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이 넘치는 가정

행복이 넘치는 가정
룻1:6-18





엘리멜렉 가정은 단란하고 아름다웠던 가정입니다. 예기치 않은 흉년이 찾아오고 흉년을 피해서 이방 나라 모압 땅으로 이사를 합니다. 모압 땅으로 흉년을 피해 옮겨 갔지만, 순식간에 엘리멜렉과 두 아들이 죽고 세 명의 과부만이 남는 회복 불능상태가 되어 버렸습니다.

엘리멜렉의 가정에 불어 닥친 흉년이 그랬던 것처럼 아름다운 꿈과 희망을 가지고 출발했던 우리네 가정의 아름다운 기억들을 찢어놓고 갈라놓았던 일들은 얼마든지 있습니다.

가족 간에 이해와 사랑의 흉년이 들어 미움을 반복합니다. 한 치 앞도 내다 볼 수 없는, 소망이 없는 하루하루를 살면서 흉년 때문에 삶의 자리를 옳기지 않으면 안 되었고, 새롭게 살겠다고 시작했던 삶 속에 더 큰 어려움을 만나서 회복할 수 없는 중에 오늘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다시 시작할 수 없도록 세 명의 과부만이 남은 이 가정이 어떻게 하나님 앞에 귀하게 쓰임 받는 가정이 되었습니까? 더 나아가 우리가 지금 누리고 있는 가정의 풍요로움을 지키고 누릴 수 있는 삶의 원리는 무엇이겠습니까? 나오미와 룻의 가정을 통해서 보여주시는 희망의 메시지가 우리가 하나님으로부터 기다리고 있던 그 메시지일 것입니다.



□ 불행과 어려움의 원인을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찾고 회개합니다.

하나님이 약속하신 그 땅은 하나님 백성이 하나님의 백성답게 살 수 있도록 허락하신 축복의 땅입니다. 흉년의 훈련을 통해서 하나님 백성답게 살도록 가르치시기 위하셨음이었는데 하나님의 메시지를 읽고 깨닫지 못하고 고통과 아픔을 피하여 쾌락과 즐거움을 선택했던 자신의 삶과 자기 가정의 선택이 잘못 되었음을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깨닫고 다시 돌아보고 있습니다. 영적인 하나님의 은혜보다는 육체적인 것에 더 관심이 있었고, 또한 자기의 자녀들을 하나님의 후손들로 기르는 것보다는 모압의 이방인들과 결혼시킴으로 하나님의 백성들과는 상관없는 백성으로 살아가게 만들 정도로 무감각해진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뜻과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사명보다는 내 편안함과 편익을 쫓아서 선택했던 나오미의 삶 속에서 빚어진 결과에 대하여 하나님 앞에서 자기의 삶을 돌아보는 나오미는 하나님 앞으로 다시금 돌아가고자 믿음을 선택하여 자기의 인생을 새롭게 시작하는 회개하는 나오미의 아름다운 모습입니다. 사람은 서로를 의지하면서 살도록 되어있습니다. 그러나 나오미는 의지할 것이라고는 없는 고달픈 여인이 되었습니다.

나오미가 고향으로 돌아가서 재기할 힘도, 젊음도, 돈도 가족들도 아무 것도 없습니다. 남은 두 며느리들마저도 친정집으로 돌려보내려고 합니다. 이미 늙어 연약하기에 자녀들의 도움과 보호를 받아야 하는 처지이지만 홀로 서기를 하는 것입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내 남편 의지하고, 내 돈 의지하고, 내 자식 의지했던 것에서 돌이켜 하나님만을 의지하겠다는 신앙과 삶의 결단이 홀로 하나님 앞에 믿음으로 서겠다는 행동으로 드러나고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여러분 가정에 문제가 있습니까? 원치 않은 인생을 살아왔습니까? 뒤돌아 볼 때 후회하고 원망하고 계십니까?

호세아 선지자는 「오라 우리가 여호와께로 돌아가자 여호와께서 우리를 찢으셨으나 도로 낫게 하실 것이요 우리를 치셨으나 싸매어 주실 것임이라 여호와께서 이틀 후에 우리를 살리시며 제 삼일에 우리를 일으키시리니 우리가 그 앞에서 살리라」

오늘 내 삶을 진정으로 회복시키시고 내 가정을 다시 회복시키실 분은 하나님 밖에 없다는 고백을 하고 살아온 인생을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돌아보며 새롭게 정립하는 나오미의 모습이 우리가 취해야 할 삶의 모습입니다.

자녀도, 남편도, 아내도, 물질도 내 인생을 행복하게 하거나 평안하게 하지는 못할 것임을 속히 알아야 합니다. 내 인생의 시작과 마지막이 나를 만드신 하나님께 있음을 기억하고 하나님 앞에서 내 삶을 다시 시작하리라는 그 결단은 희망 없어 보이는 내 가정에 새로운 생명의 출발점이 됩니다.



□ 가정이 회복되고 존귀하게 쓰임 받은 이유는 남은 식구들 속에 남다른 사랑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남겨진 세 과부는 각자 인생 속에 다가온 불행을 받아들이면서 더 심각한 불행으로 가는 길을 선택하지 않았습니다. 불행을 사랑으로 극복하는 놀라운 사랑을 간직하고 있었습니다. 본문을 보면 “함께“ 라는 단어가 무려 5번 나옵니다.

고통과 환난이 닥치면 가족들 간에 원망하고 원인을 다른 가족이나 사람들에게 돌리는 것은 흔히 있는 일입니다. 게다가 남편과 두 아들들을 잃어버리고 자손도 없는 늙은 시어머니 나오미를 무시한다고 누가 뭐라고 하겠습니까?

세 과부가 함께 일어납니다. 어머니가 가는 유대 땅 베들레헴까지 동행하겠다며 두 과부 며느리가 일어섭니다. 문화가 다릅니다. 풍속도 다릅니다. 언어도 다릅니다. 종교도 다릅니다. 모든 것이 낯설고, 물 설은 타국을 향하여 함께 가겠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아니면 두 아들과 남편을 잃은 어머니의 마음을 누가 알아줄까’ 안타까운 마음을 가지고 어머니와 동행하고자 하는 속 깊은 두 며느리를 보게 됩니다.

신명기 23장 3-4까지 보면 암몬과 모압 사람은 여호와의 총회에 들어오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그들이 가도 이스라엘 회중에 들어가지 못하는 주변인의 신세로 전락할 것이 뻔한데도 불구하고, ‘우리가 아니면 어머니의 마음을 누가 위로할까‘ 헤아리며 따라가는 며느리들의 눈물겨운 모습을 보십시오.

어머니 나오미의 모습은 어떠합니까? 며느리들에게 진실 된 사랑에 대해 감사하고 있습니다. 7절, 8절 말씀에 「있던 곳을 떠나고 두 자부도 그와 함께 하여 유다 땅으로 돌아오려고 길을 행하다가 나오미가 두 자부에게 이르되 너희는 각각 어미의 집으로 돌아가라 너희가 죽은 자와 나를 선대한 것같이 여호와께서 너희를 선대하시기를 원하노라」

젊은 며느리들에게 그들 자신을 위한 삶이 따로 있다는 것을 이해하는 어머니와 함께 붙들고 우는 두 며느리의 모습이 아름답지 않습니까? 이 눈물은 사랑의 눈물입니다. 서로의 처지와 형편을 이해하는 가족들을 하나님은 결단코 버리지 아니하셨습니다. 이러한 이해와 사랑이 있는 가정이 망하는 것을 저는 한 번도 보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또한 아무리 좋아 보이는 가정도 이 사랑이 없으면 부서집니다. 가정생활 하면서 가장 이해하지 못하고 지나치는 대상이 누구입니까? 우리의 부모님들이 아닙니까? 그 중에서도 특별히 우리 어머님들이 아닙니까?

여러분! 우리들의 어머니 마음을 모른다면 우리는 한 가족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우리의 편리와 이익과 유익을 찾아서 판단하며 우리의 필요를 따라서 생각하는 그런 사랑은 진정한 사랑이 아닙니다.

우리가 회복할 사랑이 무엇입니까? 가족간의 대화가 없고 서로의 아픈 마음을 알아 줄 수도, 함께 눈물을 흘릴 수도 없는 가정이라면 그 가정은 진정한 주 안에서의 사랑을 회복해야 합니다.



□ 이 가정에는 하나님을 믿는 나오미와 룻의 공동 기도 고백과 신앙 고백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을 향한 같은 신앙 고백이 있었기 때문에 이 가정을 회복시켜 주셨던 것입니다. 신앙이 하나 된다는 것은 단순한 일치감이나 평안을 위해서가 아닙니다. 특히 어려울 때일수록 그러합니다. 14절 말씀을 보면 시어머니 나오미가 자기의 자부들에게 자신들의 갈 길을 가라고 권고할 때에 「그들이 소리를 높여 다시 울더니 오르바는 그 시모에게 입 맞추되 룻은 그를 붙좇았더라.」라고 했습니다.

같은 고백이 16절,17절에 나옵니다. 「어머니께서 유숙하는 곳에 나도 유숙하며, 어머니의 백성이 나의 백성이 되고 어머님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시니 어머님이 죽으시는 곳에서 나도 장사될 것이라.」라고 고백합니다.

남편과 두 아들이 죽을 때에도 죽음 앞에서도 철저하게 신앙 고백을 했던 그 나오미, 모든 것을 다 잃어버리고 희망이 없어 좌절하여 주저앉아 울고 싶을 그 순간에 절망을 툭툭 털고 일어나서 ‘내 삶이 하나님께 있노라. 내 생명이 하나님께 있노라. 내 축복이 하나님께 있노라.‘ 고백하며 인생의 거친 길을 걸어가는 모습 속에서 룻은 하나님을 볼 수 있었을 것입니다.

사랑하는 우리의 어머니, 아버지들! 고난과 어려움과 절망의 환경이 오면 원망하고 불평하고 낙심하는 모습이 아니라, 하나님을 의지하는 신앙으로 굳게 일어서는 어머니, 아버지가 되어야 합니다. 천금으로도 살 수 없는 신앙의 아름다운 유산이 자녀들에게 물려지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기억해야 하며, 잊어서는 안 됩니다. 그 신앙을 보시는 하나님은 나오미와 룻을 통해서 메시야의 조상으로 세워주셨던 것입니다.

로마제국 멸망사를 기록했던 에드워드 기본이라는 역사가는 로마제국의 멸망이 바로 가정의 타락에 있었다고 이야기합니다. 급속한 가정의 파괴와 종교의 타락이었습니다. 절대성을 상실한 하나님의 말씀의 기준이 쾌락과 상황이라는 것에 도전을 받을 때, 튼튼했던 철의 나라 로마는 멸망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었습니다.

진정 행복이 무엇인지, 사랑이 무엇인지, 가족이 무엇인지, 어머니가 누구인지를 믿음 가운데 깨달을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우리들의 가정은 어떠하십니까? 진정 회복해야 할 것이 무엇입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