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인의 영적성장/벧전2:1-3
오늘 본문은 우리 신앙의 성장에 관한 말씀을 담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은 정지된 삶이 아니라 계속 자라가야 합니다.
우리는 구원을 지나치게 협소하게 이해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구원을 천국 가는 것 정도로만 생각합니다.
그런데 성경은 구원을 우리 인생의 전과정과 변하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말씀을 종합해 보면 구원이 단순히 천국행 티켓을 끊는 정도가 아니라 우리는 예수를 우리의 구세주로 믿는 순간 삶의 전과정에서 거듭나게 됩니다.
그런데 거듭남은 우리 삶의 궁극적인 목표가 아니라 출발점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그 때부터 시작해서 주님의 장성한 분량까지 자라가는 것을 구원받은 성도의 삶의 목표라는 것입니다.
어린아이를 예로 들어서 생각해 보십시다. 어린아이가 태어납니다. 태어나는 것이 중요합니까? 성장하는 것이 중요합니까? 태어났으면 성장해야 합니다.
우리의 마음속에 예수님을 믿었으므로 일단 천국행 티켓은 얻어 놓았으며 이제는 성장을 갈망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의 성장을 포함하여 그 모든 과정을 구원이라고 설명합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목표는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는 것이 되어야 합니다. 그것이 주님께서 계획하신 온전한 구원이기 때문입니다.
1장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이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과 구원을 이루어지게 하셨다는 것을 알고 있는 확고한 믿음을 소유한 성도는 이제 세상에서 분명한 원칙과 방향을 갖고 살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1절에 \"그러므로\" 란 접속사는 바로 이런 은혜를 깨달아 안 성도는 이제 새로운 신앙 생활로 들어 갈 때에 버려야 할 것과 추구해야할 사항이 있습을 이야기 하고 있는 것입니다.
진리 안에서 거듭난 자들은 이제 주님 안에서 성숙한 자로 자라나야 한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믿음의 사람들이 자라기를 원하십니다.
아기가 태어나서 자라나지 않는 다면 얼마나 부모님이 걱정이 될까요. 우리 신앙 생활에 있어서도 영적으로 자라나야 합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도 우리도 어린아이처럼 신령한 젓을 먹고 자라야 한다고 권면의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아이들이 밥을 먹지 않는 이유는 몇가지 있습니다. 첫째는 아이의 몸이 정상적이지 못할 때 다시 말씀드리면 병들었을 때 아이는 잘 먹지 못합니다. 이러한 현상은 아이들 뿐 아니라 성인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건강을 잃었을 때 제일먼저 찾아오는 현상이 식욕을 잃어버린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맛있는 반찬이 있어도 거들떠 보기도 싫어집니다.
둘째로 아이가 밥을 먹지 않는 이유는 군것질을 많이 하면 아이는 밥을 먹지 않습니다. 하루 종일 이것 저것 다른 것으로 배를 잔뜩 채우고 나면 더 이상 밥 생각이 없습니다.
세번째는 늘 집에만 있어서 활동하지 않는 아이들을 보면 밥을 먹는데도 매우 까다롭습니다. 조금만 자기 입에 맞지 않으면 밥을 먹으려 하지 않습니다. 반찬 투정하기가 일쑤입니다.
이러한 사실은 우리의 영적인 생활에도 그대로 적용이 되어집니다. 첫 번째 아이가 병이들었을 때 식욕을 잃어버리듯이 우리의 신앙생활도 병이 들었을 경우 우리의 신앙의 건강을 유지하게 하는 말씀에 대한 식욕을 상실하게 됩니다. 여러분! 여러분은 말씀을 정말 사모하고 계십니까?
얼마나 오랫동안 신앙생활을 했는지 그것을 가지고 \"내 자신이 건강한 믿음의 소유자\"라고 착각할 때가 있습니다. 오랫동안 신앙생활을 해도 병든 사람들은 얼마든지 있습니다.
만약 내가 말씀에 대한 사모함이 없다면 그것은 신앙의 병이 깊어있다는 증거입니다. 교회에는 다니지만 말씀에 대한 갈급함이 없다면 그것은 분명 병들었다는 뜻입니다.
두 번째 정상적인 식사 대신에 군것질을 할 때 식욕을 잃게되는 것도 우리의 영적인 신앙생활에 그대로 적용됩니다.
베드로 사도는 정상적인 식사가 아닌 군것질을 어떻게 표현을 했는가 하면 오늘 본문 1절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모든 악독과 모든 궤휼과 외식과 시기와 모든 비방하는 말\"이라고 했습니다.
우리의 영혼이 악독과 궤휼과 외식과 시기와 남을 비방하는 말로 가득채우면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 마음에 자리 잡을 수가 없습니다.
\'악독\'이란 무엇입니까? 잘못된 마음으로 자신의 욕구를 채우기 위해 남을 해치는 악한 성품을 말합니다. 첫 번째로 나오는 \'악독\'은 다섯 가지 목록 중 하나라기보다 다음에 나올 네 가지 죄를 포괄하여 소개하는 말입니다 \'궤휼\'은 무엇입니까?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남에게 거짓말을 하는 것입니다. \'궤휼\'이란 한 마디로 속임수입니다. 오늘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은 한 마디로 속임수가 판을 치는 세상입니다. 얼마나 속임수가 많고 가짜가 많은지 너도나도 물건에 \'참\', \'순\', \'진짜\' 등의 수식어를 붙입니다, \'순 진짜 참기름.\'과 같은 것이 좋은 예입니다. 또 요즘에는 너도나도 \'원조\'라는 말을 씁니다. \'원조 족발집\' 등을 비롯해서 너도나도 자신들이 원조라고 주장합니다. 지식인 사회에서는 남의 논문이나 연구실적을 베끼는 일이 종종 일어납니다. 학력을 속입니다. 돈을 주고 학위를 사는 일도 있습니다. 학생들은 시험을 치를 때 커닝을 합니다. 대학에 가면 대체로 책상이 상당히 지저분합니다. 벽에도 낙서, 책상에도 낙서, 온통 시험을 위한 낙서로 가득합니다. 정치인들은 선거에서 이기기 위해 온갖 속임수를 씁니다. 사람들은 식료품에 농약이나 여러 해로운 물질을 뿌려서 보기 좋게 만들어 팝니다. 내막을 알고 보면 마음놓고 먹을 것이 없을 정도로 사회전체가 온통 속임수로 난무합니다 \'외식\'은 무엇입니까? 본래 \'외식\'이란 말은 \'마스크\'에서 유래된 말입니다. 연극 배우들이 가면을 쓰고 연극을 하는 것을 말합니다. 여러분! 우리는 얼마나 자주 가면을 쓰고 살지 않습니까? 예수님 당시에도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은 외식하는 자들로서 우리 주님께 책망을 받았습니다. 우리 가운데 있는 \'외식\'을 버리지 않는 한 우리는 건강하게 자랄 수가 없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살아 계시고 늘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것을 믿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외식하는 순간 우리는 하나님의 무시하는 것입니다. 눈에 보이는 사람만을 의식할 뿐 하나님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살아 계시고 늘 나와 함께 하신다\'고 입술로는 고백하지만 실제 내 삶에서는 그렇게 인정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래서 외식은 불신앙입니다. 만약 우리가 예배드릴 때에는 거룩한 모습을 하고 집에 가서는 마음대로 행동한다면 우리는 하나님을 무시하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외식은 불신앙입니다.
\'시기\'란 무엇입니까? 남이 잘되는 것을 그냥 못 봐주는 성품입니다. 우리 주위의 사람이 성공하면 꼭 그 성공에 대해 걸고 넘어지는 경향이 있습니다. \"알고 봤더니 그 사람 과거에 이런 사람이었더라\"하면서 좋지 못한 소문을 퍼트린다든지, 상대방을 헐뜯는 경우가 있습니다.
\'비방하는 말\'도 버리라고 합니다. 여기서 비방하는 말이란 수군 수군 하는 것을 뜻합니다. 앞에서 정정당당하게 얘기하지 못하고 항상 뒤돌아 서서 쑥덕 쑥덕하는 것은 결코 올바른 태도가 아닙니다.
비방이 무엇입니까? 다른 사람을 깎아 내릴 목적으로 뒤에서 욕하는 것입니다. 비방과 비판을 어떻게 구별할 수 있습니까? 그 사람이 있는 곳에서 하는 것은 비판이 될 수 있지만 없는 곳에서 하면 비방이 됩니다. 상대방이 없는 곳에서 그 사람에 대한 험담을 늘어놓지 마십시오.
건설적인 비판을 하려면 그를 향해 진심으로 사랑하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누군가에게 사랑어린 충고를 하려면 일주일 정도 기도합니다. 진심으로 사랑하기 때문에 충고하고 싶으면 일주일만 작정기도 하십시오.
진심으로 사랑하는 마음으로 일주일동안 기도하고 사랑어린 비판을 하는 사람과 순간적인 충동으로 비난하는 사람과는 말하는 태도부터 다릅니다. 근거없는 일로 남을 비방하지 마십시오. 근거가 있어도 비방하는 말은 삼가십시오. 그것은 우리의 신앙이 자라는 것을 방해하는 것입니다.
2.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 (2장 2절) 갓난아이들같이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 이는 이로 말미암아 너희로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게 하려 함이라.
악한 것을 버려야 순전하고 신령한 것을 사모하게 됩니다. 군것질을 하게 하고 밥을 주면 먹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먼저 군것질을 끊어야 식욕을 찾고 밥을 먹게 됩니다.
영적인 성장도 마찬가지입니다. 죄악을 끊지 못하면 말씀에 대한 욕구가 없어집니다. 이미 악독을 먹어서 쓸모없는 것으로 배부르기 때문입니다.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는 것이 무슨 말입니까? 육신적인 갈망에 비유하여 영적인 것을 갈망하라는 것입니다. 순전하고 신령한 젖,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해야 합니다. 우리가 말씀으로 새로운 생명을 얻었으므로 우리가 갈망해야 하는 것은 영적인 것이 되어야 합니다.
본문 2절은 \'순전하고 신령한 젖\'이라는 말을 사용합니다. \'순전하다\'는 말은 아무 것도 첨가되지 않은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1절에 있는 \'악독\'을 헬라어로는 \'dolos\'라고 하는데, 여기에 있는 \'순전한\'이라는 말은 그 말에 부정어를 뜻하는 a를 붙여서 \'adolos\'라고 합니다. 그래서 악독의 반대가 순전입니다.
베드로 사도는 하나님의 말씀을 순전하고 영적인 젖이라고 표현합니다.
하나님과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십시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은 과연 그렇게 하나님의 말씀을 갈망하고 있습니까? 사슴이 숨을 헐떡이면서 시냇물을 찾듯이 하나님의 말씀을 갈망하고 있습니까? 우리는 과연 어떻게 하면 그렇게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고 갈망할 수 있습니까?
3절은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너희가 주의 인자하심을 맛보았으면 그리하라.
식당에 가서 음식을 먹었는데 너무 맛있었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합니까? 다음 번에 귀한 손님을 모시고 다시 갑니다. 혹은 사랑하는 가족들을 데리고 찾아갑니다. 왜 그 곳에 다시 갑니까? 전에 맛보았기 때문입니다. 그 맛을 알기 때문에 다시 찾아가는 것입니다.
우리는 종종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자비로움을 경험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종종 우리에게 그분의 맛을 보여주십니다.
우리는 주님을 자주 배반하고 그 분의 마음을 아프게 했음에도 불구하고 그 분은 자신의 자비로움과 인자하심을 내게 베풀어주십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의 인생을 가만히 돌이켜 보십시오. 하나님은 참으로 자비롭고 인자하신 분이 아니었습니까? 그렇다면 왜 그 분과 그 분의 말씀을 사모하지 않습니까?
성도들이 영적으로 자랄수 있는 방법은 한가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말씀이 아니고서는 절대로 자랄 수가 없습니다. 우리가 날마다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묵상하고, 또 그 말씀을 연구하는 일 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신앙생활을 아무리 오래해도 말씀이 없으면 항상 제자리입니다. 그러나 신앙의 연륜은 짧을찌라도 말씀으로 훈련되어지고, 말씀으로 양육받고, 그 말씀을 늘 가까이 대하기를 원하는 사람은 그 믿음도 쑥 쑥 자라게 됩니다. 아무리 신앙의 연륜이 오래되어도 말씀으로 훈련되지 않으면 신앙의 성장을 이룰 수가 없습니다. 말씀만이 우리를 자라게 합니다. 그래서 베드로 사도가 힘을 주어 우리들에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영적으로 성장할 수 있는 비결은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는 것입니다. 그 말씀의 달콤함을 알 때 신앙이 성장합니다. 오직 하나님의 말씀만이 우리를 자라게 합니다. 우리를 건강하게 합니다. 그러므로 더욱 말씀을 사모하고, 그 말씀을 간절히 붙드는 여러분이 되기실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