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치 전도

가치 전도(顚倒)와 성장/마26:36-46

가치 전도(顚倒)와 성장
마26:36-46





가롯 유다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 사람은 예수님의 열두 제자 중 한 사람이었습니다. 예수님의 신임을 얻어 재정을 관리 했습니다. 그런 그가 하루 아침에 마음을 바꾸어 예수님을 은 30냥에 파아 넘겼습니다.

예수님에게 가치를 두고 따라 다니던 그가 왜 그런 행동을 하였을까요? 사실은 그가 그의 가치를 에수님께 두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는 돈에 가치를 두었습니다. 권력에 가치를 두었습니다. 정치에 가치를 두었습니다. 그는 명예에 가치를 두었습니다. 더 이상 십자가에 가치를 두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원수의 손에 팔아 넘길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 행동에 대해 나중에 후회하고는 나무에 목을 메고 자살하여 죽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더 높은 가치가 있는 것을 두고도 자신에게 가치를 두고 살아갑니다. 그 결과 멸망의 길을 갑니다.



왜 십자가로 우리의 가치를 옮겨야 합니까? 우리의 가치를 인간의 욕심에서 십자가로 옮기지 않으면 멸망이 오기 때문입니다.

제자들을 보십시오. 예수님은 고난의 십자가를 생각하며 눈물로 기도하고 있는데 제자들은 잠을 자고 있습니다. 그들이 기도해야 할 시간에 왜 잠을 자고 있습니까? 아직 그들은 십자가에 가치를 두고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십자가에 가치를 두지 않으면 영적으로 잠들어 있거나 죽어 있는 상태와 같습니다.

10명의 문둥병자가 예수님 앞으로 나와 치료해 달라고 간청했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의 문둥병을 고쳐 주셨습니다. 그들이 병고침을 받고 제사장에게 가서 고침받았다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그런데 9명은 어디로 사라지고 단 한 명만 주님 앞으로 다시 와서 감사를 드렸습니다. 이 kfka만이 자신의 문둥병을 주님이 고쳐주셨다는 믿음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나머지 아홉명은 ‘저절로 나았겠지’ 하며 예수님 앞에 다시는 나타나지 않았습니다(눅17:11-19).

예수님은 찾아 온 한 명에게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네 미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그렇습니다. 나머지 아홉명은 병은 고침받았는지 모르지만 구원은 받지 못했습니다.

왜 이런 결과가 나왔을까요? 그거은 가치전도가 일어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치료받고 찾아온 단 한 명만 가치를 십자가에 두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그 사람만 구원받았습니다. 나머지 아홉 명은 십자가로 가치전도가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결국 다시 세상으로 돌아갔습니다. 자기방식의 삶으로 돌아갔습니다. 그리고 멸망의 길로 갔습니다. 그렇습니다. 가치의 변화가 일어나지 않으면 멸망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이제는 가치를 옮길 때가 되었습니다. 세상 것들, 혹은 나의 욕심에서 십자가로 우리의 가치를 옮겨야 합니다. 우리의 인생 목표에서 목적으로 가치를 옮겨야 합니다.

우리는 보다 가치있는 목표에 가치를 두어야 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사업 보다는 사업 내용에 가치를 두어야 합니다. 자녀의 성공보다는 자녀 자체에 가치를 두어야 합니다. 노래하는 가수는 노래하는 것 자체보다 노래의 가사에 가치를 두어야 합니다. 과학자는 새로운 것을 발명하는 것보다 발명의 내용에 가치를 두어야 합니다. 건물을 짓는 건축업자는 건물을 짓는 것보다 어떤 건물을 짓느냐에 가치를 두어야 합니다. 목사는 교회성장보다 교인들 한 사람 한 사람이 십자가의 은혜를 경험하는데 가치를 두어야 합니다. 성도들은 축복보다 영혼구원에 가치를 두어야 합니다.

목표에도 가치를 두어야 함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반드시 목표보다 앞서 가치를 두어야 할 것이 있는데 바로 목적입니다. 성도들의 목적이 무엇입니까? 교회의 목적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십자가입니다. 십자가 자체에 가치를 두는 변화가 일어나야 합니다. 그래서 십자가의 은혜를 경험하고 십자가의 사랑을 경험하면서 그 다음으로 목표들에 가치를 두어야 합니다. 이런 가치변화가 있어야 성장이 옵니다. 행복이 옵니다. 부흥이 옵니다.

오늘 이 말씀을 통해서 여러분의 가치가 세상 것에서 십자가로, 목표에서 목적으로 옮겨지기를 축원합니다.



우리 신앙인들은 어디에 가치를 두고 살아가야 할까요? 아버지 하나님께서 십자가에 가치를 두셨듯이 그리고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가치를 두셨듯이 우리도 십자가에 가치를 두어야 합니다.

이제 가치가 변하지 않으면 더 이상 발전은 없습니다. 가치가 변해야 성장도 있습니다. 가치가 변해야 행복도 옵니다. 가치가 변해야 평안도 옵니다. 가치가 변해야 비로소 인생의 참된 의미도 발견하게 됩니다.

하나님은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서 죽게 버려두셨습니다. 그래서 십자가를 보면 아버지 하나님이 십자가에 얼마나 큰 가치를 두셨는지 이해할 수 있습니다. 또한 예수님도 십자가에 자신을 내어 버리시므로 죽으셨습니다.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님을 생각해 보면 예수님도 십자가에 얼마나 큰 가치를 두셨는지도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아버지 하나님도 예수님도 왜 십자가에 그토록 큰 가치를 두셨을까요?

십자가에는 죄사함과 구원의 능력이 있기 때문입니다.

마1:21절에서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임이라 하니라”하셨습니다. 이 말씀대로 예수님은 우리의 죄를 용서하시고 구원해 주시기 위해 십자가에 가치를 두셨습니다.

이것을 우리는 아버지 하나님의 사랑이라고도 말합니다. 십자가에 담겨 있는 아버지 하나님의 사랑은 죄사함의 사랑이며, 치유의 사랑이며, 축복의 사랑이지만 제일 귀중한 사랑은 죄인을 불러 구원해 주신 사랑입니다.

삭개오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의 직업은 세리였습니다. 로마 정부의 식민지로 있던 이스라엘은 세금을 거두어 들였습니다. 세금거두는 사람을 같은 이스라엘 사람들로 하게 하였는데 당시 돈을 버는 길은 세금거두어 드리는 직업이었습니다.

그래서 세리가 되는 것도 쉽지가 않았지만 돈을 벌기 위해서는 부당하게 세금을 거두어야 하기 때문에 가장 미움을 받는 직업이기도 했습니다. 삭개오의 직업이 바로 세리였습니다.

그에게는 커다란 콤플렉스가 하나 있었습니다. 그것은 키가 작다는 것입니다. 체구가 아주 외소했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소외를 당한 그는 외소콤플렉스를 극복하려고 돈을 벌기 시작했습니다. 돈을 모으면 친구가 많이 생길 것이며 자신의 가치가 높아질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정반대의 현상이 일어나고 만 것입니다.

세인의 지탄을 받고 있는 세리라는 직업으로 인해 그는 더 괴롭고 외로운 힘든 생활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동네에 예수님이 찾아오셨다는 말을 듣고 그는 뽕나무에 올라가 예수님을 보게 됩니다. 그 순간 그는 모든 가치를 예수님께 두게 되었습니다. 그가 모든 가치를 주님께 두는 순간 예수님도 그를 알아보게 되셨고, 주님께로부터 죄사함과 구원의 말씀을 듣게 되었습니다.

여러분, 십자가에 가치를 두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죄사함과 구원의 능력이 있기 때문입니다. 할렐루야!



십자가에 가치를 두며 사는 원리는 무엇이 있습니까?

첫째는 말씀생활입니다.

사55:1-3절에서 “너희 목마른 자들아 무로 나아오라 돈 없는 자도 오라 너희는 와서 사 먹되 돈 없이, 값없이 와서 포도주와 젖을 사라 너희가 어찌하여 양식 아닌 것을 위하여 은을 달아 주며 배부르게 못할 것을 위하여 수고하느냐 나를 청종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좋은 것을 먹을 것이며 너희 마음이 기름진 것으로 즐거움을 얻으리라 너희는 귀를 기울이고 내게 나아와 들으라 그리하면 너희 영혼이 살리라...”

둘째는 기도생활입니다.

기도생활은 십자가에 가치를 두기 위해서도 해야하지만 십자가에 가치를 두고 살아가고 있는 성도들이 끝까지 십자가를 붙들고 살아가는 삶의 원리입니다.

십자가에 가치를 두고 살아가는 성도들은 끝까지 그 길로 가야 합니다. 성도들도 인간이기 때문에 나약합니다. 그래서 언제라도 십자가를 버리고 다시 세상 것들로 가치를 옮기는 죄를 범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예수님도 마찬가지 였습니다.

바울 사도는 분명하게 말씀하였습니다. “선 자는 넘어질까 주의하라.”

믿음생할은 십자가에 가치를 두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이 없다는 것은 십자가에 가치를 두고 살아가지 못하고 있다는 말과 같습니다. 그러면 실패하게 됩니다. 망하게 됩니다. 항상 십자가를 붙들고 살아야 합니다. 십자가를 놓쳐서는 안됩니다. 십자가에 생명이 있고, 십자가에 능력이 있고, 십자가에 치유가 있고, 십자가에 축복이 있습니다. 할렐루야!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신 예수님도 십자가에서 자신에게로 가치를 바꾸고싶은 유혹을 받았습니다. 한 마디로 십자가를 놓칠 뻔 하였습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목적은 십자가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모든 가치는 십자가에 집중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도 십자가를 놓칠 뻔 하였습니다.

성도들이 십자가를 놓치기 쉬운 때가 언제입니까? 시험과 환란과 고난입니다. 혹은 너무 편해서도 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실 때가 가까이 오자 갈등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겟세마네 동산으로 기도하러 올라가셨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세 번이나 기도하셨습니다. 기도하실 때마다 동일한 내용으로 기도하셨습니다. “내 아버지여 만일 할 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여기서 ‘잔’이 무엇을 의미합니까? 십자가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를 피하게 해달라고 하신 것은 십자가를 지는 것이 너무도 고통스럽기 때문입니다. 십자가의 고통을 생각하는 순간 주님은 십자가에서 육신으로 가치를 전도하려는 유혹을 받게 된 것입니다.

만일 주님이 십자가를 지시지 않으셨다면 우리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멸망입니다. 죄로 인하여 멸망 당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끝까지 십자가에 가치를 두셨습니다. 그 결과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의 아들로 믿는 성도들은 구원을 받게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십자가에 가치를 두고 살려면 부지런히 기도생활을 해야합니다.



셋째는 전도생활입니다.

전도는 우리 자신을 십자가에 가치를 두고 살게하는 최고의 원리입니다. 십자가에 가치를 두지 않고는 전도를 할 수 없습니다. 아버지 하나님도 예수님도 십자가에 가치를 두신 것은 전도 때문입니다. 영혼구원 때문입니다. 십자가를 볼 때마다 나를 구원해 주신 아버지의 사랑에 감사하며 우리도 영혼을 구원해야 합니다.



끝으로 넷째는 나눔의 생활을 할 수 있는 구역모임입니다.

믿음의 성도들끼리 혹은 불신자들과 함께 하나님의 은혜를 나누는 삶을 말합니다. 예수님은 제자들과 수시로 하나님의 사랑에 대해 나누었습니다. 십자가에 대해 이야기 하셨습니다. 은혜를 나누는 생활은 나도 십자가에 가치를 두지만 다른 사람들도 십자가에 가치를 두고 살아가게 하는데 큰 도움이 됩니다.

보다 효과적으로 말씀읽는 생활, 기도하는 생활, 나눔의 생활을 하려면 소그룹 모임인 구역모임에 참가하시면 좋습니다.

예수님은 12명으로 구성된 소그룹 모임에서 기도생활을 하셨고, 하나님의 말씀도 나누셨고, 아버지 하나님의 사랑을 나누며 사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제부터 우리는 십자가에 더 큰 가치를 두며 살아가야 할 때가 왔습니다. 십자가에 가치를 둘 때 죄사함과 구원의 축복이 옵니다. 치료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풍성한 생애가 보장됩니다. 우리 모두 십자가에 가치를 두고 살기 위해 기도생활, 말씀생활, 전도생활, 은혜를 나누는 삶의 원리를 충실하게 실천해 나가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