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장하는 교회상

성장하는 교회상!/벧전2:1-6

성장하는 교회상!/벧전2:1-6


서울에 있는 어느 교회에서 목사님과 당회원간에 갈등이 심화되어 교회가 갈라지게 되었습니다. 목사님을 지지하는 파가 생기고 장로님을 지지하는 파가 생겼습니다. 처음에는 그렇게 한 교회에서 은혜 받아 가족처럼 신앙생활 하는 것이 너무 즐겁고 재미가 있었습니다. 주일날 교회 오는 것이 감격스러웠고, 성도끼리 만나는 것은 더욱 그리워졌습니다. 물론 목사님의 말씀은 은혜로웠고, 교회와 목사님의 목회를 따라 섬기며 온 교회가 은혜롭게 지내왔습니다. 그런 가운데 이런 불씨가 나타난 것은 당회에서부터였습니다.

어느 날 당회에서 모든 안건을 끝내고 마치려 하는데, 느닷없이 장로님 한 분이 손을 들더니 목사님을 불렀습니다. 모두가 우리가 생각하지 못한 교회 성장과 목사님의 목회에 힘이 되는 좋은 안건이 있는가 싶어서 그의 입에서 나오는 말을 기다렸습니다. 그가 하는 말은 이랬습니다.

“목사님! 목사님께서 우리교회 오신지가 벌써 3년이 넘었습니다. 여기 다른 장로님은 모르지만 우리교회 오실 때 목사님 저에게 약속하신 말씀 기억 하십니까?”
목사님은 잘 생각이 안 났습니다. “글쎄요. 잘 모르겠는데요.”
“목사님, 분명히 저에게 말씀 하시기를 교회 부임하여 3년 안에 성장을 못하면 책임지고 물러가겠다고 말씀 하셨는데 기억을 못하시는 모양입니다. 처음 설교하시고 가시면서 버스터미널에서 말씀 하셨잖아요. 아직 10년도 아니라 3년밖에 안되었는데 잊었단 말입니까?”
“아! 예. 기억납니다.”
“그러면 목사님이 우리교회 오시고 성장 했습니까? 나는 성장 안했다고 봅니다. 그러면 목사님께서 말에 책임을 져야 하지 않습니까?”
“그러면 제가 성장 못한 책임을 지고 물러나라는 것입니까?”
“예, 당연히 그래야 되는 것 아닙니까? 말에 책임을 못 지면서 강단에서 말씀을 전할 수 있습니까?”

그러자 다른 장로님 한 분이 벌떡 일어서서, “장로님, 목사님께서 우리교회 앞에서 선포한 것도 아니고 장로님과 개인적으로 한 말씀인데 왜 책임을 져야 합니까?” 그러자 선배 장로님께서 고함을 지르면서 “네가 장로 언제 되었다고 선임자 앞에서 나서는 거야.” “저도 교인들의 지지를 받고 임직 받은 같은 당회원입니다. 이 교회가 장로님 개인의 것입니까?” 이렇게 시작된 당회는 난장판이 되어졌습니다. 젊은 장로라도 가정에 가면 가장이요, 사회에 나가면 지도자인데 교회 와서 자신의 신앙에 안 맞으면서도 무조건 따라가겠습니까? 그러다 보니, “장로님이 나가시요. 목사님은 절대로 못 나가십니다.” 이래서 패가 갈라지게 되었습니다.

결국 노회로 문제가 올라갔고 전권위원회가 나왔으며 지지하는 사람 숫자 따라 재산을 분배하여 갈라지게 되었습니다. 지금 두 교회는 있는 교회는 그대로도 못되고, 나온 교회는 엄청난 성장을 하였습니다. 어느 쪽이 나오고 어느 쪽이 머물렀는지는 그리 중요하지 않습니다. 진정한 교회 성장이 무엇이냐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무엇이 교회를 성장 시키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눈에 보이는 성장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성장이냐 하는 것입니다. 자기 눈에 보이는 성장 잣대가 하나님이 주시는 진리의 잣대는 아니지 않는가 하는 것입니다. 자신이 성장하면 교회가 성장하고 자신이 성장 못하면 교회도 성장 못한다는 책임과 사명의식을 가져야 합니다.


주님이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 줄 아십니까? 하나님의 아들 자신이 이 땅에 오셔서 피 흘리시고 십자가에 달리신 이유가 무엇인 줄 아십니까? 진노의 자녀로서 지옥 가는 백성을 구속하여 천국으로 가게하기 위하여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그리고 이 땅을 떠나시면서 거룩한 교회를 세우시고 우리에게 맡기시면서 교회를 성장하도록 하셨습니다. 그러면 교회 성장은 바로 주님이 이 땅에 오신 목적을 이루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주님의 보배로운 피로 구속함을 받은 이유는 교회를 성장 시키라고 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공로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면 주님이 이 땅에 오신 목적에 동참해야 하고 교회를 세워 우리에게 맡기신 주님의 뜻을 이루어 주어야 합니다.

주님의 뜻을 이루어 드리려고 하면 인간의 힘이나 능력이나 노력으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이는 육을 위함이 아니라 영적인 일이기 때문에 영적인 힘이 먼저 있어야 하나님의 일을 할 수가 있는 줄로 믿습니다. 교회가 영적인 힘을 소유하면 육적인 성장은 따라오게 되는 것입니다. 교회가 영적으로 성장하면 수적인 성장이나 물질절인 성장은 자동으로 이루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교회가 더 많은 영혼을 구원시키는 수적인 성장이나 온 성도의 가정에 임하는 물질적인 축복은 먼저 교회가 영적으로 성장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알아야 될 것입니다. 따라서 성장하는 교회 상은 어떤 모델이 되어야 하겠습니까? 오늘 이 말씀을 들으면서 우리교회의 성장과 여러분의 가정에 임할 하나님의 놀라운 축복을 위하여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함을 말씀을 통하여 깨닫는 시간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본문 2절에 보면, “갓난아이들 같이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 이는 이로 말미암아 너희로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게 하려 함이라” 여기에서 갓난아이는 우리 성도를 가리킵니다. 갓난아이는 젖을 잘 먹어야 건강할 수가 있습니다. 젖을 잘 먹어야 잘 자랄 수가 있습니다. 갓난아이는 배가 고프면 젖을 달라고 보챕니다. 보채는 것은 먹기 위함이고 그것은 잘 자라기 위함입니다. 성도가 영적으로 잘 자라기 위해서는 보채야 하고, 주면 잘 먹어야 합니다.

자신이 잘 자라기 위해서는 사모해야 하고, 자신이 잘 자라면 교회는 성장되는 것입니다. 영적으로 건강한 자들이 모여야 교회가 힘이 있고, 힘이 있는 교회가 되어야 그 교회 안에 있는 성도는 육신의 건강과 물질의 풍요로움에 충만케 될 것입니다. 그러면 갓난아이가 사모하는 순전하고 신령한 젖은 무엇입니까? 이는 하나님의 말씀을 가리킵니다. 그러므로 성도가 영적으로 자라기 위하여서는 순전하고 신령한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루에 세끼의 식사를 합니다. 또 식사를 해야 우리의 몸이 지탱할 수 있고 또 일을 하고 육신도 건강 할 수가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영적으로 건강하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잘 먹어야 합니다. 영적인 건강은 육신을 기쁨과 평안과 승리의 길로 인도할 수 있지만, 육신만 건강하고 영적인 건강이 없으면 언제나 절망과 좌절과 불평과 불만만을 끌고 다니는 사람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면 말씀을 잘 먹고 건강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하나님의 말씀이 나에게 오면 “아멘”으로 잘 먹는 것입니다. 여러분! 어렵게 생각하지 마십시오. 주일날 강단에서 내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아멘”하고 잘 받는 것입니다. 언제나 불평과 불만으로 가득 차 괴로움에 쌓여 사는 성도를 주일날 자세히 보면 영적인 건강이 없는 자임을 알 수 있습니다. 강단으로부터 내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잘 바라보며 잘 듣고 아멘하며 받아야 하는데,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하여 귀는 있어도 듣지 않고 눈이 있어도 보지 않고 입이 있어도 아멘을 하지 않는 성도입니다. 여러분이 다른 것은 실패해도 말씀 받는 것에 실패하면 세상 속에 나가 사는 생활에서 마귀를 이길 수가 없는 것입니다. 마귀를 이기지 못하고 실패한 성도들이 모여 있는 교회가 눈에 보이는 성장을 기대할 수가 있겠습니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하나님의 말씀을 받는데 꼭 승리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물질이 필요 합니까? 건강이 필요 합니까? 아니면 명예나 지위를 얻고자 합니까? 사업의 번영과 가정의 행복을 원하십니까? 주일날 강단에서 내리는 말씀만 아멘하고 잘 받으면 영적으로 건강해지고 영적으로 건강한 자에게 이 모든 것은 따라 오는 것입니다.

본문 4절과 5절에, “사람에게는 버린 바가 되었으나 하나님께는 택하심을 입은 보배로운 산 돌이신 예수에게 나아와 너희도 산 돌 같이 신령한 집으로 세워지고 영적인 건강은 보배로운 산 돌이신 예수님께 나아와야 하고 예수님께 나오는 자가 신령한 집을 세울 수가 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신령한 집은 성전을 말하는 것이고, 성전은 우리의 마음에 있으며, 이것은 영적인 집으로서 하나님이 거하시는 장소가 되는 것입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구주로 믿어 하나님의 자녀가 되면, 우리 마음에 주님이 거하실 거룩한 전이 지어지고 그 전에 주님이 임재 하시고 그 주님은 우리의 삶을 날마다 승리로 이끌어 주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영적인 교회성장은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어 구속함을 받은 의인들이 모여야 힘이 있고 역사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다시 말씀을 드리면 교회가 영적으로 힘이 있을 때 교회가 성장되고 여러분의 삶에도 승리가 임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씀을 드립니다. 주님이 원하시는 교회 성장은 영적인 성장이 우선 되어야 합니다. 교회 영적인 성장은 성도들이 영적으로 건강해야 합니다. 영적으로 건강하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아멘으로 겸손히 잘 받아먹어야 한다고 말씀 드렸습니다. 그리고 여러분의 마음속에 주님이 함께 임재 하시어야 하는데 이는 주님을 자신의 구주로 모시는 성도의 마음 속에 임재 하시게 되는 것입니다.

본문 5절중에,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실 신령한 제사를 드릴 거룩한 제사장이 될찌니라”
구약 시대에는 제사를 통해서 하나님을 만나고 제사를 통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그 제사도 아무나 드릴 수가 없습니다. 제사만 드릴 수 있는 제사장이 구분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본문은“ 신령한 제사를 드릴 거룩한 제사장이 될찌니라”라고 우리에게 명령을 하고 있습니다. 구약에 드리는 제사는 지금 우리가 드리는 예배입니다. 그러면 이 말씀은 우리에게 거룩한 제사장이 되라는 것이고 이 거룩한 제사장은 예배를 드릴 수 있는 자격자가 되라는 말씀입니다.

구약에 제사를 통하여 하나님을 만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다면 신약 시대에 예배를 통하여 하나님을 만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되는 것입니다. 영적인 건강은 어떤 일이 있어도 하나님을 말씀을 통하여 만나는 예배 시간을 빠지지 않는 것입니다.

부부가 사는데, 언제나 집을 지키겠다면서 혼자 교회 다녀오라고 핍박하지 않고 교회 잘 다니도록 협조하는 남편이 있었습니다. 어떨 때는 시간에 쫓기면 준비도 함께 해주며 도와주기도 하고 교회 마당까지 태워주기도 하였습니다. 부인이 어느 날 철야 기도회에 갔습니다. 그런데 부인이 교회서 오다가 교통사고로 죽었다는 것입니다. 남편이 죽은 부인을 붙들고, “여보! 나는 당신 없으면 못 살아요. 함께 가요.”통곡하며 울다가 충격으로 남편도 죽었습니다.

부부는 손잡고 천국에 들어가려고 대문까지 왔습니다. 문지기가 부인을 보더니, “안에서 주님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어서 들어가십시오.”하며 반갑게 인사를 합니다. 부인이 들어가자 남편이 따라 들어가려하니, “당신은 못 들어갑니다. 당신은 여기 올 자격이 없지만 그래도 이 대문까지 구경 시킨 것은 부인을 그래도 잘 챙겨주고 헌금도 잘 주어 교회 가는데 도와주었기 때문에 대문에라도 와서 구경 시키는 것이요. 이제 당신 갈 곳은 저곳이요.” 가리키는 곳을 보니 마귀가 포승줄을 가지고 오고 있는 것입니다. 남편은 겁이 나서 “야! 오지마라 나는 마누라 있는 천국에 가야 한다. 이놈아, 안돼! 안돼!” 하다가 꿈을 깼다. 그는 식은땀을 흘리며 아내를 기다리고 있다가 “여보 나 교회가면 안돼 나도 예수 믿으면 안돼.” 예수 믿는 일이 일어났습니다.

우리 모두는 자신이 거룩한 예배 위원으로서 집례자가 되어야 합니다. 기도 할 때나 찬송 부를 때나 말씀 들을 때 자신이 예배 집례자의 마음으로 드려야 영적으로 건강해지고, 이런 예배는 교회를 영적인 교회로 만들게 되니 교회는 성장되는 것입니다.
말씀을 정리합니다. 주님의 기쁘신 뜻을 이루어 드리는 것이 여러분의 삶에 승리의 길이 됩니다. 이것이 교회의 성장이며, 교회의 성장은 영적인 성장이 앞서야 합니다. 교회의 영적인 성장은 각 개인이 영적으로 건강해야 합니다.

영적으로 건강하려면
(1)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여 아멘하며 받으십시오.
(2)주님을 구주로 믿어 마음에 있는 거룩한 전에 모시기를 바랍니다.
(3)예배에 빠지지 않고 자신이 예배의 집례자로서 예배를 통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들리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