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장하는 믿음 벧후1:1-7 해외토픽에 7살 밖에 되지 않은 아이가 빨리 늙는 병에 걸려서 70세 할머니와 같은 모습을 하고 있다고 해서 화제가 된 적이 있었습니다. 그 병명이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지만 아뭏튼 이 아이는 다른 사람의 1년이 자신에게는 10년의 세월과 똑 같았습니다. 의사들은 이 아이가 9살을 전후해서 죽게 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지금 어떻게 되었는지 알 수 없지만 7살 된 아이의 얼굴은 제가 보아도 너무 늙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가하면 요즘 아이들을 보면 키가 얼마나 큰지 모릅니다. 제가 학교를 다닐 때와는 엄청나게 신체적으로 성장을 한 것이 사실입니다. 심지어는 중학생들 중에도 키가 180센티를 넘는 학생들이 많이 있습니다. 초등학생들도 뒷모습만 보면 중학교나 고등학교 다니는 학생들 같이 큰 아이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런데 신체적으로는 그만큼 성숙했는데 그들의 행동을 보면 여전히 어린아이들 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인생을 살때, 신체적인 것이 정상적으로 성장해야 합니다. 7살 아이가 빨리 늙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을 뿐 아니라, 키가 자라고 몸은 성장하는데 생각하고 사고하는 것이 여전히 갓 태어난 아이의 수준에 머물러 있다면 그것도 역시 안타까운 일입니다. 그런데 우리의 믿음도 마찬가지입니다. 믿은지 오래되었는데도 항상 제자리 걸음을 하는 수준에 머무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히브리서 기자는 이 부분에 대해서 말하기를 \"때가 오래므로 너희가 마땅히 선생이 될 터인데 너희가 다시 하나님의 말씀의 초보가 무엇인지 누구에게 가르침을 받아야 할 것이니 젖이나 먹고 단단한 식물을 못 먹을 자가 되었도다\"(히5:11)고 했습니다. 신앙생활을 하면 할 수록 믿음이 성장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남을 가르칠 수 있는 자리에까지 자라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성도들은 대개 이런 문제로 한 두번은 고민을 해 봅니다. 그래서 간혹 이런 질문들을 하십니다. \"어떻게 하면 좀 뜨거워질 수가 있을까요? 어떻게 하면 신앙이 좀 자랄 수 있을까요?\"라고 말입니다. 물론 이런 것에 대해 전혀 관심이 없는 분들도 있습니다. \"예배 참석만 하면 되지, 그 이상도 그 이하도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모두를 향한 하나님의 뜻은 부모가 아이를 향해 가지는 마음과 동일합니다. 즉 모든 부모들은 아이가 잘 성장하기를 원합니다. 제 때, 우유를 먹고 제 때, 이유식을 하고 제 때 밥을 먹고 성장하기를 원합니다. 또 그렇게 자라는 것이 정상적으로 자라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마음도 이와같습니다. 우리가 믿음생활을 한다고 말한다면 당연히 그 믿음도 성장해야만 합니다. 이 편지를 쓰고 있는 사도 베드로도 수신자들이 믿음이 성장하기를 원했습니다. 비록 왜냐하면 그들 가운데는 그들의 믿음을 혼란케 만드는 여러가지 요소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특히 그들 중에 있는 거짓 선지자들이 거짓된 말을 하면서 이 사람들을 미혹하고 있기 때문에 그저 믿음의 초보단계에 머물러 있으면 언제든지 그들의 유혹에 넘어갈 가능성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베드로 사도는 이 편지를 쓰면서 그들의 믿음이 더욱 성장하고 견고해 지기를 원하고 있었습니다. 성도 여러분! 항상 말씀드리거니와 성경은 우리들의 믿음이 성장하기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사도 베드로는 왜 우리의 믿음이 성장해야 한다고 말합니까? 오늘 본문 1절에 보면 우리의 믿음이 보배로운 것이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1절 읽을 것)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귀하게 여기고 보배롭게 여기는 것은 역시 보석입니다. 다이아몬드나 진주나 또는 그 밖에 여러가지 보석들이 많이 있습니다. 사람들은 이것을 귀하게 여깁니다. 아름답기도 하고 휘귀성도 있고, 값도 비싸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보석이 아무리 값지고 귀하다 해도 자기 생명보다 귀하지 못합니다. 그것을 생명과 바꿀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제가 신학교에 입학하기 전 대구에서 알고 있었던 한 젊은 부부가 있었습니다. 그 부부에게는 외아들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만 그 아이가 어릴 때 \'재생불량성 빈혈\'이라는 판명을 받았습니다. 일종의 백혈병입니다. 그래서 이 부부는 아이의 병을 고쳐보려고 무던히도 애를 썼습니다. 이 병원 저 병원 다니면서 아이의 치료를 위해 전력을 다했지만 효과는 별로 없었습니다. 지금부터 근 10여년 전의 일이기 때문에 이 때에는 의료보험 혜택도 극히 제한된 사람들에게만 적용되었던 시기입니다. 이 아이의 치료를 위해 자신들이 모아두었던 돈을 아이의 치료비로 다 썼습니다. 그래도 모잘라 아파트를 팔았습니다. 그것으로도 부족해서 심지어 자신들이 결혼 때 주고 받았던 사랑의 징표인 보석마저도 그 분들은 팔았습니다. 이렇게 해서라도 아이의 병을 고쳐보려고 그렇게 애를 썼습니다. 무슨 말씀입니까? 아무리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의미가 담긴 결혼 예물이라도 그것이 생명보다는 더 귀하지 못하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동안 우리의 생명보다 더 귀한 것이 어디 있습니까? 우리의 육체적인 생명이 참으로 귀합니다. 그러나 그것보다 더 귀한 것이 있습니다. 이런 육체적인 생명은 일시적인 것이고, 유한한 것입니다. 시한부적인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육신의 생명과도 비교할 수 없는 것이 있는데 그것은 \'영생\'입니다. 말 그대로 \'영원한 생명\'입니다. 여러분! 보석이 값진 것이 사실이지만 그 보석보다도 인간의 생명이 더 값지다는 사실을 부인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 인간의 유한한 생명보다 더 값진 것은 \'영원한 영적생명\'입니다. 그리고 이 값진 것을 얻는 길은 \'믿음\'뿐입니다. 그래서 베드로 사도는 이 믿음을 \'보배롭다\'고 말씀합니다. 제가 대학을 다닐 때 \'역사\'를 전공했기 때문에 가끔 유물 발굴현장에 갈 기회가 있었고 4학년이 되던 해는 \'가야 고분\'발굴 작업에 잠시동안이지만 참여한 일이 있었습니다. 그 때 예상외로 많은 유물을 발견했습니다. 그런데 발굴작업을 하다보면 제일 많이 출토되는 것이 \'토기\'들 입니다. 그리고 그 토기들이 원형 그대로 보존되어 있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대부분 깨어져 있습니다. 그러면 그 깨어진 조각을 다 모아서 이리저리 맞추는 작업을 합니다. 물론 이 작업은 상당한 기술적 작업을 요구합니다. 아마 여러분들이 박물관에서 보는 것 중에 상당히 많은 것들이 그렇게 정교한 기술적 작업을 통해 맞추어진 것들입니다. 제가 왜 이런 말씀을 합니까? 아무리 귀중하고 보배로운 것이라도 땅에 묻혀있으면 소용이 없습니다. 보배로운 것이 정말 보배로운 것이 되기 위해서는 갈고 닦아서 더욱 빛이나도록 해야 합니다. 마찬가지로 우리의 믿음도 정말 보배로운 믿음이 되기 위해서는 성장해야 합니다. 성장하지 않고 제자리에 머물러 있는 믿음은 그 가치를 상실해 버립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우리의 믿음이 성장해야할 것을 힘주어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그 보배로운 것을 그저 받았다는 사실입니다. (1절,3절 읽을 것) 방금 읽은 말씀처럼 하나님께서 그 보배로운 것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돈을 주고 살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지식처럼 노력해서 얻을 수 있는 노력의 대가도 아닙니다. 또 싸워서 쟁취할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이것은 전적으로 하나님께서 그저 주신 선물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간혹 그것이 그저 주어진 것이기에 그것의 가치를 별로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을 때가 많습니다. 언젠가 어떤 분으로 부터 아주 훌륭한 도자기를 선물받았습니다. 그 작품을 만드신 분이 누구인지 저는 잘 모르지만 겉보기에도 조금은 독특한 것처럼 여겨지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도자기는 자주 손질하지 않게 됩니다. 그 이유를 가만히 생각해보니 그저 받은 것 때문인 것 같습니다. 아마 제가 많은 돈을 주고 샀다면 그렇게 내 버려두지 않았을텐데 말입니다. 이번부터 성경공부하면서 다른교회에서 공부하러 오시는 분들께 등록비를 인상해서 받았습니다. 그렇게 한 이유는 물론 열심인 분들은 해당이 되지 않는 것이지만 간혹 공부하러 와서 첫주에 등록하고 책만 사 가는 분들이 있습니다. 만원정도면 굳이 서울로 왔다갔다 하면서 구입하는 것보다 그것이 훨씬 경제적이기 때문인지는 몰라도 아뭏튼 첫날 책을 사고, 강의 듣고 그 다음부터 안오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아마 십만원쯤 받았으면 들어간 돈을 생각해서도 그렇게 하지는 못할 것입니다. 무슨 말씀이냐? 하면 그 만큼 사람들은 그저 받는 것은 아무리 귀중해도 그 값어치를 인식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심지어 그리스도인들이 그 보배로운 믿음을 받았는데 그저 받았다는 사실 때문에 관리를 소홀히 한다는 것입니다. 아마 집 한채 값을 치르고 \'영생\'을 소유하게 되었다면 그렇게 소홀히 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간혹 신문을 보면 주택복권 따, 따블에 당첨한 사람들 얘기가 실립니다. 그런데 그런 사람들 중에 그 돈을 정말 가치있게 썼다란 얘기를 저는 들어본적이 없습니다. 오히려 시장에서 김밥장사를 하면서 어렵게 어렵게 돈을 모은 사람들 중에는 그 돈을 사회에 환원하고 죽은 사람들의 얘기를 많이 들었습니다. 그렇다면 왜 하나님은 이러한 부작용을 아시면서 그것을 거저 주셨는가?하는 생각을 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아무리해도 그것을 우리의 노력으로는 얻을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며, 또 아무리 노력을 해도 우리의 노력으로는 얻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하나님은 우리들에게 그저 주신 것입니다. 또 때로는 눈에 보이는 것만 귀중하게,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눈에 보이는 것은 대부분 일시적인 것입니다. 그리고 가변적입니다. 그러기에 세상에는 눈에 보이는 것보다 보이지 않는 것이 더 귀중하고, 더 소중한 것은 얼마든지 있습니다. \'부모님의 사랑\' 눈에 보이지 않지만 얼마나 소중한 것입니까? 요즘 청소년들 중에는 가출하는 청소년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리고 한 두번은 청소년시기에 가출하고픈 충동을 느낀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가출한 청소년들을 상대로 설문조사를 해보면 그들 중에는 부유하게 성장한 아이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런데도 그 아이들은 집을 떠납니다. 그 이유는 거의 한결같습니다. 이들이 부모님의 사랑을 느끼지 못하거나 그 사랑이 자신들에게 만족스럽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이들에게는 눈에 보이는 물질의 풍요로움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부모님들의 따뜻한 말과 지속적인 관심이 그리운 것입니다. 우리가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함부로 대했다가 요즘 엄청난 시련을 겪고 있습니다. 그 중에 하나가 \'공기\'입니다. 지금까지 눈에 보이지 않았기 때문에 대수롭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공기를 마구 오염시켰습니다. 온갖 오염된 배기가스를 배출하고, 공장들마다 다투어서 매연을 배출하고 그래서 지구위의 오존층이 파괴되었습니다. 오존층의 파괴는 우리들에게 심각한 피해를 가져다 주었습니다. 과거에는 없었던 온갖 질병들이 오존층이 파괴되어진 것 때문이라는 사실은 과학적으로도 증명된 사실입니다. 이처럼 사람들이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함부로 대했다가 지금 엄청난 시련을 우리가 경험하고 있습니다. 한 청년이 예수님께 찾아와서 물었습니다. \"선생이시여! 내가 어떻게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이 질문으로 미루어 보아 아마도 이 청년이 영생에 대해 관심을 가졌던 것이 사실인 것 같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청년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네가 가진 소유를 모두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나누어 주고 너는 나를 따르라\" 이 말에 그 청년은 고민하다가 돌아가 버렸습니다. 그 청년이 돌아간 이유가 무엇입니까? 눈에 보이는 물질이 더 소중했기 때문입니다. 영생은 당장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보이지 않는 것을 위해서 보이는 것을 잃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결국 보이는 것을 선택하여 돌아가 버렸습니다. 참 그렇습니다! \'영생\'이라는 것이 우리의 눈에는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소홀이 하거나 그것의 가치를 망각해버린다면 우리들에게 엄청난 결과가 찾아올 것입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계속해서 이것이 \'보배로운\'것임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주어진 귀중한 보배를 계속해서 보배롭게 하는 것은 우리의 책임입니다. 아무리 귀중해도 그대로 방치해 두면 수년내에 그 보물은 가치를 상실합니다. 아마 여러분 가운데 운전 면허증을 가지고 계신분들이 많으리라 생각합니다. 특히 요즘은 맹렬 여성시대라 그런지 여자들도 면허증을 상당히 많이 소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실제로 면허증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운전을 하는 여성은 그렇게 많지 않습니다. 물론 남자들의 경우도 면허증을 가지고 있을 뿐 실제로 차를 운전하지 않는 분들이 많이 있습니다. 면허증 따기가 쉬운 것이 아닙니다. 1종 시험을 치는 곳에 가보면 100명이 시험을 쳐서 기껏해야 20-25명정도 밖에 되지 않습니다. 필기시험부터 몇번씩 치르고, 또 실기시험도 몇번 떨어지고 해서 겨우 면허증을 땄으면 얼마나 값진 것입니까? 그런데 그 값진 것을 따고도 지갑속에 면허증을 넣어다니고 운전하지 않는다면 아무쓸모없는 무용지물이 되고 맙니다. 그러므로 값진 것은 보배롭고 값진 것은 사용을 해야 합니다. 베드로 사도도 우리에게 주어진 보배로운 믿음도 값진 것이기에 성장이라는 것을 통해 사용되어져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렇다면 그 믿음은 어느정도까지 성장을 해야합니까? 여기 4절에서 말하기를 \"신의 성품에 참여하는 자\"가 되라고 합니다. 어떤 분은 이 말씀을 보면서 이렇게 생각하실른지 모릅니다. \"우리가 감히 어떻게 하나님의 성품에 참예하는 자가 될수 있나?\"라고 말입니다. 여기서 \'신의 성품에 참예하는 자\'란 말은 우리가 하나님 같이 되라는 말이 아닙니다. 우리는 결코 하나님과 같이 될 수 있는 자들이 아닙니다. 이 말씀은 본문의 말씀 그대로 \"우리의 정욕으로 인하여 세상에서 썩어질 것을 피하는 것\"을 말합니다. 좀 더 정확하게 말씀드리면 세상의 썩어질 것으로 부터 과감하게 떠나는 것입니다. 여러분! 가만히 한번 생각을 해봅시다. 믿음생활을 하면서 여러분들이 과거에 가지고 있었던 것을 얼마나 버리셨습니까? 얼마나 적극적으로 떠나셨습니까? 뒤돌아 보면 주를 위해서 내가 버린 것이라곤 아무것도 없습니다. 과거에 세상적인 명예를 쫓았던 사람은 여전히 교회내에서 명예를 얻으려고 합니다. 과거에 세상적인 물질관을 가졌던 사람이 예수를 믿어도 여전히 물질관은 변하지 않습니다. 과거에 내 중심적인 삶을 살았는데 지금도 여전히 내 중심적인 삶을 삽니다. 단지 어느 교회 교인이라는 교패만 대문에 붙어 있을 뿐 그 집의 주인은 여전히 \'나\'입니다. 집안에는 성경구절의 표구가 걸려있고, 성화도 있고, 식사때마다 기도하지만 내 삶의 어떤 부분도 진정으로 하나님을 위해 내어 놓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내 자녀를 세상교육에 혜택을 받게 하기 위해 그토록 열심히 쫓아다녀도 교회교육을 위해서는 그런 열정이 없습니다. 아이의 학교 선생님의 말씀이라면 어떤 말이라도 따르려고 하지만 교회 선생님의 말에는 핑계가 많습니다. 아무리 생각을 해보아도 과거의 나와 지금의 나는 별로 달라지거나, 변한 것이 없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베드로 사도를 통해 우리들에게 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이 무엇입니까? 우리가 하나님처럼 되라고 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과거의 나와 현재의 내가 달라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왜 우리가 달라져야 합니까? 보배로운 것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을 그대로 두면 보배로운 것이 가치를 잃어버리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세상에서 그토록 얻으려고 노력했던 것은 궁극적으로 어떤 것입니까? \'썩어질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세상에는 썩는 것들이 많이 있습니다. 음식물 찌꺼기를 담아두었던 것이 쓰레기 봉지에서 음식물이 썩기 시작하면 그 냄새가 얼마나 지독합니까? 코를 막아야합니다. 그리고 그 찌꺼기 담긴 봉지를 치우면서 냄새나기 전에 진작 치울것을 하고 생각을 합니다. 썩는 것이 어디 이것 뿐입니까? 우리의 육신도 결국은 썩습니다. 사람이 죽으면 사흘정도면 부패하기 시작합니다. 시체가 썩는 냄새는 음식찌꺼기 썩는 것보다 더 지독합니다. 우리의 육체도 생명이 끝나면 이렇게 보잘 것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썩어지는 것을 위해 우리가 얼마나 많이 노력을 합니까? 그런데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주신 영생은 썩는 것이 아닙니다. 영원한 것입니다. 그러기에 세상의 썩어질 것으로 부터 피하여 이제는 신의 성품에 참예하는 자리에까지 나아가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의 믿음은 얼마나 자라셨습니까? 썩어질 것으로 부터 과감하게 떠나셨습니까? 음식 썩는 것도 우리 곁에 두지 않는데 하물며 우리의 영혼이 썩어가는데도 그대로 방치해 두고 있다면 이 얼마나 모순된 삶입니까? 이제 우리모두는 성장해야 합니다. 아직도 젖이나 먹고 단단한 식물을 먹지 못하는 어린아이의 자리에 머물러 있으면 안됩니다. 누가 \"기독교가 뭐냐?\"고 물으면 \"예수 믿고 천당가는 것\"이라고 밖에 말을 못하는 자리에 있어서는 안됩니다. 여전히 나의 삶의 중심이 내가 되어서는 안됩니다. 모든 썩어질 것을 피하여 신의 성품에 참예하는 자가 되기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말씀을 맺겠습니다. 오늘 베드로 사도가 교훈하고 있는 말씀이 여러분에게 어떤 도전을 주고 있습니까? 그리고 무엇을 결단하도록 요구한다고 생각하십니까? 여러분들이 깨달은 대로 하나 하나 실천함으로 더욱 성장하는 믿음의 소유자가 되시길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