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마무리를 잘하는 모세

인생의 마무리를 잘한 모세
신34:1-8





모세 그는 누구인가! 애굽나라 바로의 폭정 아래 태어난 이스라엘 레위지파 족속의 씨에서 태어난 아들입니다.

그는 40년 동안 바로의 궁정에서 공주의 아들로 자라다가 미디안 광야로 도망을 갔고 40년 후에 다시 돌아와 이스라엘 민족을 영도하여 애굽을 탈출한 위대한 정치가요 종교지도자요 학자였습니다.

여기 모세의 인생이 120세로 파란만장한 그의 생애를 마감하는 내용이 본문에서 나옵니다. 모세는 하나님과 이스라엘을 위해서 산 사람입니다.

모세는 이스라엘의 피를 받고 태어났지만 바로의 궁정에서 공주의 아들로 자랐습니다. 그는 애굽의 문물을 배웠고 권력과 영화도 누릴 수 있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부러워한 부귀영화를 그는 박차고 미디안 광야로 도망을 갑니다.

그 이유가 무엇인가? 히브리기자가 설명하고 있습니다. 히 11장 24절 이하에서 이렇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믿음으로 모세는 장성하여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을 거절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 받기를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더 좋아하고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능욕을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겼으니 이는 상 주심을 바라봄이라’고 했습니다.

모세는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살기를 원했습니다.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고난을 세상 보화보다 귀하게 여겼습니다. 오늘을 살아가는 성도 여러분의 믿음이시기를 원합니다.

그러면 모세의 120년의 마감하는 그의 인생결산은 어떠한 것인가?



Ⅰ. 모세는 이름대로 산 사람입니다.



모세가 마지막 죽음을 앞에 놓고 느보산에 오르게 되었습니다.

이 때 하나님이 모세에게 보여준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한마디로 가나안땅을 보여주셨습니다.

신 34:1-3 모세가 모압 평지에서 느보 산에 올라 여리고 맞은편 비스가 산꼭대기에 이르매 여호와께서 길르앗 온 땅을 단까지 보이시고 2 또 온 납달리와 에브라임과 므낫세의 땅과 서해까지의 유다 온 땅과 3 남방과 종려의 성읍 여리고 골짜기 평지를 소알 까지 보이시고

모세에게 보여주신 것은 가나안을 땅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그리고 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그 말씀에 내용은 4절에 있습니다.

신 34:4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이는 내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맹세하여 그 후손에게 주리라 한 땅이라 내가 네 눈으로 보게 하였거니와 너는 그리로 건너가지 못하리라 하시매

보이신 후에 하나님은 모세에게 하신말씀이 있습니다. 그 내용은 너는 네 눈으로 가나안을 보았지만 그리로 건너가지는 못한다고 하였습니다.

왜 무엇 때문에 그리로 건너가지 못하여야 하는 것인가 하는 의문을 갖습니다. 가나안을 건너가지 못한다고 하는 것은 약속의 땅입니다. 젖과 꿀이 흐르는 땅입니다. 이상향입니다. 하나님이 하시면 할터인데 어찌 하나님이 그토록 모세를 사용하시고 마지막 약속에 땅에 들어가지 못하게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여기에 대해서 모든 사람들은 모세의 죄악으로 인하여 들어가지 못하였다고 합니다.



그 내용은 어떤 것입니까 ?

민 20:7-13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8 지팡이를 가지고 네 형 아론과 함께 회중을 모으고 그들의 목전에서 너희는 반석에게 명하여 물을 내라 하라 네가 그 반석으로 물을 내게 하여 회중과 그들의 짐승에게 마시울지니라 9 모세가 그 명대로 여호와의 앞에서 지팡이를 취하니라 10 모세와 아론이 총회를 그 반석 앞에 모으고 모세가 그들에게 이르되 패역한 너희여 들으라 우리가 너희를 위하여 이 반석에서 물을 내랴 하고 11 그 손을 들어 그 지팡이로 반석을 두 번 치매 물이 많이 솟아 나오므로 회중과 그들의 짐승이 마시니라 12 여호와께서 모세와 아론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나를 믿지 아니하고 이스라엘 자손의 목전에 나의 거룩함을 나타내지 아니한 고로 너희는 이 총회를 내가 그들에게 준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지 못하리라 하시니라13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와 다투었으므로 이를 므리바 물이라 하니라 여호와께서 그들 중에서 그 거룩함을 나타내셨더라

모세의 일평생동안에 그와 함께 하시던 하나님입니다. 그와 더불어 하나님이 함께 하였다면 죄를 짓는 일에 개입하셔서 하지 못하게 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죄가 있다면 사할 수 있는 권세가 하나님에게 있을 터인데 용서하시면 되지 않겠느냐 하는 생각도 할 수 있다. 가나안은 영원한 천국의 모형이요 가나안은 구원의 상징입니다. 그렇다면 모세는 구원을 받지 못했단 말인가 ? 하는 생각을 가진다.

그러나 모세는 분명 구원을 받은 하나님의 사람입니다. 구원 받은 사람이라면 어찌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하게 하셨을까?

모세라는 이름은 의미는 물에서 “건져내다”의 뜻이 있습니다. 그리고 모세는 그의 이름의 의마 하는 바가 있습니다. 더 중요한 이름의 내용은 우리가 익히 아는 대로 그는 율법의 상징이다.

모세의 이름은 율법의 대표성을 띄우게 되고 구원의 대표성을 띈 이름은 여호수아 즉 예수라고 하는 말이기도 합니다.

가나안을 들어가는 것은 구원을 상징한 말인데 여호수아의 의하여 이스라엘 백성을 가나안을 들어가게 되었고 모세는 율법의 상징으로서 구원을 보이는 일에 불과하고 자신은 들어 가지 못하였다. 율법은 몽학선생이요 구원을 보여주는 것이 율법입니다.

율법으로는 구원이 불가능합니다. 여호수아 즉 하나님의 은혜로서만 가나안에 들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천국은 은혜로 받는 구원이지 율법으로는 구원이 불가능하다고 하는 것입니다.

모세는 율법의 상징되어진 인물로서 무리바 반석을 친 것으로 죄가 되어 가나안의 주인공이 되지 못하게 된 것입니다. 이 같이 모세는 이름대로 산 사람이지만 구원에서 완전히 제외된 것이 아니라 죽음 후에 가나안을 정복하게 된 것입니다.

모세는 자기 이름대로 충실하게 산 사람 가운데 하나입니다. 나의 일년 동안에 되어진 사건을 생각할 때 나의 이름대로 산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의 이름은 부모님이 지어주신 이름이 아니라 하나님이 지어주신 이름이 있습니다. 그 이름은 크리스 챤입니다. 그리스도의 사람으로 조금도 손색이 없이 살았는지 아니면 되는 대로 인생을 살았는지 한번 생각할 수 있는 성도가 되기를 바라마지 않습니다.

내 이름의 걸 맞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즉 다시 말하면 주님의 이름에 더럽히지 않고 영화롭게 살아야 한다고 하는 것입니다. 나의 1년 12달 동안에 나를 통한 주님을 자랑하는 삶이 되었는지 한번 우리의 모습을 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동명이인(同名異人)

알렉산더 대제 휘하에 알렉산더라는 병사가 있었습니다. 그 병사는 형편없는 생활을 하면서 알렉산더라는 이름을 먹칠을 하고 다니는 사람이었습니다. 어느 날 알렉산더 대제는 알렉산더 병사가 있는 막사로 찾아가 다음과 같이 명령을 했습니다. ”자네 이름이 알렉산더라지? 그렇다면 자네 이름을 바꾸던가 아니면 자네의 생활 태도를 바꾸도록 하게!” 우리에게도 병사와 같은 모습이 있습니다. 즉, 이름은 그리스도인이지만 행동은 전혀 그리스도인답지 않게 하는 것입니다. 당신은 어떻습니까? 자칭 그리스도인은 아니신지요? 그리스도의 이름에 부합한 삶을 살아가는 성도들이 되기를 바라마지 않습니다.



Ⅱ. 무덤을 남기지 않았습니다.



사람이 죽으면 무덤을 만들어 무덤에 장예 지내게 됩니다. 모세는 무덤을 남기지 않았습니다.

신 34:5-6 이에 여호와의 종 모세가 여호와의 말씀대로 모압 땅에서 죽어 6 벧브올 맞은편 모압 땅에 있는 골짜기에 장사되었고 오늘까지 그 묘를 아는 자 없으니라

모세가 죽어 모압 땅 골짜기에 장사지냈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그 묘는 있지 않다고 말합니다. 이 같은 모순 된 일이 있을까? 죽어 장사지냈지만 무덤이 없다고 하는 것은 무엇인가? 모세가 죽은 후에 많은 사람들은 모세의 무덤을 무던히 찾았을 것이다. 그러나 찾지 못하였고 신비로 남겨진 사건이다. 여기에서 많은 말이 있다. 모세는 산채로 하나님 앞으로 승천하였다고 하는 전설이 있다고 한다.

지상에 그의 무덤이 있다고 하더라도 신비적으로 그 무덤을 발견하지 못하게 하는 하나님의 섭리와 신비가 있을 수도 잇다. 왜 무덤이 없을까? 그 이유는 다른데 있지 않고 그는 사람들에게 죄를 범하지 못하게 하기 위함이라 하겠다. 이 말은 모세는 우상 같은 존재입니다. 그의 생전에 되어진 사건을 바라볼 때 모든 사람들에게 존경과 찬양을 받기에 넉넉한 사람입니다. 이스라엘 60만 대군을 이끌어 출애굽 시킨 장본인이고 수많은 기적과 이적을 베푼 사람이다. 자기 위해 산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과 이스라엘을 위한 사람입니다. 감히 누가 저를 추종할 수 있겠습니까? 전연 따를만한 사람이 없도록 한 특별한 존재입니다. 이 모세는 참으로 훌륭한 업적과 공로를 남긴 사람입니다. 도마의 손가락이 우상 되는 판국에 모세의 무덤이 있다면 모든 사람들에게 숭상의 존재가 될 사람임에는 틀림없다.

이것을 차단하기 위해 무덤을 남기지 않은 것으로 믿어집니다. 그의 인생의 총결산을 생각한다면 죽어서도 다른 사람에게 하나님만 찬양하고 경배하게 하기위한 산 사람임을 우리에게 보여준 교훈의 사람입니다. 죽어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무덤을 남기지 않고 인간은 하나님만 섬기도록 되어 있음을 교훈한 산증인이다. 저는 죽었으나 지금도 말하는 사람입니다. 인간의 공로나 업적이나 무더을 섬길 것이 아니라 하나님만 섬길 것을 교훈하고 있습니다. 이 것이 모세의 인생 120세의 총 결산의 모습입니다.

오늘 우리들은 한해를 지내면서 나의 삶에서 진정으로 나의 하는 모든 행동 하나하나에 나를 지켜보는 모든 사람들에게 하나님만 섬겨야 한다는 교훈을 주고 있어야 한다. 인간의 냄세를 풍기고 물질에 매인바 되어 수전노라고 하는 더러운 생활로 주님의 져 버린 삶을 살지 않았는지 한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한해를 보내면서 결산하는 우리의 모습에서 하나님만 섬겨야 한다는 산증인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무덤을 남기지 맙시다. 무덤으로 숭상치 않도록 하는 모세처럼 나의 업적과 공로로 나를 따르고 나를 믿도록 하는 어리석은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된다.



Ⅲ. 모세는 젊어서 죽은 사람입니다.



신 34:7 모세의 죽을 때 나이 일백 이십 세나 그 눈이 흐리지 아니하였고 기력이 쇠하지 아니 하였더라, 모세는 120세를 살았다. 눈을 감아 생을 마감하였습니다. 그런데 120세까지 산 사람이 눈이 흐리지 않고 기력이 쇄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이 말은 젊은이 못지않도록 건강이 좋았다고 하는 말입니다. 이 말은 한마디로 자신의 몸 관리를 잘하였다고 하는 말이다. 우리의 몸은 하나님이 주신 몸입니다. 이 귀한 생명을 담고 있는 몸을 관리 잘할 수 있는 성도들이 되어야 할 것을 교훈한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서로 만나게 되면 안녕 하십니까 요즘은 건강이 어떻습니까? 묻기도 하고 인사로 주고받는 대화가 건강입니다. 물론 죽고 사는 문제는 하나님에게 있다고 하지만 사는 동안에는 건강을 관리하는 것은 인간의 몫이다. 인간의 내용은 하나님이 주신 육체에 대한 관리를 잘 하십니까? 하는 이야기입니다. 신앙인들은 청지기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육신을 잘 관리를 해야 할 사명이 있습니다. 사람들은 만나면 종종 나이를 묻기도 합니다. 나이를 가르쳐 주면 상당히 나이에 비해서 젊다고 하든지 아니면 나이보다 더 늙었다고 하는 말들을 합니다. 젊다고 하는 말은 건강관리를 잘하였다고 하는 말이며 늙었다고 하면 건강관리를 잘못하였다고 하는 이야기나 다름없습니다.

나이가 들어도 몸 관리를 잘한 사람들을 종종 봅니다. 120년 동안을 살았으면서도 그는 쇠하지 않고 기력이 좋다는 기록을 남긴 모세 같은 청지기로소 관리를 잘하는 성도들이 되기를 바라마지 않습니다.



맺는 말



모세의 인생결산은 진리의 연속성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모세는 죽었지만 그가 이끌어온 가나안 행군은 중단되지 않았다는 말입니다. 눈의 아들 여호수아를 통하여 모세가 이루지 못한 가나안 정복의 꿈을 실현 시키고야 말았습니다.

인간 모세는 갔지만 그가 이끌어온 가나안 정복의 행군은 끊이지 않고 이어져 왔습니다. 우리 인생은 끝나도 내가 믿는 하나님, 내가 믿는 믿음, 자손만대에 이어지게 해야 합니다.

나는 이 세상에서 왔다가 가지만 나의 평생에 계획하였던 것이나 행동하였던 모든 영적인 것들이 내가 죽어 없어도 앞으로 계속 진행되어지는 일이 있어야 한다.



행상이 아니라 좌판 놓고 하는 장사

먹고 살기 위해서 장사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장사의 다양성을 보면 물건을 들고 다니면서 파는 행상이 있는가 하면 가만히 앉아서 좌판을 놓고 장사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행상하는 사람은 자신 없으면 안 됩니다. 그러나 좌판을 놓고 하는 장사는 자신이 없더라도 다른 사람이 장사를 계속할 수 있다.

이 같이 나의 살아생전에 하던 일들이 내가 죽은 후에도 계속 진행돌 수 있도록 되어야 하겠습니다.

모세는 자기의 사업이 무엇입니까? 이스라엘을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약속하신 가나안땅으로 인도하는 것입니다. 모세는 죽었으나 그 사업은 후계자인 여호수아에 의하여 중단하지 않고 계속되어 졌던 것입니다. 여호수아의 후계자는 누구입니까? 그리스도로 까지 이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는 지금도 살아 있어서 지금우리와 그리고 앞으로 오고 오는 세대 속에서 구원 사역은 계속될 것입니다. 오늘의 우리들도 하나님의 사업 구원 사역이 내가 없더라도 지속될 수 있도록 기틀을 마련하는 우리의 삶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모세는 그의 인생전체를 결산한다면 어떤 것을 할 수 있습니까?

1) 모세는 이름대로 살았습니다.

2) 이름대로 살았습니다.

3) 건강하게 살았습니다.

자신의 일을 여호수아에게 활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이 같은 결산하는 모세처럼 우리의 결산도 모세처럼 아름다워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축복이 머물며 인생을 누리며 살아가는 성도가 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