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행복한 가정을 꿈꾸십시오 룻1:15-18 1. 시부모의 자녀사랑 옛날 고려장 시대에 있었던 이야기가 기억납니다. 고려장이란 나이가 든 부모가 살아있을 때 깊은 산에다 부모를 버리는 것입니다. 한 아들이 당시 풍습에 따라 어쩔 수 없이 어머니를 산 깊은 곳에 내다 버리게 되었습니다. 마음은 아프지만 할 수 없었습니다. 병든 어머니를 업고 산길을 갑니다. 이미 알려진 풍습이기에 어머니도 자신이 어디로 가는지 알고 있었습니다. 아들은 애써 웃음 지어 보이지만 아들의 마음은 너무 무거웠습니다 한참을 가는데 어머니가 이상한 행동을 하시는 겁니다. 길에다 솔잎가지는 꺾어다 버리는 것입니다. 아들은 그 어머니의 행동을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묻습니다. 아니 어머니 무얼 하시는 겁니까? 어머니는 빙그레 웃더니 \'네가 집으로 돌아갈 때에는 이미 날이 어두어 길을 잃을까봐 안전하게 집에 다다를 수 있도록 돌아갈 길을 표시하는 것이란다\' 아들은 더 이상 어머니를 버릴 수가 없었습니다. 자기가 감옥에 가는 한이 있더라도 어머니를 버릴 수는 없어 다시 모시고 내려왔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비록 그 당시 하나님의 말씀이 전해지던 시대가 아닐지라도 어머니의 사랑은 성경에서 말하는 부모사랑의 참 모습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어머니의 사랑이 아들에게 전해져서 그 아들도 어머니에게 사랑의 갚음을 하는 아름다운 모습입니다. 성경에 이와 비슷한 아름다운 이야기가 전해 내려오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시부모와 며느리와의 아름다운 가정의 모습니다. 이스라엘이 왕이 통치하기 전, 사사들이 이스라엘 지파들을 다스리고 있었습니다. 때마침 이스라엘에 흉년이 들어 엘리멜렉과 나오미라는 부부가 흉년을 피해 이웃 모압 땅으로 이민을 갔습니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나오미의 남편인 엘리멜렉은 두 아들을 남긴 채 이방 땅에서 죽고 맙니다. 나오미는 두 아들은 모압 여인에게 장가를 보내 며느리를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오르바와 룻이란 며느리입니다. 그런데 이 가정에 또 큰 불행이 닥쳐왔습니다. 두 아들마저 병들어 죽고 만 것입니다. 참 기구한 운명이었습니다. 졸지에 시어머니, 두 며느리, 남편 없는 과부 셋이 남게 된 것입니다. 참 힘들게 살았습니다. 너무 힘들게 살다 시어머니 나오미가 결단을 내립니다. 가기 고향 따 베들레헴에 돌아가기로 결정을 내렸습니다. 그리고, 두 며느리는 자기 고향 땅인 모압 땅에 그대로 남아 재혼을 하든지 알아서 하도록 허락했습니다. 이에 오르바란 며느리는 시어머니 곁을 떠나고, 룻은 시어머니 곁에 남아 후에 예수님의 조상이 되는 영광을 입게 됩니다. 여기서 많은 경우 룻에 초점을 맞춥니다. 그러나 저는 오늘 나오미에 초점을 맞추고 싶습니다. 룻이 그렇게 결정하게 된 배경은 사실 나오미에게 있었습니다. 룻의 고백이 16-17에 나옵니다. 한번 보시기 바랍니다. 참 룻이란 여인은 훌륭한 여인입니다. 시어머니 홀로 고생할까 싶어 끝까지 시어머니 모시기로 마음을 결정했습니다. 그래서 많은 경우 룻에게 초점을 맞춥니다. 그러면 시어머니 나오미는 어떻습니까? 단순히 룻 때문에 유명한 여인이 되었을까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성경은 룻에게 초첨을 맞추고 있기도 하지만 나오미에게도 초점을 맞추는 것을 잊지 않고 있습니다. 저는 이 말씀을 읽으면서, 나오미의 며느리를 향한 아름다운 사랑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나오미가 며느리의 미래를 생각하고 그렇게 말해주지 않았다면, 나오미와 룻의 이런 아름다운 관계는 이루어지지 않았을 것입니다. 내리사랑이란 말이 있습니다. 물이 위에서 아래로 흐르듯이 사랑은 윗사람으로부터 아랫사람으로 흘러내려야 정상이란 말입니다. 성경은 우리가 먼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그 아들 독생자를 주시면서 우리 인생에게 그 어떤 것도 바라시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아낌없이 자기 자신을 우리를 위해서 희생하셨습니다. 오늘 우리가 예수를 믿는 것은 그 사랑, 그 은혜 때문에 믿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 가정 안에 행복을 가져오는 첫 번째 열쇄, 부모와 결혼한 자녀와의 관계 속에 이루어져야 할 성경적 모습은 부모의 이해와 사랑이 먼저라는 것입니다. 시어머니 나오미의 아름다움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그녀는 시어머니로서 며느리의 입장에 먼저 서 주었다는 것입니다. 얼마나 남편 없이 힘들까? 참 사랑과 이해의 눈으로 며느리를 대했습니다. 이렇게 진정한 사랑과 이해로 대하는 모습을 보면서 나오미는 하나님을 믿는 우리 시어머니 모습을 보니 하나님이 정말 살아계시구나. 어머니의 하나님, 나도 믿어야겠다. 어머니 내가 잘 모셔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입니다. 우리나라 유교적 사고에서는 아마 이렇게 생각하고 시어머니 노릇 톡톡히 했을 것입니다. \'어쩌다가 내가 저년을 집 안에 들여서 아들까지 잃고, 이렇게 저주받은 인생을 살까? 너 때문에 이렇게 불행하게 되었다\' 이런 원망과 저주가 섞인 소리를 하는 시부모들이 의외로 많습니다. 안되면 며느리 탓, 자기 중심적 사고에서 떠나지 못합니다. 이런 가정은 불행합니다. 주님이 슬퍼하는 가정입니다. 우리들의 가정 안에 나오미의 모습과 같이 복음적인 시어머님들이 얼마나 될까요? 복음적인 시아버님들이 얼마나 될까요? 저 역시 아들만 둘이기 때문에 룻기를 읽으면서 다짐하고 또 다짐했습니다. 그리고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좋은 며느리 얻는 것 바라기 전에 좋은 시부모 되게 해 주십시오. 성경의 원리는 항상 변하지 않습니다. 사랑은 받는 것이 아니라 주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에 시부모님들이 계십니다. 주님이 가르치시는 성경적 원리는 먼저 사랑하라 입니다. 먼저 이해하라 입니다. 먼저 나누어 주라 입니다. 사랑은 나눌 때 사랑의 진가를 발휘합니다. 사랑을 나누지 못하면 결국 돌아오는 것은 아픔과 상처밖에 없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의 부모님, 시부모님! 성경의 원리로 돌아가십시오. 먼저 사랑하십시오. 자식이 이렇게 해주기를 바라지 마십시오. 그것은 자식들의 몫입니다. 부모의 몫은 끊임없이 사랑을 주고, 위로해 주고, 격려해 주는 일입니다. 사랑으로 자녀들을 가슴에 품어주는 것입니다. 예수님 곁에 아이들이 많이 모여들었습니다. 어쩌면 아이들이 할머니 할아버지의 사랑을 어느 정도 평가해 주지 않나 생각합니다. 아이들만큼 예민한 경우도 없는 것 같습니다. 아이들은 자기를 사랑하는지 이해하는지 잘 압니다. 손자 손녀들이 잘 따르는 할머니 할아버지가 되십시오. 다른 것 없습니다. 사랑을 끊임없이 나누어주는 것입니다. \"나이도 아름다움은 못 가린다.\"는 말이 있습니다. 사랑의 아름다움은 우리 부모님들의 나이를 감추고도 남을 만큼 위대한 능력이 있습니다. 우리 주님 앞에 겸손히 나아가 나는 정말 사랑이 넘치는 시부모인가? 나의 손자 손녀들이 나를 정말 좋아하는 할아버지 할머니인가? 주님 앞에 서게되는 그 날 너는 시부모로서 참 영적 삶을 잘 살았다. 할아버지 할머니로서 신앙의 삶, 본을 잘 보였노라고 칭찬 듣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2. 자녀의 부모사랑 룻의 모습 속에서 자녀의 부모에 대한 사랑을 볼 수 있습니다. 오르바는 떠났습니다. 그러나 룻은 떠나지 않았습니다. 부모나 시부모가 먼저 자녀들을 사랑해야 할 몫이 있다면, 동시에 자녀는 부모나 시부모를 사랑하며 섬겨야 할 몫이 있습니다. 달란트 비유가 있습니다. 가령 부모나 시부모의 자녀들의 가정을 향한 몫이 다섯달란트라고 한다면, 또한 자녀들 역시 부모나 시부모를 향한 몫이 다섯달란트라고 볼 수 있습니다. 주님 앞에 설 때 부모는 부모대로, 시부모는 시부모대로, 자녀들은 자녀들대로 그들의 몫에 대한 평가를 받게 될 것입니다. 오는 말이 고와야 가는 말이 곱다는 는 격언이 있습니다. 이것은 누구나 할 수 있는 평범한 격언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오는 말이 곱지 않아도 가는 말이 고와야 합니다. 가는 말이 곱지 않아도 오는 말이 고와야 합니다. 우리는 세상 사람들과 다릅니다. 우리의 삶의 원리는 언제나 변치 않는 성경말씀에 있습니다. 말씀과 삶이 따로 분리된 가정이 참 많습니다. 복음이 복음으로 역사하지 않는 가정이 많습니다. 이거해라 저거해라 이래서 안된다 저래서 안된다 누구 때문이다. 뭐 때문이다 고 말합니다. 아닙니다. 내 안에 복음의 능력이 있다면, 말로 좇아오지 않습니다. 말의 효력은 삶에서 나타나는 법입니다. 제가 새벽기도 안 하면서 여러분에게 주님도 새벽기도 하셨으니 새벽기도 해야 합니다고 아무리 외쳐보십시오. 속으로 뭐라 하겠습니까? 목사님도 안 하면서 뭐 그러십니까? 할겁니다. 부모가 사랑의 본, 믿음으로 살려 하는 본을 보이지 않는데, 자녀들에게 주일성수해라, 십일조해라, 말이 안 통합니다. 아버님, 어머님! 두 분이나 진실로 믿음으로 사십시오. 시아버님, 시어머님! 두 분을 통해서 먼저 복음의 능력을 체험하고 싶습니다. 겉으로 할 수 없어 하겠지만, 그렇게 교회 나오면, 오히려 신앙에 부정적인 영향이 더 많아질 수 있습니다. 자녀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세상에 완전한 부모, 시부모 없습니다. 자녀들의 편에서 보면, 사랑하고 이해해야 합니다. 어떻게 나를 대하든 그것은 그분들이 하나님 앞에서 책임질 일입니다. 나는 나로서 책임져야 할 부모공경의 몫이 있습니다. 이것은 누구도 대신 져 줄 수 없는 자신의 십자가입니다. 주님 도무지 무거워서 질 수 없습니다. 너무 무거울 수 있습니다. 너무 무거우면 구레네 시몬에게 예수님 십자가 대신 지게 했듯이 십자가 지려하면 하나님 반드시 길 열어주십니다. 선한 역사를 행해 주십니다. 우리 모두가 하나님 앞에 서게 되는 날 우리의 가정 안에 행복을 가로막았던 죄악된 이기적인 부분들을 모두 회개하게 될 것입니다. 사실 그 이전에 정말 행복한 가정을 이루었어야 하는데, 우리가 어리석어 지난 다음에 후회하고 회개할 때가 많습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우리 가운데 부모로서 결혼한 자녀를 두신 분들이 있습니다. 결혼한 자녀와 사시는 부모님들이 계십니다. 떨어져 있지만 같은 토론토에 살고 있는 가정이 있습니다. 동시에 부모님을 모시고 사는 자녀들이 여기 있습니다. 행복한 가정을 꿈꾸십니까? 그럼 먼저 사랑하십시오. 그것이 주님이 우리에게 명하신 행복한 가정을 이루는 삶의 가장 중요한 원리입니다. 이 사랑이 뿌리가 되지 않은 그 어떠한 삶도 결국 불행합니다. 서로의 몫을 성실히 행하십시오. 가정 행복의 원리는 give and take의 원리가 아니라 give and give의 원리입니다. 받으려고 먼저 생각지 마십시오. 그러면 불행해 집니다. 먼저 주십시오. 아낌없이 주십시오. 내 중심에서 생각지 마십시오. 무엇이든지 먼저 나누려고 하십시오. 그러면 정말 행복해 집니다. 무엇을 바라지 마십시오. 사랑은 이기적이 아닙니다. 기억하십시오. 경험보다 앞서는 것이 하나님 말씀입니다. 나이도 아름다움은 못 가린다는 말을 기억하십시오. 주님은 여러분이 아름다운 시부모, 부모가 되기를 원하십니다. 주님은 여러분이 아름다운 자녀가 되기를 원하십니다. 5월 가정을 많이 생각하는 달입니다. 구체적으로 주님께 물으십시오. 우리 가정 안에 무슨 갈등이 있습니까? 겸손히 묻고 먼저 나 자신을 보십시오. 내 안에 원망, 쓴 뿌리를 먼저 보십시오. 시기와 질투심을 먼저 보십시오. 그리고 주님의 사랑의 빛 아래 나가 주님 앞에 겸손히 엎드려 회개하십시오. 주님이 날 사랑하신 그 모습 그대로 내게 드러나 우리 가정 행복하고 화목한 가정 이루게 해 달라고 기도하십시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