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충만을받으라[엡5;16-18]


우리가 흔히 교회의 사명을 이야기할 때 예배와 전도와 교육과 구제와 봉사를 이야기합니다. 어떤 사람은 교회는 선교를 하는 곳이다, 교회는 선교를 위해서 태어나고 선교는 우리에게 주어진 사명이라고도 합니다. 맞는 말입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교회는 교육을 하는 곳이라고도 말합니다. 그렇습니다. 오늘 교회는 바로 학교와도 같아서 하나님의 말씀을 강론하고 이 말씀을 체계적으로, 조직적으로 공부하고 연구하는 일 역시 중요한 일입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말하기를 교회는 구제하는 곳이라고도 말합니다. 교회는 자기 자신만을 위해서 존재하는 곳이 아니라 인근의 많은 지역과 사람들을 돌보고 도와주어야 한다고 합니다. 그 말도 역시 옳은 말입니다. 또 교회는 하나님께 봉사하고 헌신하는 곳이라고 말합니다. 물론 우리가 하나님께 나아와 봉사하고 헌신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여기서 꼭 기억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교회의 가장 본질적인 것,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가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한마디로 말하면 성령 충만이라고 할 수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성령 충만은 그리스도인의 선택이 아니라 바로 필수입니다.


성령충만을 받지 못한 결과는?

1) 그리스도인의 말과 행동이 달라서 비난을 받는다.
우리가 성령 충만을 받을 때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게 되며, 그 불쌍한 이웃들을 바라보게 될 때에 자비와 긍휼의 마음이 생기게 되고, 그들을 진정으로 도와주게 되는 것입니다. 성령 충만 없이 말로는 사랑한다고 하면서 행동으로 그들을 도와주지 못할 때, 그리스도인들은 비난을 받습니다.

2) 신앙생활과 사회생활이 달라서 빛과 소금이 되지 못한다.

오늘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모든 개인문제, 인생문제, 가정문제, 신앙문제를 바라보면 그가 얼마나 성령 충만한 생활을 하는가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닙니다. 성령 충만해야 하나님을 사랑하게 되고, 믿음위에 굳게 서게 되고, 성령 충마내야 도전해오는 사단의 세력의 공격에 싸워 승리할 수 있고, 죄를 끊어버리게 되고, 깨끗하게 생활하며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아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

3) 교회 봉사를 해도 기쁨으로 하지 못하고 억지로나 불평하면서 하게 된다.
우리가 아무리 겉보기에는 신앙생활을 잘하는 것 같고, 멋지게 신앙생활을 하는 것 같아도 성령께서 우리 마음에 충만하게 역사하지 않으면 우리는 형식적인 그리스도인이고, 절대로 신자다운 신자가 될 수는 없습니다. 외식적인 신자로서 끝나게 되는 것입니다. 교회 봉사를 해도 우러나는 마음으로 기쁨으로 봉사하는 것이 아니라, 억지로 하거나 불평하면서 하게 됩니다.


어떻게 성령 충만을 받을 수 있는가?

1) 죄를 회개해야 한다.
우리는 반드시 성령 충만을 받아야 하는데 어떻게 하면 성령 충만을 받을 수 있습니까? 그 첫째는 우리 죄를 회개하고 자복할 때 성령 충만을 받을 수 있다고 했습니다. (행 2:38) 보면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사함을 받으라. 그리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으리니\" 그렇습니다. 우리가 죄를 자복하고, 회개하게 될 때 성령께서 우리에게 충만하게 임재하시는 것입니다.

2) 하나님의 약속을 붙들고 기도할 때 일어난다.
또한 하나님을 사모하는 마음을 가질 때 성령 충만함을 받습니다. 하나님의 약속하신 말씀을 붙들고 간절히 기도할 때 성령 충만함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눅11:11-13) \"너희 중에 아버지 된 자로서 누가 아들이 생선을 달라하는데 생선 대신에 뱀을 주며 알을 달라 하는데 전갈을 주겠느냐 너희가 악할지라도 좋은 것을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 구하는 자에게 반드시 성령을 주시겠다고 하신 약속의 말씀입니다.
여러분, 오늘 우리들이 이 약속하신 말씀을 붙들고 기도할 때 꼭 필요한 것은 사모하는 마음을 가지고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반드시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야겠다는 절박한 심정을 가지고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해야 되겠다는 말씀입니다.

3) 말씀에 순종할 때 받는다.
오늘날 기독교가 왜 불신자들에게 공격을 받고, 업신여김을 받습니까? 왜 우리 믿는 사람들은 떳떳하게 나가서 내가 기독교인이라고 밝히지 못하는 창피할 정도의 신앙생활을 하게 되었습니까? 왜 믿음과 생활이, 말과 행동이 다릅니까? 왜 이렇게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합당하지 않은 삶이 계속되어집니까? 한마디로 말하면 성령 충만을 받지 못해서 그렇습니다. 오늘 우리 사회의 공직자들이 정직하지 못하고, 범죄한 사실들이 드러나서 그들이 재판을 받게 되고, 감옥에 들어가는 것을 보게 됩니다. 문제는 그들 중에 기독교인들이 상당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순종할 때에 성령께서 충만하고, 마음대로 우리를 지배하지만 불순종하면 성령이 거하지 못합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우리 모두 이 시간 성령 충만을 받으시길 바랍니다. 말씀에 순종하고 또 순종하는 능력도 성령 충만을 받아야 하고, 말씀을 순종하고, 또 순종할 때에 성령 충만이 더 강하게 임재하는 것입니다. 이 성령 충만의 원어를 보면 일회적인 사건으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반복적인 문장으로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오늘만 성령 충만을 받아야 되는 것이 아니라 내일도, 모레도, 계속해서 우리 일생 다 가도록 성령 충만을 받아야 합니다. 그래야만 능력 있는 신자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4) 말씀을 들을 때 성령 충만을 받는다.
여러분, 이렇게 성령 충만을 받게 되면 어떻게 됩니까? 성령충만을 받게 되면 놀라운 하나님의 역사가 나타나게 됩니다. 그런데 성령 충만을 받았을 때에 가장 모범적인 삶, 가장 아름다웠던 삶을 살았던 사람이 누군가 하면 사도행전에 나오는 고넬료입니다. 고넬료는 어떻게 성령 충만을 받았습니까? 고넬료의 모습을 살펴보면서 어떻게 하면 우리도 성령 충만을 받을 수 있는지 살펴보겠습니다.
고넬료는 식구들을 다 모아놓고 강사로 베드로를 초청했습니다. 당시의 고넬료는 지배국의 장교인 백부장이었습니다. 그런가하면 베드로는 피지배국의 어부 출신 사도였습니다. 신분에 있어서는 상대가 되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 피지배국의 보잘 것 없는 베드로가 고넬료의 집에 왔을 때 고넬료가 납작 엎드려서 절을 합니다.
여러분, 그때 당시의 절은 그냥 허리만 굽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냥 무릎을 꿇는 것이 아닙니다. 팔을 펴고 완전히 엎드리는 것이 그당시의 절입니다. 이건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여기서 배울 수 있는 것이 무엇입니까? 누구 말씀을 들으며 성령 충만을 받을 수 있습니까? 성령 충만은 말씀을 듣는 순간에 임하게 된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누가 말씀을 들으며 성령 충만을 받습니까? 그것은 말씀 앞에 겸손히 받아들이는 사람입니다. 그 말씀을 인간의 말이 아니라 데살로니가 교인처럼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이는 그 사람, 말씀 앞에 완전히 자기를 낮추고 엎드리는 그 사람, 그 사람이 성령 충만을 받을 수 있습니다.
고넬료는 어떻게 들었습니까? (행10:44) 보니 \"베드로가 이 말을 할 때에 성령이 말씀 듣는 모든 사람에게 내려오시니\" 그러면서 온 무리가 다 성령 충만함을 받았다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이 시간이 성령 충만을 받는 시간입니다. 이 시간이 성령이 역사하는 시간입니다. 놓치지 마십시오. 기회를 놓치면 안됩니다. 세상에서 제일 불행한 그리스도인이 있다면 말씀을 놓치는 사람, 말씀을 준비 없이 듣는 사람입니다. \"이 시간 나에게 무슨 말씀을 주시렵니까?\" 간절히 사모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받으십시오.


성령 충만하면 어떻게 됩니까?

1) 마음에 기쁨이 임한다.
그러면 성령 충만을 받으면 어떻게 됩니까?
첫째는 기쁨이 넘치게 됩니다. 성령은 기쁨의 영입니다. (롬14:17) 보면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 있는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 마음의 평강과 기쁨이 넘치게 됩니다. 이것이 성령 충만한 증거입니다.
여러분, 세상을 이길 수 있는 기쁨, 기쁨이라는 것은 힘입니다. 환난을 이길 수 있는 힘, 그것이 기쁨입니다. 죄를 이길 수 있는 힘, 그것이 기쁨입니다. 성령의 능력이 나를 사로잡게 될 때에 큰 기쁨이 넘치게 됩니다. 큰 기쁨이 넘칩니다.

2) 인격이 변하여 새로워진다.
성령 충만하면 변하여 예수그리스도를 닮아가게 됩니다. 예수님은 오래 믿었는데, 말씀도 많이 아는데, 성경도 많이 읽었는데, 어떤 분은 100번 200번도 읽었는데도 변하지 않습니다. 교만쟁이는 밤낮 교만쟁이, 욕심쟁이는 밤낮 욕심쟁이로, 싸움쟁이는 밤낮 싸움쟁이로 결코 변하지 않습니다. 원망쟁이는 밤낮 원망쟁이, 수군수군하는 사람들은 밤낮 수군수군, 왜 그렇게 변하질 않습니까? 바로 성령 충만을 받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정말 성령 충만을 받아 보십시오. 그때에는 그의 인격이 점점 변하여 오늘이 다르고, 내일이 다르고, 1년이 다르고, 2년이 다르고, 덕의 사람이 되고, 은혜의 사람이 됩니다. (갈5:22) 보면 성령의 삶이 나옵니다.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선과 온유와 절제니\" 하면서 9가지의 성령의 열매가 나옵니다. 우리에게 일어나는 여러 가지 어려운 문제들은 어디서부터 비롯됩니까? 성령 충만 받지 못해서 그렇습니다. 예수 믿으면서도 그저 비판하고, 수군거리고, 미워하고, 싸우고, 분쟁하고, 그러다가 갈라지고, 이것은 다 성령 충만을 받지 못해서 그렇습니다.

3) 용기의 사람이 된다.
성령 충만을 받으면 어떻게 됩니까? 용기의 사람이 됩니다. 담대해집니다. 여러분, 베드로를 보십시오. 예수님을 3년씩이나 쫓아다녔습니다. 예수님께 성경 교육을 얼마나 배웠습니까? 예수님께 친히 보고 배웠습니다. 그것은 큰 복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베드로는 가장 신앙이 좋아보이는 발언도 했습니다. \"다른 사람은 다 주를 버릴지라도 나는 주를 버리지 않겠습니다.\" 라며 호언장담하더니 어린 여종 앞에서 주를 3번씩이나 부인하지 않았습니까? 아무리 성경 많이 알고, 오래 믿고, 직분을 많이 갖고 있어도, 큰소리치고 혼자서 봉사 다하는 것 같아도 성령 충만 받지 않고, 능력 받지 못하면 신자 구실을 못합니다.
베드로를 보십시오. 예수님을 3년씩이나 쫓아다니며 성경도 많이 배우고 많이 깨달았겠지만 그러나 예수님을 세 번씩이나 부인하고, 예수님이 돌아가시자 자기 본업으로 돌아가지 않습니까? 그러나 성령 충만을 받고는 죽일 권세도 있는 산헤드린 공회 앞에서 담대하게 예수님을 증거하지 않습니까? 복음 증거를 만류하는 그들 앞에서 베드로는 무엇이라고 합니까? \"내가 사람을 기쁘게 하랴 하나님을 기쁘게 하랴. 사람을 기쁘게 하면 하나님의 종이 아니니라.\" 그 담대함이 어디서부터 나오는가 말입니다. 붙잡히면 죽임을 당하는데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복음을 증거하는 그 담대함을 성령으 ㅣ충만을 받은데서부터, 성령의 능력을 받은데서부터 나오는 것입니다.

4) 복음 증거하는 증인이 된다.
뿐만 아닙니다. 성령 충만 받으면 복음을 증거 하게 되는 것입니다. (행1:8)보면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성령의 권능을 주신 이유는 결국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입니다. 권능을 받으면 복음을 증거하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 모두 이 시간 간절히 기도하셔서 성령 충만을 받아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그리스도인다운 그리스도인으로, 땅끝까지 복음을 전하는 복음의 증인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