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격성장과 공동체 의식

인격 성장과 공동체 의식/느5:1-5

인격 성장과 공동체 의식
느5:1-5





”때에 백성이 그 아내와 함께 크게 부르짖어 그 형제 유다 사람을 원망하는데, 혹은 말하기를 우리와 우리 자녀가 많으니 곡식을 얻어 먹고 살아야 하겠다 하고, 혹은 말하기를 우리의 밭과 포도원과 집이라도 전당 잡히고 이 흉년을 위하여 곡식을 얻자 하고, 혹은 말하기를 우리는 밭과 포도원으로 돈을 빚내어 세금을 바쳤도다. 우리 육체도 우리 형제의 육체와 같고 우리 자녀도 저희 자녀 같거늘 이제 우리 자녀를 종으로 파는도다 우리 딸 중에 벌써 종 된 자가 있으나 우리의 밭과 포도원이 이미 남의 것이 되었으니 속량할 힘이 없도다”

오늘 우리가 목도하고 있는 세상은 온갖 이기주의 뿐인 것 같습니다. 민족적 이기주의, 집단적 이기주의는 심각한 현상을 낳고 있습니다. 개인적 이기주의 또한 위험 수위를 넘고 있습니다. 최근 우리 사회는 경제적 혼란으로 실업자가 100만 명을 넘어섰고, 신용불량 거래자가 250만 명을 넘어섰습니다. 금융 기관으로부터 돈을 빌릴 수 없는 이들이 사체업자에게 몰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월 100% (연1000%)까지 육박하는 초금리, 협박, 폭력, 납치, 감금에 못 이겨 가정까지 파괴되고 있습니다.

자영업자 A씨(32)는 밀린 물품대금 750만 원을 갚기 위해 지난 8일 생활정보지에서 ‘무보증대출’ 광고를 보고 사채업자 사무실을 찾았습니다. 열흘 뒤 1300만 원을 갚는다는 조건으로 1000만 원을 빌렸습니다. 연리로 따지면 무려 1080%입니다. 그러나 A씨는 그 날 밤 사채업자의 폭력배 2명에게 납치된 뒤 “가족들이 세상에 살 수 없게 만들겠다”는 등 온갖 협박을 받은 끝에 500만 원을 빼앗기고 2600만원 짜리 지불각서까지 써야 했습니다. 그는 현재 가족들을 피신시키고 혼자 여관을 전전하며 생활을 하고 있다고 합니다. 지방대생 B씨(20?여)는 학비를 벌기 위해 지난해 서울로 올라와 인터넷 방송국에서 일했습니다. 그러나 모아뒀던 500여만원을 모두 도둑맞는 바람에 600여만원의 카드빚에 허덕였습니다. 카드사의 독촉에 시달리다 못한 결국 지난달 28일 사채업자를 찾아가 선이자 410만원을 떼이고 1500만 원을 빌렸습니다. 그러나 월 이율 10%라던 사채업자는 바로 다음날 B씨를 찾아와 당장 돈을 갚지 않는다는 윤락업소에 팔려 매춘을 강요당하다 10여일만에 탈출했다고 합니다. 고리대금 사채업자들의 이기주의적 횡포가 우리를 슬프게 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무너진 성벽을 수축하는데 있어서 외부의 방해 공작이 많이 있었습니다. 그런 가운데서도 성벽 쌓는 일이 진척을 보아 외부의 적이 침입해올 가능성이 희박해졌습니다. 그러자 잠재해 있던 이스라엘 민족 공동체 내부의 갈등이 표출되기 시작했습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이기주의였습니다. 그것은 성벽 완공을 앞둔 시점에서 큰 난관이었습니다. 이기주의는 공동체의 정체성을 깨뜨리는 요인이 될 뿐 아니라 개인의 인격 성장에 독소적 요소가 됩니다.

1.개인주의적 이기심을 버려야 합니다.(1-5절)

이스라엘이 방해하는 외부 요인을 극복하고 예루살렘 성 재건 공사가 한창 진행되고 있을 때, 내부 요인이 생겨 과업을 중단해야 할 위기에 있었습니다.(1절) 백성들이 크게 부르짖어 원망했습니다. ①흉년으로 곡식을 얻기가 힘들었습니다. ②바사(페르시아) 왕이 부과한 과다한 세금을 내기가 힘들었습니다. ③유대 민족 중 부유한 자들의 고리대금(高利代金)으로 인하여 빚을 청산하기가 힘들었습니다. 어떤 이는 밭이나 포도원을 저당 잡히기도 하고, 심지어 어떤 이는 빚을 갚지 못해 자녀들이 노예로 팔려 가기까지 했습니다(2-5절). 때론 팔려 간 자녀들이 채권자들의 성적 욕구의 대상이 되기도 했습니다(에7:8). 유다 부유층들이 가난자들을 긍휼히 여기지 않고 환경을 악용하여 율법에도 금한(레25:35-37,신23:19) 높은 이식(利息)으로 자신들의 이익만 추구했습니다. 개인주의적 이기심이 가까스로 회복된 민족 공동체를 피괴할 위기를 맞게 한 것입니다.

우리는 아브라함 링컨을 잘 압니다. 그가 젊었을 때 우연히 뉴 올리안즈에 간 일이 있었습니다. 그는 놀랐습니다. 생전 처음 보는 큰 부두, 화려한 거리, 마차 행렬, 가지각색의 인종들, 그는 들뜬 마음으로 거리를 구경했습니다. 어떤 큰 건물 앞을 지나 가려는데 구름처럼 둘러선 사이로 요란한 소리가 들려 왔습니다. 재빨리 사람들 사이로 다가가서 그 안을 들여다 보았습니다. 말로만 듣던 노예 시장이었습니다. 경매가 붙여지고 있었습니다. 농장주는 단에까지 올라가 흑인의 팔다리를 비틀어 보기도 하고 흑인의 입을 벌려 그 안을 들여다 보기도 했습니다. 흑인들은 소나 말처럼 팔려 갔습니다. 아이 밴 여인은 뱃 속에 든 아이 값까지 쳐서 팔려 갔습니다. 팔린 흑인은 주인의 손에 개 끌리듯이 끄려 갔습니다. 팔려 가면서 심하게 반항하는 흑인들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반항할수록 주인들이 휘두르는 채찍에 맞았고 그 때마다 시뻘건 피가 터져 나왔습니다. 그들은 이빨을 뿌득 뿌득 갈면서 끌려 갔습니다. 그런데 이런 광경들 속에서 사람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구경했고 벙글 벙글 웃기도 했고 따분하다는 듯이 하품을 하는 이들도 있었습니다. 링컨은 이런 모습을 보면서 이 흑인들을 위해 목숨을 바치리라 생각하고 대통령이 되어 흑인들의 자유를 위해 싸웠습니다. 우리는 실로 다른 형제와 공동체를 생각지 않은 이기적인 생각으로부터 떠나야 합니다.

2.공동체를 향한 하나님의 목적을 생각해야 합니다. (6-11절)

느헤미야는 분노한 백성들의 부르짖음을 듣고 이들에게 경제적 압박을 가한 부유층의 유력자들 곧 귀인과 민장들을 불러 꾸짖었습니다. 같은 민족인 형제에게 도와주기는 커녕 오히려 높은 이식(利息)으로 취리(取利)하여 삶을 압박한 일을 두고 책망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받아들이지 않자 대회(大會)를 열어 공개적으로 책망했습니다. 바벨론에서 포로 생활을 할 때에 유다인들이 이방인에게 팔린 유다인을 율법에 의해 속전을 주면서 구해 준 사실, 현재 유력자들이 극빈자에게 가한 횡포로 인하여 이방인들의 비방이 있는 사실을 들어 책망했습니다(레25:47-49, 롬2:23-24, 마5:16 참조). 그들은 민족 공동체를 향한 언약적 목적을 생각지 못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바벨론 포로 생활을 했을 때 혹 가난한 동족(同族)이 빚을 갚지 못해 이방인에게 팔려 가는 것을 보면 채주에게 자기 돈을 주면서라도 그들을 구해 주었던 이유를 생각지 못했고, 느헤미야가 아닥사스다 왕의 신임을 얻어 바벨론(바사)에서 포로 생활을 하던 유다인들과 함께 귀환하게 된 이유를 생각지 못했고 귀환한 후 흉년과 이방 민족의 위협 속에서도 예루살렘 성을 쌓기 위해 부역을 하고 있는 이유를 생각지 못한 것입니다.

미국의 어느 목회자가 이런 얘기를 했습니다. 그는 같은 교회 직원인 동료 목사의 생활과 사역의 재정리를 도와주려고 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그는 그의 은사가 무엇인가에 대해 또 그가 당면한 문제들을 어떻게 해결해야 할 것인가를 이야기하며 로스앤젤레스 시내를 지나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저는 이 곳 로스앤젤레스에서 사역하고 싶지 않습니다. 이런 환경에서 우리 자녀를 교육시키고 싶지 않습니다. 얼마나 더러운 곳입니까.”이 말을 듣고 마음 속에 분노를 느꼈습니다. 그래서 “왜 우리가 이 곳에 살고 있다고 생각합니까? 나는 진실로 당신이 그와 같은 생각을 갖고 있는 것을 매우 부끄럽게 생각합니다. 우리 목사들이 편안한 곳만 찾는 직업적인 종교인들입니까? 우리직원들과 나는 환경적인 혜택을 얻기 위해 로스엔젤레스로 이사오지 않았습니다.”라고 대답했다고 합니다.

우리는 이기주의를 버리고 느헤미야의 심정을 가져야 합니다.(2:1-11, 4:15-23).

3.공동체의 목적을 위해 희생정신을 가져야 합니다.(14-18절)

느헤미야는 경제적 어려움으로 부르짖는 백성들 앞에서 자신이 민족 공동체에 대한 하나님의 언약적 목적을 위해 어떻게 희생해 왔는지를 밝히고 있습니다. 전 총독(사마리아)과 그를 따르던 자들은 유다 백성들에게 과중한 세금 징수로 압박했습니다. 그들은 양식과 포도주와 매월 은 40세겔을 세금으로 징수했습니다. 그러나 느헤미야 자신은 총독으로 있으면서 녹(사례)을 전혀 받지 않고 자비량했다고 했습니다. 심지어 관리들을 위한 경비까지 자신의 사비로 사용했다고 했습니다. 이는 그가 하나님을 경외하기 때문이요. 하나님이 민족 공동체에 원하는 사역이 무엇인지 알기 때문이요. 그 일에 협력하는 백성들의 희생을 알기 때문이요. 유다 백성을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바울의 정신이었습니다. 바울은 데살로니가후서 3:8에서는 ”누구에게서 든지 양식을 값없이 먹지 않고 오직 수고하고 애써 주야로 일함은 너희 아무에게도 누를 끼치지 아니하려 함이니”라고 했고(고전9:2-19), 고린도전서 9:15에서”그러나 내가 이것을 하나도 쓰지 아니하였고 또 이 말을 쓰는 것은 내게 이같이 하여 달라는 것이 아니라 내가 차라리 죽을지언정........ 누구든지 내 자랑하는 것을 헛된 데로 돌리지 못하게 하리라”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민족 공동체뿐 아니라 교회 공동체와 가정 공동체에 대한 하나님의 목적을 인지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것을 위해 자기 중심적 이기주의 정신을 버리고 희생정신을 가져야 합니다. 벌의 생명은 6개월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벌들은 한정된 짧은 생명을 가지고도 공동체 생활을 열심히 해 갑니다. 벌통 속에 잘 먹지 못하는 유충이 있으면 동료 벌이 꿀을 마셔다가 토해서 이 유충에게 먹인다고 합니다. 그리고 먹이가 한정되어 있고 먹이를 구해 오지 못하면, 남아 있는 먹이를 똑같이 나누어 먹다가 같이 죽는다고 합니다. 그리고 벌통 속에 적이 나타나면 동료들을 살리기 위하여 적에게 침을 한 번 쏘고 자신은 죽습니다. 어느 면에서 인간보다 더 철저한 공동체적인 책임을 감당하며 살아갑니다. 이같이 교회도 서로 돌보며 살아가는 공동체적인 책임을 져야 합니다. 함께 나누는 그 속에서 온전한 그리스도의 인격을 닮아 가는 것입니다.

참으로 우리가 처한 현실은 눈물 흘리는 일이 많으나 위로자가 없는 실정이요 살아 있는 자 보다 죽은 자가 복이 있고 죽은 자보다 태어나지 않은 자가 복이 있다고 말한 솔로몬의 말이 실감나는 때입니다(전4;1-3). 사회적 혼란과 경제적 위기 속에서 민족 공동체뿐 아니라 교회 공동체와 가정 공동체가 흔들리고 있습니다. 어떤 이는 가정을 버리기도 합니다. 이런 때에 서로 위로해 주는 공동체의 정체성을 확인하며 유기체를 형성해 가기를 바랍니다. 미국 캘리포니아에 레드 우드라는 참나무가 있습니다. 이 참나무는 수령이 2,3천 년쯤 되며, 높이가 100m를 넘고 둘레 도 8-9m나 되는 큰 나무입니다. 이렇게 큰 나무가 어떻게 비바람을 이겨 내는가를 연구하다가 나무 밑을 파 보고는 중요한 것을 알아냈습니다. 이 덩치 큰 나무는 뿌리를 깊이 박고 다른 나무들과 서로서로 연결되어 있었습니다. 그 까닭에 어떤 기상 변화에서도 견딜 수 있었던 것입니다. 신앙 생활도 이와 같습니다. 이것이 유기적 공동체의 힘입니다.

전도서 4:10-12에 ”두 사람이 한 사람보다 나음은 저희가 수고함으로 좋은 상을 얻을 것임이라 혹시 저희가 넘어지면 하나가 그 동무를 붙들어 일으키려니와 홀로 있어 넘어지고 붙들어 일으킬 자가 없는 자에게는 화가 있으리라 두 사람이 함께 누우면 따뜻하거니와 한 사람이면 어찌 따뜻하랴 한 사람이면 패하겠거니와 두 사람이면 능히 당하나니 삼겹 줄은 쉽게 끊어지지 아니하느니라”고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