겸손한목회와 성장되는교회/벧전5:5-6
할렐루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주님의 평강이 개인과 가정 위에 늘 함께 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 저는 오늘 겸손한 목회와 성장되는 교회라는 제목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려고 합니다. 말씀을 통하여 믿음과 소망과 사랑이 넘쳐나는 귀한 시간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
겸손한 마음을 갖고 있는 교회는 곧바로 부흥과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겸손한 마음을 소유한 목회자와 성도들이 있는 교회는 부흥과 발전을 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우리들도 이와 같이 겸손한 마음을 소유하여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더욱 교회에 부흥을 전할 수 있는 모든 성도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희생시키시고 우리들을 선택하셨습니다. 그 대가로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서 죽음을 당하셨고, 우리들은 예수님의 희생으로 대속의 은혜 곧 죄사함은 물론이요! 구원을 선물로(엡2:8절) 받았습니다. 이 은혜는 평생을 갚아도 갚을 수 없는 크나큰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요3:15-16절) 그럼 겸손한 목회와 교회가 성장하기 위하여 어떻게 할까요? 성경을 살펴보면서 말씀을 나누려고 합니다.
1.겸손한 마음을 갖는 것입니다. 겸손이라는 말은 아무리 강조를 해도 부족함이 없는 것입니다. 겸손한 마음을 갖고 있으면 안 되는 일도 잘 되어집니다. 그것은 모든 사람들에게 겸손한 마음을 보이고 겸손한 자세를 보이기 때문이었습니다. 자신에게 적을 만들지 않고 도움을 주면은 그 사람도 좋은 이미지를 갖고 어려운 환경에 있을 때에 도움을 줄 수 있는 것입니다. 서로 도움을 주면서 인생을 살아가는 것이 아름다운 일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살아가는 법칙입니다. 예수를 믿고 구원을 선물로 받은 하나님의 사람들은 성도이든지 목회자이든지 관계없이 교만한 마음을 버리고 겸손한 마음을 소유해야 합니다. 제가 항상 말씀드리는 것이지만, 사람이 겸손하면은 자신에게도 유익이고 이웃에게도 또한 하나님보시기에도 아름답습니다. 항상 겸손한 사람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이스라엘에 초대 왕 사울은 왕이 되기 전에 처음에는 겸손한 마음을 갖고 인생을 살아간 겸손한 인물이었습니다. 그가 왕이 되기 전에는 항상 겸손한 마음으로 세상을 살았고, 하나님 앞에서도 항상 겸손한 자세를 갖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하나님께서는 그를 왕으로 부르시고, 그를 이스라엘에 초대 왕으로 사용하셨습니다. 정말 기적적인 일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일생에 한번도 일어날까 말까 하는 귀한 일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사울 왕은 그 때에 겸손하지 못했습니다. 높은 자리에 앉으면 앉을수록 더욱 겸손하고 더욱 낮아져야 하는데? 사울 왕은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자신을 높이고 자신을 의지하고 하나님 앞에서 겸손하지 않았습니다.
사울 왕에 마음과 행동에 겸손은 없어지고, 자신이 이 세상에 최고라고 교만한 생각을 하고 교만한 행동을 하였습니다. 결국 하나님께서는 사울 왕을 후회하시고, 그를 왕좌에서 버리셨습니다. 그리고 다윗을 이스라엘에 두 번째 왕으로 삼았습니다. 다윗은 겸손한 자였습니다. 왕이 되기 전이나 왕이 되고 나서나 변함이 없는 마음을 갖고 겸손한 삶을 살았고, 또한 신앙 역시 하나님만 사랑하는 충실한 왕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도 그를 기뻐하였습니다. 겸손한 자는 은혜를 받고 하나님과 영적인 교제가 이루어질 수 있지만, 교만한 사람은 사용하지도 않으시고 영적인 체험도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저와 함께 신학을 한 목사님이 계셨는데? 그 분 신학교 다닐 때에는 그렇지 않았는데? 신학을 졸업하고 목회자가 되고 교회를 섬기는 사람이 되어서는, 예전과 같지 않았습니다. , 그 분이 모임에 나오면 다툼이 일어나고 모임이 분위기가 별로 좋지 않습니다. 다른 목회자들도 그 분이 와서 무슨 말이라도 하면 깜짝 놀래고 그 분이 말하고 제안하는 것을 별로 인정하거나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 분으로 인하여 나중에 꼭 싸움이 되고 분열이 오기 때문입니다. 그 분 지금은 만나지 못하고 있지만, 참 안타까운 생각이 듭니다. 교회가 크고 성도가 많으면, 교만해도 되는 것인가요? 아니면 내가 겸손하지 못하고 교만한데? 교회가 발전하고 부흥될 수 있나요 ? 자신은 겸손하지 않는데? 교회가 성장하지 않겠지만, 성장하더라도 하나님께서 기뻐하지 않습니다. 겸손한 자는 은혜를 받지만, 교만한 자는 물리치시리라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제가 알고 있는 분이 계셨는데? 그 분이 높은 자리에 앉게 되었습니다. 높은 자리에 앉기 전에는 겸손하고 사람들과도 만나서 이야기도 잘하고 그렇게 하였는데? 어느 날 권력에 자리에 앉자 사람이 싹 바뀌었습니다. 말도 잘 안하고 인사도 잘 안 받고 좀 가까이 하기에 너무나 담이 있었습니다. 그 분을 만나면 부담감이 생기고 가까이 하고 싶은 생각이 별로 나지 않습니다. 권위의식을 갖는 것 같습니다. 높은 자리에 앉으면 모든 사람들이 권위의식을 갖는 것입니까?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정말 겸손한 사람은 환경에 변화가 있더라도 별로 요동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기 때문에 교만한 마음을 갖지 않습니다. 정말 기본적인 목회 의식이 없기 때문에 환경에 요동을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겸손한 사람은 어떤 환경에 변화가 있어도 아무 요동을 하지 않습니다. 성경에 겸손한 자는 은혜를 받을 수 있다고 말씀하기 때문에 더욱 그렇습니다. 겸손한 자는 하나님께서 사용하시고 그를 더욱 높이십니다. 교만한 것을 버리고 겸손한 자가 되기를 바랍니다.
청년 때에 가까이 친하게 지내던 친구가 있었습니다. 서로 이사하는 바람에 헤어졌는데? 장년이 되어서 다시 만나게 되었습니다. 저는 직장으로 거래처를 갔다가, 그 동네에서 우연히 만나게 되었는데? 그는 슈퍼마켓을 운영하고 있었습니다. 10년 이상 되어서 만났는데? 그 더운 날씨에 오랜만에 만난 친구에게 음료수 한병 내주지 않는 그를 보고 저의 마음이 씁쓸하게 했습니다. 또한 그의 말투는 너무나 건방져 보였습니다. 그러나 인생이 다 그런 것 아닌가 하고 돌아와 지금까지 한번도 만나지 않았습니다. 그는 청년의 때에 적지 않은 도움을 받은 사람이었는데? 그것을 떠나서 좀 아쉬웠습니다. 친구를 잃어버린 것 같아서...흐르는 세월과 시간 속에서 그는 너무나 달라져버렸습니다. 저는 그 사람의 행동에 너무나 놀랬습니다. 우리 예수를 믿는 사람들은 더욱 겸손한 사람이 되기를 바랍니다.
2.온유하고부드러운 성품을 갖는 것입니다. 이 온유라는 말은 하나님의 뜻에 복종하고 죄인을 용납하고 받아들이는 마음입니다. 헬라어는 구체적으로 범죄자나 반대자를 대할 때 자제력이 있어 올바르게 화내고 규모 있게 참는 성품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 온유라는 단어는 따뜻하고 부드러운 마음과 행동을 갖고 있는 것입니다. 성경에는 하나님을 잘 섬기고 따르던 사람들에게 온유하다고 말한 것도 있습니다.
시 37:11절에 \"오직 온유한 자는 땅을 차지하며 풍부한 화평으로 즐기리로다\" 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마 5:5절에도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 라고 말씀하십니다.
온유하면...생각나는 것이 \'아브라함\'의 아들 \'이삭\'입니다. 이삭은 참으로 온유하고 부드러운 성품을 소유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아버지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명령으로 모리아 산에 가서 외아들 독자인 이삭을 번제로 바치라고 했을 때에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여 아들을 번제로 드리려했던 사건이 있습니다.
그 때에 이삭은 아버지에게 반항하거나 대항하지 않고 순종하였습니다. 그가 단지 아버지에게 대항할 힘이 없어서 번제단에 누워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자신이 번제로 바치는 것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일이었고, 또한 아버지 아브라함에 말을 순종하고 복종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자신의 생명을 잃어버리는 중대한 상태에서도 자신의 생명을 돌아보지 않고 어린양처럼 죽음을 기다리는 그 마음은 온유한 성품에 사람이었습니다. 또한 이 것을 통하여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죽으면 죽으리라 라는 각오를 갖고 있었을 때에 그는 하나님께 인정을 받는 계기가 되었고, 또한 이삭은 이것을 통하여 평생을 풍파가 없이 부드럽고 평탄한 일생을 살았습니다. 우리들도 더욱 부드럽고 더욱 친절한 삶을 살아가는 모든 성도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 뿐 아니라 이삭은 그랄에서 부유해한 삶을 살았는데?...창26:12-14 아버지가 옛날에 판 우물로 인해 블레셋인들과 다툼...창26:14-22 그들은 우물물을 막았으나 그들과 다투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싸움을 피하였습니다. 그는 온유한 성품을 갖고 있는 겸손한 사람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나중에 아비멜렉과 언약을 맺음...창26:23- 성경에는 온유한 성품을 갖고 있었던 인물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위에서 말한 \'이삭\' 외에 \'모세\'라는 인물이 있었습니다. 그는 처음부터 온유한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성질을 이기지 못하고 자제하지 못하여 사람을 쳐죽인 일도 있었습니다. 출2:12절에 \"좌우로 살펴 사람이 없음을 보고 그 애굽 사람을 쳐죽여 모래에 감추니라\" 모세는 처음부터 온유한 자가 아니었습니다. 그는 교만하고 거칠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도구로 사용이 되면서부터 그는 겸손하고 온유한 성품을 소유할 수 있었습니다. 어떤 악한 사람일지라도 하나님의 거룩한 오른 손에 붙잡혀 필요의 도구가 된다면 그는 겸손하고 온유한 성품의 사람으로 바꾸어질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방법입니다.
예를 들어서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온유한(민12:3절) 자라고 성경에 기록하고 있습니다. 모세는 성질도 급한 다혈질적인 사람이었습니다. 그가 애굽에서 사람을 죽이고 도망하여, 미디안 광야 땅에서 머물면서 인생을 돌이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또한 장인어른 이었던, 이드로 제사장으로부터 많은 인생의 삶과 신앙의 대한 훈련을 집중적으로 받았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을 가나안 땅으로 이끌기 위한 과정이었습니다. 애굽에서 40년 미디안 광야에서 40년을 훈련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은혜로 인하여 애굽에 종 되었던 이스라엘 백성들을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으로 인도할 책임을 받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온유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가 온유한 사람이 될 수 있었던 것은 개인의 능력이나 자제력이 아니라! 전적인 성령의 인도하심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어떤 악한 사람이라도 불량한 사람일지라도 하나님께 나와 자신의 죄를 회개하면은 그 사람은 새로운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랑의 능력으로 인도하여 주십니다. 우리들의 성품과 모습이 모세처럼 온유한 모습으로 바꾸어지기를 바랍니다.
신약 성경 행6:1-8절에는 성령과 지혜가 충만한 자 라고 스데반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는 예루살렘교회가 뽑은 일곱 집사 중에 한 사람이었습니다. 사도행전 7:2-52절에는 \'스데반\'집사가 복음을 전하다가 순교 당하는 장면이 있습니다. 그는 공회 앞에서 담대하게 복음을 전했는데? 회개하고 예수를 믿으라는 말 한 마디로 인하여 사람들에게 붙잡혀서 결국 돌에 맞아 순교를 당하였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스데반에 순교에 애도하였습니다. 행8:2절... 중요한 것은 스데반이 자신의 목숨을 잃어가면서도 하나님께 저들의 죄를 용서하여달라고 용서의 기도합니다. 내가 왜 너희들에게 돌로 맞아야 하느냐? 라고 따지고 싸움을 할 수 있었지만, 그는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돌로 맞는 것이 하나님보시기에 더욱 아름다웠기 때문이었습니다. 순교하는 스데반 집사는 죽는 순간까지도 아름답습니다. 사람이 보기에도 그렇게 대단해 보입니다. 하나님께서 보실 때에는 얼마나 아름다울까요? 예수를 믿는 성도들의 모든 삶은 온유한 심령으로 변화되어야 합니다. 이것이 곧 예수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도 돌아가실 때에 그와 비슷한 말을 하였습니다. 이는 온유한 성품을 갖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예화: 오래 전에 \'미션\'이라는 영화를 본 적이 있습니다. 너무나 오래되어서 기억할 수 없는데? 스페인과 포르투갈 사이에 땅의 경계를 사이에 두고 벌어지는 내용인데? 이것은 아르헨티나 파라과이 브라질 국경에 있었던 실화 내용입니다.
폭포 위에 산꼭대기에 살고 있는 원주민들에게(과라니족) 전도를 하기 위하여 많은 신부들이 산으로 올라갔는데? 그 산으로 올라간 예수교 신부들은 모두 원주민들(과라니족)에게 목숨을 빼앗겨 순교를 당하였습니다. 마침 새로운 신부인 가브리엘 신부는 자신의 목숨을 잃을 것을 각오하고 원주민들이(과라니족)있는 산으로 올라가 그들에게 복음을 전합니다. 그 결과 원주민들은 복음을 받아들이고, 산에서 내려와 모든 원주민들이 복음을 받아들입니다. 그리고 교구가 형성되어졌는데? 시간이 흘러서 스페인과 포르투갈 경계를 두고 누가 이 과라니족이 살고 있는 땅을 가질 것인가? 라는 상황에서 원주민과 정치하는 사람들과 싸움이 나는데? 이 가운데에서 서로가 뺏고 빼앗기지 않으려고 합니다.
신부들은 교회를 세우고 자신이 전도한 사람들을 보호하려고 많은 노력을 하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또한 가브리엘 신부가 전도한 사람 중에 노예상인 출신의 멘도사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는 자신이 좋아하는 여인과 자신의 남동생이 서로 좋아하는 사실을 알게 되어서 동생과 칼로 결투를 하고 동생을 죽였는데? 정당방위였지만, 양심에 찔림을 받아 가브리엘 신부가 있는 성당으로 들어와 생활을 하다가 회개하고 신부가 되었습니다. 그 멘도사 신부는 원주민들을 보호하기 위하여 자신은 과데말라 정부에 올바르지 않은 정치에 원주민들과 함께 정부와 싸움을 하려고 준비합니다. 그러면서 가브리엘 신부에게 싸움을 하기 전에 자신을 축복기도를 해달라고 하자 가브리엘은 축복 기도해줄 수 없다고 합니다. 그대가 옳다면 하나님께서 축복하실거고 당신이 하는 행동이 틀린다면 나의 축복은 아무 의미가 없다고 말합니다. 무력이 옳다면 사랑은 설자리가 없다 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이 폭력을 사용하여서는 하나님 나라가 이 땅에 설 수 없다는 의미심장한 내용이었습니다. 멘도사는 힘으로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려고 한 것이고. 반대로 가브리엘 신부는 온유한 마음으로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려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는데에 있어서 많은 희생이 따르더라도 (원주민들의 죽음) 싸움을 통하여 정부와 싸우는 것은 하나님 나라에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하고 그도 평화적 시위도중에 정부로 인하여 순교를 당합니다.
마11:29절에, 예수님께서도 자신을 가리켜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너희 마음이 쉼을 얻을 것이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정말로 온유하신 분이십니다.
3.오래참는 인내력이 필요합니다. 성령의 열매 중에 네 번째에 오래 참음이 나옵니다. 믿음을 가지고 있는 모든 성도들의 삶은 오래 참는 인내심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갈5:22-23절에는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 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요즘 젊은 사람들이나 나이가 드신 분들 중에 오래 참지 못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무슨 자동차 학원에 다녀도 금새 면허증을 따려고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피나는 연습이 없이 운전 면허증을 취득하려고 하는 것은 좋은 모습은 아닙니다. 몇 번 떨어지더라도 충분히 연습하여서 면허증을 취득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목적하는 것을 이루기 위하여 많은 노력과 시간이 흘러야 합니다. 이것이 인생을 살아가는 데에 현실입니다.
노아는 하나님의 계시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본인 역시 그 당시에 하나님을 열심히 섬기는 의인이었습니다. 죄를 한 번도 짓지 않은 완전한 사람은 아니었지만,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의인이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말씀에 120년 동안 배를 만들었습니다. 실증도 날만 했는데? 원망과 불평이 없었습니다. 그는 오랜 시간을 묵묵하게 참고 인내하였습니다. 마침내 하늘에서 비가 내렸습니다. 40일을 주야로 내려 높은 산을 잠기게 내렸습니다. 하나님께서 오래 참고 인내한 노아의 가족 여덟 명만 구원을 하였습니다. 우리들은 노아와 같이 오래 참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다윗도 인내의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골리앗과 싸움에서 승리하고 많은 사람들에게 칭송을 받았습니다. 그는 장군이 되었는데? 사울의 딸 미갈과 결혼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정작 사울 왕은 다윗을 못마땅하게 여겼습니다. 사울이 죽인 자는 천천이요! 다윗이 죽인 자는 만만이라는 소문도 그를 더욱 부추겼습니다. 사울 왕은 다윗이 자신의 왕좌를 탐내고 있다고 잘못된 생각하고 그를 죽이려고 계획하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를 몇 번이고 죽을 뻔하였는데도 살려주셨습니다. 그는 이스라엘 두 번째 왕으로 등장시키기 위한 하나님의 크신 계획과 섭리가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중요한 내용이 있습니다. 그것은 다윗이 사울 왕을 죽일 수 있는 기회가 몇 번 있었습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주장하고 사울을 죽일 수 있었는데? 다윗은 사울 왕에게 칼을 쓰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기름부어 세운 종을 내가 나서서 죽일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와 같은 다윗의 행동에 감동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다윗을 기뻐하였습니다. 다윗은 생전에 우상을 멸하고 숭배하는 일이 없었습니다. 또한 우리야의 아내 밧세바를 범하므로 하나님의 심판을 받은 것 외에는 정직한 삶을 살았습니다. 이에 하나님께서는 다윗 왕조를 인정하시고 그를 통하여 솔로몬이 뒤를 이었고, 계속적으로 다윗 왕조를 축복하셨습니다.
요셉도 하나님께서 꿈을 주시고 실현하기까지 13년 이상의 많은 세월을 기다렸습니다. 그가 아무 죄도 형들에 손에 붙잡혀 구덩이에 빠지고 그것도 부족하여 애굽으로 팔려갈 때에도 요셉은 많은 눈물을 흘렸지만, 하나님을 원망하거나 불평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준 꿈을 실현시킬 것을 믿고 있었기 때문에 오래 참고 기다렸습니다. 그리고 애굽에서 보디발 장군의 가정총무로 11년 간 생활을 하였는데? 부인이 요셉에게 억울한 누명을 씌우고 감옥에 갇히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감옥에서도 하나님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므로 감옥을 지키는 간수가 감옥의 열쇠를 요셉에게 맡길 정도로 요셉을 믿고 신뢰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는 요셉을 믿고 있었기 때문에 그렇게 하였습니다. 어떤 사람이든지 하나님께서 함께 하여 주지 않으시면 결단코 사람에게 인정을 받을 수 없다는 것을 성경은 잘 말하고 있습니다.
요셉은 아무 죄도 없이 2년 동안 감옥에 있었습니다. 억울하게 이년 동안 감옥에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곳에서도 기도하는 마음으로 인내하며 오래 기다렸습니다. 하나님의 섭리가 나타나기를 기다린 것입니다. 보디발 장군의 집에서, 11년 간을 참고 인내하였는데?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이년 동안 감옥에 있으면서도 인간적으로 생각할 때에 정말 기가 막힌 사건일 것입니다. 그러나 환경에 탓하지 않고 묵묵하게 자신의 때를 기다렸습니다. 하나님께서 꿈을 실현시키시고 자신을 세울 것을 믿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 결과 감옥 생활 이 년 만에 감옥에서 나와 애굽의 총리가 되었습니다. 그 감옥에서 생활은 자유를 상실하였지만, 요셉에게 왕궁으로 들어가기 위한 과정이었으며 수단에 불과하였습니다. 바로의 꿈을 해석하는 기회가 주어지고, 하나님께서는 요셉에게 꿈을 해석할 수 있는 은혜를 베풀어주셨습니다. 요셉은 바로의 꿈을 해석하고 바로는 애굽의 총리로 요셉을 세웠습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므로 애굽의 총리가 되었습니다.
젊은 사람이든지 나이가 든 사람이든지 오래 참고 인내하는 것을 배워야 합니다. 인내하는 것을 잘 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정말 큰 일을 치를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미국에서 연구자들이 한 유치원의 어린 아이들을 연구하였습니다. 먹을 것을 앞에다 두고 선생님이 나갔다 돌아올 동안 먹지 않고 참고 견디는 어린아이들에게는 먹을 것을 배로 준다고 하면서 나갔다 왔답니다. 그랬더니 먹을 것을 보고 참지 못하는 아이도 있고, 참다가 먹는 아이들도 있고, 끝까지 참고 기다리다가 선생님이 돌아와서 과자를 두 배로 받아서 먹은 아이도 있었습니다. 이것이 끝이 아니고, 그 인내력이 있는 아이들과 인내력이 없는 아이들을 성인으로 성장할 때까지 연구를 하였는데? 인내력이 없는 사람들은 성장해서 이혼을 하거나, 또는 감옥에 갇혔거나, 하는 것이었습니다. 한마디로 인내력이 없는 사람들은 무엇을 하든지 실패를 위한 것이었고, 반대로 오래 참고 견디어 낸 아이들의 결과는 교육자, 박사나 판, 검사 의사 정치가 등 사회 여러 각도에 필요한 도구가 되어있었습니다. 성질 내고 참지 못하는 사람들은 성격자체를 고쳐야 합니다. 인내력이 없다는 것은 본인에게나 타인에게 아무 도움도 주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예화: 우리 아이 학교에서 조회를 합니다. 교장선생님께서 나오셔서 학생들에게 훈시하실 때에 훈시 시간이 길다고 저마다 불평한다고 합니다. 모든 아이들이 다 그렇다고 생각은 아니지만, 그 훈시를 듣지 않으려는 학생들이 자라서 무엇을 우리들에게 가져다 줄까? 생각을 해봤습니다. 우리들은 오래 참는 것, 인내하는 것을 자녀들에게도 잘 가르쳐 지키게 해야 합니다. 요즘 한 가정에 자녀 한 명을 두고 사는 가정이 많습니다. 아이들은 혼자라서 이기적인 성향이 없지 않아 있습니다. 우리들이 가정에서 기도하는 마음으로 자녀들을 양육할 때에 좋은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 인내하는 마음을 소유할 수 있도록 기도하는 모든 성도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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