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화 있는 성장 눅2:52
올해의 교회 표어를 ”성숙과 조화를 이루는 교회”(For the Growing and Harmonizing)라고 정해 보았습니다. 약간 추상적인 기분이 들지만, 우리 교회가 장차 주어진 사명(Missions)을 감당하기 위해서 우리 나름대로의 성숙한 신앙 인격으로 골고루 갖춰진 모습이 필요하다 싶어서 정해 보았습니다. 올해로 우리 교회는 창립된 지 27년째를 맞이합니다. 이는 교회로서 이제는 더욱 성숙한 모습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무언(無言, silent)의 암시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그리고 성숙한 모습은 조화된 모습 가운데 나타난다고 봅니다. 왜냐하면, 조화되지 못한 모습은 어린애 같은(childish) 미숙한 모습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점에서 성숙함과 조화를 이룬다는 것은 어른스런 모습이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교회는 이러한 어른스런 모습을 지녀야만 이 세상의 여러 가지 모순된 모습 속에서도 하나님 나라의 일을 잘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교회라고 해서 무조건 다 하나님 나라의 일을 감당하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이렇게 성숙함과 조화를 이루는 모습이 있을 때라야 주어진 사명을 감당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러한 성숙함과 조화를 이루는 교회가 되기 위해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 지를 생각해 보십시다.
Quiz 하나 내 보겠습니다. 자녀들을 둔 부모님들께서 자녀들에게 가장 많이 요구하는 말이 있습니다. 미국인 부모님들은 모르겠지만, 우리 한국 부모님들에게서 가장 많이 나오는 단어입니다. 그래서 자녀들이 가장 듣기 싫어하는 말 가운데 하나입니다. 이 말은 무엇이겠습니까? 그것은 ”공부(工夫)”라는 말입니다. 원래 이 공부(工夫)라는 말은 남자 분보다는 여자 분들이 하는 것이라 볼 수 있겠습니다. 왜냐하면, 工은 ”만든다”는 뜻이고, 夫는 ”지아비 곧 남편”이라는 뜻이기 때문입니다. 즉, ’남편을 만든다’, ’남편을 훌륭한 사람이 되도록 한다’는 뜻이기 때문입니다.
옛날 한국의 삼국 시대 때 고구려(Kogureo) 땅에 온달(Ondal)이란 소년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온달은 청년이 되어서도 하는 짓이 너무 어린아이 같아서 사람들은 ’바보 온달’(Foolish Ondal)이라고 불렀습니다. 그만큼 멍청하고 어리숙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고구려의 임금님에겐 ’평강공주’(Princess Pyungang)란 딸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공주는 한 번 울기 시작하면 그칠 줄을 몰랐습니다. 한 번 토라져서 울기 시작하면 걷잡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부모인 임금이나 왕비가 우는 딸을 달래기도 하고 겁주기도 해서 울음을 그치게 하였습니다. 한 번은 또 울기 시작하니까, 임금인 아버지가 ”너 계속 울면 바보 온달에게 시집 보내겠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니까 그치더랍니다. 그래서 울 때마다 ”너 바보 온달에게 시집 보낸다”고 겁을 주었습니다. 이 평강 공주가 처녀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시집을 보내려고 하는데, 평강 공주가 하는 말이 ”난 바보 온달에게 시집가겠다”고 우기기 시작했습니다. 임금님이 아무리 말려도 듣지 않고 결국 바보 온달에게 시집을 보내게 되었습니다. 바보 온달에게 시집 간 평강 공주는 자기의 남편인 바보 온달에게 자기가 궁중(왕궁)에서 받은 교육에 따라 남편에게 공부를 시켰습니다. 오랜 세월이 지나 바보 온달은 더 이상 바보가 아닌 ’온달 장군’(General Ondal)이 되었다고 합니다. 이것이 ’공부 (工夫)’의 실례(illustration)입니다.
이런 점에서 이 ’공부(工夫)’라는 말은 영어의 ’study’와는 상당한 차이가 있습니다. 오늘날은 이 공부란 말을 그저 study의 의미로 사용하지만 사실은 의미의 차원이 다릅니다. ’공부(工夫)’라는 말은 문자 그대로 ”대장부(夫)를 만든다(工), To make a man manly(chivalrous)’는 뜻입니다. 이렇게 아들을 대장부로 만드는 일이 바로 ’공부(工夫)’의 의미입니다. 이러한 모습은 사실 모든 부모님들의 바램이기도 할 것입니다. 옛날 다윗 왕도 죽으면서 아들 솔로몬에게 유언하기를 ”내가 이제 세상 모든 사람의 가는 길로 가게 되었노니 너는 힘써 대장부가 되고 네 하나님 여호와의 명을 지켜, 그 길로 행하고 그 법률과 계명과 율례와 증거를 모세의 율법에 기록된 대로 지키라”(왕상 2:2-3)고 하였습니다. 이는 다윗 임금도 한 부모로서 자식이 대장부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을 유언으로 남길 만큼 귀하게 여긴 사실을 알 필요가 있습니다. 이런 점에서 우리들이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study의 개념과는 좀 다르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공부한다는 말은 어떤 지식을 습득한다는 study의 의미보다는 ”사람이 되라, 대장부가 되라”라는 전인격적인 요구가 내재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예수님의 성장과정은 이러한 공부를 잘한 모습이라고 볼 수도 있겠습니다.
눅 2:52은 예수님이 공생애에 나아가기까지의 모습을 한 마디로 표현한 말씀입니다. 누가복음서에 나타난 예수님의 생애를 구분해 보면 1장은 예수께서 태어나시기 전의 모습을, 2장은 태어나신 사건과 12살 때의 한 사건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3장부터는 예수님의 공생애에 대하여 언급하고 있습니다. 이런 점에서 2:52는 예수님의 12살 이후 약 30세에 이르는 모습을 한 마디로 요약한 내용이라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일을 하기까지의 준비와 성장의 과정을 한 마디로 ”지혜가 자라고 키가 자라고 하나님과 사람에게 더욱 사랑스러워졌다”고 표현하고 있는 것입니다.
1. 지혜가 자랐다고 했습니다 : Intellectual Ability and Wisdom Increasing / 지(知)
지혜란 삶에 필요한 지식과 능력의 총체를 의미합니다. 사건이나 사물을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을 말합니다. 오늘날의 연구에 의하면 이러한 지적 능력은 인간의 왼쪽 뇌가 발달될 때 생겨진다고 합니다. 논리적이고 이성적인 측면이 발달된 것을 말합니다. 따라서 이러한 지적 능력이 없으면 사회 생활에서 뒤떨어지기 쉽습니다. 또 대화 능력이 부족하게 됩니다. 우리는 예수님께서 사람들에게 가르치신 내용들을 볼 때, 이러한 지적 능력이 상당하셨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할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광야에서 시험을 받을 때나 혹은 유대인이나 바리새인이나 사두개인 등 그 당시 엘리트들과 논쟁을 벌이신 것을 볼 때 예수님의 지적 수준이 상당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는 예수님께서 어려서부터 하나님의 말씀을 통하여 이러한 지적 훈련을 상당히 받으신 것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는 사실입니다.
2. 키가 자랐다고 했습니다 : Stature and Emotinal Affection Increasing / 정(情)
이는 육체적인 성숙함을 말합니다. 건강했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건강으로 말미암아 정서적으로도 안정되고 성품이나 마음가짐이 증진됨을 말합니다. 이는 오른쪽 뇌가 발달될 때 생겨진다고 합니다. 이러한 건강함이나 정서적 안정이 없으면 자기 자신을 추스리기가 상당히 어렵게 됩니다. 예수님의 공생애 속에서 건강을 상실한 적이 거의 없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다른 연약한 사람들을 따뜻이 품어줄 만큼 그의 정서는 안정이 되어 있었습니다. 우리는 그의 사역에서 고통을 함께 하고, 웃음을 같이 할 수 있는 마음의 여유와 동정심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극심한 반대와 공격으로 인한 스트레스를 다른 사람들에게 전가시키지 않고 하나님 앞에서 풀어 가는 성숙함을 지니셨습니다. 이러한 모습 역시 예수님은 정서적으로 그리고 육체적으로 건강하셨음을 알 수 있습니다.
3. 하나님과 사람들에게 더 사랑스러워져 갔다고 했습니다 : Increasing Favor Behavior in Divine and Human / 의(意)
이는 행동이나 행위의 성숙함을 말합니다. 그리고 사람들에게만 잘 보이는 겉모습뿐만 아니라, 속마음까지도 간사함이 없는 진실된 모습으로 일관되었다는 것입니다. 말에나 행동이 어긋나지 않았다는 뜻도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는 용기 있는 모습이라는 의미도 있습니다. 사실 예수님의 공생애를 볼 때, 용기 있는 모습을 많이 볼 수 있습니다. 위선적인 모습에 대항하는 모습이라든지 그리고 모욕을 당하여도 참을 줄 아는 모습은 용기 있는 모습이라 하겠습니다. 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의 한계를 알고 자기를 지킬 줄 아는 모습도 용기 있는 모습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5병2어의 기적으로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왕으로 추대하려 했을 때, 이를 피할 수 있었던 것은 흔히 용기가 있다고 보여지는 사람들에게서는 찾아볼 수 없는 진정한 용기의 모습이라 하겠습니다. 이러한 모습 역시 공생애로 나오기 전 체득한 모습이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렇게 예수님이 성숙한 모습으로 갖춘 세 가지 모습을 보았습니다. 이를 한 마디로 말하면 ”지정의(知情意) - Intelligence(or Wisdom), Emotion, Behavior”입니다. 이 세 가지를 인격(personality)의 세 요소라고 말합니다. 예수님은 그 자라남에 있어서 이러한 인격의 세 가지 요소가 잘 자랐다고 성경은 증거해 주고 있습니다. 오늘날 표현대로 하면 전인교육(Education for the whole man)을 잘 받았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예수님은 이러한 인격의 세 요소 - 지(知), 정(情), 의(意) -가 골고루 조화되었다는 것입니다.
(ex) 知에 치우친 사람은 명철하긴 하지만 따뜻하지 못하고 차가운 사람이 있습니다. 또 情에 치우친 사람은 따뜻은 하지만 어딘가 허전하고 신뢰성이 부족한 느낌을 줄 때가 많습니다. 뿐만 아니라, 意에 치우친 사람은 행동력은 있지만 자기 한계를 넘어서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기도 합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이 인격의 세 요소를 골고루 갖추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건강했고, 명철했고, 하나님과 사람들에게 신뢰를 받을 수 있는 모습으로 성장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 세 가지 인격의 요소가 조화되었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즉, 조화된 성장이란 무엇을 의미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한 마디로 말하면 자기 것으로 만들었다는 의미도 있습니다. 아무리 훌륭한 것이라도 자기 것으로 만들지 못하면 의미가 없습니다. 건강을 위하여 좋은 운동 기구를 사다 놓았다 하더라도 그것을 사용하여 건강하게 해야 될 것입니다. 아무리 책을 많이 사다 놓아도 읽어 소화시키지 않으면 아무런 지식이 안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아무리 행동한다 하더라도 자기의 뚜렷한 주관 없이 행동만 한다면 결국 책임을 지지 못하는 어리석은 행동밖에는 안 될 것입니다. 이렇게 자기 것을 만든다는 것 자체에는 그 무언가 작품성이 드리워져 있는 것입니다. 내 인격에 대한 작품성이 만들어질 때 우리는 조화된 인격의 성숙함이라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숙한 인격이란 내 것으로 만들어 그 모습에 책임과 가치를 부여할 줄 아는 모습으로 향하게 되는 것을 말할 수 있겠습니다. 여러분은 여러분의 인격에 책임과 가치를 느끼고 있는지요?
러시아에 전해져 내려오는 민담(an old tale)에 이러한 이야기가 있다고 합니다. 옛날에 어느 부자가 있었습니다. 모든 것이 풍부하여 부족할 것이 없습니다. 그런데 주인 양반에게는 고민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이제 자기는 늙어 가는데 하나 밖에 없는 아들이 통 일을 안하고 게으름만 피우는 것입니다. ”이제 내가 죽으면 저 아들놈이 내 뒤를 이어갈텐데, 저렇게 일하기 싫어하니 이 많은 재산을 어떻게 물려준담” 하면서 고민합니다. 아닌게 아니라, 드디어 이 아버지는 병석에 눕게 되고 말았습니다. 걱정거리가 이제 현실이 되었습니다. 안되겠다 싶어 하루는 아들을 불렀습니다. 그리고 명령을 하였습니다. ”이제 네가 나가서 네 힘으로 금전(gold coin) 한 닢을 벌어오너라. 그래야 네게 이 모든 재산을 물려주겠다. 그렇지 않으면 너에게 한 푼도 남겨주지 않을테니 그리 알거라.” 이 아들은 하는 수 없이 나갑니다. 하지만 일하고 싶은 마음은 하나도 없습니다. 마침 어머니가 그 이야기를 듣고 이 게으름뱅이 아들에게 금전 한 닢을 쥐어주면서 ”어디 친구네 집에 가서 며칠 있다 들어오면서 이 금전을 아버지께 드리라”고 하였습니다. 아들은 어머니가 시킨대로 어디 갔다가 며칠 있다 들어오면서 자기가 번 돈이라고 금전 한 닢을 아버지 앞에 내 놓았습니다. 아버지는 그 금전을 받아 들고는 ”이게 정말 네가 번 돈이냐?”고 물었습니다. 게으름뱅이 아들은 그렇다고 대답하였습니다. 아버지는 금전 한 닢을 유심히 보더니 ”이건 네가 번 것이 아니야” 하시면서 그 금전을 불이 타고 있는 벽난로 속으로 던져 버렸습니다. 그러면서 ”다시 가서 진짜 네 힘으로 금전 한 닢을 벌어 오라”고 하였습니다. 아들은 풀이 죽어 또 나갔습니다. 어머니는 또 이 아들을 불러 금전 한 닢을 쥐어 주면서 ”이번에는 더 오래 있다가 오라”고 하였습니다. 아들은 또 어머니 말대로 이번에는 아주 오래 있다가 왔습니다. 금전 한 닢을 아버지 머리맡에 놓았습니다. 이번에도 아버지는 금전 한 닢을 한참 쳐다보더니 또 난로 속으로 던져 버립니다. ”이건 네가 벌어온 돈이 아니야” 하시면서 말입니다. 그리고는 또 나가서 네 힘으로 일해서 벌어오라고 똑같은 명령을 하였습니다. 아들은 또 풀이 죽어 나갑니다. 어머니가 나가는 아들을 보고 말합니다. ”할 수 없다. 이젠 네가 네 힘으로 금전 한 닢을 벌어오는 수밖에...” 이 아들은 나가서 아무 일이나 하기 시작했습니다. 열심히 일을 하여 겨우 금전 한 닢을 손에 쥐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아버지 앞에 자신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당당하게 들어가서 아버지께 금전 한 닢을 내 놓습니다. 아버지는 예전처럼 또 금전 한 닢을 자세히 보더니 또 불이 훨훨 타는 난로 속으로 집어던집니다: ”이건 네가 벌어온 게 아니야.” 이를 본 아들은 깜짝 놀라며, ”아니에요. 이 돈은 내가 진짜 번 돈이란 말이에요” 하면서 그 뜨거운 난로 속으로 손을 넣어 금전 한 닢을 집어냅니다. 이 모습을 본 아버지는 빙그레 웃으면서 ”그래. 이 돈은 네가 번 돈이 틀림없구나” 하면서 이 아들에게 재산을 다 물려 줬다는 이야기입니다.
이렇게 조화시킨다는 것은 자기의 것으로 만든다는 것을 말합니다. 여러분의 지식은 여러분의 것입니까? 여러분의 건강과 정서는 누구의 것입니까? 그리고 여러분의 행동은 진정 여러분의 것입니까?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의 나라와 이 세상에 구원을 전파하는 교회가 되기 위해선 성숙한 신앙의 인격이 내 것으로 만들어지는 조화된 모습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리고 조화된 모습이란 아름다운 모습입니다. 예수님의 모습은 아름답습니다. 그래서 찬송가 가사에도 ”아름답다 예수여, 나의 좋은 친구(Jesus oh so fair art Thou! My good friend)”라는 노랫말도 있습니다. 조화된 인격 속에 나타나는 아름다움입니다. 우리 스스로나 우리 교회도 이렇게 아름다운 신앙의 인격을 지녀야 할 것입니다. 이는 우리가 지정의가 조화된 성장을 할 때 가능한 것입니다. 우리의 기도, 성경공부, 선교와 봉사, 친교 그리고 이렇게 예배드림을 통해서 나 자신의 성숙한 신앙 인격으로 함양시킬 때 거기에 아름다운 모습이 뒤따르게 되는 것입니다. 올 한해는 이러한 모습을 추구해 보자는 것입니다. 그러할 때, 우리는 하나의 하나님 나라로서 하나님 나라를 향하여 그리고 하나님 나라를 위하여 나아갈 수 있게 될 것입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