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안에 있는 가정

믿음 안에 있는 가정
룻1:15-18,3:1-5





오늘은 부모님을 생각하는 주일입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강력한 인간의 유대관계는 부모와 자녀의 관계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인간의 기초 윤리가 일부에서 흔들리고 있는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옛날 같으면 어버이 주일에 자녀들에게 부모님에게 잘 공경하라는 설교를 하면 되었는데 지금은 그런 설교를 할 때가 지나간 것 같습니다.
그 이유는 부모님들이 서야할 자리가 없어졌으며, 어른들이 서야할 위치가 위기를 맞이한 시대이기 때문입니다.
대가족이었던 가족체계가 핵가족 체계로 바뀌었기 때문입니다. 대가족이었을 때에는 어른들이 최고였는데 핵가족이 되면서 어른들의 위치가 없어졌습니다.

또한 IMF를 지내면서 많은 가정들이 위기를 맞게 되었습니다.
경제적인 이유 때문에 이혼하게 되었습니다. 영국 BBC방송은 우리나라가 미국 다음으로 세계에서 두 번째로 이혼율이 높다고 보도했습니다. 두 사람이 결혼해서 혼인신고를 하면 두 쌍 중에서 한 쌍이 이혼한다는 말입니다. 재혼율도 지난 10년 동안 배로 증가했다는 말입니다. 이렇게 많은 가정들이 흔들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경제권이 젊은 가정 주부들에게 이전되었습니다.
남편들이 회사에서 열심히 일했는데 월급은 은행을 통해서 온라인으로 부인에게로 가기 때문입니다. 남편들은 돈을 만져보지도 못하고 용돈은 부인에게 타 쓰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부모에게도 남편이 알아서 하지 못합니다. 부인이 잘 하는 가정에서는 갈등이 되지 않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에는 많은 갈등의 요인이 되고 있습니다. 저도 교회에서 사례금이 나오면 아내에게 갖다줍니다. 이것이 우리의 현실입니다.

또한 형제간의 갈등 때문에 부모님들의 설 자리가 없습니다.
그 동안 제가 몇몇 가정을 보았습니다. 어른들이 계셔서 평생 모아왔던 재산을 큰 아들에게 넘겨줍니다. 그런데 큰 아들이 재산이 조금 생겨서 사업을 하다가 재산을 모두 없애버립니다. 그리고는 부모님을 모실 힘이 없어집니다. 그리고 동생은 부모님의 재산을 모두 형에게 주었는데 우리가 왜 부모님을 모시느냐고 합니다. 우리 주위에는 실제로 이렇게 되어 갈 데 없는 분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절대 다수의 자녀들은 부모님을 잘 섬기며, 모시고, 건강한 삶을 살아가고 있는 분들이 많이 있습니다.
우리교회 어떤 가정들을 보면 막내이면서도 부모님을 모시고 있는 귀한 가정들이 많이 있습니다. 또한 연세 많으신 어른들을 잘 받드는 모습들을 보면서 얼마나 감사한지 모릅니다.
다만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에 당면한 문제가 부모를 공경하라고 하는 전통적인 윤리관이 상실되고 많은 가정들의 부모님들이 설자리가 없는 이 위기의 시대에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입니다.

가정의 위기는 어느 시대에나 있었습니다. 고대 사회에서도 있었습니다. 오늘 우리가 본 성경본문 사사시대에도 위기의 가정이 있었습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유다 베들레헴에 살던 한 부부가 흉년이라는 경제적 위기를 만나서 행복하게 살아보자고 이방 땅 모압까지 갔습니다. 그곳에서 10년 동안 행복했습니다. 두 아들들은 결혼해서 가정을 이루었고 나름대로 안정된 생활에 접어들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남편이 죽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두 아들마저도 죽었습니다. 옛날 고대사회에서는 남자들이 없으면 아무런 경제적 능력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이 가정은 해체되기 직전상황까지 가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시어머니는 자부들에게 각각의 친정으로 돌아가서 새로운 삶을 개척하라고 말하면서 자기는 고향으로 돌아간다고 했습니다.
그때에 둘째 자부 룻은 어머니를 따라가겠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이 가정의 어려운 상황을 묘사한 부분이 룻기서의 1장입니다.
가정의 공동체가 가장의 죽음과 민족의 이질성과 현실적인 경제적 능력 때문에 와해될 수밖에 없었는데 이 가정이 위기를 극복하고 구속사에 길이 빛나는 메시야의 족보 다윗과 예수님의 조상인 다윗의 할아버지 오벳을 탄생시키는 멋있는 가정으로 축복을 받았습니다. 이것이 룻기서의 내용입니다.

우리 가정을 파국으로 몰아가는 위기는 많이 있는데 이 위기를 우리가 어떻게 극복해야할 것인지 오늘 나오미와 룻의 가정을 통해서 교훈을 삶으며, 앞으로 우리에게 위기가 다가올 때에 이 말씀으로 이기며 승리하는 가정들이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나오미의 가정이 위기를 극복하게 된 동력이 무엇입니까 ?

첫째는 하나님 중심의 믿음입니다.

나오미는 믿음의 사람입니다. 나오미라는 이름의 뜻은 “즐겁다”, “기쁘다”라는 뜻입니다.
이 나오미가 한때는 어려워서 이방으로 왔으나 여전히 그는 믿음의 사람으로 살았습니다. 이방인 며느리 룻이 시어머니의 신앙 인격에 감동이 되어서 하나님을 독실하게 믿는 며느리가 된 것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룻은 “어머니가 가시는 곳에 나도 가며 어머니가 죽으시는 곳에 나도 가고, 어머니가 묻히는 곳에 나도 묻힙니다. 죽음 외에는 어머니와 나를 나눌 수 없다”고 했습니다. 그 중심에는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입니다 라고 고백하는 신앙이 있습니다.

여러분, 가족을 전도하기가 제일 어렵습니다. 그런데 나오미는 자기 자부가 믿음의 사람이 되도록 감동하는 믿음의 삶을 보였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가족이 구원받게 하려면 힘으로 절대 되지 않습니다. 남편을 구원시키고, 아내를 구원시키며, 어머니가 자부를 구원시키는 모든 과정이 인격적으로 인정받고 존경받아서 그들이 감동받았을 때에 구원을 받을 수 있습니다.
이것을 보면 나오미의 신앙생활과 경건함을 우리가 알 수 있습니다. 그때에 교회가 있었습니까? 성경책을 볼 수 있었습니까? 그러한 상황 속에서도 나오미의 인격 속에서 룻이 나오미의 하나님을 섬기고, 그 믿음을 가지고 남편은 죽었으나 홀로 계신 시어머니를 버릴 수 없어서 운명을 같이하겠다고 따라나서는 그 며느리의 믿음은 보통의 믿음이 아닙니다.

나오미의 가정이 오늘 우리에게 주는 교훈이 무엇입니까 ?
지금 이 시대는 옛날의 가부장적 시대가 아니기 때문에 어른들 잘 섬기라는 설교만 해서는 되지 않으며, 이제는 모두가 함께해야할 시대가 되었습니다.
먼저는 가정에서 부모님들이 아래 수하에 있는 자녀들에게 믿음의 본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특별히 가정에서 자부를 두신 어머니들은 이것을 교훈으로 받으시기 바랍니다. 자부들이 우리 집에 시집왔다고만 하면 대접받지 못합니다. 먼저 어머니들이 자부에게 사랑을 베풀어 주시고, 먼저 우리 집에 온 손님과 같이 자부들에게 사랑을 베푸시고 믿음의 본을 보여주십시오. 그때에 그 집에 새로 들어온 자부가 마음으로, 사랑으로 어머니를 공경하게 되며 받들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 젊은 자부들은 룻이 보여주는 믿음의 본을 배우시기 바랍니다. 룻에게서 장소와 공간을 뛰어 넘는 위대한 믿음과 사랑을 보게 됩니다. 남편 잃은 젊은 여인이 홀로 남은 시어머니를 받들겠다고 하는 신앙의 위대함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홀로된 시어머니와 홀로된 며느리가 믿음으로 합력하는 모습을 보시기 바랍니다.
베들레헴까지 따라와서 시어머니를 위해서 젊은 여인이 밖에서 이삭을 주워서 봉양하는 모습은 우리에게 얼마나 감동을 주는지 모릅니다. 또한 하나님은 이 룻에게 복을 주시려고 보아스를 만나게 하시는 장면을 우리가 보게 됩니다.
또한 시어머니 나오미는 젊은 며느리가 자기를 따라와서 고생하는 것을 보면서 복을 받게 하려고 베들레헴에서 가장 유력자인 보아스와 자기 며느리를 연결시켜주려고 애쓰고 노력한 모습을 본문을 통해서 보게 됩니다.
서로가 위하고, 사랑하며, 격려하고, 불쌍히 여기는 모습이 믿음의 가정입니다. 바로 이 믿음이 이 가정의 위기를 축복으로 바꾸게 해 준 것입니다. 그래서 훗날 룻이 다윗왕의 증조모가 됩니다. 하나님 앞에서 얼마나 큰 복을 받게 되었는지 모릅니다. 불행이 변해서 축복이 되었습니다.
꼭 부부, 부자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우리 가정에는 많은 문제들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런 가운데서도 어떻게 하든지 믿음으로 문제를 극복할 때는 불행이 축복으로 바뀌게 되는 것을 붙드시기를 바랍니다.

교회 장로이며, 호서대학 총장인 정근모 박사는 탁월한 분이십니다. 중학교 입학할 때에는 국가고시에서 전국에서 1등을 했습니다. 그래서 경기중학교을 입학하게 되었고, 경기고등학교 1등으로 들어갔는데 1등과 2등 점수차이가 너무 많이 났습니다. 모든 선생님들이 그에게 고등학교를 그만하고 대학을 가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대학검정고시를 쳐서 1등으로 통과하고 서울대학 문리대에 입학을 했습니다.
그리고 국비로 미국 미시간주립대학으로 유학을 갔습니다. 거기서 그는 23세에 박사가 되었으며, 또한 프리스톤대학 핵융합 연구원으로 일하게 되고, MIT 핵공학 연구원으로 일하다가 한국에 와서 한국과학기술원인 과학원을 설립했습니다.
이렇게 세상적으로 조금도 부족함이 없는 그의 가정에도 아픔이 있었습니다. 신부전증을 앓은 아들이 있었는데 그 아들은 대학도 못나옵니다. 그는 그 아들에게 정성을 쏟으면서 기도하다가 하나님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을 만난 후에 그는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여러분, 진실한 마음으로 정성껏 기도한 적이 있으십니까? 저는 눈물로 찬양하는 가운데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습니다.내가 너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아느냐? 아픈 네 아들에 대해 한번이라도 감사한 적이 있느냐”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정 박사는 고백했습니다. 하나님의 물음을 듣는 순간 자신의 아버지가 떠올랐다고 말했습니다. 고등학교 1학년 때 검정고시를 보고 서울대학 물리학과에 입학하는 등 공부를 잘한 자신을 매우 자랑스러워하던 아버지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그런 자신이 과연 진정한 효자라고 할 수 있는가를 물었습니다.
“그 당시 사람들은 저에게 너는 효자라고 말했습니다.하지만 아파서 학교도 제대로 못 다닌 내 아들, 그로 인해 하나님께 은혜를 갈구하게 만든 내 아들이 진정한 효자가 아니겠습니까?”
이러한 깨달음을 얻은 뒤로는 제 눈에서 기쁨의 눈물이 흘렀습니다. 정 박사는 그 뒤로는 하루하루가 계시와 이적의 연속이었다고 고백했습니다.

여러분, 그분은 믿음으로 그 어려웠던 과정을 통과할 수 있었습니다. 얼마나 기뻤는지 모른다고 했습니다.
우리 인생의 모든 과정이 어떤 어려움이 다가와도 믿음으로 나아가는 자에게는 그 어려움이 축복으로 바뀌게 해주시는 것을 분명하게 붙드시기를 바랍니다.

둘째로 믿음의 가정에서 부모님의 위치는 공경 받아야할 대상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가정이라는 제도를 만드실 때 처음부터 부모의 권위를 중요시하셨습니다. 부모님을 공경하는 것은 하나님을 경외 하는 것과 같습니다.
레 19;32.에 “너는 센 머리 앞에 일어서고 노인의 얼굴을 공경하며, 네 하나님을 경외하라. 나는 여호와니라”
여기서 부모님 공경의 원문의 뜻은 ‘존경하라’이며, 하나님 경외하라는 것은 ‘두려워하라’는 의미입니다. 높이는 마음, 존경과 순종을 겸한 사랑이 공경입니다.
그러나 오늘 우리의 시대는 이치에 맞지 않으면 어른의 말을 듣지 않는 시대입니다. 그러나 성도는 부모님이 나를 낳아서 양육해 주셨다는 이유만으로도 부모님을 존중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에베소서 6:1-3절에서 “자녀들아 너희 부모를 주안에서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이 약속 있는 첫 계명이니 이는 네가 잘 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나에게 생명을 수여해 주신 부모님을 공경하는 자녀에게 보상으로 생명의 축복을 약속해 주셨습니다.
효는 인간의 도리요, 본분이다. 마땅히 할 일인데 무슨 상급을 바라겠습니까? 그런데도 하나님은 부모에게 효도하는 자에게는 상급을 약속하셨습니다. 효도하는 사람을 높여주실 것입니다. 머리에는 아름다운 관을, 목에는 금 사슬을 걸어주시겠다고 하셨습니다. 존귀를 얻게 해주시겠다는 비유적인 표현입니다.

셋째 어떻게 부모님을 공경해야 하겠습니까?

1) 부모님의 권위를 세워 드려야 합니다.

사람은 자존심으로 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누구나 자존심에 상처를 받으면 삶의 의욕을 상실하게 되며 죽게 됩니다.
어른들은 평생을 통해서 많은 눈물과 뼈아픈 고통을 통해서 얻어진 높은 경험과 경륜이 있고, 그것을 통해 소유한 지혜가 있습니다. 우리는 그분들의 그 모든 노고와 경륜과 지혜를 높이 평가해야 합니다. 이것이 잘되는 길이며, 효도입니다.
젊은 세대에게 부탁하고 싶은 것은 내가 경험하지 않은 것 가지고 큰 소리 치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한 예를 간단히 말씀드린다면, 저는 선배 목사님들이 손주 자랑 하는 것을 볼 때에 손주가 뭐가 예뻐서 그렇게 자랑거리가 되는지 궁금했습니다. 그런데 저도 손주가 생기게 되니까 똑같이 자랑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경험하지 않고는 말하지 말기 바랍니다.

그리고 인생의 실패 때문에 고생하실 때에 어른들에게 물으시기를 바랍니다.
여러분, 어른들에게 남은 것은 무엇일까요? 일하시다가 일도 놓으셨으며, 몸도 쇠약해 지셔서 힘도 다 빠지셨습니다. 어른들에게 남은 것은 자존심 밖에 없습니다. 내가 옛날에 이렇게 이렇게 살아왔으며, 인생과 시대적인 사명을 다해왔다는 것 밖에 없습니다. 이것을 존경해주어야 합니다. 이것이 할 때에 여러분의 가정이 잘되는 줄로 알기 바랍니다.

제가 어렸을 때의 이야기입니다. 이 시대와 맞는지 안 맞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어느 잘되는 집을 지켜보고 있는 친구가 저 친구네 집은 잘되는데 왜 우리 집은 잘되지 않는가? 그래서 친구를 찾아갔습니다. 친구에게 가서 “자네 집은 어떻게 해서 그렇게 잘 되는가?”라고 묻자 “꼭 알고 싶은가?”라고 해서 “꼭 알고 싶다”고 했습니다.
그러면 잘 보여주겠다고 하면서 자기 큰 아들을 불렀습니다. “얘야! 저 송아지를 지붕위로 끌어올려라”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그 큰아들은 자기 부인과 종들을 불러다가 사다리를 놓고 송아지를 지붕위로 끌어올리기 시작했습니다.
친구는 “됐다”고 하고 친구에게 “자네 보았지?”라고 했습니다.
그 친구는 자기 집에 돌아가서 자기 아들에게 똑같이 말했습니다. 그러나 그 아들은 아버지가 송아지를 지붕위에 올려보라고 하자 “아버지, 조금 이상하십니다. 왜 이러십니까?”라고 했습니다.

여러분, 이 두 집은 차이는 간단합니다. “순종”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말씀을 따르고 순종하면서 이치를 따집니까? 그분 말씀의 권위 때문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어른들에게 말씀 순종하는 것은 그분의 권위 때문에 때로는 이치에 맞지 않아도 순종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잘되는 길입니다.

2) 부모님 마음을 평안하게 해드리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부모님의 마음을 즐겁게 해드리려고 하면 대접을 잘 해드리는 것이 아닙니다. 자존심을 잘 세워드리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젊은 자부들이 음식을 하나해도 임의대로 만들지 말고 ꡒ어머니, 오늘 저녁은 무엇이 잡수시고 싶으세요? 라고 물어보시면 때로는 말씀도 하시지만 구체적으로는ꡒ나는 괜찮다. 너희들 좋아하는 것을 하라ꡓ고 하십니다. 이렇게 부모님께 물어보는 것만으로도 기뻐하십니다. 우리 어른들의 자존심을 잘 받들어 드리시기 바랍니다.
부모님들이 자녀에게 무엇을 줄때에는 참으로 기쁘게 줍니다. 자기 주머니에 있을 때에는 힘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늙어서 돈이 없고 힘이 없으면 자녀들에게 돈 얻어 쓰는 것이 얼마나 눈치가 보이고 힘이 빠지는지 모릅니다.
그래서 대부분의 어른들은 자녀들의 덕을 안보고, 자녀들에게 폐를 끼치지 않으려고 합니다. 그것이 부모의 마음입니다. 그러므로 할 수 없이 부모님을 모시고 살아야할 경우에 부모님에게 그런 부분에 눈치 보지 않도록 돌봐주시기 바랍니다.
어떤 어머니는 믿지 않는 자부를 보았는데 “내가 우리 자부가 직장에 가고 나면 냉장고에 있는 것에 손을 대지 못한다”고 하시며 자식의 눈치를 살피는 어머니들이 있습니다.
여러분, 이런 부분을 배려하셔서 늙으신 부모님 방에 작은 냉장고를 하나 마련해 드리고, 먹을 것을 항상 채워 놓으십시오. 그러면 먹을 것 때문에 손주들이 자주 할머니 방에 들어가서 할머니에게 애교를 부리게 되며, 부모님들은 손주들의 재롱을 보면서 얼마나 즐거워하시는지 모릅니다.

제가 신학교 다닐 때 어떤 목사님은 죽을 때 까지 자기 재산을 꼭 움켜쥐고 있다가 죽을 때 주라고 했습니다. 그 말씀은 손주들도 돈을 주어야 오지 돈을 주지 않으면 오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참 야속한 말씀 같았으나 그것이 지혜였습니다.

3) 효도는 복의 근원이라고 했습니다.

이 효도를 잘하면 잘 되고 땅에서 장수하며, 가정이 화목해지는 복을 받는 교육이 저절로 됩니다.

어느 목사님은 자기 부모님에게 매월 십일조를 했는데 시집간 딸이 하나님께만이 아니라 매월 십일조를 자기에게 보내온다고 했습니다. 딸이 저절로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닙니다. 목사님 사모님이 늘 그렇게 해왔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효도하는 것 보다 더 큰 교육이 없습니다.

4) 부모님에게 최대의 효도는 영원한 천국을 알려주는 길입니다.

여의도 K교회에서 초등학교 2학년이 되는 어느 집의 외동딸에게는 고민이 있었습니다. 하루는 꿈을 꾸었는데 정말 천국과 지옥이 있고, 부모님께서 지옥으로 끌려가는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방문을 잠궈 놓고 방에서 우는데 야단이었습니다.
점심때쯤 되어서 방에서 나오는데 그 딸의 눈이 퉁퉁부어 있었습니다. 아버지께서 묻자 “나는 천국 가는데 아버지 어머니는 지옥 가서 어떻게 하느냐”고 했습니다. 이 말을 들은 부모는 어처구니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딸의 눈빛에는 진심이 담겨 있음을 알고 도대체 교회에 무엇이 있기에 내 딸이 저렇게 야단을 피우나 하고 살필 겸 교회에 마지못해 나갔답니다. 그러던 중에 은혜를 받아 지금은 그 교회의 기둥 장로가 되었다고 합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죽으실 때에 육신의 어머니를 사도 요한에게 부탁하고 돌아가셨습니다. 사도 요한은 예수님의 부탁을 받고 끝까지 잘 모셨다고 합니다.
우리 예수 믿는 성도들은 효도하는 가정, 행복이 넘치는 가정, 사랑이 충만한 가정, 화평이 끊어지지 않는 가정을 만들어서 천국과 같은 가정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이것이 믿음의 가정입니다.
저도 형제들이 모이면 제수씨들이 4명인데 제수씨라고 하면 거리가 먼 것 같아서 제수씨라고 부르지 않고, 아이들의 위치에서 숙모라고 부릅니다. 좀더 가까워지려고 그렇게 합니다. 그리고 가벼운 포옹도 해줍니다.
믿음의 가정은 효도하는 신앙의 가정, 행복이 넘치고 사랑이 넘치고 화평이 계속되고 천국과 같은 가정, 신뢰감이 있는 가정이 믿음의 가정이 아니겠습니까?
이 믿음의 기초위에 부모님을 공경하고, 형제간에 우애하며 살아가는 것 보다 더 큰 축복은 없습니다. 반드시 돈이 많아야 행복한 것이 아닙니다. 이렇게 하나님 앞에서 하나 되어 신뢰 속에서 살아가는 것이 큰 축복입니다.

우리 하나님 앞에서 부모님을 향한 경건한 믿음을 가지고 바른 효도를 실천함으로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축복을 룻의 가정처럼 받으시는 가정들이 모두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위기는 기회입니다. 이 위기 때문에 더욱 하나님 앞에 큰 축복을 받는 가정이 되어질 수 있습니다.
젊은 우리 식구들에게 한 가지 부탁을 드립니다.
어른들은 평생을 전통적인 인습의 틀에서 살아오셨습니다. 일평생 굳어왔기 때문에 절대로 변하지 않습니다. 젊은 사람들은 아직 자라고 있기 때문에 부드럽습니다. 그러므로 부드러운 젊은 분들이 어른들에게 맞추어 주시는 가정이 잘되는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어른들은 절대 변하지 않습니다. 이것을 알고 모든 갈등을 풀어나가신다면 주님 안에서 복되고 화목한 가정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