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식할 수 있는 가정 룻3:1-13 21세기는 과거 어느 세기 보다 편리하게 살 수 있도록 과학과 기술 문명 이 찬란하게 발달한 시대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편리한 환경과 신 속한 정보에도 불구하고 \"안식\"을 찾지 못하고 방황하고 있는 시대라고 말 하기도 합니다. 어느 시인은 현대인을 가리켜서 \'돌아올 둥지를 잃어버린 비오는 날의 외 로운 참새처럼 이 처마에서 저 처마로 정처 없이 방황하는 현대인\'이라고 했습니다. 현대 생활의 비극중의 하나는 가정의 붕괴입니다. 가정이 들어와서 잠만 자고 나가는 여관이 되고 말았습니다. 슬픈 일 이지만 어떤 가정은 전쟁 터입니다. \'논쟁과 싸움\'만이 있는 곳이 가정이라고 합니다. 미국에서는 가장 폭력이 심하게 행사된 곳이 가정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가정이 이와 같이 되기를 원치 아니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쉴 수 있는 가정, 안식할 수 있는 가정이 되기를 원하십니다. 룻기 3장에서 룻의 시모 나오미는 룻에게 \"내 딸아 내가 너를 위하여 안 식할 곳을 구하여 너로 복되게 하여야 하지 않겠느냐\"고 말합니다. 나오미 는 가정을 가리켜서 \'안식할 곳\' 이라고 묘사하고 있습니다. 이 \'안식\'이 라는 말은 \'이것이 삶의 근거\'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가정에서 안식할 수 있어야 모든 다른 삶을 감당 할 수 있는 근거가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 로 가정은 \'쉼이 있는 곳, 쉴 수 있는 곳, 애정의 쉼이 있는 곳\'입니다. 한 여인이 안전과 존경을 얻을 수 있는 유일한 곳은 남편이 있는 가정에서 라고 합니다. 나오미는 룻이 가정을 얻어 빈곤에서 자유하고, 외로움으로 부터 자유하고, 진정으로 안식할 수 있는 가정을 얻기 원하였습니다. 룻기 3장에 등장하는 3명의 주역을 통하여 안식할 수 있는 복된 가정의 필수적인 요건이 무엇인지를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Ⅰ. 이기심을 극복한 \'나오미\' 본문에 나오는 시어머니 나오미를 살펴보면 나오미는 자기 필요보다는 남 의 필요를 먼저 생각하는 사람이었습니다. 다시 말하면 나오미는 이기심을 극복한 사람입니다. 나오미는 모압에서 남편도 잃고, 두 아들도 다 잃었습니다. 이제 세 과 부만 남게되자 시어머니는 두 젊은 며느리의 복지를 생각해서 \"자 이제 집 으로 돌아가라\"라고 이야기했습니다. 그러나 룻은 시어머니를 따라 베들레 헴으로 왔습니다. 나오미도 홀로되었고, 룻도 홀로된 과부였습니다. 나오 미는 룻에게 재혼을 하고 가정을 이루어야 될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 당시 유대인의 관습은 아들이 장가를 가서 죽게되면 홀로된 며느리에게 아 직 장가가지 않은 아들을 며느리에게 주도록 되어 있습니다. 만약 아들이 없으면 가까운 친족에게 요구하여 기업을 잇도록 하는 것이 유대인의 관습 이었습니다. 그래서 나오미는 \'보아스가 기업무를 자\'라고 룻에게 이야기 했던 것입니다. 사실 나오미의 입장에서 보면, 룻 못지 않게 자기 자신의 재혼이 필요한 고독한 여인이었습니다. 나오미는 보아스에게 자기와 결혼 할 것을 요구할 수 있었습니다. 만약에 그렇게 하였을 경우 하나님을 경외 하는 보아스는 이 나오미를 경시하지 아니 하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나오 미는 자기의 필요에 앞서 며느리의 필요를 먼저 생각하였습니다. 그뿐아니 라 나오미는 보아스의 입장도 고려하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나이 많은 자신보다는 젊은 룻이 보아스에게 더 좋겠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러 므로 우리는 나오미라는 여인이 이기심을 극복하고 다른 사람을 생각하는 여성인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오늘날 가정을 생각해 봅시다. 오늘날 가정은 어떻습니까? 많은 가정에 불행이 있고, 상처가 있고, 비극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 원인이 어디에 있습니까? 가장 근본적인 원인은 바로 \'이기심\' 때문입니다. 남편은 남편 대로 아내는 아내대로 자기의 생각과 자기의 의지만을 고집합니다. 부모는 부모대로 자녀는 자녀대로 자기의 권리만을 주장하고 자기만을 위해 달라 고 합니다. 각자 자기만을 위해 주기를 원하는 자기 중심적인 삶을 살고 있기 때문에 가정은 불행하고, 가정은 쉴만한 곳이 되지 못하게 됩니다. 성서적인 시각으로 본다면 아직도 골고다의 언덕에 서 본 경험이 없기 때 문입니다. 골고다에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고난을 견디시고 참으셨던 이유 는 여러분과 저를 사랑하셨기 때문입니다. 십자가의 사랑은 이기심이 없는 순수한 사랑입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 니라\"(롬 5:8)고 말씀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신 것은 우리가 사 랑 받을만한 가치가 있기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은 사랑할 수밖에 없는 분 이기 때문에 사랑하신 것입니다. C.S루이스는 요한 일서 4:8-10에 있는 말씀을 통해 \"그는 사랑할 수밖에 없는 인격이기 때문에 사랑하셨다. 그 사랑의 질은 무조건 적인 사랑이며, 그 사랑은 대상의 유익을 구하며, 사랑의 증거가 있으므로 행동으로 나타 나며, 그 사랑의 성격은 희생적이었다\"라고 하나님의 사랑을 정의했습니다 . 십자가의 사랑은 이기심이 개재되지 아니한 순수한 아가페 사랑입니다. 우리가 잘 아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지옥과 천국을 차례로 방문을 하였습니다. 마침 식사시간이었는데 천국과 지옥 모두 긴 젓가락을 사용하고 있었습니다. 지옥에 있는 사람들은 그 긴 젓가락을 가지고 테이 블 멀리 있는 것을 집어 자기만 먹으려고 하니까 먹지 못하면서 난장판만 되고 말았습니다. 반면, 천국에서는 젓가락을 가지고 멀리 있는 것을 집어 서 다른 사람을 먹여주느라 바쁘더랍니다. 한 곳에서는 어떻게 하든 자기 만 먹으려고 하는 풍경이요, 다른 하나는 다른 사람에게 주려고 하는 풍경 이었다는 것입니다. 만든 이야기이지만 우리에게 \'천국 같은 삶의 방식을 가지고 사는가. 아니면 지옥 같은 삶의 방식을 가지고 사는가?\'에 대하여 우리에게 교훈 해주고 있습니다. \"내 가정에는 나를 참으로 위해 주는 아내가 있고, 부모님이 계시고, 나를 위해주는 자녀들과 남편이 있습니다\"라고 말하는 사람은 가정에 돌아가는 발걸음이 가볍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이기심을 극복한 사랑이 있는 가정 이 있고, 쉼이 있는 가정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가정에서 나오미와 같이 이기심을 극복할 때 그 가정은 안식할 수 있는 가정이 되는 것입니다. Ⅱ. 순종하는 \'룻\' \'에스더\'서의 내용은 와스디는 폐비가 되고 에스더는 왕비가 되어서 이 스라엘을 건져낸다는 이야기입니다. 와스디는 아름다운 여인이었지만 불순 종한 여인입니다. 권위아래 들어가지 않습니다. 반면에 에스더의 특징은 순종하는 태도입니다. 이런 순종하는 태도 때문에 왕비가 되었고, 위험에 처한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원하는 데 놀랍게 쓰일 수 있었습니다. 룻의 특성도 순종입니다. 룻기 3:4-5을 보면 \"그가 누울 때에 너는 그 눕는 곳을 알았다가 들어가서 그 발치 이불을 들고 거기 누우라 그가 너의 할 일을 네게 고하리라 룻이 시모에게 이르되 어머니의 말씀대로 내가 다 행하리이다 하니라\" 시어머니의 명령에 룻은 \"어머니의 말씀대로 내가 다 행하리이다\"라고 대답합니다. 고대 팔레스타인 지방의 관습은 친절을 베 푼 남자가 자기의 배필일 수 있다는 생각이 여자의 마음속에 있다면, 먼저 여자가 프로포즈를 해야만 결혼이 진행 될 수 있었습니다. 본문의 말씀이 바로 그 내용입니다. 룻이 시어머니 권고에 순종합니다. 룻기 3:6에 보 면 \"그가 타작 마당에 내려가서 시모의 명대로 다 하니라\" 시어머니의 명 대로 다 행하는 순종하는 며느리였습니다. 룻은 시어머니가 고향으로 돌아 올 때 자신의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는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룻은 \" 어머니께서 가시는 곳에 나도 가고 어머니가 계시는 곳에 저도 있겠습니다 . 어머니의 하나님의 나의 하나님이 되고 어머니의 백성이 제 백성이 되겠 습니다\"라고 말하면서 시어머니를 따라왔습니다. 룻이 시어머니 나오미에게 순종할 수 있었던 이유가 무엇이었겠습니까? 보통 순종하는데 있어서 3가지 동기로 순종을 한다고 합니다. 첫째, 두려 움 때문에 순종합니다. 두 번째는 순종하면은 보상이 따르기 때문에 순종 합니다. 세 번째로 가장 고상한 동기는 사랑하고 신회하기 때문에 순종합 니다. 여기 룻이 나오미를 순종했던 것은 이 시어머니 나오미에 대한 사랑 과 신뢰 때문입니다. 룻은 시어머니 나오미의 오랜 세월의 경륜과 지혜를 존경하였습니다. 예수님은 아버지의 뜻에 순종하셨습니다. 그는\"나는 아버지의 뜻을 행하 기 위해서 왔다\" \"죽기까지 복종하였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의 덕성은 \'순종\'입니다. 그리스도인이 아닌 사람들은 \"불순종의 아들들\"이 라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순종하는 룻 때문에 그 가정에 안식할 만이 곳이 되었습니다. Ⅲ. 책임성이 있는 \'보아스\' 룻기 3:12-13 \"참으로 나는 네 기업을 무를 자나 무를 자가 나보다 더 가까운 친족이 있으니 이 밤에 여기서 머무르라 아침에 그가 기업 무를 자 의 책임을 네게 이행하려 하면 좋으니 그가 그 기업 무를 자의 책임을 행 할 것이니라 만일 그가 기업 무를 자의 책임을 네게 이행코자 아니하면 여 호와의 사심으로 맹세하노니 내가 기업 무를 자의 책임을 네게 행하리라 아침까지 누울지니라\" 이 장면은 감각적인 장면이 아니라 책임에 관한 문 제를 다루고 있는 부분입니다. 보아스는 룻의 권리와 더 가까운 친족의 권 리를 존중하고 있습니다. 보아스는 룻을 원했지만 자신의 감정대로 움직이 지 않습니다. 그는 자기보다 앞서 룻에 대해서 기업 무를 책임을 가진 사 람을 찾아 그에게 기회를 주겠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룻에 게도 자기 외에 다른 사람을 선택할 수 있는 권리를 주고 있습니다. 다른 사람의 권리를 침해하는 것을 보아스는 원치 않았기 때문입니다. 권리는 책임을 수반합니다. 사회학에서는 \"권리만 주장하고 책임을 망각한 사회는 부패한다\"고 합니다. 모든 국민이 자기 권리만 주장하고 책임을 망각하면 그 나라는 부패하게 되어 있습니다. 만약 가정에서 남편은 남편대로, 아 내는 아내대로, 부모는 부모대로, 자녀는 자녀대로 자기 권리만 주장하고 책임을 기피한다면 그 가정은 참된 안식이 없습니다. 그것 때문에 상처입 고, 서로 미워하는 가정이 되고 말 것입니다. 오늘의 시대야말로 책임 없는 사랑이 유행하고 있습니다. 정욕을 해소하 기 위한 감각적인 사랑만이 유행하고 있습니다. 상대방의 유익을 구하는 아가페의 사랑은 고갈되고 있는 이것이 오늘날 현실입니다. 낙태를 포함해서 아이 낳아 기르지 않고 버리는 것이 제일 많은 나라가 한국이라고 합니다. 그저 정욕적인 것을 위해서 즐기고는 책임을 지지 않 는 것입니다. 우리는 자신이 책임 있는 사람으로 살아가고 있는지 살펴보아야 합니다. 성경은 \"누구든지 자기 친족 특히 자기 가족을 돌아보지 아니하면 믿음을 배반한 자요 불신자 보다 더 악한 자니라\"(딤전5:8)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 책임을 질줄 아는 남편, 책임을 질줄 아는 아내, 책임을 질 줄 아는 부 모, 책임을 질줄 아는 자녀가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구원하시되 끝까지 구원하셨으며, 우리를 사랑하시 되 끝까지 사랑하시며, 우리를 끝까지 인도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이렇게 책임을 지신 그분이 우리 아버지이십니다. 우리는 책임을 질줄 아는 인격 을 가집시다. 책임을 질 줄 아는 사랑으로 채워지십시다. 우리 젊은이들 에게 책임을 질 줄 아는 사랑을 가르치십시다. 안식하는 가정이 되려면 예수님이 오셔야 합니다. 예수님이 오실 때 안 식이 있고 평안이 있습니다. 그 가정에서 쉼을 얻고, 힘을 얻어야 합니다. 이런 가정이 되기 위해서는 예수님이 주인이 되셔야 합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마 11:2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