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육자로 성장하라

양육자로 성장하라/마28:18-20

양육자로 성장하라
마28:18-20





1864년 프랑스 파리 소르본느 대학의 한 실험실에서 42살의 화학과 교수 루이 파스퇴르가 열변을 토하고 있었습니다. 목이 구부러진 실험용 유리병을 앞에 놓고 있었는데, 거기에 들어 있는 설탕물은 몇주일째 아무런 변화가 없었습니다. 그 실험은 자연과학의 역사를 새로 쓰게 했던 중요한 실험이었어요. 목이 구부러진 유리병이었기 때문에 그 유리병에 설탕물을 넣고 끓이게 되면 증기는 구부러진 부분에 고이게 되고 안쪽에는 더 진한 설탕물만 남게 되지요. 구부러진 부분에 물이 더 많이 고이게 되면 병 안의 공기가 차단되게 됩니다. 이렇게 된 상태에서 몇 주가 지나도 설탕물은 상하거나 곰팡이가 뜨는 등의 변화가 일어나지 않습니다. 아주 간단한 실험이었지만 자연과학의 역사를 새로 쓰는 너무도 중요한 의미를 지닌 실험이었습니다.

당시는 다윈의 진화론의 영향으로 생명의 자연 발생설, Spontaneous Generatiion, 즉 생명체는 자연히 저절로 우연이 생겨난다고 믿고 있었어요. 이를테면, 무기물로부터 최초의 생명체가 우연히 생겨났다는 겁니다. Spontaneous Generation. 그래서 그렇게 생겨난 최초의 극히 원시적인 생명체가 점점 진화해서 인간에까지 이르게 된 것이라는 주장입니다. 진화론이지요. 한마디로 인간은 무기물로부터 진화된 물질에 불과하다는 얘깁니다. 그들이 예를 드는 것 중에 이런 것들이 있습니다. 땀에 젖은 셔츠를 적당히 습한 상태로 그대로 두면 얼마 후 거기에서 악취가 나요. 그렇지요? 행주 보세요. 요즘은 페이퍼 타월을 써서 모르시는 분들 계실텐데, 행주 며칠 두면 아주 썩은 냄새가 납니다. 대기 중에 또는 물 속에 있는 세균 때문이지 않습니까? 그런데 당시 진화론자들은 그런 공기중의 미생물체를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저들은 생명체가 저절로 자연적으로 생겨났다고 주장한 것입니다. 그런데 파스퇴르가 앞에서 말한 그 실험에서 그렇게 부패하고 악취가 나게 되는 것은 공기 중에 무엇인가 생명체가 있기 때문이라고 증명한 겁니다. 즉, 끓이면 균이 다 죽지 않습니까? 그렇게 끓이는 과정에서 설탕물 안에 있던 균들이 다 죽고 또 병 안의 공기 중에 있던 균들도 다 죽습니다. 그리고 수증기는 밖으로 나가다가 구부러진 부분에 고이면서 자연스럽게 병의 입구를 막지요. 그러니 외부로부터 공기가 들어올 수가 없습니다. 결국 유리병 안에는 살균되어진 공기만이 있게 되고 그 상태로 설탕물은 3주고 4주고 썩지 않고 있을 수 있는 겁니다.

생명의 자연 발생설을 완전히 뒤집는 실험입니다. 진화론자들의 주장대로라면 설탕물에 무언가가 생겨나야 돼요. 설탕물이 썩어야 합니다. 3주 4주 그대로 있을 수가 없어요. 파스퇴르는 \"생명은 생명으로부터 오는 것이다\"는 유명한 말을 했습니다. \"생명은 생명으로부터.\" 자연 발생이 아니라, 자연 속생을 밝혀 냅니다. 작년 프랑스 국민을 대상으로 \'가장 위대한 프랑스인으로 누구를 존경하느냐\'는 조사에서 1위가 파스퇴르 2위가 나폴레옹이었습니다. 파스퇴르는 독실한 신앙인이었어요. 생명은 우연이 아니라 창조주에 의해 필연으로 생겨난 것이라 믿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이 인간을 만드셨습니다. 어쩌다 저절로, 자연 발생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섭리에 따라, 필연으로 창조되어진 것입니다.


창세기 1:26-28절은 이렇게 증언하고 있습니다. 같이 찾아보겠습니다.

26) 하나님이 가라사대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로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육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27)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28)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하나님이 최초의 인간 아담과 하와를 만드실 때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하나님의 모양대로 만드셨습니다. 즉, 하나님의 도덕성, 하나님의 양심, 하나님의 의지력, 하나님의 가치 판단, 생각하는 힘. 이런 도덕적이고 이성적이고 지적인 모든 것에서 하나님을 닮은 남자와 여자를 하나님이 만드셨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창조되어진 인간을 보시면서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31절입니다.

31) 하나님이 그 지으신 모든 것을 보시니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

원래 인간은 창조주 하나님 보시기에 심히 좋았습니다. 하나님이 인간을 만드시고 너무 좋아하셨어요. 마치 부모가 아이들 바라보면서 그저 좋아하는 것처럼, 하나님이 인간을 그렇게 좋아하셨습니다.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

그런데, 인간이 범죄합니다. 하나님이 만들어주신 의지, 판단력, 지각력을 가지고 범죄하는 데로 빠집니다. 사탄의 꾀임에 빠져 하나님이 금한 열매를 따먹습니다. 그때 이후 모든 인간은 죄 아래 있게 됩니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도덕이 파괴되고, 양심이 삐뚤어집니다. 다스리고 충만하라 하셨는데 파괴하고 악을 행합니다.

지난번 이락의 아부 그라이브 포로 수용소 성학대 사건에서 이 사건에 연루된 7명의 병사 가운데, 포로들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웃는 사진으로 물의를 빚은 여군 린디 잉글랜드 일병의 연인으로 알려진 찰스 그래너 상병은 이런 말을 했습니다. \"내 안의 기독교도는 나쁜 일이라고 하지만 내 안에 있는 교도관은 다 큰 남자가 오줌을 싸게 만드는 것이 재밌다고 한다.\" 인간이 이렇습니다. 하나님 앞에 죄인이고 죽을 수 밖에 없어요.

이런 우리를 하나님은 다시 회복시키시기로 작정하셨습니다. 죄중에 빠진 우리를 다시 살리시려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셨습니다. 우리의 죄와 저주를 짊어지시고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못 박히십니다. 가시 면류관 씌워지고 대못에 박히시고 창으로 찔리우십니다. 피와 물을 다 쏟으십니다. 마지막 피 한 방울까지 우리를 위해 흘리셨습니다. 저와 여러분의 죄를 위해, 우리 죄를 속하시려 십자가에 죽으셨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 십자가 앞에 나아오십시오. 누구든지 십자가 앞에 나오기만 하면 죄 사함을 얻습니다. 어떠한 죄든 하나님 앞에 사함을 얻습니다.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는 그러나 죽음 가운데 그냥 계시지 않으셨습니다. 죽은 지 3일 후에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사망과 죄악의 권세를 이기시고 죽음에서 부활하셨습니다. 그래서 이제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믿기만 하면,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Accept 하기만 하면 구원 얻고 하나님의 자녀가 됩니다. 회복되고 변화되어집니다.
이 예수를 믿으십시오. 이 예수 그리스도를 생명의 구주로 영접하십시오.


완전한 사랑이시며 완전한 구원이신 예수 그리스도, 죄와 죽음의 권세를 이기시고 부활하신 분, 저와 여러분의 구주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마지막 하늘로 올리우시기 전 제자들에게 이렇게 당부하십니다. 마지막 말씀이지요. 마지막 말씀이니 가장 중요한 말씀입니다. 오늘 설교 본문 마태복음 28:18-20절입니다. 다 같이 다시 읽어 보십시다.

18) 예수께서 나아와 일러 가라사대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19)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20)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찌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인간 삶을 관계라는 측면에서 분류한다면 다섯 가지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사람과 사람의 관계로서 볼 때 다음과 같은 다섯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는, 적대자 관계입니다. 서로 적입니다. 상대는 철저히 자기의 생존을 위협하는 존재입니다. 그래서 미워하게 되고 전쟁을 일으키게 됩니다. 인류 역사에서 일어난 참혹한 전쟁들은 모두 적대적 관계의 국가 사이에서 일어났습니다. 인간 관계에서 가장 미숙하고 덜 발달된 관계지요.

둘째는, 경쟁자 관계입니다. 이것은 적대자 관계와는 다르게 상대방에 대해 살의나 미움의 감정은 없습니다. 그러나 타인을 언제나 이겨야 하는 상대로 봅니다. 밟고 일어서야 하고 비교 우위를 차지하려 합니다. 물론 생산적인 사회는 공정한 경쟁이 이루어지는 사회입니다. 그러나 이기심이나 지나친 욕심에서 비롯되어지는 경쟁은 반목을 낳고 갈등을 불러일으킵니다. 또 어떻게든 이겨야 한다는 집착 때문에 부정직한 수단을 동원하기도 하지요. 건강한 관계는 결코 아닙니다.

셋째는, 동업자 관계입니다. 서로가 서로에게 상호 도움이 되어야 하는 관계입니다. 한 쪽이 손해를 입었다고 생각되면 언제든지 깨질 수 있는 관계입니다. 철저히 이기적이고 계산적인 바탕에서 맺어지는 관계입니다. 보통 사업상 동업을 하는 사람들의 경우 거의 대부분이 배신이나 오해로 인해 파국으로 끝납니다. 그러므로 동업자 관계 역시 그다지 성숙한 관계는 아닙니다. 항상 긴장하고 상호 간의 불신이 내재되어 있는 관계입니다. 만일 남녀간의 결혼에서 동업자적인 요소가 이면에 깔려 있다면 그 결혼은 참으로 불행한 결혼입니다.

넷째는, 동반자 관계입니다. 동업자 관계와는 달리 마음이 열린 상태예요. 흔히 부부 관계를 인생의 동반자라고 하지 않습니까? 기꺼이 상대를 위해 희생할 줄 알고 이해득실을 따지지 않습니다. 여기서는 인격과 인격이 만나게 되고 정을 나누는 관계가 되어집니다. 이런 부부, 이런 가정은 참으로 행복한 가정이고 이상적인 부부 관계입니다. 동업자적인 관계가 혼합되거나 강요되어진다면 그 부부 그 가정은 참으로 불행한 가정이지요. 결혼 할 때 보면, 결혼 당사자들은 동반자로서의 관계를 추구하는 데 반해서 양쪽 집안 사이에서는 동업자적인 인식이 은연중 배어 있음으로 인해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마지막 다섯 번째 관계는 양육자 관계입니다. 동반자 관계가 서로 평등함을 전제한 관계라고 한다면 양육자 관계는 어느 한 편이 부족한 경우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한 사람은 도움을 주고 다른 이는 도움을 받는 관계지요. 돌봄의 관계입니다. 세상에 도움이 필요 없는 사람 아무도 없습니다. 세상에 무인도란 없습니다. 반드시 누군가로부터 도움을 받아야 하고 또 도와야 합니다. 우리는 모두 과거에 우리 부모님들로부터 도움을 받았습니다. 또는 지금 도움을 받고 있는 분들도 있습니다. 그리고 이제 자녀들을 돌보아야 하는 자리에 있습니다. 이처럼 인간의 삶이란 돌봄을 받고 또 돌보고, 그런 양육의 관계로 이어지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주님이 제자들에게, 너희는 가서 제자 삼고 세례 주고 나에게 듣고 배운대로 너희도 가르치고 지키게 하라 말씀하십니다. 한 마디로 양육자가 되라는 말씀입니다. 양육자, 주님의 지상 명령입니다. 십자가 은혜로 구원받았느냐? 그러면 너도 가서 구원시키고 가르쳐 지키게 하라. 양육하라는 말씀입니다.

성장과 훈련이라는 제목으로 세 번째 시리즈 설교를 하고 있는데요. 성장의 최종 목표는 어디냐? 어디까지 성장해야 하느냐? 양육자 되는 데까지입니다. 배우고 확신하는 일에 거하면서 또 그대로 더 약한 사람 돌보고 양육하는 데까지 나아가시기를 축원합니다.


마지막으로 창세기 4장 찾아보시겠습니다. 창세기 4:1-9절입니다.

1) 아담이 그 아내 하와와 동침하매 하와가 잉태하여 가인을 낳고 이르되 내가 여호와로 말미암아 득남하였다 하니라
2) 그가 또 가인의 아우 아벨을 낳았는데 아벨은 양 치는 자이었고 가인은 농사하는 자이었더라
3) 세월이 흐른 후에 가인은 땅의 소산으로 제물을 삼아 여호와께 드렸고
4) 아벨은 자기도 양의 첫 새끼와 그 기름으로 드렸더니 여호와께서 아벨과 그 제물은 열납하셨으나
5) 가인과 그 제물은 열납하지 아니하신지라 가인이 심히 분하여 안색이 변하니
6) 여호와께서 가인에게 이르시되 네가 분하여 함은 어찜이며 안색이 변함은 어찜이뇨
7) 네가 선을 행하면 어찌 낯을 들지 못하겠느냐 선을 행치 아니하면 죄가 문에 엎드리느니라 죄인의 소원은 네게 있으나 너는 죄를 다스릴지니라
8) 가인이 그 아우 아벨에게 고하니라 그 후 그들이 들에 있을 때에 가인이 그 아우 아벨을 쳐 죽이니라
9) 여호와께서 가인에게 이르시되 네 아우 아벨이 어디 있느냐 그가 가로되 내가 알지 못하나이다 내가 내 아우를 지키는 자니이까

인류 최초의 가정 안에서 살인이 벌어졌습니다. 형 가인이 동생 아벨을 죽이는 사건이 벌어집니다. 동생의 제물은 열납되었는데 자기 것은 안 되었다는 비교 의식과 경쟁심에서 발로된 살인이었습니다. 형과 동생의 관계가 경쟁자의 관계지요. 그러다 경쟁심이 하나님에 대한 서운함으로 발전하고 나아가 동생을 미워하게 됩니다. 적대자로 발전한 거지요. 그래서 죽인 겁니다.

하나님이 모르실 리 없지요. 가인에게 나타나시어 \'네 동생 아벨이 어디 있느냐\' 물으십니다. 9절에서 가인이 그렇게 대답하지요. \"내가 내 아우를 지키는 자니이까.\" 가인의 대답 속에는 하나님이 형 가인을 향한 바램이 들어 있습니다. \'그래, 네 말이 맞다. 너는 네 아우를 지키는 자이어야 한다.\' 경쟁이 아니라 양육하는 자이어야 한다는 겁니다. 그 일을 감당하지 않고 오히려 적대자로 돌아서서 흉측한 일을 저지를 가인을 하나님은 심하게 저주하십니다. \'네가 땅에서 저주를 받을 것이다. 평생 땅에서 피하며 유리 방황하게 될 것이다.\' 참으로 비참한 징벌을 받습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하나님은 우리를 양육자로 부르셨습니다. 성장이 무엇입니까? 성장은 재생산입니다. 모든 족속으로 제자 삼아 가르쳐 지키게 하는 것, 영적 재생산입니다.

오늘 집사로 봉직하시며 헌신하시는 세 분 집사님, 호칭만의 집사로 남지 않으시기 바랍니다. 양육자로 성장하시기 바랍니다. 제자 삼아 가르쳐 지키게 하는 사역, 영적 재생산의 사역으로 열매 맺으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