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와 남편/벧전3:1-7 2002-08-06 14:02:47 read : 150
가정의 달 5월의 마지막 주일입니다. 오늘은 가정에서 가장 중요한 부부관계를 생각하고자 합니다. 성경은 부모와 자녀와의 관계보다도 남편과 아내와의 관계가 더 중요하다고 말합니다. 성경은 남자가 부모를 떠나 아내와 연합하여 한 몸을 이룰 것이라고 했습니다. 가정의 중심이 남편과 아내라는 뜻입니다. 한 가정은 남편과 아내가 결혼함으로써 시작됩니다. 그 다음에 자녀가 생기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부부관계가 먼저이고 그 뒤에 부모와 자녀 관계가 따라오는 것입니다.
행복한 가정의 기초는 원만한 부부관계에 있습니다. 부부관계가 원만한 조화를 이룰 때 가정에는 안정과 평화가 있습니다. 반대로 남편과 아내의 관계가 깨어질 때 가정이 행복할 수 없습니다. 남편과 아내가 화합하지 않으면 부모에게 효도할 수 없고 자녀를 바르게 양육할 수도 없습니다. 부부관계가 깨어지지 않는 한 가정에서 일어나는 모든 문제는 해결의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러나 부부관계가 파괴되면 가정을 건질 수 없습니다. 부부관계가 깨어진다는 것이 곧 가정의 기초가 허물어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가정이 하나 둘씩 깨어지면 사회의 기강도 무너집니다. 사회의 가장 기초적인 공동체가 가정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건전한 가정이 많아져야 합니다. 우리 성도들의 가정이 행복해야 교회도 평화롭고 건강하게 성장할 수 있습니다. 사회도 건전하게 발전합니다. 그래서 성경은 가정을 귀하게 다룹니다. 그 가운데서도 가정의 핵심인 부부관계에 대해 강조합니다.
오늘의 설교 제목이 아내와 남편입니다. 남편과 아내라고 하지 아니하고 의도적으로 ‘아내와 남편’이라고 설교 제목을 붙였습니다. 그것은 오늘 본문이 아내를 먼저 다루고 남편을 뒤에 다루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여기 베드로전서만 그런 것이 아닙니다. 신약성경에서 부부관계를 다룰 때 항상 남편보다 아내를 먼저 언급합니다. 바울이 쓴 에베소서(5:22-33)와 골로새서(3:18-19)를 보세요.
바울이나 베드로 사도가 아내를 남편보다 먼저 언급한 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오늘날처럼 초대 교회 당시에도 부부가 함께 기독교 신앙을 가진 가정은 별 문제가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아내들이 홀로 기독교 신앙을 갖게 되었을 때 기독교 신앙을 받아들이지 않은 남편에게서 적지 않은 핍박을 받았을 것은 당연합니다. 그 당시 아내가 남편의 종교를 따르도록 규정한 로마법에도 저촉이 되었습니다. 여자라는 신분만으로도 무시를 당하던 시대에 예수 믿는다는 것 때문에 고난까지 당했던 아내들의 삶은 얼마나 처절했겠습니까? 홀로 믿은 남자 성도들의 처지는 그래도 나은 편이었을 것입니다. 적어도 가정에서 핍박을 받지는 않았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사도들이 남편들보다도 아내들을 향하여 우선적으로 목회적 관심을 가졌던 것은 당연합니다. 그래서 사도들이 부부에 관하여 권면할 때 남편보다 아내를 먼저 언급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도 먼저 약자 편에 서십니다. 물론 하나님의 사랑은 온전하고 무궁합니다. 풍성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자는 그 사랑에 만족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우리 모두가 하나님의 사랑에 만족한다는 뜻에서 하나님의 사랑은 공평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대상에 따라 사랑을 우선적으로 혹은 더 많이 주시기도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사랑은 편애적인 성격이 있습니다. 이것이 이기적인 편애가 아니기 때문에 오히려 정당한 편애하고 해야 옳습니다. 하나님은 고아와 과부에게 더 우선적으로 사랑을 베푸십니다. 하나님께서 가난하고 불쌍한 자들, 건강이 좋지 못한 자들을 더 우선적으로 사랑하시는 것은 아주 정당하고 자연스러운 것입니다.
그렇다면 부부 가운데 하나님께서 누구에게 더 우선적으로 관심을 가지시겠습니까? 아내이겠습니까? 남편이겠습니까? 답은 약자입니다. 성경이 쓰여지던 당시에는 아내들이 항상 약자였습니다. 그러나 오늘의 시대는 많이 달라졌습니다. 아내에게 매맞고 사는 남편이 꽤 있다고 합니다. 요즈음의 남편들은 기가 많이 꺾였습니다. 일터에서 가정에서 주눅이 들어있는 남편들이 많아졌습니다. 심지어 교회에서도 그렇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하나님께서 남편들에게 보다 더 관심을 기울이는 시대가 된 것 같습니다. 하지만 오늘 본문의 순서를 따라서 아내들에게 주신 권면의 말씀을 먼저 보겠습니다.
1. 아내들에게 주는 권면 (1-6절)
아내들에게 준 베드로 사도의 권면을 한 마디로 말하면 ‘그리스도의 정신으로 자기 남편에게 순복하라’는 것입니다(1절). 바울도 엡 5:22에서 같은 말씀을 했습니다. “아내들이여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주께 하듯 하라! 이는 남편이 아내의 머리 됨이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 됨과 같으니라.” 교회가 그리스도에게 복종하듯이 아내도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남편이 아내의 머리이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몸은 머리에게 항상 복종합니다. 몸이 머리에 붙어 있는 한 몸이 머리의 지시를 따르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남편이 아내의 머리라고 해서 아내가 남편보다 열등하다는 뜻은 아닙니다.성경은 남녀의 우열을 지지하지 않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종이나 주인이나, 여자나 남자나, 노인이나 젊은이나, 무식한 자나 유식한 자나, 이방인이나 유대인이나, 병든 자나 건강한 자나, 장애자나 정상인이나 모두 하나라고 주장합니다. 모두 하나님 앞에서 평등하다는 것입니다. 사람 사이에는 여러 가지 차이가 있지만 그것이 결코 우열을 결정하는 요인이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모두 하나님 앞에서 존귀한 자들입니다. 이러한 남녀 평등 사상은 성경이 쓰여질 당시에는 정말 혁명적인 발상이었습니다.
그러나 남녀 간의 평등 사상은 원래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실 때부터 불변의 원칙으로 세우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자기의 형상으로 창조하셨다고 창세기는 말합니다. “하나님이 가라사대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사람을 만들고 그로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육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창 1:26-27).” 하나님께서 자신을 복수 인칭대명사인 ‘우리’라고 표현한 것에 먼저 주목해야 합니다. 여기서 삼위일체 교리가 나왔습니다.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께서 한 분으로 존재하신다는 교리입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공동체로 존재하신다는 것입니다. 공동체로 존재하시는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실 때 자기를 닮은 사람으로 창조셨다는 것은 사람도 역시 공동체로 존재하게 하셨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사람을 남자와 여자로 창조하신 것입니다. 남자 홀로, 여자 홀로는 사람일 수 없습니다. 사람은 반드시 남녀로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삼위일체 교리의 또 한 가지 의미는 세 분 하나님 사이에 우열이 없으시다는 것입니다. 모두 온전하신 하나님이십니다. 그 온전하신 하나님께서 하나가 되었으므로 온전함의 충만입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존재양식을 따라 창조된 남녀도 서로의 관계 안에서 우열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대신에 남자와 여자는 서로를 필요로 하는 관계입니다. 좀 더 적극적으로 표현하면 남자에게 있어서 여자는 존귀한 존재입니다. 반대로 여자에게 있어서도 남자는 존귀한 존재입니다. 서로를 향해 존귀한 존재로 받아들이는 남녀 관계가 정상적인 관계입니다.
아담과 하와의 첫 만남을 성경은 이렇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아담이 홀로 지내는 것을 좋지 않게 생각하셨습니다. 그래서 아담에게 돕는 배필로 하와를 주셨습니다. 아담에게 하와가 없으면 아담은 온전할 수 없었습니다. 아담은 하와로 인하여 자신의 부족한 부분이 보충되어야 했습니다. 아담이 하와를 처음으로 대면했을 때 그녀의 존귀함을 노래했습니다. “당신은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 이것이 남녀의 연합입니다. 서로에게서 존귀함을 발견하고 기뻐하는 것이 정상적인 부부관계입니다.
부부관계가 서로 대등한 관계라고 해서 질서가 없는 것은 아닙니다. 삼위 하나님 사이에는 서로 질서가 있습니다. 성부 하나님과 성자 예수님, 그리고 성령 하나님 사이에는 그 역할에 있어서 아름다운 조화와 질서가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남편과 아내 사이에도 가정에서 맡은 역할의 차이가 있으며 그 차이를 연결하는 데 조화와 질서가 필요합니다. 이것이 바로 남편이 아내의 머리라는 뜻입니다. 좀 전에 말씀 드렸듯이 성경적 머리 개념이 불평등을 정당화하는 지배권 개념이 아닙니다. 머리가 되었다는 것은 지배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책임을 진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남편이 한 가정의 가장이 되는 것입니다. 가장이 가정을 마음대로 할 수 있다는 의미가 아니라 가장이 가정의 모든 일에 우선적으로 책임을 진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가정의 중요한 일을 결정하고 추진하는 책임이 우선적으로 남편에게 있다는 것을 뜻합니다. 물론 남편이 가장으로서 자기의 책임을 잘 수행하기 위해서는 한 몸인 아내의 도움이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그래야 남편이 자기의 역할을 온전히 수행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돕는 배필로서 아내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뜻입니다.
본문 1절을 다시 보세요. ‘이와 같이’ 자기 남편에게 순복하라고 아내들에게 명령합니다. 여기 ‘이와 같이’란 앞에서 이미 언급된 내용과 연관되어 있다는 뜻입니다. 2:13에 보면 크리스찬들은 하나님께서 인간에 세운 모든 제도에 주를 위하여 순복할 것을 명했는데 그와 같은 정신으로 아내들이 자기 남편에게 순복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인간에게 주신 하나님의 제도란 인간 사회의 파멸을 막는 제도적 장치를 말합니다. 그 제도 안에 국가와 각종 단체 그리고 가정이 있습니다. 그러한 제도들 안에는 나름대로의 질서가 있습니다. 그 질서를 지키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가정 안에서 아내가 남편에게 순복하는 것이 가정의 질서를 지키는 것이요 하나님의 뜻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아내가 자기 남편에게 순복해야 할 이유가 무엇입니까? 남편을 구원하기 위해서라고 1절은 말합니다. 믿지 않는 남편을 구원하는 방편은 아내의 순종이라고 본문은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아내가 남편을 돕는 배필이라는 뜻이 조력자라는 의미 이상입니다. 성경에 돕는 자란 하나님에게 붙여진 별칭이었습니다. 시편 기자는 하나님을 나의 도움이시라고 했습니다. 이때 돕는 자란 뜻은 구원자라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본문에서 말하는 대로 남편이 아내로 인하여 구원을 얻었다면 아내는 남편의 구원자가 되는 셈입니다.
아내들의 가장 큰 고충은 남편이 예수님을 믿지 않는 데 있습니다. 주일에 혼자 교회에 올 때마다 늘 마음 한 구석에 큰 구멍이 난 것처럼 허전합니다. 자기 남편을 향하여 신앙 좋은 아내들의 최우선적인 바람은 무엇입니까? 남편이 돈 많이 벌어오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남편이 출세하는 것도 아닐 것입니다. 신앙 좋은 아내의 최우선적인 바람은 남편이 예수를 믿는 것입니다. 남편이 이미 예수를 믿고 있다면 더욱 잘 믿는 것입니다. 남편이 하나님 앞에서 바로 서서 인격과 신앙이 성숙해가면 아내는 행복하게 될 것이 분명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은 아내의 최고의 바람인 남편의 구원과 신앙의 성숙이 아내에게 달려 있다고 말합니다. 아내가 남편에게 순복할 때 남편이 결국 변하게 될 것이라고 소망의 권면을 주고 있습니다.
그러면 아내가 어떻게 하는 것이 남편에게 순복하는 것입니까? 말로서가 아니라 행위로 순복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아내가 수다를 떤다고 해서 남편이 변하는 것이 아닙니다. 바가지를 긁는다고 남편이 예수를 잘 믿게 되는 것은 더더욱 아닙니다. 바가지를 긁으면 오기가 나서 ‘너나 잘 믿어라’고 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내들은 남편들에게 항상 말조심을 해야 합니다. 가까운 사이일수록 말의 절제가 필요합니다. 남편에게 말을 함부로 하는 아내는 남편을 예수 잘 믿도록 하기가 대단히 힘들다는 사실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오늘 성경은 남편의 구원과 변화가 아내의 말과 겉 모습에 있는 것이 아니라 진정한 겸손과 사랑의 행위에 있다고 말합니다. 즉 아내의 내면의 아름다움이 결국 남편을 구원하고 변화시킨다고 말합니다. 어떻게 하는 것이 남편을 향한 아내의 선한 행위입니까? 2-4절까지 네 가지를 말씀합니다.
1) 남편을 두려워하는 것입니다(2절). 공포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남편을 존경하라는 뜻입니다. 같이 사는 사람을 존경하기는 어렵습니다. 허물이 많이 보기 때문입니다. 연애할 때는 보이지 않던 것이 결혼하면 남편의 약점이 막 드러납니다. 그때 아내들은 실망합니다. 그러나 오늘 말씀은 남편의 부족이나 약점애도 불구하고 남편이 가정의 가장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남편을 자기의 머리로 주셨기 때문에 존경해야 한다고 합니다. 이 말씀은 더 적극적으로 남편에게서 존경할 부분을 찾으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면 반드시 존경할 부분을 발견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아내가 남편을 존경하면 덕을 얻는 자는 아내입니다. 대체로 보면 아내가 남편을 무시하는 가정에는 자녀교육이 제대로 되지 않습니다. 자녀들 보는 앞에서 남편의 흠을 잡지 마십시오! 꼭 말해야 할 때는 단 둘이 있을 때, 그리고 여러 번 생각하고 기도한 다음에 가장 부드러운 말로 하십시오! 이것이 사소한 일 같지만 가정을 바르게 세우고 자녀를 바르게 교육하는데 아주 중요한 원리입니다. 남편을 존경하십시오! 남편의 약점을 가장 슬기롭게 도와주는 아내들이 되십시오!
2) 정결을 유지하라는 것입니다(2절). 남편이 잘못된 길로 가더라도 같이 방탕에 빠지지 말라는 것입니다. ‘어떻게 하면 가정을 구할까, 바르게 세울까?’를 생각하고 거룩한 삶을 살아라는 것입니다.
3) 외모 가꾸기에 너무 신경 쓰지 말라고 합니다(3절). 사치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겉 모양이 남편을 감동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4) 대신에 오직 온유하고 안정된 심령을 가져라고 합니다(4절). 내면의 아름다움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한 주석가는 온유한 마음과 안정된 마음의 차이를 이렇게 설명합니다. 온유한 마음은 소란을 일으키는 원인을 조절하는 마음으로서 온유한 마음의 소유자는 자기 스스로 소란을 일으키지 않습니다. 반면에 안정된 마음은 남이 일으킨 소란에 대하여 참고 인내하는 마음으로서 이런 마음의 소유자는 밖에서 일어난 소란에 말려들어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외유내강한 마음을 뜻합니다. 요즈음 심리학자들은 스트레스는 발산해야 한다고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마음에 병이 된다고 주장합니다. 그래서 화 날 때는 화를 내어야 한다고 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스트레스는 절제된 마음으로 다스려야 한다고 합니다. 특히 가정은 조용하고 유쾌해야 합니다. 가정의 이런 분위기는 아내의 마음 씀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남편은 감동에 약합니다. 아내의 아름다운 마음과 섬세한 배려에 남편이 감동하면 남편은 모든 것을 아낌없이 아내 하자는 대로 할 것입니다. 남편의 성공은 거의 아내에게 달려 있습니다. 이 사실을 아내가 알아야 합니다.
그러면 아내들이 어떻게 내면의 아름다움을 견지할 수 있을까요? 남편에게 부족한 점이 많아도 남편을 존경하고 설령 남편이 방탕한 짓을 해도 자신은 정결을 유지하고 폭발하고 싶은 때라도 꾹 참고 인내할 수 있겠습니까? 그 해답이 5절에 있습니다. 하나님께 소망을 두면 됩니다. 속이 상하는 모든 문제를 하나님 앞에 와서 해결하라는 것입니다. 벧전 2:19에도 ‘애매히 고난을 받아도 하나님을 생각하므로 슬픔을 참으면 그것이 아름답다’고 말씀합니다. 예수님께서 그리 하셨다고 강조합니다.
아내들이여, 여러분들에게 남편을 주신 하나님의 귀한 뜻이 있습니다. 남편 때문에 여러분이 손해 본다고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남편은 하나님께서 여러분들에게 주신 귀한 선물입니다. 남편 때문에 여러분은 연단을 받습니다. 그래서 신앙 인격이 자랍니다. 남편 때문에 여러분은 안정을 얻습니다. 그러므로 남편을 여러분에게 주신 하나님을 바라보십시오! 하나님께 소망을 두십시오!
남편 때문에 두려운 일이 벌어져도 이 남편을 주신 나에게 주신 하나님을 생각하며 그 하나님께서 언젠가는 남편을 아름답게 변화시키실 그 날을 소망하십시오! 무슨 일이 벌어져도 변함없이 남편을 사랑하고 존경하고 조용하게 가정을 이끌고 자녀를 잘 키우면 열국의 어미가 된 사라처럼 존경을 받게 될 것입니다.
잠언 31장(28-31절)에서 현숙한 여인이 받을 복을 이렇게 열거하고 있습니다. “그 자식들은 일어나 시례하며 그 남편은 칭찬하기를 덕행 있는 여자가 많으나 그대는 여러 여자보다 뛰어난다 하느니라. 고운 것도 거짓되고 아름다운 것도 헛되나 오직 여호와를 경외하는 여자는 칭찬을 받을 것이라. 그 손의 열매가 그에게로 돌아갈 것이요 그 행한 일을 인하여 성문에서 칭찬을 받으리라.” 이러한 축복이 아내들에게 있기를 바랍니다.
2. 남편들에게 주는 권면
남편들에게 준 베드로 사도의 권면은 7절에 단 한 절로 요약하고 있습니다. 아니 아내들에게는 여섯 절씩이나 말하면서 우째 남편들에게는 단 한 절만 말합니까? 베드로 사도가 남자이니까 남자 편을 들고 있는 것이 아닌지 의심이 갑니다. 그래서 아내들의 심기가 불편해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조금만 생각하면 오해가 풀립니다. 이미 말씀을 드렸습니다. 초대교회 당시에는 교회에 믿지 않는 남편을 둔 아내가 수적으로 많았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고충이 너무 컸기 때문에 베드로 사도는 그런 아내들에게 많은 말로 권면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부부관계에 관한 성경의 다른 부분을 보면 또 달라집니다. 바울 사도가 부부관계에 대하여 다룬 엡 5:22-33까지 보면 총 12절 가운데서 남편에게 아홉 절을 할애하고 아내에게는 세 절을 할애했습니다. 그러니까 서로 상쇄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더 바람직한 태도는 아내들이 베드로전서를 통하여 더 많은 말씀을 받은 것에 대하여 감사해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생명과 축복의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더 많이 주이소!’ 해야 합니다.
남편들은 사도로부터 한 절의 말씀만 받았다고 좋아할 것이 결코 아닙니다. 원래 남자들은 많은 말을 들으면 잔소리처럼 생각하는 습관이 있습니다. 그래서 굵고 짧게 한 마디로 끝냈다는 것을 명심하셔야 합니다. 그것이 ‘이와 같이’라는 말에 들어 있습니다. 아내가 남편에 그리 해야 하듯이 남편도 그리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남편에게 주는 권면의 말씀에 더 큰 무게가 실려 있음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베드로 사도가 남편에 준 의무는 두 가지입니다.
1) 아내와 동거하라는 것입니다.
아내와 동거한다는 것은 연합하라는 뜻입니다. 아내와의 연합은 전인적인 연합을 말합니다.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정서적으로 영적으로 하나가 되는 것이 성경에서 말하는 연합입니다. 육체적인 연합은 육체적으로 힘이 센 남편이 아내를 도와 즐겁게 집안일을 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말합니다. 옛날에는 아내가 임신했을 때 남편이 부엌에 들어가거나 집안일을 하는 것을 상스럽게 여기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관습은 아내는 물론 남편 자신에게도 덕이 되지 않습니다. 남편은 언제나 아내를 보호해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그래서 아내가 힘들 때는 남편이 집안일을 돕는 것도 권장할만한 일입니다. 그리고 육체적 연합이란 오직 자기 아내와만 성 관계를 가지는 것을 포함합니다. 성적으로 문란한 시대에 어떠한 일이 있어도 육체적인 정결을 지켜야 합니다. 친구 따라 강남 간다고 방탕한 일에 함께 어울려서는 안됩니다. 조심하십시오!
남편이 아내와 정신적으로 바르게 연합하려면 우선 성경적인 인간관에 대하여 바른 이해가 있어야 할 것입니다. 지금까지 여성들과 아내들이 사회적으로 잘못된 문화적 전통 때문에 항상 불리한 위치에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것을 성경이 지지하지 않습니다. 앞에서도 말씀 드렸듯이 성경은 남존여비 사상을 결코 두둔하지 않습니다. 모두 하나님 앞에서 똑같은 권리를 갖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남편들이 사회적 관습과 문화적 전통에 매여 아내를 윽박지르고 압제하면 하나님의 진노를 살 것입니다. 아내로 하여금 정신적인 자유와 안정을 주는 남편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남편은 아내가 기댈 수 있는 정신적 지주가 되어야 합니다.
정서적 연합은 함께 기쁨과 슬픔을 나누는 것을 말합니다. 아내들은 남편의 작은 배려에 크게 감동합니다. 그런데 저를 비롯해서 남편들이 이것을 잘 모릅니다. 지혜가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지난 금요일 토요일에 행복한 가정 만들기 세미나에 12가정이 참가했습니다. 시간이 너무 짧아 준비한 모든 것을 다 할 수는 없었습니다. 그러나 아주 좋은 시간을 가졌습니다. 그 중에서도 가장 의미 있었던 것은 부부가 서로에게 감사하는 작은 표현들을 자주 나누었다고 하는 것입니다. “여보, 사랑해요! 감사해요! 미안해요!” 이 세 마디 말이 가정을 행복하게 하는 천국 방언이라고 하지 않습니까? 박진태 목사가 가르쳐준 것인데, 왜 입이 찢어졌는지 아십니까? 가죽이 모자라서가 아니라 좋은 말 하라고 찢어진 입을 주셨다는 것입니다. 너무 남편들이 무뚝뚝한 것 좋은 것이 아닙니다. 집에 들어가서는 어깨에 힘 좀 빼시기 바랍니다.
가장 중요하고 밑바탕이 되는 연합은 영적인 연합입니다. 하나님 안에서 같은 목표를 갖고, 같이 예배하고 찬송하며, 같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나누며, 같이 기도하는 것을 말합니다. 부부가 잠자리에 들면서 서로가 손을 잡고 하나님께로 나아간다면 부부의 연합은 견고하고 온전할 것입니다. 세상에 어떤 풍파가 닥쳐와도 그 사이를 파괴할 수 없습니다. 이러한 부부의 연합이 진정한 사랑이며 평화이며 행복입니다.
2) 아내를 존귀하게 여기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남편이 아내를 잘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사도는 ‘지식을 따라’ 아내와 동거하고 아내를 귀히 여겨야 한다고 말합니다. 여기 ‘지식을 따라’란 말은 모든 것을 사려 깊이 생각하는 것, 섬세하게 고려하는 것을 말합니다. 요즈음 아내의 건강 상태가 어떤지, 어디 안 좋은 데가 있지는 않은지, 아내의 연약함이 무엇이며 강점은 무엇인지, 그래서 내가 도와주고 격려하고 칭찬해야 할 부분은 무엇인지, 아내의 소원이 무엇인지, 지금 아내의 감정 상태가 어떤지, 아내의 영적 상태가 어떤지, 모든 부분에서 좀 세밀하게 알려고 노력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별 생각 없이 아내를 대하지 말고 하나님께서 주신 가장 귀한 선물로 아끼고 감사하고 즐거워하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은 아내를 귀히 여기지 않으면 안 될 이유를 몇 가지 열거하고 있습니다. 첫째는 아내가 남편보다 더 연약한 그릇이기 때문입니다. 남편도 연약한 존재입니다. 그러나 아내는 더 연약한 존재입니다. 성경에는 항상 강한 자가 약한 자의 짐을 지라고 권면합니다. 이것이 상대적으로 강한 자에게 주신 책임입니다. 우리가 유리 그릇을 조심스럽게 다루는 이유는 자칫 잘못하면 깨어지기 때문입니다. 바로 그와 같이 아내를 조심스럽게 대하라는 것입니다.
아내를 귀하게 여겨야 할 두 번째 이유는 생명의 은혜를 유업으로 함께 받을 자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아내를 귀히 여기시므로 남편도 마땅히 아내를 존귀하게 여겨야 한다는 것입니다.
아내를 귀히 여겨야 할 마지막 이유는 하나님과의 교제가 막히지 않기 위해서 입니다. 이것은 아주 무서운 경고입니다. 아내와의 관계가 깨어지면 하나님과의 관계도 정상적일 수 없다는 의미이기 때문입니다. 제 경우를 보아도 아내와 사이가 좋지 않을 때 기도가 안 됩니다. 영적으로 답답해서 견딜 수가 없습니다. 그러면 설교 준비가 제대로 될 리 없습니다. 목회는 엉망이 될 것입니다. 목사가 아니더라도 마찬 가지입니다. 아내와 사이가 좋지 않는 남편은 모든 일에 질서가 없고 만족이 없습니다. 특히 영적으로 피폐해집니다. 아내와의 연합 중에서 가장 중요하고 기초적인 연합이 영적인 연합이라고 이미 말씀 드렸습니다. 아내와 불화한 상태에서 하나님께 나아가 기도할 마음이 생기지 않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현상입니다. 그래서 결혼한 후에는 영적인 성숙이 남편 따로 아내 따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함께 성숙하든지 퇴보하든지 합니다. 아내와 불화한 상태에서 영적으로 성숙하기란 대단히 힘들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아내와 평생 영적인 여정을 같이 해야 할 운명임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기도하는 일 외에는 아내와 분방하지 말라고 성경은 교훈합니다.
하나님께서 사도를 통하여 남편들에게 주신 권면대로 아내들을 진지하게 사랑하고 존귀하게 여기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우리는 성경적인 부부관계에 대하여 말씀 드렸습니다. 잘 아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지키기에는 쉽지 않은 말씀입니다. 부부가 행복하지 않으면 가정도 행복할 수 없습니다. 좋은 부부가 많으면 많을수록 행복한 가정, 건강한 교회, 바른 사회가 이루어지는 법입니다.
가정의 달 5월은 이제 지나갑니다. 그러나 서울중앙교회에 속한 모든 가정은 늘 행복한 가정이 되기를 바랍니다. 특히 아내와 남편들이 성경에서 말하는 대로 자기의 책임들을 다 하시기 바랍니다.
결혼을 준비하고 있는 청년들에게 부탁합니다. 미리 성경의 교훈대로 결혼을 잘 준비하시기 바랍니다. 배우자를 선택할 때 겉 모습에 눈이 홀리지 않도록 주의하십시오! 순간의 선택이 영원을 결정합니다. 그러므로 내면을 볼 수 있는 영적인 분별력을 있어야 합니다. 만약에 여러분의 상태가 지금 영적으로 문제가 있다고 판단하면 결혼의 대상을 구할 때 아주 조심해야 합니다. 부모나 좋은 선배나 영적 지도자와 상담하는 게 좋습니다.
이 자리에 홀로 되신 분들도 있습니다. 혼자 사실 수 있으면 그렇게 사는 것이 좋습니다. 그러나 육체적으로 연약할 경우에는 결혼해도 괜찮습니다. 기회가 생겨서 결혼하게 될 때 다시는 후회 없는 결혼 생활이 되려면 지금 이 순간이 중요합니다. 신앙생활 잘 하십시오! 그러면 주께서 새로운 기회를 주실 것입니다.
여러분, 가정의 가치는 대단히 큽니다. 그 가운데서도 아내와 남편의 가치는 너무나도 귀합니다. 서로 사랑하고 존경하는 부부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연로하신 성도님들께서는 여러분들의 자녀들과 청년들의 결혼 생활을 마음껏 축복하시기 바랍니다. 서울중앙교회에 속한 모든 가정들이 행복한 가정 되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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