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격 성장과 분별력

인격 성장과 분별력/느6:1-4

인격 성장과 분별력
느6:1-4





< 序言 >
미국의 네올라 옆으로 고속도로가 지나가고 있었습니다. 주정부에서는 공사 관계로 고속도로의 사용을 중단시키고 우회 도로를 사용하게 했습니다. 그리고 이를 위해 임시로 도로 표지판을 만들어 세워 두었습니다. 그런데 어떤 장난꾸러기들이 이 도로 표지판을 엉뚱한 방향으로 돌려 놓았습니다. 중간쯤에는 “잘못된 길―들어가지 마시오”라는 표지판을 세워 놓기까지 했습니다. 그래서 많은 차들이 엉뚱한 곳으로 가게 되었습니다. 차들이 한 밤중에 한 마을로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밤새도록 교통 혼잡을 빚었고. 고속도로 관리원이 많은 시간을 허비한 후에야 표지판이 거꾸로 되어 있는 것을 발견하고 바로 돌려놓았습니다. 마귀는 우리로 하여금 인생 길에서 옳지 못한 다른 길로 가도록 역사합니다.

사단은 자기 때가 얼마 남지 않은 줄 알고 발악하며 할 수만 있으면 택한 자들 까지도 잡아 삼키려 합니다(계12:12). 베드로전서 5:8에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라고 하였습니다. 우리가 알지 못하는 다양한 방법으로 우리를 공격해 옵니다. 그러므로 깨어 분별력을 가지는 것이 중요합니다.(마10:16). 느헤미야가 가졌던 분별력을 가져야 합니다. 느헤미야는 예루살렘 성을 쌓지 못하도록 방해하는 원수들의 집요한 공격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계략에 말려들지 않았고 마침내 예루살렘 성 수축 사역을 마쳤습니다. 느헤미야의 분별력이 승리케 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느헤미야와 같은 영적 분별력이 인격의 한 부분으로 자리잡기를 원하십니다. 분별력을 가지기 위해서는,

< 本論 >
1.사역에 대한 사명에 대한 열정을 가져야 합니다. (1-4절)

이스라엘 백성이 예루살렘 성벽 중수를 거의 마쳐 갈 때에 산발랏과 게셈이 느헤미야에게 오노 평지의 한 촌에서 만나자고 4번이나 연락해 왔습니다. 그것은 성벽 문짝이 달리기 전에 지도자를 암살하려는 계획이었습니다. 일시에 공격하자는 유언비어를 퍼뜨려 스스로 두려움을 느끼게 하고 성벽 중수를 그치게 하려는 계획이 수포로 돌아가자(4:1-23), 느헤미야를 살해하려는 궤계를 베푼 것입니다. 느헤미야는 그들의 궤계를 알고 사자를 보내어 4번 모두 거절했습니다.

느헤미야가 분별력을 가진 것은 \"내가 이제 큰 역사를 하니 내려가지 못하겠노라. 어찌하여 역사를 떠나 정지하게 하고 너희에게로 내려 가겠느냐\"고 대답한 대서 알 수 있듯이(3절), 사명에 대한 열정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도 하나님께서 맡기신 사명에 대한 열정이 있었습니다. 요한복음 4:34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의 양식은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며 그의 일을 온전히 이루는 이것이니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것을 가장 큰 목적과 가치로 여겼습니다. 그리고 그 뜻을 이루기 위해서는 생명까지도 아끼지 않았습니다. 우리도 하나님이 맡기신 일을 인생의 가장 큰 목적으로 여기고 그에 대한 열정을 가질 때에 영적 분별력이 생기게 됩니다.

2.하나님과 교제를 통해 호소해야 합니다. (5-9절)

산발랏이 5번째에는 봉하지 않은 편지를 종에게 보내어 만나자고 했습니다. 그 편지의 내용은 이스라엘 주변국 민족들에게 떠도는 소문을 가스무(이스라엘 백성 중에는 게셈이라는 이름으로 불렸음)라는 사람의 증거를 인용하는 말이었습니다. 느헤미야가 유다의 왕이 되기 위해 성을 건축하고 있고, 한 선지자를 세워서 유다에 새로운 왕이 있다고 선전(예언)하게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당시에 유다에서 왕이 되려면 구약의 예언이 증거되어야 하고(학2:22-23,슥9:9) 그 예언된 왕이 자기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선지자의 기름부음이 있어야 하고(삼상16:13,왕상1:45) 그것이 전당한 절차를 밟았다는 사실을 인지시키기 위해 선지자로 하여금 백성들에게 알려야 했습니다(왕상1:34,45). 그런 사실은 다윗이 왕이 될 때에 잘 나타났습니다. 사마리아 총독인 산발랏은 이런 사실을 잘 알고 있는지라 그런 사실을 염두에 두고 느헤미야가 왕이 되기 위해 바사(페르시아)왕을 모반을 꾸민다고 이야기를 꾸민 것입니다.

그리고 그런 내용이 주변 국가에 두루 퍼져 있음을 강조하여 느헤미야의 모반 계획이 바사 왕에게 들어갈 수 있음을 인지시키려 했습니다. 산발랏이 그렇게 꾸민 것은, 느헤미야가 바사 왕에게 숙청 당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라는 암시를 주기 위해서이고,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자신이 만나자고 할 때 만나 줄 수 밖에 없을 것이라는 생각에서였습니다. 이런 계획은 당시에 바사 왕 아닥사스다 왕 때 모반이 끊이지 않았고 특히 술관원들의 모반이 많았다는 사료들을 감안할 때 효과적인 위협이 되리라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느헤미야는 그 간계를 알아차리고 그런 무고가 바사 왕에게 받아들여질 경우 심각한 위기를 당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사실을 부인하고 가지 않았습니다. 느헤미야가 그런 분별력을 가지고 담대히 가지 않은 것은, 그가 \"이제 내 손을 힘있게 하옵소서\" 하고 기도한 사실에서 알 수 있듯이(9절), 하나님을 신뢰하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항상 하나님과 교제 가운데 있었고 어려운 상황이 전개될 때에도 하나님께서 무엇을 요구하는지 알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해결해 주시리라는 믿음을 가졌습니다. 그러기에 원수들의 요구를 단호히 거절할 수 있었고 자신이 약해지지 않도록 힘있게 해 달라고 기도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예수님도 십자가를 앞두고 겟세마네 동산에서 땀방울이 핏방울이 되도록 기도하실 때, 그 같은 기도를 했습니다. 요한복음 17:1-5에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시고 눈을 들어 하늘을 우러러 가라사대 아버지여 때가 이르렀사오니 아들을 영화롭게 하사 아들로 아버지를 영화롭게 하게 하옵소서 아버지께서 아들에게 주신 모든 자에게 영생을 주게 하시려고 만민을 다스리는 권세를 아들에게 주셨음이로소이다.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 아버지께서 내게 하라고 주신 일을 내가 이루어 아버지를 이 세상에서 영화롭게 하였사오니 아버지여 창세 전에 내가 아버지와 함께 가졌던 영화로써 지금도 아버지와 함께 나를 영화롭게 하옵소서\"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마귀의 궤계에 속지 않으려면 하나님과 지속적인 교제를 가져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알아야 하고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께서 그 뜻을 이루게 해 주신 줄 믿고 힘있게 해 달라고 호소해야 합니다.

3.하나님이 함께 하심을 선포해야 합니다. (10-14절)

도비야와 산발랏이 계속해서 자신들의 계획이 수포로 돌아가자, 이번에는 스마야라는 선지자를 뇌물로 매수하여 느헤미야를 곤경에 빠뜨리려 했습니다. 그래서 스마야는 느헤미야에게 대적이 자객을 보내어 밤에 암살하려 하니 성전 외소(성소)로 피신하여 숨자고 했습니다. 이는 느헤미야로 하여금 두렵게 하고 범죄케 하여 비방거리를 얻기 위함이었습니다. 당시에 성소에는 제사장만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다른 사람이 들어가면 하나님께 범죄하는 것이 되어 죽임을 당했습니다(출21:13-14,민18:7). 설사 죽임을 당하지 않는다 해도(출21:12-13,왕상1:52-53,2:28) 느헤미야로서는 율법을 어긴 자가 되어 정치력 역량을 상실케 되고 맙니다.

느헤미야는 스마야 선지자의 메세지 내용이 하나님 말씀에 맞지 않는 것을 알고(마7:15-20참조) 원수들의 궤계임을 알아 차렸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산발랏과 도비야와 게셈과 스마야와 노다야 등 대적과 함께 한 모든 자들의 소위를 기억해 달라고 호소했습니다(14절). 이 호소는 단순히 간구의 차원이 아닌 선언의 차원입니다.

예수님도 십자가상에서 \"다 이루었다\" \"내 영혼을 받으소서\" 라고 선언하는 기도를 했습니다(요19:30,눅23:46). 원수들 앞에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므로 승리했다는 사실과 하나님께서 그들을 반드시 심판하여 공의를 세우시리라는 확신과 선포입니다. 우리에게도 맹렬한 사단의 공격이 있을 때 지금 가는 길이 승리의 길임을 확신하고 선포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그들을 심판하실 것임을 선포해야 합니다. 사단과 그의 사주를 받은 자들을 향해 확신을 가지고 하나님의 심판을 선포할 때 우리에게는 분별력과 확신이 더욱 굳어지게 됩니다.

< 結言 >
결과적으로 느헤미야는 분별력과 백절불굴의 신앙으로 승리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52일만에 성 건축을 완공하게 하셨고, 대적들과 사면 이방 사람들이 이 사실을 듣고 하나님과 이스라엘 민족 공동체를 두려워 했습니다. 그들이 오히려 낙심하게 된 것입니다(15-18절). 우리가 느헤미야가 가진 정신을 가진다면 우리가 가는 길에 대적하는 악령과 그에게 이용당하고 있는 대적들과 환경이 우리 앞에서 오히려 떨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심을 알고 두려워 할 것입니다. 우리의 신앙 인격에는 이러한 전투적인 부분도 필요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