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속 성숙하며 성장하는 신앙인

계속 성숙하며 성장하는 신앙인./벧전2:1-2

계속 성숙하며 성장하는 신앙인./벧전2:1-2


프랑스의 루이 14세(Louis XIV, 1638, 9, 5~1715, 9, 1) 때의 이야기입니다. 72년간 재위하면서 프랑스를 정치, 군사, 문화면에서 전성기로 이끈 왕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가 한 말 중 짐이 곧 국가니라. 라는 말이 역사에 회자합니다.
왕은 신앙이 그렇게 좋지는 않았지만 주일이면 가족들과 왕족들을 거느리고 어김없이 프넬론 대주교가 시무하는 교회에 출석하였습니다.

항상 교회는 빈자리가 없을 정도로 만원이었는데 하루는 대주교가 교인들이 진정 믿음으로 교회에 나오는가를 시험해 볼 생각을 가졌습니다.
그리하여 대주교는 먼저 왕이 나간 다음에 조용히 다음 주일에는 왕이 못 나오십니다. 라고 광고를 하였습니다. 교인들이 정말 예수님을 믿어서 교회에 나오는지 왕에게 잘 보이러 나오는지 알아보고자 했던 것입니다.

다음 주일에 왕과 왕족들이 교회에 왔는데 교인들이 하나도 없고 대주교만 있었습니다. 왕이 놀라서 사람들이 모두 어디에 갔느냐고 물었습니다.
대주교는 아무래도 교인들이 예배하러 오는 것이 아니라 폐하를 만나러 오는 것 같아서 제가 지난주일 조용히 다음 주일은 왕이 못 나오십니다. 라고 했더니 이렇게 되었다고 말했습니다.

성도 여러분! 신앙인은 믿음으로 교회에 나오고, 성숙하고, 성장해야지 사람을 보거나 건물의 환경 조건을 보든지 하면 실족하기가 알맞습니다.
여러분의 가정에 한 생명 즉 어린아이가 태어났다면 시간이 지나면서 서서히 자라날 것입니다만 만약 그 아이가 제대로 자라지 않는다면 이는 장애아 일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영으로 난 사람도 신앙 연륜이 깊어질수록 성장을 하면서 주님의 일에 열심히 충성을 하여야만 하나님 앞에서 인정받는 일꾼이 될 것입니다.
그런데 만일 일꾼이 되지 못하고 교회 안에서 좌충우돌하여 속께나 썩이는 문제의 인물이 된다면 이는 분명 신앙상의 결함으로 봐도 될 것 같습니다.
오늘의 말씀은 행여나 우리가 교회 안에서 나로 인해 일어날 수 있는 문제들을 사전에 점검하여 고침으로 교회에 유익이 되고 자신에게도 복이 되는 일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1. 신앙이 성장하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01 그러므로 모든 악독과 모든 궤휼과 외식과 시기와 모든 비방하는 말을 버리고.

①영으로 태어난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자기 속에 하나님의 생명이 있다면 신앙은 성장하게 되어 있습니다만 그러나 영의 생명이 없다면 자라날 수가 없는 것은 지극히 당연합니다. 생명이 없는데 어떻게 자라난다는 말입니까?
혹 여러분, 교회를 여러 해 다녔음에도 영적인 성장이 없다면 아마 그 안에 생명이 없기 때문일는지도 모릅니다. 신앙의 성장은 예수님을 나의 구주로 영접함으로서 시작된다는 사실 아시죠?
즉 내 속에 주님이 거하심으로 인하여 신앙의 성장과 성숙이 동시에 이루어져 가는 겁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가 전도를 하잖습니까?가끔은 전도 대상자가 이런 말을 해요. 목사님! 저도 한때는 열심히 믿었습니다. 세례도 받고 학생회 간부도 했고, 찬양대도 심지어 교사도 집사도 했고요 라고. 그럴 땐 제가 꼭 물어봅니다.
그러면 얼마나 믿었나요. 글쎄요. 한 삼 년 믿었나? 그런데 지난 몇 년 간은 바빠서 한 번도 교회에 못 나갔어요. 그들이 열심히 믿었다고 하는 것은 예배당에 나오면서 여러 가지 활동을 좀 했다는 의미에요. 예배당에 나와서 활동을 했다는 것과 거듭난 것하고는 전혀 다르지 않습니까?

오늘 이 말씀을 듣는 분들 가운데 자신에게 영원한 생명이 있음을 확신하지 못하는 분이 계신다면 하나님 앞에 부르짖으십시오.하나님 아버지! 나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시옵소서. 내 맘 속에 찾아오시옵소서. 라고.
이 고백을 하는 순간부터 나에게 영원한 생명이 시작되며 그 생명이 마침내 자라게 될 것입니다.

②태어나긴 태어났는데 어딘가 병이 들어 있기 때문입니다.

속에 어떤 질병을 가진 아이는 발육이 잘되지 못한다는 사실을 아시지요. 여러분의 심령도 어딘가에 잘못 된 오랜 영적 질병이 있다면 먼저 그것을 우선으로 해결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서는 신앙의 성장을 기대한다면 큰 오산입니다. 남을 많이 비판하는 사람들이 간혹 있지만 남을 비방해 보면 나중에는 내가 기분이 나빠 오는 것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오랜 세월 동안 그렇게 비방하는 생활을 해 왔기 때문에 전문가가 되어 있어서 이 습관이 잘 없어지지 않습니다.
안하려고 하는데 또 나오고 남이 조금 잘되는 것만 봐도 질투가 나오고 그래서 시기, 질투, 분노, 악독 그런 것들이 우리 속에 있어서 신앙 성장을 강하게 방해합니다.
그런 것들은 뽑아내기 위한 결판을 내어야지요. 산에 가든지, 금식을 하든지, 어느 곳에 가든지 하여튼 결판을 내어야 합니다.
주님! 제가 이것 때문에 그동안 신앙이 자라지 못했는데 이제 이 쓴 뿌리 요소를 제거해 주시고 어른답게 살게 해 주시옵소서, 어떤 일이 있어도 요동하지 않고 주님을 섬기며 이웃을 섬기는 일꾼으로 만들어 주시옵소서. 하고 결판을 내야 합니다.

여러분의 심령을 어둡게 하고 영혼의 목을 조르는 어떤 문제가 있으면 신앙은 성장하지 않습니다. 그것이 무엇인지 기도하는 가운데 판단하십시오.
나의 영적 성장을 방해하는 문제가 있으면 그 문제를 심각하게 여겨 제거해야만 되겠죠? 제가 지금 말씀드리는 것은 여러분의 신앙 성장의 차원이지 구원의 차원은 아닙니다.
즉 그런 방해물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구원받지 못했다는 이야기가 아니라 그러한 요인들 때문에 신앙이 성장하지 못하고 있으므로 그 문제들을 심각하게 생각하고 하나님 앞에서 해결하여 멀리 던져 버리라는 뜻입니다.

③신앙성장의 다양한 과정을 골고루 계발(啓發)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은 공부를 많이 해서 지성(知性)만을 발달시켜 놓았기 때문에 정적(情的)인 면이 제대로 계발되지 않아서 사람이 차가워 보입니다.
신학만 오래 해서 박사가 된 사람들은 뜨겁게 예수님을 믿으려고 하는 사람들을 싫어하는 경향이 있어요. 뭘 그렇게 열정적으로 하는가? 라고 말입니다.

또 어떤 사람은 가슴만 뜨거운 사람이 있습니다. 팔팔 끓어서 뒹구는데 말씀을 배워서 신령한 지식을 겸비하지 못했기 때문에 종종 엉뚱한 모습이 나타납니다.
그래서 기도만 많이 해도 이것이 병이 될 수 있으며 성경만 많이 알아도 역시 병이 될 수 있습니다. 한쪽만 크면 기형(奇形)이 되는 법입니다. 그러므로 머리만 커도 안 되고 가슴만 뜨거워도 안 되며 모든 면에서 골고루 자라야 합니다.

또 어떤 사람은 봉사만 열심히 합니다. 그저 열심히 뛰기만 하는 것이지요. 뭐든지 손발 가고 몸 가는 데는 다 앞장을 섭니다만 정작 가슴은 발달되어 있지 않습니다.
마르다처럼 열심히 일만 하였지 정작 말씀 듣는 일에는 등한하다 보니(눅 10:38~42) 교육 프로그램에는 스스로 위축되어 공동체 생활에서 처지게 됩니다.

예수님도 키가 자라고 지혜가 자라고 사람들 앞에서 총애를 받고 하나님 앞에서 사랑스러워졌다고 성경은 말합니다(눅 02:40). 예수님도 골고루 성장하셨듯이 개인도 골고루 성장해야 하며 교회도 골고루 성장하여 구제, 선교, 예배, 교육, 친교, 봉사 등에 힘을 투입하여야 합니다.
신앙의 성장도 마찬가지죠. 기도도 많이 하고, 성경도 많이 읽고, 찬양도 뜨겁게 하고, 전도도 많이 해서 골고루 균형 잡히게 발달하는 것이 좋습니다.



2. 균형 잡힌 신앙 성장은 말씀을 취하는 것입니다.



02 갓난아이들같이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 이는 이로 말미암아 너희로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게 하려 함이라.

김해삼일교회 성도 여러분! 갓난아이들이 젓을 사모하는 건 당연한 것 아닙니까? 본능적으로 젓을 찾게 되어있습니다. 이처럼 신앙인도 하나님의 말씀을 갓난아이들처럼 사모하여 내게서 조금도 떠나지 않게 하라는 의미입니다.
여기서 신령한 젖을 먹어라 하지 않고 사모하라 하신 말씀에 주목을 해 보십시오.
사모하라는 말씀은 심령으로 사모하고, 심령으로 그 진리를 대하고, 심령으로 믿으라는 것입니다. 갓난아이가 어머니의 젖을 사모하듯이, 목마른 사슴이 시냇물을 사모하듯이, 늘 마음으로 생각하고 바라고 믿을 때 성숙 된 성도가 될 수 있습니다.

성도는 언제나 말씀을 사모하면서 살아야지 말씀을 제쳐놓고 귀만 즐겁게 하는 사람의 글이나 말을 듣는 일에 매력을 느끼면 그때는 제대로 신앙이 제대로 여물지를 못합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우리의 식생활로 비교하자면 후식에 속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계속 후식만 먹는다면 그 순간에는 아주 맛있게 느껴질 수 있겠지만 영적인 건강을 유지하는 데는 아무래도 좀 어렵지 않겠습니까?
또한 주일날 목사님의 설교 한 번만 먹고서는 영의 양식으로서는 아무래도 부족합니다. 한 끼만 먹고 어떻게 일주일을 잘 살 수 있습니까?
기도할 때 어떤 분들은 하나님! 우리가 오늘 받은 영의 양식으로 한 주일 동안 잘 살게 하여 주시옵소서 라고 하는데 이것은 아무래도 불안정한 기도처럼 들립니다. 한 끼 먹고 일주일을 건강하게 살겠다고 하니 이게 말이나 됩니까? 매일 매일 먹어야지요.

오늘 말씀을 통해서 은혜를 받았을 때 하나님! 오늘도 이 말씀으로 은혜 주셔서 내 영혼을 풍성케 하시니 감사드립니다. 하면 그것은 오늘 이야기이고 그 은혜가 내일 모레 계속 영의 양식이 될 수는 없는 법입니다.
간혹 성도들 중에 설교가 길다 짧다. 내용이 있다 없다. 재미가 있다 없다 하면서 밥투정하듯 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사실 반찬 투정하는 아이들 치고 건강한 아이 없듯이 말씀을 잘 먹지 않고 투정을 부리는 사람 치고 건강한 신앙을 소유한 사람이 별로 없습니다.
영적으로 병들고 문제 있는 사람들이 주로 그런 행동을 취하는 거란 말입니다. 병든 사람은 음식을 주어도 맛이 없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내 입맛이 없기 때문인데 그런 사람은 제 아무리 맛있는 것을 갖다 주어도 맛을 모르고 그저 짜다, 싱겁다, 되다 하면서 말이 많은 것입니다.
이런 불평적 요소들은 옛 사람에게 속한 것으로서 거듭난 성도의 영적 성숙과 성장에는 전혀 도움이 되지 못하는 쓴 뿌리의 요소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해야 할 당위성을 심어주기 위해 영아(嬰兒)때부터 동판으로 성경의 모형을 만들어 거기에 꿀을 묻혀 놓고 혀로 핥게 합니다.
그러면서 알게 모르게 하나님의 말씀은 꿀과 같다는 인식이 들게 하는데 이렇게 하나님의 말씀을 꿀과 같이 소중하게 여겼습니다. 그 결과 이스라엘 민족은 영적으로 정신적으로 육적으로 강건하여 세계 각처에서 머리가 되어 항상 상위를 달리는 것을 역사가 증명하고 있습니다.

시 119:103 주의 말씀의 맛이 내게 어찌 그리 단 지요 내 입에 꿀보다 더하나이다.


3. 균형 잡힌 신앙을 뒷받침하는 삼요소가 있습니다.


①기도를 생활화 하십시오.

나는 죽지 않으려고 숨을 쉰다(키엘케골)는 말 잊잖습니까? 우리 성도는 영혼이 살고 신앙이 성장하기 위해서 기도를 쉬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는 기도를 호흡에 잘 비유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호흡을 몰아서 하면 어떻게 됩니까?
자칫 생명 떠나기 쉬워요. 기도도 마찬가지입니다. 평상시 안하다가 특별한 문제가 있을 때만 하려고 하면 잘되지를 않고 무척 힘이 들지 않습니까? 그래서 쉬지 말고 기도하라는 말씀은(살전 05:17) 기도를 아예 생활화하라는 말입니다.

②예배를 생활화 하십시오,

신앙인은 예배를 생명처럼 여겨야 합니다. 예배드리는 일에 소홀하며, 어떤 이유로든지 예배에 잘 빠진다면 신앙은 벌써 그만큼 퇴보하는 것 아닐까요? 그러므로 모든 예배에 참석하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가정예배, 구역예배, 주일낮예배, 오후예배, 수요예배 구역예배 등 우리교회 성도는 예배드림을 즐거워하는 신앙인이 되어야 합니다. 예배드리기를 기뻐하는 사람치고 믿음이 성장 안하는 사람 없어요. 각종 예배에 참여하면 은혜 받고 또 축복 기도까지 받으니 얼마나 좋습니까?
하나님은 예배드리는 사람을 원하시고 기뻐하시며 찾으시는데 그래서 내가 예배에 빠지면 하나님은 먼저 나를 찾으시고 다음 누구누구는 어디 갔는가 하고 찾으십니다.

요 04:23 아버지께 참으로 예배하는 자들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자기에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③신앙인과 친교하며 섬기는 일을 생활화 하십시오.

예수님을 영접하고 나서 믿는 사람들 속에 푹 들어가지 않으면 신앙이 잘 자라지를 않으며 또한 교회에서 자기가 소속될 부서에 들어가지 않으면 성장은 멈추고 말 수 있습니다.
어딘가에 속해서 소속감을 가지고 그 분위기 속에 들어가는 것이 좋으며 어느 그룹이든지 간에 믿는 사람들을 자주 만나는 것은 더욱 중요합니다.
성경을 통해서 기도를 통해서 예배를 통해서 친교와 섬김을 통해서 여러분의 신앙이 계속 성장과 성숙을 이루어 나가는 것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성숙하게 해 주셨다면 그 이유는 아직 성숙하지 못한 사람들을 돌보고 그들을 도우는 도우미가 되게 하기 위함인 줄 인식하시기 바랍니다.


결론으로 성숙한 신앙인은 섬기는 생활을 합니다.


①내가 가진 재능으로 다른 사람을 섬깁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좋은 재능들을 주신 이유는 그것을 다른 사람과 공유하면서 살기 위함이며 남을 섬기는데 자신의 재능을 쏟아 부을 때 우리는 건강하고 기쁘고 행복해집니다.

②나의 시간으로 다른 사람을 섬깁니다.

여러분, 시간의 십분의 일을 하나님을 위해서 남을 위해서 써는 것 어떻습니까? 24시간 전부를 나만 위해서 쓴다면 되겠습니까?

③나의 재물로 다른 사람을 섬깁니다.

하나님 앞에 헌금생활도 해야 하지만 필요할 때 다른 사람을 위해 사용할 줄도 알아야 합니다. 버는 것이 중요합니다만 버는 것보다 제대로 쓸 줄 아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하나님께서 능력 주시는 대로 많이 벌어서 주님과 그 나라를 위해서 쓸 줄 알아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