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사시대의 한 가정 삿17:1-6 우리는 어렸을 때부터 이상한 미신적인 이야기들을 너무 많이 듣고 자라왔습니다. 예를 들면 머리에 가마가 여러 개 있으면 여러 번 결혼한다는 식의 이야기입니다. 어렸을 때 제 친구 중 하나가 가마가 네 개나 있었는데 친구들이 앞으로 이 아이는 네 번이나 결혼할 것이라고 얼마나 놀리고 이 아이가 울면서 집으로 들어갔던 일도 있었습니다. 사실 아무런 근거도 없는 이야기인데 사람들은 그런 미신적인 이야기를 의심 없이 잘 믿습니다. 그런가 하면 사람이 한 번 사고로 죽은 장소에서는 해마다 한 명씩 죽는다는 것입니다. 물에 빠져 죽은 장소도 그렇고, 기차에 치어 죽는 장소도 그렇고 꼭 그 자리에서 죽는데 그 이유가 먼저 죽은 귀신이 계속 그 자리에서 산 사람을 데려 간다는 것입니다. 어쩌다 한 두 번 맞아 떨어진 것을 가지고 마치 그것이 진리인양 참 많은 사람들이 의심 없이 잘 믿습니다. 물론 저는 사탄이 사람들로 하여금 그렇게 속도록 장난을 하고 있는 면도 있다고 생각을 합니다. 아무튼 사람들에게 있어서 미신은 아무 것도 아닌 것을 믿게 할 뿐 아니라, 그 미신의 영향력에서 벗어나지 못하도록 하는 힘이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도 미가의 어머니의 저주와 그 저주 자체에 주술적인 신통력이 있다고 믿던 미신적인 모습들, 그리고 다시 그 저주에 상응하는 축복의 말을 함으로 저주의 힘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미가의 어머니의 미신적인 모습들을 보게 됩니다. 이제 본문 17장부터 마지막 21장까지에서 우리는 두 가지 큰 사건을 보게 됩니다. 하나는 미가의 신상 사건이고 다른 하나는 한 레위인과 베냐민 지파와 얽힌 살상 사건입니다. 그리고 그 두 사건을 통해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이 얼마나 죄와 불법과 무질서와 어두움 속에 있는지 하는 것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이 두 사건은 사사시대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오늘 우리들의 시대의 모습, 아니 우리들의 신앙 상태와 우리의 진리를 거스리는 마음의 상태를 너무나 잘 투영하고 있는 사건들입니다. 오늘 우리는 그 두 사건을 살펴보는 첫 시간에 상당히 종교적인 것 같은 한 가정, 어떤 면에서 보면 상당히 믿음이 좋은 것 같은 한 가정을 통해 우리 자신을 돌아보며, 정말 진리 가운데 서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자 하는 다짐과 변화가 있기를 원합니다. 1.겉으로 드러난 이 가정의 믿음이 좋은 모습입니다. 이 가정은 겉으로는 얼마나 믿음이 좋은 것처럼 나타나는가 하면 먼저 그 등장 인물의 이름을 통해 알 수 있습니다. 그 이름이 1절에 보면 미가입니다. 이 미가라는 단어가 히브리어 원문에는 <미카예후>라고 되어 있습니다. 좀 더 여러분들이 쉽게 알아듣도록 하기 위해서 <미카야훼>라고 하면 좀 더 이해하기가 쉬울 것입니다. 여기 <미카>라는 앞 부분의 뜻은 <누가 뭐와 같으냐?>라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미카예후>, 혹은 <미카야훼>하면 <누가 야훼와 같으냐?> <누가 여호와와 같으냐?>라는 뜻이 됩니다. 여러분이 또 잘 아는 이름이 있습니다. 미카엘이라는 이름입니다. 이것은 천사장의 이름입니다. 이 미카엘에서 <엘>이라는 것은 <하나님>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미카엘이라는 이름의 뜻은 <누가 하나님과 같으냐?>라는 뜻이 됩니다. 결국 미가라는 이름은 <여호와면 전부다, 여호와는 가장 높으신 분이다. 여호와가 최고다>라는 뜻입니다. 그 타락한 사사시대에 여호와 하나님이 최고라고, 여호와 하나님이 계시기에 더 이상 없다고 하는 이름을 부모가 지어주었고, 그런 이름을 지어준 가정입니다. 제 친구 목사 중에 자녀들이 있는데 그 이름이 믿음이 소망이 사랑이, 그리고 막내가 아멘입니다. 그 자녀들 이름만 보아도 그 집안은 믿음의 가정이라는 것이 잘 드러납니다. 자, 이름이 미가라는 것을 통해 겉으로 얼마나 믿음이 좋은 것처럼 나타나는지 하는 것은 그만큼 살피고, 이제 2절 뒷부분에서 그 어머니가 하는 말을 봅니다. <그 어미가 가로되 내 아들이 여호와께 복 받기를 원하노라> 얼마나 믿음이 좋은 말입니까? 돈을 잃어버렸다가 아들이 도로 가져왔을 때 어머니의 입에서 나온 말입니다. <내 아들이 여호와께 복 받기를 원하노라> 여호와 하나님으로부터 복을 받기를 원하는 이 말이 얼마나 매끄러운 신앙인의 말입니까? 3절에서도 우리는 그 어머니의 아주 신앙적인 말을 듣습니다. 중반 이후에 보면 <내 손에서 이 은을 여호와께 거룩히 드리노라> 자기 손에 있는 많은 돈을 하나님께 거룩하게 바친다는 것입니다. 그가 바친 돈이 얼마나 되는 줄 아십니까? 은 이백입니다. 우리가 17:10을 통해 보면 레위인 한 사람에게 1년에 은 열과, 의복 한 벌 그리고 식물을 주기로 하고 고용하는 것을 봅니다. 그러므로 은 200은 아주 큰 액수의 돈입니다. 그 큰 액수의 돈을 여호와께 거룩히 드린다는 이 미가의 어머니의 표현은 얼마나 믿음이 좋은 모습으로 보여지는지 모릅니다. 그리고 이 가정이 얼마나 겉으로 보기에 믿음이 좋은 가정으로 나타나는지 하는 것은 5절에서도 엿볼 수 있습니다. 개인의 신당이 있습니다. 제사장이 입는 에봇을 만들었습니다. 자기 아들 중 하나를 제사장으로 삼았습니다. 이런 행동들이 잘했다고 하는 것을 제가 지금 말하려는 것이 아니라 얼마나 종교적이고 얼마나 믿음이 좋은 것처럼 당시 사람들에게 비춰지고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자 이제 이 가정이 겉으로 얼마나 믿음이 좋은 모습을 가지고 있는지 하는 것을 정리해 봅시다. 이름 자체가 여호와가 최고라고 하는 <누가 여호와와 같으리요?>라는 뜻입니다. 아들을 위해 <내 아들이 여호와께 복을 받기를 원하노라>라고 축복을 합니다. 거액의 돈을 가지고 <내 손에서 이 은을 여호와께 거룩히 드리노라>라고 합니다. 개인적으로 신당까지 만들고, 대제사장이 입는 에봇도 만들고, 자기 아들 중에 하나를 제사장으로 세웁니다. 하지만 이 가정이 얼마나 빈 껍데기인지 하는 것이 오늘 본문에서 볼 수 있는 모습입니다. 저는 이 말씀을 준비하면서 저를 돌아봅니다. <혹시 내 모습이 빈 껍데기 미가의 모습, 우리 가정이 이 빈 껍데기 미가의 가정이 모습은 아닐까?>하는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다른 사람, 다른 가정을 바라보지 마시고 여러분 자신, 여러분 가정을 돌아보십시오. 혹시 여러분 자신이 지금까지 빈 껍데기 신앙인의 모습, 빈 껍데기 신앙인의 가정의 모습을 가지고 있지는 않으십니까? 너무나 기독교적인 것 같고, 말도 성경까지 언급하면서 하지만 빈 껍데기만 붙들고 있지 않느냐는 것입니다. 만일 우리가 빈 껍데기라면 이제부터 다시 시작해야 합니다. 이제라도 늦지 않았습니다. 오늘 복된 주일날 다시금 여러분의 신앙을 깊이 돌아보며, 더 이상 빈 껍데기가 아니라 속이 꽉 찬 알곡 신앙인들로 사는 은총이 있기를 바랍니다. 2.이 가정의 문제점을 같이 찾아보고 싶습니다. 겉으로는 아주 신앙이 좋은 것 같은 모습을 취하고 있지만 이 가정의 문제점이 무엇이냐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내용을 다시 정리해보면 이렇습니다. 미가의 어머니가 은 일천 일백을 잃어버렸습니다. 아들 미가가 훔쳐간 것입니다. 은 일천 일백이 얼마나 큰돈인가 하는 것은 조금 전에 설명 드렸습니다. 그 큰돈을 도둑맞고 미가의 어머니가 저주를 한 것입니다. 저주의 내용은 상세하게 나와있지 않지만 아마 그 미가의 어머니가 심각한 저주를 한 것 같습니다. 아주 심각한 저주를 하는 어머니의 저주를 듣고 미가는 당시 저주에는 신통력이 있어서 반드시 저주를 받는다는 미신을 굳게 믿고 있으면서, 그 마음이 심히 두려워서 그 어머니에게 도로 가지고 간 것입니다. 그러자 그 어머니는 돈을 찾은 기쁨도 있었겠지만 자기가 내린 저주의 말이 아들에게 돌아갈까 염려하면서 <내 아들이 여호와께 복 받기를 원하노라>라는 축복의 말을 가지고 자기가 했던 저주의 말을 상쇄시키려고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으로도 사실 안심이 되지 않으니까 은 이백을 내놓으면서 <이 은을 하나님께 드린다.>고 하는 것입니다. 또 그 돈으로 신상을 부어만들고 에봇도 만들고 드라빔도 만드는 것입니다. 먼저 무슨 문제가 발견됩니까? 미가의 어머니가 돈 때문에 저주를 합니다. 자기의 돈이 없어졌다고 얼른 저주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성경을 보면 성경적인 저주가 나옵니다. 신27:15이하를 보면 그 첫 번째가 <장색의 손으로 조각하였거나 부어 만든 우상은 여호와께 가증하니 그것을 만들어 은밀히 세우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라 할 것이요 모든 백성은 응답하여 아멘 할지니라>입니다. 곧 우상을 만들고 섬기는 자는 저주를 받는다는 내용입니다. 그런가 하면 늘 사랑과 은혜를 전하던 바울 사도도 그 입에서 저주의 말이 나왔습니다. 갈1:8을 보면 <그러나 우리나 혹 하늘로부터 온 천사라도 우리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찌어다>라고 합니다. 결국 저주가 하나님과 하나님의 말씀과 관계된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 미가의 어머니는 돈 때문에, 자기의 재물의 손해 때문에 쉽게 남을 저주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아들이 돈을 도로 가져왔을 때 아주 자비롭고 관대한 어머니같이 보이지만 사실 올바른 자세가 아닙니다. 도둑질한 자식을 징계하거나 책망을 하지도 않을뿐더러 잃은 돈을 찾았다는 것만으로 흡족해 합니다. 잠13:24을 보면 <초달을 차마 못하는 자는 그 자식을 미워함이라 자식을 사랑하는 자는 근실히 징계하느니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자기 자식 잘못은 사랑으로 늘 덮어주고 다른 사람들의 죄만 지적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더 나아가 하나님의 이름까지 들먹이면서 아들을 축복하는 것을 보면 이 사람은 돈 때문에 저주하고 돈 때문에 축복하는 사람이라는 것이 아주 잘 보이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는 다시 <여호와께 복을 받기를 원한다>고 하면서 그 돈의 일부를 가지고 자기 아들을 위해서 우상을 만듭니다. 제사장이 입는 옷, 에봇을 만들어 마치 그 옷 자체에서 복이 나오는 것처럼 한 것도 문제요, 가정의 수호신이라고 하는 당시 이방인들의 우상을 만든 것도 문제입니다. 그리고 레위인 중에서 제사장으로 세워야 하는 하나님의 말씀도 무시한 채 자기 아들 중에 하나를 제사장으로 세우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것 같고 하나님을 위하는 것 같은데 말씀을 무시하고 제 생각대로 제 멋대로 하는 것이 오늘 이 가정의 모습입니다. 이 가정의 문제는 한 마디로 자기들의 행복만을 추구하는 자들의 모습입니다. 자기들이 어떻게 살든 저주받지 않고 돈도 넉넉하고 하나님의 복을 받고, 혹은 하나님이 아니면 드라빔이든 어떤 신상이든 어떤 것을 통해서든 행복했으면 좋겠다는 것이 이 가정의 추구하는 모습입니다. 이것이 어찌 미가의 가정에서만 볼 수 있는 모습이겠습니까? 오늘 우리들의 모습을 너무나 잘 투영해주고 있는 것이 아니냐 하는 것입니다. 돈 때문에 저주하고 돈 때문에 축복하고, 자식의 잘못은 적당히 덮어주면서 그저 자식이 잘되기만 바라고 축복만 하는 모습, 하나님이 기뻐하신다고 생각하는 것이든 아니든 이것저것 세워 놓고 행복만 추구하는 모습, 우리가 기억해야 합니다. 거기 결코 진정한 행복이 없습니다. 겉으로는 아주 믿음이 좋은 것 같은데 속은 자기의 행복추구만으로 가득 찬 모습이 바로 내 모습은 아닌지, 오늘 복된 주일을 맞으면서 다시금 돌아보시고, 정말 하나님이 주시는 진정한 행복을 찾으시기를 바랍니다. 3.이 가정의 중요한 문제점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사사기 기자는 아주 간단하게 이 가정의 신앙을 진단해 주고 있습니다. 같이 6절을 읽습니다. <그 때에는 이스라엘에 왕이 없으므로 사람마다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 사사기의 주제 구절(key verse)라고 할 수 있는 말씀이고, 우리에게 주는 중요한 메시지가 담겨 있는 구절입니다. 이렇게 겉으로는 굉장한 믿음이 있는 것 같은 가정이지만 빈 껍데기인 이유, 헛된 행복만을 추구하는 이유는 왕이 없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자기 소견대로 살아가는 시대였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법도대로 하나님의 나라를 올바로 다스려갈 왕이 없습니다. 더 나아가서 진정한 왕이신 하나님께서 그 마음에서 다스리시고 그 가정에서 다스려야 하는데 돈이 다스리고, 거짓 행복이 다스리면서 자기 멋대로 자기 뜻대로 자기 소견대로 살아가는 것이 문제라는 것입니다. 이제 정말 여러분이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는지, 하나님의 말씀이 여러분을 다스리는지 다시금 깊이 돌아보는 귀한 시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우리 자신이 지금까지 빈 껍데기 신앙인의 모습, 빈 껍데기 신앙인의 가정의 모습을 가지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봅시다. 너무나 기독교적인 것 같고 말도 성경까지 언급하면서, 하지만 빈 껍데기만 붙들고 있지 않는지 말입니다. 그리고 만일 우리가 빈 껍데기라면 이제부터 다시 시작하는 은총이 있으며, 돈 때문에 저주하고 돈 때문에 축복하고, 자식의 잘못은 적당히 덮어주면서 그저 자식이 잘되기만 바라고 축복만 하는 모습, 하나님이 기뻐하신다고 생각하는 것이든 아니든 이것저것 세워 놓고 행복만 추구하던 모습이 우리 모습은 아닌지 돌아보며 하나님을 왕으로 하고 말씀을 표준으로 하여 진정한 행복을 누리며 살아가는 은총이 있기를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