음을 가집시다. 거기에 참 축복이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